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과학

제 1908 호/2013-07-10

무더위 이기는 선조들의 지혜!

정확히 정오를 기점으로 태연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동공이 슬슬 풀리며, 팔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오후 2시, 더 이상 참지 못한 태연이 고함을 냅다 지른다.

“아빠! 당장 에어컨 틀어주세요. 당장!! 국가적인 전력부족 사태가 더 심각한가요, 아님 하나밖에 없는 금쪽같은 딸내미가 더위에 비쩍 말라 죽어가는 게 더 심각한가요. 네?!”

“에이, 넌 절대 비쩍 마르지 않았어요. 비만에 조금 더 가깝다고나 할까~? 그리고 옛날에는 에어컨 없이도 잘만 살았다고.”

“지금 농담이 나오세요? 아빠가 뭘 잘 몰라서 그러시는데, 옛날에는 지금처럼 덥지가 않았기 때문에 에어컨 없이도 잘 살았던 거라고요. 하지만 요즘엔 지구온난화 현상이 심해져 여름이 너~~무 덥다고요.”

“물론 지구온난화 때문에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 기온이 섭씨 1.8도 올라갔다는 안타까운 조사가 있긴 하지. 그러나! 그렇다고 옛날이 덥지 않았던 건 아니야. 옛날 사람들도 삼복 찜통더위를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엄청 노력을 했단다. 대나무로 좋은 부채를 만들어 부치거나, 죽부인을 안고 자고, 삼베옷 입는 등의 방법을 썼지. 그리고 왕과 신하들은 석빙고의 얼음을 먹기도 했단다.

“아 맞다. 석빙고! 전 그게 그렇게 신기하더라고요. 이 뜨거운 여름에 어떻게 얼음이 녹지 않고 남아있을 수가 있어요? 냉장고도 없는데?”

“그러니까 우리 선조들이 위대하다는 거야. 석빙고의 구조를 보면 옛 사람들이 얼마나 머리가 비상했는지 알 수 있어요. 석빙고의 천장은 아치형을 하고 있단다. 당연히 벽돌들이 딱 붙어있는 게 아니라 벽돌 사이 뒤쪽에 빈 공간이 생기겠지. 석빙고는 그 공간을 이용해 빙고 안의 더운 공기를 빨아들인 다음 바깥의 환기구로 배출시키는 구조를 하고 있단다. 차가운 공기는 밑으로 가라앉고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현명하게 이용한 거지. 또 얼음과 맞닿은 벽과 천장의 틈 사이에는 볏짚, 톱밥 같은 것을 채워 넣어 외부의 열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단다. 볏짚은 속에 빈 공간이 많아서 열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훌륭한 단열재 역할을 했을 거야.”

“와, 진짜 과학적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런데 얼음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잖아요. 대부분은 생짜로 더위를 견뎌야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래도 집 구조 때문에 조금은 덜 더웠을 거야. 옛 사람들은 가급적 남향(南向)에 배산임수(背山臨水), 즉 뒤에는 산이 앞에는 물이 흐르는 곳에 집을 지었단다. 이런 집에 여름 햇볕이 내리쬐면 어떻게 될까. 마당이 뜨거워지고 더워진 공기는 위로 상승할거야. 그럼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뒷산에서 상대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잽싸게 마당 쪽으로 이동을 하겠지. 대류현상에 의해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순환을 하게 되는 거야. 그래서 배산임수 남향집 대청마루에 앉아있으면 뜨거운 한낮에도 산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덕에 그다지 더위를 느끼지 않는 거란다.”

“아, 시골 할머니네 집 마당에 가면 바람 한 점 없는 찜통더위에도 이상하리만큼 시원한 바람이 잘 분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네요. 할머니 집이 배산임수 남향집이란 건 오늘 처음 알았어요.”

목욕도 더위를 이기는 주요한 수단이었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목욕을 좋아하는 청결한 생활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해.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보면 ‘고구려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날마다 두 번씩 개울에서 목욕을 하는데, 남자 여자 분별없이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굽이 따라 몸을 벌거벗되, 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단다.”

