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외면하시렵니까 [04/11/07]
 
[편집자레터] 이래도 외면하시렵니까

기자도 놀랐습니다. 이렇게까지 우리 출판계가 불황인지. 최근 어느 실용서적 출판사에서 신간을 내면서 그 책에 ‘이 책을 구입하신 독자들께 진짜 종자땅을 드립니다’라는 광고문구까지 붙였더군요. 보기에 따라 뜻이 있는 출판인에게는 엄청난 자괴감을 안겨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요즘 출판계에는 이런 이야기도 돕니다. 알찬 인문서적을 출판하면 1000부가량 팔리는데 그것도 그 책이 너무나 탐이 나 언젠가 그 비슷한 책을 한번 출판해보겠다는 욕심으로 견본삼아 출판인들이 사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양서를 조금만 더 구입해준다면 출판계에 숨통이 튈텐데 하는 탄식이 나오지요.

잠깐 영국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지요. 영국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가는 인구가 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 뒤 영국 정부가 보인 움직임이 부럽습니다. 아예 도서관이 구입해야 할 신간 도서의 양과 그렇게 구입한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연한까지 못박았습니다.

영국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도록 만든 것은 영국 가디언지의 기사였습니다. 지난해 영국의 각급 도서관을 찾은 이용객 수는 그 전해에 비해 1.4% 늘었지요. 하지만 가디언지는 지난달에 이 통계를 분석해 조금 색다른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단순 수치로 보면 도서관 이용객은 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주민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가디언지의 분석에 따르면 2003년도 영국의 도서 대출량은 오히려 그 전 해에 비해 오히려 5% 줄어들었습니다. 이 분석에 이견이 없었고, 정부가 먼저 처방을 내놓았습니다.

앞으로 영국의 도서관들은 관할 내 인구 1000명당 매년 216권의 신간을 구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 구입한 책은 6.7년 이상 소장하지 못합니다. 인구가 5000만명가량인 우리 나라에 그 지침을 그대로 적용하면 도서관들이 1년에 구입해야 하는 총 도서량은 1000만권 이상입니다. 문화강국의 힘은 정부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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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온오프라인 서점들 도서정가제 개정 갈등 조짐  [04/11/05]
 
[박종현기자의 출판 25시]출판계·온오프라인 서점들 도서정가제 개정 갈등 조짐

업계·독자 相生 지혜 모색을

지난 2월 ‘출판 및 인쇄진흥법’ 발효에 따라 새롭게 시행된 도서정가제의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도서정가제’ 법규의 각종 조문에 ‘1년’을 기준으로 한 규정이 많아 시행 1주년을 몇 개월 앞두고 이런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와 한국서점조합연합회(서련), 한국출판연구소가 최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 대강당에서 개최한 ‘도서정가제 관련법 개정을 위한 대토론회’도 이러한 논의를 진행했다.

도서정가제는 쉽게 말하면 출판사가 책을 발행하면서 정한 값대로 독자에게 도서를 판매하게 한다는 제도다. 서적 유통질서를 바로잡고 독서문화를 진작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도서정가제는 2002년 8월에 ‘출판 및 인쇄진흥법’에 포함돼 법률로 확정됐고, 지난 2월 대통령령으로 시행령이 제정돼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법은 간행 1년 이내의 책은 할인을 일절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정보통신망을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은 정가의 10% 범위 내에서 할인판매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누적점수제 할인을 10% 할 수 있고 무료배송도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형식적인 면에서 도서정가제는 법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실제 운영은 부실할 뿐만 아니라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주장은 특히 서점계와 출판계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이창연 서련 회장은 “인터넷 서점들이 마일리지와 경품 제공으로 간접 할인을 하고 있어 도서정가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며 “무분별한 할인경쟁으로 출판사들은 출고가격을 높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점계는 더 나아가 ‘출판 및 인쇄진흥법’에 ‘5년 한시 규정’의 손질을 요구하고 있다. 이 규정을 폐지하고 도서정가제를 항구적으로 법제화하는 한편 출판물은 일반 공산품과는 다른 문화상품으로서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내놓고 있다.

