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과의 첫만남

내가 우석훈을(교수, 박사 등의 직책을 생략하는 것은 그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우''석''훈'이라는 브랜드를 생각해서다) 처음 만난 것은(책에서) 한창 한미FTA를 하네 마네 독소조항이 어떻네 하면서 FTA  담론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던 시절이다. 나도 한권 정도 보고 공부를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고전같은 책이 아니라면 책을 고를 때는 쪽수가 우선하기 마련인데 <국민보고서>는 726쪽에 달해 감히 접근하기 어려웠다. 우석훈의 책은 272쪽이라 부담이 없었다.

UN이나 대기업, 공기업 등 많은 주류현장을 돌아다닌 데서 나오는 연륜과 경제학적 지식이 담겨 있는 단행본에서 얻는 바가 많았다. 워싱턴 컨세서스니 다자회담과 2자회담의 특징들이니 하는 개념적 이해는 대부분 우석훈의 책에서 얻었다.

<88만원 세대>를 읽은 것은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 때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경제대안시리즈인 줄 모르고 읽었는데 4부작을 예고하고 있었다. 워낙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우석훈 강연회가 한때 인기였고 나도 두어 번 정도 놀러 갔다.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다 그렇듯이 친화력보다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분위기를 타면서 말을 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완성하는 스타일이었다. 가까이서 말을 할 기회, 정확하게는 술을 먹을 기회도 두 번 있었다. 블로거로 알고 지내는 지승호 씨의 인터뷰집 작업을 그때쯤 하고 있었는데 술을 한잔 함께 하고 나서 써준 친필 사인에는 "000님 술 좀 살살 드세요~"라고 돼 있었다.



우석훈과 함께하는 작가와의 대화

한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도스또옙스끼 이후로 처음이 아닌가 싶다. 벌써 5권 정도 읽은 것 같다. <FTA...>,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를 포함해서 경제대안시리즈 3권. 그리고 블로그 임시연습장을 들락날락하기.

이번 작가와의 대화는 3권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88만원 세대>의 담론에서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이번 간담회에서는 의도적으로 그 이야기를 뺄까 하는데, 3권의 방향성이 미래 세대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10대~20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장화식, <친절한 조선사>의 최형국, <삼성왕국의 게릴라>의 심상정, 김성환, <ESC>의 고경태,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의 정진국 씨와 간담회를 하면서 형식도 많이 바꿔었다. 일반적인 간담회 형식에서 토론 부분을 강화해서 온라인/오프라인 질문을 넣어 보았다가, 독자가 직접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이번 우석훈 간담회에서는 진행자 2명이 우석훈에게 질문을 하고 청중의 질문을 받는 방식이다. 진행자가 따라붙는 방식은 한겨레 독자프리미엄 서비스인 '하니누리'에서 얻은 발상이다.

이때 질문은 독자들의 긍금함을 대변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심도깊음'이 있어야 하는데, 질문 뽑기가 장난이 아니다. 공동 진행자와 한 30개 정도의 질문을 뽑았는데, 인간적인 면모와 미래세대를 위한 이야기 부분, 에라스무스 모델에 대한 부분, 한중일 전쟁위기에 대한 부분, 4권을 포함한 경제대안시리즈와 못다한 이야기에 대한 부분으로 항목을 나누고 질문을 넣었다.

내일이 되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작가에게 질문지가 전달될 텐데, 그 때 '엥?' 하는 반응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오마이뉴스에 출판관련 기사를 보내고 리뷰를 써오고, 작가간담회에 자주 다니면서 많이 배우고 있지만, 직접 작가를 만나 2시간 남짓의 간담회를 진행하는 입장에 서 보는 건 처음이다. 며칠 간 마음이 불편해서 잠도 잘 안 오고, 간담회가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생각뿐이지만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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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08-08-13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일이네요.. 꼭 가고 싶은 곳인데..;;
 