“아이고머니나, 부끄러워라!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그렇게 목욕을 했대요? 어마마, 말도 안 돼.”

“시대마다 풍속이 다르잖니. 그땐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거지. 그러나 예외의 사람들도 있었어. 바로 양반들이지. 조선시대 선비들은 제사를 준비하며 목욕재계할 때를 빼고는 거의 몸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여름이면 염증으로 고생하는 양반들이 아주 많았다는구나. 그래서 생각해 낸 게 풍즐거풍(風櫛擧風)이란다.”

“그게 뭔데요? 뭔가 바람풍을 즐긴다는 얘기 같긴 한데….”

“체면 상 개울에서 목욕을 할 수 없었던 선비들은 산에 올라가 상투를 벗어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고, 남성의 중요한 그 부분 그러니까 심벌을 볕에 쬐여 말리곤 했다는구나. 그걸 풍즐거풍이라고 하는데,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볼 때는 매우 과감한 피서법이라고….”

“악! 그만! 거기까지! 아아아, 난 어떻게 해. 상상이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빠가 상상만은 하지 말라고 했잖니. 보기엔 좀 거시기해도, 풍즐거풍은 상당히 건강에 좋은 피서법이었어요. 요즘 들어 옷을 벗고 바람으로 목욕을 하는 풍욕(風浴)족들이 늘고 있다고 하던데, 그만큼 효과가 좋기 때문이란다. 풍욕을 하면 피부호흡을 통해 모공으로 산소가 들어가서 에너지 대사를 촉진시켜주고, 체내 노폐물이나 독소 배출에도 효과가 좋다는 구나. 그래서 이 아빠, 굳게 결심한 바가 있단다. 이번 여름엔 절대로 에어컨을 켜지 않고, 샤워도 하지 않고, 오로지 풍즐거풍으로 굳건히 여름을 이겨 보려는 구나~~.”

“음… 할 수 없네요. 아빠, 우리 가을에 만나요~!”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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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03 호/20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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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역사]자동차 탄생에 숨은 ‘벤츠’ 부부의 비화

독일은 지방자치의 역사가 오래돼 지역별 특색이 분명하다. 특히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 전국의 중심도시들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건축물로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남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 슈투트가르트는 인기가 별로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심하게 맞아 대부분의 유적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배낭여행객들은 그저 프랑스와 스위스를 드나들 때 기차를 갈아타는 곳이라는 인식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2006년 5월, 슈투트가르트의 명성을 단숨에 바꿔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자동차 제조업체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z Benz)가 회사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자동차 박물관을 연 것이다. 둥글고 울룩불룩한 은색의 금속 띠를 층층이 쌓아올린 듯한 파격적인 외양은 TV와 신문의 단골 소재로 오르내렸다.

내부의 구성도 획기적이었다. 입장권을 구입하면 은색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다. 이후 나선을 따라 돌아 내려오며 벤츠의 역사가 담긴 전시물을 시대별로 감상하는 방식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홀 중앙에 전시된 세 바퀴 자동차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카를 벤츠(Karl Benz)가 1886년에 세계 최초로 만든 휘발유 자동차 ‘벤츠 파텐트 모토바겐(Benz Patent-Motorwagen)’이다.


•독일 특허 37435번을 획득한 세계 최초의 자동차

[그림 1] 세계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 ‘모토바겐’을 개발한 카를 벤츠.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카를 벤츠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진 도시 칼스루에(Karlsruhe)에서 태어나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라인강을 따라 북쪽으로 70km 정도를 흘러가면 만나는 북쪽 도시 만하임으로 이사해 동업자 아우구스트 리터(August Ritter)와 함께 1871년 강철 판금 회사를 차렸다.

창업 초기에는 벌이가 시원찮았다. 그러나 약혼녀 베르타(Bertha)가 결혼 지참금으로 리터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카를은 1872년 결혼식을 올린 후 공장용 대형 엔진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일을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1878년 12월 31일에는 소형 2행정 휘발유 엔진을 발명하고 이듬해 특허를 받았다.