인터넷 서점계와 일반 독자들은 이와는 다른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어차피 출판물도 경쟁 상품일 뿐”이라며 “독자들이 인터넷 서점 이용을 늘리는 것은 단순히 가격 때문이 아니라 편리성 때문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지난해 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모했고 국회의 동의까지 받은 법률을 다시 논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동네서점의 폐업 등은 할인경쟁이라기보다도 전체적인 국내시장의 불황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출판전문가들은 서점계의 견해에 대체적인 공감을 보인다. 부길만 동원대학 출판미디어학과 교수는 “인터넷 서점의 할인경쟁으로 동네 서점은 물론 온라인 서점도 경영부실에 직면해 있고, 출판사는 할인을 전제로 책값을 올릴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며 “실제로 올해 간행된 책들은 종잇값 인상분을 제하고도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은 물론 소비자나 출판 유통의 모든 관계자가 머리를 맞대고 보다 나은 제도를 위한 토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bali@segye.com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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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에서 할 일 [04/11/05]
 
[아침을 열며] 프랑크푸르트에서 할 일

치열한 '문화영토' 다툼
도서展 주변국 십분활용을

독도는 분명 우리 땅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말이다. 그런데 한일 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독도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영토 분쟁을 벌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자명하다 해도 그 근거를 정확하게 널리 알리려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토라는 말의 의미가 지리적인 국경 개념으로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땅과 물에 사람들이 남긴 갖가지 자취, 그에 얽힌 기억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영토가 아닐까. 요컨대 영토는 지리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역사적ㆍ문화적 의미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화ㆍ역사적 영토를 지키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을까? 하나의 예로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 이전)을 둘러싼 논의들을 살펴보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본이며 1966년 불국사 석가탑 탑신에서 발견되었다.

그전까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으로 인정받던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보다 20년 앞서고, 중국 최고의 목판인쇄본 ‘금강반야바라밀경’(868년)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내주기 싫은 일본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제작 추정 시기를 석가탑 완공 시기인 8세기 후반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중국은 당나라 낙양에서 인쇄한 것을 신라가 입수하여 석가탑에 보관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을 놓고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서 간행되었다.

하지만 금속활자본에서도 원조가 되고 싶은 중국은 자신들의 ‘어시책(御試策)’이라는 인쇄물이 직지심체요절보다 40여 년 앞선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인쇄출판문화의 원조 자리를 놓고 동아시아 삼국이 벌이는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원조 자리를 반드시 우리가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증적인 연구에 의해서 우리 문화재들이 원조가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면 흔쾌히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자세도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밝혀져야 할 진실이 현실의 역학관계에 따라 엉뚱하게 왜곡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인쇄출판문화가 세계 최고(最古)로 인정받고 있고 그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서 손을 놓고 안심할 수는 없다.

문화ㆍ역사적 영토를 지키는 일은 실제 영토를 지키는 일 못지않게 힘들다. 다행히도 우리는 문화 영토 수호, 특히 인쇄출판문화 역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를 지켜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앞두고 있다.

내년 10월 개최되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가 그것이다. 인쇄출판문화의 종주국을 자처해 온 중국으로서는 찜찜한 기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전 세계 출판인들이 모여 책을 거래하는 장터의 중심에 판을 벌리고 우리 인쇄출판문화 전통을 정확히 알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내친 김에, 힘차면서도 아름다운 고구려 벽화 그림을 배경으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중국의 역사 왜곡 시도를 우리끼리 말로 백 번 비판하는 것보다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통해서 세계인들에게 책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문화적 자존심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가 갖는 여러 의미 가운데는 문화ㆍ역사적 영토 수호도 있다는 점을 새삼 지적하고 싶다.

(김동식 문학평론가)=한국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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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성공한 독서광, 안철수·이어령·이언호·김대중 [04/11/05]
 
“의대 대학원 시절 일본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학문의 즐거움’을 읽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노력을 거듭한 끝에 원래 천재였던 사람보다 더 빛나는 업적을 남긴 이야기를 읽으며 제가 갈 길에 한 줄기 빛을 보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뛰어난 재주를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먼저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책으로부터 얻은 교훈 때문입니다.”

