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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신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신문이 신문사주와 광고주의 압력으로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아니 비밀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공연한 비밀이, 우리가 정보를 접하는데 있어서 메이저 신문을 선택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왜일까?
신문을 보는 우리는 최소한 신문이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기사를 써내려간다는 기본적인 믿음은 가지고 있고, 객관적인 사실만 주어진다면, 자신의 판단기준으로도 충분히 사건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약간의 오만(?)도 한몫을 한다.

<신문 읽기의 혁명>은,

위에서 언급한 공공연한 사실에 대한 구체적 진술과, (지은이는 실제로 언론사 부장기자이고, 대학 신방과 교수인 손석춘씨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있나?)
또한, 우리가 '편집된 사실로서의 신문' 에 대해서 소극적이나마 긍정하는 만큼, '사실에 미치는 편집의 영향력', 그리고 '우리의 가치판단에 대한 메이저 신문의 지배력'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이, 취재기자의 취사선택으로부터 시작해 취재부장, 편집기자,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거치고 초판부터 5판 6판이 나올 때 까지 편집되는 과정,
취재와 편집의 전 과정을 실제로 지휘 감독(?)하는 신문사주와 광고주, 정치권력의 압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지나친 다단 편집, 50% 가까운 광고 비율, 등 실제 편집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선정성을 보이고 있는지를,

실제 신문지면의 스크린샷과 지은이의 생생한 언어를 통해 옅보는 것이,
우리의 가치판단에 대한 메이저 신문과 그 이면의 권력의 지배력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각성하게 할 것이다.

또한, 지은이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이미지를 심어내는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과, 이에 대한 나름대로 독법의 필요성, 소수자의 권력에 휘둘리는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에 맞선 다수의 조직적인 대응 사례 또한 제시하고 있다.

개인적인 느낌을 얘기하자면,
사실, <신문 읽기의 혁명>은 제목만큼 센세이셔널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해법 또한 조금은 평범한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의 생리에 대해서 옅보기에는 또한 분량이 적은 듯한 느낌도 준다.

하지만, 북클럽 책가지에도 언론과 관련된 칼럼들이 많이 올라오는바,
매일같이 접하는 언론의 이면을 다시 한번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싶은 분이나,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 문제'해결'의식이 있는 분이라면,
선고민한 지은이의 책을 집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책을 읽는 과정이 진정 지은이로부터 일방적으로 받는 과정이 아니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임을 상기한다면,
아직, 모두가 가진 문제의식임에도 해결되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단, 비판뿐인 말잔치가 아닌, 진정 문제'해결'을 위한 목적에서만.

마지막으로,
분량은 아마 한나절쯤,
텍스트 크기는 중학교 교과서 정도이다.

[보탬] 책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내 생각을 잠깐 밝힌다면,
인터넷 이용의 보편화와 게릴라 언론(?)이 대두되면서,
메이저 언론에서 벗어나 우리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돌파구들은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본다.
인터넷의 발달이 정보 독과점을 막을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긍정을 해보기도 하는데..
사실, 이는 중요하면서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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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1.
사회학이란 모름지기 이래야한다는 흐뭇함을 느낍니다.
<현대 가족 이야기>를 써낸 조주은씨의 말 그대로 옮기자면, '자신의 삶을 통째로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조주은씨는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 울산에 살면서 느낀 일상의 갈등을,
결국 한권의 책으로 써냈습니다.

물론, 여느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아내와는 다르게,
대학도 졸업했고 대학원도 다니고 있지만,
그녀가 느끼는 일상의 갈등마저도 다른건 아닙니다.

일주일은 주간 일주일은 야간 노동을 해야하는 남편, 그리고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사원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은,
그녀와 그녀 가족의 일상이면서, 현대자동차 노동자 가족의 삶 일반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느끼는 갈등은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부인이라면 느낄 수 있는 그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갈등을 깊이 고민한 노력의 결과는, 현대자동차 노동자 부인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회학의 혜택이자 매력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
'자신의 삶을 통째로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비록, 정도는 다를지라도, 우리는 매일같이 스스로의 삶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어제 하루 갈등을 가지고 있었고,
오늘 하루 고민이 있습니다.
이런 갈등과 고민은 누구에게나 연구대상이고, 우리는 나름대로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이런 갈등을 해결해나가죠.
또 때로는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 '아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면서 자신의 경험으로 도움을 주기도 하구요.

