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승주나무 > 삼국지 백번보다 사마천 한번 읽는 게 낫다

'김영수'의 문을 열고 사마천으로 들어가다

사마천과의 만남이 무척 운명적이었듯, 김영수 선생과의 만남 역시 갑작스러웠다. 이미 EBS에서 <사기와 21세기>라는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했던 터라 소문을 들었을 만도 한데 나는 사마천의 국내 전공자가 없다는 사실에 무척 목이 말라 있었다.
"삼국지를 10번은 읽어야 세상사를 논할 수 있다"는 저잣거리의 수사를 품에 안고 살기를 20여년 '사마천'이라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의 역사서 <사기열전>으로 한문공부를 시작했다. 충격적인 인물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삼국지 따위를 버리고 사마천에 빠져들었다. 특히 지금도 흉노열전과 화식열전, 골계열전은 무척 현대적이며 세련미가 있다. 2,000년도 전의 인물인데 말이다.
이런 매력적인 인물에 미친 사람이 이렇게 없을까. 사마천 연구자가 우리나라만큼 빈약한 곳이 또 있을까. 국내의 사마천 책은 번역서가 대부분이다. 김영수 선생에 의하면 그것도 사기열전에만 편중돼 있어서 사마천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영수 선생의 책 <난세에 답하다>를 보면서 평소 즐겨 읽던 사마천의 새로운 관점들을 알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는데,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생중계로 진행한 김영수 작가와의 대화에서는 책에서 읽지 못한 사마천의 심도 있는 해석방법과 현대에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마구 얻어갔다. 좋은 작가와 만나면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는 성미에다가 출판사와의 남다른 친분(?) 때문에 김영수 작가와 밤늦게까지 사마천에 관한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어서 무척 즐거웠다.

김영수 선생은 현장 찬미가이다.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중국에 들어갈 결심을 하고부터 지금까지 100여 차례 중국을 돌며 사마천의 흔적을 취재했다. 그의 정성이 얼마나 깊었던지 사마천의 고향인 중국 섬서성 한성시 서촌은 성생에게 명예촌민이자 한성시홍보대사로 위촉할 정도였다. 사마천을 사기를 저술하면서 한나라 당대사 이전의 역사, 특히 춘추와 전국시대의 역사는 <전국책>과 <국어>의 내용을 원용했지만 시민기자로서 가장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부분은 그의 취재정신이다. 영웅의 후손을 만나보거나 고향으로 직접 찾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역사에 기록하는 등 <사기>에는 사마천의 취재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김영수 선생은 중국을 직접 오가며 취재를 하고 나면 사마천의 문장들이 더욱 깊게 다가오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난세에 답하다>에는 김영수 선생이 직접 보고 들은 취재기가 많이 수록돼 있는데 창의적인 역사의 서술은 면밀한 자료조사와 현장 취재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사마천과 김영수 선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마천 연구를 왕성하게 하고 있는 김영수 작가의 강연회에는 고른 연령대의 독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생중계 시작할 때는 독자들도 작가도 잔뜩 긴장을 했지만 이야기보따리가 풀리며 김영수 작가의 표정처럼 모두들 원만한 분위기가 되었다.


<사기>에 최초로 아로새긴 비밀

김영수 선생의 남다른 독법에 감탄을 자아낸 부분이 있었다. 그야말로 들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지금 사기 본기와 세가, 열전을 펼쳐보며 확인작업을 하고 있는데 세 편명의 첫머리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기본기의 첫머리는 <오제본기>, 세가는 <오태백세가>, 사기열전은 <백이숙제열전>이다. 모두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양보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중국사의 성군 요왕은 아들이 아니라 신하인 순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이른바 '선양'을 하게 되는데, 선양은 중국사에서 매우 고귀한 가치이다. 선양과 세습은 성인이 바라보면 매한가지이지만 범인의 관점에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오태백세가>는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오랑캐 나라로 도망간 오태백의 이야기를 다룬다. <백이숙제열전>은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해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고죽국의 왕족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다. 세 편을 뒤적거리며 '양보'라는 가치가 빛을 드러낸다. 김영수 선생은 이 밖에도 사마천의 사기는 무척 신비스러운 안배가 숨어 있다고 한다.
꿈보다 해몽이 더 마음에 드는 경우도 있었다. 김영수 선생은 골계열전을 사기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편명 중에 하나로 꼽는데, 그것은 바로 '유머'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들과 하버드 학생들의 공통점은 유머를 구사할 줄 안다는 데 있다. 창조적 정신과 드높은 교양은 유머를 통해서 나오는데, 유머가 없는 사람일수록 진취적이지 못하다.

몇 년 전 블레어 영국 총리가 '부시의 푸들'이라는 별명으로 곤욕을 치르던 시기에 공교롭게 부시와 블레어가 공동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다. 짓궂은 기자가 부시에게 "블레어가 당신의 푸들이라고 하는 말을 알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다. 블레어가 옆에서 끼어들며 "Yes라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된다면..." 기자들이 웃었다. 부시는 정색하며 "블레어 총리는 나의 소중한 친구이지 절대로 푸들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기자회견장은 순간 멍한 분위기가 되었다. 국가 지도자가 무능한 것은 그런 대로 참을 만한 일이지만, 국가 지도자가 유머가 없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개그콘서트>라도 보면서 억지 유머라도 키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골계열전에서 사마천은 두 번이나 찬평을 하는데 시경이나 서경 등의 육예뿐만 아니라 골계미 넘치는 은밀한 말 속에도 이치에 맞는 것이 있어 이것으로 얽힌 것을 풀 수 있으니 위대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영수 선생은 이를 이렇게 해석했다.

