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1804 호/2013-02-18

[FUTURE]“귀하의 생체 정보를 병원에 전송 완료했습니다”

<2013년 KISTI의 과학향기에서는 올 한 해 동안 매월 1편씩 [FUTURE]라는 주제로 미래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칼럼에서 언급된 미래기술은 KISTI에서 발간한 <미래기술백서 2013>의 자료를 토대로 실제 개발 중이며 10년 이내에 실현 가능한 미래기술들을 선정한 것입니다.
미래기술이 상용화 된 10년 이후 우리의 생활이 어떨지, 또 이 기술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이야기로 꾸며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3년 2월 18일, 설 쇠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설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이름은 유향기, 올해 떡국 한 그릇 더 먹어 35살. 화려한 싱글이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로 늘어나면서 여자의 결혼적령기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늘었다. 결혼도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반평생을 함께 살 건데, 결혼 잘못해서 두고두고 후회하며 사느니 확실한 남자가 아니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뭐 요즘 세태이기도 하고. 아기가 갖고 싶다면 정자은행에서 우량 정자를 구입해 아이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설 전날 찾아온 삼촌과 고모가 ‘왜 결혼 안 하느냐’, ‘여자는 때 놓치면 X값 된다’ 등 저속한 표현까지 써가며 양동작전으로 날 몰아세웠다. 틈만 나면 결혼한 걸 후회하시는 분들이 왜 나에겐 명절날만 되면 이토록 결혼 전도사 역할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간다. 선문답, 침묵, 무시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가며 상황을 벗어나려 해봤지만 백약이 무효.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화려한 솔로한텐 가장 비참하다는 주말 아침. 늘 그렇듯 약속이 없는 관계로 늦잠을 실컷 즐길 심산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침대가 아이돌스타도 소화하지 못하는 웨이브를 하며 송중기 목소리로 날 깨우는 것이 아닌가!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공주님! 회사 갈 시간이라고요~!”



비몽사몽간에 침대 머리맡에 있는 정지 버튼을 눌렀다. 스마트 침대¹⁾의 알람 기능을 주말 모드로 변환했어야 했는데 깜박했다. 그 바람에 잠이 확 깼다. 하지만 따뜻한 잠자리를 떨쳐버리고 일어나기가 싫었다. 벽에 걸린 TV를 향해 ‘아침 드라마’라고 말하자 대화형 스마트 TV²⁾에서 어제 보던 드라마가 이어서 나온다. 스토리가 막장 드라마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갑자기 지루해졌다. 손가락으로 TV를 가리키며 까딱거리자 다음 채널로 넘어간다.³⁾ 홈쇼핑에서 국내 최저가라며 다이어트 음료를 열심히 설명하는 MD가 갑자기 뽀글 파마를 한 엄마로 바뀌면서 잔소리를 쏟아낸다!

“아직까지 늘어져 자는겨! 엄마 시장 보고 곧 들어갈 테니 방 청소 좀 해놔잉!”

나는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떨어질 뻔 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다.

“할 말 있으면 휴대폰으로 하지, TV에 왜 나타나고 그래! 엄마는 방송 스타일이 아니라구 했잖아!”
“난들 어케 알어? 너한테 휴대폰한 것 뿐이여.”

요즘엔 통화가 안 되면 자동으로 TV나 다른 디지털 기기로 접속돼 어떻게든 상대방과 연결시킨다. 유비쿼터스가 만든 새로운 세상이다.

마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뭐 먹을 게 없는지 냉장고로 갔다. 냉장고 모니터에는 김치의 숙성도와 우유와 과일의 신선도가 그래프로 잘 나와 있다.

“흠, 우유 마시기 딱 좋은 상태네.”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를 꺼내려는 순간, 모니터에 엄마의 얼굴이 또 짠~ 하고 뜬다.

“이것아, 우유 먹으면 살 쪄. 옆에 채소즙 갈아놨으니 그거나 먹어! 그렇게 살 쪄서 어디 시집이라도 가겠냐! 그리고 집 청소는 해놨니? 곧 들어간다잉!”

요즘 나는 엄마의 손바닥 안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엄마의 휴대전화에 다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세상이 되면 다들 편리하고 행복할 거라고 했지만 나의 사생활은 이미 끝났다.

나는 어쨌든 엄마의 잔소리를 더 듣기 싫어 애완견 로봇 ‘부담스러우니’를 불렀다.

