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 과학

제 1969 호/2013-10-02

동물끼리는 ‘인간이 모르는 말’ 쓴다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 또는 ‘고등 생물’이라 부른다. 가축이나 야생동물보다 지능지수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머리가 좋은 고등한 존재라면 그보다 못한 하등 생물의 생각이나 표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실제로는 정반대다.

영국 작가 휴 로프팅(Hugh Lofting)이 지은 동화 ‘리틀 선생님’에는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앵무새 ‘폴리네시아’가 등장한다. 둘리틀 선생님에게 동물의 언어를 가르쳐줄 정도로 똑똑한 폴리네시아는 동물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곤 한다.

“이 세계가 생긴 지 벌써 몇 천 년이나 됐어요. 그런데 왜 인간은 아직도 동물의 말을 한 가지밖에 못 알아듣는 거죠?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은 즐겁기 때문이래요. 이것밖에 모르다니 인간은 정말 바보 같지 않아요?”

현실 세계에서는 둘리틀 선생님처럼 모든 동물의 언어를 알아듣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련이나 훈련을 통해서 동물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거나 따라할 뿐이다.


•인간의 언어 흉내 내는 코식이․알렉스․코코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 사는 스물세 살 코끼리 ‘코식이’는 사람의 말을 할 줄 안다. “안녕”, “좋아”, “아니야”, “누워”, “앉아”, “안 돼”, “아직”의 일곱 단어뿐이지만 사람과 똑같은 목소리로 정확하게 발음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교 연구진이 코식이의 발음을 녹음해 일반인에게 들려주자 “안녕”과 “아니야”를 알아들은 사람이 각각 56%와 44%에 달했다.

사람처럼 말하는 동물은 또 있다. 2007년까지 살았던 아프리카 회색앵무새 ‘알렉스’는 1에서 8까지 숫자를 셀 수 있었고 50개에 달하는 물건의 이름을 구별할 줄 알았다. 또한 150개의 단어를 조합해 짤막한 문장을 만들기도 했다. 일반적인 새의 능력을 뛰어넘었다고 해서 ‘천재 앵무새’라 불렸다. 죽기 전날 남긴 유언은 평소에도 즐겨 말하던 “잘했어요. 내일 봐요. 사랑해요.(You be good. See you tomorrow. I love you)”였다.

코식이와 알렉스는 사람의 발음을 흉내 냈지만 손을 사용해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동물도 있다. 1971년생 고릴라 ‘코코’다. 사람이 발음하는 단어 중 2,000개를 알아듣고 1,000개의 단어를 수화로 표현할 줄 안다. 아끼던 고양이 ‘올볼’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을 때는 “나빠. 슬퍼. 찡그려져. 울어.” 하고 반복적으로 표현하며 흐느껴 울기도 했다. 같은 영장류에 속하는 침팬지 중에도 인간의 수화를 배운 경우가 많다.

인간은 동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을 신기해한다. “손” 하는 소리에 강아지가 앞발을 내밀면 표정이 밝아지고 “점프”라는 조련사의 외침에 돌고래가 물 위로 뛰어오르면 격려의 박수를 치게 된다. 사람의 말을 흉내 내면 더욱 놀란다. “안녕하세요”, “나도 몰라” 하고 앵무새가 말을 하면 자신의 귀를 의심하기도 한다. 동물들은 말을 할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끼리도 의사소통을 한다. 다만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식으로 대화할 뿐이다. 침팬지나 코끼리뿐만 아니라 새, 돌고래, 심지어 곤충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한다.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카를 폰 프리슈(Karl von Frisch)는 꿀벌의 춤에 담긴 의미를 알아내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40년 동안의 연구 끝에 프리슈는 꿀벌이 원을 그리거나 8자 모양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유가 꿀이 가득한 꽃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동물들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국 노던아리조나대학교의 콘스탄틴 슬로보치코프 교수는 초원에 사는 설치류 ‘프레리독’의 언어를 연구하고 있다. 프레리독은 여러 가지 패턴의 소리를 조합해서 문장과 유사한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단어만 50개를 넘는다고 한다.