국내 대표적 정보보안기업인 ‘안철수연구소’(www.ahnlab.com) 안철수(42) 사장은 평소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을 깨우치자마자 책에 파묻혀 살았다고 한다. 독서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들 정도로 바빠진 지금, 그는 일하는 중간중간이나 이동 중 ‘틈틈이’ 책을 읽는다. 안 사장은 “예전에 사무실이 있던 건물이 엘리베이터를 다소 오래 기다려야 했는데, 그때 틈틈이 책을 읽어보니 그 시간만으로 한 달에 한 권은 거뜬히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유익한 것은 직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사내 미니 도서관에 비치해둔다. 대리급 이상 승진 평가를 할 때 경영관련 서적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게 하는 독특한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경영 관련 서적과 소설을 많이 읽는다는 안 사장은 원서로 책을 읽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수시로 아마존닷컴의 실시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한다. 한 번 읽고 감명받은 저자의 신간은 믿고 사는 편이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책도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의 짐 콜린스가 쓴 책이어서 나오자마자 구입한 책 중의 하나다.

안철수 사장은 “무조건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좋은 책을 천천히 생각해가면서 읽는 것이 좋다”며 사색을 강조했다. 그는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거기에 그대로 메모를 하는 편이다. 책을 읽은 후에는 그 메모만 모아서 따로 정리를 한다. 그가 베스트셀러였던 ‘영혼이 있는 승부’ 등 8권의 책을 출간한 것 또한 이 축적된 DB 덕분이다. 지금은 아홉 번째 책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이미 알고 경험한 정도만큼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깨우치기 위한 노력을 할 때만이 책을 읽는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책은 정답을 제시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옆에서 여러 견해를 들려주는 충실한 조언자이자 동반자 역할을 합니다.”

안철수 사장은 “책을 읽고 머리로만 깨우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책으로 쌓은 지혜와 견문은 오랜 시간 내재된 후에야 빛을 발하기 때문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책을 읽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어머니 덕분에 ‘독서의 길’ 들어선 이어령 선생

문화예술계의 대표적인 독서광으로 이어령(70) 전 문화부 장관을 빼놓을 수 없다. 이어령 선생은 ‘동서고금에 막히는 게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하다. 이는 어린시절부터 습관이 된 그의 독서 덕분이다.

“글쓰는 게 직업이 된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입니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철가면’ ‘몬테크리스토 백작’ ‘천로역정’ 등의 명작을 비롯한 책을 읽으셨어요. 어머니의 등 너머로 독서가 시작되었습니다. 벽장이나 다락, 헛간에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습니다. 거의 광적으로 남독(濫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 선생은 서울대 국문과 시절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독서란 친구와 같다. 책과의 감동적인 만남은 우연히, 운명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읽어야 할 100권의 교양서적’과 같은 추천서를 무척 싫어한다. 그는 “책을 읽기 전후에 변화가 없으면 킬링 타임(Killing time)한 것일 뿐”이라며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 것은 독서가 아니다”고 말했다.

“책을 손에 들었을 때의 무게, 향기, 인쇄 냄새, 미지의 마을을 봤을 때처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마을 풍경을 상상하는 것…. 그 설렘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저는 양서(良書)도, 악서(惡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사람이 해독능력만 있다면 나쁜 책을 읽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어령 선생이 꼽은 필로 북(pillow book, 머리맡에 두는 책)은 보들레르 시집, 릴케 ‘말테의 수기’, 알베르 카뮈 ‘시지푸스의 신화’ 등 몇 개에 불과하다. 그는 “책은 돈과 같아서 비상금처럼 안 읽어도 항상 급하게 꺼내볼 수 있는 전집류ㆍ사전류가 있는가 하면, 매일 필요한 버스비처럼 늘 곁에 두고 읽는 책도 있다”며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 고전(古典)은 수천 권씩 다운받아서 읽는다”고 말했다.

