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1849 호/2013-04-22

생체에 삽입하는 전자신분증, ‘베리칩’이란?

최근 미국이나 영국에서 사람의 몸속에 ‘베리칩(Verichip)’이라는 전자칩을 심는 일이 크게 늘어나면서 논쟁이 일고 있다. 그동안 애완용 동물이나 가축들의 관리를 위해 전자 인식표로 사용되던 이 칩을 이제 인간의 몸속에도 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0년 3월 미국의회에서 건강보험제도를 추진하기 위해 전 국민에게 베리칩을 강제 이식하게 하는 건강보험개혁법을 통과시켰다는 소문이 돌며 베리칩에 대한 찬반논란이 더욱 커졌다. 내용인 즉슨, 2013년까지 베리칩 이식 준비기간을 갖고 2016년까지 유예기간을 걸쳐 2017년 1월 1일부터 전면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은 아직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사람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베리칩에 대한 찬반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베리칩의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베리칩은 ‘확인용 칩(verification chip)’의 약어로 무선주파수 발생기인 RFID 칩의 일종이다. 쌀알 크기 정도로 주사기를 통해 간단하게 인체에 주입할 수 있으며, 별도의 제거 수술을 받지 않는 한 몸속에 영원히 남게 된다. 이 칩에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전자 정보, 또는 고유 번호가 저장돼 있다.
이 칩은 무선으로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개인 정보가 저장된 외부의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는 순간 개인의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베리칩 하나면 개인의 신분에 관한 신상정보뿐 아니라 계좌 등 금융거래 정보, 유전자와 같은 생체 정보, 질환 및 진료 기록과 같은 의료 정보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GPS와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든 개인의 위치 추적도 가능하다. 이런 연유로 이 칩은 인간의 몸에 이식돼 개인의 신분확인, 건강관리, 자산관리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가령 미 CIA에 근무하는 김 씨는 보안지역을 통과할 때 더 이상 신분증이나 지문, 홍체 인식 없이도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다. 보안지역에 설치된 스캐너가 김 씨의 몸속에 있는 베리칩으로부터 무선 전자신호를 받아 자동으로 김 씨의 신분을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쇼핑하기를 좋아하면서 줄서기는 몹시 귀찮아하던 박 씨는 더 이상 계산대 앞에 길게 줄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됐다. 계산대 옆 출구를 나서는 순간 그곳에 설치된 스캐너가 박 씨의 신분을 확인함과 동시에 박 씨가 구매한 물품들에 심어진 RFID칩으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물품 정보를 확인해 곧바로 자동 전자결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 혈압과 심장질환으로 병원 출입이 잦은 노인 이 씨는 진료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할 복잡한 등록 절차 없이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씨 몸에 내장된 베리칩을 스캔하면 유전정보를 포함한 생체정보와 그동안의 진료 기록들을 즉각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상 술자리가 많은 중견기업의 CEO인 최 씨는 최근 모 클럽의 VIP고객으로 등록했다. 그 클럽의 VIP고객은 입장에서부터 제공 서비스 계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몸속의 베리칩을 통해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생활의 편의성 때문에 이 칩을 이식받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동전의 양면 중 한 면이다. 동전의 다른 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전자 감시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우선 개인의 고유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누구든 타인의 몸속에 심어있는 베리칩을 동의 없이 몰래 스캔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개인의 중요한 모든 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 있다. 이렇게 유출된 정보는 개인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 차별을 강요하는 등 인간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 가령 개인의 건강이나 병력 기록을 포함한 신상 정보의 유출은 개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 역시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 RFID칩은 본질적으로 식별장치이지만 GPS와 연결되는 경우 추적도 가능하다. 이럴 경우 이 장치를 인식할 수 있는 리더기 또는 스캐너가 설치된 곳을 지날 때면, 개인의 행적은 소리 없이 추적되고 기록으로 남는다. 이러한 정보들이 어떤 이유로든 특정 집단의 서버로 모이게 된다면 ‘빅 브라더’의 등장과 함께 개인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도 가능해 질 것이다. 베리칩을 몸속에 이식한 사람이 누구든 언제 어디에 있었고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개인 정보를 수집해 감시할 수 있다.

