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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안목을 길러 보세요 [04/10/03]
[편집자레터] 세계인의 안목을 길러 보세요

“아홉살 난 내 딸만큼도 외국에서 지내보지 않은 사람이 또 미국을 전쟁으로 몰아 가는군.” 뉴스위크지 기자 출신이 아들딸과 함께 한 세계 일주 여행을 기록한 어느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대목입니다. 여기서 그 사람이란 바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져내리던 날, 우연히 싱가포르에 머물던 그 책의 저자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이렇게 바다 건너에서 보면 부시가 인식하는 세계와 지구촌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 사이에 간극이 분명히 보이는데…”라고요. 맞습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눈을 크게 넓혀줍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주지요.

이 저자의 가족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산호초가 안고 있는 환경 문제나 멸종 위기에 처한 인도네시아의 오랑우탄을 살피기 위한 사전 조사가 너무나 철저했습니다. 일반 교양서는 물론이고 연구보고서까지 뒤지더군요. 그렇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산 지식을 가르치는지라 1년 가까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전혀 걱정이 없었습니다. 여행의 묘미를 잘 알고 있었지요.

여행을 너무나 좋아하고, 또 거기서 인생의 의미를 건져내는 소설가 함정임씨의 커버스토리를 꼼꼼히 읽어보세요. 그 자체로 찌든 삶에 청량제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에 ‘아테네’가 아니라 ‘세계’라고 대답했다지요. 또 보들레르는 ‘여기가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라고 외쳤답니다.

여행의 유혹을 뿌리치기 무척 어려운 계절입니다. 당연히 여행을 떠나야지요. 조금 더 욕심을 부려 책도 몇 권 꾸리면 어떨까요.

최근 한 출판사 사장이 인문 분야의 고사(枯死)를 우려해 낸 ‘성명서’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초판 1000부만이라도 공공도서관에 비치될 수 있다면 사장되어 가는 수많은 값진 원고들이 빛을 볼 수 있을텐데…”라는 무언의 외침이 헛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중앙일보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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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성년의 날 생각해보는, 내가 스무살에 읽은 책!

서른다섯 살이 된 소설가 김연수는 <청춘의 문장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때로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군대에서 깨달은 '삶의 유일무이한 1대 비밀'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깨어나봐야 날이 저물지 않았음을 알고는 꿈만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한 사람의 삶에서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란 없지만, 스무 살은 왠지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서른 살, 마흔 살과는 또다른 느낌. 이제 더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아쉬움과 안도감, 조금도 예상할 수 없었던 나의 미래... 알라딘 편집자들이 자신들의 스무살에 함께 했던 책과 음악, 영화를 고백합니다. 당신 기억 속의 스무살은 어떤 모습인가요?

 
 
댄스 댄스 댄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대학교 1,2학년은 갑작스레 닥친 전공서의 홍수,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양사나이에게 뭔지 모를 연민을 느낀 동아리 사람들은 축제 때 양사나이 코스프레를 하자고 발악하며 외쳤지만 나를 포함한 극소수를 제외한 전체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축제 당일까지도 폴리천을 뜯어와 양사나이 옷을 만들던 나를 어쩔 수 없이 끌어내던 하루키광팬 선배는 통렬한 눈물을 흘리고...라는 것은 좀 그렇지만, 어쨌든 내 주위 모든 이들이 하루키에 대해 정체불명의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었던 것 같다.
 
그 후 3, 4학년 때에는 어쩐지 하루키 책을 들고 서 있는 여학생을 보게 되면, '신입생이로군, 훗'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하루키=사회에 발을 들인 이들이 읽는 첫 소설'이라는, 이상한 나만의 공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접한 <먼 북소리>, <우천염천>같은 하루키는 또다른 맛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한 번 맛들이면 새우깡처럼 손이 가고, 찾게 되는 하루키들의 소설. 나의 20대가 다시 돌아온다면 여전히 강.력.추.천.이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삼십세
잉게보르크 바하만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스무살? 스무살에 읽은 책? 난데없는 질문에 잠시 멍하다. 스물에 나는... 세상에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고, 진달래와 개나리와 햇볕 화창한 날을 못견뎌했으며, 봉숭아물 든 손톱을 아끼고 기차 꼬리를 밟으려 뛰어다니는 친구를 조소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세월이었다.
 