2013년 3월에는 돌고래의 언어도 발견됐다.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와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합동 연구진은 플로리다주(州) 사라소타 인근 해안에 서식하는 큰돌고래를 연구해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한 쌍의 큰돌고래를 포획한 뒤 몇 주 동안 개별 철창에 넣어 소리를 녹음한 뒤 다시 풀어주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다른 큰돌고래의 고유한 음성패턴을 따라하는 현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큰돌고래는 특히 여러 사물을 접할 때마다 다른 소리를 냄으로써 “이것은 사과”, “저것은 포도” 하는 식으로 각각의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성이나 행동으로 이루어진 각자의 신호를 주고받으며 의미를 학습하는 소통 방식을 ‘참조적 의사소통’이라 한다. 동물 중에는 인간과 회색앵무새 그리고 큰돌고래에게서만 발견된 언어 능력이다.

혹시 동물들의 의사소통은 인간처럼 정식 언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본능에 따라 정해진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고양이는 전 세계 어디서든 야옹 하고 울어야 하고 새들은 종에 따라 고유의 소리를 내야만 한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동부 해안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켄트 섬의 새들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1980년부터 2011년까지 30년 동안 초원멧새들의 울음소리를 녹음해 비교한 결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리의 구성이 조금씩 바뀌어 왔던 것이다.

켄트 섬의 초원멧새들은 도입(intro), 중앙(middle), 버즈(buzz), 트릴(trill) 등 4개 단락으로 이루어진 한 가지 울음소리만 낸다. 그러나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면서 중앙 부분에 짧고 강한 스타카토가 삽입됐고 마지막 트릴 부분은 낮고 짧은 소리로 바뀌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말투가 달라지고 억양이 바뀌는 것처럼 새들의 소리도 문화적인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고등 생물인 인간은 이처럼 동물마다 서로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언제쯤 모두 알아듣게 될까. 최근 한림대학교에서는 개의 뇌파를 읽고 이를 인간의 언어로 바꾸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뇌의 전두엽에 심어진 센서가 뇌파 변화를 감지한 후 미리 입력된 문장 중 적합한 것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아직은 8가지 문장만을 인식하지만 미래에는 동물의 생각을 알아내 사람의 언어로 풀어내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 1968 호/2013-09-30

비타민D가 부족하면 알레르기 비염이 급증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학교병원 내과 강혜련 교수팀은 2009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토대로 성인 8,000여 명의 혈중 비타민D 수치와 알레르기 비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우선 혈중 비타민D 수치가 15ng/ml 미만인 결핍군, 15ng/mL ~ 25ng/mL 미만인 부족군, 25ng/mL 이상인 정상군으로 나눠 그룹별 알레르기 비염 발생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3그룹(정상군)에 비해 1그룹(결핍군)과 2그룹(부족군)의 알레르기 비염 발생률이 각각 80.6%, 59.7%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알레르기 비염의 주요 증상 중 하나인 맑은 콧물은 1그룹에서는 14.1%, 2그룹에서는 11%, 3그룹에서는 9.4%로 나타났다.

비타민D는 대부분 햇빛을 통해 체내 합성되는데, 실내에서 주로 생활하거나 자외선 차단제를 많이 바르면 충분한 합성이 이루어지지 않아 부족할 수 있다. 때문에 알레르기 비염 환자는 가을철 적절한 야외활동을 하며 햇빛을 쐬는 게 좋다.

 

출처 : 과학향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OCUS 과학

제 1960 호/2013-09-23

임부가 피해야 할 음식 list, 정말 먹으면 안 될까?

“먹을 수 있는 게 없어!”

임부들의 푸념이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주위에 알리는 순간 임부는 수많은 속설을 듣게 된다. 특히 먹으면 안 되는 음식에 관한 얘기가 많다. 과거에는 대표적인 예가 자장면과 닭, 오징어 등이었다. 자장면이나 콜라같이 색이 짙은 음식을 먹으면 아이 피부가 검어지고, 닭을 먹으면 아이가 닭살이 되고, 오징어를 먹으면 흐물흐물 뼈가 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막상 들으면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을 쳐도 막연한 걱정에 입도 대지 않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지금이야 이런 말을 믿는 임부는 없지만 여전히 인터넷에는 업데이트 된 ‘리스트’가 존재한다.

