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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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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1985년작(내년이 집필 40주년이라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었을 때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앨리스>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지만 하루키가 작품의 성채를 만들기 위해 문학 텍스트를 기둥으로 삼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어떤 기둥이 버티고 있을까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물론 프란츠 카프카의 <성>을 중심 기둥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앨리스>든 <성>이든 역시 또 다른 기둥들에 의지하기 때문에 결국은 파스칼의 말처럼 "나의 책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우리의 책이라고 해야 한다"는 결론이 될 것이다. <앨리스>는 '나는 누구인가?'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앨리스가 떠나는 이유는 '지루하기 때문'인데, 카프카 식으로 말하자면 '이곳을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카프카는 이곳을 떠나기는 하지만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며 떠났던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고 어딘가에서 소멸한다. 하루키는 카프카보다는 <앨리스>의 서사를 선택한다. 출발점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앨리스가 여행에서 만난 것은 지금까지 만져봤거나 먹어봤거나 읽어 봤던 경험 세계의 소재들이다.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여행하는 것이다. 하루키는 나를 구성하는 세계가 내면적이라는 점에서 앨리스와는 다르다. 앨리스와 접점을 찾는다면 '인연'이다. 렌터카 대리점에서 자신이 여자를 웃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여자, 로큰롤 음악을 트는 택시 기사, 박사, 뚱뚱한 소녀, 참고문헌 사서는 비중에 상관 없이 무척 소중하며 최후의 순간에 "나"(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그들을 위해서 축복한다. "나"(세계의 끝) 역시 도서관 사서를 사랑하기 때문에 탈출을 포기한다

<세계의 끝> 주인공들과 <앨리스>의 주인공은 '1인칭'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앨리스는 1인칭 집착증 환자처럼 대화에서도 끼어들고, 인물들이 음모를 꾸밀 때 엉뚱하게 헛발질을 한다든가 갑자기 키가 커진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끼어들면서 거의 모든 이야기를 '앨리스 위주'로 가고자 한다. 반면 <세계의 끝> 주인공은 스스로가 '현관 매트'라고 할 정도로 동네북처럼 누군가에게 맞고 멱살 잡히고 자다가 봉창 두드리듯 누군가 그를 흔들어 깨우고, 심지어 의지에 상관 없이 사형 선고를 내린다. 폭력을 당하지만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루키가 주목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처해진 상황과 조건이 아닐까? 게임의 룰이 바뀌면 정의도 바뀐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게임의 룰이자 옛 사회의 정의였다. 지금은 이웃을 등쳐먹고 이용하고 짓밟고 착취하고 속이는 것이 권장된다. 이런 것을 잘할수록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하루키의 작품이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자본주의보다 더 근본적인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게임의 룰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저수지'는 어떻게 될까? 힘 약하고, 가난하고, 선량하고, 옛 게임의 룰과 정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폐허의 잔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세계의 끝에 버려지는 것이다. 그들이 바뀐 게임의 룰을 믿기 시작하면 전설속에 그나마 남아 있던 게임의 룰과 정의는 완전히 소멸한다.

목 자르기를 좋아하는 여왕의 자의적인 판단은 파이를 훔친 죄로 재판에 넘겨진 '잭'을 다루는 <이상한 앨리스>의 장이 <세계의 끝>에 등장하는 계산사의 '조직'과 기호사의 '공장'이 사실은 같은 주인의 오른팔과 왼팔일 뿐일 수 있다는 암시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종 빌런이 존재한다기보다는 그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강고한 실체를 이룬다는 점이 차이점일 것이다. 흰토끼가 허겁지겁 장갑과 부채를 챙기려고 한 까닭은 여왕에게 사형 선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고, 정원사들이 흰 장미꽃에 빨간 페인트를 칠하는 이유 역시 사형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여왕의 사형 선고는 자의적 판단이지만 이미 시스템이 정착되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을 강제한다.

