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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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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글에서 가장 탐나는 점은 독자로 하여금 글의 대상과 같은 감정에 빠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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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김상곤 교육이 민생이다 - 엄마 기자가 묻고 교육감이 답하다
김상곤.김은남 지음 / 시사IN북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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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하나 하나가 맘에 안 드는 책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며 장안의 화제가 된 인물, 아니 이미 화제였던 인물인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3월 5일 교육감직을 사퇴)의 인터뷰집 <교육이 민생이다>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예전에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창 유행하던 "행동 하나하나가 맘에 안 들어"가 생각난다.


'뚜벅뚜벅'이란 타이틀 수식어를 표현하려고 했는지 김상곤 교육감의 조그만 사진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부담스럽다. 


"엄마 기자가 묻고 교육감이 답하다"는 부제 역시 주간지 책소개 란에는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책의 표지 카피로는 낯설다. 시사주간지를 모태로 하는 출판사의 타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엄마 기자가 묻고 아빠 교육감이 답하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어보고 든 생각이지만 <뚜벅뚜벅 김상곤, 교육이 민생이다>(이하 <교육이 민생이다>로 표기)라는 제목도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흡족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다. 책이 나온 시점과 상황도 묘하다. 김 교육감이 교육감 재선을 한다면 자연스럽겠지만, 이미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마당에 교육 이야기는 오히려 경기도지사 선거의 전선을 편협하게 몰고 갈 위험마저 있지 않을까? 


누리꾼들의 반응은 어떤지 4대 인터넷서점을 뒤져 봤다. 일단 리뷰는 한 개도 없었고, 한 인터넷 서점의 100자 평이 다행히도 한 개 있었다. 


김상곤 교육감님의 평소 교육철학을 존경해서 구입했습니다. 교육계에 이런 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좋겠네요.


아무리 출간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그동안 김 교육감이 보여준 정책과 흔적들이 있을 텐데, 참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잡고 정독하면서 읽었다. 펜을 들고 몇 부분을 베껴 적었는데, 베껴 적을 구절이 참 많았다. 다 읽고 나서는 김상곤 교육감이 왜 경기도지사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교육이 민생이다>는 이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사교육 출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김상곤 교육감


사교육 업체에서 3년 정도 근무하며 초·중·고등학생 논술 강의와 대입 적성고사 교재 제작, 입시 컨설팅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했었다. 대치동에서도 유명한 학원에서 시골 촌놈인 나를 뽑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사님이 '한문 실력과 동양 고전 능력'을 합격 이유로 설명하셨다. 


그 이후로도 동양고전 능력은 내 진로의 도우미 역할을 했는데, 어줍잖은 글솜씨와 철학 소양 덕분인지 회사 대표 컨설턴트의 중앙 일간지 칼럼을 손봐주기도 하고, 아예 코너를 대필하기도 하면서 어느덧 대치동 사교육의 중심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때 들고 나온 과제가 몇 가지가 되는데, 그 중에서 10년이 넘도록 고민하고 고민하는 주제가 바로 사교육 업체가 부모님을 대상으로 하는 '공포 마케팅'이었다. 지금은 공포 마케팅 분야가 훨씬 더 진화되고 강력해졌을 거라는 짐작이 든다. 


문제는 선량한 학부모가 사교육계의 공포 마케팅을 극복할 수 있는가이다. 이 질문을 만나면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땀이 나고 대답이 궁색해진다. 공교육도 정부 정책도 부모님의 육아 철학도 지난 10년 동안 헛발질만 거듭해오고 발전된 게 없는 데 비해, 사교육의 공포 마케팅은 하루가 다르게 규모를 키웠기 때문에 이미 '깜'이 안 되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김 교육감이 이 문제를 정확히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학원이 가장 잘하는 게 불안감을 자극하는 겁니다. 사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고 믿는 부모와 학생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착시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불안을 이용한 학원의 겁주기 마케팅 전략에 넘어갔기 때문이죠. "다른 애들은 다 하고 있어요." 이 한마디면 부모건 아이건 다 끌려들어가게 돼 있다는 겁니다. 영어학원 같은 데 처음 가 테스트를 받게 되면 영어를 멀쩡하게 잘하던 아이들도 최하위급 점수를 받곤 합니다. 그래야 부모들이 더 학원에 매달리게 될 테니까요. - <교육이 민생이다>, 223쪽


