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나의 관심분야가 경제는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경제학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처음에는 시와 소설에 열중을 하다가 머리 속에 든 게 너무 없어서 설사똥 같은 작품만 삐죽이 나와서 창작을 접고 철학에 빠져들었다. 문학에서는 도스또옙스끼와 김유정을 전집으로 보았으며(도스또옙스끼는 후기), 박노해, 기형도, 백석, 김수영, 정지용 등의 시인에 푹 빠졌었다, 여느 문청이 그러하듯이.. 스피노자와 플라톤을 즐겨 읽었는데 철학사적 관점에서 철학을 보라는 교수의 조언으로 윌 듀런트(철학사는 아니지만), 러셀, 램프레히트, 코플스톤, 힐쉬베르거 등 철학사를 즐겨 보았다. 하지만 서양철학사는 너무 협소한 기분이 들어 동양으로 틀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존경 받는 한학자 선생님께 사서삼경을 3년간 배웠다. 그 분은 유학 연구가이므로 노자와 장자는 따로 보았고 한비자를 좋아했다. 최근 바로 직전에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사기열전, 전국책, 국어, 오월춘추 등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서를 탐독하다가 드디어 촛불이 터진다. 소설을 쓰려던 생각은 무기한 유예를 해둔 상태이며 그 즈음부터 경제 대중해설서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경제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내가 소설쓰기를 무기한 접게 된 이유와 같다. 내가 소설쓰기를 접은 것은 '기사'와 '포스트'와 같은 전투적 글쓰기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형식을 갖춘 글을 쓰기에 세상의 사정이 너무 녹록치 않다.
철학이 형이상학적 세계를 다룬다면 경제학은 형이하학적 세계를 다룬다. 그리고 문학만큼 운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학의 영역 중에서도 경제학은 너무 고집스러워서 가장 먼저 절멸될 학문이라는 악평도 있지만 차가운 경제학적 관점으로 사물과 세계를 대해야만 정말 싸우는 글쟁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맑스, 장하준, 우석훈의 가르침

대학 시절 사과학습(일명 '사회과학 학습')이라는 것을 받은 마지막 세대로서 이런 저런 시인들과 지식인들을 알게 되었는데, 한 선배가 '자본론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선문답처럼 던졌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도서관에 가서 자본론을 찾아 봤는데, 비봉출판사에서 출간된 새빨간 책이었다. 자본론과의 첫 만남이다.
하지만 10년 동안 만남은 실현되지 못헀다. 헌책방에 가서 낱권을 사 모으긴 했지만 도저히 접근 불가였다. 몇 자 보기는 했지만 무슨 말인지 도통 몰라서 덮을 때가 허다했다. 이런 어려움을 지인에게 토로했더니 지인은 "자본론은 '강독'을 해야 한다"고 힌트를 주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이므로 힘을 합쳐 읽어야 하며, 읽는 방법이 있다는 거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자본론을 읽는 세미나 공간을 알게 되었고 올해 가을부터 강독을 시작했다.
맑스는 처음부터 '상품'과 '욕망'이라는 화두로 책을 시작했다.

"상품은 우선 우리의 외부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며, 그 속성들에 의해 인간의 온갖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물건이다" - 자본론 제1장 '상품'


▲ 자본론을 읽기 위해 수많은 메모를 동원해야 했다.

맑스는 '노동'이라는 인간의 절대적 가치를 상품생산과 교환의 전 과정에 투입시킴으로써 특유의 유물론적 사유를 전개하고 있으며 인간의 가능성을 상품거래와 화폐제국으로부터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한 학자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온갖 모순을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금융위기를 비롯한 세계 경제의 환란기를 성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학자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교양 넘치는 신사의 책은 너무 어려워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깨끗하게 정서를 해야 하지만 이 터널을 뚫고 와야 사회구조와 경제구조에 대한 최소한의 시각이 열릴 것 같다.
장하준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적이고 따뜻한 문장과 실증적이고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현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특히 국가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혜안을 제시하고 있다. 장하준의 말과 같이 국가가 움직여주기만 한다면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도 서로 윈윈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하준의 정력적인 메시지는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수신자 부재 상태다. 현 정부와 경제 담당자들은 합리적인 사고는 물론 최소한의 상식도 통하지 않기 때문에 장하준의 소중한 조언과 충고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 점이 무척 안타깝다. 장하준은 환란기를 견뎌내고 대안을 설계할 때 꼭 필요한 경제학자라고 생각한다.

위의 두 경제학자는 내 식대로 이야기하면 '경제학의 형이상학적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은 처음부터 형이하학을 지향하지만 경제학 내에서도 현실과 바로 살 부딪치는 형이하학이 아니라 논리가 잘 갖춰진 품격 있는 논문이다.