베리칩 이식은 현재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언젠가 정부나 기업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강제로 추진할 수도 있다. 가령 기업의 경우 생산성 향상과 생산관리의 효율성 증대를 목적으로 자료 조사 차원에서 근로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이 칩을 통해 수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베리칩이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줄 것도 사실이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명분이든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 수집과 일상적인 감시는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 이중원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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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4-25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너리티 리포트 떠오른다.

hnine 2013-04-2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나라에서 곧 애완동물들 대상으로 이걸 시행한다고 해서 애완동물은 시작이고 인간들에게도 곧 실시한다고 하겠군, 했더니 과연 그렇군요. 우리 모두 족쇄를 차는거지요 ㅠㅠ 저는 절대 반대랍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들에게도요.

마노아 2013-04-25 09:47   좋아요 0 | URL
유기견이 너무 많아서 시행을 하려는 걸까요? 인간이든 동물이든 역시 이건 좀 아니다 싶어요. 주민증은 상대가 되질 않네요. 어휴...;;;;;;;

saint236 2013-04-2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독교계에서는 이것들을 666이라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베리칩이라기보다는 이것을 운용하는 시스템이 아닐가 싶네요. 휴대폰, 신용카드와 같이 이런 것들만 가지고도 충분히 감시가 가능한 사회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차하면 빅브라더는 지금고 등장할 수 있는 것이죠...

마노아 2013-04-26 01:06   좋아요 0 | URL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 많이 감시당하고 더 많은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 같아요. 당장 휴대폰 하나만 없어도 엄청 불편해진다고 느끼는 것도 그렇고요. 666이라고 하니 갑자기 막 소름도 돋아요. 어휴...;;;;

네꼬 2013-04-25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무릎 안 나가고 잘 있었어요? 나 오래간만에 왔어요. 근데 나 돌아온 거 마노아님 지분도 되게 많다. -_- "나를 책임져, 마노!" (나를 책임져, 알피!를 흉내내 보았습니다.) 여기다 댓글 달아 버렸어요!

마노아 2013-04-26 01:07   좋아요 0 | URL
네꼬님, 반가워요. 와락!!!
무릎이 안 좋아서 허벅지 근육 키우라는 특명을 받았어요. 계단 올라가며 늘 무릎을 생각해요.(응?)
우왕, 네꼬님 돌아오는 데에 저도 한몫 한 거예요? 영광입니다. 후후훗, 책임지겠어요.! 알피 대신...^^
 

   FUSION 과학

제 1848 호/2013-04-17

남자여, 여자의 화장품을 탐하지 말라

‘남성 보습크림, 영양크림 추천이요!’
‘남성화장품으로 피부미남이 되고 싶습니다. 효과 좋은 제품 알려주세요~.’
‘20대 남성 화장품 고르는 법과 피부 관리법 알려주세요!’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연일 올라오는 남성 화장품에 대한 질문들은 피부 미남을 향한 남자들의 관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화장품 업계도 송중기, 장근석, 유노윤호 등 꽃미남 연예인을 내세우며 남성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세수가 피부 관리의 전부(?)였던 많은 남자들에게 고가의 화장품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 때 노리는 것이 아내나 엄마의 화장대다. ‘고가인 만큼 효과도 좋겠지~,’ 라는 생각에 듬뿍 발라보지만 영 신통찮다. 심지어 트러블이 나는 경우도 있다. 이유가 뭘까. 답은 남자의 피부구조와 호르몬에 있다.

∎남자에게 여성화장품은 개기름(?)만 늘린다
남성의 피부는 기름지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피지선을 발달시키기 때문에 남성의 피지 분비량은 여성의 5배다. 피지의 양이 많아지면 피부는 번들거리며 모공이 커진다. 커진 모공에 미생물이 많이 살면서 여드름이나 염증 등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 문제는 뽀송뽀송하고 깨끗한 피부를 기대하며 바른 비싼 엄마의 화장품이다.

보통 40~50대 여성의 화장품은 유분 함량이 높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여성의 피부는 수분과 함께 피부에 윤기를 주는 유분도 줄어든다. 따라서 남성이 중년층의 여성 화장품을 바르는 건 기름 위에 참기름을 한번 덧칠하는 것과 같다. 오히려 번들거리는 피부에 더 많은 유분을 공급하는 셈이다.