세상사가 예의범절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유머다.

김영수 선생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편명은 열전의 맨 마지막 편인 <화식열전>이다. 사마천이 넣을까 말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배치다. 아니나다를까 <화식열전>으로 인해 사마천은 후대 사가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는데, 그 중 가장 심하게 평가한 사람은 <한서>를 엮은 반고다. 사리사욕의 문제를 역사책에 다뤘다고 '탐욕'이라는 글자까지 써서 비난했다는 것이다. 김영수 선생은 <화식열전>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혀를 내둘렀다. <화식열전>은 경제와 사람의 함수관계를 가장 정확히 지적했다는 것이 김영수 선생의 평가다. 그것은 화식열전의 한 구절을 꺼내봐도 알 수 있다.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화식열전, 중국속담)


▲ 중국 섬서성 한성시에 세워진 사마천상 영상자료를 설명하는 김영수 선생. 무엇이 그에게 평생토록 사마천 연구에 매진하도록 만들었을까?



현 정부, 국민, 재벌 CEO에 대한 따끔한 지적들

"우리 스스로가 왕조를 극복해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현대사의 비극을 운위할 수 있을까요?"

김영수 선생이 뭇 사람들에게 내리는 정직한 진단이다. 역사 민주화에 한해서 우리는 중국만도 못하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당 태종이라는 왕호를 버리고 이세민이라는 실명을 쓴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세종 대왕을 '이도'라고 부르지 못하고, 정조 대왕을 '이산'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나마 '이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드라마 때문일 것이다. 김영수 선생은 간신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출간했지만, 정작 우리나라 간신에 관한 책을 내려고 했을 때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것은 우리가 역사에 대한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조선시대의 인물계보에 관한 역사를 추적하던 한 학자가 괴한에게 린치를 당했다. 감히 자신의 조상의 뒷조사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주소라고 씁쓸하게 말문을 이어갔다.

그는 정직이 학문의 전부라고까지 말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에게 몰표를 주고, 뉴타운 총선에서 특정 정당에게 몰표를 주면서도 자신이 뽑은 사람들을 욕하는 모순과 이중성이 어떤 무게 있는 비판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고 토로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못된 이중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더의 자질을 기대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리더를 보필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고, 리더의 리더십에만 편승하려는 무척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현재 한국인들의 정서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리더십의 경전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리더십과 동시에 펠로우십(fellowship)을 꺼내들고 있기 때문이다. 펠로우십의 가장 전형적인 인물은 '포숙아'다. 관중을 처형하려는 제환공의 마음을 바꾸어 재상으로 기용하게 하여 제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것은 관중의 리더십이 아니라 포숙아의 펠로우십이 조화를 이루었기에 가능했다.

현 정부의 정직하지 못함도 아울러 꺼내들었다. 정치인을 내각에 임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명해놓고 이달곤 국회의원을 행안부 장관으로 내정한 것은 상상치도 못할 거짓이라고 경악했다. 청와대와 여권의 해명은 더욱 말문이 막힌다. 국회의원을 했지만 평생 연구자로 있었기 때문에 이달곤 국회의원을 정치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영수 선생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이어진 술자리에서 말과 언로에 대한 진귀한 답변을 들은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진국이다. 말이 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의 격을 세우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 CEO들의 학습 태도를 지적하며 말의 저급화를 지적했다. CEO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 나면 꼭 마지막에 '요약'을 해달라는 게 그들의 습관이라는 것이다. 파워포인트 같은 단순명쾌한 요약자료에 익숙해진 그들은 오의()라는 말과는 너무나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CEO들뿐이랴. 솔직히 나는 <난세에 답하다>가 너무 대중적이고 쉽게 쓰여진 것에 불만을 토로했는데, 책에 대한 리뷰를 분석한 편집자에 의하면 "책이 너무 어려운데 좀더 쉬운 개설서를 써달라"는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 자신의 허물은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 나서주기를 바라고 뭔가 좋게 바뀌기를 바라기만 하는 무책임함이 대한민국을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의 비감함이란.


▲ <난세에 답하다>는 현대사회가 새겨들어둘 만한 키워드만을 뽑아 사마천의 사기를 풀어쓴 이야기책이다. 사마천에 대해서 좀 더 심도 있는 담론을 원하는 욕심 많은 독자라면 김영수 작가의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창해)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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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2-02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대학 다닐때 사마천의 <사기>를 좋아라했어요. 대학 다닐때만 열전을 두 번 읽었던 듯 합니다. 그 때 저도 삼국지보다는 사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승주나무 2009-02-03 23:06   좋아요 0 | URL
사기를 볼 때마다 참 느껴지는 바가 많았어요. 사람의 이야기를 희구하던 시대였는데 영웅들의 인생무상도 맛이 좋았습니다.
 