그 아래에 우석훈이 놓여 있는데, 우석훈은 일반인, 고딩/중딩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일부러 경제학 용어를 쓰지 않는다. 그야말로 형이하학적인 담론을 구사한다. <88만원 세대>에서 우리 세대의 속사정이 제대로 터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장하준처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구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무시와 욕을 받으면서도 철저히 대중들과 '접속'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 우석훈은 일개 블로거에 불과한 나에게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경제학자다. (그의 문체는 그보다는 조금 더 무미건조하지만^^)


형이하학 혹은 세속의 경제논객 미네르바 VS 미네르바 딜레마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처럼 밀렸는데, 모두 한곳으로 밀어넣고 '미네르바 글 모음'을 인쇄해서 읽고 있다. 사람들이 미네르바에 열광하는 것은 사람들이 우석훈의 <88만원 세대>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미네르바는 우석훈과 마찬가지로 '형이하학적인 경제담론'을 구사하며, 조금 더 심하게 말하자면 '허리하학적'이기도 하다. 영웅은 난세에 등하며 스타 논객은 처참한 상황에서 빛처럼 등장한다. 미네르바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접하는 단어는 '개~'로 시작하는 욕바가지인데, 욕이 없으면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개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쨌든 사람들은 미네르바의 욕을 쳐먹으며, 혹은 욕지거리를 구경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를테면...

이 만수 이 병딱 같은 노인네야..
누가 9월 달에 예전 IMF 처럼 팡... 하고 터진데?..
9월을 분기점으로 최소 6개월내로 한국 산업 경제 전반이 개박살이
난다는거지?..
거기에 대한 대비책이 서민기준 연봉 1억 2천으로 포커스를 맞춘 세
금 경기 부양이냐?.
차라리 그럴려면 미국처럼 수표를 집집마다 배달해 주든가..아예...그럼
욕이라도 안 나오지.. 확...
세금 감세 경기 부양으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가... 얼마? 6.7%???...
7%?... 이걸 가지고 경기 부양이라고 한다면 그냥 이젠 디져라... 솔직
한 심정이다...
아니면 학교 졸업한지 너무 오래 되서 대가리가 굳었던가...
- 미네르바 글 모음 2권, 98쪽

미네르바의 문체가 거칠기는 하지만 이 정도 강도로 쏟아붓지 않고서는 헐떡거리는 빠킹 코리아가 도무지 자극을 받지 않는다. 그만큼 상황이 매우 극단적이다. 마치 몰핀으로 중병환자를 치료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되는 상황은 지금 미네르바라는 몰핀을 맞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아주 히로뽕에 뿅 가서 미네르바를 우상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2,000여 명 가입에 방문자만도 2만명에 육박한다. 평일에는 이것의 두 배가 넘는다.


미네르바는 미네르바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자후를 강력하게 날려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른바 '미네르바의 딜레마'에 빠져들 수가 있다. 미네르바는 현 상황을 극단적이고 비상식적으로 진단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부추기는 미친 정부라고 호되게 비판하고 있다. 극언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자극이 되지 않다 보니 이런 용어를 쓰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점은 앞서서도 말했지만, 문제는 미네르바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를 극단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미네르바 글 모음 카페에서 제공하는 미네르바 글 모음에는 미네르바의 관습적인 문법 사용과 비어, 사어들이 산재해 있는데 편집자는 아주 기본적인 오탈자나 맞춤법이 맞지 않은 글자들도 그대로 싣고 있다. 동양에서 경전 작업을 할 때 이런 식으로 하는데, 이것은 미네르바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할 수 없다. 미네르바 글 모음집이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며 날개돋친 듯 팔리는 마당인데, 그렇다면 미네르바가 사용했던 비맞춤법과 비어 등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것이 딜레마다. 우리가 합리적인 국민이었다면 미네르바라는 존재가 태어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네르바의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우리들은 미네르바의 신호에 대해 '추종'이라는 응신을 할 확률이 매우 높다. 조선일보가 탄생시킨 것이 언소주이듯, 이명박 정부는 미네르바를 낳았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까놓고 사실대로 고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낮은 자세로 경제문제를 챙기고 경청했더라면 미네르바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미네르바의 글들은 강력한 개념글로 이해해야 하며, 미네르바는 자신의 표현대로 '늙은이'로서 존경해야 한다. 미네르바의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인데, 비합리적인 우리들이 미네르바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무척 갑갑하고 힘이 들겠지만, 미네르바의 알맹이만 빼고 껍데기는 모두 벗어던져야 한다. 미네르바를 추종하거나 황우석처럼 숭앙한다고 해법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자기 위안일 뿐이다. 최소한 미네르바는 스스로 대안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이 미네르바가 나에게 준 가르침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네르바를 한정시켜라"



