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베키 매스터먼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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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59세의 여자 '브리짓'이 주인공. 그녀는 FBI요원으로 활동하다 은퇴했고, 재혼남 남편에게는 자신이 조직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숨겼다. 범죄자들을 많이 만나는 그녀의 상황(그녀의 세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前)남편이 떠났기에 지금의 남편도 그렇게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채 실제 자신이 했던 일을 감추었던 것. 상처는 깊었고 사랑을 잃을까 두려웠으나,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늘상 함께하는 사람에게도 솔직하게 보일 수 없다는 것은, 둘 모두에게 고통이다.



그녀를 닮고 싶고 그녀의 뒤를 잇고 싶었던 현재 FBI 요원 '콜먼'은 FBI가 잡아들인 연쇄살인범의 자백이 거짓일거라 의심하고, 이에 이미 은퇴한 브리짓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브리짓과 콜먼 모두 연쇄살인범을 의심하고 증거를 찾아내지만, 그녀들 주변의 모든 남자들, 똑똑하고 경력도 있고 신뢰도 가졌던 그 모든 남자들은 누구도 그녀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들은 위험한 상황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소설의 첫시작부터가 59세의 브리짓이 젊은 남자 범죄자와 싸우는 장면이다. 아직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전, 마구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브리짓, 싸워서 이겨버렷! 그리고 이 싸움은 내 기대이상으로 브리짓의 승리가 된다.




"경찰 가족이었어요. 아빠와 남동생은 시 경찰이었고, 여동생은 CIA에 있었죠. 여동생인 애리얼과 나도 어렸을 때는 바비 인형을 잘 갖고 놀았는데, 파티에 가는 대신 켄을 약물 중독 혐의로 체포하곤 했어요."
콜먼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 이야기를 농담으로 들은 듯했다. - P198

"…최대의 선은 진실을 감추는 것이라던데요."
"재미있네요. 맥스 비어봄을 잘 아나 봐요." - P312

꼴이 더 우스워지기 전에 마침내 택시가 도착했고 두 사람 모두 내가 택시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기사는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호텔까지 가는 동안 지나는 모든 모퉁이를 헤아리며, 부디 택시 기사가 암살범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으로 다소 슬프졌다. 기사가 우회전을 해야 할 때에 하지 않을 경우 곧장 택시에서 뛰어 내릴 요량으로 나는 차 문의 손잡이를 점검했다.
기사는 무사히 나를 호텔 앞에 내려주었고 난 누구의 도움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 P317

전날 밤에 쏟아낸 자기 연민의 잔여물 위를 뒹굴며 뷔페에서 가져온 것을 먹는 동안 나는 한 주의 날씨를 알려주는 날씨 채널을 켰다(더움, 더움, 더움, 비, 비, 더움, 비).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내 삶이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것일지 생각했다. - P319

"데이비드 바이스가 당신에 대해 또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당신을 만나고 난 뒤에는 자신도 모르게 꿈을 꾸게 된다고 하더군." - P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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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19-12-13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았어요~ 브리짓과 그녀의 남편이 책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아보였구요. 저희 남편도 책은 읽는데 저랑 선호하는 분야가 달라서 같이 책 이야기 하는 일은 없고, 집에 쌓이는 책만 늘어갈 뿐이네요. ㅎ 연애할 때는 하루키도 좋아한댔으면서..

다락방 2019-12-15 12:00   좋아요 1 | URL
훌쩍 나이를 먹은 후에도 좋은 사람, 다정한 사람을 만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전 참 좋아보이더라고요. 게다가 브리짓은 직업도 직업이지만 스스로 강한 여자라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누군가에게 꿈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 닮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건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일인데, 그런 강한 여자라는 게 참 좋았어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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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기다림'이란 화두에 끌린다. 길고 긴 기다림과 목적지에 닿겠다는 그 마음은 언제나 나를 건드린다. 그런 면에서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좋았다. SF 라는 장르를 빌어서도 충분히 경력단절 여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걸 드러내준 <관내분실>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우주적 상상력이 풍부한 따뜻한 작가의 글이었다. 그 따뜻함은 최은영의 소설과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특별할 게 없다. 앞에서부터 내리 세 편의 단편을 읽노라니 모두 주는 느낌이 비슷해, 아 다른 단편 역시 그러하겠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단편들을 모아둔 이 단편집 한 권의 분위기는 우주적 상상력이 풍부한 따뜻한 글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문목하' 작가도 동시에 떠올렸는데, 내게는 김초엽 보다는 문목하, 로 정리될 수 있겠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북마크를 하나도 붙이지 않았다. 문장면에서는 인상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다는 말.



어찌되었든 나는 SF 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국내 여자 작가들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문목하,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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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9-12-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딱 다락방님이 느낀 거의 그대로여서 중반까지 읽고 덮어둔 상태입니다. 큰 재미를 못 본지라 이 책에 대한 다수의 열광이 살짝 갸우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sf 를 몰라서 그른가 싶기도 하고 그랬음요.

다락방 2019-12-08 19:55   좋아요 0 | URL
sf를 모르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이야기의 진행,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는 중에 책 읽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의 감상도 저랑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저도 좀 갸우뚱 했습니다. 치니님은 중간에 덮으셨네요. ㅎㅎ 관내분실은 읽으세요 치니님. 그건 좋아요!

blanca 2020-01-2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지금 이 책 이북 결제 직전인데 읽을까요, 말까요. 냉정하게 얘기해 주세요.

다락방 2020-01-20 17:32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은 읽으셔도 좋을겁니다. 아마 근사한 리뷰를 써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랑 다르게 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요.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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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 '하루카 요코'는 방송활동을 하면서 더 잘 싸우기 위해 도쿄대학원에 가 공부를 시작한다. 도쿄대가 목적이었다기 보다는 언제나 싸움에서 이기는듯 보이는 '우에노 지즈코' 교수로부터 배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뭔가 아닌 것 같을 때 싸움으로 상대를 이기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 공부를 해서 싸우는 법을 배우자, 라는 게 하루카 요코가 바라는 바였는데, 하루카 요코는 자신이 바라던 것 이상을 배움으로써 얻게된 것 같다.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나는 이제 더이상 페미니즘 에세이를 읽고 싶지 않아서 뒤로 제쳐뒀던 책인데, 페미니즘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이 책 안에 있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다. 와, 하루카 요코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직업활동을 하던 중에 젠더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가고, 교육을 마치고 나서는 아는 분께 '우에노 지즈코 교수님께 배우게 해달라' 고 말씀드려서 도쿄대학원 사회학 과정을 청강하게 된다.