•식혜와 수정과, 참치는 피해야
임부가 피해야 할 대표적인 음식 리스트에는 짜고 매운 음식, 인스턴트 음식, 알로에, 팥, 율무, 녹두, 생강, 감, 수박, 멜론, 참외, 배, 파인애플, 복숭아, 생선회, 참치, 복어, 생강, 마늘, 인삼, 술, 담배, 콜라, 카페인 함유 식품(커피, 녹차, 초콜릿 등), 식혜, 수정과 등이 있다.

이 음식들을 먹으면 정말 아이에게 해가 될까. 물론 술과 담배는 피해야 한다. 알코올은 태아의 뇌, 심장, 신경 등에 기형을 일으킬 수 있고 담배는 유산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태아의 염색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혜와 수정과도 전통적으로 젖을 말리기 위해 마셨던 것으로 임신기간 중에는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참치류의 생선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살에 수은이 많이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선회의 경우 산모가 먹고 탈이 나는 경우가 많아 권하지 않을 뿐, 어쩌다 한번 먹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커피는 하루에 300mg 이상의 카페인을 마실 경우, 태아의 생식능력이나 신경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하지만 하루에 300mg 이하, 1~2잔 정도의 커피는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연구가 많다(출처 : 캐나다 기형유발물질정보센터인 마더리스크프로그램(Can Fam Physician. 2013)). 학회 권장사항은 2~3일에 한 잔 정도다.

이 외에 다른 음식은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임신성 고혈압(임신중독증)을 걱정해 떡볶이나 라면 등 조금이라도 짠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는 산모도 있지만 한두 번 먹었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 비만이나 당뇨, 유전적 요인이 임신성 고혈압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원인이 다양하고 특정 음식이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평소에 먹지 않았던 음식을 몸에 좋다고 먹다가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며 “음식은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임부에게 가장 좋다”고 말한다.

•변비 해소엔 자두와 요구르트
임부들 사이에서 금기시 되는 음식 목록을 보면 수박, 멜론, 참외, 배, 복숭아 등 과일이 많다. 임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 이 과일들이 몸을 차갑게 하면서 설사를 유발해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

하지만 과일은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변비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임신을 하면 장운동이 감소하고 커진 자궁이 장을 눌러 변비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평소보다 활동량이 줄어서 생기기도 하며 철분제 섭취가 변비를 유발하기도 한다.

변비 해소를 위한 방법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식습관이 중요하다. 육류 대신 채소나 과일, 과일 중에서도 자두가 좋다. 또 호두나 잣 등 견과류를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변비에 좋다는 요구르트를 마시거나 물을 자주 섭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소 골고루 음식을 잘 섭취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영양제를 반드시 먹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정량의 영양제는 혹시라도 부족할 수 있는 산모의 필수 영양소를 보충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면에서 임신 전부터 초기까지는 엽산제를, 중기부터는 철분제를 챙기자. 엽산은 임신 초기 태아의 신경관 결손을 예방해 유산이나 사산, 선천성 기형아 출산 등을 막는다. 철분은 빈혈로 발생할 수 있는 조산과 유산, 산모 사망 등을 예방한다.

•임부에게 금기시 되는 행동은?
임부가 되면 행동의 제약도 많아진다. 파마와 염색이 그 중 하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신 기간 중에는 파마나 염색을 피하는 것이 좋지만, 임신 초에 모르고 했다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파마약과 염색약에는 다양한 화학물이 포함돼 있다. 파마약에는 머리의 각질을 떨어뜨리는 성분과 웨이브를 유지시키는 카르복시-산 성분이 있다. 염색약에는 페닐디아민, 아미노페놀 등이 들어있다. 그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파마약이나 염색약에 있는 성분 중 두피를 통해 체내로 흡수되는 약물의 양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신으로 흡수되는 성분은 매우 적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구 결과, 임신 중 이들 약물에 노출된 임부라고 해도 태아의 기형이 증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당 30시간 이상 근무하는 헤어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일부 논문에서 자연유산과 기형, 저체중아 출산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과치료는 미룰 수 있다면 분만 후에 받는 것이 좋다. 하지만 무조건 미루는 것은 오히려 산모와 아기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치주질환의 경우, 치료를 받지 않으면 조산의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꼭 치료하는 것이 좋다. 임신 중에는 여성 호르몬이 변화하면서 모세혈관이 확장되고 혐기성 세균은 증가하는 반면 면역세포가 감소해 잇몸에 쉽게 염증이 생긴다. 위산이 역류하면서 치아를 부식시킬 가능성도 있다.