이 글은 테마카페에 등록된 테마입니다.
테마는 '먼댓글(트랙백)'이나 '댓글'을 이용하여, 하나의 주제(테마)를 놓고 여럿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테마카페 바로가기 >>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aint236 2008-11-24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의 글을 항상 애독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알라딘에서 예스24로 옮겨가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중의 하나가 승주나무님의 글이죠^^. 위에 보니 자본론이라는 책이 있네요. 예전에 이 책을 구하기 위하여 고생했던 생각이 나서 한자 적어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자본론이 요즘은 절판입니다. 1999년 어간부터 절판이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저도 위에 있는 책들을 모으기 위하여 예전에 아르바이트했던 서점에 특별히 부탁해서 출판사에 반품들어오는 책들 한권씩 구입해서 1년이 넘게 걸렸기 때문이죠. 요즘은 왜 저렇게 좋은 책들이 절판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세태를 보면서 저도 자본론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요.

승주나무 2008-11-24 11:03   좋아요 0 | URL
saint236 님~ 과찬이십니다. 비봉출판사 김수행 교수의 책이 절판됐나 보네요. 강신준 교수의 독일어 원본 자본론 번역을 추천합니다. 오마이뉴스 메인에 관련기사가 떴네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17157&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NEW_GB=

위 주소를 참조하세요. 제 글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을 만나서 행복한 월요일 아침입니다^^

2008-11-24 0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11-24 11:04   좋아요 0 | URL
학문에 대한 의지도 없는 데다 사람도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고려, 조선, 중국 왕조시기 말기의 스케치를 보는 듯하여 씁쓸하네요^^;

바위풀 2008-11-2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함을 보고 혹시나 해서...
혹시 예전에 책마을에서 활동하시던 승주님이 맞으신가요?
아마 승주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그때 저는 승주님 글을 많이 봤었는데.
아니라면 죄송해요.
우연히 지나가다가 이름 보고 여쭤 봅니다..^^

승주나무 2008-11-24 23:40   좋아요 0 | URL
책마을 승주가 맞습니다. 육해공군 전군 인트라넷 책마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평생... 반갑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1-25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론 옆에 케인즈의 고용 이자 화폐 일반이론도 있군요.고전들을 모조리 섭렵하실 작정이신가 봅니다.노동가치설과 효용학파로 나누어 싹쓸이 독서를 계획하는가요?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론은 예전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를 연상케 합니다.그도 독일은 서구에 비해서 개방을 하면 안된다고 했죠.
자본론 강독학습이라니 궁금합니다.저는 모여서 학습하는 기회도 없고 또 혼자 책보는 것을 좋아해서요.지도자가 따로 있는가요? 중간에 포기하긴 했지만 자본론 공부할 땐 해설서로 두레에서 나온 미야카와 미노루<자본론 해설>전 3권이 괜찮았아요.자본론 1,2,3권에 맞춰 해설해 놓은 책인데 일본에서는 노동자 대상 학습에 썼다고 합니다.그리고 제 1권 상품에 관한 설명은 헤겔 논리학을 해설서라도 읽어야 하는데 자본론 학습할 때는 안 보고 나중에 헤겔논리학 입문(한마당)을 봤습니다.거기 뒤편에 사회과학에 헤겔논리학의 범주가 어떻게 응용되는지 설명한 내용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즘 그 출판사 문 닫았다고 합니다만 이론과 실천사에서 나온 로젠탈<정치경제학의 변증법적 방법>인가 하는 책도 자본론의 변증법적 논리를 다룬 책인데 고수들이 읽는다고 합니다만 저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혹시 도움이 될까 적었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하고 학습에 열심이신 승주나무 님에게 행운을 빕니다.

승주나무 2008-11-25 13:47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님~~ 제게는 뉴 페이스신데, 너무나 세심한 배려 감사드립니다. 당장 즐찾하러 갑니다~~ 쌩^^

2008-11-25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11-25 13:47   좋아요 0 | URL
보냈습니다. 즐독하세요^^

2008-11-25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8-11-2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추론하셨군요.^^ 그게 누구의 뭐든지 그래야하지요. 제가 가끔 느끼는건 -그 필요성은 200% 공감하지만- 대중적이며 진보적 글쓰기를 하시는 분들 -예를 들어 진중권,우석훈,홍세화...-에 대한 애정이 한정되지 못하는 경우를 볼 때입니다. 승주나무님 말처럼 '한정'되고 극복되어야지요. 그게 뒤에 출발하는 사람들의 의무이고 선생이란 분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겠지요.