나는 일본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쿄대라는 곳이 어느만큼의 위치인지를 몰랐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니 도쿄대의 학생들은 엄청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인것 같고, 일단 '도쿄대' 라고 하면 '공부하는 자들'로 알려진 그런 곳인가 보았다. 하루카 요코는 그런 도쿄대학원에 들어가 첫 수업부터 헤매개 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 학생들의 단어도 그렇고, 게다가 공부할 문헌이라고 준 것도 외국어마냥 어렵기만 하다. 1년간 읽어야할 문헌의 수도 어마어마한데 하루카 요코는 그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그 전 2년간의 문헌까지도 읽는다. 어차피 영어는 못하니까, 하며 영어 문헌은 제껴두려 했건만, 여기 학생들은 다 그 영어문헌도 읽고 있고 읽어야한다고 해서, 아, 그 어려운 영어 문헌까지 죄다 복사해서 그녀는 미친듯이 읽는다. 방송활동을 하면서 낮에는 대학원에 다니고, 그리고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그녀는 자정부터 아침 여섯시까지 커피를 쏟아 부어가며 공부한다. 와.. 진짜 완전 공부 뽐뿌 엄청 온다. 그래, 이렇게 공부해야해, 이렇게 공부하는 데 안될게 뭐람! 정말이지 감탄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한 공부였으니 아마도 그렇게 열정을 불사를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떻게 자정부터 여섯시까지 공부하나요... 밤부터 아침까지 나는 잠이 쏟아질텐데.. 게다가 여섯시간 내리 공부라니..


결국 하루카 요코는 그렇게 3년을 공부하고나서는 다른 대학에 젠더론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가는 경지에 이른다. 이 공부가 너무 어렵고 대단해서, 그러니까 나 역시 이들이 공부한 문헌이나 주제만 봐도 머릿속에 물음표 천개 되어버리는 바람에, 이정도 과정을 마치면 다른 사람 가르치기에도 무리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여기에도 몇 번 언급했었지만,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 학생이었을 때, 공부를 마음껏 해도 좋았을 때 공부하지 않았던 나를 너무나 후회하고, 지금이라도 열심히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강하게 있는데, 그렇게 방통대 편입해봤지만 반학기 다니고 자퇴했고...그래서 역시 나는 안돼, 이러다가 최근에 여성학 공부를 하고 싶어서 또 몸이 꿈틀댄다. 주기적으로 대학원을 가면 어떨까, 대학 청강은 어떨까를 역시 고민하고 있는데, 그러다가도 경제적인 이유와 육체적인 이유로 이내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 등록금 어쩔것이여.. 그리고 내가 공부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학교 다니다가 쌍코피 나진 않을까... 안되는 이유들을 떠올리며, '그래 이렇게 부지런히 책을 읽자'하게 되는데, 이렇게 공부하는 여성의 책을 읽으니 공부 욕망 너무 솟아버려. 나랑 같은 욕망을 가지고 똑같이 번번이 포기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이럴 때 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말을 건다. 친구는 나랑 같은 욕망과 같은 바람을 가지고 그리고 우리는 같이 포기하면서 서로 응원한다. 친구여...



공부하는 여성, 그리고 공부하면서 더 성장하고 앞으로 쭉 뻗어나가는 여성을 보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그런 의미에서는 매우 유익한 독서였다. 공부 욕망 자극하는 건 진짜 너무 좋잖아?


그렇지만 이 책은 1999년에 쓰여진만큼, 낡았다. 시대에 뒤떨어졌다. 그 유명한 우에노 지즈코의 가르침을 받고, 그 어마어마한 도쿄대학에서 젠더론 강의를 들어도, 그래서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페미니즘을 앞서 이끌 수 있다 하더라도, 구석구석 낡았음을 어찌할 수 없다.


하루카 요코는 '싫다고 말할 수 있으면 성희롱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싫다고 얘기함으로써 일자리를 잃게 되면, 그건 성희롱이라는 거다. 정말이지 머릿속에 물음표 천개 돌아다니는 그런 발언이 아닌가. 싫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해도 성희롱이다. 그것이 성희롱이 아닌 건 아니다. 게다가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예고도 없이 내 앞에서 자기 고추를 꺼내놓는 남자라고? 그새낀 범죄자새끼다. 감옥에 집어 쳐넣어야 한다. 어딜 함부로 그 더럽고 징그러운 고추를 내밀어. 진짜 남자들 너무 고추부심 있는데, 그거 왜있지? 그렇게 함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추를 까는 새끼들의 고추는 잘라서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리고 싶다. 그래야 안까고 다니지. 회의를 하다가 가슴께를 더듬는다고? 어처구니가 없네. 다 성희롱이다. 미친놈이잖아? 회의를 하다가 왜 여자 가슴을 더듬어, 미친새끼가?


게다가 지금도 그렇겠지만, 이 시대의 일본도 낡았다. 프로그램에 출연시킬 사람이 열여섯의 가슴 큰 여자여야만 인정받는다. 제일 가치가 높다. 아니, 열여섯의 학생에게 가슴큰지를 확인하는 게, 말이 되냐. 하루카 요코는 그런 일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책상 위에는 아름답게 찍은 프로필 사진이 놓여 있었다. 꽤 예뻐 보인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남자가 물었다.

"몇 살이야?"

"열여섯 살이에요."

"가슴은?"

"커요."

"음, 괜찮은 것 같은데? 한번 출연시켜 보자고."

출연이 결정되었다.

남자는 얼굴과 나이와 물건 크기로 일을 따내는 게 아니니까 능력을 갈고닦는다. (p.59)



이런 환경에서 일하다보니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지고 논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아, 정말이지 일본 방송계는, 저 때가 아무리 2000년 전이라 해도 낡았고 후졌구나. 그러나 일본이 그때보다 지금 더 나아졌을까? 저거 너무 끔찍하잖아. 열여섯의 가슴 크기를 물어본다는 거. 진짜 .. 후아-



게다가 출연자에게 거짓말을 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일자리라 어쩔 수 없었을테지만, 하루카 요코는 자신의 신념과는 반대로 시키는대로 대답하고. 이 부분 읽으면서 우리나라 연예인들도 시키는대로 대답하는 지점이 있을까? 싶었다. 방송이 이정도로 무너지고 망가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뭐, 지금 딱히 좋은 방송인 것도 아니지만.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해 주세요."

