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45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 갈무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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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읽어왔던 여성주의 책들이 이 한권안에서 반복된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 세상이 여성을 어떻게 취급해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책. 1986년에 나온 책인데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것은 씁쓸하지 않은가. 이미 그 당시에 마리아 미즈가 분석해낸 문제점들이 여전히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결국 여성이 처한 상황의 문제다. 가사노동이 보이지 않는 걸 얘기하고, 페미사이드가 세계 곳겟에 만연한 걸 얘기한다. 그 오래전 마녀사냥에서부터 남성은 여성을 이용하여 자본을 축적하고 노동을 시키기 위해 일어났던 일들과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일들. 아니, 가부장제랑 자본주의 얘기할 줄 알았는데 왜 페미사이드가 나와? 이 모든 건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다 연결되어 있어.



그간 숱하게 읽어왔던 것들의 반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짜릿하다. 게다가 이미 많은 젊은 여성들이 깨닫고 주장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마리아 미즈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뿌리째 흔들기 위해서 길게 보고 가야한다고 제시한 방법중에 하나가 바로 '소비에 대한 자율권'이다. 여성은 중요한 소비 주체이고 소비의 기둥이니 이 소비를 멈춤으로써 바로 시작할 수 있고 또 자본주의를 작동할 수 없게 할 수 있다는 것. 너무 짜릿하지 않은가. 바로 위에도 썼지만 마리아 미즈는 이것이 단시일내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소비하고 어떤 것을 소비하지 않을 지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려면, 그 상품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제3세계의 여성들을 착취함으로써 내게온 게 아닌가, 내가 잘 살게 됨으로써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더 못살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사치품의 보이콧을 얘기하면서 그리고 의류나 화장품에 대한 보이콧도 얘기한다. 나는 특히 이 부분이 짜릿했다.


페미니스트들이 탈코르셋을 주장했을 때, 그래서 화장품을 부수면서 그것을 인증했을 때 얼마나 많은 비아냥을 들었는지는 수시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화장하는 게 탈코르셋이야'라는 주장 역시 나왔던 것도 알고 있다. 아름답게 보이려는 건 사람의 본능이지, 라는 말과 함께 '아름답게 보일 필요 없으니 꾸미지 말고 탈코르셋하자'는 주장을 얼마나 많이 까내렸는가. 그러나 누군가에겐 화장하지 않는게 탈코르셋이라면 누군가에겐 화장하는 게 탈코르셋이야, 라는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음을, 그것이 결국은 여성을 자유롭게 만드는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1986년의 '마리아 미즈'도 얘기하고 있다. 마리아 미즈는 '여성이 화작품과 새로운 섹시한 패션 유행을 공개적으로 보이콧한다면(p.459)'성차별적인 이미지와 여성을 규격화된 모델에 맞추려는 사회를 성공적으로 방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자율권은 소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렵겠지만 생산에 대한 자율권을 이내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과 몸에 대한 자율성을 요구한다. 당연히 이루어야 하는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오지 못했던것처럼 수많은 방해공작들이 있을 것이고 또 단시일내에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여성이 여성의 소비,생산, 삶과 몸에 대한 자율성을 찾는 것이 함께 가야할 길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일.




여성주의책을 그간 계속 읽어온 사람이라면, 다른 책들에서 했던 얘기들이 이 책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부장제에 대해 읽었다면 여기에 그것이 있고, 자본주의에 대해 읽었다면 이 책에 그 내용이 있다. 우리가 강간과 페미사이드에 대해 읽었던 것들이 이 안에 있고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해 읽었던 것, 여성이 왜그렇게 오래 힘들게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읽었던 것, 우리가 왜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지를 읽었던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우리가 그간 읽어왔던 것들은 결국 다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이거봐, 이렇게 연결되어 있잖아' 하고 한 권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도 짜릿하게 제시해주고.



결론을 읽는 순간 짜릿해져서 좋았다. 그러나 이 책에 자꾸 튀어나오는 오타는 옥의 티다. 개정판으로 알고 있는데 개정판으로 내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어보지 않았단 말인가. 갈무리 출판사는 다시 읽으면서 오타들 잡아내기를 바라고, 그리고 최근의 개정판에는 그 누구냐, 《혁명의 영점》, 《캘리번과 마녀》의 저자 '실비아 페데리치'의 서문도 추가되었다는데, 그걸 좀 가져와서 번역해주고 개정판 다시 내주길 바란다. 물론 이미 서문 너무 많지만 많은 거에 페데리치 꺼 더해도 나쁘지 않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율권을 갖지 못한 여성은 자신에게 강요된 것을 자발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 밖에는 심리적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인간으로서 자기존엄을 모두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이들과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가장 깊은 이유이며, 강간당했을 때, 자신의 ‘명예‘와 가족의 명예가 침해당했다는 인식을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 P353

강간은 기존의 계급과 기존의 남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다. 사실 일어나는 투쟁은, 유력한 남성과 무력한 남성 사이의 투쟁이다. 여성은 이 투쟁에서 유력한 남성의 남성다움, 그들의 힘을 증명하기 위한 대상으로 사용된다. - P358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인 노동관계를 통해 여성 노동을 갈취하는 것은, 따라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인 셈이다. 폭력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지,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 축적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가부장적 남녀관계를 이용하고, 강화시키고, 심지어 발명해내야 했다. 세계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임금 노동자,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면, 이윤을 착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3세계에서부터 제1세계까지 가정주부, 노동자, 농민, 창녀 등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점이다. - P363

현대 기술을 통해 주간, 일간 혹은 연간 노동시간이 줄어들어도 남성은 가사노동을 분담하지 않는다. - P444

이런 해방의 과정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남성이 같은 방향으로 운동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가부장적 관계의 울타리를 깨고 나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남성의 운동은 시혜적인 온정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간적 존엄과 존중을 되찾으려는 갈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기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겠는가? - P454

우리는 이 체제에 대한 우리의 충성과 공모를 당장 거부하기 시작해야 한다. 여성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희생자일 뿐 아니라, 다양한 수준에서, 질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이 체제의 협력자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 세계 중산층 여성과 산업화된 국가의 백인 여성에게 특히 그러하다. 우리의 몸과 삶 전반에 대한 자율권을 다시 획득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가부장제에 대한 이런 공모를 거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P457

페미니스트 소비자해방운동은 이런 눈먼 상태에서 벗어나 눈을 뜨는 것에서, 상품의 실체를 보는 것에서, 상품 속에 있는 여성, 자연, 식민지에 대한 착취를 재발견하는 것에서, 그리고 우리를 말 그대로 여성,남성,동물,식물,지구 등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시장관계를 진정한 인간적 관계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는 추상적인 상품 뒤에 있는 구체적인 사람을 재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어떤 상품이 우리 식탁이나 우리 몸에 닿기까지 어떤 길을 거치는지를 추적하다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많은 경우 저개발 국가에 사는 가난한 남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 P462

서구 노동계급이 생산 결정들, 예를 들면 생산의 자동화, 무기생산, 위험한 화학물질과 사치품 생산등을 받아들인 것은 정말 어리석다. 이를 받아들인 것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진보라는 추상적 생각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전략으로는 일자리를 유지할 수도 없고, 파괴적인 생산을 피할 수도 없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남성 노동자는 ‘식구를 먹여 살려야‘하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곤 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핑계다. 왜냐하면 여성이 남성만큼 가족을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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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3-27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록달록 무수한 플래그가 멋집니다.