제 직장에 어떤 젊은 친구 책상에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봤습니다. 최근에 뭔가 역사와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는 친구같아 보였어요. 그런데 그 책은 제가 대학 다니며 역사공부할 때 썼던 책이거든요. ^^ 전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책을 추천한 사람은 보나마나 그의 사수였을테고 그 사수란 사람이 대학시절 읽었던 책이었을테니까요.결국 그 사수는 대학 이후 공부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의 예였어요. 그러니까 후배가 뭐 하나 추천해달라고 하니까 잘난 척하며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추천해주었겠지요.
돌이켜보면 피토하는 386 진보중에 이제 남은 건 '추억'과 막연한'믿음' 밖에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면에서 승주나무님의 열공은 본받을 만하네요.
원래 작가가 꿈이셨군요.^^

기회가 닿으면 동아대의 강신준 교수님을 한 번 만나보시지요. 저도 한 번 뵙고 밥먹은 적 있는데...온화하면서 쉽게 말씀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승주나무 2008-11-26 17:12   좋아요 0 | URL
<다현사>는 사과학습의 필독도서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치우쳐서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최근에야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서중석 선생의 현대사를 접하면서 약간 균형을 잡게 된 것 같습니다.

강신준 교수님의 책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김수행 선생의 저본은 강독용으로 보지만 강신준 선생님의 독일어 원본 책을 보고 선생님과 인터뷰를 함 해보고 싶네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그때도 세상은 경제위기에 허덕대고 있겠죠 ㅋㅋ

드팀전 2008-11-2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준 교수는 학부수업용으로 <자본의 이해>나 <자본론의 세계>같은 책들도 내셨었지요.
 


▲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한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의 조대환 특검보.  (사진 : 오마이뉴스)

조대환 특검보는 쌍방대리 금지 위반?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등을 수사한 삼성특검팀의 조대환 특별검사보(52)가 삼성특검 공판에 참여하고 있던 사이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로펌(법무법인)이 삼성 계열사 두 곳의 소송을 맡아온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삼성SDS와 삼성화재는 특검팀이 파헤쳐온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승계와 비자금 은닉 의혹의 중심에 있는 계열사들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이에 대해 조 특검보는 “합병 전 렉스가 삼성 계열사 두 곳의 사건을 수임하고 있는 것을 알고 대한변협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자문을 구했으나 쟁점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법무법인은 업무분장이 돼 있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에도 서로 협의하지 못하도록 돼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것은 법조계에서 흔히 말하는 '쌍방대리'의 논란이다. 쌍방대리는 당사자의 동의를 받으면 가능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로펌에서는 '직업윤리'에 비추어 그런 일(쌍방대리)를 잘 하지 않는다. 조대환 특검보가 공동대표로 있는 로펌은 그러니까 일반적인 로펌에서 한참 못 미치는 로펌인 셈이다. 이런 로펌의 대표자에게 삼성 문제를 맡겼다니 허탈하기 그지 없다.

조대환 로펌이 해오던 짓을 가장 잘 하는 선구적인 조직이 있다. 바로 '법률사무소 김앤장'이다. 후마니타스에서 출간된 <법률사무소 김앤장>에는 김앤장의 쌍방대리 실체가 명백히 기록돼 있다. 이것은 KBS <시사기획 쌈>에서도 심층 보도된 내용이다. 그 부분을 옮겨 본다.

외환카드는 '보험 대리점업'을 하고 있었는데, 2004년 2월 외환은행과 합병하면서 업무가 방카슈랑스 범위 내로 축소되었고 기존에 수행하던 보험 상품 판매 행위를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라이나생명 등 보험사들로부터 받던 수수료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다. 금액이 100억 원에 달했고, 외환은행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앤장으로부터 법률 자문서를 받고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자문 내용은 "외환은행이 보험 수수료를 받는 것은 가능하며, 보험업법상으로도 수수료 수취를 금지하는 근거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앤장은 보험수수료 지급 여부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외환은행에 자문을 해 주기 3개월 전 라이나생명에도 법률자문서를 보냈다. 게다가 라이나생명과 5년간 거래를 해 오던 상황이었다. 동일한 사안으로 두 분쟁 당사자 모두에게 법률자문을 한 것이다.
-
<법률사무소 김앤장>, 61쪽

당시 김앤장이 했던 대응논리를 보면 조대환 로펌과 토시 하나 다르지 않다.

"변호사 사무실 내에 변호사끼리 소통을 막는 정보차단벽을 치면 상관 없다", "내부에서 정보차단벽이 작동하고 있다" -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앤장> 59쪽
“법무법인은 업무분장이 돼 있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에도 서로 협의하지 못하도록 돼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 조대환 특검보, 경향신문 기사


같아도 너무 같다. 하지만 김앤장의 사례를 보면 '내부차단벽'이라는 것이 어떤 때는 '단일팀'으로 탈바꿈된다.