방송국 측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런 프로그램의 주시청자는 당연히 주부들이다.

"네? 저는 결혼하고 싶지 않은데요."

"그러시면 안 되죠. 하루카 씨에게도 손해잖아요. 모든 주부의 반감을 살 만한 발언은 하지 말아 주세요."

"…."

그렇게 해야만 사랑남을 수 있다는 선택의 문제는 늘 나를 괴롭힌다. 이념과 현실은 부딪치는 대가 많다.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니라서,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또래 여성 연예인 가운데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꽤 있다. 물론 이는 연예인에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p.126-127)



하루카 요코가 위의 부분에서 지적했듯이 이것이 비단 연예인에 한정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전에 회사 동료도 '나는 사실 연애도 필요없고 혼자가 더 좋은데 친구들 앞에서는 혼자라 외롭다는 포지션을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 하는줄 알았다' 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대부분 그래야 하기 때문에, 반감을 사지 않으려고 자신을 속이는 일이 더러 있지 않은가. 방송가에서 그것은 더 권장되는 것이고...





도쿄대가 대단한 대학이라고 하면 거기에서 유명한 우에노 지즈코 역시 대단한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하루카 요코는 우에노 지즈코를 존경의 시선으로 보고 무슨 말과 행동을 해도 '대단하다'고 칭송한다. 아마도 그녀로부터 배우고 싶었기에 간것이니 그런 태도는 당연히 따라오는 것일테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어느 순간 배움이 쌓이다보면 그런 스승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제자가 나아가야 할 길은 청출어람이 아닌가..



나도 공부하고 싶다고 책읽는 내내 생각했지만, 나도 대학원 가서 좋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내내 생각했지만, 하루카 요코가 그랬듯이 내가 읽어야할 문헌들이 영어로 가득하고 무슨 막 기호학 구조주의 이런 거 나오면... 아아 역시나 '나도 모르겠다~' 이러고 그냥 뒤로 자빠져버릴 것 같다. 대학원이란 그런곳인가... 나는 아마 포기할거야. 게다가 하루카 요코가 다니는 대학원은 자꾸 발표 시켜... 싫어.......역시 이런 공부법 내 타입이 아니야. 그렇다면 나는 대학원 타입이 아닌건가.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알고 싶고 엄청엄청 똑똑해지고 싶은데, 대학원 너무 두려워... 그러면 책읽으면서 고작 이만큼에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나 부족한데... 하아-




아무튼 공부뽕 차오르는 독서였다.



(별은 3.5인데 0.5 가지고 내릴까 올릴까 엄청 고민하다가 올리는 걸로 한다... 자비로운 나인 것이다.)


남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남녀평등 시대라지만 집에 가면 마누라가 제일 무섭다.‘ ‘결국 가정은 여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저는 이런 식의 패배 선언이 매우 교활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메달을 땄을 때 매스컴이 다들 입을 모아 ‘내조 덕‘이라는 식으로 아내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 싫습니다. 야구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을 때 ‘아내가 연예게를 은퇴하고 요리하는 데 힘썼다‘는 미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아내가 요리를 잘해도 실력 없는 선수는 공을 치지 못합니다. 아내가 전업주부이든 아니든 메달을 따지 못하는 선수가 훨씬 많습니다. 왜 아내가 가장 무섭다고 말할까요? 뭔가 찔리는 일을 했거나 아내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를 정도로 둔감해서가 아닐까요? 가정은 결국 여자에게 맡겨야 한다고요? 그건 그저 여자를 추켜세우는 척하면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 아닌가요? - P11

하지만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평범하고 괜찮아 보이는 청년일수록 평범한 상식과 평범한 고정관념에 단단히 매여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평범한 것들이 얼마나 내 삶을 힘들게 했는지를. 이런 의미에서 남자를 고를 때 ‘평범함‘은 결코 좋은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 - P141

내가 신인 때 대선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생방송 중에 상대방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가 이상한지 말할 수 없어서 분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때 선배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 어디가 이상한지 말할 수 없어서 분하다고 말해."
아, 그러면 되겠구나 싶었다.
모르니까 쓰지 못하는 게 아니다. 쓰지 않으니까 모르는 채로 있게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이 말을 하게 만든다. 그래도 말을 할 수 없다면,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된다. 말은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만 가능성의 싹을 틔운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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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2-0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뽕’ 효과가 저한테까지 전해지네요. 약간 흥분되면서 약간 의기소침해지고요.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그냥 지나칠 책이 아니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12-03 18:19   좋아요 0 | URL
저 너무 공부뽕 차올라서 미네님 책도 내친김에 읽자, 단발머리님께 땡투하고 장바구니 똭- 넣었다가 참았어요. 다음주에 사려고요. 너무 충동적으로 자꾸 책 사는 것 같아서. 일주일만 참다가 사자, 지금은 소설 한 권 읽자, 하고 넣어뒀습니다. 다음주에 적립금 들어오면 그거 제가 드리는 거에요. 부자 되시라고요. 으하하하핫.
 
페이드 포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레이첼 모랜 지음, 안서진 옮김 / 안홍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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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좋은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든 답이 다 들어있다.


저자 '레이첼 모랜'은 열다섯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어 7년간 성매매를 하고, 탈성매매후에 10년간 이 책을 집필했다.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며 쓴 책이 아니라 그 과거로 돌아가 이 글을 썼고, 그 때 느꼈던 언어의 왜곡을 이제는 제대로된 언어로 찾아와 적어낼 수 있게 되었다. 과거는 그저 과거에 불과한 게 아니라, 미래를 막고 있는 것이기도 해서 '단지 과거야'라며 휘휘 저어 떠나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나 성학대가 기반이 된 성매매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이 저자 본인의 것이었다면 오죽할까.