카를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후에도 배터리 시동, 점화플러그, 속도 조절 시스템, 기화기, 클러치와 기어 시스템, 수냉식 라디에이터의 특허를 획득하는 등 지금의 자동차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 대부분을 고안했다.

그리고 1886년 1월 29일 마침내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놀라운 발명품이 탄생했다. 의자와 핸들, 세 개의 바퀴를 단 최초의 자동차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차는 954cc에 0.9마력을 발휘하지만 100kg의 초경량을 자랑하는 4행정 휘발유 엔진을 갖고 있었다. 독일 정부의 공식특허 37435번을 얻었기 때문에 ‘벤츠 파텐트 모토바겐 1호’ 즉 벤츠(Benz)가 특허(Patent)를 받은 모터(Motor) 달린 수레(Wagen)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1.5마력 엔진을 갖춘 2호와 2마력을 발휘하는 3호를 연달아 개발해 최고속도를 시속 16km까지 높였다. 그러나 예상보다 판매량이 많지 않았다. 말이 끌지도 않는데 혼자서 털털거리며 이동하는 새로운 교통수단에 사람들은 좀처럼 마음과 지갑을 열지 않았다.


•벤츠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동차 문화도 없다

1888년 8월 초 카를의 아내 베르타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만하임에서 남쪽으로 100km 떨어진 포르츠하임의 어머니 집까지 자동차를 몰고 가기로 한 것이다. 여자 혼자서도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자동차가 얼마나 대단한 발명품인지 사람들도 알게 될 거라는 확신에서였다.

신중한 성격의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15세와 14세로 아직 어렸던 두 아들 오이겐(Eugen)과 리하르트(Richard)도 여행에 동반했다. 연료도 제대로 된 공구도 없이 무작정 출발한 베르타는 모토바겐 3호를 몰고 라인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림 2] 카를 벤츠의 아내 베르타 벤츠(좌)가 장거리 여행에 사용한 벤츠 파텐트 모토바겐 3호(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를 무사히 통과하고 약간 남쪽의 비슬로흐에 도착하자 연료가 떨어졌다. 그녀는 가까운 약국으로 달려가 석유 용제의 일종인 리그로인을 구입해 자동차에 주입했다. 이 약국은 ‘세계 최초의 주유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금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후 칼스루에를 거쳐 슈투트가르트 서쪽의 포르츠하임까지 104km를 무사히 달린 베르타는 그제서야 남편에게 전보를 보냈다. 3일을 머물다 다시 만하임으로 돌아갈 때는 라인강변을 지나는 90km 길이의 지름길을 택했다.

이 길은 2008년 9월 ‘베르타 벤츠 메모리얼 루트(Berth Benz Memorial Route)’라는 이름이 붙었고 세계 자동차 애호가들이 언젠가 한 번은 꼭 달리고 싶은 길로 꼽힌다. 지금도 격년마다 앤티크 자동차 소유주들이 모여 자동차의 어머니 베르타를 기념하는 퍼레이드를 연다.

베르타는 운전에만 능숙한 것이 아니었다. 여행 중에 자동차가 말썽을 부리면 기지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했다. 평소에도 남편을 도와 기계 제작에 참여했던 경력 덕분이었다. 기화기의 노즐이 막히면 머리핀을 이용해 구멍을 뚫었고, 와이어가 다른 부품에 닿아 간섭이 일어나면 스타킹으로 묶어 고정시키기도 했다. 브레이크가 닳아서 성능이 떨어졌을 때는 구두 수선공을 찾아가 가죽끈을 설치해달라고 주문했다. 현대식 브레이크 라이닝을 개발한 것이다.

카를 벤츠가 위대한 발명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아내 베르타의 역할이 컸다. 결혼 지참금을 투입해 남편의 회사를 일으켜 세우고, 자동차 관련 특허를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직접 장거리 여행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자동차 수리와 정비까지 혼자 힘으로 해낸 베르타 벤츠. 세계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를 개발한 카를 벤츠와 함께 실로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부부가 아닐 수 없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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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99 호/2013-07-01

가전제품 전자파 얼마나 나올까?