워낭소리
(Old Partner, 2008)
감독 : 이충렬


워낭소리는 시간의 시작과 끝

이 영화를 보고 싶어서 글을 남긴다.
얼마 전에 회사 동료가 시사회 갔다 온 이야기를 한다. <워낭소리>를 나는 <원앙소리>로 알아듣고 무슨 새 영화인가 했다. 알고 보니 새 영화가 아니라 소 영화였다는 것. 며칠 동안 개봉관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했지만 좀체 찾을 수 없던 터라 이번에 입소문을 통해 개봉관을 늘린다는 소식이 반갑기 그지 없다. 설에 제주에 내려갔을 때는 그런 영화가 있는지조차 잘 몰랐는데, 이 영화가 지방에까지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서 입소문은 참 무서운 것이니까.


소와 땅과 사람이 시간을 타고 흘러가는 시작과 끝이 바로 워낭소리다. 워낭이란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이나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를 말하는데 소의 마음을 대신 표현하는 장치이다. 노인이 30년지기 늙은소의 워낭을 직접 풀어줌으로써 소리의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울림은 더욱 커진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도를 통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라면 '울림'이 아니라 '떨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우리에게는 잔잔하게 어제와 오늘을 성찰하는 기회가 참으로 필요했다.


숨비소리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인간의 소리

‘숨비소리’란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로 떠오를 때 참던 숨을 내쉬는 휘파람 같은 소리를 일컫는 방언을 말한다.
제주의 해녀들에게 오래된 불문율이 있다. 아무리 넓고 파도가 센 바다라고 해도 해녀는 이를 맨몸으로 상대해야 한다. 일체의 장비를 들고 채취를 할 수 없다. 때문에 폐활량만이 생산량을 결정한다. 짧은 순간 깊고 위험한 바닷속에서 온갖 욕망과 사명감이 해녀를 부둥켜 안고 사연이 절박할수록 소리도 따라간다.


 

▲ 이성은 사진집 <숨비소리>의 한 컷

이성은의 사진집 <숨비소리>에서는 할머니 해녀의 숨비소리를 절묘하게 포착하며 아래와 같은 설명을 붙여 놓았다.

"물안경을 쓴 할머니가 물 위로 떠올라 숨을 내쉬는 순간이다. 그 한숨은 이 노련한 해녀에게만 시원한 것이 아니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도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물위로 솟아오를 때까지 참아야 했던 숨을 몰아쉬며, 그 유명한 휘파람, 즉 우도사람들이 "숨비소리"라고 부르는 그 숨을 토해내는 할머니의 얼굴은 그냥 그대로 살아있는 화석이다. 사진의 요약과 함축과 포착의 모든 기법이나 기교를 부질없는 솜씨로 만드는 순간이다. 수경의 유리 숙에 반영되는 그 깊은 주름의 얼굴은 한 점의 '데드마스크'처럼, 아찔한 순간 속에서, 죽어가면서 영원히 살아나고, 살아나면서 영원히 죽어간다."

숨비소리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인간의 소리이지만, 그 본질은 '투쟁'이다. 바다와의 사투이며 자기 자신과의 사투이다. 차라리 신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숨비소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많이 발표되었는데, 나도 이를 주제로 무엇인가를 하나 꼭 만들고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 엄마가 수십 년 동안 나를 키워내며 매일같이 내던 소리도 바로 숨비소리였으니까.

덧 : 태명을 '소리'라고 지었는데, 성과 함께 붙이니 듣기 좋지 않다며 마눌님은 마뜩찮은 눈치다. 이름도 아닌데....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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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1-30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태명은 뿡뿡이 같은 것도 귀엽던데요. 이번주말에 워낭소리 보러갈 예정입니다. 제법 손님이 든다고 하더라구요. 다행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잘 되었으면 합니다.

승주나무 2009-02-01 00:52   좋아요 0 | URL
휘모리 님~ 안녕하세요. 이번 다큐영화는 정말 잘 돼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보고 많은 흔적을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반성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드팀전 2009-01-3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숨비소리'...아..그거군요.아..그거였어요.
(이런 제길...다큐영화 '해녀'가 준비중이군요.)

카메라의 찰칵하는 셔터소리와 '파아'하는 숨소리가 동시에 들립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떤 영원함이 포옹하고 있는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제가 최근에 본 페이퍼 중 가장 좋네요. 바람구두의 시 한편과 함께

워낭소리 이충렬감독은 원래 소가 아니라 '아버지'를 찍으려고 했답니다. 그러다가 경북 봉화에서 주인공 할아버지와 소를 소개받은 거지요. 이충렬 감독은 아버지의 DNA와 소의 DNA에 어떤 공통점을 본다고 합니다. 그래보이지요.^^ 승주나무님도 곧 아빠가 되실터이니..
저희 첫째아이의 태명은 '아침'이었고..지금 뱃속에 있는 아이는 '보리'입니다.