자신들이 일을 맡을 때 고객에게는 "인수합병, 금융, 증권, 세무, 노무, 지적재산권팀 등 수십 명이 한 개 팀으로 투입되어 성공리에 프로젝트를 마치는 것이 장점"이라고 자랑한다. - <법률사무소 김앤장> 59쪽

쌍방대리가 무엇이고 왜 나쁜가?

<변호사법> 제31조[수임제한]은 "변호사는 당사자 일방으로부터 상의를 받아 그 수임을 승낙한 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하는 사건에 관하여는 그 직무를 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쌍방대리 금지의 원칙'이다. 이 때 상대방의 동의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같은 사건의 당사자를 동시에 대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변호사가 그와 같은 사건에 관하여 직무를 행하는 것은, 먼저 그 변호사를 신뢰하여 상의를 하고 사건을 위임한 당사자 일방의 신뢰를 배반하게 되고, 변호사의 품위를 실추시키게 되는 것이므로 그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는 변호사가 직무를 집행할 수 없도록 금지한 것"(대법원 2003.11.28. 선고 2003다41791 판결)

대법원 판시에서도 쌍방대리는 신뢰를 배반하고 변호사의 품위를 실추시키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사건이 동일한지 여부'가 매우 중요한데, 동일한 대법원 판시에서는 "그 기초가 된 분쟁의 실체가 동일한지의 여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한변협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자문을 구했으나 쟁점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조대환 특검보의 답변은 대법원의 판례해 근거해서 볼 때 어불성설이다. 그 기초가 된 분쟁의 실체가 동일하다면 쟁점에 따라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쌍방대리는 소송사건에 쓰이는 용어이지만, 법률자문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같은 사건에 대해 어느 한 쪽과 상담을 하고 다시 상대방과 상담을 한 후 수임료를 받는 것은 변호사법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법률자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6년 12월 28일 대한변협 법제위원회는 쌍방대리가 금지되는 사건의 개녀을 "법률자문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

언론에서는 조대환 삼성 특검보의 삼성 변호에 대해서 '도덕성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도덕성과 함께 변호사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강도 높게 조사해야 한다. 삼성 재판이 유야무야 끝난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다.



▲ 이 글은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내용을 참조했다. 삼성 비자금 문제가 2007년의 가장 중대한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심판 과정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 조대환 삼성특검보의 쌍방대리 금지 위반 행태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 구린내를 누가 좀 치워줬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릴 때 한 번쯤 해본 놀이가 바로 '천재 놀이'다.
나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확신을 전제로 하고,
천재들은 천재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을까가 무척 궁금한 거다.
나도 물론 그런 놀이를 해봤다.

도스또옙스끼는 "천재란 지금까지 지어진 언어의 탑에 '새로운 언어'를 얹어놓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도스또옙스끼의 '천재론'을 들어보면 정말 천재들은 천재에 대해서 그다지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매우 분명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보들레르'에 가면 그러한 점이 더욱 강력해진다. 보들레르의 말을 들어보자.

"기질과 정신적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여자들 사이에서 여자에 의해 길러진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 유모적 보살핌과 어머니의 귀여움, 그리고 누이의, 특히 '작은' 어머니라 할 수 있는 큰누이의 사탕발림은 남성적 기질을 반죽처럼 주무르면서 바꾸어 버린다. 출생 이후 여인의 부드러운 분위기, 그녀의 손과 가슴, 무릎과 머리, 그리고 넘실거리는 그녀의 유연한 인상이 풍기는 향취에 오랫동안 젖은 남자는 예민한 신경과 돋보이는 품성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그는 남성과 여성을 다 지니고 있는 인간이 되는데, 이런 속성이 없으면 더없이 힘차고 엄격한 천재도 예술의 완벽성에 있어서 미진한 존재로 남을 뿐이다." - <꿈꾸는 알바트로스> 중에서

요즘 내가 주목하는 '천재'는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당대는 물론 50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람들의 사랑을 빼앗겨본 적이 없는 행복한 작가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자랑으로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를 평생 동안 연구해온 김정환 시인은 셰익스피어가 '천재'라기보다는 '민첩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놀라운 말이다. 김정환 시인에 의하면 '천재'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시대를 앞서가기 때문에 당대에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김정환 식 '천재'에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은 스피노자와 니체 정도가 되겠다. 스피노자는 평생을 탄압과 협박 속에서 살면서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지도 못했다. 니체는 사람들의 무시와 냉대를 받으며 결국 정신병 속에서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당대에도 대중적 사랑을 받았으며, 대중적 사랑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를 문학적인 단계로까지 끌어올린 공로가 인정된다고 한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경력을 보면 눈치챌 수 있다. 극작가, 배우, 연출가, 극단 운영가로서 매우 다양한삶의 궤적을 그려왔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시대를 읽어내는 감수성이 누구보다 앞서 있었다. 때문에 빌 게이츠는 셰익스피어를 가리켜 '21세기형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김정환 시인은