마치 사교육 업계에서 근무해본 사람처럼 그 쪽의 생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 사교육 업체의 입장에서 교육청이나 대학, 정부는 사실 적수가 못 된다. 오랫동안 공고히 다져 놓은 사교육 카르텔에 감히 도전하는 정권도 없을 뿐 아니라 부모와 대학, 기업 등의 이해관계는 사교육 친화적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이익'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옆집 아이보다 1점이라도 더 잘 받아야 한다. 그럼 옆집 아이는 가만히 있을까? 자연스럽게 죄수의 딜레마가 만들어지고, 그 혜택을 사교육 업체가 두둑히 챙긴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교육 철학을 세워서 당사자들을 설득하면서 확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김상곤 교육감은 '사람에 대한 이해'도 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여전히 교육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을 통해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가 자녀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죠. 이 때문에 본인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던지곤 합니다. - 같은 책, 217쪽


이제 <교육이 민생이다>라는 책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이 책은 현직 교육감의 의정보고서가 아니다. 김상곤 교육감은 교육 전공의 교수도 아니다. 경영학과 출신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은 교수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교육감 후보로 추천받고 두 번이나 당선돼 경기도교육청을 6년이나 이끌어왔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전형적인 자기실현자 스타일이다. 


나보다 선이 굵거나 인격이 좋은 사람과 함께 일을 하거나 얘기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기대게 된다는 사실을. 김상곤 교육감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교육감'이라는 언어를 통해 표현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 나는 끽해야 10년 남짓 고민했지만, 김 교육감은 40년은 충분히 고민했다는 것이 책의 내용 안에 담겨 있었다.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는 교육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이라면 모두 평생 붙들어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언어가 달라진다면 다르게 표현될 것이다. 요컨대 <교육이 민생이다>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들을 현장의 목소리로 드러낸 다음,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와 대결을 펼쳤는지를 정책과 현실을 통해서 표현한다. 교수 출신 답게 해결된 과제와 미해결된 과제를 구분하고 마치 완성도 높은 논문처럼 인터뷰집을 구성했다. 만약 당신이 한국 교육의 가장 중요하고 최신의 이슈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자 한다면 <교육이 민생이다>를 읽어야 한다. 



두 저자에 대한 추억


김상곤 교육감과 같은 지역구인 경기도 주민으로서 만날 일은 거의 없지만, 우연히 현실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나는 젊은 열정으로 투표 독려 캠페인을 하고 있었다. 티셔츠를 하나 만들어서 당시 김 교육감 후보에게 입으라고 했더니 그가 진짜 입었다. 보좌진들과 미니벤을 타고 경기도의 한 시장에서 포즈를 취해서 찍은 사진이 아직도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당시 야권단일화 작업이 지지부진해 이를 패러디한 '티셔츠 단일화'를 했었다. 


그때 보았던 김 교육감은 마냥 착해 보이는 아저씨, 그런데 재미는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티셔츠를 입으라면 입고 벗으라면 벗고, 브이(V)를 하라면 브이를 하고, 미소를 지으라면 어색하게 미소를 짜냈다. 사진이 잘 나오기 위해서 볕 잘 드는 곳에 가서 찍을 수도 있고, 표정이나 포즈를 스스로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고분고분하기만 하니 선거를 이길 수 있을까 내심 걱정까지 했을 정도다. 


그때의 인상이 남아 있던 차에 '김상곤의 책'이 나왔을 때 나는 기대를 했다. 자랑도 없고 과장도 없고 세련되게 포장하는 것도 없는 그의 성품이 책으로 표현된다면 독서의 맛이 무척 흡족할 것이다. 실제로 읽어본 느낌도 그와 같았다. 


<교육이 민생이다>를 읽다 보면 김 교육감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끔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을 것이다. 


