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동의 - 지금 강조해야 할 것
밀레나 포포바 지음, 함현주 옮김 / 마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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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셋 준 리뷰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비구매자들의 백자평을 보고 하나 더 올리기로 한다. 그들이 백자평을 통해 주장한것, 그러니까 '동의에 대한 비아냥'은 정확히 이 책에서도 사례로 언급되어진다.



동의에 관한 한 우리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물어보기다.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그럼 섹스를 할 때마다 법률 계약서를 써야 하냐"는 비아냥 어린 질문을 들어봤을 것이다. 본질을 벗어나는 이런 질문은 대화를 계속할 수 없게 하고, 일상생활속 성폭력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반증할 뿐이다. 법률 계약은 성적 동의와 아무 관련이 없다. 동의는 소통과 배려, 인간적 존중이 있어야 가능하고 이런 것들은 법으로 규제되지 않는다. ( p.60-61)


내가 별을 셋 주고자 했던 까닭은 이 책이 너무 기본적이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런건 읽지 않아도 아는거잖아, 라는 생각을 했으므로 중간에 덮을까도 여러번 생각했다. 그때마다 '겸손해지자'고 내가 나를 달랬다. 이 책은 매우 기본적인 페미니즘 입문서이자 관계 입문서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혹은 인간 관계, 남녀 관계에 대해서 일단 기초부터 시작해야 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이런 책이 대체 왜 필요한가 싶다가도 이런 책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런 걸 알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싶어서 씁쓸하다가, 그러나 이런 기초적인 사항들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이 책을 읽을 시도조차 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들긴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책에 달린 비구매자 백자평에서 볼 수 있듯이, '야 자연스런 섹스에 일일이 동의 물어보고 분위기 깨라는거냐' 라며 비아냥대겠지. 그게 이 책이 필요한 이유이나 그러나 이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는 뜻도 될것이다. 뭐야 계약서 받고 섹스하라는거야? 라고 비아냥 대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생각이나 할까? 안한다에 오십원..



중간중간 작가와 나의 생각이 달라서 갸웃했다. 어떤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그래, 그건 그럴 수 잇겠구나' 했지만, 어떤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그건 아닌것 같은데' 했다.동의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 책은 강간문화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개념을 알려준다. 실제로 '야 강간 문화가 어디있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일일이 설명해주기도 귀찮고 어차피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은 설명해준다고 듣지도 않을 것이고. 강간문화와 강간신화, 성적 동의에 대한 기본 개념에 대해서 아주 잘 알려주는 책이니, 몰라서 알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그런게 어딨냐고 비아냥 대는 사람들도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입문서로 적절하다 하겠다.




강간 문화는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르기는 쉽고,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그에 맞는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렵게 만드는 사고방식과 관습, 사회 구조의 총체다. 여기에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이 포함된다(성적으로 남성은 적극적이고 여성은 소극적이라고 여기며, 이에 어긋나는 여성은 ‘음탕하다‘라고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 등). 또 강간으로 판단되는 상황과 ‘진짜‘ 강간 피해자라면 응당 어떤 행동을 보이라고 단정짓는 것도 강간 문화의 일면이다(육체적 폭력이 수반된 경우에만 ‘진짜‘ 강간이라는 인식, ‘진짜‘ 피해자라면 사건을 즉시 신고할 것이고 정신적 외상이 심하겠으나 지나치게 히스테리를 부리지는 않으리라는 인식). 강간범은 어두운 골목에서 튀어나온 괴물이며, 남자친구나 아버지, 대학생이나 정치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또한 강간 문화의 일부다. - P17

한편, 여성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만큼 술을 마시거나 밤늦게 혼자 다니는 것은 강간을 유발하는 행동이며, 이 때문에 남성은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고정관념도 강간 신화의 대표적인 예다. 또 여승의 음주는 비난의 이유가 되고, 남성의 음주는 자기 행동에 대한 핑계가 된다. 이로써 강간의 책임이 가해자에게서 피해자에게로 옮겨 간다. 잠재적 가해자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피해자에게 ‘강간당하지 말라‘고 말하는 형국이다. 이는 공공장소를 자유롭게 다닐 권리,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기본적 권리를 제한한다. 이런 신화들은 성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상황에서 여성의 행동으로 동의를 추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양산한다. - P40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는 인종화(피부색이나 혈통을 근거로 타자화하는 것)도 강간 문화에 상당히 기여한다. 예컨대, 미국 문화에서 강간은 보통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라는 인식이 오랜 기간 만연해 있었다. 이는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 노예와 여성 토착민을 강간했던 역사를 지우고 수정하려는 의도적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아픈 역사는 지금까지도 흑인 여성과 토착민 여성을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 흑인 여성과 토착민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는 비율이 백인 여성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흑인 여성이나 토착민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신고해도 수사관이나 검사가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뿐더러 불신하여 사건을 추가 조사하지 않는다. 유색인 여성을 성폭력에 취약하게 만드는 편견은 이 밖에도 많다. - P42