저는 이런 것들 모두가 사회학을 구성하는 조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남편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많은 여성들 중에서 조주은이라는 여성에게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아마 대학 졸업장과 대학원 학생증일진데,
대학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주어지는 학문적 기회들은,
그런 조각들을 조립하는 능력을 좀 더 키워주었을 겁니다.

일상의 조각을 주워모으는 과정 자체는 다를게 없습니다.

3.
사건의 순서를 따지자면,
대학 졸업이 첫번째이고, 결혼이 두번째, 대학원 입학은 세번째입니다.

결혼을 하고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울산에서 보냈던 얼마간과 그 속에서 느꼈던 풀어낼 수 없는 갈등이,
그녀가 아이를 들쳐업고 서울로 올라오게 했던 이유였던 셈입니다.

풀어낼 수 없는 갈등이 무엇이었는지, 그녀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남편의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서 연년생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건 상상 밖으로 힘든 일이었다. 남편이 밤샘 야간노동을 마치고 아침에 들어오면, 아침상을 차려주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밤을 샌 남편이 숙면해야했기 때문에.
둘째는 들쳐메고, 첫째는 유모차에 태우고서 하루 종일 화봉동 거리를 쏘다녀야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집에 들어가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 때문에 남편이 자고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는게 꺼려졌다. 종일 점심도 거른 배를 움켜쥐고 갓난쟁이 두 아이를 업고 밀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하염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 주부를 상상해보라.
그렇게 힘든데도 왜 하루 종일 길거리를 배회해야 했을까? 그게 차라리 나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울며불며 떼쓰는 아이들을 달래 본 적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밤샘 노동에 지쳐 곯아떨어진 남편도 있었는지. 나는 혹시라도 남편이 깰까 신경이 곤두서고, 차라리 집을 나서는게 당영한 배려이며 내조라고 생각하는 아내이자 엄마였던 것이다.'

'내 안에 갈증이 생겼다. 곧 그 갈증은 갈등이 되었다.
..(중략)..
내 의문과 딜레마에 대해, 그리고 그 의문과 딜레마를 쉽게 이야기할 수도 없는 현실에 대해 강한 궁금증이 계속 일었다. 그리고 어느 날, 스스로 답을 찾겠노라는 다짐도 함께 생겨났다.
..(중략)..
나는 엄마, 아내, 여성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다시 탐구해야 했고, 나와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서울에 올라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고,
자신의 갈등을 풀어내려했던 그녀의 논문은 이렇게 한편의 책으로 나오게 됩니다.

4.
그 시작은 개인의 갈등에서부터 시작했을지라도,
이것이 '사회적'이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서는,
한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말 그대로 '사회적'이어야 하는건데,
그 갈등의 원인이 되는 '사회의 구조'가 무엇인지를 밝혀내야하는겁니다.

갈등은 개인적이지만,
갈등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구조는 일반적이기 때문에,
그 사회적 구조를 밝혀내면 그 혜택은 자신과 비슷한 갈등을 겪는 이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여튼 그러기위해서는,
우선, 잠시 갈등이 가져다주는 감정에서 벗어나, 좀 더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의 경우는,
일주일 단위로 주야간 근무를 하는 남편의 직장,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편과 전업주부인 자신,
그녀가 거주하는 사원아파트의 주부공동체,
그리고 울산이라는 지역의 특수성, 등등을 돌아보게 되고,
관련한 논문과 자료를 수집하고, 옆집 위집 아줌마들과 인터뷰도 합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여기서 한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됩니다.
단순히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가 아니라, '이게 이래서 저건 저렇다'는,
다양한 사회적 조건들간의 '연관관계'를 밝혀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5.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자동차 업계는 대부분 그녀의 남편처럼 일주일씩 주야간으로 일을 합니다.
일주일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 일주일은 저녁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는 것이죠.

