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서재에 글을 남긴다...

김태권이라는 작가는 시사IN에 책 코너를 연재했던 적이 있다.
주로 동서양의 고전을 주제로 몇 권 엮어서 소개했다.
말대가리 캐릭터가 나와서 철학자, 위인들과 농담따먹기 하던 만화가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시사인 연재를 하지 않지만,
시사인에 연재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풍부하고 진지해서 그런 것 같다.

시사인 창립기념회 때 술자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김태권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났다.
열공하는 대학원생 같은 모습이었는데,
싹싹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아마 이 작가가 대성하더라도 "불치하문"의 자세는 잃지 않으리라고 그날 믿어버렸다.
장정일의 삼국지나 동양고전에 무척 관심이 많은지는 한나라 이야기 단행본 발행 소식을 접하고 처음 알았다.

나는 그 시대를 가지고 소설을 하나 쓰려고 했는데,
그 시대의 문맥이나 여러 가지 성실한 고증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과 다시 만나다면 술 한 잔 하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전국책, 국어, 사기 같은 중국의 고리타분한 이야기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싶다.



덧 : 미리보기에서 몇 부분 읽어본 바로는
한나라 이야기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중국의 주나라 이전부터 훑을 것 같고,
서양의 당대와 비교하며 끌어들일 것 같다.

만화의 소품 하나하나까지 성실한 고증을 달았다.
각주를 읽는 맛이 또한 새롭고 일품이다.

드디어 세계사 만화도 진보적인 향취를 풍길 수 있게 되었다.
이 사람에게 세계사 교양을 흡수하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 나라 이웃나라는 좀 읽히고 싶지 않다)

민준이 크면 읽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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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를 위한 사회주의자 비판

단행본 단위로 책을 읽는 시기는 조금씩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의 저작이 1권만 소개되는 경우도 있지만,

좀 신경써서 봐야 하는 작가는 최소 2~3권 정도는 읽어야 그 사람의 사상이 드러나는 것 같다.

최초의 전작주의 시도는 도스또옙스끼였는데 후기 장편을 읽으면서 독서의 맛을 알았다.
그 다음은 김유정, 김수영... 작가 작품목록 단위로 읽으면 단편적으로 섭렵한 정보가 입체적으로 그려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스피노자는 고맙게도 최근 번역본이 쏟아지고 있다.
<에티카> 이후에 번역이 없었는데, 스피노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무척이나 뜨겁다.
스피노자는 철학사에만 담을 수 없고, 사회학, 심리학에 무한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행동가이자 내적 혁명가라는 점도 매력포인트로 꼽힌다. 스피노자가 라이프치히의 교수직을 거부한 사유는 "망치를 들 수 없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별명은 "망치를 든 철학자"이다. 기존의 철학적 관성을 깨뜨린다고 해서 지은 별명이다. 스피노자에 의해서 비로소 신체와 감정이 철학적으로 중요한 의제가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보다 <철학 경제학 수고>가 큰 영감을 준다. 그리고 <신성가족>도 읽어볼 참이다. 옛날에 헌책방에서 무리하게 구매한 박종철출판사의 마르크스 선집 시리즈를 사두길 잘했다.



요즘 관심을 갖는 작가는 에리히 프롬...
한 모임에서 <사랑의 기술>을 읽기로 했는데, 좀 무리해서 <소유냐 존재냐>와 <자유로부터의 도피>까지 읽어볼 참이다.




이 다음에 읽고 싶은 작가는 바로 조지 오웰이다. 1984를 최근에 읽고 충격을 받았다. 동물농장을 즉시 구입했는데, 최근 지인이 <카탈로냐 찬가>를 읽는다는 소식을 들은 데다가, 로쟈 님이 소개한 르포 <위건부두로 가는 길>가 무척 땡긴다. 소설 자체도 무척이나 정교하게 쓰는 오웰의 저널리즘적인 르포를 읽어보고 싶다. 오웰의 사상, 문학뿐만 아니라 혁명가로서의 면모도 중요하기 때문에 평전도 하나 정도 곁들이면 오웰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로쟈 님 고맙습니다.