한때 ‘전자레인지 괴담’이 온라인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전자레인지로 조리할 때 나오는 전자파가 암을 유발하고 뇌기능을 파괴하며 성 호르몬의 분비를 멈추게 하는 등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을 파괴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이런 주장이 왜 네티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일까.

지난 2011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휴대전화 전자파가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발표를 한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 전자파에 대한 공포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자파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인체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WHO가 일부 가전제품 또는 고압선 주변에 어떤 문제점에 대해서는 사전적 예방주의가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을 뿐이다. 매일 사용하며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전자제품들이 우리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전자파(electromagnetic wave)의 원래 명칭은 전기자기파(電氣磁氣波)로 우리는 이것을 줄여서 전자파라 부른다. 즉 전자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두 가지 성분으로 구성된 파동(波動)으로서, 공간을 광속도로 전파(傳播)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자파는 주파수(1초에 진동하는 횟수)에 따라 가정용 전원주파수 60Hz, 극저주파(0~1kHz), 저주파(1k~500kHz), 통신주파(500kHz~300MHz), 마이크로웨이브(300MHz~300GHz)로 분류된다. 그리고 적외선 < 가시광선 < 자외선 < X선 < 감마선 순으로 주파수가 높아진다. 전자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교차할 때, 혹은 교류전기로부터 급속히 발생한다. 비단 휴대전화 뿐 아니라 TV, 헤어드라이기, 전기장판, 냉장고, 정수기, 심지어 화장실의 비데까지, 모든 가전제품에서 방출된다.

알고 보면 태양도 전자파를 발생시킨다. 태양은 여러 가지 주파수를 방출하는데, 이 가운데 상당한 양이 지구에 도달하고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광선도 사실은 전자파의 한 작은 주파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지구는 전자파에 의해 온도가 유지되고 있으며,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전자파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인체가 만성적으로 전자파에 노출되면 건강상에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낮은 주파수가 인체가 장시간 노출되면 체온변화와 생체리듬이 깨져 질병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아주 강한 전자파는 스트레스를 일으키거나 심장질환, 혈액의 화학적 변화를 유발할 수 있으며 남성의 경우 정자 수 감소, 여성의 경우 생리 불순 및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가전제품 30cm 떨어져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아

국립전파연구원은 주요 가전제품 52개 품목의 전자파 노출량을 측정한 결과를 분석해 2013년 5월 30일 ‘가전제품 사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국립전파연구원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의 경우 인체에 노출돼도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래도 전자파 노출은 적을수록 좋다. 전자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생활가전제품을 사용할 때에는 30cm 이상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가장 좋다. 가전제품을 몸에 바짝 붙여 사용할 때와 그렇지 않은 경우 전자파 노출은 최대 6~7배 차이가 난다.

전자레인지의 경우 음식이 잘 익고 있는지 궁금증이 발동해도 작동 중인 전자레인지 안을 들여다봐선 안 된다. 사람의 눈은 민감하고 약한 부위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즉석식품 등을 데우는데 사용하는 전자레인지의 경우 작동 중에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전기장이 19.79V/m인데 비해 30cm만 떨어져도 4.55V/m으로 1/4 수준까지 전자파가 줄었다.

헤어드라이기를 쓸 때는 이왕이면 커버를 분리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좋다. 커버가 있을 때 전기장이 185.42V/m인데 반해 커버를 벗기면 350.12V/m으로 전자파에 2배 정도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데는 전자파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몸에 가장 밀착해서 사용하기 때문으로 비데를 사용할 때 방출되는 전자파는 425V/m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내 습도 조절을 위해 사용하는 가습기도 최대한 멀리 놓고 사용해야한다. 가습기를 30cm 거리에 두고 사용할 때 발생되는 전기장을 측정한 결과 68.97V/m로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겨울에 많이 사용하는 전기장판 역시 전자파가 나오는 전기제품이다. 전파연구원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전기장판을 그냥 깔 경우 121.29V/m의 전기장이 방출되지만 두께가 3cm인 담요나 이불을 덮으면 93.52V/m, 5cm 담요를 덮으면 81.35V/m로 전기장 방출량이 줄었다. 또 저온(취침모드)로 온도를 낮추면 고온으로 사용할 때에 비해 전기장판 장기장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참고로 전기장판의 전자파는 ‘온도조절기’와 ‘전원접속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가전제품 앞에서 측정된 수치 뿐 아니라 주변의 전자파도 신경을 써야 한다. 전기밥솥에서 밥을 담는 순간에도,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는 찰나에도 전자파는 흐른다. 냉장고의 경우 앞쪽보다는 뒤쪽에서 상당히 강한 전자파가 발생된다. 휴대전화의 경우에는 처음 연결되는 신호가 나올 때 가장 많은 전자파가 흐르고 엘리베이터처럼 밀폐된 공간에서는 신호를 잡기 위해 더 강한 전자파가 방출된다.

