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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서천석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평점 :
최근 몇 년 동안 육아와 아동심리 등 육아 관련 심리학 책을 집중적으로 읽게 되었다. 정보의 객관성 때문에 점점 상담가나 전공자, 전문의가 쓴 책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진한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육아 전문가, 아동 심리 전문가의 책들은 전문성은 있지만 뭔가 하나 부족해 보였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하나만 가지고는 외롭다. 전문성을 가지고 오랫동안 현업에서 연구한 것은 분명히 좋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중들과 만나는 기술은 조금 더 특별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육아서가 가지고 있는 대체적인 특징은 '철학적 바탕'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보편타당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예컨대 육아서에서 단골로 읽히는 메시지인 "마음을 읽어주되 단호해야 한다"만 봐도 특정한 상황에서 아이에게 적용하려 하면 애를 먹는다.
아이와 시시각각 만나면서 마음을 읽어줘야 할 때가 있고 단호해야 할 때가 있다. 마음을 읽어준다고 하더라도 벽을 만나고 단호하게 대해도 벽을 만난다. '벽'이란 아이의 마음이다. 벽을 만나면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얼마 안 가 벽을 만날 확률이 크다. 두 번째 특징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하거나 의존하게 만들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OOO 식 육아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을 표방하는 대부분의 육아서가 보이는 현상이다. 이 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우리가 육아서를 읽는 까닭이다. 내 아이와 즐겁게 대화하기 위해서 육아서를 읽는다. 그런데 육아서를 열심히 읽고 내 아이와의 관계가 개선이 되었는가? '엄마가 육아서를 읽어서 내가 좋아진 건 뭐지?'라고 아이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이건 뭔가 이상하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대하기 위해서 메시지를 주는 책이라면 마땅히 '육아철학'의 관점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히 '좋은 육아서'의 조건을 말하자면, 휴머니즘이 느껴져야 하고 부모와 아이를 모두 안심시켜야 한다. 작가와 독자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생략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 "엄마가 알아야 아이가 산다"고? 엄마에게 근거 없는 부담을 심어주면, 부담감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간다. 부모님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야 감정이 아이에게 전달된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육아서는 이제까지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간만에 괜찮은 육아서를 한 권 만났다.
철학적 바탕과 인간적 따뜻함, 시적인 압축미가 느껴지는 성숙한 육아서
<하루 10분, 아이를 생각하다>의 저자 서천석 원장이 쓴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창비)를 보면서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지혜로운 말을 들었을 때의 쾌감이 전해져 온다. 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미감'이라는 본능이 있다고 믿는데, 이 책은 육아에 대한 심미감을 자극할 것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책에 표시된 한줄 이력이었다. "정신과 의사이던 그는 아이가 태어날 무렵 소아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책날개) 나 역시 '어린이'와 '가족'에게 남은 인생을 걸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첫째 민준이(5세)를 낳고서부터기 때문이다. 남자는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진정한 변신을 한다고 하는데, 아이를 낳고 변신한 남자를 신뢰한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는 '시(詩)'라는 형식으로 서술된 독특한 책이다. 주장을 제기하고 임상사례, 또는 갖가지 인용를 덧붙이는 기존의 책들과 차별적인 대목이다. 거기다가 아포리즘을 곁들였다. 사례와 근거가 별로 없지만 설득당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마치 류현진이 벨로시티(구속, velocity)는 낮지만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와 커브볼의 제구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하듯 '시와 아포리즘'이라는 무기는 육아서의 방향에 획을 그었다고 생각한다.
트위터와 네이버캐스트, 한겨레 연재 등을 통해서 대중과 어떻게 호흡하는지 잘 아는 서천석 원장은 '미디어' 활용 기술이 대단히 높았다. 때문에 트위터에서 커다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산문이 아니라 운문을 씀으로써 육아의 세계가 사실은 '감성'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포착한 점도 놀라웠다. 우리가 육아서의 논리를 따라가는 사이에 아이와 마주하는 순간을 놓쳤다는 점을 떠올려 보라.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는 나에게도 큰 선물이다. 부모교육서 <책 놀이 책>을 썼다는 이유로 날마다 부모님들을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던 생각들이 성숙한 언어로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성숙한 육아서'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성숙한 육아란 가족 구성원 모두의 행복과 자유를 돕는다. 특히 기존 육아서에서 빠진 '부모의 행복, 부부의 행복' 부분을 강조한다.
힘들게 아이 키우는 자신을 비난하지 마세요. (18쪽)
아내가 뭔가 부탁하면 가능한 들어주고 싶다는 태도를 보이세요. 사정상 충분히 못 도와줄 때는 미안하고, 고맙다고 표현하세요. (94쪽)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만 아이에게 엄격하세요. 자신에게 허용하는 만큼은 아이에게도 허용하세요. (115쪽)
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부모님들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려고 했던 말들이 오히려 자유를 억압하진 않았을까? 출판사에 따르면 원래 이 책은 몇 달 전에 출간이 되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작가가 문장을 계속 붙잡고 탈고를 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문장 하나 하나가 가볍게 쓰인 것이 아니다. 시를 쓴 시인의 마음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이를 직접 낳아보고 아파보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래의 문장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이가 멋진 예술가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는 부모들. 감성의 고향은 어두운 곳입니다. 감성은 그런 어둠을 이겨 내려 자기 마음에 피워 올린 모닥불입니다. 너무나 절실해서 꺼지지 않는 가냘픈 온기가 감성입니다. 누가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2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