이런 노동형태가 신체리듬상 전혀 올바르지 않다는 상식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자동차 업계들이 이런 노동형태를 고집하는 이유는, 설비 투자에 들어간 돈을 최대한 회수해야하는 기업의 생리에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과 같이 대규모 제조업일 수록 설비투자에 큰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고, 새로운 설비투자가 있기 전까지(즉, 효율성의 측면에서 그 기계를 사용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 최대한 기계를 돌려서 자동차를 많이 만들어야하는겁니다.
이것이 24시간 쉬지않고 라인을 돌려야하는 이유가 되는거죠.

고용은 기업의 권한인데,
자동차 업계 전체가 이런 노동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개인의 입장에서는 신체리듬을 따질 여지가 없어집니다.

6.
'주야간 노동'과 함께 자동차 업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시간제 임금'입니다.

현대자동차니 대우자동차와 같은 대공장 노동자들이 5,000만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실제, 책에 첨부된 노동자들의 월급명세서를 보면, 적게는 3,000만원에서 4,000만원까지 되어있는데요. 왠만한 대졸자 취업생의 2배 가까이 되는 연봉이네요.

이런 높은 연봉은 시간제 임금 덕분입니다.
머리 속에 떠올려보시면 대충 알겠지만, 자동차와 같이 대규모 제조업의 경우 호황과 불황일 경우 그 손차이가 엄청날 것입니다.

이런 호황과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탄력적인 운영이 필요하죠.
호황일 때는 최대한의 동력을, 불황일 때는 최소한의 동력을 운영하는겁니다.

그런데, 고용이라는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게 아닌지라 문제가 됩니다. 고용을 하면 임금을 줘야하고, 임금을 주는 것은 자동차를 만들기 때문인데, 팔리지도 않는 자동차를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자동차 업계는 기본급의 비중을 줄이고,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잔업과 특근과 같은 시간제 임금을 광범위하게 도입합니다.
한마디로, 4,000만원이라는 상대적 고임금은, 기본 근무 외에도 매일 2시간씩의 잔업을 하고 휴일 및 공휴일에도 쉬지않고 특근(특별근무)를 해야 받을 수 있는 연봉이라는겁니다.

따라서,
휴일과 공휴일에 쉬고, 아침먹고 출근해서 집에 와서 저녁먹는 사람과,
매일 2시간씩 잔업하고 가끔이든 매번이든 휴일과 공휴일에 특근을 한 사람과는 연봉 차이가 엄청날 수 밖에 없죠.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하루의 여가시간과 휴일을 반납하고 자발적으로(?) 잔업과 특근을 선택하는 이유는,
기본급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시간급이 주어지는 매력(마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7.
잔업과 특근이 높은 비율의 시간급을 가지는 근거는 두가지입니다.
(휴일 특근의 경우는 20만원 가까이 된다는군요.)

잔업과 특근이 일반적인 생체리듬을 깨는 노동인 것이 하나요,
(낮에 일하는 것 보다 훨씬 힘들잖아요.)
호황과 불황시 유동적으로 라인을 돌려야하는 기업의 이윤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한 것이 둘입니다.

이 경우 불황이 되면,
낮은 기본급과 높은 시간급으로 이루어진 현대자동차의 상대적 고임금은 실상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잔업과 특근이야 추가적인 성격이 강해서 고용에 필수적이지 않으니,
잔업과 특근을 없애버리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테니까요.

8.
주야간 노동을 하는 남편과 전업주부인 부인, 그리고 두명의 아이로 정형화되어 있는 울산의 가정경제에서,
'주야간 노동'과 '시간제 임금'이라는 두가지 코드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 가족임금을 벌기 위해서는,
'주야간 노동'과 '시간제 임금'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고,
가족의 생활은 남편의 노동형태에 강하게 종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야간노동을 하고 돌아온 남편의 숙면을 위해서,
아이를 들쳐업고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현대자동차 노동자 부인들의 갈등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2시간의 잔업을 포함해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남편이 있다는 물질적인 조건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해도,
여성들에게 스스로의 삶의 기회를 박탈하고 남편과 가정에만 종속된 전업주부로 내모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10.
그런데,
여성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적극적인 기회를 박탈당한 갈증과 갈등을,
힘들게 노동하는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자식교육에 대한 욕심으로,
달래고, 대리만족하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데에 진정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이에 반하는 뜻으로는 '미봉책'이라는 것이 있는데,
미봉책은 당장의 문제에만 급히 대응하는 것으로, 해결하지 않은 문제의 원인이 다시금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어서 좋지 못합니다.

