“아빠, 있잖아요! 엄마랑 마트에 갔는데, 어쩌구 저쩌구….”
넥타이도 채 풀기 전에 작은애가 뽀르르 다가와 쫑알거리기 시작합니다.
“아빠, 나 목마 태워 주라.”
잠시라도 빈틈을 보이면 여지없이 매미 같은 녀석의 고목나무가 됩니다.
“자꾸 귀찮게 하면 아빠 집에 안 들어온다!”
하지만 달라붙어 떠들어 대는 꼬마매미에게 으름장이 통할 리 없다는 걸
알기에 제가 이내 포기해 버립니다.
‘재잘재잘, 쫑알쫑알, 이랴 이랴….’
놀잇감인지, 만만한 먹잇감인지 구별이 안 될 때도 있지만 사실 싫지는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영원히 느끼지 못할 행복이란 걸
큰 아이가 저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바빠했는지, 그때는 왜 그렇게 지쳐 했는지….
어느새 엄마 키만큼 자라 작은 아이처럼 쫑알대지도,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닫혀진 큰아이 방문 앞에서 오히려 제가 ‘요즘 어때?, 산책할래?’하며
말을 걸어 보지만 공부 때문에, 사춘기의 예민함 때문에 녹녹치 않습니다.
얼마 전에 올린 메일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드렸지요.
‘나중에’ 하며 미룰 수 없는 것이 있다고,
‘기다려’ 해도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입니다.
때를 놓치면 영원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이가 아이일 때 함께 하는 추억입니다.
아이가 훌쩍 자라 제 큰 딸처럼 어른을 닮기 전에, 폭삭 안고 싶어도
징그럽다며 등을 돌리기 전에 많이 놀아주고, 많이 안아 주세요.
막내가 다가와 제 귀에 작은 입으로 대고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하고
말해 주는 지금이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왜 이런 말 있지 않습니까. ‘하인 앞에 영웅 없다’라는 말말입니다.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지요.
늘 함께 있고, 늘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진실과 거짓을 누구보다도 빨리
눈치 채기 때문에 하는 말 일겁니다.
그래서 저는 자녀가 부모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부부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이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가족이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 중에 한 명이, 부부 중에 한 사람이 마음에서 아주 멀어지거나, 아니면
그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물질적인 부자가 된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언젠가 어느 분이 ‘가족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할 만큼 밤 낮 없이 열심히
일을 했더니 종당에 돌아오는 것은 가족과의 이질감뿐이더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조금 더 자라 다른 이성에게, 다른 관심거리에게로 마음과 몸이 떠나기 전에
지금 우리 아이들을 마음껏 안아주고 사랑해 주세요.
다른 부모들만큼 아이를 사랑해 줄 수 없다고 해서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해 줄 수 있는 만큼, 안아 줄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 안아 주세요.
남들만큼 잘 해주지 못한다고 못난 것이 아닙니다.
해 줄 수 있는 것도 안하는 사람이 못나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야기가 여기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한 마디 덧붙여 쓰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다 자란 성인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훈련생들을 가르치는 조교로 근무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거칠기로 소문난 특수부대라 훈련생들도 대단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문제아가
대다수 지원해 오는 곳이라 근무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 곳이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들 중에서 성장 환경을 물을 때 예민한 반응을 보이던 몇몇이 생각납니다.
‘자신이 자란 가정이, 또는 아버지가, 또는 어머니가 제일 싫다!’며
신경질적으로 증오하며 부모의 존재를 강하게 무시해 버리던 사람들과
‘묻지 마십시오!’ 하면서도 흙투성이인 눈가가 잠시 충혈 됐던 사람들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생활수준과 관계없이(궁핍한 환경에도) 부모의 진짜 마음을
잠깐이라도 느껴 본 경우고, 전자는 많은 걸 받았어도 그 것이 빠지거나
부족한 경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잠시 훈련을 맡았던 얼굴이 동그란 여군 훈련생이 떠오릅니다.
“비 온다고 일을 못나간 아버지가 주룩주룩 비가 떨어지는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저에게 파전을 부쳐 줬어요. 에이 씨! 안 먹는다는데, 자꾸 먹으라고….”
하지만 그 친구는 훈련이 없는 휴일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며 티나지 않게
흐느꼈습니다. 단체로 부모님 은혜 노래를 합창할 때도 그랬지요.
저는 그 친구가 그 날 아버지의 떨리는 말소리를 잊지 못하고 기억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안하다. 애비가 못나서…. 잘 차려 입은 애들 볼 때마다 늘 너에게 미안했다.”
시간이 흘러 제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대충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일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잘하거나 남들만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거나 미끄럼을 탑니다.
아이들과 같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힘들다고 말하고 아이들이 힘겨워 하는 것을 들어 줍니다.
하지만 자주는 아닙니다. 어쩌다 생기는 조금 한가한 날에만 그렇게 합니다.
종일 놀아주는 엄마보다 간혹 만나 잠깐 놀아 주는 삼촌과의 놀이가 더 신난다고
했던 막내의 말에 힌트를 얻어 아주 잠깐이라도 친구처럼 미친 듯이 놀아 줍니다.
그래야 저도 즐겁기 때문입니다. 일이나 짐이 아닌 제가 행복한 놀이입니다.
사랑은, 행복은 함께 만들어 가는 추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심어 줘야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많이 사랑해야 하고, 많은 추억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지 마세요.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안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안아주고, 함께 놀 수 있을 때 신나게 놀아 주세요.
그리고 그 때 마음을 다하고 마음껏 행하세요.
하지만 때를 놓치거나 미루지는 마세요. 아이는 자랍니다.
기다려 주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부모의 생각보다 빨리 자라 버립니다.
안녕하세요. 배넷아이 운영자입니다.
인사가 늦어 졌네요. 회원님들 모두 건강하시지요.
편찮으신 분이 혹시 계시면 얼른 완쾌되시고,
지친 분이 계시면 빨리 좋은 기운을 되찾아 행복해 지시기를 빌겠습니다.
조금 전에 쓴 제 글을 보니 마치 제가 저희 두 녀석에게 무결점의 백점짜리
아빠인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라는 말이 싫지 않기에 저도 노력할 겁니다.
아내에게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 들으려고 애 쓸 겁니다.
오늘도 알맹이 없는 말만 두서없이 늘어놓았습니다.
장마가 코앞이라 그런지 날씨가 제법 무덥습니다.
이런 날씨가 사람을 더 지치게 하고, 더 짜증나게 한답니다.
일터에서 퇴근하는 남편에게, 가사와 육아에 지친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당신이 있어 참 행복하다는 말을 먼저 전하세요.
처음의 사랑이 변했다고 말하기 전에 다시 변하도록 먼저 변해서 말하세요.
말이 조금 어려워 졌네요. ^ㅇ^;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지 말고 처음 사랑할 때의 생각만 떠올리세요. 그래서
그 때처럼 다시 종알종알 사랑을 말하세요. 아이처럼 사랑을 자주 말하세요.
저도 그러겠습니다.
자주 인사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늘 진심으로 행복하시기를 빌며 이만 줄입니다.
-2007년 6월 18일 새벽에 두 아이의 애비인 운영자 올립니다.
@ 마무리 중에 있는 새로운 콘텐츠 하나를 조만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