하나의 글 속에도, 하나의 책 속에도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독자가 빠지는 함정은 하나의 글, 하나의 책을 통해서 그 작가의 전체상을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다. 특정 문구나 특정 작품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의 현장 안에 온전히 작가의 현장을 데려올 수 있으려면 최소한 2권 이상은 봐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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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1-1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적극 동감합니다. 그런데 도스토에프스키 정말 완독하셨나요? 우와! 카라마조프네 형제들도 읽으셨겠지요? 저도 꼭 읽어 보고 싶은데 너무 힘들까봐 망설이고 있어요. 인물들이 서로 많이 헷갈린다고 들어서.

스피노자는 윌듀란트의 <철학 이야기> 챕터에서 읽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추'라는 얘기를 참 많이도 써먹었지요. 어쭙잖게 엑기스만 쏘옥 받아서 잘난척 했던 기억이 부끄럽네요. 기회가 되면 위의 책들을 다 읽어 보고 싶어요.

승주나무 2010-01-19 12:34   좋아요 0 | URL
윌 듀런트 읽고 감동먹은 1인을 만나게 되네요. 저도 윌 듀런트로 인해 스피노자로 인도되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후기 장편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것 같아요. 백치, 악령,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포함해서..

2010-01-17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10-01-19 12:35   좋아요 0 | URL
결혼생활 괴롭지 않게 보내기, 결혼생활 참을 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기에는 좋은 것 같아요^^

Jade 2010-01-1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저는 둘 다 좋았어요!

승주나무 2010-01-19 12:35   좋아요 0 | URL
역시 읽으셨네요. 놓치지를 않으신다니깐 ㅎㅎ

무해한모리군 2010-01-1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가는길을 읽으려 해요.

승주나무 2010-01-19 12:36   좋아요 0 | URL
저도 동물농장, 카탈로냐 읽고 읽어보려구요. 아직 문학작품을 많이 못 읽어서리 ㅋㅋㅋ 구매는 해놨어요^^

2010-01-22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4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공까지 잡아내는 이모션 캡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미래세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영감을 갖게 만드는 사람이다.
중학생 시절에 보았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지배했다. 기계가 지배한 세계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터미네이터1, 인간과 기계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터미네이터2는 영상기술과 '액체인간'이라는 발상 역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천재란 기존의 언어에 새로운 언어를 덧붙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 도스토예프스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모션 캡쳐 기술 및 가상 카메라(Virtual Camera)를 개발, CG 캐릭터들을 감정이 살아 있는 실제 인물과 같이 생생하게 탄생시켰다.

 



이모션 캡쳐는 배우들이 머리에 초소형 카메라를 쓰고 연기를 하면 카메라가 얼굴 전체를 실시간으로 캡쳐해 모공의 움직임까지도 CG화하는 기술이다. 그간 분장 기술과 모션 캡쳐를 이용했던 영화들이 눈동자의 움직임과 핏줄이 비치는 피부의 투명성을 표현하지 못해 사실성이 떨어졌던 것에 반해 이모션 캡쳐 기술은 동공 크기의 변화, 눈썹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카메라가 잡아내는 것이다.
판도라라는 미지의 공간에 서식하는 생물체와 신기한 나비(Na’vi)인들의 언어가 볼거리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언어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판도라의 토착 종족만을 위한 언어를 만들었다. 언어학자 폴 프롬머는 13개월 만에 나비(Na’vi) 족의 언어를 탄생시켰고, 그것을 담은 책자를 만들어 배우들을 가르쳤다.
특히 물과 땅, 하늘을 통틀어 하나의 생태계를 관객들에게 선사한 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공존, 감정이입 등 동양적 미덕이 물씬 풍기는 헐리우드 영화

헐리우드 영화의 특징은 액션이나 CG 등 기술적인 화려함 외에 볼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액션이나 CG가 좋으면 극본이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 마치 특정한 기술을 선보이려고 영화라는 형식을 사용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바타>는 세계관에 주목한 영화다. 나비 인들은 판도라 전체의 생태계와 연결돼 있다. 인간처럼 말로만 자연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가슴으로 자연을 느낀다.