밤새 12시간 일하고 지쳐돌아온 남편이 안쓰러워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줄 수 있고,
남편의 숙면을 위해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특근 두번 하면 벌 수 있는 40~50만원의 돈을 위해서, 굳이 아이까지 맡겨놓고 낮은 시급의 유통업이나 서비스업에 직장을 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하는 남편을 생각해서 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하더라도 자식은 생산직 노동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
전업주부의 힘든 일상을 같은 남편을 가진 옆집 위집 여성들과의 수다로 털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미봉책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전업주부일 수 밖에 없는 물질적 조건이 되었던,
'가족임금을 전제로 한 남편의 주야간 노동, 시간급 노동'이 변하지 않는 한,
여기에 생계가 달린 가족의 생활형태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이에 종속될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11.
그래서,
조주은씨는 이렇게 꽉 짜여진 틀에서 한발 나아가 '노동시장의 전면적인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주야간 노동과 시간급 노동이라는 노동형태에 대한 규제를 통해서,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주야간 노동이 없어지고, 시간급 노동이 줄어든다면,
남성 노동자들에게도 가사노동을 분담할 수 있는 시간적 조건'은' 확보될 것입니다.

그런데, '은'에 강조를 두고자 함은, 그것은 말 그대로 '시간이라는 하나의 조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여성들 또한 누구에게 종속된 것이 아닌 평등한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가사노동이 분담되어야 하는데,
단순히 시간의 확보만으로 가사노동의 분담이 이루어질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겁니다.

그녀 역시도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고,
동시에 가사노동에 대한 남성들의 의식전환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2.
사실, 남성들에게 생계비를 전담시키고, 그에 따라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전업주부가 되어 가사노동을 하는 현상은,
남과 여, 여와 남간의 고정되어있는 특수성 때문이 아니라, 근대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사회적 역할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근대'를 상징하는 열쇠 중의 하나는 '산업혁명과 제조업'.
대규모 생산설비를 통해 가장 적은 비용으로 대량의 재화를 생산해야 하는 제조업의 생리가,
위와 같은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실제, 제조업 이후에 떠오른 서비스, 금융, IT 분야는 굳이 남성에게 편중할 이유는 많이 없어진 듯 하고,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도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은 필연적으로, 여성들을 주체화하고, 남성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것이구요.

13.
그런데 저는 그녀의 문제의식과 해결책이 좀 더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문제의식은,
노동시장의 전면적 재구조화와 여성의 사회적 진출, 그리고 가사노동에 대한 남성의 의식전환,
여기에서 멈추고있는데,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주야간 교대근무나 시간급 임금, 그리고 가족임금과 같은 노동시장의 형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효율을 통한 최대의 이윤이 지상과제인 기업의 생리에서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의 전면적 재구조화' 역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야간에 멈춰있는 기계와 손실액을 계산해야하는 기업의 생리와 맞대면해야 하는 국면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녀의 기획은 여기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네요.

하지만, '노동시장의 전면적 재구조화'라는 결론은 그녀가 가진 문제의식의 줄기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실제 노동시장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의 풍부한 문제의식을 발견하실 수 있을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
어렵지만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끝으로, 지금까지 얘기한 그녀의 삶의 위치가,
노동자 일반에 있지 않고, 소위 '노동귀족'이라 불리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라는 점을 좀 더 염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 위와 같은 노동현실 보다는,
노동시장의 60~70%에 이른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이 더 일반적일텐데,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60~70% 의 임금을 받고, 고용안정이나 여러 복지혜택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으니까요.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주야근 교대, 잔업, 특근을 하면서도, 가족의 생계비용을 벌기가 빠듯한 것이 이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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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리포트 - 2004년판
홍순영 외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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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경제리포트> (이하, 리포트) 생각보다 재밌네요.
예나 지금이나 도표나 수치는 좀 따분해서 대충 흘려버리고, 흐름만 잡으려고했습니다.

제가 잡은 몇가지 주제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할께요.