그 어이없는 1년에서 책과 관련된 일은 딱 하나 있었는데, 어느날 나는 친구네 학교 축제에 놀러가 호수에서 배를 타고, 거기에서만은 영광이 채 사라지지 않았던 O 그룹의 공연을 보고, 내가 다니던 학교와는 확연하게 다른 학교식당 밥의 양에 잠시 압도당했다. 그리고 친구와 헤어지고 나오면서 역 앞 서점에서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를 샀다.
 
스무살의 찬란함을 즐길 수 없던 나는 매우 당연하게 서른에 대해서도 아무런 암시를 얻지 못했고,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채 좋은 세월을 보냈다. 황지우가 말했던가, 최선을 다해 늙어가겠다고. 나에게 스무살은 최선을 다해 늙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나이였고, 그랬기에 지금에 와서 아름다운 시절이다.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모순
양귀자 지음 / 살림출판사
 
내 나이 스무살, 내가 읽은 책은 양귀자의 <모순>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스물 여섯의 주인공 안진진이 자신의 신상명세서를 읽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름에 얽힌 이야기, 좋아하는 것, 그리고 수중에 가지고 있는 사백팔십만원 정도의 재산,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을 이야기하려던 진진은 자기의 신상명세서에 쓸만한 이야기들이 없음에 잠시 머뭇거린다. 자기의 삶이 겨자씨 한알도 심을 수 없을만큼 양감이 없다는 사실에 결국 눈주위를 타고 내리는 눈물..."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이렇게는 살지 않겠어..." 스무살의 내 머리속에 가장 인상깊게 자리잡던 장면.
 
스무살 때 나는 나중을 떠올려보며 정말 후회없이 가득 채우겠다고 생각하며 살았고, 막상 스물 여섯이 된 나는 아직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내 양감을 채우기 위해 하루하루 질문을 던지며 살아간다.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김광석 4집
김광석 노래 / 신나라뮤직
 
일어나 - 김광석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 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끝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수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끝이 없는 말들 속에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 매일 흔들리겠지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 살아 있는 걸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 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 버리지
 
김광석 4집. 94-5년. '스무살' 한 마디에 제일 먼저 생각난 노래.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그 순간을 추억하며.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처음 만나는 자유
제임스 맨골드 감독 / 콜롬비아
 
[Girl, Interrupted], 내 작은 세계는 깨어졌다.
세상은 텅 비어 있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다. 무엇을 해도 심심했고, 무엇을 느껴도 막연했다.
 
"삶은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는데, 나는 결정하는 게 두려워 결정지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며칠 후면 스물 두 살이다. 내가 이 영화의 청춘들처럼 얽혀있는 삶을 산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조바심내면서, 그리고 아주 애틋하게 살자는 나의 열아홉살 부풀음은 다 꺼지고... 삶을 산다는 게 이렇게 쉬운 건가 하는 생각에 울고만 있다. 아니, 울지 말자. 스물 한 살의 내가 열아홉의 나와 같을 수는 없으니."
 
영화를 보고 남긴 짧은 메모. 그즈음 무언가에 나를 던져두고 있었는지 떠올린다. 마음의 기억보다 몸의 기억이 직관적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가슴부터 눌려온다. 가슴이 이렇게 생생하게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저 글을 보며 묻어나는 웃음을 거둬야겠다. 지금의 눈으로 스물 한 살의 나를 바라보지 말아야겠다. 그 시절의 삶은 늘 거기에 있으니... 같은 이유로... 지금 나의 삶도 다만 여기에 있을 뿐이다.
 