성적 동의는 나와 상대방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마땅히 보여야 하는 신중함과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내가 그런 것처럼 성관계를 맺을 의사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적 동의를 고민할 때 신체적 자율권 개념은 순전히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나의 신체적 자율권을 행사하고 싶다면 당연히 타인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다고 섹스와 섹스를 둘러싼 모든 결정 과정이 재미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성관계가 어느 한쪽의 만족감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우연한 만남에서든 오래된 관계에서든 성관계는 ‘상호‘ 교류를 의미한다. - P55

계속해서 동의 상태를 확인한다는 것은 묻고 답하는 순간에 일단 행동을 멈추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섹스를 자기 욕구 만족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서로 행복한 성적 경험을 공유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나뿐 아니라 상대방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해진다. 즉, 상대가 만족하는지, 내 행동을 상대가 좋아하는지, 여전히 동의하는지 거듭 확인해야 한다. - P64

경찰관이 강한 어조로 안 된다고 말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사용자가 재생할 수 있는 앱도 있다. 이 앱의 개발자는 성관계를 강요하는 사람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면 거절 의사를 더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의 기저에는 모호한 대답은 곧 ‘좋다‘라는 뜻이며 ‘싫어하는 척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강간 신화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받기 위해 경찰 영상까지 동원해야 하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 된다. - P79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백래시는 역사가 길다. 예를 들어보자. 1991년에 미국 안티오크 대학의 한 페미니스트 단체가 캠퍼스 강간과 데이트 강간 관련 캠페인을 벌였고, 대학 당국은 ‘말을 통한 지속적 동의‘ 여부로 강간을 규정하도록 정책과 교칙을 수정했다. 즉, 육체적 관계가 진행되는 내내 서로 동의가 유효한지 말로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학내 강간 가해자들은 징계를 받거나 퇴학당했다.
안티오크 대학의 사례는 뉴스 방송을 타고 전국에 퍼졌고, 누구나 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여론은 극도로 부정적이었다. 1993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에 나왔던 ‘이것이 데이트 강간?‘이라는 콩트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콩트에는 한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그녀의 옷차림을 칭찬해도 되는지, 입에 키스해도 되는지, 엉덩이를 만져도 되는지 과장되게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 P182

이것 말고도 안티오크 대학 정책에 조롱을 던지는 백래시는 많았다. 당시 사람들은 성적 관계에서 동의의 초점을 맞추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 기대이며, 말로 동의 여부를 확인하면 ‘분위기를 망치고‘ 덜 ‘자연스러워‘진다고 말하곤 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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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20-03-0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문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거라면 좋은책이겠지요? 기본이 중요하니깐요..저도 다음번에 읽어볼게요.

다락방 2020-03-10 07:38   좋아요 0 | URL
네. 별 것도 아닌 가장 기본적인 내용인데(상대의 동의를 얻고 섹스하라!) 이걸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있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책이 왜 나오나 했더니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오나봐요. 휴..

추풍오장원 2020-03-1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군요. 백자평 중 하나는 비아냥으로만으로 치부하기엔 힘든 측면도 있는것 같아 읽어보고 판단해야겠습니다.

다락방 2020-03-11 17:21   좋아요 0 | URL
네. 직접 읽고 판단해야죠.
그 구매자평들은 안읽고 판단했으니까요.
 
《트라우마》그래도될까?
트라우마 -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주디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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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의 원제가 《Trauma and Recovery》인만큼, 나는 리커버리를 기대하며 읽었다. 외상의 피해자가 고통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들이 있을까, 를 기대한 것. 책은 기대와 달리 '치료자'와 피해자의 관계, 치료자가 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생존자가 해나가야 하는 방법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으나 그렇다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치료자에게 조력자도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또 집단 치료의 효과에 대해서 말해주기 때문에, 외상의 피해자에게는 역시 전문 치료가나 치료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겠구나, 를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 치료자와 함께 더 나아진 삶을 살게 되고 치료가 됐다고 믿었던 환자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다시 플래시백, 과거로 끌려들어가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외상의 피해자는 그러니까 외상이 없었던 것처럼 살 순 없다는 거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다시 살아가기를 택하는 것 뿐.