'마을이 학교이고, 학교가 마을이다'라는 모토가 생각나는군요. 제가 지방도시에서 자랐는데, 저 어릴 적만 해도 학교 운동회에 동네 어른들이 오시곤 했어요. 학교 다니는 자녀나 손주가 없어도 마실 삼아 학교에 와 동네 아이들 크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이런 걸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같은 책, 225쪽


김은남 기자는 <시사인>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는 선임기자를 하고 있다. 김 기자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소설가로 유명한 김훈 작가가 <시사저널> 편집국장(시사저널 기자들이 편집권을 되찾기 위한 파업을 1년 넘게 한 끝에 창간한 매체가 <시사인>이다)을 할 때의 일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찬양 기사를 썼던 어두웠던 역사를 드디어 밝힐 때가 되었다며 '작업'을 시작했는데, 김훈의 '특명'을 받은 사람이 바로 김은남 기자다. 그리고 전두환 시절 유난히 찬양 기사를 많이 썼던 기자는 바로 <한국일보> 김훈 기자였다. 그러니까 김훈 국장이 자신을 내리칠 칼을 쥐어준 사람이 바로 김은남 기자다(김훈 작가와 김은남 기자에 관한 이야기는 <시사IN> 기자들이 함께 쓴 책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에 자세히 실려 있다).


언론운동을 잠시 하면서 지분거리에서 김은남 기자를 엿볼 수 있었는데, 그녀 역시 재밌는 사람은 못 되었던 것 같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바른 소리, 상식이다. 말을 묘하게 비틀어서 하는 법이 없다. 좀 과장을 덧붙이자면 김은남은 여자 김상곤이고, 김상곤은 남자 김은남이랄까? 


경기도육청 공보관이 책을 준비하며 김상곤 교육감을 인터뷰할 사람으로 맨 처음 떠오른 인물이 김은남 기자였다는 머리말 내용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터졌다. 사람 느낌은 다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저자 모두 다른 것은 몰라도 속은 알찬 사람이니 책이 주인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김은남 기자가 낸 책을 꼭 보고 싶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김 기자는 기사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생활 기사'라고 불릴 수 있는 이 기사의 형태는 예컨대 대형 유통점 물품 가격과 재래시장 물품 가격을 서캐훑이해서 유통점이 결코 싸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생활인 입장에서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기사가 김은남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나왔다. 이것이 내가 본 두 저자의 모습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저자에 대한 사사로운 마음이 묻어 버렸다. 그렇지만 뭐,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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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 어떻게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독점재벌 스탠더드 오일을 무너뜨렸나
스티브 와인버그 지음, 신윤주.이호은 옮김 / 생각비행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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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에 좀처럼 찬사를 쓰지 않는데 이 책 때문에 원칙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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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1-07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뿌듯해라 :) 신윤주 이호은이 제 친구에요. ㅋㅋㅋㅋㅋㅋ 저 책을 내신 편집자분이 같이 공부하는 학교 선배!! (하지만 정작 저는 읽지 못하고 있어요!!)

2011-01-07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1-07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선동적인 40자평, 완전 사랑합니다. 승주나무님^^

승주나무 2011-01-07 21:47   좋아요 0 | URL
선동적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주시니, 즐추해야겠습니다^^ 감사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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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시민에게 말 걸다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발행, 이하 "23가지") 출간기념 기자 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낸 장하준 교수는 "시민"이라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 민주사회 시민이다. 경제학자, 토목공학자, 의사는 자신의 전문분야만 하면 그만이지만, 민주시민은 핵폐기, 남북관계, 지구온난화, 복지 등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책의 내용 역시 시민에 맞춰져 있다. 서론에서 <23가지>가 목적하는 바가 명시돼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내가 말하는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적극 행사해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하는데는 전문 지식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데,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요 원칙과 기본적인 사실"을 토대로 시민으로서의 "좋은 판단"을 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 3년"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23가지> 사이에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는 책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의아할 수도 있다. 왜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23가지>가 함께 거론되어야 하는가에 관해서. 이에 대한 답변은 기자간담회에서 장하준 교수가 직접 설명했다.