누구나 아프고 괴로운 과거가 있을 것이다. 떠올리기조차 싫은 그 과거의 시간들. 그런 과거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 때의 생각이나 느낌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금세 그 때의 내가 되어 다시 그 상처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런 고통스러운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그랬다. 글을 쓸 때는 물론이거니와 애인이나 친구와 대화를 할 때도 아픈 과거의 나로 돌아가면 나는 현재에도 반드시 아팠다. 어느날은 그 아팠던 시절에 대해 얘기하다가 지금도 그 때의 아픈 내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대화를 중단해야 하기도 했다. 레이첼 모랜 역시 이 책을 쓰기 위해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책의 처음에 밝히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그 아픔속으로 들어가 다시 그 때의 내가 되어 그 때를 기술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하여 마치는 글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레이첼 모랜은 열다섯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었다. 레이첼 모랜의 어머니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아버지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두 성인 어른이 만나 사랑이란 걸 하고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는데, 그 병은 치료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약물에 중독된 부모들이라 레이첼 모랜을 비롯한 자녀들은 가난과 폭력의 상황에 놓인다.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학용품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대신 늘 입었던 지저분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한다. 다른 아이들은 지저분한 아이들이라며 이 아이들을 무시한다. 게다가 이 어린 형제들은 언제나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다른 형제가 아닌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야 이 가정에서 버틸 수 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나름 영악해져야 하고 수시로 모든 것들이 내 탓이라는 필요없는 죄책감까지도 아이들의 몫이다.



레이첼 모랜은 분명 자기의 어린 시절에도 행복한 시절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부모를 원망하는 순간들도 있지만 그러나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 역시도 계속 가지고 있다. 헌사도 부모들에게 바친다. 자신 안의 긍정적인 성격이라든가 강인하게 이겨내는 것들은 부모로부터 온 것일테니, 그런 자신을 만들어준것에 감사한다고. 그러나 나는 아마도 레이첼 모랜이 아닌, 레이첼 모랜의 책을 읽는 사람이어서인지, 그녀의 부모에 대한 감사는 별로 들지 않는다. 원망이 매우 크고, 결정적으로 '사랑이 답이 아니다'라는 답을 얻고야 만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성인과 성인이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사는 것은, 그것이 사랑이기에 용납되어야 하는가? 아니, 아이들 다섯을 가난과 폭력에 방치한 것을 '그래도 사랑했으니까' 라며 고개 끄덕일 순 없는 법이다. 나는 그녀의 부모에 대한 원망이 매우 크다. 사랑이 답은 아니고, 그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것들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면, 그토록이나 무책임한 사랑이라면 당신들에게 사랑은 아무 변명도 되지 않는다.



그런 가정에서 열네살이 되자 레이첼은 엄마로부터 내쫓긴다. 이제 다 컸으니 쉼터에 가서 네 살길을 모색하라는 거였다. 쉼터에 간다고 뚜렷한 대안도 없어 열넷에 레이첼은 노숙자 신세가 되고, 열다섯에 스물한살의 남자 애인을 만나 남자 애인으로부터 성매매를 권유받는다. 그렇다. 레이첼 스스로가 성매매가 답이라고 생각해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애인이 제안했고, 그러자 그것은 안될것도 없는 답이 되어 그녀 앞에 놓여진다.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 여성을 성매매로 유입시켰다. 성매매로 그녀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그녀가 성매매를 선택했으니, 성매매는 레이첼 모랜, 그녀의 자유의지일까? 레이첼은 자신 앞에 놓인 성매매를 자기가 붙들었고, 자기가 인신매매되어 강제된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성매매를 성매매된 여성의 주관적 자유의지라 볼 순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더 권력 있는 남성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현실은 줄곧 수그러들지 않았고, 도망칠 수 없었기에 우리에게 실질적 혜택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착취를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했다'라고 표현하는 일이었다. 성매매를 '성적 자기 결정권'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뒷받침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성적인 이유가 아닌 경제적인 이유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성적인 요소는 즐길 수 없었고 견뎌야 했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더라면 업주에게는 빈 업소가, 성구매자들에겐 빈 필림이 남았을 테다. (p.127)



성관계를 즐기려고 내린 결정이 아닌, 경제적 이유로 내린 결정이 과연 '그녀가 원한거야', '그녀의 선택이야'로 답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의 2부에서는 그녀가 철저하게 과거로 돌아간다. 성매매하던 당시로 돌아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얘기한다. 그 안에서 자신이 느꼈던 상실과 고통을 얘기한다.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성학대를 어디가서 신고도 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해서, 계약된 것 이상의 행위를 성구매자가 할 때에도 그것을 폭력으로 신고할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그 안에서 성매매된 여성들의 인권은 사라지고 자신의 가치 역시 상실한다. 성매매는 성매매된 여성과 구매자 모두에게 상실을 준다. 며칠전 페이퍼에서 언급한 것처럼 타락의 상호작용 역시 마찬가지. 남자들은 결코 자신의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요구할 순 없는 지독한 행위를 성매매 여성에게는 시도함으로써 그 나쁜 행동을 고치지 못하고 유지하며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고, 성매매된 여성은 다른 여자들이라면 허락하지 않을 행위를 허락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타락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타락하는 가운데, 세상은 더럽고 역겨운 행동을 요구할 수 있는 여자와 그럴 수 없는 여자로 나뉘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라고 말하는 성매매된 여성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그것은 비참한 현실에 놓인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얘기일 뿐이라며, 그 안에서는 절대로 존중받을 수 없다고, 행복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2부 전체에서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얘기하며, 그 일로부터 그녀가 보게된 것, 느끼게 된 것을 토로한다. 그녀에게 성매매는 성매매이며 성학대였고 폭력이었다. 이것은 노동이라고만 부를 순 없었다. 노동이라면 그안에 몸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술을 터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역겨운 상황에서 토하지 않을 수 있는 기술, 위험한 상황을 알아채는 기술들만이 늘어갔다 했다. 이것은 그저 노동일 수 있을까. 닫힌 문 뒤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안다해도 그 일에 대해 신고나 처벌을 할 수 없음에 침묵해야 하는 것이, 과연 노동이라고만 불릴 수 있는 일일까. 폭력을 수반한 노동이라면, 그것을 그저 노동이라고만 불러도 되는 것인가.



이 책의 추천사에 정희진 쌤은 '나는 성매매를 성폭력으로 환원시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라고 썼는데, 어떻게 이 책을 다 읽고서도 저런 문장을 써낼 수 있을까 심히 유감스러웠다. 성매매는 성학대고 성폭력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바로 그것이었다.