“부담스러우니~~”

그러자 부담스러우니가 달려와서 내 허벅지에 올라타며 부담스런(?) 애교를 부린다. 실제 애완견 보다는 못하지만 로봇 애완견도 귀엽긴 귀엽다. 나는 부담스러우니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거실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랬더니 부담스러우니가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열심히 방청소를 한다.⁴⁾ 이곳저곳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먼지란 먼지는 다 핥아먹는다. 그리고는 나에게 느끼한 미소를 한번 던지고 충전기가 설치된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간다. 저건 필시 로봇이 아니라 요물이다.

웃! 아침부터 차가운 우유를 마셔서일까? 갑자기 배에서 신호가 왔다. 급히 화장실로 가 변기에 앉았다. 아랫배에 힘을 줬더니 시원함과 동시에 찢어질 듯한 통증이 함께 동반됐다.
이때 화장실 벽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침착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변에 미량의 혈액이 섞여 나옴. 항문과 괄약근에 이상 조짐 발견. 현재 측정한 생체정보를 병원으로 보내겠습니까?”

나는 조금 놀라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오케이”라고 답했다. 삐~ 하는 전송음이 잠시 들리더니

“귀하의 생체정보를 병원에 전송 완료했습니다.⁵⁾”

화장실을 나와 외출 준비를 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항문병원 닥터 김입니다. 귀하는 현재 초기 치질 단계가 의심됩니다. 가까운 시일 내 병원을 방문하셔서 검사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한편으로는 창피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고 해서 작은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글 : 정영훈 과학칼럼니스트


[각주-미래 기술]

1) 스마트 침대 : 침대에 내장된 센서가 잠을 편하게 잘 수 있게 도와주고,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며, 아침엔 흔들어 깨워준다.
2) 대화형 스마트 TV : 인터넷과 TV시청이 동시에 가능한 미래형 TV. 휴대전화를 비롯, 여러 디지털기기와 연결돼 원하는 정보를 볼 수 있다. 표정이나 손짓으로도 동작이 가능하다. 지능형 홈 네트워크 기술
3) 제스처, 행동패턴 및 언어기반 의미추출 기술 : 오류율 1% 이내로 인간의 제스처, 행동패턴과 언어에서 의미를 추출해 인간 대 인간의 의사소통과 같이 자연스러운 인간 대 기계 간 인터페이스를 통해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하는 기술. 1~2년 후 기술이 실현될 예정.
4) 인지/판단 기반의 인간로봇 상호작용기술 : 로봇이 사용자 의도를 파악, 이에 적합한 반응과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인간과의 의사소통 및 상호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판단-표현 기술. 5~6년 후 기술이 실현될 예정.
5) 홈 헬스케어 시스템 : 가정에서 측정한 생체정보를 병원으로 전송해 진단받고, 이상이 있을 경우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10년 후 기술이 실현될 예정.

참고 : <KISTI 미래백서 2013>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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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0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02-1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문병원 이름 때문에 많이 웃었네요.^^ㅎㅎ
잘 지내시죠?
감기조심하세요.*^^*

마노아 2013-02-20 00:31   좋아요 0 | URL
실제로도 대장항문병원, 이런 식의 간판들이 보이더라구요. 민망해서 웃었어요.^^ㅎㅎㅎ
프로필 사진에 맑은 하늘이 있어서 좋아요. 덕분에 눈이 호강했어요.^^
 

   FUN 과학

제 1803 호/2013-02-13

 

심장이 두근두근! 사랑일까, 뇌의 착각일까?

드디어 내일이 발렌타인데이! 태연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든 채 무언가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으… 짜증나, 으~ 짜증나! 도대체 왜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를 않냐고! 혹시 초콜릿이 별로 안 좋은 건가? 아님 모양 틀이 미운건가? 아아, 어떡하지?”

“태연아, 도대체 누굴 주려고 그렇게도 열심히 초콜릿을 만드는 게냐? 혹시 아빠? 으흐흐. 역시 그렇구나. 원표랑 헤어진 지 두 달도 안됐는데 벌써 남자친구가 생겼을 리는 없고. 아빠 맞지?”

“아빠가 아니므니다.”
“그럼 새 남친이냐?”
“남친이 아니므니다!!”
“그럼 누군데?”
“사람이 아니므니다. 수종이는 신이므니다. 너무나 잘생겼으므니다!! 수종이를 볼 때마다 심박수가 200을 찍스므니다!”