다락방 2020-03-27 12:14   좋아요 1 | URL
흑백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책상 위에 있던 칼라를 가져다 썼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반유행열반인 2020-03-27 13:06   좋아요 0 | URL
흑백이 조금 더 책표지에 어울리네요. 전 책에 저런 멋진 걸 붙여본 적이 없는...그러니 읽고 나면 남는 게 없고...

다락방 2020-03-27 15:19   좋아요 1 | URL
정리 잘해서 리뷰 잘 쓰시잖아요. 독후 활동으로는 리뷰 만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리뷰 쓰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니까요. 계속 읽고 쓰세요, 반유행열반인님!

수이 2020-03-27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히 올해 최고의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듯 해요, 다락방님. 아직 2020년은 많이 남아있지만요.

다락방 2020-03-28 15:3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우리는 남은 2020년에 더 좋은 책을 읽게 될지도 모릅니다. 힘내서 같이 읽어요, 수연님!
같이 읽기로 완독한 첫 책이 수연님께 강한 인상을 주어서 저는 너무나 뿌듯합니다. 하핫.

공쟝쟝 2020-04-01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제 꿈벅꿈벅 졸며 인도의 지참금 살해를 읽다 잠들어서 완전 악몽 꿨어요. 암담함을 지나 저자가 초대하는 실천의 길로 어서 돌입하고 싶습니다 빠샤!
 
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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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로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8월에 태어나기를, 우리 부모님에게서 태어나기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내 선택과는 아무 상관없이 내가 세상에 태어났고 자라는동안 여자라서, 내가 태어난 생일이 있어서, 우리 부모님의 딸이어서, 대한민국 국민이어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에 맞닥뜨렸다. 어떤 것들을 슬픔이었고 어떤 것들은 기쁨이었으며 어떤 것들은 고통이었고 어떤 것들은 행복이었다. 고통과 행복 혹은 기쁨과 슬픔앞에 놓일 때면 '내가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같은 생각들을 수도없이 해보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고 해서 잠시라도 다른 사람으로 살아볼 수는 없었다. 삶은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안줌' 역시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다 가지고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태어나보니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가 모두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장소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사람들, 그런 '히즈라'들이 머무르는 장소 '콰브가'에, 안줌 역시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가난하게 태어나기를 원한 것도 아니었고, 남성이며 동시에 여성으로 태어나길 원한 것도 아니었고, 인도에 태어나길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안줌은 지금에 와서 다른 곳에 태어날 수도, 다른 모습으로도 태어날 순 없으니까. 삶은, 정말이지, 그런 게 아니니까.



2002년,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인 《미들섹스》를 출간했다. 책에서 남,녀의 성기 모두를 가진 주인공은 자신의 성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고, 방황하다가, 써커스단에 들어가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며 돈을 벌기도 한다.

'아룬다티 로이'가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썼다니, 나는 이 책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히즈라로 태어난 고통, 히즈라인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고통, 그리고 그 히즈라가 자라면서 받게 되는 차별당하는 삶까지. 그런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채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의 성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며 몇 번의 사랑을 할 것이고, 어느 순간에는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주인공이 그랬듯이, 자신의 저주받은 몸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최종선택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한거다. 《미들섹스》를 읽을 때는 그저 '아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구나'를 생각하며 주인공의 고통을 이해하려 했다면, 지금 이 책을 읽으려고 책을 펼치면서는, '그러나 아룬다티 로이가 히즈라가 아니면서 히즈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 고민을 혼자 했다. 당사자성을 가지지 않은 채로 이야기를 해도 되는걸까.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괜찮은것인가, 하는 생각. 그러다가 퍼뜩, 그러나 당사자성이 없다는 것은 나의 편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히즈라'인 안줌의 이야기는 백페이지도 되지 않을 때 모두 나온다.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기 때문에 학교 가기를 포기하는 점, 변성기를 맞고, 자신이 선택하고 싶은 건 '여성'으로서의 삶이고, 콰브가에 들어가고, 그리고 마흔한 살이 되어 '엄마'가 되고 싶고, 엄마가 되고 싶을 때 마침, '자이나브'라는 아기를 입양하게 되고, 그리고 마흔 여섯에 정든 콰브가에서 떠나기까지. 이 이야기가 백페이기도 되기 전에 모두 나오는거다. 아직 뒤에 무수히 많은 페이지가 남았는데,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안줌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렇게 훅- 지나가버린 거지?




그러니까 이 짧다면 짧은 페이지안에서 안줌은 '개인'을 산다. 히즈라로 태어난 개인, 여성이 되길 선택해 성전환 수술을 받는 개인, 아이를 입양하고 엄마가 되는 개인, 그리고 상처입고 콰브가를 떠나는 개인의 이야기. 그런 안줌 개인의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자, 이제는 안줌이 살고 있는 나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안줌은 안줌 개인이되 동시에 인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인도의 흐름 속에서 안줌의 생활 역시 그 흐름과 뒤섞일 수밖에 없다. 안줌은 생각지도 못하게 '구자라트 폭동'의 한가운데에서 친구의 죽음을 맞게된다. 그건 안줌이 생각해본 적도 없는 작별이었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폭력의 현장이었다. 이 일은 안줌의 생각을, 생활을 바꾸게 된다. 안줌은 콰브가에서 나와 무덤가로 간다. 그곳에서 폐인처럼 살면서 자신처럼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하나씩 받아들이고,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그들과 함께 이제는 죽어서도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장례식장을 만든다. 살아서 가난한 사람들과 죽어서 가난한 사람들, 아니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과 가난하게 죽는 사람들을 위한 파라다이스, '잔나트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거다.