전자파의 영향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시중에는 이러한 전자파를 차단해 준다는 전자파 차단 필터가 출시돼 있다. 하지만 일부 전자파 차단 필터의 경우, 이를 사용하자 전기장이 오히려 늘어났다. A사 제품 전원콘센트에 필터를 부착하지 않았을 때는 전기장이 94.62V/m 방출됐는데, 필터를 부착하자 95.87V/m이 방출됐다. B사 제품은 95.47V/m으로 전기장이 아주 조금 줄었다.

숯이나 선인장 등도 전자파 차단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실험 결과 이러한 제품들이 실제로는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가전제품은 220V 60Hz를 사용하는데, 60Hz 주파수가 방출하는 것은 숯이나 선인장으로 차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숯이나 선인장을 사용하기보다는 가급적 가전제품과의 노출거리를 30cm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전자파를 피하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다.

또 전자제품은 플러그만 꽂아놔도 미세한 전자파가 발생하므로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은 플러그를 빼는 것이 좋다. 전자파도 줄이고 전기세도 아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글 : 윤수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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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7-01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전원을 내린채 플러그는 꽂아둔 채로 두는데, 전원 내렸어도 플러그를 뽑아야 하는 걸까???

hnine 2013-07-0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대폰에 대한 수치는 안나와있는게 의외네요. 생각해보면 목욕하러 들어갈때나 몸에서 떼어놓을까, 요즘은 거의 분신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니 이것만한 게 있을까 싶거든요.

마노아 2013-07-01 22:33   좋아요 0 | URL
휴대폰 전자파 우려 기사는 곧잘 본 것 같은데 정확한 수치는 떠 오르질 않네요.
요새는 팟캐스트 방송을 많이 들어서 전화 안 써도 노상 켜놓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쩔 땐 욕실에도 틀어놓구요. 아, 자제해야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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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94 호/2013-06-24

 

기억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만일 살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한 조각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저장된다면 어떨까. 한번 본 것이 사진 찍듯 머릿속에 저장된다면 어떨까.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당신은 머릿속이 온통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예요. 그건 평생 과거라는 철창 속에 갇혀 사는 거라고요." - 소설 ‘궁극의 아이’ 中 앨리스의 대사

과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증상을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ia)이라 한다. 이 증후군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며 종종 드라마, 문학 속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해 왔다. 장용민의 소설 ‘궁극의 아이’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고 있다. 일명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인 앨리스는 일곱 살 이후 벌어진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한다. 몇 백만 명 중 한 명이 생길까 말까 한 희귀한 증세지만, 실제로 전 세계에 수십 명이 이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서프라이즈’라는 TV 프로그램에서는 실제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이들이 등장한 적이 있다. 한 외국 여성은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 일들이 마치 일상을 녹화해 놓은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며, 사소한 일에 예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자가 직업인 한 남성은 자신이 인터뷰한 내용뿐 아니라 며칠 전 편집장이 회의에서 한 말도, 몇 년 전 의사가 한 말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10년 전의 의미 없는 사건도 사진처럼 생생히 저장돼 현재와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기억이 다가 아니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수준의 기억만 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기쁨은 물론 슬픔, 좌절, 분노, 고통 등)도 똑같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흔히 과거가 좋은 이유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기쁨이건, 슬픔이건, 아픔이건 공평하게 모두 지나간다. 이러한 ‘망각’의 행운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은 과연 일반인과 뇌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내게 과거는 상영 중인 영화 같아요. 멈출 수도, 통제할 수도 없어요.” - AJ