1954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0년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 강변동네에서' 외 5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하나의 이인무와 세 개의 일인무》《황색예수전》《회복기》《좋은 꽃》《해방 서시》《우리 노동자》《기차에 대하여》《사랑, 파티》《희망의 나이》《노래는 푸른 나무 붉은 잎》《텅 빈 극장》《순금의 기억》《김정환 시집 1980~1999》《해가 뜨다》《하노이 서울 시편》《레닌의 노래》《드러남과 드러냄》등 20여 권의 시집과, 소설 《파경과 광경》《세상 속으로》《그 후》《사랑의 생애》, 산문집 《발언집》《고유명사들의 공동체》《김정환의 할 말 안 할 말》, 평론집 《삶의 시, 해방의 문학》, 음악 교양서 《클래식은 내 친구》《내 영혼의 음악》, 문학 창작 방법론 《작가 지망생을 위한 창작 강의 일곱 장》, 역사 교양서 《상상하는 한국사》《20세기를 만든 사람들》《한국사 오디세이》등이 있으며, 《더블린 사람들》《셰익스피어 평전》 등을 번역했다. 2007년 제9회 백석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정환 시인의 셰익스피어 번역 1차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 속에 감춰진 감시와 통제의 실체



▲ 책을 보다가 한용운 시인의 사진과 만났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그야말로 기습을 당한 것이다. 사진은 당시 '염라장'이라고 할 정도로 악명높은 장치였는데 이를 통해 수많은 활동가들이 범죄인 취급을 당했다. 사진 하단에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이 보이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국가보안법'이다.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라는 책은 단순히 경성 일제 치하의 사진과 역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역사에 박힌 사진'이거나 '사진에 박힌 역사'의 이야기다.
나는 처음에는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아내의 디카를 혼자 쓰다시피 하고 있다. 상이 나에게 와서 인사하는 게 좋고, 사진을 뽑을 때 사진이 나에게 점수를 주는 것 같아서 긴장되기 때문이다.

여권사진을 만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규정이 자못 복잡하다. 귀는 드러내야 하고, 입은 머금어야 하고, 흰색 의상을 입어서는 안 되고, 눈동자는 선명하게 보여야 하고... 이런 시시콜콜한 규정까지 다 정해놓고 있다.

<경성 사진에 박히다>의 저자는 '사진'에 담겨 있는 특성인 '객관적 표상'은 사진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국가기관 같은 외부에서 규정될 때가 많다고 분석했다. 철저히 관리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사진의 규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사진은 정치적이다. 1970년대 도입된 주민등록증 제도는 간첩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탄생했다. 시,도민증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신분 확인이 필요해지자 발급된 것이다. 하지만 사진의 정치학이 가장 왕성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은 역시 일제 치하다.

우리 민족의 거목처럼 존경스러워 보이던 한용운 선사(시인)가 범죄인처럼 측면과 정면사진 속에 갇히고 아래 범죄사실이 적시된 자료를 보는 마음이 참으로 혼란스럽다. 갑자기 거인을 소인처럼 만들어버린 것은 바로 '사진의 마술'이다. 나와 한용운 선사 사이에서 '사진'은 마치 유리벽처럼 작용하는데, 나는 관객의 입장이며 사진의 주인은 아니다. 한용운 선사 역시 사진의 주인이 아니다. 사진의 주인은 일제다. '죄인' 한용운을 찍은 일제에게 한용운은 한낱 범죄인이거나 관리대상일 뿐이다. 당시 독립운동가나 지도자, 사상가, 지식인들은 사진이라는 1차 감옥에 갇혀야 했던 운명이었다. 일찍이 사진의 효율성과 기능을 알고 있던 일제로 인해서 우리들과 사진과의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염라대왕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사진'


▲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의 수형기록표, 1919년(사진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진은 일찍이 경찰 행정에서 효용가치가 '발견'되었다. 요시찰 인물로 분류된 사상 운동가나 독립운동 인사들의 감시와 검거를 위해 사진이 활용된 것이다. 사진이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었는지는 '염라장'(閻羅帳)이라는 명칭이 증명한다. 염라장은 사진이 첨부된 요시찰 인명부나 사진첩을 가리키는 이칭이다.
1929년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사상운동자 명부 작성"에 수집된 사진만 2천여 장이며, 1920년 7월부터 1935년까지 전과자의 범죄 수법과 지문, 그리고 사진을 모아놓은 자료는 35만 4,736매에 달한다.