미스트리스 - 태양에 가까이 다가간 연인들
- 이카로스論




2000년 10대 소녀의 성적 각성을 위트 있게 그려낸 <팻걸>의 카트린 브레야 감독의 시선이 1835년 왕정복고시대의 프랑스 파리로 옮겨졌다. 영화 서두에서는 "잘난 신사와 귀부인들이 남몰래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읽고 있을 무렵"이라고 소개되는데, 소설의 주인공 '발망이 아이들을 다 버려놓은 시대'(극중대사)다. ‘예술 포르노’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성적 상상력에 천착해온 감독에게 매력적인 공간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비로소 '사랑'의 이미지를 획득했다. 등장인물의 성격은 서사논리에 합당하고 복장과 극본, 갈등구조, 조연들의 기여도는 놀랄 만큼 다채로운 한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른바 이카로스 연애론이다.

이카로스는 유명한 신화 '다이달로스 이야기'에 나오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미노스 왕에 의해 크레타섬에 갇힌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이카로스와 함께 하늘로 날아 탈출하였다. 이카로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 모티브를 이용해 <미스트리스>의 그림을 설명할 수 있다. 사랑은 태양처럼 활활 타오르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황홀함에 빠지게 만든다. 사랑은 태양보다 강력한 인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태양에 실제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데, 실제로 그것을 감행하는 사람들은 이카루스의 후예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하게 된다. 때문에 사랑에 관한 두 개의 언어가 그림 안에 펼쳐지게 된다.


▲ 유혹적인 미모와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벨리니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극찬을 받은 아시아 아르젠토

이카로스족은 사랑의 황홀함에 취해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다. '늙은 정부'라는 의미의 미스트리스인 벨리니에게 화려한 아름다움과 나약한 여성스러움을 동시에 소유한 애인 마리니는 전쟁터의 말의 비유를 전하는데, 그것이 곧 이카로스 선언이다.

“전쟁터의 말은 대검에 얕게 찔리면 쾌감으로 느끼고 더 달린대. 그러다 심장까지 뚫리는 거지”

 


▲ 마리니 역을 맡은 후아드 에이트 아투는 국내의류 광고에도 출연해 잘 알려져 있다.

 

<미스트리스>의 감독은 마리나와 벨리니를 이카로스 전설로 만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벨리니를 가장 아름다운 스페인 여성으로 보이기 위해 시대상황이라는 제약에 국한하지 않고 15세기 팜므파탈 그리고 1900년대 중반 최고의 섹시스타 ‘리타 헤이우드’ 스타일을 입혔다. 페인 투우사와 이탈리아 공주의 사생아라는 이미지는 이카로스 선언을 끝간 데까지 몰고갈 만한 동력을 제공한다. 여성스런 외모와 섬세한 성격이지만 본능적으로 이카로스족의 피를 타고난 무일푼 신사 마리니 역시 연약한 모습뿐만 아니라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역량을 불어넣음으로써 이카로스 전설을 완성시키는 한 축으로 설 수 있다. 벨리니를 얻기 위해 흔쾌히 결투를 벌이고, 벨리니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시도 등 일련의 저항은 이카로스 전설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양념 역할을 한다. 그에게 강력한 남성성을 부여해준 장면은 역시 결투 장면이다. 결투장면 자체는 별로 특별할 게 없지만, 결투에서 마리니가 보여준 순간적인 행동 하나가 남성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구체적인 장면묘사는 '스포일러'이므로 생략한다. 단, 영화에서 그 장면을 놓치지 말기를..

 

태양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고통과 쾌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아프지만 뿌리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무서운 고통 속에서 이카로스는 결국 땅의 가장 깊은 곳까지 추락하고 말지만 그의 후예들은 태양을 꿈꾼다. 그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태양에 다가갈 수 없는 자들은 '말(言)'을 이용해 올라간다. 말로는 태양을 열 번도 더 넘게 오르락내리락할 수는 있다. 때문에 사랑의 실체보다 사랑에 관한 평판과 뒷담화가 성찬을 이룰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태양을 쬐고 사는 나라에는 이카로스족과 호사가가 무리를 이루어 산다. 호사가들은 태양에 가까이 갈 용기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대체로 이카로스족을 욕하고 공격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이카로스족을 욕해도 태양 자체를 보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호사가들, 즉 당시 귀족들의 모순이 <미스트리스>에서는 매우 사실적이고 극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카로스족이나 호사가들은 크게 보면 결국 태양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태양을 쬐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태양을 동경한다.