이야기는, 결국 잔나트 게스트하우스에 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몫이다. 그들이 겪은 삶은 살아서도 고통이었고 죽어서도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부패한 정부를 비롯하여, 탄광때문에 밀려나고, 가스누출에 희생된 사람들, 집을 잃고 쫓겨나고, 종교 때문에 박해받고, 일용노동자로 일하다 다치고, 부러지고, 맞고, 묶이고, 납치당하고, 지진의 피해를 입고, 강간당하고, 눈이 멀고, 폭탄이 터지고, 물밑으로 가라앉고, 사생아를 낳고, 시위를 하고 맞서지만 응답받지 못하는 사람들. 부모님의 죽음을, 아내의 죽음을, 아이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사람들. 울부짖어도 바뀌지 않아 절망하는 사람들. 마을 사람들에게, 경찰에게, 군인에게 희생되어 죽어가는 사람들. 헤어지려는 아내에게는 따귀 몇 대를 날려주라고 충고하는 친구, 친구의 충고대로 아내의 따귀를 때리는 친구. 그들이 사는 인도는 사람들이 죽어야 사는 곳이었고, 때로 두 번 죽어야 하는 곳이었다. 시체를 만들고, 시체를 보고, 시체를 발견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는 거기에서 개인으로 살지만, 그러나 고통받는 개인은 고통받는 나라를 만들고, 고통받는 나라는 고통받는 개인을 만든다. 엉망인 개인과 엉망인 나라. 죽음이 삶이 되는 현장.




여기에서 저기로 그리고 저기에서 거기로 가도 머무를 곳은 없었다. 반드시 누군가가 죽었고, 죽여야했고 아니면 내가 죽었다. 도망쳐야 했고 숨어야 했고 감춰야 했고 속여야 했는데 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삶의 의지를 다질까. 무엇이 이들을 살게 할까. 여기에서 폭력을 만나거나 저기에서 폭발을 만나는데, 여기에서 폭도들을 만나거나 저기에서 군인들을 만나는데, 어디로 가야 안전할까. 분쟁이 없는 곳엔 전쟁이 있었고, 전쟁이 없는 곳엔 테러가 있었고 테러가 없는 곳엔 계급이 있었다. 가난이 있었고 더 큰 가난이 있었고, 더 더 큰 가난이 있었고, 그리고 부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상처와 고통과 복수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가난해서 힘들었고, 불가촉천민이어서 힘들었고, 두개의 성을 한꺼번에 가진 몸이라서 힘들었고, 사생아로 태어나서 힘들었는데, 그렇게 나만의 상처만으로는 끝나는 게 아니라고, 살고 싶다면 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삶이 말해주고 있었다. 너가 태어나 고통이니? 사는 건 더 고통이야.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사랑하며 사는게 가능할 수 있을까?



안줌은 18세 생일에 꿈속에서 오르가즘을 겪었던 것이 자기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오르가즘이다. 틸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는 없없다. 가슴속에 사랑을 품었으되 그 사랑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들에게 사치였다.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삶,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삶. 그러나 그들은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랑은 포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인지도 몰랐다.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그저 바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각자의 상처와 또 복수를 끌어안고 그들은 결국 한 데 모여 버려진 아기 '미스 제빈 2세'의 엄마가 되어주고 또 엄마가 되어주고 그리고 그 아기에게 최상의 장소를 제공하고자 한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으나 모두가 사랑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 숱한 폭력과 희생, 무의미한 죽음의 기록들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낯선 용어들로 가득차 힘들었다. 처음 보는 단어는 누군가의 이름이기도 했고, 직업이기도 했고, 직함이기도 했고, 장소이기도 했다. 게다가 인도에서 그들이 겪었던 역사적 사건들 역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었기에 수차례 컴퓨터 앞에 앉아 혹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야 했다. 카슈미르 분쟁은 도대체 뭐야, 구자라트 폭동은 또 뭐야. 이 사람들 왜이렇게 많이 싸우고 죽인거야. 이 모든 것들을 나는 기억하며 읽을 수가 없어서 결국 이면지를 반으로 접어 메모하기 시작했다.





반으로 접힌 메모지는 책을 읽어갈수록 꽉 채워졌다.




소설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자세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연달아 등장하는 낯선 단어들 앞에 무릎 꿇었다.


게다가 이야기의 흐름은 어떻고.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미스 제빈 2세를 얘기하면서 갑자기 미스 제빈 1세가 언급이 되면, 아 1세가 어디에서 나왔지? 내가 놓쳤나? 앞장을 몇 장 뒤적여야 했다. 그러나 미스 제빈 1세에 대해서는 그 뒤에 나오는 거다.

자, 이 이야기가 왜 이렇게 됐냐면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야, 로 과거를 되짚는 식. 몇 번이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그 때마다 나는 번번이 내가 뭘 놓친건 아닌지, 내가 제대로 읽은 게 아닌지, 혹시 내가 메모를 해둔 것에 있는지, 책장을 되넘기거나 메모를 살펴야 했던 거다.


책의 표지를 넘기고 책장을 한장씩 넘기면서 책장이 휙휙 넘어가고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게 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결코 한 번에 다 읽어낼 수 없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읽기로 선택한 사람이라면 최대한 집중해야 할것이며 다른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내가 미리 알려준다. 그리고 나처럼 메모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 읽는 순간에는 '음, 이건 기억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해서 메모해두지 않았던 단어중에 '아자디'가 있다. 이게 뒤로 갈수록 자주 나오는거다. 심지어 사람들이 아자디, 아자디 함께 외치기도 한다. 그런데 내 메모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 단어가 없어. 나는 다시 책장을 되돌린다. 그리고 한참 앞에서 발견한다. 아자디는 '자유 혹은 독립'이란 뜻을 가진 단어였다.




여러가지로 어려운 책읽기었으므로 결코 즐겁다고 말할 수는 없었는데, <10장 지복의 성자> 시작부분부터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10장에서는 모두가 만나 모두가 함께하는 삶이 펼쳐지니까.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었다. 똑똑한 여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는 여자, 재회 그리고 사랑까지. 기쁨은 슬픔 뒤에 오고 희망은 절망 뒤에 오는 거라면, 이 책은 1장부터 9장 뒤에 10장이 온다.



우리는 개인으로 살아가며 자신만의 역사를 만든다.

다른 사람과 사랑하며 그 사람과 나만의 역사를 함께 만든다.

이런 우리가 모여서 역사속의 일부가 된다.