이럴 땐 여자의 화장품을 탐내기보다 여자의 이중세안법을 따라해 보자. 여자들은 남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비누와 클렌징폼을 이용한 세안 전에 유성세안을 한다. 오일이 포함된 클렌징 제품을 이용해 비누처럼 피부에 문지른 뒤 휴지로 닦아내는 것이다. 화장품에는 여러 가지 성분이 복합돼 있어 비누와 물만으로는 말끔히 닦아 낼 수 없다. 모공에 남아있는 화장품이나 먼지 등 잔여물질이 피지와 만나면 피부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깨끗한 피부를 위해서는 철저한 세안이 우선이다.

∎콜라겐 팩은 여자에게 양보하고 수분팩을 챙겨라
남자의 피부는 두껍다. 정확히 말하면 표피층이 두껍다. 여자의 피부 두께가 A4용지 한 장이라면 남자는 6장 두께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콜라겐의 합성을 왕성하게 일으키기 때문이다. 콜라겐은 피부에 탄력을 주고 두께를 두껍게 한다. 따라서 남성의 피부는 여성보다 탄력이 있고 주름이 나타나는 시기도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늦다. 하지만 주름이 한번 생기면 피부 두께만큼 더 깊고 짙어진다.

반면 피부의 수분 함유량은 여성의 1/3정도로 건조하다. 게다가 매일 하는 면도는 피부의 보호막 역할을 하는 각질층의 일부를 깎아 내 더 쉽게 수분을 날려 보낸다. 음주도 피부를 건조하게 한다. 주성분인 알코올이 몸속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수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술을 마실수록 목이 마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술은 자외선에 의한 피부 손상을 막는 글루타티온(glutathione)의 생성을 감소시켜 잔주름과 기미를 유발한다.

여성의 피부가 남성에 비해 촉촉한 이유는 호르몬에 있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히알루론산의 합성을 돕는데, 이 물질은 주변의 수분을 끌어당겨 머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팁이 나온다. 남성이라면 콜라겐보다는 수분을 탐하자. 그리고 이왕이면 남성용 수분제품을 챙기자. 앞서 설명했듯 남성의 표피층은 여성보다 두껍기 때문에 여성용 화장품을 발랐을 때 성분이 진짜 작용해야 할 곳에 흡수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표피층 아래 진피층에 작용하는 여성용 화장품을 발랐다고 가정해보자. 남성의 경우는 성분이 진피층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표피층 중간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자연히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라
남자의 피부는 검다. 여자에 비해 남자는 대체적으로 약간 불그스름하며 검은색에 가까운 피부를 가진 사람이 많다. 자외선 노출이 많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피부가 검은 경우도 있지만 다수는 후천적인 영향이 크다. 특히 남자들은 야외활동이 많아도 자외선차단제를 바르거나 별도의 메이크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외선에 의한 피부 손상이 아주 심하다. 여성용 화장품을 탐내기 전에 외출 전 꼭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자.

Bonus tip. 담배의 단짝은 칙칙한 피부!
맑은 피부를 원하는 흡연자가 있다면 금연부터 실천해 보자. 담배에 있는 니코틴은 피부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을 수축시켜 피부를 검고 칙칙하게 만든다. 또 담배가 타면서 나오는 유해산소는 피부의 탄력을 유지하는 콜라겐과 탄력 섬유를 파괴시켜 피부의 탄력을 떨어뜨리고 주름의 생성을 촉진한다. 통계에 따르면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 주름살이 3~5배 많다. 남자를 위한 피부 관리, 남녀차이를 과학적으로 명확히 알고 관리한다면 당신도 피부미남이 될 수 있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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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4-2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분이 너무 없어서 수분 크림 바르고 있어요.ㅎㅎ
옆지기 남성 화장품 하나 사 줘야 될 것 같아요.ㅎㅎ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마노아 2013-04-21 13:49   좋아요 0 | URL
저도 건성에 가까워서 수분이 부족해요. 여드름은 적은데 주름이 많아질 피부죠.ㅜ.ㅜ
날씨도 건조한데 우리 피부에 수분 팍팍 주도록 해요. 옆지기님도 같이요~
아직은 봄이 실감나지 않지만, 그래도 봄날 주말 잘 보내도록 해요.^^
 