승주나무 2009-02-01 00:54   좋아요 0 | URL
드팀전 님의 칭찬을 들으니 무척 기분이 좋아져서 신나는 하루였습니다.
바람구두 님의 시는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요. 저도 바람구두 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더욱 부드럽고 친숙한 문체가 돋보이더군요^^

Mephistopheles 2009-01-3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낭소리는 저번에 '바시르와 왈츠를' 보러 갔을 때 극장에 꽂혀있는 선전지를 보고 봐야지..했던 영화였었는데..이게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을진 모르겠더군요..^^

승주나무 2009-02-01 00:54   좋아요 0 | URL
바시르와 왈츠를.. 정말 좋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페이퍼를 곧 보실 수 있을 듯~~

2009-01-31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9-02-01 00:54   좋아요 0 | URL
정말 간만이에요. 예전에는 제가 설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나는데..

어떤 다른 삶인지 카페에 마주앉아서 들어보고 싶어요. 지난번처럼^^

올레길 2011-09-1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할머님의 호오이 호오이~ 추천합니다.
 

※ 1월 13일 목수정 강연회와 시사인 강연회가 겹쳐서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도 유료강좌(1강좌당 15,000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목수정 씨와 따님을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김종철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더 후회를 할 뻔했다. 목수정 후기를 써주신 분들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후기를 쓴다^^ 아프 님~ 그때 함께 못 가서 미안해요. 그래도 신경 써서 함께 가자고 하셨는데..

내 맘 알죠^^

 

2009년 벽두의 화두는 '경제'가 아니라 '농촌'이다

 "우리 모두 농민이 되지는 않더라도 농민을 중심에 두고 농적 가치를 귀하게 여기면서 살지 않으면 모두 끝장이다."(김종철)

"일본의 모든 초등학생들은 반드시 일주일간 농촌에서 지내야 한다는 규정이 문부성과 농무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농촌의 원시적 생명력을 누려야 올바른 인간이 된다는 취지의 정책이다."(박원순)

요즘 시사IN 신년강좌를 들으러 다닌다. 돈을 내고 받는 유료강좌(강좌당 1만5천원)라 그런지 눈 부릅뜨고 강의를 듣게 된다. 첫 주(1월 7일)에는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을, 두 번째 주(1월 13일)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을 만났다. <작가와의 만남>류의 강연회를 적잖이 다녀보았고 직접 주최를 해보기도 했지만 두 명의 연사가 제각기 역할을 맡아 진행하는 방식은 신선해 보였다. 특히 1월 13일 김종철 발행인과 함께 강연을 진행한 이문재 시인은 초반의 예열기와 강연 후의 청중문답 시간에 적절한 끼어들기 기술(?)을 선보이며 강연의 품격을 높여 주었다. 이를테면 생태적 상상력에 대한 김종철 발행인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이문재 시인은 "생태적 상상력이란 문명과 곁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문명을 완연히 거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강력한 상상력입니다"라는 말로 김 발행인의 생태 철학을 말끔히 정리했다.

공교롭게도 박원순 변호사와 김종철 발행인이 꺼낸 화두는 '농촌'이다. 물론 각론은 달랐다. "대한민국 농촌에 술에 미친 사람 10명만 있어도 엄청난 성장을 거둘 수 있어"라거나 "안성으로 내려가서 안 무거운 합금방식을 만들어 보라"와 같이 박원순 변호사가 말하는 '농촌'은 철저히 사회적 기업 마인드에 따른 개념인 반면, 김종철 발행인의 '농촌'은 생명의 절박한 해방구로서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깊이가 다르다. 청중들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다. 박원순 변호사의 강연을 듣던 전라도의 방청객은 "박 변호사님이 말씀하시는 '농촌'은 농촌에서 올라온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도시의 싸구려 생산기지로서의 시골에 가깝다"고 매서운 비판을 했다. 김종철 발행인도 독자의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최근 서울로 사무실을 옮긴 데 대해 "지는 시골 내려가서 농사 지으라고 말하면서 상경은 또 무슨 말이냐"며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시사IN의 신년 강좌는 두 명의 명사가 강연과 진행을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문재 시인은 '명강연자'가 아니라 '명진행자'라는 타이틀을 얻을 만했다. 강연록은 매주 시사IN에 연재된다.


고상한 척하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나약한 도시인들

"서울 사람 천만명이 매일 똥을 눈다고 생각해 보라. 이게 1~2년도 아니고 계속 되는데 똥 누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김종철 발행인은 자동으로 똥을 처리해 주는 양변기를 쓰는 도시인의 나약함을 단 한마디로 벗겨냈다. 그는 도시에 사는 사람의 일상을 다음과 같은 말로 정리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하나같이 거짓투성이이고 전쟁처럼 살아가면서도 빠져나올 줄 모른다. 인간의 품위와 자존심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살 수가 없고,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농촌은 먹고 싸는 문제에 있어서는 '책임감'이 있다. 17년 동안 농촌 문제를 고민하며 흙 묻은 글쓰기를 해온 평론가답게 그의 말은 유기농 야채처럼 거칠게, 그러면서도 내 내장에 직접 닿는 듯한 힘이 느껴졌다. 그가 말하는 '농적 가치'란 철학적으로 보면 '관조적인 삶'에 닿아 있다. 김 발행인은 일본의 장기 불황기를 보도한 뉴스위크 지의 기사를 인용했다. 해고와 조업 단축 등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일본인들은 생애 처음으로 꽃을 구경하고 황혼이 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응시했고, 비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고독에 잠길 수 있었다. "좋은 삶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삶"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구가 흘러나왔다.