1. 고용없는 성장

'노동유연화'의 반대말을 꼽으라면? '철밥통'이라고 아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저는 이게 잘못된 인식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인식에는,
'노동유연화'는 능력에 따라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것이고, '철밥통'은 능력에 상관없이 고용이 보장된다는,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사전적 정의가 강한 편견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리포트를 통해서 보면,
최근의 미국을 비롯한 한국의 노동시장에 대해서 -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생산활동 동맥혈이라면, 가계의 소비는 정맥혈과 같은데,
심장에서 피를 내보내기만 하고, 이 피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갑동이 엄마든 아빠든 취직을 해서 월급을 받아와야, 갑동이가 용돈을 받아 을동기업의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죠.
을동기업은 수많은 갑동이들이 아이스크림을 팔아줘야 계속 기업을 유지할 수 있구요.

한참, 노동유연화를 선전할 때,
기업이 생산의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게, 우선 해고가 자유로워져야, 사업영역이 확장되고 또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는데,
'고용없는 성장'이란, 해고만 자유로워지고, 고용은 창출되지 않는 노동유연화의 현실을 보여주는겁니다.

노동유연화와 고용에 대해서 좀 더 따져보죠.

고용이 이루어지려면, 일단 장사가 잘 되어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사가 잘 되는 분야로 따지면,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조선 정도가 있을겁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었던 석유화학, 철강, 섬유와 같은 2차 산업들은 그저 고만고만합니다.

그런데, 고만고만한 분야에서 새로운 고용을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소세에 있다고 봐야겠죠.
크게 봤을 때, 제조분야나 서비스분야에서는 더 이상 경쟁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축성이 떨어지죠.

경쟁을 결정하는 것은 정보통신분야의 기술이나 마케팅입니다.
반도체나 무선통신기기들이 그렇고, 자동차의 경우는 제조업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자동차도 디자인이 있고, 설계가 있고, 제조가 있고, 마케팅이 있고, 다양한 제조과정이 있죠. 그 과정 중에서 제조분야, 서비스분야는 이미 경쟁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디자인이나, 설계, 마케팅 분야가 경쟁의 우위를 결정하죠.

결국, 장기적인 고용창출은 이 분야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맞는데,
이 고도로 발달한 분야에서 흡수할 수 있는 인력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겁니다.

정치 보고 경제 살려달라고 주문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고용의 문제는 정치보다 경제에 중점을 두고 바라보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실제, 리포트에서 고용과 관련된 부분은, 공공정책 파트 보다는 경제, 기업경영 파트에서 비중있게 다루고있구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고용에 대한 영향력을 여실히 드러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50년에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5%만 있어도 지금의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기술의 혜택이란,
결국, 일할 수 있는 극소수와 일할 수 없는 다수로의 구분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기술은 죄가 없죠.
다만, 일하는 입장에서의 기술과, 기업하는 입장에서의 기술은 크게 다른겁니다. 일하는 사람이야 편하게 일하기 위해서 기술을 개발하지만, 기업하는 입장에선 다르죠.

2. 중국과 인도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하고있는데, 그 속도로 말할 것 같으면 쉽게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계의 원자재 값이 오르는 이유가 중국의 원자재 구매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하니 할 말 다했습니다. 중국의 섬유 철강 분야는 이미 과잉생산 될 정도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제조업 생산 세계 4위, 100여개 품목에서 세계 최대의 생산국, 연간 10%에 가까운 성장률.

우리나라와 중국을 절대비교 할 수는 없습니다만,
덩치 작은 우리나라가 3% 성장할 때, 덩치 큰 중국이 10% 성장한다고 상상하면 대충 짐작이 가실겁니다.

경제란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가 이루어져야 운영될 수 있는건데,
중국이라는 인구 10만에 달하는 소비집단이 생겨났다는 것은 큰 기회인셈이죠.
올 한해 내수부진의 여파를 수출로 막아냈다는 우리나라 경제에서 중국시장의 소비가 큰 몫을 했음은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이라는 나라 역시 소비 뿐만 아니라 생산도 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내다보면, 앞으로 이 나라의 소비가 한계에 다다르고, 소비 만큼의 생산력으로 세계시장을 압박하기 시작했을 때의 효과는 그리 낙관하기 힘들죠.