오랜만에 이 영화에 삽입됐던 노래를 불러본다. "When you're alone and life is making you lonely, you can always go-downtown~ , When you've got worries all the noise and the hurry seems to help, I know, downtown~" 하는, 길을 걸으며 혼자서 중얼거리곤 했던 노래. 시간을 넘어서 그 시절의 공기가 다시 스며드는 듯 하다. 반갑구나... 다행히 멀리 있어... 반갑구나.
 
사회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인싸이클로피디어브리태니커 지음 / 한국브리태니커 펴냄
 
내 스무 살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다. 도서관 제일 아래층 참고도서란에 나란지 줄지어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그때는 인터넷이 막 시작되던 시절이라, 월드와이드웹도 초창기였고 - 이러고 보니 내 스무 살이 엄청 옛날 같다!! - 무엇인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펼쳤다. 지금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복사해둔 파일이 꽤 있다.
 
20살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신봉자였다. 그때 나는 이른바 어떠한 주제 하나를 잡아서 그에 관련된 책을 전부 읽어치우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뭐든 모르는 게 있으면 무조건 브리태니커를 찾았다. 그때 만들어둔 파일을 보면, 정말 이대로만 했다면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맨 앞장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복사한 항목이, 그 뒤에는 읽어야 할 참고도서 목록이 10장 정도(!) 빽빽하게 쓰여져 있다. (이 글을 쓴다고 찾아보니 라틴어 문헌에 해외저널, 영인본도 적혀 있었다.) 그 때는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그 순간만이 정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든, 도시든, 추상적인 개념이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요술처럼 다 씌어져 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간결하게 사실만을 절달하는 백과사전식 문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디론가 가기 전에 꼭 지도를 챙기듯, 지적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브리태니커 사전을 펼쳐 사전 지식을 점검한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좋아. 그럼 다음 목적지는 저 책이다. 그렇게 지적여행을 떠났다. 내 스무살에 이 책들을 나침반 삼아 참 많은 책을 읽었다. 스무 살은 무엇인가 알고 싶어 안달이었다. 서른을 코앞에 둔 지금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 안달이다. 그래서 요즘 제일 많이 읽는 책은 지도책이다.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곽재구 지음 / 한양출판 펴냄
 
돌이켜보면 나의 스무살은, 괜히 아프고 아파야 한다고 생각하던 이상한 나이였다. 갑작스레 다가든 넓은 세상 앞에 어찌할 줄 몰라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아는 양, 노래하고 술마시고 비틀거렸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스무살에 읽었던 책 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이 유독 기억에 남는 까닭은. 시작과 끝이 있는 여행, 지난 시간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시선, 삶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찬한 언어로 풀어내는 시인의 기록. 여행이란 결국 자신과의 만남이다. 시인의 눈을 빌어 남도의 섬과 바다를 보고, 돌이켜 나를 보았다.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책이기도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 속의 공동으로 괴로워할 때, 그 안을 바닷냄새 묻어나는 훈훈한 바람으로 채워주었던. 내 스무 살의 책.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녹색평론선집 1
김종철 엮음 / 녹색평론 펴냄
 
전공을 화학으로 정한 스무 살, 친구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전공공부의 한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소설책이나 뒤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구미에 맞았던 나로선 전공이 과학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소수의) 다른 친구들처럼 사회운동에 관심이 가져지지도 않았다. 그 때, 도서관에서 <녹색평론선집>을 만났다.
 
그 유명한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도 여기서 처음 읽었고, 리프킨이란 이름도 처음 들었다. 후에 <오래된 미래>로 '히트'를 치게 되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글도 만났다. 또 기술과 과학의 사회성에 대해 분석한 여러 글들(특히 '나는 왜 컴퓨터를 안 살 것인가'라는 꼭지는 그 센세이셔널한 제목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내가 전공으로 택한 학문이 그저 똑똑한 자들의 지적 경주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이 학문에도 입장과 신념과 윤리라는 것이 필요하구나!
 