레이첼 모랜은 그저 겪었던 잔혹한 일에 대해 드러냄으로써 성매매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파악한다. 하나하나 자신이 겪었던 일이, 자신의 성매매 친구들이 겪었던 일들이 눈앞에 보이는 폭력 이외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녀들의 영혼이나 눈빛이 왜 사그러든지에 대해 그녀는 끊임없이 깊이 생각하고 그 일로부터 많은 것들을 깨닫는다. 그것들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3부에서는 탈성매매 이후에 대해 얘기한다. 성매매는 성매매했던 과거 자체를 감추고 싶기에, 성매매가 뻔히 드러나는 세상이지만 성매매에 몸담았던 여성은 그것을 감춰야 하기에 그 후에도 고통스런 시간들이 이어진다. 책의 초반에 그녀는 빈이력서를 앞에 두고 자신의 이력을 쓸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녀는 성매매된 여성으로서, 성매매를 반대한다. 성매매는 성매매에 유입되기 전 생각했던 것들과 완전히 다른 비참한 것이라고, 실상은 매우 다르다고 얘기한다. 또한 책들을 읽고 그녀는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책을 쓰는 데 10년이 걸렸다는 것은, 그녀가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그녀가 되었기에 고통스러웠다는 걸 의미하며 동시에 현재로 돌아와 책을 읽고 그 때의 일들에 담긴 의미들을 파악한다는 데에도 역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성매매에 대해서는 당사자성을 갖고 있지 않아 성매매에 대한 입장을 보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과연 당사자가 아니기만 한가? 성매매가 존재함으로써 여성을 나누는 데에 어느 쪽에든 내가 들어갈텐데, 내가 성매매된 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당사자가 아니니 입장을 정리할 수 없어, 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레이첼 모랜은, 성매매된 여성이 아님에도 성매매에 대해 연구하고 생각하고 발언해준 사람들이 있었음에 놀라워하고 고마워한다. 그녀는 성매매된 여성으로써 성매매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고자 한다. 목소리가 없었던 자신을 대신해 주는 목소리가 저 밖에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우리가 확실하게 고립되기는 했었지만, 성매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밖에서 우리를 생각하고 우리에 대해 글을 썼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나는 목소리가 없었다.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사실은 저 밖에서 나를 위해 말해주려 하는 큰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p.401)



나는 이제 내 입장을 확실히 알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성매매에 반대한다. 그것이 내가 성매매에 대해 가진 입장이다.



레이첼 모랜은 성매매에 대해 돌아보고 고찰하며 책을 쓰는 것만으로 그녀의 행위를 끝마치지 않았다. 그녀는 <스페이스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체를 만든다.


스페이스는 학대적인 성매매 현실에서 생존한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해 새로 형성된 국제단체이다. 스페이스에는 현재 아일랜드, 독일, 덴마크, 프랑스, 영국, 미국, 캐나다 출신 회원들이 있다. 독자적 기구이며, 이 책의 저자가 창립자이다. (.431)



레이첼 모랜은, 아일랜드 정부에 노르딕 모델을 수용하기를 권고하였고, 아일랜드 정부는 그러기로 했다. 이야말로 한 인간이 자신의 최대치를 끌어내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게 아닌가.



레이첼 모랜은 스페이스 인터내셔널의 아일랜드 구성원 세 명중 한 명이고, 2013년 2월 6일 아일랜드 정부를 상대로 성매매 경험을 증언했다. 아일랜드 정의, 국방, 평등에 관한 국회 합동 위원회는 그 해 여름 6월 27일 아일랜드 법이 노르딕 모델을 수용하기를 권고하였다.

2014년 11월 27일, 아일랜드 정부는 노르딕 모델 강령을 실행하기로 결정하고 공식 발표하였다. (p.430)



한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최대치, 통찰할 수 있는 최대치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고 한 인간이 살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책안에 쏟아 부어져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인생에 앞으로 성매매를 놓아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는 여성들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고, 성구매자들이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할 책이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성매매라고 포장되어 일어나고 있는, 두 눈 감고 용인하고 있는 성학대를 없애야한다. 여성들은 더이상 포르노에, 스트립쇼에, 성매매에 유입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들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기만을 그만둬야 한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태도와 의견들은 대개가 절대로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매매 당사자는 성매매의 범주 내에서만 수용되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 P34

성매매 여성이 이력서를 작성한다면 금방 채울 수 없는 빈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35

어머니의 관심은 담배 가격 인상과 복지 지원금 인상 이 두가지에 쏠려 있었다. 운전을 하지는 못했지만 할 수 있더라도 차를 갖는다는 꿈은 꿀 수도 없었기에 기름값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집을 소유한다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이자율이나 융자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거의 대부분 실직 상태였고, 어머니도 출산 후로는 직업이 없었기에 직장을 다니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율에도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는 저소득, 저학력층에 속하는 가정주부였고 남들과는 전혀 다른 현실 세계에 살아서 무역, 상업, 사업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도 관심이 없었다. 위에 언급한 대부분은 우리와 관계가 없었고 관계 있던 적이 전혀 없었다. - P45

물론 그 당시에는 내 경험을 정확하게 명명할 수 없었다. 단지 명백하게 합당한 이유들로 동네 이웃과 학교에서 내가 다르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나의 환경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 생각은 옳았지만, 내가 그 그릇됨의 한 부분이었다고 믿은 것은 실수였다. - P48

노숙은 성매매 유입 경로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엔 종종 가출의 결과로 나타난다(내무성, 2004a). 가출은 견딜 수 없는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새 출발을 하는 수단으로 긍정적인 행동을 취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여성은 삶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려는 시도를 함과 동시에 기만 행위에 더욱 취약해진다. -쿠식 외, 2003 - P88

첫 성구매자는 40대 중반이거나 어쩌면 그 이상인 듯했고, 대머리에 안경을 쓴 사람이었다. 하얀 차가 도로 한쪽에 섰고 남자친구가 운전석 쪽 열린 창문으로 그에게 말했다.
"살살하쇼, 이 아이 처음이니까."
그곳에 나를 데려간 주제에 아끼는 체하던 그 위선을 보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움찔했다. - P94

이제 글을 쓰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순간 산문적 말더듬증을 경험하고 있다. 한 줄을 쓰고는 10분간 그저 응시한다. 적당한 길이의 문단을 써내는 작업은 고된 위업이다. - P95

성매매 집결지에 서 있도록 강요도게끔 내 자신을 최초로 허락했을 때, 이상하고 역설적이게도 과감한 결단을 내린 듯한 기분이 샘솟았다. 가출 이후 처음으로 삶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느꼈듯이 말이다. 몇 년 후 과거를 돌아보고 깊이 들여다본 뒤 그 감정이 주도권 상실에 대한 반작용이었음을 자각하고는 얼마나 어리석게 느꼈는지 모른다.
성매매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성매매는 자라난 가정에서 독립하는 일반적인 나이 혹은 권장되는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독립한 10대 여성들이 흔히 진입하게 되는 삶의 국면으로 널리 인식된다.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정말 알아야 할 때는 몰랐다. - P96

