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활동 입시반영의 전제 [04/11/07]
 
교육인적자원부는 2008학년도부터 비교과 영역의 활동을 교과 영역의 활동과 균형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2007학년도 고교 신입생부터 교과별 독서활동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여 대학입학 전형요소로 반영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것은 선진국에 비해 독서량이 적은 우리 학생들에게 독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교사의 업무 부담이나 사서 교사 부족, 도서실 장서 부족 등을 들어 제도 시행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도 있다. 또한 독서활동을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 요소로만 강조하게 되면 본질적인 의미는 퇴색하고 점수 따기로 전락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도 있다. 이에 학교 교육에서 독서 교육이 체계적으로 시행되고 학생들의 독서활동이 대학입학 전형으로 반영되려면 몇가지 기본 전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독서활동이 대학입학 전형으로 반영되려면 몇가지 전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독서 교육은 지식기반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기에, 교육개혁의 중심 의제로 삼는 인식이 필요하다. 또 독서 교육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교육 프로그램임을 인식해야 한다. 학생들의 독서활동에 필요한 여건도 개선되어야 한다.

우선, 학교 독서 교육은 지식기반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교육개혁의 중심 의제로 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3~5년마다 정보의 양이 갑절 이상 증가하는 시대에서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유용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해석·판별해내고, 이를 재구성하여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데, 이러한 능력은 체계적인 독서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독서 교육을 진흥하기 위한 학교도서관 건립과 범사회적 독서 운동 전개, 정보 문해 프로그램 등의 독서문화 인프라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것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둘째, 학교에서의 독서 교육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교육 프로그램임을 인식토록 해야 한다. 2002년 말 현재 일본 학교의 30% 정도에서 수업 시작 전 10분 간의 ‘아침 독서 운동’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의 성적 향상이나 수업 분위기의 개선은 물론, 집단 따돌림이나 결석·지각 등 학교 부적응 현상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유사한 교육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셋째, 학생들의 독서활동에 필요한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독서량이 일본보다 뒤지며, 학교의 독서 여건도 현저하게 뒤떨어진다. 2002년을 기준으로 일본의 고등학교는 평균적으로 2만2198권의 책을 갖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는 6236권에 불과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초·중등학교의 전담직원은 학교당 0.29명으로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사서 교사 없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인 데 비해, 일본은 2002년 말까지 12학급 이상의 모든 초·중등학교에 사서 교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하였고, 2002년부터 5년 동안 학교도서관 도서 구입비 예산으로 6500억원을 책정하였다.

학교 교육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반영할수록 사회로부터 그 효용성을 인정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독서활동을 단순히 대학 입시 제도란 기술적 변화의 메뉴로만 제시하지 말고 국가 경쟁력을 위한 시대적인 교육개혁 프로그램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절실하다. 나아가 지식기반 사회에서 요구하는 평생 학습자의 소양을 학교 교육을 통해 제대로 기를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명주/공주교대 교수, 교육행정학)=한겨레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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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언론이 주목한 책 이야기 (11/1-11/6)

지난 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신간은 휴머니스트에서 펴낸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스티븐 컨지음, 박성관 옮김)입니다. 이 책은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이라 불리는 1880년에서 1918년까지의 근대 유럽사회의 실체와 그 시대의 사건들이 현대사회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문화사 연구서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1880년부터 1918년까지의 38년간이 현대 세계를 결정적으로 규정했다고 말하고, 문학, 회화, 건축, 철학과 심리학, 과학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물들과 사건 및 작품들을 통해 그 당시 유럽사회는 어떠한 분위기였고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그 실체를 파악하였으며 이성의 정점에 와 있다고 스스로 믿었던 서구사회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빠져들게 된 이유를 고찰하고 있습니다.