2006년, 뇌과학 분야의 학술지인 ‘뉴로케이스’에는 공식적으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판정을 처음 받은 여성의 사례가 등장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신경생물학과의 제임스 맥거프 박사가 주도한 이 연구에서 AJ라는 가명의 여성은 11세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거의 빠짐없이 기억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후에 밝혀진 여자의 본명은 질 프라이스. 맥거프 박사에게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기 전까지 그녀는 35년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에 대해 가족에게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각종 검사 결과 질 프라이스의 기억 능력은 자서전적인 기억에 치중돼 있었다. 학습 영역으로 볼 수 있는 암기력에는 취약했으며 기타 인지능력은 평범했다. 맥거프 박사팀은 일화기억의 인출을 담당하는 좌우 대뇌피질의 특정영역이 일반인과 다른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후 후속연구에서 그녀의 뇌 영상을 촬영한 결과, 대뇌구조의 24개 영역이 일반인에 비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은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뇌의 우전두엽에만 저장하지만 과잉기억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우전두엽과 좌전두엽에 모두 저장한다. 물론 이것이 과잉기억증후군의 모든 이유로 볼 수는 없다. 밝혀지지 않은 의문들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이런 초인적인 기억력을 나타내는 증상으로 서번트 증후군도 있다. 이는 자폐증상을 가진 사람 중 극히 일부에서 나타나는 증후군으로 암기능력이나 음악, 미술 등 특정 분야에서 놀라운 기억력을 발휘한다. 영화 ‘굿윌헌팅’, ‘레인맨’ 등에는 이 증후군을 앓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특히 레인맨의 실제 모델이었던 천재 킴 픽은 1만 2,000여 권의 책을 암기한다고 알려졌다. 영국의 화가 테판 윌트샤이어는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놀라운 기억력을 이용해 도시와 건축물의 모습을 정밀하게 그려낸다.

세계 명 지휘자 ‘로린 마젤’도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악보를 한번 보고 기억했으며 교향곡을 통째로 외우는 천재소년이었다. 이런 기억력을 포토그래픽 메모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눈으로 본 것을 마치 사진 찍듯 머릿속에 저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억력은 일종의 암기력으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과는 차이가 있다. 질 프라이스를 비롯해 과잉기억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 학습의 영역과 기억의 영역은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기력은 훈련을 통해 어느 수준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기억을 ‘뉴런 사이의 일정한 연결 패턴이 저장된 것’이라고 정의한다. 뉴런은 신경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단위세포를 말한다. 인간의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있고, 각각의 뉴런은 5,000~1만 개의 시냅스를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보통 성인의 뇌에는 총 500~1,000조의 시냅스가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미국 의회도서관 장서 15~30배 정도를 저장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우리가 과거의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이 방대한 네트워크의 연결 패턴에 변화가 일어난다. 시냅스는 더 견고해지기도, 더 약해지기도 하며 아예 새롭게 형성되기도 한다. 이 정교하고 신비로운 과정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들로 가득하다. 기억과 망각의 세계, 이를 밝히기 위한 과학자들의 도전이 계속되는 이유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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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5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5 0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5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13-06-24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스마트폰의 패턴 잠금.해제 모양이 떠올라버렸습니다.
저는 상상력이 좀 과한 편인데요, 상상에 빠졌을 때는 뇌의 시냅스가 어떤 모양인지 궁금하네요.(웃음)

마노아 2013-06-25 00:25   좋아요 0 | URL
아마 그 순간에 엘신님의 뇌는 반짝반짝 마구 불이 들어올 것만 같은 걸요.
그 순간의 무늬는 어쩐지 세포를 확대한 것처럼 무척 예쁘게 보일 것 같아요.^^
 

   FOCUS 과학

제 1889 호/2013-06-17

[FUTURE]미래의 에너지, 절약과 효율이 대세!