내가 <세계의 끝>에서 제기하고 싶은 질문은 마치 '섹스 덕후' 같은 등장인물들의 지향점,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에 등장하는 섹스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박사는 주인공과 손녀(뚱뚱한 소녀)가 섹스를 했으면 하고, 뚱뚱한 소녀는 주인공과 섹스를 하고 싶어한다. 도서관 참고문헌 담당 사서는 밥 한 끼 얻어먹고 나서 섹스를 하는데, '나는 아무하고나 섹스하는 여자는 아니에요'라고 분명히 말한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섹스'라는 손가락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이 질문에 대한 지금까지의 나의 결론은 '통찰력은 사랑의 뿌리에서 자란 새싹'이라는 것이다. 이 질문을 좀더 추구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물을 수 있다. 나는 사랑이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세계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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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16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얼마만에 보는 정식 리뷰야? ㅋ
난 하루키와 담 쌓은지 오래다. 싫어진 것 보단 게으름이겠지.
잘 지내지?^^

승주나무 2024-06-16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데헷! 오랜만입니다. 올해 들어 하루키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완전 빠져 버렸어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소설을 계속 쓰고 있는데, 하루키가 롤 모델이에요~
 

대학 때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김수영, 정지용, 기형도 등의 시집을 많이 읽었는데

죄다 한자로 쓰여 있어서 기본한자 1,800자를 공부하면서 시집을 읽었다.
한자 공부한느 게 너무 어려웠다.

2001년 우연히 선배의 손을 잡고 서당에 갔다.
동양철학의 세계를 처음 봤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자가 두 개 이상 연결되었을 때는 엄청난 화학 반응이 나오는데,

때로는 핵물리학적인 반응이 나온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훈장님에게는 대학, 중용, 맹자, 논어를 배웠는데 따로 사기열전, 삼국유사 등 동양고전을 찾아 읽었다.

그때는 왜 읽는다는 생각도 없이 읽었다.

 

동양고전을 13년 동안 읽으면서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번역본을 찾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양철학을 읽는 10년은 좋은 번역본과의 전쟁이었다. 좋은 책으로 처음부터 시작했더라면 논어만 10여권을 읽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0년만에 묵점 기세춘이라는 선생의 책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동양철학뿐만 아니라 서양철학, 심리학, 구조주의 등 거의 모든 철학을 평생 동안 공부하신 내공이 번역 곳곳에 담겨 있다. 그 분의 번역 작업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거의 다 구매를 하고 읽고 있다. 출판의 기회를 찾기가 참 어려우셨다고 쓰셨는데 이해가 간다. 일반 독자들이 조금만 눈이 밝다면 최소한 지금 도올의 자리에 그 분이 있을 것이다. 노자, 장자, 논어, 묵자까지 나왔는데 나머지 책도 번역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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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손쉬운 구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수중에 돈 백만원을 쥐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어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무척 논리적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손쉽게 물건을 손에 쥐는 순간 논리가 사라집니다. 논리 감각이 약하면 모든 인과관계가 무너집니다. 노자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빛'에 갇히게 되는 거죠.


노자를 읽어보면 상당히 역설적인 말이 많고, 우리 상식과 배치되는 것도 많습니다. 그것은 노자가 엉뚱해서가 아니라 우리 현실의 모순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금까지 쌓였던 모순이 한꺼번에 터진 것처럼. 어느 세상에서나 이런 모순은 널려 있었습니다. 초나라의 충신 굴원도 <어부사>에서 굴원은“세상 사람들 모두 취해 있어도 나 혼자만 깨어 있노라”라고 말하죠. 