창비에서 나온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무엇이 문제인가」(신장섭 외 지음)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1997년 경제위기와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와 새로운 시각을 담은 경제서적입니다. 14년간 경제신문사 기자생활을 했던 신장섭 교수와, 『사다리 걷어차기』로 뮈르달 상을 수상한 장하준 교수는 금융위기에 대하 통념으로 굳어진 제반 사실들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한국의 경제시스템을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조명하면서 IMF와 한국정부가 실행한 기업구조개혁 프로그램 배후의 논리에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한국경제의 성장의 활력을 잠재우고 오히려 국민경제에 커다란 비용을 초래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의창에서 출간된 「경제학의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윌리엄 브레이트 외 지음, 김민주 옮김)도 눈길을 모았습니다. 1986년에 처음 출간 된 이 책은 당시 7명의 수상자를 담아 출간하였고 이후 나온 4판에는 루카스와 헤크먼 등 11명의 수상자가 더 추가되어 총 18인의 노벨상 수상자 들의 '경제학자로서 나의 진화'란 강연 주제로 각기 다른 생각과 선택에 따라 자신의 인생과 경제학 이론에 대하여 풀어 놓았습니다.

역사비평사에서 출간된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신동원지음)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면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역병을 통제 할 수 없었던 시대의 괴질 콜레라를 비롯한 다양한 병들을 다루고, 종두법과 제중원의 사례를 통해 개항-개화기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길사에서 펴낸 「학벌사회」(김상봉 지음)는 학문적 연구와 이론적 해석을 시도한 책으로 학벌이라는 왜곡된 사회적 공동주체성에 맞서 학벌사회에서 학벌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악에 지배당하고 있는 청소년기를 매혹적으로 탐색하는 아멜리 노통브의 최신작「앙테크리스타」(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가 문학세계사에서 나왔습니다. 이 책은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자신감으로 가득한 매력적인 소녀 크리스타와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소심하고 고독한 블랑슈를 통해 청소년기의 고뇌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남자의 이미지」(조지 L. 모스 지음, 이광조 옮김) 는 저명한 역사학자로서 민족주의, 인종주의, 나치즘 등에 관해 연구해온 조지 L. 모스가 말하는 근대 서구사회에서 남성성의 스테레오 타입 형성 과정 연구서입니다.

샨티에서 나온 「레이첼 카슨 평전」(린다 리어 지음, 김홍옥 옮김)는 환경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일깨운 과학자이자, 자연의 경이로움을 온 인류에게 심어진 시인이며, 20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100인으로 선정된 레이첼 카슨의 삶을 미국 워신턴대학교 환경역사학 연구 교수인 저자가 10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묘사해낸 책입니다.

끝으로 지방신문에서는 평사리에서 나온 「고릴라 이스마엘」(다니엘 퀸 지음, 배미자 옮김)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세계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인간 중심주의 신화의 파괴적 속성을 소크라테스 산파술로 파헤친 녹색운동의 기념비적 소설 입니다.

이밖에 대산문학상 수상작과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내한으로 효형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나는 걷는다」가 언론의 눈길을 받았습니다.


북피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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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고향  [04/11/07]
 
신문에서 향기로운 기사들을 읽었다. 늦가을의 주말을 그 향기에 묻혀 지내며 문학의 소중함을 새삼 깊이 느꼈다.

미당 서정주 시인(1915~2000)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질마재를 뒤덮은 노란 국화는 사진을 보는 것 만으로도 들판에 진동하는 국향을 맡을 수 있다. 미당 시문학관 해설자인 서동진씨와 양돈업을 하는 아마추어 시인 정원환씨 등 마을 사람들이 7만 여 포기의 국화를 심어 이 엄청난 꽃동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5천여평의 야산에 국화로 시를 썼다. 큰 시인을 배출한 고장의 벅찬 자부심으로 쓴 그 엄청난 시의 들판이 햇볕 속에 눈부시게 빛난다. 꽃 속으로 난 오솔길을 어린이들이 줄지어 걷고 있다. 그 아이들이 미당의 시 ‘국화 옆에서’를 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나도 그들과 같이 합창으로 시를 외우고 싶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시의 마지막은 더 많은 사람들과 더 크게 합창하고 싶다.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는 서정주 선생님이 잠들어 있는 산소까지 뒤 덮고 있다. 서선생님이 짙은 전라도 억양으로 ‘국화 옆에서’를 낭송하던 생각이 난다. 그가 낭송하는 ‘자화상’ ‘선운사 동구’ 등도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있어서 우리는 어떤 빈곤 속에서도 초라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깨닫게 된다.