아빠는 급속히 기분이 나빠진다. 아빠를 위해서는 달걀 프라이 한 번 부쳐 본 적 없는 태연이가 알지도 못하는 어떤 녀석에게 초콜릿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심술이 나고, 그 녀석을 칭찬하는 것도 얄미워 죽겠다.

“심장이 그렇게나 뛰냐?”
“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아요.”
“단지 심장만 뛰는 거야?”
“네, 엄청! 베리 어~엄청!!”
“에이, 그럼 넌 사랑에 빠진 게 아냐. 단지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을 하는 거지.”
“예에??”
“진짜야. 네가 수종이란 녀석을 좋아해서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심장이 뛰니까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거라고. 이런 사실은 실제로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됐어.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교의 아서 아론, 도널드 더튼 박사가 했던 ‘카필라노 실험’이 대표적인 경우지. 박사들은 실험에 참가한 남성들 중 절반은 낮고 안전한 다리를 건너게 하고, 절반은 아찔한 흔들다리를 건너게 했단다. 남성들이 다리를 건넌 직후, 한 젊은 여성이 그들에게 다가가 엉뚱한 설문조사를 했지. 그런 다음 설문결과를 알고 싶은 사람은 그 여성에게 전화를 하라고 말했더니,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아니? 아찔한 다리를 건넌 남성들이 8배나 많이 여성에게 전화를 했다는구나. 아찔한 다리를 건너느라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있었던 탓에 상대 여성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꼈고, 전화를 하게 됐다는 거야.”

“말도 안 돼. 인간이 얼마나 오묘하고 영특한 존재인데, 심장 뛰는 것과 사랑을 구분조차 못한다는 거예요?”

“그럼 또 다른 실험을 말해줄게. 뉴욕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스튜어트 밸린스 교수는 방 안에 남성을 한 명씩 데려다놓고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스피커로 들려주면서 여성의 사진들을 보여줬단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아니라 가짜로 녹음된 심장소리였지. 교수는 미인 사진을 보여줄 때는 보통의 심장소리를, 평범하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 사진을 보여줄 때는 미친 듯이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려줬어. 그랬더니 어떻게 됐게? 남성들은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고 생각되는 평범한 여성에게 훨씬 높은 호감을 보였다는구나. 이런 착각을 심리학적으로는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르는데, 이 실험처럼 너도 단지 심장이 뛰니까 ‘내가 수종이를 좋아하는 구나’ 그렇게 생각한 거라고.”

“진짜요? 흑흑, 이번에는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거든! 인간의 뇌는 현실과 착각을 구분하지 못하는 속성을 갖고 있단다. 심지어는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보여주자 자신을 노인이라고 착각한 실험참가자들이 노인처럼 굼뜬 행동을 했다는 실험까지 있어. 특히 사람의 뇌가 가장 심한 착각 상태를 보일 때는 사랑에 빠졌을 때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대방의 모든 것이 멋있어 보이고, 작은 키나 괴팍한 성격까지 사랑스럽게 느끼게 되는 ‘제 눈에 콩깍지’ 상태가 되는 거지. 그런데 인간은 이러한 착각을 착각이라고 여기지 않고 사랑이라고 인식한단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냐!”

“알겠어요. 모든 것이 제 뇌의 착각이었다면… 다시 생각해 볼게요.”

“그렇지!! 그런 태도 참으로 좋다. 우리나라 교육방송에서도 실험을 했었는데, 놀이공원 소개팅을 한 커플이 실내 소개팅을 한 커플보다 실제 연인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단다. 놀이공원은 곧 무엇이냐! 무서운 놀이기구! 다시 말 해 벌렁대는 심장 아니겠니? 그러니까 태연아, 넌 결단코 사랑에 빠진 게 아니란다. 심장이 좀 빨리 뛰었을 뿐이지. 알겠니?”

“흑흑흑, 정말로 감사해요 아빠. 깊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오늘처럼 아빠의 과학상식을 좋아한 건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놀이공원에 가서 수종이에게 자이로드롭을 타게 한 후, 고백을 하면 커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신거죠? 꼭 실천할게요!”

“헉! 그게 아니라….”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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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SION 과학

제 1798 호/2013-02-06

[이달의 역사]모르는 사람이 내 머릿속에? 영화 속 ‘다중인격’

고대 중국의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한 것이라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반대로 순자는 사람의 성품은 본래 악하다고 반박하며 ‘성악설’을 내세웠다. 기독교에서는 선과 악을 구별하게 만드는 열매를 따먹는 바람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본다. 중동 지역에서는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이원론 중심의 마니교가 융성하기도 했다. 때로는 착하고 때로는 악한 다면적인 인간의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흥미로운 소재다.