"맹수들을 내쫓아줘서 고마워"(제이크 설리)
- 그것(맹수를 죽인 것)은 정말 좋지 않은 행동이었어!(네이티리)
"그러면 왜 나를 구해준 거지?"(제이크 설리)
- 너는 심장이 강해(네이티리)

맹수에게 목숨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제이크를 구해주고 나서 네이티리가 한 말이다. 네이티리는 죽어 가는 맹수를 포근히 감싸며 고통을 줄여주면서 신의 품으로 갈 것이라는 위로한다. 그리고 그 생명을 자신이 이어받겠노라고 약속한다. 마치 종교의식을 보는 듯했지만, 사실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판도라 별의 나비족이 지구의 인간과 같은 지위에 있다면 동식물이 제공하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셈이다. 인간은 자연의 소비를 당연시하는데, 나비 족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특히 헬 게이트에 주둔하는 미군에 의해서 터전이 공격당하고 나무가 부서지자 네이티리는 극도의 슬픔에 어지러워한다. 영화에서 자연에 대한 이토록 심대한 감수성을 가진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다.

제임스 카메론이 터미네이터2에서 그려준 '공존'이 인간과 로봇이라는 인위적인 공존이었다면, <아바타>에서 보여준 공존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궁금한 것은 카메론 감독이 보여준 미래상과 아바타의 미래상이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바타>의 미래상 역시 자원이 고갈되고 전쟁이 끊이지 않지만, 약자들이 힘을 합해 자신들을 위협하는 거대한 적으로부터 땅을 지킬 수 있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아바타>라는 영화를 통해 제임스 카메론의 철학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터미네이터에서부터 보였던 약자들의 의기투합, 불안한 미래에 대한 경고메시지에서 더 나아가 불안한 미래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자연과 토착인, 손님인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영화다.  

나바족이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법, 지구인이 나바족과 관계를 맺는 방법은 바로 감정이입이다. 판도라의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는 모습, 사소한 맹수 한 마리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깊이 슬퍼하는 네이티리, 나바족을 배우고 느끼며 '침투'라는 최초의 명령과 새로 사귄 친구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제이크가 나비 족을 지키기 위해 자기 종족(인간)과 전쟁을 벌이는 모습은 모두 감정이입에서 비롯된다.

"이웃과의 공동체 활동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감정이입'이다. 이웃과의 감정이입의 경험은 시민공동체의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벤자민 바버(B.Barber)

감정이입, 공감과 같은 공통언어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관계관은 인종, 혈연관계라는 전통적인 관계와 궤를 달리하는 성격이다. 친구를 잃으면 슬프고 새 생명을 얻으면 한없이 기뻐하는 것은 종의 벽을 뛰어넘는 공통언어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협소한 관계망은 온난화 등 불안한 미래를 부채질할 뿐이지만, 인간과 자연, 생명체의 공감대는 그 불안을 희망으로 바꿔놓기 충분하다. 제임스 카메론의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바타>를 보고 눈과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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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0-01-0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안땡기는 영화였는데 승주나무님 글 보고 나니 확 땡기는데요. ^^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도 많이 받으세요.

승주나무 2010-01-02 12:05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좋게 써서 그런 것 같아요.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좀 모나게도 한번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stella.K 2010-01-02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거 별론데 한번 봐야하려나?
난 왜 너 같이 글을 못 쓸까?
새해 복은 많이 받았니?ㅎ~

승주나무 2010-01-02 12:06   좋아요 0 | URL
아니.. 글쓰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느끼는 대로 쓰는 거지^^ 누나 정도 경지가 되면 잘쓰고 못쓰고는 없어지는 거지요 ㅎㅎ 리뷰 기대할게요~~

순오기 2010-01-02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좋았어요~ 나혼자 보고 와서 뽐뿌질을 했더니 우리 가족은 이다 오후에 보러 가기로 했어요.^^

승주나무 2010-01-03 23:22   좋아요 0 | URL
나도 우리 아기 민준이에게 뽐뿌질을 해볼까요 ㅎㅎㅎ 가족이 함께 영화보는 날을 저도 손꼽아 기다려요~
 

