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204648.html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7-04-23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섭고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비로그인 2007-04-23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가 잘못된 것이지 사람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인가.

마노아 2007-04-2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만든, 혹은 방치한 그 사회의 구조적인 잘못에 반성을 하는 거죠. 그렇다고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좋아지진 않네요. 배울 것이 있기는 하지만요.
 
 전출처 : 라미닌 > 삿6:12,막5:34 인정하는 말

 

삿6:12,막5:34 인정하는 말


미국에 ‘루번’이라는 이름을 가진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루번 목사님은 3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 부임하여 2천 명 정도 모이는 교회로 부흥시켰습니다. 루번 목사님의 교회에서는 노숙자들을 위하여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였고 마약 중독자들을 위하여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습니다. 루번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설교하였고 교인들도 루번 목사님을 좋아하였습니다. 루번 목사님은 목회에도 전념하였고 가정에도 충실하였습니다. 루번 목사님은 아내를 위해 시도 써 주었고 노래도 불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루번 목사님의 아내인 패치 사모님은 사랑을 담는 저수지가 말랐습니다. 패치 사모님은 남편이 설거지도 도와주고 청소도 해주고 쓰레기도 치워주기를 바랬습니다. 루번 목사님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는 말로 표현했지만 패치 사모님은 남편의 사랑을 봉사로 기대했습니다. 루번 목사님과 패치 사모님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랑의 언어가 어긋나 곤란을 겪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 가정에서도 일어납니다.


미국의 저명한 상담심리학자인 게리 채프먼 박사는 결혼과 가정에 관하여 30년 동안 상담하면서 5가지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였습니다. 사랑의 언어가 다양하다 보니 내가 기대하는 사랑의 언어와 상대방이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가 달랐습니다. 내가 기대하는 사랑의 언어로 사랑받지 못하면 상대방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고 상대방에게 맞는 사랑의 언어를 표현하기를 바라며 사랑의 언어 설교시리즈를 준비하였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사랑의 언어인 ‘인정하는 말’을 다루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정하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예를 들어 “참 잘 했어요.” “옷이 잘 어울리네요.” “음식 맛이 너무 좋아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멋쟁이에요.” “당신은 잘도 참아내는군요.” 인정하는 말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외모나 성격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말을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말 한 마디에 행복해 집니다. 


하나님께서도 인정하는 말을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셨습니다. 사사기 6장을 보면 미디안 족속이 7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혔습니다. 유목민인 미디안 족속은 추수 때가 되면 이스라엘 자손을 공격하여 곡식을 탈취해 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견디다 못해 미디안 족속을 몰아내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셨습니다. 사사기 6장 11절을 보면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라고 나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족속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곡식을 털고 있었습니다. 탈곡을 하려면 검불이 많이 날리기 때문에 개방된 장소에서 하였으나 기드온은 미디안 족속에게 들키면 곡식을 빼앗길까봐 포도송이를 발로 밟아서 포도주를 만드는 통이나 구덩이인 포도주 틀에서 검불을 뒤집어쓰면서 곡식을 털었습니다. 기드온은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졸장부’라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12절을 보면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천사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겁이 많은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인정해 주었습니다. 기드온은 용기를 얻어 미디안 족속을 물리쳤습니다. 8장 28절을 보면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이처럼 인정하는 말은 졸장부를 대장부로 만들기도 합니다. 겁쟁이를 용사로 만들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주변 사람 중에 낙심한 사람이 있으면 인정하는 말로 용기를 불어넣어주십시오.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 남편들은 인정하는 말을 특히 좋아합니다. “당신은 훌륭한 남편이에요.” “당신이 있어 너무 행복해요.” 남편들은 아내의 인정하는 말에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립니다.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지 말고 인정하는 말을 하십시오. 남편에게 고마워하십시오.


예수님께서도 인정하는 말을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한 여인이 ‘혈루증-하혈병-생리불순’을 앓았습니다. 구약 율법에서는 여인이 피를 흘리는 7일 동안은 부정하였습니다.(레15:19-33) 이 기간 동안 이 여인과 접촉하는 사람들도 부정하였습니다. 이 여인이 접촉한 물건을 만진 사람들도 부정하였습니다. 이 여인과 접촉한 사람들은 옷을 빨아야 했고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옷을 빨고 몸을 씻으려면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피를 흘리는 여인은 아예 기피대상이었습니다. 이렇게 7일 동안 피를 흘려도 불편한데 이 여인은 한 두 달도 아니고, 일 이 년도 아니고, 무려 12년간이나 피를 흘렸습니다. 이 여인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영양분이 피로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도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부정해 질까봐 슬슬 피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회당에 나가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회당장이 부정한 여인이라고 출입을 금지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피를 흘려 육체적으로도 고통을 겪었습니다. 기피대상이 되어 사회적으로도 고통을 겪었습니다.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찍혀 종교적으로도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4절을 보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라고 인정해주었고 칭찬해 주었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여인은 그동안 몹쓸 병에 걸렸다고 아버지에게 내쫓겼습니다. 어쩌면 남편이 이혼을 요구한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는 부정한 여인을 딸로서 인정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여인의 가족들은 약값으로 재산을 탕진했다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인과 옷깃이라도 스칠까봐 비명을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부정한 여인이 옷자락을 만진 행동을 믿음으로 인정하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 평안히 가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여인은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갔고 몸에 좋다는 약은 다 먹어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12년간 앓던 고질병을 단숨에 고치시고 건강하게 살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통해 혈루증을 고침 받아 육신의 상처도 고쳐졌고 예수님이 딸이라고 인정하는 말을 듣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주변 사람 중에 열등감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인정하는 말로 자존감을 불어넣어주십시오. “그리도 너는 이것을 잘 하잖아.” 아내들도 인정하는 말을 좋아합니다. “당신이 뒷바라지를 해줘서 내가 마음 놓고 일 할 수 있어.” “다 당신 덕이야.” 아내들은 남편들의 인정하는 말에 집안 일로 쌓인 피로를 잊어버립니다. 아내에게 핀잔하지 말고 인정하는 말을 하십시오.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 주십시오.