농촌 vs 도시, 꽃가루 알레르기 어디가 심할까  

제 1846 호/2013-04-15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들은 꽃이 많은 공원보다 도심 지역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양대 소아과 오재원 교수는 서울 강남역 근처와 경기 포천시 근처에서 각각 일주일 동안 꽃가루를 채집해 독성을 비교했다. 그 결과 채집된 꽃가루 농도는 m³당 강남역이 5360개, 포천이 5288개로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꽃가루 내 항원(독성)은 강남역이 3577μg, 포천이 63μg으로 집계되며 강남역이 57배 가까이 높았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강남역이 515ppm으로 포천 220ppm보다 두 배 이상 높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식물에 영양분을 과잉 공급해 독성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즉,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들은 비도심보다 도심에서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다.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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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미래 식량자원 확보,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FOCUS 과학

제 1844 호/2013-04-15

[FUTURE]미래 식량자원 확보,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2013년 KISTI의 과학향기에서는 올 한 해 동안 매월 1편씩 [FUTURE]라는 주제로 미래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칼럼에서 언급된 미래기술은 KISTI에서 발간한 <미래기술백서 2013>의 자료를 토대로 실제 개발 중이며 10년 이내에 실현 가능한 미래기술들을 선정한 것입니다.
미래기술이 상용화 된 10년 이후 우리의 생활이 어떨지, 또 이 기술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이야기로 꾸며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3년 농림수산부 글로벌식량관리부에 근무하는 박대진 사무관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 세계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상태를 체크한다. 현재 전 세계가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농산물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에 의해 흉작이 예상될 경우 그 영향을 최소화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박대진 사무관은 5년 전인 2018년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다. 중국이 점점 경제력이 좋아지면서 생활수준이 높아지더니 하루 2끼 먹던 식습관이 하루 3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최대 식량 수출국인 중국이 13억 인구의 수요를 맞추기에도 급급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가뭄과 한파 등 기후 이상으로 인해 세계적인 흉년이 덮친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어렵게 되자 국내 농산물과 수산물의 값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공산품이야 당장 급하지 않으면 구입하지 않으면 되지만 농산물은 생사(生死)가 걸린 문제이므로 가격에 바로 반영된 것이다. 거기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사재기를 하면서 대형 마트는 물론 동네 재래시장에도 식료품들이 동이 나기 시작했다. 2018년 식량대란은 이렇게 발발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가정이나 식당, 식품회사의 중국 농산물 의존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았던 것이다.

가정에서는 식료품을 구하지 못해 불만이 터져 나왔고 원재료를 구하지 못한 식당과 식품회사는 도산할 위기에 처했다. 이런 영향은 연쇄적으로 국가 경제에도 충격을 가하고 있었다. 핵폭탄보다 더 강력한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에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고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모든 행정부에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안을 내놓으라고 명령을 하달했다. 박대진 사무관은 이 모든 것이 식량에 대한 과도한 중국 의존도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하고 식량 수입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중국 다음의 식량 수출국 인도의 상황을 체크했다. 그러나 인도도 생활수준이 높아져 식량 수출을 계속 줄이고 있었고 가격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유럽 등 선진국은 식량을 무기화해 가격을 이미 높여놓은 상태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박 사무관은 남미를 주목했다. 다행히 칠레와 브라질에서는 아직 식량 재고분이 남아있었고 가격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지금 수입 계약을 맺으면 식량이 들어오는 시기는 한 달 이상 걸린다. 그러나 늦다고 판단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빨리 보고서를 만들어 상부에 보고하고 식량 수입에 대한 결재를 받아 진행했다. 그동안 정부는 재고로 비축해두었던 비상식량을 출하해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렸고 한 달 후 수입 식량이 도착해서야 2018 식량대란을 겨우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박 사무관은 이것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공산품 수출을 용이하게 하고 농산물을 저가에 수입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과 FTA를 체결했었다. 그로 인해 국내 농업은 가격 경쟁이 되지 않아 아사 상태가 돼 버렸다. 물론 일부 뜻있는 사람들이 조합을 결성해 유기농업을 일으키는 틈새를 공략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왔다. 우리나라가 식량대란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쌀의 자급자족율을 100% 유지했기 때문이다. 쌀시장을 지키고 쌀농사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박대진 사무관은 먼저 식량자급도를 높이는 것만이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농업의 부활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렸다. 그 보고서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도시 빌딩에서 태양 대신 LED 조명과 별도의 이산화탄소 주입, 로봇과 센서 등으로 시설을 자동 관리하는 도심 내 친환경 수직농장 개발기술¹⁾과 식량증산을 위한 광합성 기능 및 불량환경 저항성 향상기술²⁾, 유전체 기반 미래 육종 기술³⁾ 등의 아이디어를 정리해 우리나라가 더 이상 식량대란을 겪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년 후 2023년 현재, 국내의 식량자급도는 70% 수준까지 올라왔고 계속 향상되고 있다. 그리고 식량의 수급상태가 전 세계 네트워크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보고되고 있다. 국외의 작물 현황, 기후 현황, 국내의 식량 현황이 실시간 체크되면서 조금이라도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재빨리 대처하게끔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했다.