 

2013년 KISTI의 과학향기에서는 올 한 해 동안 매월 1편씩 [FUTURE]라는 주제로 미래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칼럼에서 언급된 미래기술은 KISTI에서 발간한 <미래기술백서 2013>의 자료를 토대로 실제 개발 중이며 10년 이내에 실현 가능한 미래기술들을 선정한 것입니다.
미래기술이 상용화 된 10년 이후 우리의 생활이 어떨지, 또 이 기술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이야기로 꾸며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2023년 6월 17일. 봄이 잠시 머무르나 싶더니 연일 섭씨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유월을 점령해 버렸다. 새내기 신입사원 김새경 씨는 가장 먼저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전 인식장치로 사무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조명도 알아서 켜지더니 친근한 안내음이 들린다.

“실내 온도를 몇 도로 유지할까요?”
“오늘 하루 26도 유지하면 좋겠지.”
“네, 알겠습니다.”

이제 가정은 물론 사무실과 공장에선 지능형 에너지 관리시스템 기술¹⁾이 활용돼 쾌적한 실내 환경 유지는 물론 에너지 소비도 자동으로 최적화되고 있다. 하루 중 출퇴근 시 온도와 가장 더운 온도를 파악해 냉방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으며 기적으로는 계절별 온도 조절도 가능하다. 그리고 직원들이 가장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곤한 시간을 파악해 알아서 공기청정도 해준다. 빅데이터와 스마트 기능이 결합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무실과 공장에 전면적으로 이런 시스템을 설치한 것은 에너지 절약과 효율을 위해서다. 에너지가 부족한 곳이 없도록 에너지 공급에 만반의 준비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원칙이지만 이산화탄소 배출 등의 문제로 발전소를 무한정 지을 수는 없는 게 고민거리다. 그래서 정부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현실적으로 발전소를 계속 짓는 것이 더 이상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11년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2013년에 국내에서 일어난 원전 비리 사건이 문제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 세계에 원자력 발전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됐다. 사실 원자력 발전은 화석 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지구온난화가 심화돼 가고 국제유가의 불안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관리를 잘못했을 경우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는 것을 목격했다. 원자력 발전이야 말로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절대 안전의 영역이다.

그런데 2013년 국내에서 이러한 원전 안전성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일부 원자력 관계자와 납품 업체들이 야합해 수년 동안 불량 부품을 납품하고 또 부품에 대한 시험 성적서를 위조하는 등 구조적인 비리가 발각됐다. 그로 인해 원전이 무더기로 가동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러 그해 전력수급에 큰 차질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발 빠른 수사와 관련자 전원을 처벌해 이후 원전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었지만 하마터면 작은 구멍이 큰 둑을 허물 듯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의 원전 건설은 국민들의 합의가 어려워 진행이 어렵게 된 것이다.

에너지의 수급이 한정되자 초점은 에너지 절약과 효율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도 최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적은 에너지로 큰 효율을 낼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먼저 가정에서는 에너지제로하우스 건축 기술²⁾이 도입됐다. 이 기술로 인해 자연에너지만으로 난방, 급탕, 취사 및 각종 전기에너지원을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주택이 만들어지고 전면적으로 보급됐다. 우리나라는 아파트의 거주 비중이 높기 때문에 아파트를 재건축하거나 리모델링할 때 이 기술을 엄격히 적용해 에너지의 절약과 효율을 극대화했다. 이로 인해 가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제로로 줄일 수 있었으며 주택관리비를 많이 줄여 가계에 도움이 되고 있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김새경 씨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다이어트와 몸매 관리를 위해 에어로빅을 등록했는데 7시까지 학원에 도착해야 한다. 어? 그런데 세경 씨가 장만한 차는 청정 경유차도 아니고 수소연료차도 아니고 전기자동차도 아닌 색다른 스타일. 다연료(Multi-fuel)엔진 기술³⁾로 만든 신개념의 자동차. 하나의 엔진 시스템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연료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한마디로 연료 융합형 자동차다.