스무 살에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전공에 대한 긍지와 책임감은 고사하고 환경 문제나 기술 정책 문제 등에 대해서도 무감한 채 살았을 것 같다. 책을 읽은 직후 '그래, 나도 평생 무엇무엇은 하지 않고 무엇무엇은 하면서 살 테야'라고 결심했던 내용들 중 현재까지 지키고 있는 것은 한두 개 밖에 없다. 그래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친구들이 '너는 자동차 안 사냐?'라고 물을 때마다, 가끔 이 책을 생각하고 그 때의 치기어린 결심을 생각한다.
 
편집팀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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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10월 내맘대로 좋은 책!



"비로소 마음에 와닿은 무엇"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
김성보, 기광서, 이신철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닷컴
 
"파종은 전선이다. 한치의 땅도 묵히지 말자"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모두다 속도전 앞으로"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 현대사의 한장 한장을 구호의 연속이라 해도 될만큼 구호에 매달려 살아온 사람들. 삶의 순간순간을 체제를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죽을 각오로 매달리며 살았을 사람들. 그들의 절박함. 읽는 내내 '구호 아래서' 또는 '구호에 의지해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정치며, 사상이 그들 각자에게 무엇일지를 헤아려보면서.
 
사실 완성도보다 출간 자체의 의의가 더 큰 책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또는 '주체의 나라'로 보는 극단을 경계하고 균형을 잡는데 초점을 두고 있어, 뚜렷한 시각이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여기에 이 책을 가져온 이유는, 이 책에는 북한을, 북한 사람들의 삶을 헤아려보게 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 다닐 때 북한정치사나 한국정치사 같은 과목을 수 차례 들었지만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북한 사람들의 절박한 삶'이 비로서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 숱한 어려움을 겪고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라니... 국제정치니 경제니 하는 말보다 먼저 그 구호를 절박하게 외치고 있을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래서 아프고, 화나고... 미안하다.
 
사회.역사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비밀과 거짓말"
 
폭스 이블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논스톱으로 새벽 4시까지 읽었다. 다음날이 휴가이기도 했고 쉬이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확실히 영국 여성 추리작가들의 작품은 디테일과 묘사가 훌륭하다. "영국의 시골에선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벌어질 수 있을 거 같아요, 아, 마플 할머니 때문인지 영국 시골마을은 범죄소굴 같아요." 이런 잡담을 잠시 하기도.;;
 
2001년 영국 셴스테드, 서너 가족만이 상주하고 도시 사람들의 주말 별장만 빼곡한 작은 시골마을이다. 어느날 한 저택의 안뜰에서 제임스 로키어-폭스 대령의 부인 에일사가 얼어죽은 채 발견된다. 이 죽음을 계기로 로키어-폭스 가문의 어두운 가족사와 감춰왔던 비밀이 차례로 드러난다. 한편 폭스 이블이라는 사내가 이끄는 부랑자 한 무리가 마을 빈터를 무단으로 점유,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이 소설은 결국 '사냥감과 사냥꾼'의 이야기이다. 사냥하는 자의 심리, 사냥당하는 자의 심리, 그 주변의 경직/고조된 공기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사람들. 인물들끼리 주고받는 대화가 썩 멋지고 플롯과 캐릭터의 묘사는 치밀하고 설득력 있다. 독자를 서서히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구성도 일품. 어느 출판사에서 '골든대거 상'(영국 추리작가협회 상) 시리즈를 계속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인용으로 감상을 대신하렵니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소담
 
정말 나는 몰랐으니까. 남자란 존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연인과 함께 지내는 밤의 달콤한 친밀감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자는 남자의 팔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남자의 단순함, 남자의 복잡함, 남자의 관용, 남자의 안심.
 