의학이 발달하면 사람의 마음에서 선한 부분만 남기고 악한 부분은 말끔히 없애는 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이러한 상상력에서 출발해 1886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을 발표한다. 이 소설은 해적 선장 존 실버를 따라 항해를 떠난 꼬마 짐 호킨스의 다채로운 모험이 담긴 ‘보물섬(Treasure Island)’의 성공 이후 다시 한 번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법학박사이자 의학박사인 지킬 박사는 인간을 ‘여러 개의 모순되면서도 독립적인 인자들이 모인 부조리한 집합체’로 규정하고 각 특성을 분리해내는 초록색의 약물을 발명한다. 선과 악이라는 대립되는 본성을 분리하고 하나만을 선택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낮에는 점잖고 학식 있는 지킬 박사로 살아가다가 밤이 되면 약물을 마시고 하이드 씨로 변해 억압된 스트레스를 분출한다. 후에 발견된 유서에는 “저항도 못하는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한 대 한 대 칠 때마다 환희를 맛보았다”는 고백이 적혀 있었다.

∎ 한 인물 안에 담긴 두 개의 인격

[그림 1]영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이중인격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1880년대 포스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변신이 반복되면서 시도 때도 없이 하이드 씨로 변하는 일이 잦아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거리로 나가 살인과 폭행을 일삼았고 약을 먹어도 지킬 박사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교수형이 무서워 자살하려 하면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하이드 씨가 튀어나와 난동을 부렸다. 지킬 박사는 결국 스스로를 집안에 감금하다 흉측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교대로 나타나는 현상을 흔히 ‘이중인격’이라 부른다. 겉보기에는 착하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때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선과 악이라는 대립되는 측면을 모두 지닌 인간의 극단적인 본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중인격의 대표적인 사례인 지킬 박사의 이야기는 1920년 무성영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Dr. Jekyll and Mr. Hyde)’로 처음 만들어져 문학과 연극에 이어 영화계까지 점령했다. 이후 1931년과 1941년에도 리메이크 돼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에도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끊이지 않고 발표됐다.

∎ 지금도 계속되는 지킬 박사의 이야기
대표적으로는 공포 스릴러 영화로 유명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43년 작품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를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찰리 삼촌이 사실은 정체를 감춘 엽기적인 연쇄 살인마라는 설정으로 호평을 받았다.

1962년에는 심리적, 육체적 충격을 받으면 초록색 괴물로 변신하는 만화 주인공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Incredible Hulk)’가 선을 보였다. 지킬 박사와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헐크는 1970년대 TV영화부터 2012년 ‘어벤져스(Avengers)’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해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림 2] 영화 ‘호빗’에 등장하는 다중인격 캐릭터 ‘골룸’. 사진 출처 :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1996년에는 ‘이중인격 전문 연기자’라는 별명을 지닌 에드워드 노튼(Edward Norton) 주연의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가 화제를 모았다. 정신질환을 가장해 법원에서 무죄를 받아낸 살인자의 이야기다. 노튼은 1999년 ‘파이트 클럽(Fight Club)’에서도 유사한 역할을 맡았다. 무료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친구의 권유로 격투 클럽에 가입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이중인격이 만들어낸 착각이었다는 내용이다.

2003년에는 프랑스 영화 ‘엑스텐션(Switchblade Romance)’와 미국 영화 ‘아이덴티티(Identity)’가 이중인격을 다뤘다. 영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서 아라곤 역할을 맡았던 배우 비고 모텐슨(Viggo Mortensen)이 명연기를 펼친 2005년 작품 ‘폭력의 역사(A History Of Violence)’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에 ‘두 얼굴의 여친’과 ‘뷰티풀 선데이’가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다. 최근에는 영화 ‘호빗:뜻밖의 여정’에서 착한 ‘스미골’과 사악한 ‘골룸’이 등장하는 등 다중인격 캐릭터는 영화 속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 24개의 인격을 가지고 사는 빌리 밀리건
이중인격으로 소재로 한 영화는 배우의 능력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하나의 인물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인격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중인격 환자들도 혹시 연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감쪽같이 속이는 것은 아닐까?

