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사회적 정의나 역사적 사명을 위해 자기 몸에 불을 사르는 사람은 없다. 살아 있어야 정의도 의미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후세계의 절대적 자유와 정의를 약속하는 종교조차 자살을 권고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강요된 죽음만 있을 뿐, 자발적 죽음은 없다. 자살은 목숨이 아니라 관계를 끊는 것이며, 현실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성적비관이나 생계비관 자살이라는 말을 하지만, 성적이나 생계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괴롭히는 사람이 타살한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배척한다고 모두가 죽지는 않는다. 억울해도 발언권을 가진 사람은 삶을 택한다. 말할 기회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소외된 상태에서 언어까지 빼앗긴 사람은 끝없이 저승사자와 싸워야 한다. 승리는 대부분 산자의 몫이지만, 그 대가는 작지 않다. 감금된 상태에서 말조차 빼앗긴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것조차 멈춰야 한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삶은 계산되지 않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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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힘 불온의 건강함
이윤택 <나는 차라리 황야이고 싶다>


절망이 두려운 인간들아
절망의 힘을 몰라
봄날 개나리꽃을 희망이라고 찬양하는 인간들아
불온의 건강함을 모르는 인간들아
불온한 생각이 일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향수병에 젖은 인간들아
절망의 힘이 무너지고
불온한 시가 쓰여지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난 국사범이 될지니
내 얼굴 내 가죽 화살 꿰어 꽃물 들이고
광화문 신호대 빨간 불로 걸려
나른한 봄기운을 뚫고
내 수겁을 수거하러 올 초개 같은 청춘을
기다릴 것이다.

* 국사범: 정치범
* 수겁: ??
* 초개: 지푸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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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4-2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끼고 갑니다.  보관해두었네요. 위악, 절망, 불온.... ...세상은 점점 제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아닐런지... ....

sb 2007-04-2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덜컥 마이리스트를 만들고 말았답니다.
 

- 현재, 장애인 초등교육률은 30% 중등교육률 20% 정도 라고 합니다. 이번 장애인교육법에 대해서도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렬 대표께서 반대시위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법안에 독소조항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

(출처: 한겨레)

“국가 책임을 개인에 떠넘기지 말라”
25일째 단식하는 도경만 장애인교육권연대 집행위원장

최현준 기자

전남 순천에서 할머니와 함께 산 그는 교회에 꽤 열심히 다니는 소년이었다. 교회에서 한센병 환자나 시·청각 장애인을 많이 만났던 소년은 목사가 될까, 특수교사가 될까 고민하다 전북 우석대 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 장애인을 가르치겠다는 꿈을 이룬 소년은 지금, 장애인 교육권을 되찾으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난달 26일부터 단식을 하고 있다. 바로 도경만(37) 장애인교육권연대 집행위원장이다.

“장애인이 도로의 턱을 없애 달라고 목숨을 끊던 시절”인 1989년 대학에 입학한 도 위원장은 교육 현장에 나가기 전까진 그냥 ‘잘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되는 게 소망이었다.

하지만 교사 개인의 노력만으로 장애 학생을 잘 가르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2000년 충남 공주의 한 장애인 학교에서 초등 1학년 담임을 맡았던 때, 26살 민호가 그의 반에 학생으로 들어왔다. 민호와는 다섯 살 차이였다. 민호 말고도 22살, 20살 장애 학생들이 초등 1학년에 입학했고, 반에서 가장 어린 학생이 13살이었다. 도 위원장은 “늦게나마 교육 기회를 얻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나도 헷갈릴 만큼 장애인 교육은 망가져 있었다”고 했다. 그는 “몸은 불편하지만 정신은 말짱했던 학생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만큼 주눅이 들어 있었다”며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긴 결과”라고 말했다.

19일 도 위원장은 25일째 단식해 온 사람답지 않게 맑은 눈빛에 생기마저 돌았다. 그가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바랐던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안의 국회 통과가 눈앞에 다가와서일까? “어제 두 당(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들이 법안의 4월 통과를 약속했다”고 했다. 개인에게 내맡겨 왔던 장애 유아· 고교생의 교육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미가 담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에도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36일 동안 단식을 했다. 2004년엔 장애인 교육예산 확대를 주장하며 23일 동안 단식했다.

2001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특수교육위원회를 만들고, 2003년 장애아 학부모들과 함께 ‘장애인교육권연대’를 꾸린 그는 “이제 장애인들이 국가에서 하라는 대로 했던 시절은 지났다”며 “더 적극적으로 장애인들의 권리를 되찾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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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萬波息笛) - 남편에게

김승희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의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생기지,
그 빈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의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

* 원생동물: 단세포로 된 가장 하등한 원시적인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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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영랑시선> (정음사, 1949)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잦아지다 휘몰아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어사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덕터―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디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요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치

* 만갑: 조선 시대의 이름난 명창 송만갑(1865-1939)을 뜻함.
* 연창: 창을 펼치다.
* 컨덕터: 관현악단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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