지복의 성자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아프타브는 그 여자처럼 되고 싶었다.
그는 투르크만 게이트까지 여자를 따라가서 그녀가 안쪽으로 사라진 푸른 문 밖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보통 여자라면 그런 차림으로 샤자하나바드의 거리를 활보할 수 없었다. 샤자하나바드의 보통 여자들을 부르카를 입거나 손과 발을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과 머리를 가리고 다녔다. 아프타브가 따라간 여자가 그런 차림(밝은색 립스틱을 칠하고 금색 하이힐을 신고 반짝이는 초록색 새틴 살와르 카미즈를 입은)으로 그렇게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 P33

안줌은 쾌락을 주는 자로서는 노련한 기교를 발휘하여 큰 인기를 얻었지만, 붉은 디스코 사리를 입었을 때 맛보았던 것이 그녀의 생애 마지막 오르가슴이었다. - P47

안줌은 자신이 ‘학살자들의 행운‘일 뿐임을 결코 잊지 않았다. 남은 생애 동안, 심지어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조차, 그녀와 ‘남은 생애‘의 관계는 늘 불안정하고 무모했다. - P96

이런 따분한 소견을 말해도 용서가 된다면, 결국 영원히 실현되지 못할 공연을 위해 연습하는 것, 어쩌면 그게 인생이 아닐까? 혹은 인생 대부분의 결말이 그런 식이 아닐까? - P202

틸로는 건축학부 3학년 학생이었고, 세트와 조명 디자인을 맡았다. 그녀는 우리에게 자신을 틸로타마라고 소개했다. 그녀를 처음본 순간, 나의 일부가 내 몸에서 걸어나가 그녀를 감쌌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상태로 남아 있다. - P203

이제 과거를 돌아보며, 나가는 자신이 오랜 세월 잠재의식 속에 틸로가 사막을 지나는 낙타처럼 그저 자신의 삶을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언젠가는 그녀가 분명 자신을 떠날 거라는 두려움을 품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 P310

무사와 비스킷을 든 사람이 뒤에서 나타나기 전부터 금속 쟁반에 놓인 찻잔들이 희미하게 달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사와 비스킷을 가져온 사람은 즉시 서로를 알아보았으나, 그들의 표정은 수동적이고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암리크 싱은 그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방안의 공기가 동이 났다. 호흡이 불가능해졌다. 호흡을 하는 것처럼 가장해야만 했다. - P447

틸로와 무사는 연인인 동시에 前 연인, 애인인 동시에 전 애인, 남매인 동시에 전 남매, 급우인 동시에 전 급우였기에 제 3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런 기묘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너무도 특이한 방식으로 서로를 신뢰했기에, 설령 그것 때문에 자신이 상처를 받는다 하더라도, 상대가 사랑한 사람은 그 누구라도 사랑할 가치가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마음의 문제에서는 사실상 숲처럼 빽빽한 안전망을 갖고 있었다. - P483

여전히 무사는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몇 년동안 품고 다니던 끊임없는 두려움-갑작스레 무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될 것에 대한-의 무게가 얼마간 가벼워졌다. 그건 그를 덜 사랑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묘지의 천사들이 만신창이가 된 피수호자들을 보살피며, 두 세계 사이의 문을 (불법적으로, 아주 조금만)열어두어 이승의 영혼들과 이승을 떠난 영혼들이 같은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처럼 어울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삶은 덜 확정적인 것이 되고 죽음 또한 덜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왠지 모든 게 조금은 견디기가 쉬워졌다. - P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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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19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3-1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룬다티의 책을 읽고 싶지만 저 역시 부제가 주는 느낌 때문에 아직까지 미루고만 있었어요.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진 사람의 이야기... 로만 예상했거든요. 다락방님 글 읽으니 읽고 싶은데 마지막에 공부 메모 사진 보고 나니... 맘이 복잡해지네요@@

다락방 2020-03-19 17:0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이 미루신 이유가 제가 갈등했던 이유와 아마도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또 거기에 있어서 좀 복잡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등장인물이 중심인물 ‘안줌‘이기는 하지만, 안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책에서는 다양한 개인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인용문을 옮겨 놓긴 했지만, 단발머리님, 단발머리님이 다크룸 읽다가 저에게 일러주었던 부분이 이 책에서도 나온답니다.


아프타브는 그 여자처럼 되고 싶었다.
그는 투르크만 게이트까지 여자를 따라가서 그녀가 안쪽으로 사라진 푸른 문 밖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보통 여자라면 그런 차림으로 샤자하나바드의 거리를 활보할 수 없었다. 샤자하나바드의 보통 여자들을 부르카를 입거나 손과 발을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과 머리를 가리고 다녔다. 아프타브가 따라간 여자가 그런 차림(밝은색 립스틱을 칠하고 금색 하이힐을 신고 반짝이는 초록색 새틴 살와르 카미즈를 입은)으로 그렇게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P33

잠자냥 2020-03-1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아프타브, 그러니까 안줌에 대해서 다락방 님은 좀 더 다른 할 말이 있을 것 같았어요. ㅎㅎ

다락방 2020-03-20 08:25   좋아요 1 | URL
저도 어쩐지 그럴 것 같아서 이 책을 읽는데 엄청 망설인 거였거든요. 그런데 아룬다티 로이는 아주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로 하여금 그런 글을 안쓸 수 있도록(?) 중심인물이긴 하되 어쨌든 ‘이런 개인‘에 대해 쓰는 것에서 멈추더라고요. 저에겐 다행한 일이었어요. 하하.

얼음장수 2020-03-1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정말이지 그런 게 아니니까!
드라마에 나온 유치한 대사였지만,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데 다른 사람의 인정은 필요하지 않다‘도 떠오르고.
메모를 보니까 와우, 꼭 문학 전공하는 대학원생 같아요.

다락방 2020-03-20 08:28   좋아요 0 | URL
어휴.. 소설 읽는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 소설은 그럴 일이 별로 없지만 이게 외국소설 읽다보면 이름 헷갈릴 때도 엄청 많잖아요. 일본 소설도 엄청 헷갈려서 ‘어, 얘 아까 죽지 않았나? 왜 살아있지?‘ 라고 해서 뒤로 넘겨보면 한글자 다르고.. 러시아 소설은 애칭이 겁나 많고... 그런데 인도 소설은 이름 뿐만이 아니라 직업도 그렇고 호칭도 그렇고 뭐가 그렇게 낯선 단어가 많은지 따라가기가 벅차더라고요. 휴... 이젠 메모해가며 읽어야 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콜라보에디션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그녀는 '우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대신 싸워달라고 남자 형제에게 부탁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우리 나라는 온 역사를 통틀어 나를 노예로 취급해 왔다. 우리 나라는 나를 교육시켜 주지 않았고, 그 자산의 조그마한 몫도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는 내가 외국인과 결혼하면 더 이상 '우리' 나라가 아니다. '우리' 나라는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을 나에게 허용하지 않으며, 나를 보호하도록 매년 막대한 금액을 다른 사람에게 지급하도록 강요하고, 그러면서도 나를 보호할 능력이 없어서 벽 위에 공습경보를 써놓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는 '우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고 주장한다면, 이성적으로 진지하게 이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당신은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성적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내가 공유하지 못했고 아마도 공유하지 못할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지, 나의 본능을 충족시키거나 나 자신 또는 나의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아웃사이더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사실, 여성으로서 나에게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나는 어떤 나라도 원하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나의 나라는 전 세계이다." -<3기니> P.348




20여년 전쯤에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오랜시간에 걸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의 내용은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하게 동성애 코드에 대한 느낌이 남아있다. 그리고 매우 지루하게 읽었던 기억. 그 기억 때문에 <자기만의 방>으로 너무나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를 여태 읽지 않고 미뤄두었다.