외상 피해자들의 사례가 자주 언급되는데 이렇게나 근친강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또 놀라면서 읽었다. 근친강간, 집단강간, 아동학대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치료를 받고 또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해줄 때마다 자꾸 울게 된다. 진심으로 그들이 치료될 수 있기를, 나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품게 되고.



치료자를 찾지 않고 혼자 극복하는 방법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외상의 생존자들이 집단치료하는 그 과정들 속에 나도 가끔식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은 독서였다.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트라우마 없이 살아가는 운좋은 사람들도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이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물음 너머로, 생존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물음에 대면한다. ‘왜 나인가?‘ 운명이 지닌 임의성과 무작위성은 세상이 정의롭고 예측 가능하다는 기본 신념을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외상 이야기를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생존자는 죄책감과 책임이라는 도덕적인 문제를 검토하고, 겪지 않아도 됐을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을 납득시켜 주는 신념 체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생존자는 단지 사고하는 것만으로 의미를 재구성할 수 없ㅂ다. 부당함을 고치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생존자는 무엇을 행할지 결정해야 한다. - P297

애도 과정에서, 생존자는 가해자에게 똑같이 갚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안전한 환경에서 분노를 풀어낼 수 있다면 무력했던 분노는 점차 가장 강력하고 만족스러운 형태의 분노로 변화할 것이다. 올바른 분노. 이러한 전환으로 생존자는 가해자와 함께 남아야 하는 복수 환상으로부터 해방된다. 생존자는 범죄자가 되지 않고도 힘이 있다는 느낌을 회복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복수 환상을 포기한다고 해서 정의를 달성하는 과제에 실패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제 생존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해자가 범죄에 책음을 지도록 그를 포위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 P315

혐오든 사랑이든, 이로써 외상을 몰아낼 수는 없다. - P316

가해자가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이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다행히도 생존자는 이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삶에서 회복되어 가는 사랑을 찾아낸다면 생존자도 치유받을 수 있다. 이 사랑이 가해자에게까지 확장될 필요는 없다. - P316

한번 경계가 침범당하고 나면 치료자는 치료를 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유지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조차 무모한 일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계를 침범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환자를 착취하는 일이 된다. 초기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 P320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신념으로, 생존자들은 말하기 시작한다. - P346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범죄는 공동체의 온전함을 방해하고, 공동체를 중대한 위험에 빠뜨렸다. 그러므로 가해자는 정의 앞에 세워져야 한다. ……수리해야 할 것은 국가 그 자체이며, 복구해야 할 것은 톱니바퀴가 어긋나 버린 공공질서이다. …… 다시 말해서, ㅇ겨야 하는 것은 원고가 아니라 법이다." - P348

완성된 회복이란 없다. 외상 사건의 영향력은 생존자의 일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퍼져 간다. - P351

지위가 높은 남서오가 지위가 낮은 여성이 집단 지도자가 되는 전통적인 지도 형태는 외상 생존자 집단에게 절대적으로 부적절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는 여전히 흔한 일이다. - P369

피해자와 가해자의 충돌에서 도덕적인 중립이란 선택 사항이 아님을 말한다. 그 모든 방관자들과 마찬가지로, 치료자 또한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한다. 피해자와 함께 서고자 하는 이들은 불가피하게 가면을 벗은 가해자의 광포에 대면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것이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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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3-05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이 책 받고 너무 기뻤어요. 곧 읽어야지~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트라우마 없이 살아가는 운좋은 사람들도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이다.˝ .. 트라우마 없이 살아가는 운좋은 사람은 아닌 저로선 꼭 읽어보고 싶어요.



다락방 2020-03-05 10:09   좋아요 0 | URL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책에서 언급된 강간,아동학대,전쟁 같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큰 사건들이 아니여도 말입니다. 물론 이 일들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도 하고요.
사례들이 많이 나와서 수시로 재경험에 시달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책을 읽은 게 좋았어요. 부디 이 책이 비연님의 마음도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0-03-05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저하게 되지만 도전할만한 책이 있는것 같아요. <페이드 포>가 그랬던 것처럼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20-03-05 14:1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은 어떻게 읽으실까요. 단발머리님의 감상도 매우 궁금합니다. 특히 읽고 써주실 글이요!
 