역설의 시대는 반성의 시대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 특히 아이에 대해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보는 자세가 특히 필요합니다. 아이 역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노자와 장자를 읽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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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중등, 고등, 일반인 등을 위한 인성 교육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동양고전을 다시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생겨서 논어 지도를 맨 먼저 만들었다. 동양철학은 공자 이후와 이전으로 나뉠 정도로 공자가 핵심인데, 그것은 동양의 지적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서양의 소크라테스가 인식의 전환을 일으킨 정신적 혁명가라면, 공자는 흩어진 지적 편린들을 모아낸 정신적 집대성자다. 더욱이 동양의 훈고학적 전통은 공자를 비판하는 것을 일대 모험으로 만들어버렸다. (동양에서 스승의 학설을 비판하면 파문을 당했는데, 파문이란 생계가 완전히 끊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논어가 동양 정신의 표본이 될 수밖에 없다. 논어와 함께 사서(四書)로 분류되는 맹자, 대학, 중용은 사실상 논어의 참고서 격이기 때문에 논어지도의 틀 안에 종속된다. 그리고 사마천 사기와 전국책, 국어, 오월춘추 등의 역사서는 상황논리와 연결되고 전국 통일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도로 정리하면 된다. 노자와 장자, 그 밖의 제자백가는 일종의 대안교과서로서 참조할 수 있다. 어쨌든 뼈대는 논어인 셈이다. (큰 이미지를 보실 분은 아래 링크를 열어보세요)


논어를 지도로 만든 까닭은 동양의 정세가 가장 안정적이고 기록이 객관적이며, 공자에 대해서 가장 근거리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도가 있다면 내가 이렇게 개고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공자의 한탄이 논어에 담겨 있지만, 어려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절에도 있었다. 옛 제자였던 알렉산더 황제의 대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연구활동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사후에 정치적 격변에 휩싸이면서 쓸쓸히 말년을 보냈지만 역사적으로는 가장 행복한 철학자였다. 공자 역시 이후에 펼쳐진 무지막지한 전쟁상황을 보면 그나마 행복한 철학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공자 이후는 상황논리가 너무나 막강하기 때문에 철학이 현실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어쩌면 동양 정신이 진공상태로 보존된 텍스트는 논어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개인의 성찰과 가족관계, 사회관계, 국가관계, 정치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철학을 펼쳐놓은 논어의 폭넓은 이야기의 세계는 동양사상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논어를 지도로 만들어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 번역문은 현음사의 김도련 역주본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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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는 나의 정신적 체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 때는 3권짜리 혜원출판사의 <레 미제라블>을 읽고 있었다. 






<레 미제라블>을 읽거나 빅토르 위고의 소설 작품을 읽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역사와 철학과 드라마의 종합 예술이므로 산책하는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쟝 발쟝이 어떻게 되었는지 속도감 있게 전개되기보다는 쟝 발쟝이 시가전을 피해 하구수 속으로 숨었다면 파리의 하수구 역사에 대해서 설명이 이어진다. 나는 워털루 전쟁에서 낙오했다. 마리우스의 아버지 뽕메르시 대령이 떼나르디에에게 구출되는 장면을 보지 못한 채로. 






다시 이 책을 잡기까지는 16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야권의 대선 패배라는 분위기 속에서 집어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 8개월이 걸렸다. 2천 페이지의 대작을 읽으면서 나도 적지 않은 시간을 희생했다. 이제 읽기를 끝낸다. 내게 가장 감명을 주었던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었는데, <레 미제라블>은 그것을 넘어서는 작품이었다. 2008년 소설을 쓰는 펜을 꺾은 이후로 다시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작품이다. 문학이 어떻게 시대와 호흡하고 소설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깊이 배웠다. 아울러 파우스트나 신곡,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 등 고전 소설을 놓지 말고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 축복된 시간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측면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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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08-29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언젠가는 도전해야지 생각중인데,
8개월이 걸리는 군요.
안식년이라도 받아야 도전이 가능하겠는걸요.

승주나무 2013-08-30 15:23   좋아요 0 | URL
감은빛 님//한번 도전해보세요. 저도 일하면서 읽어서 8개월 걸렸는데, 집중해서 읽으면 그보다 적게 걸리겠죠~ 다른 책도 읽으면서 읽었으니. 안식년 받으시길 기원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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