누구나 이카로스가 될 수는 없지만, 동경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카로스족이 땅속 깊은 곳까지 추락하기라도 하면 그에 대한 존경심은 더욱 커진다. 이제까지 퍼붓던 욕바가지는 모두 '찬사'로 옷을 갈아입는다. 즉 이카로스족을 제외한 태양나라의 주민들은 이카로스에 대한 질투와 동경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산다. 마음 속으로는 모두 이카로스처럼 살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이카로스의 삶을 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카로스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우리들의 욕망은 '용기(또는 비겁)'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통제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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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 지독한 사랑, 미스트리스
    from 타인에게 말걸기 2008-08-06 23:40 
    회사 동료들과 함께 본 영화예요. 미스트리스는 "늙은 정부"라는 뜻이라는데, 또다른 뜻은 새디즘의 지배와 복종관계에서 지배쪽의 여성을 뜻한다고 하네요. 제가 느낀 영화의 코드도 새디즘적인 것이었어요. 영화를 소개하는 내용에는 프랑스 귀족사회 이면의 숨겨진 사랑에 대해 그리고 있다고 하네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19세기 파리라는 시대적인 맥락이 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네요. 영화는 그야말로 지독한 사랑의 이야기예요. 새디즘 같은 부류의 사랑은 경험..
 
 
smirea 2008-08-06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영화 봤는데, 굉장히 새로운 접근이네요.^^
음, 저는 사랑의 정신적인 부분을 배제한 육체적이고 쾌락적이고 자극적인 부분들에 대해
담고 있다고 보았어요. 그것은 동물들의 교미와도 비슷하리 만큼요.

아름다운 것은 곧 추하기도 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트랙백 걸께요. :)
 

"어렸을 적 프로야구를 무척 좋아했다. 당연히 나는 연고지인 '삼성 라이온즈'를 좋아했는데 김중혁씨는 다른 팀을 좋아했다. (롯데 자이언츠)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매일 기록일지를 정리할 정도였다. 그런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하루를 빼먹은 거다. 수소문을 했는데 6반에 '김중혁'이란 애가 프로야구 기록일지를 쓴다는 소문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서 빌려달라고 했더니, 대뜸 '너는 뭘 내놓을 테냐'란다. 순수했던 마음이 '거래'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순간이었다. 그때가 김중혁과의 첫만남이다."


한겨레 북섹션의 최재봉 기자, 김연수, 김중혁 작가(왼쪽부터)가 홍대 카페 <창밖을 봐..>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하니누리의 북살롱이 마련한 자리였다.


웃음의 신기술 '낯설게 웃기기'