지상의 여자들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5
박문영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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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구주 시의 남자들이 사라진다. 아내를 때리다가, 아이를 성폭행 하려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여자들을 향한 폭력성을 드러냈을 때 그래서 여자들이 공포에 질려있던 그 순간에, 괴물같던 그 남자들은 사라져버린다. 사라지는 남자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그 남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무엇이었는지 따져본다. 이내 그들의 폭력성이 세상에 알려지고 남자들은 이제 자신 안의 분노를 다스려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자를 죽을때까지 때리던 남자들이 사라진 세상은, 그간 여자들이 살기를 원했던 그런 세상이다. 남자들이 사라지면서 빈 공간을 여자들이 채워나간다. 여자들은 이제 밤늦게 거리를 걷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얻게 되고 승진을 하게 된다. 옷차림도 자유로워진다. 길거리에서 시비를 거는 남자에게 무조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맞지 않을까 두려워하던 것도 이제 사라졌다. 해방감을 느끼고 자유로움을 느낀다. 진작에 이렇게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세상이 왔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이 사라지는 세상이라면 나 역시 원하던 바다. 그런 남자들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하나도 아쉬울 거 없다고 나 역시 계속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라짐이 알수 없는 정체에 의한 것이라면, 마냥 그들의 사라짐을 기뻐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그들의 사라짐이 없이도 여자들이 안전하게 밤거리를 걷고, 평등하게 일자리를 얻고 승진을 하며, 돌봄노동에 있어서도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일테다. 그러나 그렇게 원하던 세상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 힘의 정체를 알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남자 인간과 여자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 어떤 무언가가 끼어들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거라면, 그것은 과연 옳은 혹은 정당한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마냥 환영해야 할것인가.



박문영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세상이 된 것같아, 그래 그런 남자들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지겠지, 하며 따라가다가 어느틈에 '그런데, 그래도 될까?'를 수시로 던져준다. '외계의 빛무리'라 부르는 그것이 폭력적인 남자들을 사라지게 만든다면, 그것이 언젠가는 폭력적인 여자들을 향해서도 휘둘러지지 않을까.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정하려는 것은, 우리가 원했던 세상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인가?


그런 남자들이 사라진 세상이라고 해서 모든 여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여자들은 자신을 때렸던 남편일지언정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도한다. 해방감을 느끼는 여자들에게 그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 여자들도 있다. 이런 세상을 원했다고 환영한다는 여자들이 있고 그러면 안된다고 하는 여자들도 있다. 여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한마음으로 연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아들이 가해자가 될지언정 아들의 편을 들기도 하니까. 아들이 하는 짓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아도 침묵을 택하기도 하니까. 



여전히 딜레마다.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래, 이런 알 수 없는 힘이 남자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해, 그런데 그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이 많은 여자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맞고 움츠려있을거야, 그런 세상이기를 원한거야? 그런 세상이면 안되는 거잖아?

그렇게 이런 세상이 더 낫지 않느냐는 주장과 이런식으로 안정적인 세상이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서로 부딪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부딪친다. 



폭력적인 남자들이 사라지고 그 빈공간을 여자들이 채우는 걸로 끝맺었다면 이 소설은 그저 판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박문영은 계속 거기에 의심과 질문을 던짐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멈춰서서 '정말 그런가', '이것이 과연 옳은가'를 생각하게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도 놓지 않으려고 애썼고 혹여라도 창살에 갇힌 동물이 되는 건 아닐까도 고심했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판단이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 나온 것일텐데, 그러므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상상력 역시 마찬가지. 상상력도 내가 살아온 환경과 내가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여자작가들의 사이언스 픽션 소설을 앞으로 크게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바라던 것들이 기대이상의 이야기로 펼쳐질 것 같다.  





남편은 느억맘 소스에서 나는 생선 냄새가 역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에게 그 향취는 한국의 멸치 액젓과도 비슷했다. 남편은 자신이 고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게 싫은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탐탁잖은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꾸준히 무시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여자는 출산 직후에 더 자주 생각했다. 그러나 엎질러진 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것들을 일일이 반추하며 되돌려 놓는 작업을 하려면 아예 다시 태어나는 게 나았다. - P14

성연은 동아리방 구석에 앉아있던 희수를 회상했다. 날선 미소, 장난기 어린 눈빛이 생생했다. 20년 정도는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다. 해가 간다고 해서 관계가 반드시 성숙하는 것도 아니었다. 십년지기, 이십 년 지기. 사람들은 누군가와의 막역한 관계를 강조하고 싶을 때 이런 말을 썼지만, 사이가 볼품없고 앙상해도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었다. 어쩌면 함께 한 시간의 누추함을 덮기 위해, 내용 없는 대화를 견디기 위해 십년지기라는 표현이 필요한 지도 몰랐다.
성연은 강조할 것이 시간의 길이뿐이라면, 그게 서로를 비추는 유일한 수식이라면 관계를 단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P47