“저는 20대부터 술을 마시지 않고 그 시간에 책을 읽었어요. 50년 세월이니 엄청난 차이가 나겠죠. 대부분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들에게 ‘TV를 꺼라’고 말합니다. 초저녁이든, 잠자기 전이든 TV를 끄고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수만 권에 달하는 이어령 선생의 책은 집과 영인문학관에 나누어 보관하고 있다. 어떻게 분류ㆍ정리하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기억력은 비상해서 예전에는 독서카드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이 어느 책 몇 쪽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를 모두 기억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DB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책들은 목차를 스캔받아 PDF파일로 만들어놓고, 중요한 책은 전체를 스캔한 후 PDF파일로 만들어 저장한다.

“도서관식 분류법은 오히려 불편해요. 자기 전공에 맞게, 자신이 많이 소장한 책을 중심으로 분류법을 정해보세요. 저의 경우는 시간별(고대ㆍ현대 등), 국가별(미국ㆍ프랑스 등), 장르별(문학ㆍ실용 등), 콘텐츠별(산ㆍ바다 등)로 구분합니다. 때문에 영국의 배에 관한 문학을 찾고 싶으면 E(England)/N(Novel)/S(Sea) 분류를 찾는 겁니다.”

이어령 선생은 특히 주부들이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집에서는 일요일마다 모든 식구가 드러누워서 책을 읽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고 한다. 그는 “외국에서는 자녀들이 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는 게 상식”이라며 “자녀들에게 활자와 가까워지는 습관을 들이면 자녀들은 저절로 책을 좋아하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언호 전무 "시골에 ‘책읽는 공간’ 마련하고 싶어"

삼성경제연구소 이언호(50) 전무 또한 대표적인 책벌레로 꼽힌다. 그는 거의 매일 서점을 찾아 책을 산다. 책 종류는 경영서가 가장 많지만 문화, 생태, 역사, 불교철학, 역사, 휴먼드라마 등으로 다양한 편이다. 그는 스스로 감동을 받은 책이 있으면 반드시 지인(知人)들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읽은 ‘오체투지’는 50권이나 샀고,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은 200권이나 사서 선물했다.

“웬만한 책은 두 번 안 읽잖아요. 전공책 외에 책을 쌓아두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기억에만 남겨놓으면 되죠. 저는 평범한 이들이 역경을 딛고 성공한 휴먼 드라마류의 책을 좋아하는데, 사람들을 만날 때 제가 아끼는 책을 주면 상대가 무척 좋아합니다.”

15년 넘게 독서가 습관화되다보니 이제 책을 고르는 데는 거의 실패가 없다. 신문서평을 참고하거나 저자의 프로필을 참고하면 실패 확률이 적다고 한다. 물론 서점을 자주 방문하는 것도 노하우 중 하나다. 책을 읽는 시간도 따로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집에서 쉬는 시간 틈틈이 책을 읽는다. 그 시간만 합쳐도 하루 1∼2시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무의 설명이다.

“독서도 습관입니다. 음악이든, 여행이든 일단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부터 읽어야 합니다. 읽고 좋으니까 또 사게 되는 겁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감동이 있는 부분은 책장을 접거나 포스트잇을 붙여서 나중에 참고합니다. 공부할 때는 바인더 용지에 책 한 권을 한 쪽 분량으로 요약하기도 합니다.”

이언호 전무는 좋은 저자가 있으면 직접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연락해서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은 이들만 해도 전우익(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김원길(안동의 해학), 김태정(한국의 야생화), 최재천(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등 여럿이다.

그는 최근 “늘 밝게 사는 편인데, 그것이 다 독서 덕분이 아닌가 싶다”며 “책에서 받은 감동이 실제 삶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 책 분류를 시작했습니다. A는 주위에 많이 나누는 책, B는 가치있는 책, C는 좋은 책으로 나누었죠. 이 DB를 바탕으로 좋은 책을 추천하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나이 들면 시골에 책 읽는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은 꿈도 있어요. 물 흐르듯이 책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자연스러운 공간 말이죠.”