이야기에 홀려 있는 사이에 경제학으로 넘어갔다. 미국의 경제불황이 불러온 세계적인 경제불황을 보는 녹색평론의 발행인은 "경제성장이 멈췄다. 이제 모두 춤출 시간"이라고 선언했다. 경제 불황을 통해 우리가 어떤 자본이 부족했는지가 명확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현금자본과 부동산 자본이 아니라 바로 '사회자본'과 '인간자본'이 우리에게 필요한 자본이라는 설명이다. 김 발행인의 유년 시절에는 동네마다 정신을 놓은 사람이 있는데, 이런 금치산자들 중 굶어죽었다는 경우는 드물었다. "친구들이 있고 인간관계 있다면 사람들이 이 사람을 굶어죽도록 그냥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 김종철 식 '자본론'이다.

그 다음은 교육이다. 김종철 발행인은 파격적으로 '대학 무용론'을 주장했다. 아예 조만간 '대학 안 가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대학 가 봐야 비정규직을 벗어나기 힘들고, 정규직이 돼 봐야 40세가 되면 어김없이 정년이다. 취직하자마자 정년을 맞게 되는 셈이다. 김 발행인의 말을 조금만 응용하면 대기업, 공무원이 되는 것도 별로 가치롭지 못한 삶인 셈이다. 전 주에 박원순 변호사는 이미 "삼성 사원, 공무원 되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김 발행인은 농촌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입이 닳도록 자랑했다. 흙을 밟으면 심성이 부드러워지고, 작물 키우면 자연히 어질어진다는 것이 꼭 김 발행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잘 아는 상식이다. 그는 농업과 교육의 융합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문재 시인은 김 발행인이 녹색평론 차원에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종철의 농적 가치는 '정치학'으로 향했다. 녹색평론을 읽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소농공동체'는 녹색평론의 전매특허 아닌가. 김 발행인은 간디가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과 비슷한 정치철학을 주창했다고 말했다. 즉 자유시민 5~6천명이 모인 마을을 만들어 간다. 5~6천 명 이상은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이 마을은 사실상 조그마한 공화국인 셈인데, 간디는 70만개의 마을에 각각의 공화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간디는 위대한 정치철학자라고 김 발행인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김 발행인은 "도시보다 농촌이 훨씬 민주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농촌은 1인이 명령을 내려서 작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주적 가치는 빌딩이 아니라 숲과 땅에 둥지를 튼다는 말이다.

김종철 발행인의 '농적 가치'는 철학, 경제학, 정치학 등의 주제를 넘나들면서 뚜렷한 형상을 만들어 갔다. 하지만 '문학'이 빠질 수 있을까? 김 발행인은 '이야기의 부재'를 걱정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친구가 1년에 한번씩 찾아와 회포를 풀고 갔는데, 그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겪은 이야기를 밤새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김 발행인과 형제들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밤새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다고 회고했다. 한국인이 농촌에서 멀어지면서 이런 풍요로움은 더 이상 계승되지 않은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손실이라며 무척이나 아쉬움을 나타냈다. 인생이란 기본적으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년강연에 '돈 내고' 참여한 방청객들은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저마다 필기도구를 가져와 강연 내내 판서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매 강연마다 주최측에서 강연을 불가피하게 끊어야 할 만큼 대단한 열기였다. 



농촌은 영원한 블루오션이다.

박원순 변호사의 '농촌'은 창의성이 가득하고 쓰고 남을 만큼 사회적이며 현실적이다. 그는 일본의 JAL 항공과 한국의 KAL 항공의 서비스를 단적인 예로 들었다. "JAL 항공을 타면 승객들에게 일본 전통주를 주는데, 우리의 KAL 항공을 타면 외제 위스키와 포도주만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 경쟁력을 상실한 우리의 모습이라고 한탄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4,000곳이 넘는 지역의 특산 명주가 생산된다.

박원순 변호사가 강연 내내 설파한 내용의 요지는 우리는 모두 레드오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개인도 그렇고 기업이나 국가가 모두 그렇다. '삽질'로 대표되는 정부의 비전은 빨갛다 못해 선혈이 낭자할 지경이며, 삼성 등 대기업도 '샌드위치 위기론'이나 '굴뚝'의 상상력을 넘지 못한다. 박 변호사는 21세기에는 소니나 도요타 같은 대기업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작은 기업이 무서운 시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1만명을 고용한 1개의 기업은 만들 수 없어도, 1인을 고용한 1만 개의 기업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기업은 농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강연을 듣는 내내 강의 내용보다는 세계를 열성적으로 뛰어다니는 그의 체력이 궁금했다. 육체적 체력은 물론 정신적 자양분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궁금했는데, 그 비결은 그가 시골 출신이었다는 데 있었다. 시골에서 중학교 다닐 때 매일같이 30km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다 보니 체력이 좋아지고 발바리처럼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명강사의 강연을 들으며 나는 '농촌'이라는 화두를 강력하게 머금었다. 한낱 나약한 도시인에 불과한 사람으로서 농촌까지의 거리가 까마득하지만 김종철 발행인의 말처럼 국내산 농산물을 구매하거나 생협에 가입하는 등 농촌과 아예 거리를 두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뛰어다니며 사고하라는 메시지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생각이다. 박원순 변호사의 말처럼 한 가지 일을 정신없이 하다 보면 다음에 할 일이 또 생기기 마련이니까.