2023년이 됐지만 자동차는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청정디젤차 등 어느 한 기술로 천하 통일되지 못했다. 어느 한쪽으로 통일되는 순간 관련 에너지 공급에 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로 모든 자동차가 재편됐을 때 연료 충전을 위해 너도나도 플러그를 꽂는다면 전력 대란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다연료(Multi-fuel) 엔진 자동차는 현실적으로 에너지를 가장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대안이 되고 있다.

퇴근시간 차가 밀리는 바람에 에어로빅 학원에 조금 늦게 도착한 새경 씨는 헐레벌떡 옷을 갈아입고 에어로빅실로 들어갔지만 이미 음악소리에 맞춰 격렬한 에어로빅이 진행되고 있었다. 몸에 붙어있는 살이라는 살은 모두 빼겠다는 기세로 몸을 흔들어대는 수강생들.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몸짓과 에너지 낭비처럼 보이지만 이 학원은 에어로빅을 하면서 생기는 열, 진동, 소음 등을 전기에너지로 재생산하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⁴⁾을 활용해 모든 전기를 자체 충당하고 있다. 쿵쾅거리는 격렬한 에어로빅의 운동에너지는 에너지 하베스팅 소자 기술로 특수 설치된 바닥에 그대로 흡수돼 전기에너지로 변환되고 있다. 이렇게 아껴진 관리비로 이 에어로빅 학원은 수강생들에게 훨씬 저렴한 수강료를 받고 있다. 도랑 치고 가제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2023년 미래의 에너지의 키워드는 ‘절약과 효율’이다. 모든 사무실이나 집, 공장, 자동차도 허투루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 계단에서도 에너지를 모은다. 그래서 꼭 필요한 만큼만 에너지를 생산하니 더 이상의 발전소를 세울 필요가 없어 상대적으로 설치에 필요한 비용도 감소되고 그만큼 위험도 감소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새경 씨는 조건 좋고 능력 많은 남자보다 연봉은 많지 않지만 돈을 아낄 줄 알고 효율적으로 쓸 줄 아는 남자한테 더 눈길이 간다. 그런 남자가 훨씬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 : 정영훈 과학칼럼니스트

[각주-미래 기술]
1) 건물, 공장 등의 지능형 에너지 관리시스템 기술(BEMS, 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 : 실내 환경과 에너지 성능을 최적화하기 위한 건물관리시스템. 에너지의 소비량과 장비나 시스템의 운전상태 등을 모니터링한 후 적절한 평가를 거쳐 다양한 에너지 소비량 분석, 비효율적인 장비 및 시스템의 파악, 최적의 자동제어시스템 구축 등 궁극적으로 쾌적한 실내 환경을 조성하면서 에너지 소비는 최소화 시키는 시스템. 3~4년 후 기술 실현 예정.

2) 에너지 제로하우스 건축 기술 :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너지만을 이용해 난방, 급탕, 취사 및 각종 에너지원을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주택. 2020년을 목표로 주택 유지비가 현저히 낮출 수 있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적인 에너지 제로하우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 7~8년 후 기술 실현 예정.

3) 다연료(Multi-fuel) 엔진 기술 : 하나의 엔진 시스템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연료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엔진. 다연료 엔진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관건은 각 연료에 맞는 엔진 변화를 최적화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뿐만 아니라 내구성, 편의성 측면에서 전혀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 이미 다연료 엔진 기술을 사용한 제품들이 출시돼 있으며 최적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질 전망. 3~4년 후 기술 실현 예정.

4) 버려지는 열, 진동, 소음 등을 전기에너지로 재생산하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 : 자연의 빛에너지, 인간 신체 또는 연소형 엔진으로부터의 저온 폐열에너지, 휴대용 기기 탑재/부착장치의 미세 진동에너지, 인간의 신체활동으로 인한 소산에너지 등을 흡수해 에너지 하베스팅 소자 기술을 통해 전기에너지로 변환, 전자기기의 전력으로 사용하는 환경에너지 재생형 에너지원. 1~2년 후 기술 실현 예정.

참고 : <KISTI 미래백서 2013>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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