"대중을 위해 맘먹고 쓴 책이 바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인데, 이 책 내고 나서 '기왕 이쪽 길로 들어선 몸이니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쓰는 게 어떻겠느냐'는 요청에 화답한 책이 바로 <23가지>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에서 <23가지>의 형식이 발전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는 법정을 연상시킨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저격수"답게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요 논거를 법정에 세우고, 조목조목 기각하는 방식으로 논리를 진행한다. 하지만 <23가지>에서는 좀더 쾌활한 공간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는데, 마치 마당극 <양반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들"은 당연히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인데, 이번에는 그들이 일부러 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춰냄으로써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논리적인 대결이 아니라 은폐한 진실을 보기 좋게 들춰내는 서술방식, 게다가 풍자라는 유쾌한 방식을 글쓰기에 적용했다는 점은 진전으로 꼽을 수 있다. 장하준 교수는 아카데미에서 저잣거리(대중)을 향해서 '자신의 보폭으로' 성실하게 걸어나오는 경제학자다. 이전 저작과 비교해서 내용적으로 크게 달라진 점은 많지 않지만, 대중에게 말을 거는 방식과 개념을 명료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면 뱀이 껍질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것 같다.  

 
▲ 장하준의 글쓰기가 친서민적으로 바뀌고 있다. 신자유주의 논쟁보다는 은폐된 진실을 꼬집으며 들춰내는 마당극을 보는 것 같다.


깊고, 넓고, 다양하게


<23가지>의 대화 상대가 "시민"이라면, 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깊고, 넓고, 다양하게"이다. 이렇게 볼 줄 아는 안목이 생긴다면 비로소 "경제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그들이 말하지 않은 가장 "심한" 23가지를 추려냈으나,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 23가지만일까? 그들은 단지 말을 돈으로 환산하는 수완에 굉장히 뛰어났을 뿐이다. 자신에게 돈이 되지 않는 말은 빼고, 돈이 되는 말만 퍼뜨리는 것이다. 여기서 "진공상태"의 문제가 생긴다.

"인간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284쪽)

장하준이 적으로 간주하는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진공상태를 만들어내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경제전문가만 경제문제를 잘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든 것도 그들이다. "그들"은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못 사는 나라들이 "기업가 정신"이 부족해서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판하지만, 장하준 교수는 기업가 정신은 여기에 들이대는 말이 아니라고 일축한다. "부자 나라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기업가적 에너지를 집단적 기업가 정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덕분"(219쪽)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업가 정신을 너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려고 하면, "요즘 대학생들은 도전정신이 없어" 같은 비아냥을 쉽게 하기 마련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을 결정하는 환경, 기반, 공동체를 감안해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23가지>의 한 chapter만 급히 봐야 한다면 Thing4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는 흥미로운 제목이다. 인터넷은 우리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일조했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생활을 바꾼 것은 세탁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세탁기의 등장으로 인해 가사노동의 양이 급격하게 줄었고, 이 절약된 시간을 통해 여성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인터넷은 세탁기뿐만 아니라 "전보"에게도 덜 혁명적인 매체라는 사실이 좀 충격일 수 있지만, 인터넷은 그만큼 충분히 과대평가된 상태다. 이러한 이치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과학에서도 발견된다. 경제학자와 과학자는 같은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작고도 섬세한 온갖 세공품들은 핵 물리학의 어떤 장비 못지않은 발명의 재능이 필요하고 보다 깊은 의미에서 인간의 등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바늘, 송곳, 단지, 화로, 삽, 못과 나사, 풀무, 끈, 매듭, 베틀, 마구, 단추, 신발 등등 단숨에 그 실례를 백 가지라도 들 수 있다. 이 풍요로움은 발명의 상호 작용에서 온다. 

- 야콥 부로노프스키 <인간 등정의 발자취>



"넓고 다양하게 보기"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러시아의 천재 경제학자 프레오브라젠스키 이야기다. 농민들의 잉여수입을 착취해 이를 바탕으로 제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다 "유형"에 처해지지만, 스탈린은 슬그머니 그의 정책을 베낀다. 이로 인해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게 되지만, 이 덕분에 독일군을 동부 전선에서 막아낼 수 있었다. 러시아가 농민들의 잉여수익을 착취한 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전후 문맥을 두루 살핀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이 요점이다. 그라민 은행으로 대표되는 마이크로크레딧 역시 충격적인 뒷이야기가 있다. 그라민 은행 초기의 적정 이자율은 방글라데시 정부와 해외 원조 기관들에게서 보조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이를 현실화했을 때 그라민은행은 4~50%의 높은 이자율을 부과했다. 이자가 많게는 100%%까지 붙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사정이 이와 같다면 마이크로크레딧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이후 마이크로크레딧은 결혼 자금이나 일시적 수입중단을 만회하기 위한 "급전 마련"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동노동을 금지하는 이유 역시 도덕적이기보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즉 "어린이들을 고용하면 개별 기업의 임금 지출을 줄일 수 있으나 아동노동이 확산되면 아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발육을 저해해서 장기적으로는 노동력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 때문에 아동노동을 금지함으로써 결국 기업 부문 전체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사회현상이나 경제모델에 대해서 단순하게 생각하는 관성을 깨뜨려줄 사례는 <23가지>에 무수히 많아 일일이 소개하기 어렵다. 

