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의료보험 2종 신세가 대학병원에 가면 의사나 간호사나 한 끗 차입니다. 똑같단 말입니더. 그 사람들 내 같은 사람 절대 인간취급 안해 줍니다. 경찰들은 한 수 더합니다. 틱틱 반말은 우습고요, 쪽방촌 사람들을 완전 좆으로 봅니다. 내 마, 그때 콱 죽어뿔고 싶고 서러버진다 이겁니다. 내 몸이 아파서 우는 거 같지요? 천만에요! 마음이, 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아서…”

2004~2005년 사이에 전국에서 기초생활수급자가 제일 많이 발생한 지역은 대구였다. 장롱 속에서 숨진 아이가 발견된 곳도 대구였다. …2007년 현재 우리나라 기초생활수급자는 150만 가구, 의료수급자는 180만 세대,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빈곤층만도 200만명에 이른다. …전체 국민의 15퍼센트가 암보다 더 무서운 생계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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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그때가 6월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1987년 5월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이 출간됐을 때 그 책의 지은이 이진경이라는 이름도 처음 세상에 나왔다. ‘사사방’이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던 그 책은 조금 과장 섞어 말하면, 세상을 둘로 갈라놓았다. ‘사사방’을 찬탄하는 사람들은 그 책을 사회과학의 교과서로 삼았고, 경원하는 사람들은 그 책을 서구 이론의 맹목적 추종으로 보았다. 그러나 비판자든 옹호자든 그 책을 읽지 않고는 시대를 이야기하기 힘들었다. 한국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자는 제안은 많았지만, 그 과학적 분석의 방법론을 수미일관하게 제시한 책은 ‘사사방’이 사실상 처음이었다. 1980년대 남한 혁명운동을 대표하는 책을 한 권만 꼽으라면, 스물네 살의 젊은이가 쓴 그 책이 맨 앞자리에 놓일 것이다.

그리고 만 20년이 흘렀다. ‘사사방’의 지은이 이진경(본명 박태호)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맹렬한 탐구 한가운데 있다. 1999년 세운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그가 용맹정진하는 곳이다. 연구와 생활을 함께 하는 이 공동체는 말하자면, 사유의 실험실이고 탐구의 양산박이며 공부의 청석골이다. 지식과 지혜를 훔치고 싶은 이들이 이곳에 출몰한다. 최근 한두 달 사이에만도 그는 이 열린 소굴의 멤버들과 함께 쓴 〈문화정치학의 영토들〉(그린비 펴냄)과 〈모더니티의 지층들〉(그린비 펴냄)을 내놓았다. 그 20년 동안 그가 쓴 책은 몇 권이나 될까. “글쎄, 잘 모르겠는데 20여권 될까 ….” 그 자신도 자기 책이 정확히 몇 권인지 모를 정도로 끝없이 공부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냈다. 책을 낼 때마다 매번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고 때로는 급격한 변곡점을 그리기도 했다.

그 변곡점 가운데 가장 큰 것이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의 만남일 것이다. 1990~91년 시국사건으로 감옥에 있는 동안 소련이 무너졌다. 마르크스주의의 현실태가 파산한 것이다. “그 사태를 보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감옥 안에서 미셸 푸코를 알게 됐다. 푸코의 글 ‘철학극장’을 읽는데, 거기서 ‘언젠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억될 것이다’라는 구절을 만났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출소한 뒤 들뢰즈의 대표작 〈안티오이디푸스〉를 읽었다. “4장쯤 읽는데 뭉클한 것이 솟아올랐다. 변화된 시대 조건에서 혁명을 다시 사유하려는 그의 노력이 감동적이었다.” 이어 들뢰즈의 또다른 대표작 〈천의 고원〉을 공부했다. 그에게 들뢰즈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마르크스주의자로 다가왔다.