제주4.3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정확한 집계가 어렵다. 다만 <제주4.3 진상조사위원회>가 국내외 자료와 현지인 제보 등을 망라해서 조사한 자료를 산출한 결과 14,028명이라는 값을 얻을 수 있었지만 으레 학살이 그렇듯 실종이나 비공식 학살 등을 따지면 이 값은 두 배 이상을 추정할 수 있다. 1950년 김용하 제주도지사가 조사해 밝힌 희생자는 27,719명이었고 한국전쟁 발발 당시 예비검속과 형무소 재소자 희생 3,000명도 이 안에 포함된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밝힌 14,028명 중에서 78.1%인 10,955명은 토벌대에 의해 희생되었으며, 1,764명(12.6%)는 무장대에 의해, 1,266명(9%)는 공란에 의해 희생됐다. 토벌대란 당국을 말한다. 당시 제주도는 제헌의원 선거를 거부해 정부의 정통성에 상처를 주었으며 남북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북한 정부에 의해서 배제된 기득권 2세들이 제주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희생이 더했다. 제주4.3의 참혹한 역사를 그림으로 승화한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서평을 4월 3일을 생각하며 다시 선보인다 - 편집자


"죽은 어미 위에서 젖 빨던 그 아이 잊을 수 없어"
[서평]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동백꽃 지다>



<제주4.3 60주년을 기념해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가 보리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당사자 34명의 증언을 제주 4.3 전문가 김종민 씨가 정리해서 그림과 함께 생생하게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200-2"의 역사적인 의미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열렸다. 이때 총 의석수는 200석이었으나 2표의 무효로 인해 제헌의회는 198명의 국회의원으로 출범했다. 이 "-2"라는 숫자는 현대사에서 그리 조명을 받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에 상처가 된다는 점이었고,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치인생의 오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부 당시에는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동의어였다. 이승만은 현대사에서 '굴종'이라는 선례를 남기며 권력을 누렸다. 자주독립을 위해 가산과 전 인생을 반납한 독립운동가와 그 자제들, 일제에 협조하여 가산을 지키고 권세를 누렸던 친일파와 그 자제들의 운명은 이승만이 미 군정에 굴종하며 친일 세력을 대거 재임용함에 따라 갈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현대사는 '굴종'이라는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재벌의 편법, 탈법이 일반화되고 정치인과 공직자의 일상적인 부패상은 이 '굴종의 현대사'를 더욱 빛내고 있는 셈이다.

제주 북제주 갑ㆍ을 2개 선거구의 무효는 이러한 '굴종'에 이의를 단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이듬해 5월 10일 이 두 개의 상처(?)는 신속하게 다른 '굴종'들로 채워졌다) 이 "-2"라는 역사적 메시지를 던진 죄로 당시 제주 인구 30만 명의 1/10인 약 3만명이 죽었다. (제주 4ㆍ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2003년 통과)) 선거철마다 주요 정당이 제주에서 경선을 시작하는 것은 비단 제주가 국토 하단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선거의 향배를 예측하는 캐스팅보드 역할을 오랫동안 자처한 제주의 민심은 그 기원이 대단히 오래 되었다. 예컨대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전국 투표율은 48.7% 대 26.1%였다. 이 차이는 22.6%로 두 후보 사이에 한 명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들어갈 틈이 있을 정도였다. 제주의 투표율은 어땠을까? 이명박 후보 38.3% 대 정동영 후보 32.4%로 불과 6% 미만의 차이였다. 그나마 정치색이 덜하다는 서울도 53.1% 대 24.4%로 더블스코어 이상의 결과가 나왔던 때다. 제주도의 이 묘한 정치적 균형감각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제주 4.3을 말해주는 '세 가지 마음'


제주 4.3을 감성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를 관통하는 세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 첫째, 5·10 남한 단독선거가 제주도의 거부로 절름발이가 되자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몹시 격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1949년 1월 12일 열린 국무회의 의결사항은 '제주도 특별소탕경찰대 1,000명 파견에 관한 건'이었는데, 이 문건에서 대통령의 유시 내용은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였다. 그보다 한달 전인 1948년 12월에 서북청년단 총회에 직접 참석해 연설을 하고 서북청년단원들을 제주도로 파견하였고, 그 단원들이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볼 때 제주도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 4.3 전 영역에 걸쳐 가장 처참한 집단 학살과 초토화 작전이 자행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3개월만인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이 대통령령 31호로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즈음이다. 제주도에 내려온 서북청년단원이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재판도 없이 민간인들을 마구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겠습니까?"라고 증언하는 바와 같이 제주 4.3의 일차적 책임은 이승만에게 있다.