 


▲ 장하준 신간을 구경할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인지 10월 28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은 만원이었다. 좌석마다 신간과 보도자료를 비치했는데 남은 게 별로 없었다. 기자들은 오래 기다린 책이라며 반가워했다.


인간은 생각했던 것만큼 똑똑하지 않다

<23가지>에서 내용적으로 새롭게 보게 되는 부분은 "행동경제학"이다. 허버트 사이먼이 개념화한 "제한적 합리성"이라는 주제가 등장한 까닭은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제한된 합리성이란 인간이 합리적이고자 하는 욕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심각한 제약이 따른다는 개념이다. 우리가 파악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며, 제한된 지적 능력으로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인간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다는 것이 '제한된 합리성'의 요지다. 장하준이 제한된 합리성을 근거로 내놓은 결론은 이렇다.

"결국 우리 인간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도 괜찮을 만큼 우리가 똑똑하지 않은데, 시장에 대한 규제는 가능한 것일까?"(230쪽)


이 말을 보면서 한 철학사가의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철학자들을 소개하며, 만약 이들이 정직하기만 했다면 철학이 이렇게 후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라는 것이 한때 유행했던 것처럼, 인간은 지력으로든 완력으로든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이 강하다. 그 욕망이 2008년 금융위기를 만들었다.

이것을 장하준 식 정부 역할론으로 풀이한다면, 정부의 규제라는 것은 대체로 시장과 시장 참여자들을 함께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인데 시장에게 모든 걸 맡기고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장의 완전무결"을 우기는 데 다름아니다. 자유시장이란 진공의 상태이거나 모래 위에 지어진 탑처럼 위태롭고 위험천만한데, 그런데도 시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시장과 정부, 시장 참여자들이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의 절대적 역할론이나 규제 찬양론을 펼치자는 것이 아니다. 사문화된 규제들은 개혁해야 마땅하지만, 전봇대처럼 무심코 중요한 규제를 뽑아냈을 때 폐해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장하준 교수에게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할 의향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장하준 교수는 "그것을 하게 되면 내 생활 자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이런 태도가 답답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보폭대로 바라보는 곳까지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장하준 교수의 일련의 저작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우리에게 걸어오고 있고, 좀 더 가까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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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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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알시 회원들이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행한 "떡검"(떡 먹는 개검찰) 퍼포먼스 사진. 이 사진은 한때 다음 아고라에서 무한댓글, 추천, 펌을 받으며 네티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렇다. 우리는 저잣거리 조상들로부터 받은 해학과 풍자의 습성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한국에 100년 기업이 없는 까닭?

 

얼마 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 ‘100년 이상 살아남을 기업'을 선정해 공개한 적이 있는데 코카콜라, 유니레버, 골드먼삭스, 도요타, 자라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단 1곳도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았다. 글로벌한 기업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의 저자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본사의 해외 이전과 관련된 대중의 우려를 기우라고 단정한 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삼성은 본사를 해외로 옮길 수 없다. 처저히 내수 위주인 금융 및 소비재 사업, 중소기업에 비용 떠넘기는 거래 관행, 정부의 다양한 지원 등 국내에서 누리는 이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436쪽)

애플 앱스토어는 콘텐츠사업자와의 계약에서 25% 가량만 취하고 나머지 수익을 모두 "을"에게 넘겨주며, 구글은 더 나아가 가입비만 받고 모든 수익을 "을"에게 준다. 이것은 창의적이고 특이한 계약방식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계약이다. 우리 기업들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비상식적인 계약방식을 일상적으로 적용한다. 100년을 지탱하는 힘은 '상식'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 기업들이 100년을 넘기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1938년 삼성상회로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73세된 기업 삼성이 100년 기업이 될 수 있을까? 100년이 되어도 건재하다면 그것은 우리나라가 그때까지 비리와 비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 아닐까?
 