형근의 의식과 무의식에는, 자신처럼 문제 주변을 골똘히 맴도는 사람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원대한 직진성이 있었다. 형근은 눈앞에 놓인 유무형의 장해물을 세세히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그래서일까. 몸짓도 크고 가벼웠다.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었다. 성연은 그런 특질을 공유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알고 지낸 남자들 대부분이었다. - P50

"어쩌면 실종자들의 잘못을 화를 너무 투명하게 분출한 것일지도 모르죠. 이걸 약하다고 합의해봅시다. 그 약자들은 우리 사회 구조를 익히 체득하고, 통념과 위계 유지에 앞장 서 복무한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여성들이 만 년이 넘는 이 폭력을 언제까지 이해해야 할까요. 강력범죄에 의해 살해되는 전국 각지의 여성 수가 구주의 실종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남자들이 먼저 화를 냈습니다. 여자들은 스스로를 검열해왔습니다. 자아비판과 회한이 우리 자신입니다. 같이 반성하고 성찰하자고 종용하지 마십시오. 기울기가 다른 땅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지 마십시오." - P154

써 왔던 시를 태우고 싶었다. 강사 일을 관두고 싶었다. 형근과 형근의 어머니를 그만 이해하고 싶었다. 성연은 이런 사건의 피해자가 트라우마 때문에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는 예측과 우려를 벗어나고 싶었다. 유형과 증상을 뛰어넘을 수 있을 듯했다. 진단과 병명에 갇히기 싫었다. 자신이 성폭력 생존자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방치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사건은 없던 일이 되어갔다. 하지만 천막 안의 남자를 본 순간, 가격을 당했다. 사촌과 얼굴이 거의 똑같은 남자였다. - P171

느리지만 선명한 변화가 있었다. 남자가 사라진 자리에 여자가 들어갔다. 승진이 막혔던 여자들 앞에 크고 푹신한 의자가 주어졌다. 실종자가 앉던 곳을 차지하고 싶은 남자는 드물었다. 오작동이 잦던 시설은 나날이 안정적으로 복구되고 있었다. 여자들의 모임이 매일 늘어났다. - P191

"포궁이 있으면 동경 받아야 했어요. 사회는 잉태할 수 있는 존재를 존중해야 했어요. 거꾸로죠. 남자들은 여자들을 인간 아래로 뒀어요.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어요. 여자들의 관용은 강요에 가까워요. 길들여진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가진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충성과 숭배예요. 이 구도를 내리찍은 게, 우리가 목도하는 실종이에요. 이게 혁명이 아니면, 여성운동이 아니면 뭐죠?" - P271

"문제가 있으면 그렇게 지워져도 된다고? 도태되었으니 죽어도 괜찮다고?" - P197

"처음엔 좋았어요. 네, 홀가분하기도 했어요."
희수가 성연의 팔을 잡았다. 장작 불똥 몇 개가 젖은 흙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사라진 남자들 옆에는 참고 참은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아픈 여자들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젠 두려워요. 누군가 거슬리는 이들을 간편히 지워나간다는 게 점점 무서워요. 여기 계신 분들은 우리가 계속 남아있을 거라고 확신하세요?" - P259

다급할 때 입에서 나오는 이름은 보통 엄마, 아빠 순이다. 부모라는 단어의 배치와 반대다. 형제자매라는 한자어가 익숙하지만 역시 실제로 뱉는 말은 언니, 오빠다. 몸에서 먼저 튀어나오는 이름은 이상하게도 지면에서 항상 뒤로 밀린다. -작가의 말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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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1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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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글은 여전히 좋고 또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지만, 이 책으로 가장 먼저 정희진의 글을 접한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정희진에 열광할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정희진이라면 닥치고 읽어! 라고 마음먹었던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는 '여전히 좋지만 그렇게까지는 좋지 않네' 하였으니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정희진을 좋아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정희진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 열광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저마다 약한 지점이 있다. 같은 사건, 같은 이야기에 그래서 더 건드려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열 개의 사건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다가도 열한개째에서 삐끗할 수 있는데, 정희진에 대해서라면 나는 한 칠십칠개쯤 열광하며 공유하다가 칠십팔개째에서 삐끗하는 것 같더니 그 다음에는 어긋나는 지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전작 『혼자서 본 영화』에서도 영화 《무뢰한》좋아한다고 했었는데 이 책에서도 무뢰한 너무 좋다고 또 언급하길래 그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말야? 나는 20분도 못보고 '이걸 다 볼 수 있을까..' 했다. 다 보고 나면 나도 좋아지려는지 모르겠어. 시작부터 걍 싫은 영화였다... 뭐, 더 봐야 알겠지만.