...색깔 있는 세계란 아마도 의존과 관계가 있으리라.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의존도 있다는 것을, 남편을 만나고서야 처음 알았다. --본문 55~57쪽
 
집안에 있어도 비슷하다. 우리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다. 남편은 텔레비전을, 나는 남편의 머리를, 남편은 현재를, 나는 미래를, 남편은 하늘을, 나는 컵을.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야 물론 때로는 답답해서 전부 같으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마음속 가장 깨끗한 장소에서는 그런 바람이 일시적인 변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본문 61쪽
 
예를 들어 함께 살기 전에는, 남편이 만나러 와주면 무척 기뻤다. 만나러 온다는 것은 나를 보고 싶어한다는 뜻이었으므로. 그런데 막상 함께 살기 시작하니 남편이 매일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아도 돌아온다. 그게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리석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도무지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보고 싶었어?"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그렇게 물으면 응, 하고 고개는 끄덕이는데,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것 같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신혼이라지만 그런 질문을 매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만사가 그 모양이라 그 한 해는 정말 진이 빠졌다. --본문 94쪽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무제(10월)"
 
20년 벌어 50년 먹고 사는 인생설계
오종윤 지음 / 더난출판사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힘든 하루를 마치고 퇴근길 인천행 지하철에 오르면서, 아 스무 살에 회사 다니는 것도 이렇게 빡빡한데 나이 마흔 먹어 다니기는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이 들 때. 또 하나는 지하철에 힘들게 타고 내리시는 어르신을 뵐 때.
 
은퇴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은퇴 이후의 삶'에 주목하는 이유는 역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생의 결론을 미리 생각한 사람이 중간부분인 지금을 더 열심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와, 또 하나는 노년이라는 것은 힘들게 달려온 인생의 보답이라는 생각 때문에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상기시켜 준 좋은 기회였다. 사오십년이 흐른 후 인생을 되돌아보며 '참, 열심히 살았다. 훌륭한, 성공한 인생이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평범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토마스 A. 슈웨이크 지음, 서현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과연 누구 말이 맞는가. 이 책처럼 두리뭉실하게 목표 없이 사는 사람이 더 성공하는가? 아니면 숱한 자기계발서처럼 목표를 위해 치밀하게 달려가는 사람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은가?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두리뭉실하든 치밀하든 결론만이 아니라 중간의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성공에 골인할 확률이 높다는 점. 야심만만처럼 '성공한 사람 100인에게 물었습니다'라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자기계발서. 따라하지 않을 사람이라도 보면 재미있다.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가을이라면 여행, 젊은이라면 도쿄"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이우일, 현태준 지음 / 시공사
 
뽈랄라 아저씨랑 두건사나이 이우일씨가 손을 잡고 도쿄로 떠났다. 이 둘이 탐방할 곳은 눈에 훤하다. 보나마나 장난감 가게겠지. '보나마나' 장난감 가게다. 그것도 온갖 장난감 가게는 다 등장한다. 숍 형태의 가게부터 천엔샵, 프리마켓의 장난감 가게까지. 언제나 그렇듯 두 분 모두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도 많으시고, 가끔 기분좋게 아부도 해주신다. 장난감에 별반 관심없는 나조차 오색찬란한 사진 앞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들여다보느라 눈이 아플 지경. "저건 뭐지, 마징가 아니야!" "오오, 건담이다!"
 
술이 빠지면 또 섭하지. 편의점 맥주부터 시작, 도쿄 모퉁이 할머니의 술집까지 어쩌면 그렇게 기가 막히게도 찾아내는지 원. <어시장 삼대째> 만화에 나온 전설의 '시샤모'(은어구이와 맛이 비슷하다고 함, 포장마차에서 구워 통째로 안주삼아 먹는다고)구이 사진을 보는 순간,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절대로 말해두는데, 이 책은 일반적인 도쿄여행기는 아니다. 이 두 분께 여행사 코스에 나온 '도깨비 무박 2일 여행'이나, '하코다 4박 5일'같은 정직하고 착한 코스를 기대하신 분들은 없으리라 믿지만 말이다. 술, 만화, 장난감, 마구잡이 여행, 이우일, 현태준, 뜬금없는 칭찬과 불평. 이 중 한 가지라도 마음에 드신다면 이 책을 잡으시라.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재미있게 놀 것을 권함"
 