두 개 이상의 자아가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을 흔히들 ‘이중인격’ 또는 ‘다중인격’이라 부른다. 정식 명칭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다. 자아가 여럿으로 분리되고 따로 떨어지는 바람에 단일한 정체성을 보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증상을 가리킨다. 정신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빙의(Possession)’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다중인격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0개가 넘는 인격을 가지고 사는 윌리엄 스탠리 밀리건(William Stanley Milligan, 1955~)이다. 열 살 때인 1964년부터 계부 챌머 밀리건(Chalmer Milligan)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면서 다중인격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으면 본래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인격이 등장하는 식이다.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등 커다란 사건을 겪을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인물이 윌리엄의 몸을 지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격은 핵심 인격인 빌리(Billy)를 중심으로 아서, 레이건, 앨런, 타미, 대니, 데이비드, 크리스틴, 필립, 케빈, 월터 등 총 24개에 달한다. 강간, 폭행, 절도 등 수많은 범죄로 법원과 정신병원을 수시로 드나들던 1978년 미국 최초로 ‘다중인격 장애와 정신이상’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다.

가짜 연기를 펼친다고 의심한 수사관과 의사들이 갖가지 검사와 취조를 실시했지만 오히려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이 발견돼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윌리엄은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이었지만 아서라는 인격이 지배하면 아랍어와 아프리카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수학, 물리학, 의학을 전문가 수준으로 뽐낸다. 레이건일 때는 크로아티아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타미로 변신하면 전자제품을 능숙하게 다룬다. 단순한 연기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능력들이다.

다중인격이 발생하는 원리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환자의 90% 이상이 어린 시절 심각한 학대와 폭력을 겪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주체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기에는 스스로를 보

 

 

호하기 위해 자아를 바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다중인격은 잠재적 범죄자라기보다 사회가 보호하지 못한 약자이며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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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2-07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리 밀리건이 궁금하다. 프라이멀 피어 무척 재밌게 봤는데...

후애(厚愛) 2013-02-08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향향기는 여전히 재밌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잘 보내셔요.^^
감기조심하시구요.

마노아 2013-02-09 12:32   좋아요 0 | URL
장수하는 과학향기에요. 일주일에 두번, 반짝반짝 재미를 느껴요.
후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셔요~
저는 이미 감기에 걸렸어요. 흑흑....후애님은 감기 조심이에요~
 

   FOCUS 과학

제 1789 호/2013-01-28

동상 응급처치, 잘못된 상식은?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꽁꽁!
동요의 노랫말처럼 집 밖에만 나가면 순식간에 손과 발이 꽁꽁 어는 겨울이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동상(凍傷)’이다. 특히 겨울 레포츠가 인기인 요즘, 스키와 스노보드를 타다 동상에 걸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두꺼운 옷을 입고 활동하다보면 땀을 흘리게 되고 눈에 넘어지면 옷이 젖게 되는데, 이대로 스피드를 즐기다 보면 찬바람을 더욱 거세게 맞아 순식간에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5년간 동상의 진료인원 추이를 분석한 결과, 연중 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1월에 집중(44.6%)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7년 4,665명에서 2011년 1만 8,678명으로 5년간 1만 4,013명이 증가(300.4%)했다. 연령별로는 2011년을 기준으로 10대가 23.5%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이어 20대가 21.1%로 10~20대가 44.6%를 차지했다.

동상이란 추위로 조직이 열면서 혈관이 수축해 혈액으로부터 산소와 영양분을 받지 못한 세포가 질식 상태에 빠지면서 조직이 손상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손, 발, 귀와 같이 외부로의 노출이 가장 많은 말초기관에서 많이 발생한다. 우리 몸은 추위를 느끼면 추위를 이기기 위해 혈관을 확장시켜 온몸 구석구석으로 혈액을 보낸다. 이 때문에 추위에 노출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열이 나면서 발이나 코끝, 볼 등이 발개지는 것이다.

하지만 노출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 몸은 반대로 혈관을 수축시켜 손끝과 발끝으로는 혈액을 보내지 않는다. 모든 세포를 살릴 수 없다면 손끝과 발끝을 포기해 나머지를 살리겠다는 자구책이다. 설상가상으로 손끝과 발끝의 조직액(조직과 세포 사이를 채우고 있는 액)은 가장 먼저 얼게 된다. 이에 삼투압 현상이 일어나면서 모세혈관을 이루는 세포가 탈수로 괴사해 혈액이 차단된다. 이 때문에 동상에 걸리면 손상 부위가 차갑고 창백해지면 저리거나 감각이 저하되는 느낌을 받는다. 또 빨갛게 부어오르면서 수포가 발생하기도 한다.