예전에 강연에서 정희진 쌤은 '나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은 책으로부터 얻는다'고 하셨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니 '이 분은 그게 충분히 가능하시다!' 생각했던게, 읽는 책의 리스트도 남다를뿐더러, 좋은 책은 여러차례 반복해 읽는 거다. 이런식이라면 세상의 알아야할 모든 것들을 책으로부터 습득하는 게 가능하지 싶다.


알라딘에서야 보잘 것 없는 독서가라고 해도, 알라딘을 벗어나면 그래도 나름 책 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이 난데, 그런 내가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책들도 정희진 쌤은 엄청 읽었더라. 목민심서, 도덕경, 신약성서... 정말이지, 나 따위..하찮은 독서가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이 다진다. 나도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 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책으로부터 얻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빠샤!


최근에 한나 아렌트와 시몬 베유 읽으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방향이 잡히기도 했다. 한나 아렌트는...너무 인상적이었어 진짜. 한나 아렌트 전기 읽은 후부터 내 머릿속에서 한나 아렌트가 잠시도 떠나지를 않는다. 대단한 사람..



갑분한나아렌트..



마음, 표현도 번역도 어려운 우리말이다. 마음은 몸의 부위인데(뇌, 심장, 흉부……), 보이지 않는 의미(영혼, 마음 씀, 정신……)에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이분 논리가 문제의 근원. 마음 심(心) 자는 사람의 염통 모양을 본뜬 것이지만 실제 마음을 관장하는 기관은 뇌이고, 의미는 가슴(heart, 심장)으로 통용된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 P29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지젝이 만난 레닌-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읽어주고 싶다. 영어 원제(Revolution At The Gates)가 기가 막히다. 레닌 입문서로도 안성맞춤이다. 책 표지 문구는 왜 혁명이 인간의 영원한 신앙인지를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은 회귀가 아니라 그 안에 구현할 유토피아적 불꽃이 있다는 것을, 그가 하지 못한 일을, 그가 놓친 기회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6백 쪽에 가까운데 문장마다 가슴이 뛴다. - P50

어떤 올바름은, 필연적으로 다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올바름은 없다. ‘PC‘는 불가능한 개념이자 문제를 한 가지 원인으로 축소하는 환원주의의 산물이다. 책에 따르면, 환원론은 실천 없는 이들의 무의식적 위치 이동이다. 어차피 안 될 일, ‘올바르게 보이는‘ 주장이나 해보자는 것이다. - P51

녹색당의 당비 납부율은 전체 정당 중 최고이며 여성 당원의 비중이 가장 높다. 나는 당비만 내는 당원이지만, 녹색당은 집에서도 24시간 정치를 할 수 있는 민생 정당이다. 나는 냉장고, 화장품, 핸드폰, 드라이기, 다리미, 자동차, 샴푸, 냉난방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의류, 신발도 구입하지 않는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최대한 축소된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이런 생활 습관이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아니 아예 믿지 않는 독재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 P57

몇 달 전 거리에서 "자연의 섭리"를 외치며 "짐승도 그 짓은 안 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동성애 반대 서명운동을 하는 이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연의 질서를 지키려면 환경운동이 먼저 아닐까요." 실제로 ‘짐승도 안 하는 짓‘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성애자 남성이다. - P69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옵니다."(<루가복음> 23장 34절) 이 구절은 상대방과 말이 안 통할 때 위로가 된다. 나는 주로 남들이 ‘사소하다‘고 하는 일에 분노하는 편이라 이 말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억울하고 분할 때 "쟤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를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참았다. 대화한들, ‘가르친들‘, 설득한들 알까? 소통 불가능 상황에서 최선의 지혜는 기대를 접는 것이다. - P79

《몸의 일기》는 구구절절하다.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한 줄의 인생. 개미가 성(城)을 공략한다. 가장 급진적인 개미는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다. ‘이등 시민‘이 몸의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 문명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사회가 이들이 말하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다. 저자는 여성의 일기가 몹시 궁금하다고 했지만, 여성의 일기는 "엄마 배 속에서 죽었어요."(여아 낙태)로 시작될 것이다. - P136