조약돌과 휘파람 노래
에일런 스피넬리 지음, S.D. 쉰들러 그림, 강미라 옮김 / 봄봄
 
현재는 항상 미래의 담보물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를,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를,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를, 대학교 때는 취직을, 미혼일 때는 결혼을, 젊었을 때는 노후를 말이죠. 하지만,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지금 나는 행복한가? 너무 바쁘지 않은가? 나의 다른 부분을 너무 심심하게 방치해두지 않았는가?'를 생각할 필요도 있습니다. <조약돌과 휘파람 노래>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항상 준비해야 할 미래가 '삶'의 한 부분이지만, 언젠가는 내 인생도 -별탈없이 흘러가기만 한다면- 겨울을 맞이할 겁니다. 그때 정말 필요한 것은 '현재의 행복'과 '과거의 추억'이 아닐까 합니다. 보잘 것 없는 조약돌과 바람이 가르쳐 준 춤과 노래가 들쥐 가족의 겨울을 행복하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쉽게, 미래에게 현재의 주도권을 넘겨줘서는 안되죠. 마스터 키튼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인생을 허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에일린 스피넬리는 책의 내용을 몇번씩 반추하게 하는 매력을 갖춘 작가입니다. 그녀의 또다른 그림책 <소피의 달빛 담요>도 강추!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은 삶의 애잔함과 고단함, 그 속에서 건져낼 수 있는 작은 아름다움을 영롱하게 그려내지요. 소리없이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느낌입니다. 남편 제리 스피넬리도 <스타 걸>과 <난 열 살이 되고 싶지 않아>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골고루 갖춘 동화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부부만세'라고 할까요?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당신은 평생을 걸 수 있는 열정이 있는가"
 
4의 규칙 1, 2 
이안 콜드웰 외 지음, 정영문 옮김 / 중앙M&B
 
사실대로 말하면 이 책의 초반부는 무척이나 지루하다. 100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아 몇번이고 책을 다시 꺼내 처음부터 읽어야 했다. 하지만 거기만 지나고 나면 20대 초반의 패기만만한 네 친구의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추리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는 '열정'과 '우정' 이 아닌가 싶다. 등장인물 모두 놀라울 정도의 집중과 열정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믿음과 틀에 도전하며 희망과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책을 읽으면서 대학교 때의 내 모습을 많이 돌아보았다. 그때 나에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인생, 지금의 삶에 대해 열정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평생을 걸 수 있는 무엇이 있을 거라고 매일 밤을 마음 맞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호기있게 외쳐대곤 했었다. 잊지는 않았지만 잠시 제쳐두었던 스무 살의 내 모습을 책을 덮으며 겹쳐보았다. 늦지 않게 다시 앞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책.
 
친구들에게 한 권씩 선물로 보낼 생각이다. 야, 그때 우리가 했던 말 아직 기억하지? 우리, 한 번 다시 뭉쳐볼까.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어려운 책이 많아서 재미있는 세상"
 
기계 속의 생명
클라우스 에메케 지음, 오은아 옮김 / 이제이북스
 
<벌거벗은 여자>,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완역본 Vol. 1> 등 한번씩 짚고 넘어가주어야 할 좋은 대중과학서가 많이 나온 9월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일이라면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를 완역하리라는 집념을 가진 출판사 승산의 그간의 노력이 이처럼 결실을 맺는 걸 본 일이다. 내로라하는 과학책 번역가들이 여럿 달라붙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책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데, 과연 의미있는 일이 되려면 널리 읽히는 수밖에 없겠도다.
 
<기계 속의 생명>은 도저히 일반대중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원제는 <The Garden in the Machine>이고 인공생명(Artificail Life)의 연구현황과 제문제를 다룬 책이다. "어려워 어려워"하면서 읽었고 읽고나서도 제대로 이해한 건 별로 없다. 그래도 자꾸 흥미가 가는 건 인공생명을 통해서 생명의 개념을 새로 정립하고 생물학의 영역도 재정의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벌써 이처럼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기 때문이다. 미래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의 단어가 될까? 지금처럼 여전히, 유한해서 아름다운 것으로 이해될까?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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