망중한이라고 해야 하나? 촛불집회가 한창 달아오를 때 나는 두 번 도망쳤다. 한번은 일본여행으로 그리고 한번은 김중혁과 김연수의 이야기판으로. 한겨레 프리미엄 서비스인
하니누리하니북살롱에서는 매달 신간을 낸 작가 중 주목할 만한 작가를 초대하는데,  공교롭게도 26년 지기이자 김천 패거리(김연수, 김중혁, 문태준)의 일원인 김연수와 김중혁이 신간을 출간했다. 하여 7월7일 저녁 7시 30분 홍대 부근의 카페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이하 '창밖을 봐') 3층의 야외무대에서 40여 명의 독자들과 만났는데, 본의 아니게 '외나무다리'가 돼 버렸다. 한겨레 북 섹션의 최재봉 기자가 사회를 보았다.
대놓고 웃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대놓고 웃게 된다. 그 신비한 마력이 어디에 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청중들이 떠들석하게 웃을 때는 그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비트는 순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이를테면 김중혁 작가는 "김연수 작가의 새 산문집을 잘 봤다. 첫 부분만 좀 읽어 봤는데 전부터 느낀 거지만 나는 김연수 소설이 더 좋더라. 왠지 글을 읽게 하는 힘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제 소설은 읽게 하는 힘이 강하다"라고 비틀었다. 바로 복수가 들어간다. "나는 지금까지 10권을 책을 냈는데, 김중혁은 달랑 소설책 2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중혁이 원체 게으르기 때문이다. 오늘 웬일인지 소설 한편을 탈고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누군가 악의 없이 나를 비틀고 풍자하고 조롱하는 기분이 어떨까? 그것은 본인만 알겠지만, 구경하는 독자는 즐겁다. 이것은 분명 의도된 웃기기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담'이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좀 약하고, '개그'라고 하기에는 천박하다. 이 신기술의 새로운 이름이 필요한데, 나는 '낯설게 웃기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문학용어에 '낯설게 하기'라는 것이 있는데 러시아의 쉬클로프스키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창안했다. 그는 "문학을 문학답게 하고 다른 학문 영역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특징을 '문학성'이라고 할 때, 문학성은 문학이 사용하는 언어적 특질에 달려 있으며, 그 특질은 '낯설게 하기'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한마디로 문학적 언어는 뭔가 다르다는 것이다.
김연수의 특기가 '어눌하게 웃기기'라면, 김중혁은 '예측불허 웃기기'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작가의 독특한 웃음 성분이 조합될 때 '낯설게 웃기기'는 완성된다.



동갑내기이면서 26년 인연을 이어온 친구 작가 김연수와 김중혁. 김연수 작가에 따르면 오랫동안 원만한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만나면 문학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전지에 시를 채워넣고 기차에서는 '시 화형식'

최재봉 기자의 소개에 따르면 김중혁 소설
<악기들의 도서관>(문학동네)은 사운드, 소리를 변주한 이야기로 경쾌하게 울림이 있다면, 김연수 산문 <여행할 권리>(창비)는 여행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권투로 따지면 김중혁은 잽을 주무기로 쓰는 아웃파이터라면 김연수는 훅을 중심으로 때리는 인파이터다. 죽기살기로 싸우자면야 인파이터가 유리하겠지만, 스파링에 가까운 간담회 자리에서는 김중혁이 유리하지 않나 싶었다.

"김연수는 어린 시절 기억을 팔아먹어서 상을 받았잖아요. 저는 기억력이 부족해서 그런 걸 쓰지 못해 아쉬워요."

"김연수에 비해서 작품 수도 별로 안 되고 상도 많이 못 타서 셈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김연수의 그늘에 있는 게 포근해요."

"오늘 분위기가 다운되었으면 김연수의 비밀 몇 개를 터뜨릴 생각이었는데, 폭탄을 터뜨리지 않게 돼서 안심입니다."

뭐 이런 잽들을 쉴새없이 던져서 김연수 작가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마치 동화나 만화에 나올 듯한 두 사람의 경험담이었다. 하루는 문방구에서 커다란 전지를 사놓고 방에 펼쳐놓았다. 한 사람이 '나무'라고 하면 서로 나무에 대한 시를 써내려가고, '물' 하면 물에 대한 시를 써내려간다. 전지를 다 채워넣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많이 썼다. 이것이 스무 살의 기억이다.
기차에서 시를 태운, 아니 '화형'시킨 사건은 더 흥미롭다.
김연수 작가에 의하면 당시 무궁화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는데, 주머니든 여행가방이든 어디를 뒤져도 서로의 자작시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은 김중혁 작가가 몹시 흥분하더니 이것은 시가 아니니 태워버리자고 제안했다. 당장 '시 화형식'이 시작됐다. 그때 기차에서 시를 한참 태웠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김중혁 소설 <악기들의 도서관>(문학동네)은 사운드, 소리를 변주한 이야기로 경쾌하게 울림이 있다면, 김연수 산문 <여행할 권리>(창비)는 여행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작가도 보통사람이구나