둘째는 서북청년단의 '증오심'이다. 일명 '서청'으로 불리는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였다. 따라서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자신들의 터전을 없애버린 세력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품은 서청과 남로당의 적극적인 활동지인 제주도의 만남은 처참한 홀로코스트를 낳았다.

셋째는 제주도민의 공분이다. 제주도는 이승만의 반공국시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본 지역으로 속하는데, 혹자는 제주 4.3이 '빨갱이들의 선동과 주민들의 동조'로 보고 <4.3특별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제주도민이 미군정과 당국의 행태에 공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도민의 특이한 이력을 살펴야 한다.  

제주도가 척박하고 고립된 땅이라고해서 그 정신마저도 고립된 것은 아니다. 제주는 예부터 최후의 유배지로 꼽혔는데, 유배 온 양반들은 제주의 젊은이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때문에 유난히 제주도에는 유풍과 학식이 생활상에 고루 반영돼 있다. 일례로 국어학자 이기문은 일조각에서 발행한 <속담사전>에서 해방 이후의 중요한 업적으로 <제주도 속담 1,2>(진성기 편저)를 소개하며 사전편찬에 도움받은 바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 역시 어머니로부터 수십 년 동안 '해태(懈怠)하지 말라'는 훈계를 들었는데, 이는 '해이하거나 태만하지 말라'는 일반에서는 보기 드문 한자어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늦게 상륙한 이유도 있지만, 제주도민들은 그야말로 해방감을 가장 깊이 맛본 사람들이었다. 이때 남한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치안과 정책을 수행하였다.

제주 4.3의 남상이 될 만한 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주 지역 곳곳에서 개벽 이래 최대 인파인 3만명 정도가 참여한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였다. 3만명이 운집한 것도 대단하지만 주민 6명이 죽고 8명이 크게 다친 '3.1절 발포 사건' 직후 이에 항의해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ㆍ단체가 파업에 가세한 '민관 총파업'이 제주도민의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사가 서중식 교수는 <동백꽃 지다>(보리)의 부록 논문에서 "제주도는 밭이 99%인데다 땅이 척박하여 소출이 적은 관계로 육지에 비해 계급 갈등의 소지가 미약했고 혈연 공동체적 요소와 사회경제적 성격으로 인해 도민들이 쉽게 단결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기록했다. 이 책의 자료2 <제주 4.3항쟁 일지>에 의하면 3.1절 발포 사건 이후 단행된 민관 총파업을 두고 경무부(지금의 경찰청) 최경진 차장이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 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161쪽) 이는 단선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단지 제주인들은 부패하고 굴종스러운 기득권의 부조리한 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의식이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마음들의 충돌은 제주 4.3이라는 필연적인 비극을 만들어낸 동력으로 작용했다.



강요배의 그림책 <동백꽃 지다>가 나왔다
 

올해로 제주 4.3 60주년을 맞는다. 그에 걸맞게 다채로운 행사가 제주에서 펼쳐진다. 출판에 업을 두는 사람으로서 나는 강요배 화백의 그림책 <동백꽃 지다>(보리)가 나왔다는 데 대해서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책을 보자마자 밤새 삽화와 증언을 살폈다. 대학시절 익숙하게 보았던 그림들이 한 책으로 묶인 점이 좋고, '제주 4.3전문가 김종민' 씨가 발품을 팔아서 '당사자'들의 증언을 채록했다는 점도 좋다. 이 책은 1998년 학고재에서 낸 <동백꽃 지다>를 다시 낸 것인데, <동백꽃 지다>는 강요백 화백이 1989년부터 3년 동안 '제주 4.3항쟁'을 다룬 그림 50점을 1992년 발표한 전시회의 제목이다.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어미 위에 엎드려 젖을 빨고 있는 아이가 4.3의 처참함과 제주인의 처절한 생명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기영의 자전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실천문학사)에서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라는 말로 제주인의 이 같은 정신을 압축해서 표현했다>