농업은 이제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2023년, 농민과 도시민 모두가 먹거리, 즉 우리의 생명줄을 다함께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글 : 정영훈 과학칼럼니스트

[각주-미래 기술]

1)도심 내 친환경 수직농장 개발기술 : 도심 속 빌딩 안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수직농법 기술. 빛,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양분, 수분 등 생육환경을 인공적으로 제어해 생물을 공산품처럼 계획 생산할 수 있는 농업시스템. 3~4년 후 기술의 실현이 예상됨.

2)식량증산을 위한 광합성 기능 및 불량환경 저항성 향상기술 : 복합 재해 저항성을 지닌 품종과 친환경 작물성장 촉진물질, 작물보호제 및 활용기술 등을 이용해 친환경 농산물 생산을 촉진하는 기술. 10년 후 기술의 실현이 예상됨.

3)유전체 기반 미래 육종 기술 : 동식물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재조합하거나 유전자를 구성하는 핵산을 세포나 세포 내 소기관으로 직접 주입해 인공적으로 변형시킨 생물을 개발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기술. 해충이나 신종 바이러스에 강한 농작물 육종이 가능하나 GMO 안정성 확보가 관건. 3~4년 후 기술의 실현이 예상됨.

참고 : < KISTI 미래백서 2013 >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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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 과학

제 1843 호/2013-04-10

  • 적자생존 NO!! 이제 낙(樂)자생존~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휘파람이 절로 나올 것 같은 흥겨운 노래, 가사에서처럼 벚꽃이 폴폴 휘날리는 분홍빛 거리,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4월의 동물원은 사랑스러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태연이는 그 속에서 유일하게 무척이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태연아, 왜 그래? 동물원 가자고 그렇게 조르더니. 무슨 일 있어?”

“아빠, 작년 말 미국 갤럽이 전 세계 14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감 설문에서 한국이 97위를 기록했다는 사실 아세요? OECD 국가 중에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된지는 이미 오래고, 이제는 통계가 잡히는 나라 가운데서도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돼 버렸죠.”

아빠는 태연의 말에 깜짝 놀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폭력, 왕따가 아이들을 자살로 내몬다는 뉴스가 나오는 세상 아닌가!

“무슨 일 있어? 혹시 하루 종일 조증 걸린 사람처럼 헤헤 웃고 다닌다고 애들이 왕따 시키냐? 그러게 적당히 좀 웃으라고 했잖아!”

“그게 아니라, 배고파요! 그것도 베리 어~엄청!! 아빠는 ‘동물원 나들이도 식후경’이란 얘기도 못 들어보신 거예욧?”

“그럼 너의 극단적인 우울함이 단지 배가 고파서였단 말이냐? 넌 어쩌면 그리도 단순하고, 말초적이며, 본능에만 충실한 것이냐.”

“저만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저 우리 안에 있는 원숭이, 낙타, 이구아나, 구렁이도 모두 먹을 거 하나만 생각하고 살잖아요!”

“세상에, 별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 같은 얘기를 다 들어보는 구나. 동물은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않아. 감정이 아주 풍부하다고. 예전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특권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동물학, 뇌 과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동물의 의식과 감정에 관한 연구가 활발한데다 PET, MRI 같은 뇌 영상 기술 덕분에 동물의 뇌도 인간처럼 희로애락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알아냈단다. 다시 말해서 표현방법이 다를 뿐 동물 역시 감정을 느낀다는 거야. 실제로 기니피그의 어미와 새끼를 떼어놓을 때 이들이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뇌 부위는 사람이 슬픔을 경험하는 뇌 부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는 실험결과도 있단다.”