그렇게 뒤늦게 만난 버지니아 울프는, 익히 듣고 보아 알고 있는 유명한 문장,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를 <자기만의 방>에서 피력하는데, 자신이 아버지나 남편에게 혹은 다른 누구에게도 돈을 구걸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자기에게 꼬박꼬박 정기적인 수입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힌다. 숙모님의 유산으로 고정된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에, 아부하거나 아양을 떨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는 거다.


이 명징하고 놀라운 통찰은, 이 책의 바로 뒤에 실린 <3기니>에서 더 날카로워지고, 더 분석적이 되고, 더 뚜렷해지며, 더 강해진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고,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 '교육받은 남성의 딸'이 가질 수 없었던 것,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충분한 자료를 조사해 근거를 댄다. 그녀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어 있었다는 것, 이제야 비로소 '조금' 열렸다는 것, 그러나 그것조차도 학위로 인정해주는 건 모두의 반대로 인해 무산되고, 그래서 전문직을 가질 수 없다는 것까지. 교육받은 남성의 아들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서 돈을 쌓아갈 때 여자들은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일절 임금이 주어지질 않는다. 결혼해서 남편이 버는 돈은 어차피 아내랑 같이 쓰는 돈이다, 남편의 돈이 아내의 돈이다, 라는 허울좋은 명목은 그 현금의 실체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무가치한 것이 된다. 만약 그 절반이 정말 아내의 돈이라면,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아내의 손에 쥐어줘야 할 것이다.



남자들이 신문기자가 될 때, 법관이 될 때, 종교인이 될 때, 증권거래인이 될 때, 그래서 계속해서 돈을 벌어들이고 쌓고 죽을 때까지 돈을 남길 때, 여자들은 가난하다가 가난하다가 가난하다가, 돈 한푼 없이 죽음을 맞는다. 이에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똑같이 주어야 하고, 직업의 기회 역시 똑같이 주어야 하며, 그 임금 역시 똑같이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금없는 노동인 아내와 엄마 그리고 딸에 머물러 있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때 돈을 남기는 것이 이미 죽은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내가 돈을 남길 수 있다는 것과 남길 돈이 없다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자, 여자들의 교육을 얼마나 반대해왔는지, 여자들에게 허락한 교육비는 남자들에게 허락된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내가 보여줄게 잘 봐봐. 종교가 여자를 얼마나 박해했는지, 여자가 들어오기를 얼마나 막고 있는지, 그러면서 자기들은 얼마나 많을 가져가고 있는지 잘 봐. 여자들이 직업을 좀 가지려고 하면 남자들이 어떻게 반대했는지 잘 봐, 내가 알려줄게. 니네가 여자들을 얼마나 억압했는지 자 봐, 내가 알려줄게. 버지니아 울프는 전기문을 비롯한 숱한 책들과 신문기사들을 가져오면서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댄다. 도대체 이 책들을 언제 다 읽은걸까, 그리고 얼마나 읽은 걸까. 그녀가 <3기니>를 쓰기 위해 벼르고 찾은 것일까, 아니면 책을 읽을 때마다 밑줄 긋고 메모했던 것일까. 이 논리적인 글을 읽노라니 당연히 갖게 되는 의문인데, 책 말미의 <작품해설>을 보면 3기니를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준비한 시간이 10년이라고 되어 있었다.



『3기니』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텍스트이고 이 에세이에서 표명된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 때문에 페미니스트 비평가들도 불편함을 드러내곤 했지만, 울프에게는 진지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 십여 년간 울프는 역사, 회상록, 전기, 이론서, 보고서, 일간신문 등을 광범위하게 읽으며 부단히 탐구했고, 그 연구의 결과가 바로 이 에세이로 집약된 것이다. -이미애, <작품해설> 中




버지니아 울프, 하면 <자기만의 방>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이 책 한권에 실린 <자기만의 방>과 <3기니>를 연달아 읽으니, <3기니>가 훨씬 좋았다. 왜 다들 자기만의 방 얘기를 하지, 여기 이렇게 놀라운 3기니가 있는데? 게다가 위에 인용한 문장에 있는, '여성으로서 나에게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를 읽을 때는 정말이지 소름이 쫙 돋았다.


아, 정말 놀랍지 않은가. 1882년에 태어난 여성이, 여성에게 교육이 허락된지 20년도 안된 즈음에 이런 글을 써냈다는 것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고, 고전이 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앞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책장도 따로 한 칸 마련해야겠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도 하나씩 하나씩 다 읽어보겠어. <3기니>를 읽는 건 매우 짜릿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3기니>는 정말이지, 강력하게 추천한다.



마침 <자기만의 방>으로 센스있는 사진을 찍어보았기에 거침없이 올려본다.


(자기만의 방 &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방 & 쓰리 에이스)






덧. 아래 인용문은 모두 <3기니>에서.