성매매되는 많은 자들의 경우 성인이 아니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성인과의 성관계에 ‘합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또한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비율이 나처럼 최초 성매매에 ‘합의‘하였을 당시 성인이 아니었다.
- P97

실상은 매우 달랐다. 삽입 성교를 하지 않았기에 벤버브 거리에서 하룻밤 동안 벌 수 있는 돈이 너무 적어 백 파운드를 벌려면 구매자를 열 명까지 만나며 내 몸이 사용되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특히 겨울이 오면 벤버브 거리에서 특히 녹초가 됐고, 암울했으며, 비참했다. 열 명의 구매자들에게 성적으로 이용되고 난 후 여성이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설명하기란 어렵다. 물론 합의한 유사 성행위에 멈추는 경우는 드물었다. 구매자가 성기를 삽입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더라도 손가락이나 다른 물체들을 몸 안에 집어넣어 상처를 입히고 물고, 혀를 목구멍 여기저기 깊숙이 쑤셔 넣으며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 P99

성매매에 유입되어 있는 동안 행복하기란 그저 불가능할 뿐이라고 일찍이 결론에 도달했고, 내가 옳았다. 성매매 여성 중 행복한 여성은 한 명도 보지 못했고 그 후로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내 경험상 ‘행복한 창녀‘란 없다.
내게 성매매에 잠식된다는 말은 삶의 범위가 좁아져 모든 것이 그 당시 생활의 중심에 놓여 있던 성매매로 귀결된다는 의미였다. 성매매는 모든 것을 침범하고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취침 습관, 구매하는 옷, 대화, 내가 하던 것 못지 않게 하지 않던 행동들도 지배했다. - P109

때때로 ‘영원히 이게 전부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표면 위로 떠오를 때 심장이 갈비뼈 안에서 쿵쿵거리며 요동쳤다. 마치 실수로 잘못 날아들어 와 방 벽에 부딪히는 새처럼 느껴졌다. 에워싸인 벽에 대한 두려움과 도망가고자 하는 절실함이 동일하게 작용하여 미친듯이 구는 새처럼 말이다. - P109

성매매 유입 한참 뒤 ‘아동 성매매‘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10대 초반의 나를 묘사하는 말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성매매‘라는 말과 나를 동일시하는 건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내가 하는 게 뭔지, 그게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잘 알았지만 당시 나는 스스로를 전혀 아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항상 또래보다 더 성숙하다고 느꼈고 당시 열다섯이었는데 스스로 젊은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내 나이보다 더 큰 아이를 둔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그때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 알게 됐다. - P109

존경받거나 선망되는 삶은 내게 불가능했다. 내가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 P111

열다섯 살을 ‘어린이‘로 부르는 것이 가능한가? 가슴이 발달하고 클리토리스가 기능하기 시작하면 여성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갖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10대 초반의 아이들과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들을 향한 성적 관심을 구별 지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항상 수상히 여겼다. - P111

성인이 되는 정말 중요한 분기점은 가슴이나 생긱기가 아니다.
물론, 그 모든 세월이 지나고,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열다섯 살은 아이라는 사실을 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아이였던 나의 이미자와 여전히 씨름한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충분히 납등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내 아이가 당시의 나와 같은 나이가 되고 난 이후로 그 이미지를 외면하기 더 어려워졌다. 불가피하게 비교를 하게 된다. 아들이 열다섯에 얼마나 어렸는지, 세상을 상대할 준비가 얼마나 안 됐는지를 생각한다. - P111

사실 내게는 냉혹한 현실만큼이나 더 깊고, 괴로운 무언가가 있다. 그런 라이프 스타일에 내가 유입되고 그로 인한 영향력이 초래한 어떤 특정한 결말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 성매매가 유일한 길이며 내가 다른 아무것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믿게 했다.
삶의 모든 면이 성매매에 잠식되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거짓에 잠식됐었기 때문에 그릇된 믿음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 P112

남성에게 자신의 몸을 파는 것보다 더 모멸적인 것이 있다면 또 다른 남성의 이득을 위해 남성에게 몸을 팔아야 할 때이다. - P124

어떤 여성들은 포르노에 반대하지 않지만, 나는 반대한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포즈를 취한 채로 사진 찍히는 경험을 해봤기에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 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산업 안팎으로 여성을 막대하게 훼손하는 모욕적이고 착취적인 산업이다. - P126

솔직히 말해 현재 포르노를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과는 관계를 맺고 싶지도 않고, 맺을 수도 없다. 포르노를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렇지 않다고 설득하려는 어느 누구도 용납하지 말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인간됨을 지키는 일은 때때로 무엇을 수용할지에 대한 경계를 세우는 일을 필요로 한다. 나는 스트립과 포르노가 초래하는 폐해와 수모를 겪었다. 무해한 산업이 아니다. 구별 지을 수 있는 산업도 아니다. 성매매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들이다. 이 체제는 그 정점과 핵심 모두에 상품화를 배치함으로써 여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저하시킨다. - P127

타락의 상호작용이라 함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남성의 마음이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성매매 여성이 고의적으로 이용하여 조종한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

우연히 목격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내가 통제권이 있는 듯 보였을는지 모르겠지만 지갑을 쥔 사람은 그였기에 궁극적으로 권력은 언제나 그의 것이었다. - P133

그가 자신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말 걸기를 요청하면 결과적으로 그에 밀접하게 연관되는 방식으로 내 자신의 가치도 저하된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내 천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널드의 행동은 그야말로 벌레 같았다. 그의 성도착은 인간보다 못하게 취급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 욕망의 본질 자체가 타락했고, 그 타락을 조장하면서 내 자신도 타락한 방식으로 행동했다. - P136

서로에게 해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양쪽 모두 알면서도 그중 누구도 신경 쓸 자비심은 없다는 점은 타락이 상호작용하는 또 다른 본질이다. - P137

‘살아 있는‘것을 단순히 진행하고 커나가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이 경험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성매매는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국제적이거나 문화적 수준뿐 아니라 미시적 수준에서도 살고 자란다. 그것이 손대는 각각의 삶에서 발달하고 진화한다. 성매매를 목격한 모든 곳에서 성매매의 진화를 보았고, 이 성장과 발달이 긍정적이었던 예는 결코 없었다. 타락의 상호작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성격과 부합하지 않는 그 어떤 다른 것도 생산해내지 않는다. - P138