동상은 심한 경우 손상부위의 절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심한 손상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초기대응이 중요하다. 손상부위가 하얗게 변하면서 감각이 없어지면 우선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 섭씨 38~42도 정도의 따뜻한 물에 붉은 기가 돌아올 때까지 20~40분간 담가두는 것이 좋다. 이 때 물의 온도가 중요하다. 동상을 치료하는 기본 원리는 수축된 혈관을 이완시켜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하고 조직과 세포의 결빙을 풀어주는 것이다. 38℃이하에서는 언 부위가 잘 녹지 않고 43℃ 이상의 뜨거운 물에서는 오히려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동상 부위는 감각이 둔하기 때문에 너무 뜨거우면 자신도 모르게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물의 온도는 팔꿈치를 담갔을 때 불편하지 않은 정도가 적당하다. 당장 따뜻한 물을 구할 수 없다면 동상 부위를 겨드랑이로 감싸는 등 체온을 이용해서라도 따뜻하게 해주는 게 좋다.

하지만 동상 치료에 있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추위에 대응하는 우리의 ‘상식’이다. 추울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으로 온 몸을 문지르고 주무르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는 몸에 열을 내는 효과가 있지만 동상 부위는 얼음 결정이 세포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피해야 할 행동 중 하나다. 또 언 부위를 빨리 녹이겠다는 생각으로 히터 등 난방기구에 손상부위를 가까이 대면 오히려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춥다고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행동도 동상에는 피해야 할 행동들이다. 평상시 술을 마시면 혈관이 확장되면서 열이 나지만 동상에 걸렸을 때는 오히려 확장된 혈관이 체내 열을 방출시켜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 있다. 담배는 수축된 혈관을 더욱 수축시켜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그렇다면 동상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손과 귀, 발과 같이 항상 노출되는 신체부위는 늘 따뜻하게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흡연 등으로 혈관이 수축되는 상황이 많을수록, 또 손발이 유독 찬 사람일수록 동상에 걸릴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스키와 스노보드를 탈 때는 여벌옷을 준비해 젖은 옷이나 양말을 자주 갈아 신어야 한다. 휴식을 취할 때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움직이거나 가벼운 마사지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동창도 조심하세요~.
‘동창(凍瘡)’은 동상과 증상이 비슷하지만 더 흔하게 발생한다. 실외에 있을 때 피부가 빨개졌다가 실내로 들어오면 후끈거리면서 간질간질해 지는 것이 주요 증상으로, 기온이 0℃ 안팎의 비교적 심하지 않은 추위에 생긴다. 상대적으로 추위에 예민한 사람의 경우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심해지면 혈관이 손상되면서 염증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 때 세균이 들어가면 궤양을 일으키기도 한다. 겨울철 한두 번 정도 동창을 겪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매해 반복되거나 빈도가 잦아진다면 피부과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증상이 반복되면 손상 부위에 감각이 없어지면서 물집이나 습진 등이 생겨 치료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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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것 갖게 되면 오히려 시들해지는 이유  

제 1786 호/2013-01-21

간절히 원하던 물건을 갖게 되면 막상 시들하거나 공허한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갖고 싶은 물건을 갖게 되면 만족감이나 행복감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미주리 대학의 마샤 리친스 교수팀은 ‘중요한 구매 행위’ 이전과 이후의 감정 상태를 등급화해서 분석했다. 그 결과 갖고 싶던 물건을 얻기 전에는 물건을 얻었을 때를 상상하며 느끼는 기대감과 긍정적인 감정들이 최고조로 달했다가, 물건을 얻으면 이 감정들이 급격히 저하됐다.

물론 물건을 얻은 이후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지만 지속성이 짧으며 ‘쾌락의 저하’ 현상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리친스 교수는 오히려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 주문한 물건이 배달되기를 기다릴 때의 설레는 마음이 구매 이후보다 더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물건을 산 이후에는 카드 결제 등의 현실적인 걱정으로 행복감을 더욱 줄인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잡지 ‘애틀랜틱’에 2013년 1월 17일 실렸다.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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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1-2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고 싶어 안달 난 책을 기어이 사고 나서 책장에 쟁여두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같은하늘 2013-01-22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입학하는 아이가 선물받은 가방을 보고 친구엄마가 '넘 이쁘다. 나도 같은거 사도되?'하더니 손에 넣으니 별로 안이뻐보여~~ 하길래, 그때 제가 해주었던 대답과 같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