삼 년의 세월이란 편지에 답장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기에는 긴 시간입니다. - P175

우선,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리듯이, 편지를 받을 사람의 스케치를 그려보도록 합시다. 편지의 저편에서 숨 쉬고 있는 따뜻한 사람이 없다면 편지란 무가치한 것이니까요. - P176

언제부터 교육받은 남성이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여성의 견해를 물어보았습니까? - P176

양성은 여러 가지 본능들을 다소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여성이 아닌 남성의 습관이었다는 것입니다. 타고난 습성이든 우연히 습득된 것이든 이러한 차이는 법과 관행으로 더욱 발전되어 왔습니다. 역사상 인간이 여성의 소총에 맞아 쓰러진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새와 짐승을 살해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었지요. 우리가 공유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 P181

이제 교육받은 남성의 딸은 이전에 지녔던 영향력과는 다른 영향력을 수중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것으 ㄴ위대한 레이데 세이렌의 영향력이 아닙니다.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투표권이 없었을 때 발휘했던 영향력도 아니지요. 또한 투표권은 있었지만 생계비를 벌 수 있는 권리가 없었을 때 발휘했던 영향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릅니다. 매력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영향력이기 때문입니다. 돈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영향력이기 때문이지요. 여성은 더 이상 아버지나 남자 형제에게서 돈을 얻기 위해 애교를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이 그녀에게 재정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견해를 표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종종 무의식적으로 상황에 따라 경탄과 혐오감을 표현했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녀는 순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판할 수 있지요. 마침내 그녀는 공평무사한 영향력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 P198

여성에게 의복의 용도는 비교적 단순한 것이지요. 몸을 감싸주는 기본적인 기능 이외에 의복은 다른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당신의 성에게서 찬사를 이끌어내는 것이지요. 1919년-채 이십 년도 지나지 않은-까지 여성에게 개방된 유일한 직업이 결혼이었기에, 여성에게 의상의 중요성이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의상과 여성의 관계는 소송 의뢰인과 당신의 관계와 같습니다. - P203

그러나 고도로 정교한 당신의 의상은 분명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벌거숭이를 감싸고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그 의상을 입는 사람의 사회적, 직업적, 지적 지위를 선전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초라한 비유를 너그러이 봐주신다면, 당신의 의상은 식료품 가게의 꼬리표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건 마가린이다, 이건 순수한 버터다, 이건 시장에서 제일 좋은 최고 품질의 버터다."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다-그는 석사다. 이 사람은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다-그는 박사다. 이 사람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그는 메리트 훈장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기묘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신 의상의 이러한 기능, 즉 선전 기능입니다. 성 바울로의 견해에 따르면, 그러한 선전 행위는 적어도 우리 성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정숙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 P204

법 또는 사업, 종교 또는 정치와 관련하여 어떻게 우리가 진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아직도 많은 문들이 닫혀 있고 아니면 기껐해야 조금 열려 있으며, 우리의 배경에는 자본도 세력도 없는데 말입니다. 우리의 영향력이란 표면에서 그치고 말 듯합니다. - P209

버닛 주교는 교육받은 남성의 누이들이 교육을 받으면 그릇된 기독교 종파 즉 로마 가톨릭이 부흥할 거라는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그 돈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고, 그 대학은 결코 설립되지 않았지요.
그러나 사실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이러한 사실들은 양면성을 입증합니다. 즉 교육의 가치를 입증하지만 또한 교육이 결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교육은 모든 상황에서 좋은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것도 아니지요.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만,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만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영국 국교에 대한 믿음을 낳는다면 좋은 것이고, 로마 교회에 대한 믿음을 낳는다면 나쁜 것이지요. 그것은 한 성에 그리고 어떤 직업에는 좋은 것이고, 다른 성에 그리고 다른 직업에는 나쁜 것이지요. - P215

시험에 통과한 여성이 스스로를 B.A.(학사)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은 "더없이 확고한 반대에 맞닥뜨렸다. ……투표 당일에 학내에 거주하지 않는 학자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1,707대 661의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었다. 투표 참여자 수가 이에 버금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 평의원회는 투표가 끝난 후 일부 학부생들의 행동이 유례없이 유감스럽고 불명예스러웠다고 발표했다. 많은 학생들이 평의원 회관을 나와 뉴넘으로 가서 초대 학장인 클러프양을 기념하여 세워진 청동 문을 부서뜨렸다. - P221

한 세계에서 교육받은 남성의 아들들은 공무원, 판사, 군인으로 일하고 그 일에 대한 보수를 받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은 아내, 어머니, 딸로 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에 대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 아내, 딸의 노동은 화폐로 환산해 볼때 국가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걸까요? 이 사실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너무 놀라운 것이라서 우리는 그 완벽한 휘터커에게 다시 한 번 문의하여 확인해야 합니다. 그의 책을 다시 찾아보기로 합시다. 그 책장들을 모두 넘기고 다시 넘겨봅니다. 믿을 수 없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합니다. 이 모든 직업들 가운데 어머니의 직위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 모든 급료들 가운데 어머니의 급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주교의 업무는 국가에 연간 만 5000파운드의 가치가 있습니다. 판사의 업무는 연간 5,000파운드의 가치가 있지요. 사무차관의 업무는 연간 3,000파운드의 가치가 있습니다. - P261

육군 대위, 해군 대위, 기병, 하사관, 경찰, 우편집배원- 이 모든 직무는 세금에서 나오는 급료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온종일 일하는 아내, 어머니, 딸 들의 노동은 전혀 보수를 받지 못합니다. 그들의 노동이 없다면 국가는 붕괴하여 해체되고, 그 노동이 없다면 당신의 아들도 존재 하지 않을 텐데요.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 P261

대의명분과 유흥과 자선 행위에 그녀가 지출하는 비용은 매년 수백만 파운드에 이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금액의 대부분은 그녀가 누리지 못하는 즐거움에 지출 되었지요. 그녀는 자신의 성이 출입 금지된 클럽에, 자신이 말을 타지 않는 경마장에, 자신의 성이 배제된 대학에, 수천 파운드에 수천 파운드를 내놓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마시지 않은 포도주와 자기가 피우지 않은 시가의 청구서에 매년 막대한 돈을 지불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교육받은 남성의 아내에 대하여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오직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그녀가 더없이 이타적인 존재라서 공동 자금의 자기 몫을 남편의 오락과 명분에 쓰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감탄스럽지 못하지만 더욱 가능성이 높은 두 번째 결론은 그녀가 더없이 이타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편 수입의 절반의 몫에 대한 그녀의 정신적 권리가 점차적으로 소멸하여 실제로는 식사, 잠자리 및 용돈과 옷을 사기 위해 매년 받는 푼돈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 P264

첫 번째 사실은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그들의 공적 봉사에 대해 공공 기금에서 받는 보수가 대단히 적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사적인 봉사에 대해서는 공공기금에서 전혀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세번재는 남편의 수입에서 그들의 몫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혹은 명목상의 몫이며, 아내와 남편 둘 다 옷을 차려입고 음식을 먹은 다음 명분과 유흥과 자선 행위에 쓸 수 있는 잉여 자금은 기이하게도 남편이 즐기고 인정하는 명분과 유흥과 자선 행위 쪽으로 명백히 이끌려 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급료를 받는 사람이 그 급료를 쓸 용도를 결정할 실제적 권리를 가진 듯합니다. - P266

우선, 우리의 잠재적 원조자 범주에서 결혼이 직업인 대규모의 집단을 배제해야 한다는 점이 명확해집니다. 그것은 보수를 받지 못하는 직업이고, 남편 급료의 절반에 대한 정신적 몫은 실제적 몫이 아님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자적 수입에 입각한 공평무사한 영향력은 제로입니다. - P266