말하자면 그는 들뢰지언-마르크스주의자가 됐다. 그에게 들뢰즈는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2002년 들뢰즈의 철학을 해설한 두 권의 두툼한 강의서 〈노마디즘〉(휴머니스트 펴냄)을 낸 것은 오랜 학문적 도제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들뢰즈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들뢰즈의 사유방식을 체화해 자신의 목소리로 재해석하는 것, 그것이 이진경씨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들뢰즈를 사숙하던 그 시절에 그의 정신의 안테나에 걸려든 또하나의 사유가 불교였다.

불교에도 심취 ‘사유의 회통’ 경험

“1999년이었는데,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큰 고통이 돼 내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날 관악산 약수터에 올랐다가 불현듯 깨달음이 왔다.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집착에서 고통이 오는 거구나. 이게 ‘아상’이구나. 그런 깨달음이 들자 ‘차이’가 새롭게 인식됐다. 차이를 적대시하면 그 이질성을 견디지 못하지만, 내 생각을 내려놓고 차이를 받아들이면, 그게 오히려 나를 갱신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불교의 ‘무아 사상’이라는 게 들뢰즈의 ‘차이 철학’과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때 머리를 박박 깎았다. 사유의 회통이라고나 할까.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사상들이 하나로 꿰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남들에게는 서로 적으로 보일 수 있는 마르크스와 들뢰즈와 불교가 나에게는 하나였다.”

그 한 묶음의 사유가 탄생시킨 것이 ‘외부에 의한 사유’ 또는 ‘외부를 통한 사유’라는 독자적인 유물론이었다. 그에게 유물론이란 ‘물질이 우선이고 의식은 물질의 2차적 파생물’이라는 전통적인 유물론과는 전혀 다르다. 본질이나 본성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그것을 둘러싼 외부적 조건과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이 ‘이진경 유물론’의 핵심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것은 ‘연기적 관계’의 산물이다. 우리가 ‘나’라고 말하는 것은 수없이 얽힌 인연의 실타래일 뿐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란, 역사라는 외부가 어떤 것의 본질을 규정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흑인은 흑인이다. 일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비로소 노예가 된다.”(마르크스 〈임금노동과 자본〉) 플랜테이션 농업이라는 특수한 생산관계 속에서만 흑인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의미’란 ‘사건 관계’의 파생물이라고 말한다. 맞고 들어온 아들을 대신해 아버지가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건은, 알고보니 그 아버지가 재벌 회장이었다라는 다른 사건과 만나 ‘돈 많은 자는 법을 우습게 안다’라는 의미를 낳는 것이다. 의미든 본질이든 자기 스스로 고유한 것은 없고 오직 외부적 조건에 따라, 외부적 관계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임을 이진경씨의 유물론은 지시한다.

‘외부에 의한 사유’가 이진경씨의 연구 방법론이라면, 그의 연구 목표는 ‘코뮨주의’다. 이때의 ‘코뮨주의’는 흔히 공산주의로 번역되는 ‘코뮤니즘’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또 공동체주의와도 인연이 멀다. 공동체라는 말을 굳이 쓴다면, 그의 ‘코뮨’은 ‘외부를 향해 한없이 열린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동체는 이진경식 유물론에 근거한 세계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어떤 것도 고립된 개체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우리 몸은 세포라는 생명체 200조개가 모여 이룬 집합적 생명체다. 세포 또한 수많은 하위 개체의 집합체다. 지구는 어떤가.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유기적 순환으로 자기를 유지하는 거대한 집합적 생명체다.