인도는 어떻습니까.
미국에서 기업의 아웃소싱을 법적으로 규제하려고 하자, 인도에서 무역제재로 위협을 가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인도는 세계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하는 나라로 유명하죠.

이 나라 역시도 엄청난 인구를 가지고있는 데다가, 매년 7-8%의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도의 주력산업은 IT나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인데, 인도의 모 거리가 미국의 실리콘 밸리보다 더 호황이라고 하니 지레 짐작이 가실겁니다.

세계경제에서 인도의 비중이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을 던져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3. 빚의 경제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 행사하는 막대한 영향력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두고 '미국이 강대국이어서' 라고 하면 조금 싱겁죠.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일종의 딜러와 같은 역할을 하고있습니다. 환율이라는 것이 달러를 기준으로 해서 결정이 되니까요.
보통 게임을 하면, 돈 대신 칩으로 게임을 하잖아요. 칩을 사용하는 이유는 게임의 진행이나 교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실경제에서 물물교역이 화폐라는 교환수단을 선택하고, 경제의 크기나 교역의 규모가 커지면서 화폐 대신 수표, 어음, 신용카드, 전자화폐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한가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것은,
세계경제라는 게임에서는 딜러를 맞고있는 미국 역시도 게이머의 한 사람이라는겁니다.
( 원래는 금본위제라고 해서 금을 사용했었는데, 71년에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이를 금지시켰죠. 이것을 변동환율제라고 합니다. )

이 경우, 미국이라는 게이머가 파산을 하면,
게임장에 있는 게이머 전체가 아무 쓸모가 없는 칩을 들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

실제, 미국은 쌍둥이적자라 해서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동시에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데,
경상수지 적자의 경우, 미국 GDP의 5% 약 5,000억 달러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미국이 이 적자를 메우는데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돈을 더 찍어내는 방법입니다. 게임장 딜러가 칩을 더 만드는거죠. 실제로는 미국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을 발행하는겁니다. 미국국민이나 해외투자가들이 채권을 구매하면, 그 돈이 미국정부로 들어가서 적자를 메워줍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돈을 찍어내다보면, 화폐가치가 떨어지게되죠.
화폐가치란 실물경제에 준하는건데, 실물경제는 그대로 있고 화폐량만 늘어나니 화폐가치가 떨어지는겁니다.

화폐가치가 계속 떨어지게되면, 게이머들이 '이러다가 칩을 돈으로 못바꾸는거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게됩니다.
이 의심이 현실화되어서 달러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면, 달러가 중심이 되어 연관을 맺고있는 세계경제는 붕 떠버리는거죠.

작년 한해 미국과 유럽국가, 혹은 중국간의 환율갈등은 이래서 발생합니다.

" 한편, 미국의 구조적 불균형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높아졌고, 이는 외국에 대한 환율절상 압력과 통상압력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미국은 자국에 대해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 일본 및 아시아 국가 등에 대해 '유연한 환율정책'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한, 유로의 달러에 대한 상승폭이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높아, 수출경쟁력이 저하됨에 따라 미국과 유럽간의 환율 갈등도 고조되었다. " - 삼성경제연구원 <한국경제리포트 2004> 48쪽

미국의 달러발행이 늘자, 다른 나라들에서 더 적은 돈으로 칩을 사려고 하고, 미국에선 안된다 원래대로 하자라며 갈등을 일으키는겁니다.

4. 몽땅 외국돈?

금융 부문은 그동안 제가 관심있게 지켜본 세계화라는 이슈에 대해서 현실적인 감각을 보태줄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소유지분이 40% 정도 된다고 하네요.
작년이었나요? 소버린자산운용이 취득한 지분으로 SK하고 경영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냥 흘려듣는게 아니었습니다.
은행의 경우도 제일은행, 한미은행, 등 외국계로 넘어가는 것을 익숙하게 지켜봤습니다만, 보험ㆍ생명 분야까지 넓게 퍼져있는 줄은 몰랐구요.

SK경영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계로 넘어가는데 대해서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해서 언론보도가 이루어졌던 것 같은데, 사실 기업의 국적, 돈의 국적 자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돈이나 기업의 국적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 운영의 목적이겠죠.
필요 산업을 육성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기타 등등의 것을 수행할 수 있느냐 하는 것.