자녀들도 인정하는 말을 필요로 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인정하는 말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2007년 2월 15일 KBS 9뉴스를 보면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먼저 쉬운 문제를 풀도록 했습니다. 결과에 관계없이 한쪽 학생들에게는 똑똑하다는 칭찬을 하였고, 다른 쪽 학생들에는 노력하는 모습을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주 어려운 문제도 풀게 하고 아주 쉬운 문제도 번갈아 풀도록 했습니다. "정말 똑똑하구나." 머리가 좋다고 칭찬받은 학생들의 성적은 오히려 20% 하락했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경우에 받은 기대만큼이나 부담을 더 느끼게 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학습의욕 저하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나 "정말 노력하는구나." 노력한다고 칭찬받은 학생들은 어려운 문제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으로 연결되었고 실패를 다루는 전략을 익히게 되면서 성적도 30% 상승했습니다. 노력을 강조하면 아이들이 자신들의 손에 성공이 달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연구팀은 칭찬도 제대로 해야지, 무조건적인 칭찬은 오히려 안 한 것만 못하다고 강조합니다.


오늘날은 물질적으로는 풍족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궁핍해졌습니다. 특히 사랑에 굶주렸습니다. 사랑의 저수지가 말랐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인정하는 말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사랑을 충전시켜줄 수 있습니다. 사랑의 저수지가 마른 사람들에게 생수를 가득 채워줄 수 있습니다. 인정하는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사랑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 / 듀나(Djuna)djuna01@empal.com
 

http://www.yes24.com/chyes/ChyesColumnView.aspx?title=005004&cont=1745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7-04-20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숨값.. 목숨의 무게...ㅜ.ㅜ

진/우맘 2007-04-20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금액의 차원이 아닌 얘기군요....흠...

뽀송이 2007-04-20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ㅜ

마노아 2007-04-20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마다 작아지는 느낌이에요. 반성하고 아파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ㅠ.ㅠ

비로그인 2007-04-2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값'이라는 글자가 크게 보입니다.

마노아 2007-04-20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전출처 : 멜기세덱 > '시간강사 제도', 근본적인 기로에 서다(김명인)

'시간강사 제도'에 대한 칼럼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시간강사 제도'가 아직까지도 근본적 해결없이 지속되어 온 것은 분명 고등교육기관이라는 '대학'의 야만성과 폭력성, 그리고 악질 자본주의적 사고에서 기반한다고 본다. 분명 미미한 하나의 변화의 단초이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하나하나 '근본적인' 해결로 나아갔으면 한다.

'시간강사 제도', 근본적인 기로에 서다
  [김명인 칼럼]'겨우 존재하는 사람들'과 대법원 판결 2007-04-16

 

 

시간강사의 현실에 대해서는 여러 채널을 통해 박노자 교수가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 문제는 대학당국과 시간강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정규직 대학교수들의 무게있는 발언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명인 교수의 이 칼럼은 그런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남의 일이 아닌 시간강사의 문제를 더이상 우리 대학사회의 정규직들이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럴때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번역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내일자 한겨레에 저명한 번역자 김석희씨의 이야기가 기획기사로 실렸기에 옮겨놓는다. 비록 소설가로서는 문명을 드높이지 못했지만 일급의 번역자로서 그의 능력과 태도는 귀감이 될 만하다. 번역에 너무도 많은 걸 빚지고 또 의지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런 현실과는 전혀 걸맞지 않게) 한편으론 번역을 홀대하는 문화적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지만) 다시금 공유하도록 한다. 

한겨레(07. 04. 13) “번역이 살아야 학문도 출판도 살지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02652.html

07. 04. 12.

P.S.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기사를 읽다 보니까 기억에 떠오는 책은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한길사, 1997)이다. 저자가 60권의 번역서를 낸 걸 기념하여 역자후기만을 모아놓은 책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150종, 20권 남짓을 번역했다고 하니까 지난 10년간 최소 90종의 책을 더 번역한 셈이다.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150> 정도의 증보판이 나올 만하다. 아마도 이윤기, 안정효 선생과 자웅을 겨룰 만하지 않나 싶다. '번역의 달인'들이 따로 있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