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나는 요즘 시사저널에도 미쳐 있지만, 춘추시대에도 미쳐 있다.
춘추시대에 미쳐 있는 이유는 '자공'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다.
'왜 춘추시대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은 '시대정신'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차피 현대사회는 1,2차 세계대전 같은 무식한 전쟁은 할 수 없다.
그 대신 초정밀한 세계전쟁으로 판이 압축되었다.
시장경쟁이나 외교전쟁이 그것이다.
이것은 치밀한 두뇌싸움임과 동시에 정황을 최대한 포착해서
상대방의 빈틈을 노려야 하는 한판 승부이다.
이 승부로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한일어업협정이나 FTA를 생각해 보라.
시대정신은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존재한다.
전리나 이상, 도덕 등의 절대가치는 어느 시대고 활짝 날개를 펼쳤던 때가 없었다.
하물며 소크라테스나 공자의 시대에도 위악이 판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러한 가치들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인물이 바로 '자공'이라는 인물인데,
내가 자공에 빠져드는 이유이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이면서
외교에 능하고 치산(治産)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공자는 그를 심정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도덕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자공이 필생의 질문을 공자에게 던진다.
"선생님, 부유하면서도 오만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답한다. "괜찮구나.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는 사람이 더 낫지 않은가?"
부유하면서도 오만하지 않은 사람이란 바로 자공 자신을 가리키며, 가난하면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은 사람이란 바로 공자의 수제자 '안연'을 가리킨다.
공자는 안연을 아끼면서도 실질적인 처세에는 자로와 자공을 많이 이용했다. 자로는 공자의 보디가드를 하면서 온갖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 처리했다. 자공 역시 국난이 닥쳤을 때(제나라가 모국을 공략하려고 하였을 때) 자공을 보내 이 사태를 수습하라고 지시한다.
이것은 '논어'에 갇혀 있었던 나로서는 보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렇다고 나는 '공자'를 반동적인 인물로 그려낼 생각은 없다. 장자의 방식을 따라 '풍자'와 '해학'을 깃들여 그려낼 생각이다.
이 이야기를 위해 필요한 지식은 물론 춘추시대의 시대상황과 시대정신이다. 그것을 담고 있는 책들이 요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책들이며, '자공리뷰'라는 제하에 펼쳐질 온갖 영웅담이다.
1차 자료는 춘추시대를 직접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책들과 공자의 사적이 드러나 있는 작품들이다. 그 특징들을 간략히 소개하면,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의 사적을 다룬 가장 유명한 자료이다. 편집자의 오묘한 방침에 따라 엮였는데, 공자의 사상과 제자들의 성격을 탐색하는 데 소용이 된다.
공자가어는 논어에서 보지 못했던 공자의 사적과 제자들의 이야기가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만약 공자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거나, 욕심이 생긴다면 공자가어를 지나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논어에는 상황이 생략되거나 압축된 데 비해, 공자가어에서는 구체적인 상황이 드러나므로 발언의 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좌구명의 춘추좌전과 국어를 썼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논어에서 공자는 '좌구명'을 현자라고 칭찬하는데, 그 좌구명이 이들 책의 좌구명인지 확실하지 않고, 춘추좌전의 좌구명과 국어의 좌구명이 동일인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하지만 '좌구명'이 춘추시대에 대해서는 절대적 권위자라 할 수 있다. 국어는 춘추시대의 패제후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책사들을 다루고 있는데, 각 사건을 이야기체 형식을 빌려 국가별로 다루고 있는 일종의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형식을 띠고 있다. '전국책'과 그 특색은 같으나, 주나라의 세계관 안에 잔류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춘추시대의 시대정신이다.
춘추좌전은 '국어'와 마찬가지로 춘추시대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특히 사건을 시간대별로 기술한 편년체 형식을 썼다는 점이 국어와는 다른 점이다. 그리고 노나라를 중심으로 한 춘추시대의 역사서이므로 각국의 입장에서 춘추시대를 기록한 국어와는 또다른 차이점이다. 책의 두께에서 알 수 있듯이 춘추좌전은 국어에 비해서 기록이 매우 상세하고 사상이 매우 심대하므로 철학서와 역사서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후대의 역사가들은 춘추좌전을 '춘추내전'이라고 하며, 국어를 '춘추외전'이라고 부른다.
안자춘추는 공자의 정치적 라이벌 관계이면서도, 서로 인정해 마지 않았던 안연이라는 특이한 인물을 중심으로 당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공자는 제나라에서 이상 실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나, 안연이라는 당시 재상의 견재로 이상이 '시련'을 겪게 된다. 안자의 관점에서 공자를 바라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노자의 입장에서 공자를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자가 놓치고 있거나 혹은 애초부터 담당할 수 없는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공자의 '우활'을 우회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 자공에게 있어서도 공자는 바로 그런 인물이다.