어느 신문의 어느 호에 교육받는 남성 셋이 죽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119만 3251파운드를 남겼고, 다른 사람은 101만 288파운드를 남겼으며, 다른 사람은 140만 4132파운드를 남겼습니다. 당신도 인정 하시겠지만 이것은 민간인이 모으기에는 막대한 금액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 우리도 그들처럼 그 금액을 모아서는 안 될 이유가 있을까요? - P281

공직이 우리에게 개방되었으므로, 우리도 연간 1,000파운드에서 3,000파운드를 버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법조계가 우리에게 개방되었으므로, 우리도 판사로서 연간 5,000파운드를 벌 수 있으며 법정 변호사로서 연간 4만 또는 5만 파운드를 버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교회가 우리에게 개방되면, 우리는 매년 만 5000, 5,000, 3,000파운드의 급료를 받고 그와 더불어 관저와 지방 부감독 관구를 받을 것입니다. 증권거래서가 우리에게 개방될 때 우리는 피어폰트 모건이나 록펠러처럼 수백만 파운드를 소유한 백만장자로 죽을 것입니다. - P282

우리가 전문직에 종사하기만 하면 이 모든 부는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길로 모여들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연간 30파운드 내지 40파운드를 현금으로 받고 덤으로 식사와 잠자리를 현물로 제공받는 가부장제의 희생자에서 연간 수천 파운드의 소득을 올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챔피언으로 우리의 지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현명하게 투자하면 우리가 죽을 때쯤 수백만 파운드라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금액을 소유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이것은 가히 매혹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입니다. - P282

만약 남성이 외국의 지배로부터 영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녀는 자신에게 ‘외국인‘이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녀가 외국인과 결혼하면 법적으로 그녀는 외국인이 되니까요. 그러면 그녀는 강요된 우애가 아니라 인간적 공감에 의해서 명실공히 외국인이 되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들은 그녀의 이성에 다음을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아주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그녀의 성과 계급은 과거 영국에 대해 고마워할 것이 거의 없었고, 현재에도 고마워할 것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또 한편으로는 미래의 그녀 일신의 안전 또한 상당히 의심스럽지요. - P347

그렇다면 유아 집착증은 어디에서 이 놀라운 힘을 얻은 것일까요? 이 사례들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부분적으로는 이 유아 집착증이 사회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자연, 법, 자산 모두가 그것을 변호하고 숨겨줄 준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렛 씨, 젝스블레이크 씨와 패트릭 브론테 목사는 그들 감정의 본질을 스스로에게 쉽게 숨길 수 있었습니다. 만약 딸이 집에 머물러 있기를 그들이 바랐다면, 사회는 그들이 옳다고 동조했습니다. 만약 딸이 항의하면, 자연이 그들을 도와주었지요. 아버지를 버린 딸은 자연법칙에 반하는 딸이고 여성성이 의심스러운 존재니까요. 혹시라도 그녀가 더 고집을 부린다면, 그때는 법이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아버지를 버린 딸은 스스로를 부양할 수단이 없었지요. 합법적인 전문직은 그녀에게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 P389

마지막으로, 만약 그녀가 여성에게 개방된 유일한 전문직, 무엇보다도 오랜 역사를 지닌 전문직에서 돈을 번다면, 그녀는 여성성이 박탈된 것이지요. 의심할 바 없이 그 유아 집착증은 어머니가 감염될 때에도 강력한 영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감염되면 그것은 세 배나 강력해집니다. 그에게는 그를 보호할 자연, 그를 보호할 법, 그를 보호할 자산이 있으니까요. 그러한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패트릭 브론테 목사는 그의 딸 샬럿에게 여러 달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게 하고 그녀의 짧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몇 달 훔쳐도, 그가 목사로서 성직을 수행하는 영국 국교회로부터 어떤 책망도 듣지 않는 일이 전적으로 가능합니다. 그가 개 한 마리를 고문했다든가 시계를 훔쳤다면, 그 동일한 사회는 그에게서 성직을 박탈하고 그를 쫓아냈겠지요. 사회는 아버지이고, 역시 유아 집착증을 앓고 있는 듯합니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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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3-17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3기니>가 더 좋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다른 글에 비해 너무 안 알려져서 안타깝지요.

다락방 2020-03-18 08:03   좋아요 0 | URL
<자기만의 방>에 대해서라면 이미 유명하고 얘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막 뭔가 강타하는 건 없었거든요. 그런데 <3기니>는 내용을 전혀 모른채로 읽기 시작했다가 정말 강타당한 느낌이었어요. 너무 좋아요, 너무!!

Jeanne_Hebuterne 2020-03-18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1학년 때 제게 몇 권의 버지니아 울프 책을 권해준 남자는 ‘버지니아 울프는 혁명이야‘라고 덧붙였어요.

다락방 2020-03-18 08:04   좋아요 1 | URL
세상에, 대학1학년 때 버지니아 울프를 권해주는 남자가 주변에 있었단 말입니까? 도대체 어떤 아름다운 인생을 사신겁니까, 쟌님.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저에게 울프를 권해주는 남자는 하나도 없었는데요.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요. 진정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콜롬비아 산타 로사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사무실에는 커피메이커가 있고, 매일 보쓰는 이 커피메이커를 통해 내린 블루마운틴을 마신다. 보쓰가 마시는 특별한 브렌드, 꼭 그 커피만 마시는데, 그 커피를 내리노라면 사무실에 향이 가득 퍼지고 그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아주 오래, 그리고 아주 많이 그 커피를 마시곤 했다.


드립백은 내 성격에 안맞으니, 그렇다면 원두를 핸드드립분쇄로 사서 저 커피메이커에 내려마시자, 하고는 <콜롬비아 산타 로사>를 주문했다. 처음에 내리면서는 향에서 산미가 확 느껴져서 동료 직원과 함께, '역시 커피향은 보쓰가 마시는 게 최고야' 했더랬다. 그리고 마셔보니, 맛도 그랬다. 보쓰가 마시는 커피, 그러니까 내가 십년이상을 마셔온 그 커피는 산미가 전혀 없는데, 콜롬비아 산타 로사는 산미, 산미가 강하다... 커피맛을 잘 모르는 나는 그 커피가 쓴지 아닌지, 진한지 아닌지, 신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단 말야? 마침 막 배송되어 왔던 지난 주 금요일에 타부서의 동료에게 이 원두 사진을 보내주며, '이거 왔는데 한 잔 내려줄까' 했더니 좋다면서 자신의 머그컵을 가지고 올라왔다. 사무실에는 콜로비아 산타 로사 향이, 내가 두 번이나 연달아 내리는 바람에 매우 강했다.