사진이 부착된 주민증이 없는 사람은 즉시 사살하라는 지시가 내려간 적도 있었다. 1932년 만주국을 세워 그 일대를 통치했던 일제는 비적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만주 장백현에 거주하는 수만 명에 이르는 이주 조선인들에 대한 집단적인 관리 시스템을 운용하게 된다. 장백경찰서가 1947년 7월 1일 배포한 포고문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주민증은 현내 거주자 는 전부 가질 것, 만일 주민증 없는 자는 비적으로 인정하여 즉시 총살함
2. 조선인, 만주인 남녀 16세 이상은 전부 주민증 본인 사진 2매씩 첨부해서 당자에 7월 말일내로 제출할 것, 거주지가 불분명하거나 독신으로 있는 자는 신원을 조사한 후 발급할 것.


장백현 내에 이주한 동포는 2만6천명이었다.

사진은 그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행위 자체에서도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된다. 사진 촬영의 금지를 정해놓은 법률만 해도 요새지대법과 군기보호법, 국가총동원기밀보호법 등으로 다양했다. 군기보호법은 사진 촬영을 광범위하게 규정해놓은 법이다. 이 법은 육군형법(시행령), 해군형법(동 시행령), 해군치죄법, 육해군법회의사소 재판강제집행법, 육군군인속위경죄처분예, 해군군인군속위경위처분예, 계엄령, 군용전신법 등 일본에서 만들어진 다수의 법령들과 함께 식민지 조선을 지배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 때의 법 시행절차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데, 일본에서 법률이 제정되면 식민지 조선에 자동으로 시행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군기보호법은 군사시설이나 주요 시설에 대한 금지 법령이어서 일반인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는데, 사실상 조선의 모든 영토를 실질적인 제한구역으로 설정한 법률이 바로 '국가총동원기밀보호법'이다. 요새지대가 아닌 지역의 철교, 항만 시설 중 특정 지점 등의 촬영도 금지되어 점차 한반도 전역이 사진 통제 구역으로 변해가게 된다. 사진 촬영뿐만 아니라 해당 구역에서 사진 재료를 구매하기만 해도 법에 저촉되어 제재를 받았고, 레닌의 사진만 소유하거나 집에 걸어놓아도 압수하는 등 사진의 촬영행위, 재료 구매, 배치에서부터 사진 규격에 이르기까지 사진은 통제와 감시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사진에 담겨 있는 감시와 탄압의 문맥을 비틀면 '공포'가 읽힌다. 그만큼 당시 조선의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와 사람들은 사진을 염라대왕보다 무서워했다면, 사진으로 이들을 관리하려 했던 일제의 공포심은 어떠했을까?

철권통치와 탄압을 일삼는 자들은 겉으로는 무서운 표정을 짓지만, 마음 속에 꽈리를 트는 공포를 지우지 못해 더욱 악독하게 달려들기 마련이다. 사이버 모욕죄로 온라인을 통제하고 방송을 손아귀에 넣고, 사법권을 남용해 시민단체를 깔아뭉개려는 이명박 정부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깊은 공포심이 또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렵다. 이 공포심에서 일제의 향기가 솔솔 올라온다.

참 사진 하나로 별 이야기를 다 꺼낸다.


▲위 글은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를 참조했다. 이 책은 사진 한 쪼가리를 가지고 '사진에 박힌 우리의 근대는 어떠했나?' 라는 물음은 근대의 기원을 찾으려는 속 깊은 작업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탐색해봄으로써 우리들의 '근대'를 고찰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경제민주화' 1년 결산



2008년 벽두에 나를 흔들었던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명박 후보가 단지 '경제'라는 두 글자로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보고 치욕스러웠다.
그 두 글자는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수사였던 '경제'와 토시 하나 다르지 않았고, 키는 1cm도 자라지 않은 상태였다.
정치민주화를 제물로 한 경제성장은 먹고살기 바빴던 우리들에게 '민주주의의 유예'를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지금도 똑같은 '유예'를 요구하는 모습에 치가 떨렸다.

처음에는 주변 언저리부터 살폈다.
마침 좋은 소재가 있었다.
경제민주화와는 상관 없을 것 같지만,
경제민주화는 물론 민주주의 자체를 뿌리부터 위협하고 있는 '삼성왕국'과 '법률사무소 김앤장'은 벽두의 좋은 주제임이 틀림없었다.

 

사실 그 전에 <한국경제 새판짜기>와 2007년의 핵폭풍 <88만원 세대>를 교양수업처럼 들었던 터였다.
대선과 맞물리면서 김상조 교수(한국경제 새판짜기 공저자)와 우석훈 박사는 경제라는 화두를 바르게 피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들은 세상을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의미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즉,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이들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지금 상황이 잘못돼 가고 있으며, 바꾸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막연히나마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우석훈과는 그 후로도 계속 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석훈이 한국경제 대안시리즈 4부작을 최근에야 완결지으며,
<88만원 세대>(경제대안시리즈1부)에 이은 2,3,4부를 계속 쏟아냈기 때문이다.