박원순 변호사는 손수 자료화면을 준비해 와 세계의 사회적 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많은 사례를 소개했지만, 요지는 "우리도 할 수 있다"였다.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포지티브'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종철 선생은 정도의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옆 농협중앙회에 있는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 음각 비석 이야기를 꺼내놓으셨다. 음각 비석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다.

"아무리 공업화가 되더라도, 아무리 우리가 쌀을 사 먹더라도 반드시 세계 어디엔가는 농민이 있어야 한다. 농민이 생명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1937년 나왔던 <농민독본>이다. 김종철 선생은 2009년판 <농민독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문재 시인은 <녹색평론>이 21세기판 농민독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지만, <땅의 옹호>만큼 그 정수를 머금은 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는 녹색평론 서문집인데, 녹색평론을 구독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김종철 발행인이 쓰는 녹색평론 서문의 문장과 그 심대한 철학이 황홀할 정도다. 이것은 분명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나오기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서문집으로 정리돼 나와서 무척 반갑다. <땅의 옹호>와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는 모두 녹색평론에 남겼던 글들을 단행본으로 모은 것이다. 104권이나 되는 녹색평론을 단 두 권으로 읽게 되는 셈이라 강추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초인가 라주미힌이라는 청년을 꼬셔서 박변(박원순 변호사를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더라) 강연회를 들으러 갔다. 나는 그냥 잘 나가는 엘리트겠구나 생각했는데, 이 책과 강연을 듣고 나서 박변의 팬이 되기로 했다. 나 역시 포지티브한 생각이 중심철학이었는데, 박변의 포지티브는 포지티브의 이데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생명력이 강했다. 마치 박변의 수첩이 책으로 변신한 듯한 느낌을 주는 프리윌은 그냥 처세서가 아니라 박원순 변호사의 내적인 힘을 설명해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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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의 스타 경제학자 우석훈이 자신이 공언했던 한국경제의 대안시리즈를 완간했다. 한 네티즌은 "우석훈이라는 함수가 지닌 장점은 일단 복잡한 상황들을 최대한 압축하여 먹기 편안한 알약으로 바꾸어서 돌려 준다"고 평가했는데, 과연 우석훈은 중학생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의 문제와 상황을 쉽게 설명하는 데 '달인'이 된 듯하다. 달인이 되기 위해서 우석훈은 복잡한 수식은 대부분 삭제했고, 이른바 '중딩', '고딩'과 온라인에서 소통을 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88만원 세대인데, 88이라는 수식어는 현재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키워드가 되었다.

하지만 우석훈을 <88만원 세대>라는 책으로 한정하는 데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나는 우석훈이 의도한 <한국경제 대안시리즈>라는 명칭 대신 <한국경제 대안시리즈>로 이해했다. 심지어 그가 제3섹터라는 대안을 제시한 제4부 <괴물의 탄생>조차도 제3섹터를 통한 제1,2섹터의 문제점들을 환기시킨 것으로 이해한다. 한국 경제, 나아가 한국 사회의 새판을 어떻게 짤 것인가를 고민했던 우석훈의 전모를 4권의 압축 리뷰로 일별하고자 한다. - 승주나무 주

괴물이 태어날 최적의 환경 - 88만원 세대

<88만원 세대>(레디앙)는 승자독식게임과 세대간 경쟁(더 정확히 말하면 착취)이 나타나게 된 사회적 문맥을 살폈다.

왜 세대의 문제가 나와야 하는가? 그것은 단자(單子)처럼 세대와 개인이 단절돼 있는 현 상황에서 당연한 결론이다. 단자란 라이프니츠가 고안한 용어로 모든 존재의 기본적인 실체는 단순하고 불가분하며 각기 독립돼 상호 간에 어떠한 인과관계도 가지지 않는 개념을 말한다.

‘모나드는 창(窓)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신리 미리 정한 법칙에 따라 질서 있게 움직이며, 이 다양성이 세계 전체를 이룬다는 예정조화설을 거부한 채로 이 개념을 차용했다. 즉, 즉 신의 정해진 질서에 따라서 움직이는 단절된 단자가 아니라 무질서한 세계에서 단절된 위험천만한 단자이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모두 위험천만한 단자인 셈이다.