쇼엔메이커는 벽에 쓰여 있는 낙서를 통역한다. ‘성구매자들에게, 우리는 당신 같은 남자들을 싫어한다. 당신에게서 가능한 많은 돈을 받고 싶다‘ 반대편에 쓰인 대답은 ‘재수 없는 매춘부들, 너희가 고꾸러질 때까지 박아줘야겠구나. 우리는 네 성기가 아주 아플 때까지 씹하고 빨거다. 고맙다‘ 였다. -줄리 빈델, 『가디언』, 2004년 5월 15일 자

여성의 마음속에는 섹스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남자와의 평범한 인간적 유대감이 자라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구매자들이 성매매 비용을 지불하는 여성들 중 몇몇에게 깊은 애정을 형성하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적어도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의 경우)이런 현상은 성매매가 지니는 특이성이 아니다. 오히려 모욕적인 본질을 더욱 환신시키는 그 무엇이다. 인간의 감정이 한 방향으로 흐를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 P144

이야말로 성매매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자신과 인생을 공유하는 여성에게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이성적으로 기대를 할 수 없는 변태 성향을 다른 계층의 여성에게 떠넘기려는 남성의 고집이다. 여성들은 존중과 경멸, 품위와 천박, 존경과 비난이라는 두 부류로 구별되게 나뉜다. - P145

‘고급‘ 성매매 시장에서 겪었던 경험들만큼 ‘고급‘같지 않은 일은 없었다. 섹스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데 품격이 있을 리 없고, 성매매가 일어나는 환경이 상관있을 리 만무하다. - P152

고급 창녀 신화는 대체로 그 신화를 믿으려고 섹스에 큰 돈을 지불하는 구매자들의 욕망과 맞닿으므로(성매매의 다른 신화들과 같이) 계속 지속된다. 많은 성구매자들이 에스코트 에이전시에 전화하면 고급의 질이 집 문 앞에 도착할 거라 짐작하고 싶어 하며, 그 질에는 고급의 여자가 부착됐을 거라는 생각이 뒤따른다. 고급 창녀의 개념은 성매매 시장을 극대화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고, 그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 P157

성매매의 본질은 그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거친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하얀 리넨에 엉덩이를 비빈다고 성매매가 다른 것으로 변하진 않는다. - P164

우리 ‘직업‘에서 겪은 경험을 학대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다. - P174

성매매 여성이 실제로 하는 일이란 자신의 몸이 성적으로 학대되도록 돈을 받고 허락하는 것이다. 성학대와 관련된 모든 부정적인 느낌들을 겪지만, 본인이 수용했기에 사실상 스스로에게 재갈을 물리고야 말았다. 말 그대로 표현할 권리를 팔았다. 이는 성매매의 또 다른 쌍둥이이고, 이 두 번째 요소는 적어도 첫 번째 만큼이나 해롭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학대를 숨기고 내면화해야 하는 상황 또한 학대이다. 강요된 침묵은 학대적이다. - P175

그녀를 아프게 하는 기쁨을 누리려고 돈을 지불한 폭행범이 덜 학대적인걸까? - P175

성매매는 상업화된 성학대이다.
정확하게는 성매매가 성학대라고 인정되지 않은 바로 그 이유로 인해 학대라는 진실된 이름이 성매매에 부여되지 않았고, 성학대가 방해 없이 맹렬히 지속될 수 있는 상업화된 무대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성매매에 성학대라는 진실된 이름을 부여하기 위해 성매매의 진정한 본질로 주의를 환기시켜 합당한 이름을 부여하고자 한다. - P185

우리 성매매와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오늘 이 기자회견에 모여 성매매는 여성 폭력이라고 선언한다. 성매매 여성들은 하루 아침에 일어나 성매매 여성이 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가난, 성 학대 경험, 우리의 취약함을 이용하는 업주들에 의해 선택당한다.
- 『선언문』, 여성 인신매매를 반대하는 연합체 회의, 2005 - P201

"아니, 난 정말로 신경 안 써요."
그녀의 얼굴 표정과 눈에서 어떤 여성들은 성매매 여성으로서 꽤 만족하며 스스로 낙인감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놀랍고도 새로운 이해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틀렸다. 그녀는 속았다. 나는 어떤 여성들이 왜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성매매가 진실로 함축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거짓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내 자신이 그랬다. 수년 전 그 기자가 재차 물었던 바가 정확하다.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질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진실로부터 내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날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특히나 대중 매체에서 내 말을 반복할 사람에게는 정직했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나는 성매매가 실제로 사회와 인류에 해악이며, 여성을 멸시하며 착취하는 성매매를 다른 것처럼 포장하는 행위는 폐단이라고 생각한다. - P206

에로틱 댄서의 증언.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남자들에게 함부로 만져지고, 찔리고, 건드려지고, 성구매 되는 걸 아무도-나 자신도, 다른 여성들도-즐기지 않는다." -페기 모르건, 『아슬아슬한 삶』 - P248

성매매 여성들이 성적 즐거움을 느낀다는 신화는 ‘성매매 여성들이 남자에 의해 구조되고 싶어 한다‘는 유의 사회적으로 통요되는 신화와도 다소 관계가 있다. 성매매에서 이 신화가 유희되는 건 여성들이 아닌 남자들에 의해서다. 구조된다면 구조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 P255

부끄럽게도 어떤 말들은 너무 뻔한 거짓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매매가 일어나지 않는 다른 곳에서 그런 주장을 했는데 진실이라서가 아니라 그랬어야만 했기에 그렇게 말했다. 그랬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그렇게 말했다. 성적인 무력함을 받아들이기보단 주도권 있는 척하는 게 덜 고통스럽고 창피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이 사실은 우리가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피해자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싫었음을 증명한다. - P262

성매매 여성들이 주도권을 가진 체하는 주된 목적은 공공연히 당하는 수치를 없던 일처럼 만들려고 함이다. 이렇게 하는 많은 성매매 여성들의 입장을 백분 이해하지만 성매매가 그 진정한 본질에 부합되려면 쓰디쓴 진실은 폭로될 필요가 있다. 성매매는 주도권의 부재로 정의된다. - P263

성매매를 옹호하는 입장의 허황된 생각 중 일반적인 한가지는 성매매되는 여성이 선택하는 대로 자신의 몸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성매매되는 여성들의 몸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고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타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성매매의 의도이자 목적이며, 여기에 신체적 자주성이란 아주 조금도 없다. - P267