흔한 대화. "환자분, 통증이 1부터 10까지로 쳤을 때 어느 정도 아프세요?" 고통을 수량화한 척도(尺度) 질문인데, 고통이 계량화될 수 있겠는가. 이 물음은 필요하지만 환자를 위한 말이 아니라 치료자를 위한 것이다. - P161

연령주의적 표현이지만 두 사람 모두 인생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젠더는 명확했다. 1948년생 여성이 1925년생 남성보다 나이듦, 죽음, 치매, 돌봄에 대한 염려와 사유가 훨씬 깊다. ‘여자의 정년‘은 생물학적 나이인 마흔, 남자의 정년은 사회적 일을 그만두는 시기다. - P174

《이야기 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여성주의 철학자인 저자 자신이 겪은, 살인 미수를 동반한 성폭력을 계기로 삼아 자아 개념을 재해석한 빼어난 책이다. 번역은 유려하지만 우리말 제목에는 약간 아쉬움이 있다. 원제는 《여진(餘震)-폭력과 자아의 재구성(Aftermath:Violence and the Remaking of a Self)》.
모든 문장이 깊고 지성이 넘친다. 그래서 치유적이다. 대개 치유를 마음의 평화나 감정적 위안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치유는 사고 방식의 근본적 변화, 인간 행동 중 가장 인지적인 과정이다. 종교든 인문학이든 일시적 ‘부흥회‘로는 치유가 불가능한 이유다. - P180

어떤 이에겐 평화로운 것이 어떤 이에겐 부정의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건의 효과는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무엇을 걱정하는가?"보다 "이 걱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효과적이다.(257쪽, 만들어진 우울증)
한국 사회가 싫어하는 인간형은 진보다 여성주의 이런 쪽(?)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문제 제기, 정확한 질문이 많은 사람도 공격적이라고 기피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모나거나 어두운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사유는 인간 본성(호모 사피엔스!). - P215

‘평화주의자‘들은 이에 반대한다. 대화와 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노를 관리하라고 권한다. 타임 아웃, 나 전달법, 분노 조절 프로그램 따위가 그것이다. ‘평화주의자‘인 내 생각은 다르다. 이 말은 분노와 무관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정의의 기본 법칙이다.
분노의 시작은 억울함이다. 물론,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문제는 "누구의 억울함인가, 정당한 억울함인가?" 이다. 분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부정의하다. 가해자의 피해의식이나 권력자의 분노는 규범이고, 약자의 억울한 감정만 분노로 간주된다. 분노를 표출해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다. ‘남성‘은 이런 의문 자체가 없다. 자기 뜻은 분노가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226

권력은 다수의 억울한 마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멘토, 치유자를 자청하는 자들을 불러(?) 고결한 가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비열한 폭력인 용서와 화해 이데올로기로 약자의 상처를 짓이기고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죄의식과 자책까지 떠넘긴다. 그래서 우아함은 가진 자의 성품이요, 흥분과 분노는 약자의 행패가 되었다. - P227

유교의 장례인 삼년상(三年喪)은 ‘好‘, 즉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 …… 일상의 질서가 무너지는 느낌에 주목하는 것. …… 상실감의 고통, 황폐한 심정, 다시 만날 수 없는 공허감을 느껴보길 촉구하는 의례가 삼년상"(63쪽, 한 칸의 사이)이다. 어미와 자식이 껴안고 있다가 한 사람이 사라졌다. 부정하고 싶은 이 상황을 실감하는 과정이 삼년상이요, 시묘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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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2-19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이 책 읽고 있는데요, 이 책으로 정희진 쌤 처음 입문하는 분들은 정희진에 그렇게까지 열광할 순 없을 거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을 때의 그 짜릿함을 기대하긴 어려운 책 같아요. ㅎㅎ
일간지에 기고했던 글들 모음이라 좀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락방 2020-02-19 14:24   좋아요 1 | URL
네 전 뭐랄까, 약간..음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흐음.. 갸웃하면서 5권까지 다 읽어말어...하고 있습니다. 예전만큼 흥분이 안되는 건 내가 변한 탓인가, 뭐 그런 생각도 좀 했고요. 킁킁.

2020-02-19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9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0-02-1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책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저는 이 분 책 아직 읽은게 없는데
다른 책부터 시작하는게 맞는건가요?