개인과 개인의 협력이 없기에 사회적 연대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 수밖에 없고, 세대와 세대 간의 협력이 없기에 문제의식과 투쟁의식이 계승되지 않는다. 어떠한 액티브한 캠페인도 세대의 결계를 벗어나는 적이 없다. 결국 이 사회는 쳇바퀴 다람쥐 사회일 수밖에 없고, 다람쥐의 주인은 언제나 똑같다. 배틀로얄 구조와 세대 간 불균형의 극단은 멕시코처럼 눈사람 모양. 그것도 대가리가 쥐방울 만한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대운하 같은 거대한 눈덩어리를 굴린다. 나는 괴물보다 대가리 작은 눈사람이 더 무섭다. (대가리가 작은 눈사람은 우석훈의 8자형 시스템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전근대적 조직과 미래지향적 조직의 박터지는 싸움 - 샌드위치위기론은 허구다(조직의 재발견 구판)

갑자기 조직이 툭 튀어나와 생뚱맞다? 88만원에서 보여주었던 배틀로얄, 세대 간 불균형, 개별 해법 현상(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국한시켜 이해하는 방식)은 대한민국의 특수한 ‘조직’에 의해서 예쁘게 반죽되고 포장된다. 일종의 활주로라고나 할까? 배틀로얄의 개인은 조직에 숨고, 조직은 개인을 통제할 수 있다. 조직은 오래된 논리로 아주 쉽게 사회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의 조직 문화를 분석하지 않고 문제의 전체를 도출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샌드위치위기론은 허구다>(조직의 재발견)는 4개의 시리즈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고 실증적인 분석이 담겨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우석훈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단문 형식으로 요약하면

- 노사모 - 돈도 필요 없고 영광도 필요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미래지향적 조직의 모델...내용과는 무관하게(38~40)

- 한국사회에서 기업은 오랫동안 군대 자체였다.(156)

한국 포디즘 시스템의 가장 큰 약점은 조직 내부의 문제를 외적 성장으로 해소해 왔다는 것이다. 기업의 내부까지 완벽하게 시장원리로 구성된 조직은 망한다. (194, 223)

사회적 약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곳은 조폭과 다단계. 다만 벗겨먹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이므로 사회적 약자는 절대로 위로받을 수 없다.(273)

한국 자본주의 위기는 조직모델의 부재(285)

한국형 국민기업 모델과 중남미형 지옥 모델(325)

<조직의 재발견>에서느 뮤턴트(돌연변이)의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석훈도 386에서는 뮤턴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기회가 날 때마다 온몸과 온맘으로 386 욕을 해대기 때문이다. 동시에 386에게 엄청 욕을 먹는다. 한국은 기업과 권력기관(서울대, 법조계, 정부 등)이 균질성이 높은 편인데, 균질성이란 특정 지역 출신이나 특정 학교 출신 등이 매우 한정된 것을 말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뮤턴트가 태어나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괴물은 태어나기 쉽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친족끼리 정을 나누면 괴물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배경으로 깔려 있었는데, 소설의 결론에서 정말 괴물이 태어난다. 창조의 능력을 이론의 핵심으로 전제하는 진화경제학은 뮤턴트의 등장과 함께 일종의 생존경쟁이 시작되고, 기존 우점종보다 더 잘 적응된 뮤턴트들이 새로운 우점종이 되면서 창조가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이런 뮤턴트의 탄생 과정을 우리 사회에 적용시키면 매우 의미심장한 꿈이 만들어진다.

동북아 전쟁시계는 몇 시일까? - 촌놈들의 제국주의

 

사마천의 『십팔사략』에 보면 중국 북방부의 유목민족(오랑캐라 통칭함. 흉노족 혹은 월지족)의 수탈사를 다루고 있다. 힘이 강성한 오랑캐의 남성들이 약한 오랑캐에 쳐들어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겁탈하고 살해하는 등 패륜적인 범죄를 자행한다. 그리고 이를 일삼는다. 약한 오랑캐는 이에 분루를 삼키며 와신상담하다가 강한 오랑캐를 꺾고 강한 오랑캐가 되지만, 예전에 강한 오랑캐에게서 당해 왔던 수탈을 다른 약한 오랑캐들에게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우화를 우리나라에 적용시키면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어느 정도 이해될 것이다.

우석훈이 우려하는 평화의 붕괴 요인을 들면, 첫째 일본 극우와 한국 극우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긴밀하며 사회적 증오를 외부로 돌리는 낡은 수법이 아직도 통하고 있다. 일본과 일본인, 독도에 대한 과도한 분노, 동북공정 중국에 대한 또 다른 과도한 분노와 이를 부추기는 사람들을 보라. 둘째, 평화학에 연구비를 지출하는 기관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평화의 비용과 수익은 드러나지 않으므로. 셋째, 전쟁이 자본주의의 매우 중요한 파트너가 되고 있는 현실적 상황도 우려스럽다. 전쟁도 비즈니스, 즉 민영화의 영역으로 이미 깊숙이 들어왔다. 미국을 보면 알 수 있고, 블랙워터를 보면 두말 할 여지 없다. (평화에 대한 대안이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등은 책을 참조하라)

누가 괴물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 괴물의 탄생

<괴물의 해체>라는 제목을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작가와 출판사. 결국 괴물의 탄생으로 제목을 바꿨다고 하는데, 참말로 다행이 아닌가. 괴물이 해체될 여지가 별로 안 보이기 때문이다.

괴물의 은유법에 담긴 두 가지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괴물’은 무미건조하지만 어느 정도 ‘질서’가 있는 체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요지는 모두가 모두와 생존을 위해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너무 피곤한 것이라서, ‘괴물’ 즉 ‘리바이어던’에게 각자의 권리 일부를 양보함으로써 오히려 각자의 이익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국가라는 것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격조 높은 은유인가. 하지만 우석훈이 말한 ‘괴물’은 은유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형이하학적이고 직접적이다.