이 구매자들이 여성들의 아버지, 오빠, 남동생, 남편, 아들, 그리고 파트너임을 감안해봤을 때 일반적으로 어떻게 남성과 여성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칠까? 구매자 자신 또한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는 기록되지도 검토되지도 않은 거대한 상실이다. - P280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기능해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열다섯 소녀에게 성매매를 하라고 부추기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을 텐데 그러려면 사람이 얼마나 손상되어야 할까? - P285

(성매매)비범죄화와 합법화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한다는 개념은 성매매의 또 다른 신화이며, 특히나 위험하다. - P314

성매매가 합법이 된 나라들에서 업주들이 근절되었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겠다. 그렇지 않다. 업주의 역할이 지방정부의 조직된 역할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정부가 업주이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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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2-0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성매매 여성들은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 저자는 어떤 계기로 어떻게 그 산업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참 그리고 인용하신 구절 중 첫번째 구절 ‘우리에게 실질적 혜택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착추를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했다‘라고 표현하는 일이었다.‘에서 착취로 수정하셔야... ㅎㅎ

그리고 그 다음 <스페이스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체를 설명하면서 인용하신 구절 중 ‘스페이스는 학대적인 성매매 현실에서 앳존항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해 새로 형성된 국제단체이다.‘에서 ‘앳존항‘은 오타인지 다른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다락방 2019-12-02 14:00   좋아요 1 | URL
오타 지적 매우 감사합니다 ㅠㅠ
제가 글을 등록한 뒤에 다시 살펴야 했지만, 이렇게나 길게 인용해놓고나니 다시 보기가 싫더라고요. 내심 ‘다음에 보자‘ 이러고 패쓰했어요 ㅋㅋㅋㅋㅋ 그리고 인용문 이렇게나 많은 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것도 이게 최대라서 이만큼에 그친겁니다. 입력칸 추가하기가 더는 안되더라고요? 아직 인용하지 못한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앳존항은 생존한으로 밝혀져.... 쿨럭.)

이 책의 3부에서 탈성매매 이후가 나오는데요, 저자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야해서 코카인 중독에서도 벗어나려고 노력하거든요. 탈성매매도 그런 계기라고 이해합니다. 탈성매매 당시에 아이가 이미 있었어요. 탈성매매후에 코카인 중독에 심하게 시달리는데, 결국엔 벗어나게 되거든요. 전문적인 도움이 있었으면 더 나았을 거라는 얘기를 저자가 해요. 구조적으로는 아마 저자가 빚을 지고 어딘가에 소속된 게 아니라 더 나은 상황이었던 걸로 보여요. 저자는 남자친구의 제안(?!)으로 거리성매매로 시작했고 중간에 그 남자친구랑 헤어지거든요. 에스코트도 해보고 업소에도 들어가지만 그런 업소 자체에 구속력이 있었던 것 같진 않아요.

우울과 자살충동에도 시달렸고 동네 사람들이 불편해 아이를 데리고 이사를 가서 새 학교에 넣기도 했어요. 저자가 언제 아이를 낳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이미 성장하긴 했지만 본명으로 이 책을 쓰라고 해준 아들에게 혹여 누가 되진 않을까 싶어 아이를 낳게된 배경은 생략한 것 같아요.
탈성매매 한 후에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존재조차 몰랐던 이모와 고모를 알게 되고, 그래서 중도포기했던 교육도 다시 받게 됩니다.

저자 개인의 능력도 충분히 발휘된 걸로 보여요. 그 안에서 문제점을 보고 인지하고 어떻게 해야 겠다는 의지를 다잡고 하는 것들을, 마음먹는다고 모두가 다 할 수 있는 건 아닐테니까요. 여러모로 대단한 책이었어요.

잠자냥 2019-12-02 14:09   좋아요 0 | URL
역시 약물중독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군요.... 저자가 암튼 여러모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본인 의지도 대단하지만 이모와 고모라는 존재도 참 행운이었군요.

(‘앳존항‘ 과연 어떤 단어에서 나온 오타일까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사전 찾아본 1인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02 14:23   좋아요 0 | URL
네 다른 사람들보다 더한 의지와 실행력도 있었고 운도 작용했다고 보여요. 야속하게도 그 운이 성매매 유입 전에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합니다만... ㅠㅠ


사전 찾아보시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앳존항은 도대체 어떤 항구의 이름일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19-12-02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더 걸 비포
JP 덜레이니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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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이야 분명 존재하지만, 그래도 '이런 거짓말을 하는 여자'를 꼭 등장시켰어야 했을까. 그게 이 책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이다.


2. 미칠듯한 통제광에 거친 남자도 나쁜 놈이지만, 난 너밖에 없어 너를 사랑해 너를 숭배해 이러는 놈도 나쁜 놈인건 마찬가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각기 다른 형태로 나쁜새끼들.

(김숨이 그랬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3. 여자들이 자기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생각했으면 좋겠다. 도대체 자기애적 소시오패스 새끼들한테 왜 빠져들어.. 휴.. 음모 털을 대칭으로 만들라는 새끼가 왜 좋지?


4. 왜 난자는 정자랑 굳이 만나야만 수정이 될까?

"네 이야기를 들으니 그 사람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제이. 그 사람을 피할 생각은 없어?"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가볍게 말한다. "나도 있는데."
"문제 있는 두 사람이 만나봐야 온전한 하나가 되지 못해. 지금 네게 필요한 사람은 착하고 든든한 남자야. 너를 아끼고 사랑해줄 사람."
"슬프게도 착하고 든든한 남자는 내 타입이 아니야."
미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후로는 연락이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전화 안해봤어." 나는 다음날 일부러 가벼운 분위기로 쓴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는다. - P133

"당신에게 쾌락을 주는 행위를 왜 거부하죠?"
"사람은 어떤 행위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쾌락을 순간적으로 탐닉하면서도 혐오할 수 있어요. 그게 옳지 않게 느껴진다면요. 당신이라면 누구보다 이런 감정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요."
샤프의 촉이 지진이 없는 평온한 날 지진계의 바늘이 움직이듯 거침없이 부드럽게 앞뒤로 미끄러진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요, 제인."
"거친 행동들."
"계속해요."
"기본적으로 멍이 들 수 있는 행위요. 힘을 주거나 압박하거나 피부에 자국을 남기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 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건 알아두면 좋겠어요. 나는 정액은 먹고 싶지 않고 항문섹스는 절대 하지 않아요."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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