다락방 2020-02-19 15:42   좋아요 1 | URL
저는 정희진 쌤이라면 일단 [페미니즘의 도전]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책이 일간지 짧은 칼럼을 모은 책이라 읽기에 더 수월할 것 같긴 합니다. 시리즈로 5권까지 나온다고 하니 일단 이 책 1권만 사서 먼저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족스러우시다면 이 책 시리즈로 다 읽으시면 될 것 같고요, 뭔가 살짝 부족한데 싶으면 그 때 [페미니즘의 도전] 이나 [정희진처럼 읽기]로 가시면 될듯 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0-02-19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에 열광하는 사람으로서 글에 공감합니다. ^^
전 근데 한나 아렌트 생각에는 쫌... ㅠ

다락방 2020-02-20 07:55   좋아요 1 | URL
저는 얼마전에 한나 아렌트 전기를 읽고 완전 반했어요! 결국 스승보다 더 유명하고 더 큰 교수가 되었다는 지점이 제일 좋았고요. ㅎㅎ
한나 아렌트 생각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나, 시몬베유]를 읽으셔도 좋을것 같아요. 거기서 시몬 베유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비판하거든요. 아마 시몬 베유쪽이 더 맞지 않으실까, 짐작해봅니다.

그나저나 정희진 선생님 이 책은 5권까지 있다는데 저는 다 살지 말지 망설이게 되네요..

단발머리 2020-02-22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지면의 칼럼을 모은 글이라서 전 한겨레 신문에서 매주 읽었던 글 중 일부가 있더라구요.
전 다시 읽어도 좋아요. 아직은 하트뿅뿅!

다락방 2020-02-23 12:11   좋아요 0 | URL
그동안엔 무조건 정희진이라면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그 마음에서는 조금 사그라들긴 했어요. 그렇지만 정희진의 책이 나온다면 여전히 흥분하고 궁금해할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강연에 갈 때마다 반드시 놀랐던 순간들을 기억해요. 와 진짜 대단하다 이렇게 또 내 생각을 열게 해주셨네, 하면서요. 라라진이 말했던 것처럼 저는 이제 정희진 선생님과 정이 들어버린 것 같아요. 물론 이 정은 선생님 쪽에서는 알지 못하는 저 혼자만의 정이지만요... 후훗.

마태우스 2020-03-0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희진샘 왕팬이고 가장 존경하는 분 1위긴 하지만, 글이 제겐 쉽지 않더라고요. 그냥 송강정철의 후손이다, 정도만 기억에 남아요.

다락방 2020-03-02 08:00   좋아요 0 | URL
오. 정희진샘이 송강정철의 후손인가요? 몰랐어요. ㅎㅎ
저는 정희진샘 글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나온다면 계속 읽고 싶습니다. 벌써 몇년전인가요, 정희진샘 강연을 마태우스님과 함께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련...

마태우스 2020-03-04 05:07   좋아요 0 | URL
아 네.. 그 책에 그 말이 나오더라고요 ^^ 맞아요 다락방님과 정희진샘 강의 같이 들었죠 진짜 아련...
 
에티오피아 구지 모모라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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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좋아하는 여동생에게 홀빈 상태로 보내주었다. 원래 에티오피아 원두가 산미가 좀 있다는데, 식을수록 그게 더 강해진다고. 가볍고 산뜻하지만 지난번에 선물해준 동백이 더 좋다고 한다.


커피 직접 분쇄하고 핸드드립으로 내려먹는 제엄마 때문인지 초등학생인 조카도 커피 전문가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블렌딩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ㅋㅋㅋㅋ 아니 쪼꼬만게 커피 마시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블렌딩인지 싱글인지를 아는거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카는 커피박사. 이 아이는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까? 너무 짜릿해!




- 이상 커피 리뷰가 아니라 조카자랑 이었습니다. 엣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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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20-02-12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조카분이 향을 맡고 블렌딩 여부를 맞추다니 와....

다락방 2020-02-12 16:39   좋아요 1 | URL
저도 모르는 걸 초등학생이 파악했네요. 진짜 신기했어요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2-12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구지 모모라가 좋고 동백꽃은 별로야 했는데 동생 분이랑 완전 정반대 취향이에요. 향미 전문가 조카님 귀엽네요.ㅎㅎㅎ

다락방 2020-02-12 16:40   좋아요 1 | URL
저는 둘다 안마셔서 모르지만 사실 마셨어도 딱히 잘 몰랐을 것 같아요. 저는 심하게 맛없는 커피에 대해서만 맛없다... 요정도만 가능합니다. ㅋㅋㅋㅋㅋ

프레이야 2020-02-12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에헴 조카자랑하는 깜찍한 락방님

다락방 2020-02-13 09: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전 아무래도 자랑질을 숨길 수가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겸손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