외부로 한없이 열린 공동체 꿈꿔

그렇게 본다면 모든 생명체는 최소단위에서부터 최대단위까지 그 자체로 개체이자 집합체다. 이 집합적 개체를 두고 이진경씨는 ‘중-생체’라고 부른다. 모든 개체는 뭇 생명이 모여 이룬 공동체라는 것이다. 인간 사회만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의 코뮨은 인간이 평등하게 모여 서로서로 선물(도움)을 주고받는 상생의 공동체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외부를 적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외부가 들어와 내부를 더욱 활성화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외부로 열린 공동체의 한 사례가 ‘수유+너머’다. 이 공간에서 벌인 삶의 실험이 없었다면 그의 사유가 이렇게 풍요로워지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 이진경의 대표작들 ■

이진경씨의 지난 20년은 ‘사유의 모험’ 20년이었다. 그 20년 동안 이 모험가가 헤쳐나간 길마다 이정표로 선 책들이 있다.    
 

 

 

 

그의 첫 저작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은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과감하게 수용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저작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자본주의 이후 사회주의’라는 역사발전의 도식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이런 도식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포함한 근대성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결과가 1997년 펴낸 〈맑스주의와 근대성〉(문화과학)이다. 근대성의 여러 영역을 탐색하면서 근대적 주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를 살핀 것이 이 책이다. 근대주의의 모든 산물에 물음표를 던진 이 책에서 근대주의의 포획장치로부터 벗어나 탈근대로 탈주한다는 생각이 구체적인 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2002년 펴낸 〈철학의 외부〉(그린비)는 이진경식 유물론, 곧 ‘외부에 의한 사유’가 막 솟아오른 책이다. 이어 펴낸 〈노마디즘〉은 철학자 들뢰즈에게 바치는 ‘우정의 기록’이었고, 2003년 쓴 〈자본을 넘어선 자본〉(그린비)은 마르크스의 〈자본〉을 이진경 자신의 유물론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마르크스에게서 풀려나 마르크스와 함께 사유한다는 생각으로 썼다.”

그리고 지난해 그는 〈미-래의 맑스주의〉(그린비)를 펴냈다. 오랜 시간 사유를 되새김질한 그는 이 책에서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프롤레타리아를 노동자계급과 구별해 ‘비계급’, 다시 말해 ‘화폐와 권력의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집합’으로 제시하고, 인간의 노동만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오랜 신앙과도 결별했다. ‘중-생체’ 개념으로 개체론(개인주의)과 전체론(전체주의)을 동시에 극복한 새로운 공동체의 그림을 제시한 것도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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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시집살이를 훤희 들여다보는 얄궂은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화려하지 않은 통속적인 운율이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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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 노래
작자미상

형님 온다 형님 온다 분고개로 형님 온다
형님 마중 누가 갈까 형님 동생 내가 가지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뗍데까?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밭에는 당추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둥글둥글 수박 식기(食器) 밥 담기도 어렵더라
도리도리 도리 소반(小盤) 수저 놓기 더 어렵더라
오 리(五里) 물을 길어다가 십 리(十里) 방아 찧어다가
아홉 솥에 불을 때고 열두 방에 자리 걷고
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니같이 어려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시아버니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동세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족새요
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자식 하난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

귀먹어서 삼 년이요 눈 어두워 삼 년이요
말 못해서 삼 년이요 석 삼 년을 살고 나니
배꽃 같던 요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
삼단 같던 요내 머리 비사리춤이 다 되었네
백옥 같던 요내 손길 오리발이 다 되었네
열새 무명 반물치마 눈물 씻기 다 젖었네
두 폭 붙이 행주치마 콧물 받기 다 젖었네

울었던가 말았던가 베개 머리 소(沼) 이겼네
그것도 소(沼)이라고 거위 한 쌍 오리 한 쌍
쌍쌍이 떼 들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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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목은 「관료 장관과 정치인 장관」입니다. '행세와 구체적 실천' 이라는 제목은 제가 따로 뽑은 것이구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최장집 교수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지만, 일간지 칼럼이라 더 살가운 느낌입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직업적인 활동가로 규정했을 때, 늘 제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했던 그 느낌을 말이죠. 이 글을 늘 거울 삼아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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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관료 장관과 정치인 장관
 