치료를 받는다면 임신 중기(4~6개월)가 좋다. 중기에는 항생제, 소염제를 복용하지 않는다면 국소마취 하에 진행되는 모든 치과치료가 가능하다. 임신 초기인 3개월까지는 치과 치료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조기 유산을 주의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치료를 피하는 것이 좋다. 임신 말기가 되는 7개월에서 출산까지는 치과 진료 의자에 누워 머리를 젖히는 자세가 혈압 저하를 일으킬 수 있고 스트레스로 인한 조산 우려가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요즘 임부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많이 얻는다. 다양한 정보와 경험을 간편히 얻을 수 있다는 면에서 좋은 점이 많지만 ‘~카더라’식의 말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나친 맹신과 걱정이 아기와 임부에게 더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도 잊지 말자.

 

출처 : 과학향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ransient-guest 2013-09-24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의보감의 관련 정보를 보면 더욱 많은 주의를 요구하죠. 천둥번개 치는 날의 밤도 피해야 하구요, 참새고기를 먹어도 안되고, 등등...ㅎㅎ 워낙에 중요한 일이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마노아 2013-09-24 12:45   좋아요 0 | URL
천둥번개까지! 금기가 정말 많네요. 이렇게 금이야 옥이야 아이를 낳아놨는데 나중에 머리 커서 말 안 들으면 울화가 화르르륵! 갑자기 급 상상이 되네요. ^^;;
 

특별한 자폐증, 서번트 증후군   FUSION 과학

제 1959 호/2013-09-18

추천하기
  • 파일저장
  • 프린트
  • 트위터
  • 미투데이
  • RSS
  • 페이스북
특별한 자폐증, 서번트 증후군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굿닥터’에는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자폐 3급과 서번트 증후군 진단을 받았지만 천재적인 기억력과 공간지각 능력을 발휘해 훌륭한 소아외과 의사로 성장해 나가는 스토리다. 

서번트 증후군은 드라마와 함께 덩달아 관심이 높아졌는데, 최근 ‘스타킹’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실제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는 소년이 출연하기도 했다. IQ 50인 14세 정신지체 소년은 아주 능숙하게 피아노를 치는가 하면, 수십 년 전은 물론 수 년 뒤 특정 날짜의 요일을 단 몇 초 만에 정확히 맞췄다. 또 지하철노선도를 통째로 외워 진행자가 ‘4호선’ 하면 오이도에서 당고개까지 수십 개의 역 이름을 줄줄이 읊어대기도 했다.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는 이들은 전반적인 지적 능력은 떨어지지만 특정한 좁은 영역에서 비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음악, 미술, 달력 계산, 수학(소수 계산 등), 공간 지각력(길 찾기 등) 등 크게 5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보통 한 사람이 여러 방면에서 탁월한데, 스타킹에 나온 소년도 음악과 달력 계산, 길 찾기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경이로운 기억력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자폐성 서번트를 주인공으로 한 1988년 영화 ‘레인맨’의 모델이기도 한 킴 픽은 책 9,000권을 통째로 외우고 있는데, 한 페이지를 읽는데 8~10초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한 마디로 살아있는 스캐너인 셈이다. 

2009년 ‘영국왕립학회철학회보B’는 서번트 증후군을 특집으로 다뤘다. 서번트 증후군의 권위자인 미국 위스콘신의대 대럴드 트레퍼트 교수는 개괄하는 글에서 서번트의 절반은 자폐 증상을 보이고 나머지 절반도 뇌질환이나 선천성 이상 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자폐인 사람 가운데 10% 정도가 서번트 증후군을 보인다. 