작가는 직업이다. 직업 중에서도 다소 희소하다 보니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아예 환상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한다. 작가를 직접 만나 좋은 것은 환상이 하나씩 줄어들고, 그 자리에 보통 사람이 끼어드는 것이다. 근거 없는 환상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북살롱에서 작품의 배경에 대해서 주워들은 인상을 남겨 둔다.
김연수 작가가 <여행할 권리>를 쓰게 된 것은 <한국문학>이라는 잡지에서 4회 가량의 산문 연재 청탁을 받은 것에서 비롯된다. 당시 연재소설을 쓰게 됐는데, 사실 연재소설을 쓰다 보면 연재산문은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마감 전날에 전화를 받는데, 그 날도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어서 집을 나서려고 할 때 내일이 마감이라는 독촉 전화를 받았다. 주머니에 만져지던 '훈츈 사람 이춘대 씨'의 이야기를 3시간 만에 써서 보냈다. 4회를 다 마감했는데, 다음 회차에 또 마감 전날 독촉 전화가 온다. 거절 타이밍이란 게 있는데, 원고를 발송하고 책이 나올 즈음 말을 해둬야 독촉전화가 안 온다. 그런데 항상 까먹다 보니 미련하게 계속 쓰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타이밍도 있다. 대개 독촉전화가 오는 날은 계간지를 마감하고 5일 정도 간격을 두어서다. 게간지를 막 탈고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5일 정도 지나면 슬슬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이때 독촉전화가 오는 것이다. 웬만하면 산문은 잘 내지 않는 편인데,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어서 이번 기회에 출간하게 되었다고 그는 출간의 변을 밝혔다.
김중혁 작가는 최재봉 기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하나 받았다. 신간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유난히 따뜻하고 휴머니즘 냄새가 나는 작품이 바로 <엇박자D>이며 김유정 문학상의 수상작품이 되기도 했는데, 솔직히 다른 작품에 비해서 좀 튄다 싶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김중혁 작가의 대답이 가관이다. "엇박자D는 작품집의 맨 마지막에 수록됐는데, 솔직히 아침에 급하게 써내느라 다소 '교훈적'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고백했다.
김연수와 김중혁의 공통적인 불만은 '진정한 악당'을 좀처럼 그려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김연수 작가는 작년 10월 29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출간하고 마련한 독자와의 대화에서 "강시우를 몹쓸 녀석으로 그릴 생각이었는데, 결국 그 녀석에게 당위성을 부여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쁜 인물이 되지 못했다. 그 점이 몹시 아쉽다. 그런 점에서는 프로소설가가 아니라 아마추어 소설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중혁 작가 역시 소설이 너무 착하다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이번에 첫 장편으로 좀비가 나오는 작품을 쓰고 있다고 밝혔는데(300쪽이 흘러가는 동안 아직 좀비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는 좀더 지독하고 악랄한 세계, 최대한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인물들을 창조해내겠다고 공언했다. 내친 김에 '악인'을 창조하는 팁을 하나 전수해달라고 물었다. 김중혁 작가는 함께 잘 그려나가자고 제안하면서 "착하고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양식이 있는데, 그 양식을 좀더 세게 설정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조언했다.

두 작가는 그날이 서로의 인연 중에서 가장 진지하게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연수 작가는 서로 원만한 관계를 맺어온 지 26년째 되었는데, 이렇게 길게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술자리에서 전혀 문학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학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시시껄렁한 신변잡기나 잡담, 흰소리를 늘어놓으며 질펀하게 논다는 말 아닌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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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사와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행사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하지만 행사 정보는 주최측에 의해 홍보될 뿐 한 자리에 모아놓은 정보는 없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책 정보를 한 자리에 모으고자 예스24나 북데일리 등을 참고했고, 인문사회과학출판협의회(이하 '인사회')와 청소년출판협의회(이하 청출협') 등 출판인협회와 개별 출판사에 정보를 요청해 이를 종합했다 - 기자주 