 


 

 

 

 <난리통에는 어린아이와 부녀자 등 노약자가 최대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먹을 것이 없으니 젖이 빈 것은 당연하다. 빈 젖을 빨지도 못하고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과 고개를 숙인 어미의 모습이 처절하게 다가온다>

 

 


 강요배 화백은 '기행'으로 더 유명한데, 재미있는 예화가 하나 있다. 바람과 풍랑이 잦은 제주도에서도 격렬한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밤에 강요배는 붓과 캔버스만 들고 열 번도 넘게 바다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것은 파도와 비바람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다. 현재 '민족 미술인 협회' 회장과 '제주 4.3 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소재는 종이, 펜, 먹, 캔버스를 가리지 않았으며 증언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선택했다. 역시 제주 민중의 일상사와 당시의 처지를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그렸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119쪽의 '젖먹이'와 133쪽의 '빈젖'은 당시의 처참한 일상을 고스란히 설명해 준다. '젖먹이'에 대한 증언은 김석보 씨(조천읍 북촌리)의 1998년 증언에 담겨 있다.


"사람들이 동요해 흩어지기 시작하자, 군인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총을 난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너댓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중엔 한 부인도 있었는데, 업혀 있던 아기가 그 죽은 어머니 위에 엎어져 젖을 빨더군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북촌리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 (118쪽)


제주어에 '속솜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침묵하거나 아주 작게 말하다'는 뜻이다. 나는 제주 4.3이 발발한지 30년, 한 세대 정도 지난 1978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4.3이라는 것을 알고 최초로 어머니에게 물었던 게 스무 살이 되었을 때니까 일이 벌어진 지 50년이 지난 때다. 어른들은 그 당시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했고 그것을 내면화했다. 4.3의 기억은 제주 사람들의 일상습관을 바꿔버렸다. 어머니와 이모가 우연히 대화를 하는 것을 들었다. 별로 비밀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속솜하게 말했다. 이 장면이 두고두고 이상했다.

 비단 어머니와 이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제주 4.3에 속솜했다.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자고 열변을 토했던 참여정부도 역시 제주 4.3의 거대한 뿌리는 만지지 못했다. <나의 서양 미술사 순례>를 써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가르쳐준 '재일 조선인 2세'이자 도쿄 케이자이 대학교 현대법학부 교수인 서경식 씨는 '추천하는 말'에서 "'4.3'은 알지 못해도 되는 사건이 아니며 알 필요가 없는 사건도 아니다. 4.3은 '알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부끄러운 그런 사건인 것인다. 우리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평화와 사람다움을 위하여"(9쪽)라고 말했다. 1987년 대한민국에 절차적 민주화, 형식적 민주화가 실현된 것에 머무른 것처럼 제주 4.3 역시 단지 '특별법'이 통과되었을 뿐 그것의 역사적 의미나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를 알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4.3 특별위원회 폐지'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이다. 단지 제주인만의 문제, 피해의식적인 문제, 감성적인 문제, 빨갱이 문제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좀더 성숙한 관심으로 세심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환갑이 다 되었으니 '철'이 들 만도 되지 않았나?

 동백꽃 지다: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상세보기
강요배 지음 | 보리 펴냄
제주 4ㆍ3 항쟁의 전 과정을 힘차고 간결한 필치로 되살린 강요배의 그림과 4ㆍ3을 겪은 제주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 하나가 되어 처절했던 항쟁의 역사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동백꽃 지다>는 아름다운 평화의 섬을 피로 물들인 제주 4ㆍ3 항쟁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집이다. 화가 강요배가 힘차고 간결한 필치로 제주 민중들의 투쟁과 처참했던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되살려내고, 여기에 4ㆍ3을 겪은 제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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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4-0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오늘이 4.3이군요. 죄송해요~
대학생 딸이 사회참여로 시위에 동참했는데, 자기 과에서 딱 세 명 참여했었대요.
빛고을에서 나고 자란 우리딸과 마산 친구와 제주 친구~~~
피흘림의 역사가 있는 곳에서 자라면 토양이 정신을 만들어가지요.
잊지 않고 기억하렵니다. 4.3 일깨워 준 페이퍼 고맙습니다!