지난주 다시 장관 몇 사람이 바뀌었다. 몇몇 언론이 개각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두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목을 끌진 못했다. 이로써 2003년 봄 참여정부 출범 당시 19개 행정부처 장관 중 넷이었던 관료 출신은 정권 마지막 해 열 사람까지 늘어났다. 단정할 자신은 없으나, 현직 장관 열 사람 중 5년 전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것이 장관직의 결격 사유가 될 수는 없다. 또 관료집단을 개혁의 ‘주체’인가, 아니면 개혁의 ‘대상’인가 따위의 흑백논리로 단순하게 재단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의문은 생긴다. 참여정부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 역대 민간정부가 초기에 한결같이 경계하고 배제하고 싶어했던 관료집단이, 나중에 보면 다시 국정운영의 중심으로 약진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떠들썩한 선거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바뀌고 새로운 집권세력이 기세등등하게 정권을 접수하고, 이념적 색채나 노선도 다른 것 같은데, 막상 장관들을 보면 앞선 정부에서 고위직으로 활약했던 그 얼굴 그대로인 연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한 것일까,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일까?

이는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진정한 의미의 집권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다른 민주국가에서의 집권은, 군림하거나 통치하는 ‘행세’가 아니라,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담당하는 구체적 실천으로 나타난다.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정치적 이념과 지향을 구체적 정책에 반영하기 위하여 집권세력은 행정 현장으로 뛰어든다. 그들의 집권은, 외곽에서 추상적 거대담론으로 행정부처를 원격 조정하는 게 아니라, 행정부처 수뇌부에 직접 소매 걷고 들어가 직업관료들과 함께 미시적 사항을 일일이 챙기면서, 공부하고 부딪치고 싸우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정치적 실천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정치인들은 이런 의미의 집권을 ‘거북’해 하는 것 같다. 역대 민간정부 집권세력들에게 통치하고픈 의욕과 열정은 있었을지 모르나, 통치에 필요한 능력과 경험과 자세는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대통령 부근이나 국회에 머물며 행정 관료들의 보고를 듣고 훈계하고 지시하는 것을 선호했지, 근무강도가 엄청나고 책임질 일이 많은 행정부 그 자체의 일원이 되겠다는 노력이나 의지는 없었다. 간혹 장관으로 기용된 사람들도, 그것을 경력과 경험관리 차원의 ‘외도’로 받아들였고, 계기만 생기면 장관직에서 벗어나 먼저의 지위로 돌아가기에 바빴다. 행정부 일에 관심은 많으나 직접 빠져들어 자신이나 위험부담 의지는 없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행정 관료에게만 맡길 수도 없었던 집권세력은, 결국 청와대 기구를 늘리고 각종 위원회와 기획단을 만드는 것을 돌파구로 삼았고, 거기에서 만든 수많은 ‘로드맵’을 행정부에 던졌다.

야당 역시 집권세력의 행정부 진출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참여정부에서의 ‘코드 인사’ 시비가 전형적인 보기다. 그들은 대통령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정치권 인사의 행정부 진출을 배제함으로써 대통령의 통치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그만큼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함으로써 앞으로 자신들에게도 부담이 될 나쁜 관행을 만들었다.

차기 대통령은 ‘정말로 집권’하기 위해 정치인을 장관으로 임명하면 좋겠다. 다만, 그들은 피나는 노력을 통하여 관료집단을 실력과 인격으로 장악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정치인들로 행정과 정치가 일체가 된 집권구조를 만드는 일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중요한 과제다.

이윤재 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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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한겨레신문사 방문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출입구 쪽 수십 계단을 올라온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인터뷰 장소로 온 저자 김도현씨. 역시 몸에 밴 운동가였다. "오면서 계단에 '몸이 불편하신 분'이 아니라 '계단 이용이 불편하신 분'으로 고쳐야 한다. 엘리베이터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으면 몸이 불편할 리 없다."

(인터뷰/'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차별에 저항하라' 펴낸 김도현 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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