그런데, 리포트에서 분석한 외국계 금융자본의 성향은,
장기투자성향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100%(95.7%) 매매차익을 노린 거래라는 점이라는데,
사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이나 외국계 투자자들이나 별반 다를바가 없으니까요.

뭐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주식이 아닌 실물자산에 투자했다는 통계도 있긴한데,
실물자산이래봤자 부동산이니까 큰 차이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외국계 자본은 내수기업이 아닌 수출기업에 투자했을 뿐이고, 우리나라 자본은 주식이 아닌 부동산에 투자했을 뿐입니다.

5. 기타

글이 많이 길어져서 쓰긴 좀 뭣한데,
가계부채나, 문화산업 동향의 경우는 꼭 한번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고,
자동차 산업과 백화점ㆍ할인점 업계의 세력 재편도 굉장히 흥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에,
사회ㆍ문화텀에서는 얼짱몸짱문화, 웰빙문화, 저출산고령화, 환경갈등, 등에 대해서,
공공정책텀에서는 노동정책과 농업개방문제, 평준화논란, 국민연금제도, 국가균형발전, 등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주의깊게 살펴야 할 부분은 공공정책텀인데, 여기서 다루기는 다소 곤란스러운 내용들이 많이 있는 것 같네요.

조금만 더 부지런했더라면 꼭 구입할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여튼 현란한 수치들만 무시할줄 알면 지극히 일상적인 얘기들의 순차적인 나열이니 만큼 연말에 어울리는 책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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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꿈
배일도 지음 / 위즈덤아카데미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1.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도둑이, 지하철에서 퇴근길 시민의 지갑을 여럿 훔쳤다.

이 때 누군가가 " 내 지갑! " 하고 외쳤고,
도둑은 열린 문을 박차고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순간 자신의 지갑도 없어진 것을 깨달은 서너명의 피해자들이 도둑을 뒤쫓는다.

한참을 쫓아 따라잡은 도둑은 품에서 흉기를 꺼낸다.
그리고, 1:4 의 싸움이 벌어진다.

흉기를 가진 도둑이지만, 서너명의 협공을 당할 수가 없었고 땅에 쓰러진다.
지갑을 도둑맞은 피해자들은 도둑을 제압하기 위해 몰매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목격한 또 다른 시민이 나타나 싸움을 말린다.
비겁하게 4명이서 1명을 몰매하느냐는 것이다.
평소, 모든 싸움은 잘잘못 가릴 필요 없이 쌍방 모두의 과실이라고 생각해오던 이 사람은, 서로를 화해시키려 애를 쓴다.

2.
'21세기 새로운 문명 전환 시대의 생존법을 찾는 한 노동운동가의 자전적 에세이'라 선전된,
배일도씨의 <공존의 꿈>은 나에게 이런 그림으로 다가온다.

이 선배 노동운동가가 시종일관 주장하는 '공존의 철학'이란,
결국,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재판에 불과한 '민주적 시장주의'라는 도구를 가지고,
두 계급을 화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신변잡기적인 에세이라지만,
그가 10년 가까이 고민했다는 노동운동의 미래는 몇줄에 불과하다.

정말 몇줄.
계급투쟁(그는 '대립구도'라고 표현했다.)은 비과학적이며, 현실적 대안이 사회복지제도에 기반한 '민주적 시장주의'라고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나머지 글의 대부분을 근거없는 '공존의 철학'이 뒤덮고 있다.

3.
물질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그저 공존의 가치가 가진 우월성만 나타내는 것이 공존의 철학이라면,
그것은 감정적 화해와 다를 바가 없다.

계급투쟁과 감정적 화해.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다른 영역의 언어인 것이다.

유물론이니 관념론을 구분하는 현학적인 태도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 화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그것이 단지 관념적 언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존의 철학'은 그가 진보라 규정한 '실천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념적 계몽은 계급투쟁의 물질적 기반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배 노동운동가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더욱이 그가, 오늘날 노동운동의 전진을 가로막는 '관료'의 한 사람으로 상징되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가 공존의 철학을 세웠다는 10년은,
남한 노동운동이 후퇴한 10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쉽다.
그가 공존의 철학을 실천하는 행위는,
계급투쟁과 갈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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