“정말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그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심지어 조너선 밸컴이라는 저명한 동물행동연구학자는 동물들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단다. 즐거움을 느끼려고 무척 애를 쓴다는 거야. 너도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애기는 들어봤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체계가 무너져 쉽게 병에 걸리지만, 반대로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오피오이드(opioid)나 엔도르핀(endorphin) 같은 스트레스 감소 물질의 분비가 촉진돼 면역력이 강해지고 어지간한 병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게 되지. 동물들은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 즐거움을 느끼려고 노력한다는구나. 즐거움이야말로 진화와 생존을 위한 최고의 원동력이라는 거야.”

“와, 진짜 신기하다!!”

“저 앞에 있는 이구아나를 한 번 보자꾸나. 햇볕 있는 쪽으로 꼼짝도 않고 고개를 돌리고 있지? 이구아나 같은 변온동물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햇볕을 쪼여야 하는데, 저렇게 따뜻한 온기를 느끼면 기분까지 좋아진단다. 실제로 햇볕을 쬘 때 활성화 되는 뇌의 영역은 인간이 쾌감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거의 일치하지. 또 얼마 전 파우나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협회는 고양이가 만족스러워 할 때 보이는 그르렁거림에 무의식적인 치유 효과가 있어서, 부러진 뼈와 손상된 조직의 회복을 촉진한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도 내놓았단다.”

이구아나가 햇볕 좋아하는 게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것이고, 그 덕분에 면역력이 좋아지고, 그러면 생존에 더 유리해지고…. 저 행동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흔히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만이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글이라고 생각하지. 수많은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강한 놈만 살아남는 동물의 세계를 봐 왔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야. 하지만 조너선 밸컴은 동물이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즉 면역력이 강한 신체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애와 이타심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한단다.”

“와~ 동물의 세계는 놀랍고도 신비해!!”

사람도 마찬가지야. 여자들에게 좋아하는 이성 타입을 물어보면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뇌의 입장에서 보면 유머감각이 뛰어난 남자가 보다 많이 즐거움을 느낄 것이고, 더 탄탄한 면역체계를 갖췄을 테니, 더 강한 녀석일 가능성도 높은 거야. 어쩌면 우리의 똑똑한 뇌가 더 강한 녀석을 배우자로 삼기 위해 웃긴 사람을 좋아하도록 일부러 조종하는 건지도 모르지. 아빠 생각에 태연이 넌, 아마 나중에 숙녀가 되면 어마어마하게 인기가 많을 거야.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뭐가 그리 재미난 지 웃고 있잖니. 네가 어지간하면 감기에도 걸리지 않는 게 다 웃음 덕분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그래서 아빠도 매일 웃고 계신 거였구나. 지난번에 엄마랑 엄청 싸우고 쫓겨나신 날도, 정말 환한 미소를 짓고 계셔서 참 신기했었어요. 밖은 영하 10도인데 그 추위 속에 벌벌 떨면서도 그렇게 맑은 미소를 짓고 계시다니, 그게 다 면역력을 강화해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셨군요?”

“무, 물론이지!!”

“근데 엄마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아빠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웃는 상이라서, 별명이 ‘고사상의 웃는 돼지’였다고 하시던데요? 초상집에 가서도 계속 웃고 계셔서 상주한테 주먹질을 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시던데….”

“우하하하하~! 너의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들으니 또 다시 웃음이 나는구나. 오~ 콸콸콸 넘쳐나는 나의 엔도르핀이여!!”


관련서적: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 조너선 밸컴.
(ISBN : 9788972202172 (8972202177))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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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4-14 0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자생존'이라는 이름을 못붙여서 그렇지, 이거 정말 저의 평소 생각인데!! ^^
기계, 물질 문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능력, 낙천적이고 긍정적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갈수록.

마노아 2013-04-14 16:11   좋아요 0 | URL
'적자생존'이라고 소리내어 말해 보면 꼭 루저가 된 기분이 드는데, '낙자생존'이라고 소리 내어 말해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걸요. 아자아자 낙자생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