또 다른 기사는 박경리 선생님이 지난 주 50년 만에 통영을 방문하여 고향 사람들의 따듯한 환영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동행했던 기자는 작가와 고향의 만남을 감동적으로 스케치하고 있다.

한국 문단의 거목이 된 자랑스런 통영의 딸을 맞는 시내 곳곳에는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었다. “박경리, 박경리, 박경리”라는 외침으로 환영한 현수막도 있고, “박경리 선배님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통영초등학교 후배들의 현수막도 있었다. 그가 강연하러 통영문화회관에 들어설 때 강당을 가득 메운 고향 사람들은 기립하여 “고향의 노래”를 합창했다고 한다.

“왜 이렇게 고향에 늦게 왔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향에 오지 못했던 지난 50년은 생존투쟁의 나날이었습니다. 얼마 안 되는 고료로 생계를 꾸려야 했고, 대하소설 ‘토지’에 매달려 25년을 바쳤고, 원주에 토지문화회관을 세우고 자리잡기에 10년이 흘렀습니다”라고 그는 늦어진 귀향을 설명했다.

그는 또 “제가 통영에서 태어나고 진주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토지’를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했다. 민란의 시발지였던 진주, 예술적 감수성이 넘치는 통영의 모든 것이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고백으로 작가는 뜨겁게 고향과 재회했다.

오래 전 원주의 선생님 댁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손수 만드신 생선요리를 손님들에게만 권하고 자신은 손대지 않았다. “통영 사람은 다른 지방 생선이 입에 안 맞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통영 사람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번에 선생님은 고향의 생선을 맛있게 드셨을까.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각 지방이 자기 고장 출신 예술가들을 제일의 재산목록으로 챙기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예술가들은 고향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예술가들은 고향을 자랑스럽게 하고, 그 고장을 풍요롭게 하고,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작품의 무대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지금은 영화나 TV드라마의 무대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차츰 시와 소설, 그림 등으로 대상이 넓혀질 것으로 기대 된다. 그런 작업을 통해 국민 모두가 문화 예술의 소중함에 눈 뜨고,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가을이 가기 전 질마재에 찾아가 국화 동산을 거닐며 ‘국화 옆에서’를 외우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제 질마재의 국화 동산은 시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재산이 됐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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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전집 출판대상 그들만의 리그?]

아동전집은 본디 출판으로 쳐주지도 않았다. 아동문학의 경우, 기존의 한계를 깨며 진정한 새로움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늘 주어진 주제를 표현만 바꾸는 ‘반복’만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아동출판은 일단 외국 것을 무조건 ‘베껴’ 자본을 축적하기에 바빴다. 베끼는 것도 엉망이기 일쑤였다. 여러 그림책을 전집으로 묶을 때는 원서의 판형을 무시하고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크면 자르고 작으면 키워서 동일한 판형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출판의 폐해를 지적할 때면 늘 전집이 거론되곤 했다.

고가의 전집은 무엇보다 책의 질보다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앞세운다. 어른의 관점에서 어른의 기호에 맞추면서 획일화한 체제에 많은 내용을 우겨넣다 보니 다양성이 훼손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전집들을 고평가하는 일이 최근 벌어졌다. 지난 1일 첫 수상작을 낸 ‘한국출판문화대상’ 말이다. 이 상은 ‘대형기획’이란 명분 아래 전집으로 수상 자격을 한정했다. 잠재력과 시장점유율, 영향력이 작지 않지만 서점에서 쉽게 살 수 없고 적절한 평가 기준이 없다 해서 무관심 영역에 머물렀던 전집에 대한 출판사상 최초의 평가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상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창작동화를 교과학습에 연결시킨 것에 저작상을, 성인에게 인기 있다 해서 〈삼국지〉를 아이들용으로 만든 것에는 기획편집상을 주었다. ‘디즈니’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도 수상작에 있다. 이런 유형의 책들은 그동안 누누이 출판의 폐해로 지적되던 것들이다.