'삼성을'이 아니라 '생각한다'에 방점을 찍고 읽자

삼성 X파일, 대선자금, 떡값, 불법승계 등 삼성이 저질러놓은 언론보도를 읽으면서 우리들은 한편 삼성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에 대한 공포심과 환상을 키워가고 있었다.

<삼성을 생각한다>의 가장 큰 덕목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자본으로서가 아니라, 분식회계가 아니고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삼성의 취약한 구조를 온전하게 드러내 주었다는 데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대기업 대부분의 사정이기도 하다.

"비밀스런 업무를 담당했던 자들은 능력이 없어도 계속 중용됐다. 잘못을 저질러도 어지간해서는 잘리지 않았다. 비리 공범을 함부로 자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2009년 1월 발표된 삼성 고위직 인사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175)

삼성의 실권자 이학수 전 부회장이 김용철 변호사의 집까지 찾아가고 문자메시지를 수 차례나 보낸 까닭은 김용철 변호사가 비자금을 다루는 재무팀에서 일했었기 때문이다. (법무팀이 아니다. 따라서 김변호사의 정확한 임무는 재무팀 비자금 담당이거나 재무팀 로비스트이다) 김 변호사는 자신이 재무팀 중에서도 '관재팀'에서 일했다면 삼성 수뇌부는 더욱 사색이 되었을 것이라고 썼다.

이쯤 되면 <삼성을 생각한다>가 삼성에 대한 고발글이 아니라 '성찰글'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는 법에 대해서 간명하게 정리했다. 

"우리는 감정에 예속돼 있기 때문에 분노나 의심 등의 감정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내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그 감정을 이해하거나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다." - <에티카> 일부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확대재생산한 삼성공포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삼성은 더 이상 공포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삼성에 덧씌워진 부당한 환상까지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김상봉 교수의 삼성불매 제안에 절반만 동의하는 까닭

김용철 변호사가 틈날 때마다 하는 말은 "한줌도 안 되는 자들이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을 망친다"였다. 뿐만 아니라 이건희는 한줌도 안 되는 지분(0.3%)으로 삼성그룹을 장악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건희가 대단한 수완의 소유자가 아니라 무척 취약한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글로벌 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용납될 수 없다. 

이 취약성을 채워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재확산 시도다. 삼성의 기업구조를 정상화시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삼성을 건드리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삼성을 키우고 또 키웠다. 삼성을 대상화하는 관점 자체가 일종의 특혜 효과를 낳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봤을 때 김상봉 교수의 "삼성 불매운동 제안"에 반은 동의하되 반은 동의할 수 없다.

"적대적 공존"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 아베 정권은 북한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긴장관계를 가져왔다. 하지만 북한을 이용해서 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고 일본을 우경화시킬 수 있었다. 이는 '안티 조중동 운동'에서도 드러난다. '조중동'이라는 명시 앞에 '안티'를 붙였지만, 결과적으로 조중동은 이 운동을 통해 득을 봤다. 이것이 "대상화"의 무서움이다. 삼성을 대상화시키면 삼성에게 불멸의 지위를 주는 효과를 낳을까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불매'라는 소비자적 관점은 흔쾌히 동의할 수 있다. 철저히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말하면 삼성은 판매자이며, 우리들은 소비자이다. 삼성인 소비자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르게 표현해 삼성과 소비자 중에서 누가 더 오래 살 것인가? 삼성은 소비자에게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소비자가 삼성에 적응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삼성을 1:1로 맞짱뜰 상대로 치켜세우지 말자. 시장에서 고르는 많은 상품 중 눈에 띄는 상품 정도로만 정리하자. 