트레퍼트 교수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여러 서번트의 뇌를 연구했는데 그 결과 이들이 공통적으로 좌뇌에 문제가 있거나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끊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결과 좌뇌의 지배에서 벗어난 우뇌가 능력발휘를 해 서번트 증후군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뇌의 좌우비대칭성은 잘 알려져 있는데 좌뇌는 주로 논리적, 언어적, 추상적 사고를 하는 반면 우뇌는 감각적, 구체적 사고를 한다. 즉 좌뇌가 진화상 늦게 발달했음에도 사람에 이르러 지배적인 뇌로 군림하면서 우리는 ‘이성의 동물’이 됐다는 말이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따른다고 좌뇌는 우뇌보다 늦게 성숙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만큼 더 취약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태아의 뇌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문제가 되는데, 이때 특히 좌뇌가 손상을 입는다. 그 결과 자폐아나 정신지체아가 태어날 수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호르몬이므로 이런 현상은 남아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때문에 자폐증은 남자가 여자보다 4배 더 많다. 

좌뇌에 문제가 생겨 정신지체가 된 것이 서번트 능력을 갖게 했다는 주장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직접적인 증명은 어렵지만 그럴 것임이 거의 확실한 정황증거가 있다. 바로 후천성 서번트의 존재다. 즉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사고나 질병, 치매로 좌뇌가 손상되면서 동시에 서번트 능력을 갖게 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발성치매인 ‘전측두엽성 치매’로 좌뇌가 점점 손상돼 추상적 사고 능력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동시에 미술이나 음악에서 놀라운 예술성을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시간이 더 지나면 우뇌까지 손상되면서 이런 능력도 사라진다. 

호주 시드니대 마음센터 앨런 스나이더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서번트 증후군과 같은 잠재력이 있지만 강력한 좌뇌의 억압으로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즉 좌뇌의 ‘가공된 의식적 기억’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우뇌의 ‘날 것인 무의식적 기억’에 접근할 권한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 접근하려면 문지기인 좌뇌를 따돌려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에겐 어림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경두개자기자극(TMS) 같은 외부 교란을 통해 일시적으로 문지기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경두개자기자극이란 두피에 전극을 대고 일정 주파수의 자기장을 줘 해당 뇌 부위의 활동이 떨어지게 하는 작용이다. 좌뇌 전두측두엽에 경두개자기자극을 주면 우뇌가 활성화되고 따라서 서번트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험을 한 결과 11명 가운데 4명이 그림을 훨씬 더 잘 그렸고 다른 실험에서는 12명 가운데 10명이 화면에 흩어져 있는 조각들의 숫자를 더 정확히 추측했다. 

좌뇌가 평소 우뇌의 서번트 능력을 얼마나 억압하고 있는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인지심리학자인 베티 에드워즈 미국 LA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1989년 출간해 100만 부가 넘게 팔린 책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에서 사람들이 그림을 잘 못 그리는 건 우뇌의 묘사력을 억제하는 좌뇌의 추상화 성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즉 좌뇌는 대상을 개념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디테일을 무시하고 도식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손을 그릴 때 새끼손가락이 가려져 안 보이더라도 ‘사람 손가락은 다섯 개’라는 개념이 관찰을 무시하고 손가락이 다 보이도록 그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좌뇌를 무력화시키면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그렇다. 실제로 그림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에게 한 사람은 제대로 된 피카소의 그림을, 다른 사람은 뒤집어 놓은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그리게 했다. 그 결과, 뒤집어 놓은 그림을 보고 그린 경우가 묘사력이 월등했다. 에드워즈 교수는 의식적인 좌뇌를 ‘의식적으로’ 억누르는 훈련을 하면 누구나 어느 수준 이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번트 증후군인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들의 서번트 능력을 계발하면 전반적인 삶의 질도 개선된다고 한다. 스타킹에 출연한 소년도 음악 선생님이 아이의 음악성을 알아보고 끈질기게 피아노 앞에 앉게 해 이처럼 재능이 꽃피게 했다고 한다. 트레퍼트 교수 역시 “재능을 훈련시켜라! 그러면 당신의 결함도 가려질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비단 서번트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UN 과학

제 1954 호/2013-09-11

솔잎이 없으면 송편이 아니다?

매년 추석이 되면 시골 할머니 집에는 두 개의 보름달과 수백 개의 반달 그리고 날카롭게 거꾸로 찢어진 초승달이 함께 뜬다. 이게 무슨 넌센스 퀴즈냐고? 아니다. 이건 100% 리얼이다! 휘영청 밝은 하늘의 보름달과 추석만 되면 더욱 동그랗게 살이 오르는 아빠의 각 없이 너부데데한 얼굴이 보름달이고, 찜통 가득 향긋한 솔잎 냄새를 폴폴 풍기며 익어가는 송편이 반달이고, 아빠를 째려보는 엄마의 쪽 찢어진 눈이 바로 거꾸로 뜬 초승달이다.