7월은 여행의 달..유럽, 인도, 몽골 취향대로 떠나자

김유정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단행본 전경7~8월은 휴가 시즌이어서 그런지 여행에 관한 다양한 행사가 많이 준비돼 있다. 7월 18일에만 두 개의 여행책 행사가 열린다. 유럽, 인도, 몽골 중 취향에 맞는 여행지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먼저 도서포털 리더스가이드와 생각의나무, 영풍문고가 공동주최하는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의 저자 정진국 씨의 강연회 "나의 유럽 책마을 답사기"가 7월 18일 오후 7시(사인회는 오후 5시) 영풍문고 종로점 갤러리에서 열린다. 저자가 책 후기에 "내 이야기는 독서와 필자와 독자 이야기도 되지만, 책을 만들고 유통하는, 어떤 식으로든 책과 더불어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랐다"라고 밝혔듯 유럽의 책마을은 사실 우리 미래의 책마을을 위한 여행이다. 세 가지 테마로 강연이 진행되는데 유럽 여행객을 위한 "기억에 오래 남을 유럽여행을 위해"와 책마을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우리도 든실한 책마을 공동체를 가꿀 수 있다" 유럽의 책마을을 카메라에 담은 뒷이야기 "사진으로 보는 유럽의 책마을 순례기"이다. 특히 영풍문고 시사회 추첨, 후기 공모 등을 통해 오페라 카르멘 등 세종문화회관 공연티켓과 영화 시사회권 60여장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닐 생각의 나무와 리더스가이드에서 푸짐한 상품을 준비했다고 한다. 신청자는 리더스가이드 사이트(www.readersguide.co.kr)에서 댓글로 신청하거나 운영자 메일(dajak97@hanmail.net)로 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는 학자, 저널리스트 영화평론가, 여성운동가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 의기를 투합해 지난 1997년 5월 창간한 매체인 이프(IF)는 7월 18일 저녁 7시 대학로 이프 사무실 내 북카페에서 <인도, 휘청겨려도 눈부시다>의 저자인 30대 젊은 작가 자야의 인도여행 순례 이야기를 준비했다. 저자는 인도로 여행해 요가학교에서 수행하고 여행을 통해 발견한 삶의 성찰을 독자들과 나누며 "무엇이 요가의 길로, 인도의 여행으로 이끌었는지"를 밝힐 예정이다. 신청은 사이트(www.onlineif.com) 자유게시판에서 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5,000원이나 개인블로그나 온라인서점에 남긴 리뷰를 복사해 자유게시판에 올리면 1인2매권이 무료로 제공된다. 특히 참가자에 한해 이프 단행본을 3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며, 추첨을 통해 여성경험총서 5권을 증정한다고 이프 측은 밝혔다.

김유정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단행본 전경28일에는 몽골 이야기가 펼쳐진다. 온라인 책뉴스 '북데일리'에 따르면 28일 오후 3시 대학로 이음책방에서 <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이른아침. 2008) 출판기념회가 열리는데, 이날 행사에는 집필에 참여한 작가 6명(사진가 윤광준, 강제욱, 권태균, 석재현, 이상엽, 진아라)이 모두 참석할 예정이다. <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는 지난해 출간된 <윈난, 고원에서 보내는 편지>에 이은 ‘~보내는 편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몽골 대초원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본이 불러온 변화, 몽골 사람들의 삶을 전한다. 부대 행사로는 서점 내 설치된 오디오로 몽골 전통악기 마두금 연주 감상 시간과 사인회를 가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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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만남, 과학자와의 만남

 

김유정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단행본 전경경북 김천 출신의 젊은 작가 두 명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 작가는 일찌감치 문단의 호평을 받아 자리를 굳혔고, 다른 작가는 최근 뒤늦은 찬사를 얻고 있다. 김연수와 김중혁이다. 서로 추구하는 문학세계는 다르지만 둘은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한겨레, 책을 말하다'는 매달 1권의 우수 도서를 선정하여 홍대에 위치한 카페 <창 밖을 봐...>에서 저자와 독자를 초대해 책과 삶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며 최재봉 기자와 고명섭 기자가 격월로 진행한다. 이번에는 최재봉 기자가 당번이다.