우석훈은 딴지일보 김어준에 의해서 <호러경제학>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는데,
나는 이 평가가 너무 희화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은 우석훈에 나오는 등장인물(?), 즉 우리들이 죽거나 도태되는 현상 자체를 너무 피상적이고 극적으로 묘사했다.
오늘도 수십 명이 짧은 생을 포기하고 한강물로 뛰어드는 생생한 현실을 '호러'라는 장르에 대비할 수 있을까.
'호러'라는 수식어는 우석훈이 그 상황을 무미건조하게 표현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실제 우석훈이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면, 감수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그가 사람들이 죽어 떨어져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펑펑 울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우석훈의 지론에 '경제학'이라는 단어를 허락할 수 있다면 '감수성 경제학'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그는 자칭 '비주류' 혹은 'C급 경제학자'이다.
경제학은 아무리 복잡한 수식을 동원해도 그 안에는 몇 개 안되는 명제들을 토대로 삼기 마련인데,
우석훈은 경제학의 토대를 존중하기보다는 토대 아래 쓰러져가는 형이하학적 경험치들을 일반화하고 수식화하는 데 골몰한다.
때로 많은 비약으로 인해 그의 주장이 결함투성이라는 판단이 들 때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도 그 못지 않게 감수성의 소유자라서 그런가 보다.
전쟁으로 따지면 그는 '전사'라기보다는 '책사'에 가깝다. 그것도 눈물이 많은...


 
장하준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교양과목 삼아 읽었던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장하준, 한국경제의 길을 말하다>라는 책은 논외로 하더라도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를 통해 장하준의 '전사적 면모'를 만나게 되었다.

장하준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 독특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일반 독자로서 그의 지론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기'는 '엘리트'이다. 그는 엘리트 경제정책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급하게 말하면, 마치 박정희의 경제 책사 오원철(吳源哲)씨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화두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국가'와 '통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정책'이라는 형식으로 수렴된다.

그의 주적은 '신자유주의'인데, 우리는 장하준으로 인해 '신자유주의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상대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장하준은 '투쟁 의지'가 결여돼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는 '질서'가 투쟁보다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이룩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하준의 '사회적 대타협론'은 그의 '대 신자유주의 공세'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내공을 좀 더 쌓아 장하준, 우석훈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





요즘 대학원생, 직장인, 학부생, 휴학생들과 함께 마르크스 자본론 강독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일반독자로서 읽은 경제학 해설서들을 밑천 삼아 자본주의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평가받는 대 학자의 저서를 읽고 싶은 욕망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현재 경제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는다고 그것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경제를 받아들이는 내 마음에 토대 하나 정도는 세울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뜻 있는 자에게 길이 보이는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세미나 공간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직장인, 학부생, 대학원생이 중심이 된 마르크스 강독회의 멤버가 되었다. 강독의 방식은 고전적이었는데,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갔다.
일단 마르크스를 읽고 나서 옆의 멤버가 이를 요약하고 간사가 정리하고 나서 토론을 하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마르크스는 강독을 해야 한다"는 지인의 조언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였다. 

그들에게 우석훈과 장하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의 천학비재로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지 못했다. 이 점이 아쉽고 좀더 내공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경제학자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한 학생으로부터 '뉴 케이지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어서 인용한다.  

"그들이 현대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정확하고 마르크스를 넘어서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들은 대안에 이르러서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국가'였다. 국가가 경제상황을 통제하고 분배를 해야 한다는 단순한 대안으로 하나같이 동일하게 수렴되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 역시 기업과 결탁할 수 있다는 참으로 현실적인 가설을 들이댄다면 그들의 입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이에 비해 마르크스는 자신의 논지를 종합해서 '투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상만사 투쟁으로 이루어지는 이치이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찾기 위해서는 투쟁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정부조차도 투쟁을 통해 획득된 것이며, 투쟁의 반대급부로 복지와 인권이 수립되기 때문에 투쟁 의지를 놓으면 아무런 변화도 이끌 수 없다고 마르크스는 강력히 주장한다.

올해는 우석훈과 장하준의 담론에 흠뻑 젖으면서 두 경제학자를 한 이야기 안에 집어넣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심사와 관점 자체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둘은 쟁점의 여지조차도 별로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역시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현실에 대해서 느끼는 좌절과 그에 비례하는 '애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승주나무 2008-11-1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런 글이 다음 메인(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036495)에 올라갈 줄이야.. 정치하지도 못한 글이라 자면서 자꾸 후회했는데..다음 관리자가 나를 편애하는 듯 ㅋㅋ

2008-11-12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11-12 16:04   좋아요 0 | URL
오~ 선생님 ㅎㅎ
감사합니다. 머리 뒤쪽이 화끈거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