오월춘추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경계를 이루는 오나라와 월나라의 패권쟁탈기를 중심으로 춘추시대의 말기를 소개하고 있다. 자공이 활약한 시기,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외교적 역량을 발휘한 사건이 오나라와 월나라의 대치 상황 아래서 펼쳐지고 있으므로, 앞서의 춘추서보다 훨씬농도 짙은 이야기를 취재할 수 있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 등의 고사성어를 낳을 정도로 앙숙인 두 나라는 시대정신의 거대한 변화를 알리는 메신저이기도 하다. 오월 이전에는 주나라를 섬기며 '도의'를 중시한 반면, 이들 두 나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전국시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역시 자공이라는 인물도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접경에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진에 들어가지 못한 책이 있는데, 그것은 여불위의 '여씨춘추'이다. (3권짜리 민음사판 여씨춘추를 자료로 활용하지만, 이미지가 없어서 고려원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여불위는 진시황의 '진짜 아빠'이다. 거상인 그는 돈에 있어서는 이미 황제가 되었지만, 현실정치에서도 그만한 지위를 얻고자 당시 조나라에 볼모로 왔던, 볼품없던 왕족 '자초'에게 과감한 투자를 한다. 결국 여불위가 씨를 뿌리고 바친 정부(여불위의 아이, 즉 진시황을 배었음)를 장양왕이 된 '자초'에게 바치고 나서 진나라의 권력을 잡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와는 상관 없는 역사서가 바로 여씨춘추라고 하는데, 여씨춘추는 '일자백금'이라는 말로 통할 정도로 내용이 상세하다고 한다. 즉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저작이라고 스스로도 칭찬을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엄청난 자금을 풀어 여러 방면의 전문 학자에게 외주를 주어 만들었으니, 그만큼 과학적이지 않겠는가. 이것을 오늘날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삼성경제연구소'쯤 될 것이다. 삼성공화국의 핵심 브레인인 삼성경제연구소~~ 오호라. 비유가 좋구나!
2차 자료는 이야기의 직접적인 바탕이 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보와 조언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다.
춘추시대가 '의로운 경쟁시대'였다면 전국시대는 '비열한 경쟁시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주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삼는 시대정신은 이미 멀리 사라졌고, 주나라도 전국시대의 언저리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오로지 전략과 권모술수만이 나의 생존을 보장해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맹자 같은 사람도 이 두꺼운 책에는 두 번 정도밖에 소개되지 않고 있다. 반면 합종연횡의 대부인 소진(합종가)과 장의(연횡가)와 그 파벌들이 거의 모든 지면을 독차지하고 있다. 자공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전국책'의 내용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만약 자공에게 전국시대의 색채를 정도 이상으로 집어놓는다면 이야기의 판도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를 덧붙인다면 이 책은 지금 세상에 가장 어울리는 책인 것 같다.
사기열전 '상편'에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게 펼쳐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사기열전 하면 이 이야기가 주로 생각난다. 사기열전 '하편'(을유문화사 판 중심으로)은 한나라의 시대를 중심 이야기를 다뤘으므로,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별로 들어있지 않다. 그렇지만 뒤편에 나와 있는 '화식열전'은 빼놓아서는 안 된다. 자공의 '치산'에 관한 가장 자세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공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이 '치산'에 관한 것인데, 자공의 치산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인의 밝은 경제 관념을 자공의 치산적 뿌리로 설명해줄 수 있다.
사기세가는 춘추시대의 패제후들과 함께 '공자'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게 특이하다. 논어나 공자가어 외에 공자에 관한 엄밀한 역사적 기록이 담긴 책은 바로 사기세가라고 할 수 있다.
장자를 언급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의 풍부한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는 공자를 거칠고도 흥미롭게 풍자하면서도 공자의 시대정신을 끌어안고 이를 종합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는 '유학'의 완성을 장자에게서 찾았다. 노장 외에도 법가, 종횡가 등 제자백가는 적지 않다. 유학이 공자 안에 갇힌다는 것은 새가 새장 안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가치로는 현대의 문제들을 하나도 건드릴 수 없다. 나는 이를 위해 좀더 먼 데까지 가보려 한다. 자공을 이야기하려면 공자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공자의 허위를 묘사하는 데 장자를 많이 빌려올 것이다.
서점에서 중국 고대사 관련서를 찾아봤는데, 대개 전국시대나 한나라 시대부터 서술하고 있어서 춘추시대 관련 조항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은 춘추시대의 시대상황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뤄주고 있으므로, 시대상황을 위해서 필요한 책이다. 아직 구입은 못하고 있는 처지이므로, 사진에는 동작도서관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혹시 춘추시대의 시대상황을 성실하게 담은 저작을 알고 있다면 당장 제보 바란다.
최인호의 '유림'에 대해서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인호는 분명 '공자'를 주된 캐릭터로 삼았으니, 배울 것이 많겠구나 생각했지만, 그도 2,500년의 시간차를 극복하지 못한 걸까. 최인호의 유림 중 '공자' 부분은 '공자평전'을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안에 작가적 상상력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논어나 당대의 역사서에 의존했고, 이를 인용하는 수준이었다. 이 외의 조선시대는 그의 손바닥 안이어서 흥미롭게 다뤘다는 후문이 있었지만, 아직은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2차 자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까닭은 당대의 인물을 다루는 '부분적인 모델'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와 중첩되는 부분이 적지 않으므로 참고해서 해될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