개발비와 인력만 많이 투하되면 무조건 ‘종합결정체’인가? 지금까지 전집류가 제 대접을 받지 못한 점을 반성하지도 않고, 오히려 기존 한계를 깨면서 국제적 수준으로 올라선 단행본을 아예 배제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려 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상의 주최자 중에는 상의 비용을 댄 한국출판경영자협회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포함돼 있다. 처음부터 이 주최 단체들 소속 출판사가 상을 받게 하자는 발상이 깔려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떨치기 어렵다. 돈을 벌었으니 ‘권력’을 쥐었다고 착각하고는 이제 그 권력으로 문화적 ‘권위’마저 챙기겠다는 생각이 개입됐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공정성을 상실한 상에 문화관광부와 언론사까지 함께했으니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일까? 내년부터는 어린이도서상, 과학기술도서상 등을 합쳐 명실상부한 ‘최고의 상’으로 키워가겠다고 한다. 그 상도 ‘회원들의 나눠먹기’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출판단체가 선정하는 대부분의 상이 이런 식이다.

행정자치부는 해마다 문화의 날에 시상하는 훈·포장에서 출판은 제외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문화관광부에 했다 한다. 다른 분야와 격이 맞지 않아서일까? 집안 내부의 ‘나눠먹기’ 행태에 질려서일까? 이런 대접을 받지 않으려면 이익에 따라 찢어져 집안싸움하고 있는 출판단체들이 발전적 해체를 통하여 하루빨리 재통합을 이뤄야 할 것이다.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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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돌아온 ‘새침떼기’,슬프고도 애잔한… [04/11/05] 
 
은희경이 돌아왔다. 그는 그동안 변한 한국사회가 적응이 안된다며 엄살을 떤다. ‘도시에 처음 온 부시맨’처럼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희경은 2년여에 걸쳐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학의 방문연구원으로 지냈다. 소설 쓰고 텃밭 가꾸며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고 로키산맥으로 산행, 태평양으로 바다낚시 쫓아다니는 등 심적 여유의 삶을 살았다.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본 계기가 되었고 생각의 크기와 거리 감각 등이 달라졌다고 한다.

은희경은 자타가 공인하는 새침데기다. 교양 있고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로 타인을 대한다. 가끔은 한없이 망가지고(?) 싶을 때도 있다지만 겁이 많아 완전히 망가지지도 못한다. 그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금방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지인들을 자주 만나는 것을 자제한다. 그래서 등단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교류하는 ‘문우’가 그리 많지 않다. 아마 너무 어른스럽게 어린 시절을 보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장편소설 〈새의 선물〉을 읽어보면 안다.

은희경은 전북 고창에서 유년을 보내고 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이를 보다 못해 부모님은 밤엔 책을 못 읽게 했다. 그래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뒤집어쓴 이불 속에서 전등을 켜고 책을 보았다. 초등학교 때 이미 문예반 활동을 하며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했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더 이상 작가의 삶을 미룰 수 없다’는 각오로 한 달간 휴가를 내어 서울을 떠나 다섯 편의 단편을 썼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5년 서른여섯의 나이에 중편 〈이중주〉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리고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은희경과의 첫 만남의 장면을 기억할 수 없다. 그의 기억을 빌리면 2000년 현기영 선생의 문학상 수상식 뒤풀이에서라고 한다. 불콰한 얼굴로 과메기 안주와 막걸리를 권하면서 자신에게 집적거렸대나…. 하지만 1998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내 판화달력과 교환해 읽었던 기억이 있으니 그 이전인 것만은 틀림없다.

자신의 소설에 대해 한마디 하라고 하니 ‘비 오는 가을날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은 풍경’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우리가 앉아 있던 찻집의 창밖 풍경을 그대로 묘사하는 순발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은희경은 어릴 적부터 ‘초저녁의 달을 쫓아다니는 조그마한 별을 볼 때마다 슬프고 애잔한 느낌이 들곤 했다’고 한다. 그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난 후에 느끼는 페이소스의 뒷맛을 그의 장서표에 새겨 넣고 싶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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