오늘 출근해서 보쓰의 커피를 먼저 내리고 그 후에 내 커피를 내렸다. 당연히 새로운 종이 필터에다 했지. 그런데 와, 이 산미가 느껴지는 향이, 어느게 더 향이 좋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다수가 '블루마운틴'을 선택할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콜롬비아 산타 로사 향이 너무 좋은 거다. '시다' 라는 향이 확 느껴지는데 더 따뜻한 느낌이랄까. 이 커피가 내려지고 사무실에 향이 퍼지면서, 아 나는 어쩌면 이 신맛에 그리고 신향에 이제 익숙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원두를 좀전에 또 주문했다. 나의 3개월간 알라딘 순수총구매액은 39만원에 육박하고 있고, 오늘 주문하여 아마 더 커지겠지만, 뭐 어떠랴.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신맛이 느껴지는 커피향(향에는 산미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산향?)이 익숙해지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기분도 좋아졌다. 히히히히. 커피는 맛보다 향인가보다, 했다. 커피는 정말이지 향이 다 하는 것 같아. 아하하하하하하하. 너무 좋다! 게다가 커피 메이커가 내려주니 세상 편한것이야. 나는 그저 물과 간원두만 넣어주면 끝.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너무 좋아.

이렇게 가다간 나는 커피 전문가가 될지도 모르겠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진은 커피 내린 오늘 아침. 사진엔 없지만 에이스랑 같이 먹었는데 너무 맛있다. 아마도 그건..에이스가 맛있어서?


이 리뷰를 오전 08:15에 작성완료했는데 지금 알았다. 비공개로 써놨다는 걸 ㅠㅠ

밥통.. 바부팅..



(feat. 정원 있는 나의 사무실, 알라딘 커피, 알라딘 머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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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3-1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립 내리다 성질 나빠질 거 같아서 (맛도 오락가락 시간은 오래 걸리고) 커피메이커 하나 질러 말아 하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0-03-16 11:4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처럼 핸드 드립 내리면서 차분해지는 대신 성질 나빠질 것 같다면, 커피메이커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3-16 11:52   좋아요 0 | URL
커피메이커 커피 맛을 한 번 보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ㅎㅎㅎ

2020-03-2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3-22 15:11   좋아요 0 | URL
제가 저걸 언제 무얼 사고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나님, 구하실 수는 있습니다. 아래 링크 들어가보세요~

https://www.aladin.co.kr/shop/wbrowse.aspx?CID=144461&BrowseTarget=List&ViewType=Detail&SortOrder=2

2020-03-2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3-22 19:07   좋아요 0 | URL
앗 저도 제가 보낸 링크에서는 저거 똑같은 걸 보지는 못했어요. ㅜㅜ
제 생각에도 알라딘에 연락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요.. 알라딘에 연락한다고 구해질지도 잘 모르겠지만요. ㅠㅠ

2020-03-2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2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2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3-22 19:30   좋아요 0 | URL
네 비댓으로 돌리셔도 됩니다~~

bona 2020-03-2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그럼 남은 저녁도 편안하게 지내세요^^

다락방 2020-03-22 19:36   좋아요 0 | URL
주말이 가는 건 언제나 너무 아쉬워요 ㅠㅠ 보나님도 남은 주말 밤, 잘 보내세요!
 
요가의 언어 - 걱정과 고민을 툭, 오늘도 나마스떼
김경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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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써의 '아사나'가 궁금했는데 마침 이 책을 알게 됐다. 목차에서 드러나듯이 모든 아사나를 아사나 이름 그대로 제목으로 달아두었다.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 하고 발음하는 게 좋아서, 가만 내뱉는 게 좋았는데 마침 맞춤한 책. 아사나를 그림으로 그려둔 것도 알아보기 쉬웠고 설명도 잘 해두었지만, 요가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사실 책을 보고 자세를 잡는 건 불가할 것 같다. 일단 요가를 한 달이라도 선생님으로부터 배워보고 그 후에 책이라든가 영상을 보고 따라하는 게 좋을 듯. 


'코브라 자세'가 '부장가 아사나' 라는 걸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달 자세'가 '아르다 찬드라 아사나' 라는 걸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책.


아사나의 이름을 내뱉는 것처럼 가만가만한 책이다. 

병원 여러 군데를 거쳐 MRI 촬영을 했고 경추와 요추에 약간의 디스크 이상이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진료를 받는 도중에 이런 조언을 들었습니다. "허리는 수술해도 재발할 확률이 높고 수술해도 완전히 좋아지는 건 아니니 척주기립근(척주의 양옆을 따라 길게 뻗은 강한 근육)을 길러서 뼈를 보호할 수 있도록 매일 운동하세요." - P6

울적할 때 마츠야 아사나를 하면서 감정을 받아들입니다. 대부분의 후굴 동작이 우울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물고기 자세를 추천합니다. 숨을 쉬기가 편안하고 정수리를 바닥에 대고 있으면 머리가 시원하거든요. - P96

부장가에서 양손을 다 떼는 게 처음부터 된 것은 아닙니다. 요가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부터 코브라 자세가 숙면에 좋다는 말을 듣고 습관처럼 잠들기 전에 매일(약 16년 동안)했거든요. 그 결과 지금은 손을 짚지 않고 하는 게 더 편해졌습니다. 힘을 적절히 쓰기 때문에 아무리 뒤로 젖혀도 허리에 통증 없이 편안합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언가 갑갑할 때에도 이 자세를 하면 좀 살 만해졌습니다. 그래서 부장가는 제 영혼의 단짝이자 ‘최애‘ 아사나라고 할 수 있어요. - P101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옛말로 다시 돌아가봅니다. 하지만 그 원숭이는 죽지 않았다면 다시 나무에 올라갈 겁니다. 삶은 계속되니까요. - P155

보트 자세를 하면 균형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몸은 많이 움직이면 피로가 쌓여서 아프고,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굳어서 아픕니다. 그래서 움직임과 멈춤 사이에도 적당한 균형이 필요해요.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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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3-1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 갑니다. 읽어봐야겠어요.감사합니다^^

다락방 2020-03-16 07:46   좋아요 0 | URL
코브라 자세가 부장가 아사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실 다른 대부분의 자세에 대해서는 아사나 이름을 모르고 있었거든요. 이 책은 아사나 이름 다 알려주고 그림으로 그려줘서 그런 쪽으로는 확실히 도움이 됐어요! 다 외우진 못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