우석훈이 '괴물'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현상들을 보면 건설자본/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과 극단적인 중앙형 시스템(경기/서울 수도권 인구가 전국 인구의 절반), 토호형 경제를 들었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는 완충장치가 없다는 것이 괴물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주의사항!!!! 괴물은 한 마리가 아니다. 우석훈은 우리나라에 돌아다니는 식인괴물들을 봉준호처럼 잘 그려냈는데, 승자독식사회와 멕시코형 8자 모델 등 온갖 패권주의와 처절한 무한경쟁이 섞여 있는 우리나라는 현재 약자들이 죽어가는 단계가 매우 발전(?)돼 있다. 배틀로얄 게임의 승자들은 한국 대기업의 조폭스럽고 군대스러운 조직 문화에 쩔어 쓸모 없이 되어 버리고, 배틀로얄 게임의 약자들은 비정규직, 다단계, 조폭, 지역 토호 등에게 살점을 다 뜯어먹힌다.

우석훈은 괴물의 목에 방울을 다는 방법으로 ‘제3섹터’를 제안했다. 제3섹터라는 것이 명확히 개념화되지는 않았지만, 시장 근본주의인 대기업(제1섹터)이거나 개발독재(제2섹터)를 갈마들며 해먹어 왔던 장구한 역사에 제3섹터라는 완충장치를 접합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역설적으로 제3섹터는 제1, 제2섹터에 대한 환기를 시켜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제3섹터(제3부분, 제3부문이라고도 한다)는 대어(제1,제2섹터)를 잡기 위한 밑밥에 불과하다.

스위스의 국민경제 모델이 대안이라면 대안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우석훈이 유럽 여러 나라의 경제모델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하나씩 폐기하다가 끝내 스위스 모델을 폐기하지 않고 있다가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을지 가설을 시도해 본 것이 바로 <괴물의 탄생>이다. 스위스 경제모델이란 삶의 질과 생태적 효율성,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는 국민경제 모델이다. 일 주일에 이틀 일하면서 여유롭게 일하는 삶이 일상적일 정도로 ‘인간적인 노동’이 정착돼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들의 노동은 ‘낡고 낡은 기계적 노동’이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의 현재 삶이 ‘피’의 대가로 얻어진 사실이라는 점과, 오랜 시간 동안 계승되고 존중돼 온 문화의 축적이라는 사실이다. 교육구조의 왜곡, 수도권집중형 경제구조, 지역토호들의 확산, 부동산과 건축경기에 지지하는 국민경제 등을 고려한다면 현재로서는 '스위스'의 '스' 자도 어림 없을 듯하다.

우리에게는 '스'가 아니라 '시'가 필요한데, 바로 시민이다. 자각된 시민들과 뮤턴트들이 많이 나타나 촛불의 거대한 감수성을 발휘해 사회적 충격을 던져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유럽의 시민들은 대운하, 뉴타운, 경제발전이라는 미명에 쉽게 반하며 힘센 사람들의 부당한 행태를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들과는 ‘시민’이라는 명함부터 다르단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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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한 번쯤은 읽어봤을 셰익스피어.
하지만 산문과 운문을 구별한 셰익스피어는 찾기 힘들다.

셰익스피어는 '시인'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시적 특징을 타고 났다.

행을 맞춰야 하는 이유는
내용을 전달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무대언어로 치면 끊어주는 것, 쉬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끊어야 할 부분을 끊어서 읽지 않으면
셰익스피어는 매우 난해한 작품이 된다.

번역에서 행 맞추는 게 가장 어려운데,
번역자 김정환 선생은 시를 오랫동안 썼지만
그 역시도 행을 맞추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어서
완독을 미뤄뒀는데,
무대언어와 행까지 배려한 번역본이라면 이번 기회에 완독을 시작해도 될 것 같다.


김정환 시인은

1954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0년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 강변동네에서' 외 5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하나의 이인무와 세 개의 일인무》《황색예수전》《회복기》《좋은 꽃》《해방 서시》《우리 노동자》《기차에 대하여》《사랑, 파티》《희망의 나이》《노래는 푸른 나무 붉은 잎》《텅 빈 극장》《순금의 기억》《김정환 시집 1980~1999》《해가 뜨다》《하노이 서울 시편》《레닌의 노래》《드러남과 드러냄》등 20여 권의 시집과, 소설 《파경과 광경》《세상 속으로》《그 후》《사랑의 생애》, 산문집 《발언집》《고유명사들의 공동체》《김정환의 할 말 안 할 말》, 평론집 《삶의 시, 해방의 문학》, 음악 교양서 《클래식은 내 친구》《내 영혼의 음악》, 문학 창작 방법론 《작가 지망생을 위한 창작 강의 일곱 장》, 역사 교양서 《상상하는 한국사》《20세기를 만든 사람들》《한국사 오디세이》등이 있으며, 《더블린 사람들》《셰익스피어 평전》 등을 번역했다. 2007년 제9회 백석 문학상을 수상했다.

 

 




 

 

 

 

 

▲ 보통 문학 작품을 다루는 출판사라면 셰익스피어를 모두 번역해서 내놓았다.
알라딘에서 셰익스피어 관련된 작품만 704개나 검색되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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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인 2008-11-25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2008-11-25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