7월 7일(월) 저녁 7시 30분에 카페 <창 밖을 봐...>에서 열리며 한겨레신문사와 (주)쥬스컴퍼니, 문학동네, 창비가 공동으로 주최하며 풀로엮은집이 후원한다. 한겨레 프리미엄 서비스인 하니누리(http://nuri.hani.co.kr/)를 통해 매달 신청할 수 있고 추첨을 통해서 '손님'을 뽑는다.

7월 12일(토)에는 과학자를 만날 수 있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로 유명한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 교수인 정재승 박사는 새 책 <있다면? 없다면?>을 출간한 기념으로 독자들과의 만남을 갖는다고 한다. "과학적 상상력 VS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과학적 상상력을 재미나게 풀어낼 예정이다. 주말이라는 강점을 살려 가족이 함께 가볼만한 행사다. 토즈(www.toz.co.kr) 대학로점에서 오전11시에 열리며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도서출판 푸른숲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신청은 알라딘 사이트나 푸른숲 카페((http://prunsoop.co.kr/cafe)를 통해 할 수 있고 7월 10일 당첨자를 발표한다.

 

책 쓴 연예인을 만난다

 

김유정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단행본 전경책을 쓰는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저마다 자신의 너른 마당발과 '오지랖'을 이용해 삶의 잔잔한 이야기나 자기계발 비법을 알려준다. 주지하다시피 박경림은 연예계의 마당발이다. <박경림의 사람>는 그가 방송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만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의 비밀을 알려주는 에세이집이다. 예스24와 롯데시네마는 <아름다운 책 人터뷰>라는 이름으로 매월 작가와의 만남을 갖고 있다. 7월 15일(화) 7월의 작가로 뽑힌 박경림을 초대한다. 롯데시네마 홍대입구관에서 약 2시간(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동안 펜,독자들과 만난다. 신청마감은 7월 10일이며 당첨자 발표는 7월 11일 예스24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한다.

특이한 발음에 다소 푼수끼까지 느껴지는 연예인 현영의 실제 캐릭터는? 믿기지 않겠지만 쇼핑보다 재테크를 더 좋아하고, 단돈 천원도 절대 허투루 쓰지 않는 그녀는 그야말로 생활력의 달인이다.  적금, 펀드, 보험, 주식, 부동산 등 재테크 전분야에 관심을 갖고 하나하나 공부해가며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뽐내온 그녀는 급기야 <현영의 재테크 다이어리>라는 책을 출간했다.

예스24와 KT&G 상상마당이 매월 1명씩 문화계 인사를 선정해 진행하는 '북살롱'의 이번 달 주인공은 현영이다. 7월 3일까지 신청마감하는데 15명(1인 2매) 선정에 벌써 170명의 신청자가 몰려 서둘러야 한다. 7월 7일 월요일 저녁 7시 홍대 문화플래닛 상상마당 6층 카페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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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04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이른아침. 2008)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고 싶은데 따로 신청을 해야 하나요? 아님 그냥 가도 될까요? 대학로면 집에서도 가까운데...

승주나무 2008-07-04 10:59   좋아요 0 | URL
마노아 님~
02-745-9758
위 번호로 문의해보시면 친절히 말해줄 겁니다. 기사에 전화번호도 넣었어야 하는데..

마노아 2008-07-04 13: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전화해 볼게요^^

마노아 2008-07-08 16:24   좋아요 0 | URL
이거 6월 28일에 이미 한 거래요ㅠ.ㅠ
저 날짜가 7월이 아니었어요. 크흑...

승주나무 2008-07-08 18:19   좋아요 0 | URL
앗~~
미안합니다. 제보를 제가 거르지 못했네요^^;
 



참고가 될 것 같아 첨부합니다.
우리들의 광고 방향에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기 보니 익숙한 이름도 있네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 크기를 볼 수 있습니다.
조만간 의견광고를 분석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의견광고 분석이 궁금해서 못 기다리시겠다는 분들은 아래의 주소로 가서
6월 경향신문 의견광고 모음을 미리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jagong.sisain.co.kr/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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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6-14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멋져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