진알시 회원 '삼성 불매운동'에 할 말 있다


진알시는 트위터(@jinalsi)를 통해서 <삼성을 생각한다> 구매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생각했으며, 이런 정도의 책에도 벌벌 떠는 언론사 광고국이 어이 없어서다. 철저히 자본주의적 관점이다. <삼성>에 대한 비판서가 많이 출판됐지만 삼성 안의 사정을 이렇게 광범위하고도 구조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책은 없었다. 한마디로 진알시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신문광고만 안 나갔지 인터넷 서점 예스24, 알라딘의 메인에 배너가 실릴 정도로 책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알라딘과 예스24가 정의감에 넘쳐서 메인배너를 올린 게 아니다. 신문광고를 거부한 신문사도, 메인에 배너를 실은 인터넷 서점도 장삿속이다. 이것이 바로 "시장이 삼성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여기에 정의감이나 의무 같은 덕목을 붙이기 시작하면 답이 안 나온다. 

 
▲ 진알시 트위터(
http://twtkr.com/jinalsi)를 통해서 <삼성을 생각한다> 리트윗 캠페인을 벌인지 45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하루에 10명 남짓 트위터리안들이 리트윗을 달고 있다.  

하지만 '불매'라는 소비자적 관점은 흔쾌히 동의할 수 있다. 철저히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말하면 삼성은 판매자이며, 우리들은 소비자다. 삼성이 소비자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르게 표현해 삼성과 소비자 중에서 누가 더 오래 살 것인가? 삼성은 소비자에게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소비자가 삼성에 적응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삼성을 1:1로 맞짱 뜰 상대로 치켜세우지 말자. 시장에서 고르는 많은 상품 중 눈에 띄는 상품 정도로만 정리하자.

진알시(진실을 알리는 시민,
http://jinalsi.net/)는 트위터(@jinalsi)를 통해서 <삼성을 생각한다> 구매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삼성을 생각한다> 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생각했으며, 이런 정도의 책에도 벌벌 떠는 언론사 광고국이 어이 없어서다. 철저히 자본주의적 관점이다.

<삼성>에 대한 비판서가 많이 출판됐지만 삼성 안의 사정을 이렇게 광범위하고도 구조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책은 없었다. 한마디로 진알시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신문광고만 안 나갔지 인터넷 서점 예스24, 알라딘의 메인에 배너가 실릴 정도로 책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알라딘과 예스24가 정의감에 넘쳐서 메인배너를 올린 게 아니다. 신문광고를 거부한 신문사도, 메인에 배너를 실은 인터넷 서점도 장삿속이다. 이것이 바로 '시장이 삼성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여기에 정의감이나 의무 같은 덕목을 붙이기 시작하면 답이 안 나온다.

진알시는 리트윗 캠페인뿐만 아니라 2월 26일~3월 1일(4일간) MBC 앞에서 <삼성을 생각한다> 구매 캠페인도 벌였다. 현장에서 직접 사서 선물도 주자는 취지였다. 판매 수익금은 라면 후원금으로 기부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출판사와 연계해서 '공동구매'도 추진 중이다. 그리고 <삼성을 생각한다> 전면광고도 기획 중이다. 어느 지면에 실릴지는 알아봐야겠지만 가장 파급력 있고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곳에 집행하고 시민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그리고 전면광고가 나간 지면을 전국 90개 배포팀에서 배포한다. 오프라인에서 순식간에 <삼성을 생각한다>를 퍼뜨릴 계획이다. 아직 오프라인 독자들에게 <삼성을 생각한다>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김상봉 교수는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서 "지금 당장" 삼성에 대한 불매를 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정작 방법에 대한 문제는 적고, 삼성을 해묵은 비위 사실과 모순에 관한 철학자로서의 성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당장'이라는 말이 제목에 붙어 있는 게 멋쩍은 느낌이 들 정도다.

당장 불매운동을 전개하려면 글을 읽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제안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트위터에서는 삼성불매운동이나 삼성에 관해 성찰하자는 취지의 글에는 "#think3s"라는 해시태그를 붙여달고 있다. 글을 쓸 때 이름 옆에 삼성불매운동을 표시하는 상징을 다는 등의 구체적인 방법이 아쉽다. 그리고 삼성이라는 거대한 대상을 상대하려면 기존에 삼성불매를 해오던 시민단체나 네티즌 그룹과의 연대 논의의 장을 열 필요가 있다.

이런 구체적인 방법이나 로드맵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내놓은 '삼성 불매 운동'은 설익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김상봉 교수의 삼성 불매 운동 제안이 사회적으로 건강한 환기가 이루어지기를 필자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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