“어머니…, 송편은 그냥 맛보기로 몇 개만 만드셔도….”

“아니, 어멈아. 그게 뭔 소리여. 아범이 송편을 얼매나 좋아하는디. 송편 몇 개 먹드니 벌써 보름달마냥 뽀얗게 살이 올랐잖여. 긍께 한 삼백 개는 만들어야 하지 않겄냐.”

“그, 그럼… 솔잎이라도 깔지 말고 찌면 안 될까요? 하나씩 떼 내려면 손이 너무 많이 가서요.”

“그건 어멈이 몰라서 그려. 솔잎을 안 깔믄 그게 어디 송편이여? 걍 떡이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할머니 댁에만 오면 갑자기 간에 살이 쪄버리는 아빠는 심각한 마마보이 근성을 드러내며 엄마의 초승달 눈을 더욱 길게 찢는다.

“엄마 말이 맞아. 송편의 송이 소나무 송(松)자인 건 알지? 편은 떡을 점잖게 표현한 우리말이고. 그러니까 풀어서 말하면 소나무떡이란 얘긴데, 솔잎을 안 쓰면 그건 송편이 아니라고. 우리 엄마 진짜 똑똑하다. 앙, 엄마 좋아!”

“우쭈쭈, 우리 아범, 엄마가 좋아쪄유?”

“응, 좋았쪄요! 또, 소나무 잎에서 피톤치드(phytoncide)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여보가 알아? 피톤치드는 식물이 다른 미생물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발산하는 살균물질인데, 공기 중의 세균이나 곰팡이를 죽이고, 해충, 잡초 등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뿐만 아니라 피톤치드는 사람 몸에도 완전 좋아요. 병실 바닥에 전나무 잎을 놓으면 공기 중의 세균이 1/10로 줄어든다는 연구나, 결핵균이나 대장균이 섞인 물 옆에 상수리나무의 신선한 잎을 놓으니까 몇 분 안 돼 세균들이 거의 다 죽어버렸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거든. 또 얼마 전에는 KBS의 한 방송에서 피톤치드를 많이 마시면 암세포를 죽이는 자연살해세포(NK-cell)들이 훨씬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실험을 한 적도 있어.”

“소나무 이파리서 나오는 그 피똥싸구인가 먼가가 암도 잡는겨? 워매, 참말로 대단하구먼.”
“더구나 피톤치드는 활엽수보다 침엽수에서 훨씬 많이 나오고, 특히 소나무는 보통의 나무보다 10배 정도나 강한 피톤치드를 발산하는데, 이렇게 좋은 피톤치드를 포기하고 맹숭맹숭한 떡만 만들어 먹는다는 게 말이나 돼? 송편을 먹으면서 산림욕 효과까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솔잎을 안 쓰는 게 말이 되냐고. 안 그래 엄마?”

“그람, 말이 안 되지. 근디 우리 아범은 워째 이리 똑똑한겨?

“엄마 닮아서 그렇지~~.”

“아이고, 귀여운 것! 그래서 옛날부텀 구더기나 바퀴 같은 벌레를 없앨라믄 소나무나 전나무 이파리를 뜯어다 그물망에 넣어놓고 그랬던 것이구먼! 나는 그게 피똥싸구 덕분일 줄은 오늘에사 첨으로 알았구먼.”

“아니 엄마~, 피똥싸구가 아니라 피․톤․치․드! 암튼, 그래서 소나무 옆에서는 퇴비도 안 만들잖아. 세균이 근처에 오지를 못하니까 퇴비가 잘 썩지 않아서 그랬던 거더라고.”

“그랬던겨어? 아들이 과학자니께 별거를 다 배우는구먼!”

“송편에 들어가는 녹두, 밤, 깨 같은 고물은 대부분 상하기 쉬운 음식재료잖아. 그런데 송편은 추석기간 내내 두고 먹어야 하는 음식인데다, 추석 날씨는 알다시피 꽤 덥단 말야. 그래서 똑똑한 우리 조상님들이 찜통에 솔잎을 깔았던 거야. 피톤치드가 세균을 막아줘서 송편이 잘 상하지 않거든. 어때, 여보야. 이제 송편 찔때 꼭 솔잎을 깔아야 하는 이유를 알았어?”