속독보다 정독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 읽어

국내 명사 중에는 독서광이라 불릴 만한 이들이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른바 ‘삼상지학(三上之學), 즉 말 위(馬上), 베개 위(枕上), 화장실(♥上)에서까지 공부한다’는 생각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읽기에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김경재 전 의원이 쓴 ‘DJ의 독서일기’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늘 손이 닿는 곳에 책을 두었고, 철학ㆍ역사ㆍ경제에서부터 여성지까지 다방면의 책을 읽었지만 속독형보다 정독형에 가깝다고 한다. 서재에 빼곡한 책들 대부분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고 메모가 적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입주 때 책이 대형트럭 두 대분이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다. 6년간의 수감생활 동안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 또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와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등의 책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방대한 책을 바탕으로 2003년 11월 ‘김대중 도서관’(www.kdjlibrary.org)까지 오픈한 바 있다.

재계에서도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김재철 무역협회장, 김호연 빙그레 회장,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이동호 대우자동차판매 사장, 우림건설 심영섭 사장 등 독서광이 많다. 연예계의 대표적인 아이디어뱅크인 전유성씨도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그는 1998년 교보문고 구매왕 베스트5에 꼽히기도 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책 선물을 잘해주는 선배’로도 소문나 있다. 그는 “시집을 통해 개그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을 접한다”고 털어놓는다.

이들 명사들의 체험적 독서론에 대한 결론은 하나다. 바로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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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서점 나들이 [04/11/05]
 
[이 생각 저 생각] 비 오는 날 서점 나들이

중ㆍ고등학생 시절에는 친구들과 서점에 자주 갔다. 그 시절 서점에 가는 이유는 그야말로 일상에서의 탈출이었다. 삶이 힘들고 의욕이 없어지면 시장에 가보라고 하는 것처럼 학생에게는 서점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서점에 들어서면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독서욕이 갑자기 생겨났고 수많은 책 속에서 그동안 책 한 권 제대로 안 읽고 뭐 하며 살았는지에 대해 반성도 많이 했다.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주기적으로 책도 사고 꾸준히 독서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한 적도 있다. 그 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한동안 독서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린 듯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결혼식 때 평생 책을 가까이 하라는 주례사를 듣고 다시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주례는 나의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결혼 후에는 정말 틈틈이 서점에 들러 책도 사 보고 이사할 때마다 지역 도서관을 찾아 회원 등록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요즘에는 서점 드나들 일이 거의 없어졌다. 필요한 책은 인터넷으로 주문해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도 아내와 어린 두 아이 손을 잡고 종로에 있는 대형 서점에 갔다. 아내가 제안한 ‘비오는 휴일 보내기’ 계획이었다. 요즘 연중 행사 정도로 이루어지는 나의 서점 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점도 이제는 책만 파는 곳이 아닌 문화공간이었다. 수 만 가지의 책은 물론이고 문구, 음반 등을 팔고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허기도 달랠 수 있으니 말이다.

간혹 서점을 데이트 장소로 고른 것 같은 연인들도 보였으며 우리처럼 가족 나들이 장소로 선택한 것 같은 이들도 보였다. 아무튼 서점을 찾은 사람들 모두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는 직업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다만 내가 필요 이상으로 잠자고 TV 보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공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데이트를 한다고 하면 반드시 서점에 가라고 하고, 수입의 5% 정도는 책 구입에 쓰고, 내 집이 생기면 꼭 서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서점 나들이는 내게 여러 모로 자극을 주었고 나는 그 자극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세상의 위대함을 보고 싶은 사람이나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오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서점 나들이를 권하고 싶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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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1-05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몇년전 대학때 4월의 어느날 무척 추워 파카를 입고 비를 맞으며 종로서적에 들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래도 젊어 좋았었는데... 그 시절이 그립군요...

찬타 2004-11-0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종로서적... 저희 집까지 오는 버스가 있어서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아쉽게 망했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