“근데 삼백 개씩이나 만들 솔잎을 어디서 따온담…. 당신이 뒷산 가서 따다 줘요.”

“알았어, 내가 따올게! 괜히 아무 솔잎이나 쓴다고 다 좋은 건 아니거든. 지난해 9월, 남부지방산림청이 2년간 산림병해충 방제를 위해 영남지역 2800헥타르(ha)의 소나무에 포스파미돈, 아바멕틴 등의 고독성 농약을 주사했다고 밝혔던 거 기억나? 솔잎혹파리와 솔껍질깍지벌레 등을 없애기 위해 사용한 건데, 농약의 독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솔잎에 농약성분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거든. 농약을 처리한 지역은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고, 또 약제를 주사한 소나무는 지면에서 높이 50cm 이내에 주사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에 이런 솔잎은 피해서 따야 한다는 말씀~.”

“그런데 어머니, 송편을 많이 만들었다가 남는 것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나중에 먹지도 못하고 버릴 수도 있어요. 냉장고에 넣으면 딱딱해져서 못 먹겠더라고요.”

“어멈아, 그게 뭔 소리여. 떡이나 밥은 절대 냉장고에 넣어두면 안되는구먼! 차라리 냉동실에 넣어야 혀!

“맞아 맞아, 울 엄마 말이 맞다구! 떡이 ‘노화’된단 말이야. 떡이나 밥의 주성분인 녹말은 물에 끓이거나 쪘을 때 쫀득쫀득 점도가 높아지고 색이 반투명하게 변하면서 소화하기 쉬운 상태가 되는데 이걸 ‘호화’라고 해요. 쌀은 딱딱한데 밥은 말랑말랑 맛있는 게 바로 호화현상 때문이지. 그런데, 이렇게 호화된 녹말이 온도가 낮은 곳에서 수분을 빼앗기면 원래의 딱딱한 상태로 되돌아가거든. 이걸 ‘노화’라고 하는데, 노화현상이 가장 잘 일어나는 온도가 딱 냉장실 온도(0~5℃)란 말야. 그러니까 떡이나 밥을 냉장고에 넣는 건 노화돼라, 노화돼라, 노래를 하는 거랑 같은 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냉동실에 보관해뒀다 녹여 먹는 게 좋아요. 노화단계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랑말랑 맛있어 지거든.”

“아이고 내 새끼, 엄마가 송편 삼백 개가 아니라 사백 개 만들어 줄 테니께 걱정일랑 붙들어 매, 알았징? 냉동실에 꽉꽉 쟁여놓고 먹어라, 내 새끼~~.”

“응응응!!”

명절 때마다 아빠는 바보가 되는 게 틀림없다. 할머니 치마폭에 머리를 파묻은 채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어리광을 부르는 저 행태 뒤에, 어떤 엄마의 보복이 뒤따르는지 너무나 잘 알 텐데도 언제나 저 버릇을 고치지 못하신다. 드디어 엄마의 눈에서 거꾸로 뜬 초승달마저 사라져버리고 이글이글 거친 불길이 타오른다. 이제 아빠는 끝장난 거다!

“어머님이랑 여보가 그리 좋다고 하시니까 송편 삼백 개 만들어 볼게요. 솔잎 듬뿍 깔고 푹푹 쪄볼게요. 느낌 아니까…. 아! 그런데 태연이 외가에 갈 때는 아범한테 된장, 고추장 담으라고 하고 집안 대청소까지 시켜도 되죠? 아, 그리고 추석 끝난 다음에 아범한테 명품가방 두 개 사놓으라고 윽박질러도 되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3-09-13 0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3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4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4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09-1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깨 든 송편을 무척 좋아합니다.^^
추석때 실컷 먹어야겠어요.ㅎㅎ

마노아 2013-09-13 13:07   좋아요 0 | URL
저두요~ 깨송편 맛있고 밤을 넣은 송편도 좋아해요.
근데 깨송편이 칼로리가 후덜덜 하다고 하네요. 자제해야겠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