승주나무 2009-04-07 17:31   좋아요 0 | URL
4.3이 돌아오면 항상 죄짓는 느낌입니다. 언젠가 이 죄를 갚을겁니다.
감사합니다~~

드팀전 2009-04-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되면 한 번씩 생각나는 노래입니다.

잠들지 않는 남도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남도 한라산이여....

승주나무 2009-04-07 17:31   좋아요 0 | URL
저도 술취하면 자주 부르는 노래입니다.
단 옆에서 한때 운동권 선배들이 부추길 때만^^

릴케 현상 2009-04-0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지인이 신랑감을 구했대서 만나봤는데 다른 점에서는 보수적인(?) 회사원이신데 끊임없이 4.3에 관한 얘기를 하시더군요. 알고보니 제주도 사람이었어요. 그 약간의 부조화가 참 인상적이면서도 숙연해지는 게 묘하더군요.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4.3에 관해서는 특수한 것 같아요. 예전에 4.3 연좌제 때문에 사람들이 해병대 많이 지원했거든요. 해병대라는 분위기상 우파가 되면서도 4.3문제만큼은 마음에서 올라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마노아 2009-04-0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솜한 제주 사람들의 말 습관이, 우리 현대사를 표현해 주네요. '철 드는 게' 너무 힘이 드네요.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철들기 쉽지 않죠. 철들지 않기도 쉽지 않은 것처럼...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의도를 묻는 거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내가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을 왜 그렇게 한 거냐?"

<밤은 노래한다>의 작가 김연수가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에게 대뜸 물었다.
<밤은 노래한다>의 경우 주인공 해연은 원수와의 재회에서 그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김연수는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은 그를 용서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가족을 불행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었으면서도 그 가족을 웃으면서 맞아야 했던 할머니의 가슴앓이가 깊게 녹아 있는 다큐멘터리의 최대의 고민은 당사자가 아닌 후손으로서 그의 후손(친구이기도 하다)을 만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이다. 재회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멈추지만 관객들 중에는 어머니로 하여금 그 친구를 만나도록 강요한 감독을 원망하는 사람도 많았다.
소설가 김연수도 "안 갔으면 좋았겠는데 가더라"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 김연수 작가(왼쪽)는 다큐멘터리에 약하다. 푸지에를 보고 나서 '준비되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고, '워낭소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김연수의 블로그에는 다큐멘터리에 관한 글들이 많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알라딘과 인문사회출판협의회는 김연수 작가를 시사회의 게스트로 초대했다. 오른쪽은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


문정현 감독은 담담하게 답했다.
만약 이 영화에서 패배의식을 읽으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한계이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상대, 중대마을과 하대 마을 어른들이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
그 자식들인 어머니 세대에서는 화해가 가능할까? 이런 질문을 하려고 강요도 하고 오버도 했다고 말했다.
솔직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심오한 의도와 철학적인 답변이 아니라 내 이웃, 내 친구에게서 들을 수 있는 답변이라 더 좋았다.

김연수 작가가 동석을 해서 그런지 관객들은 <밤은 노래한다>의 내용과 결부시켜서 질문을 했다.
김연수는 소설의 작업과 다큐멘터리의 작업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만드는 직업은 상당히 이념적이다. 내가 이런 결말을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사실과 결부되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다큐의 묘한 매력이다. 팩트도 있고 드라마도 있지만 흐름 자체에 몸을 맡겨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


▲ 자기 개인사와 결부된 현대사를 표현하는 것은 보통 작품을 표현하는 것보다 갑절의 고민과 공력이 든다. 그만큼 위험성도 크다. 자기가 입은 피해의식과 대중의 인식 사이의 벽이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에 창작자는 그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이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켰다고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가족과 이웃 사람이라는 소박한 관계망으로 승화시킨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제주도 사람으로서 나도 제주 4.3에 관해서 형상화를 고민하고 있지만 좀처럼 형식이 잡히지 않았다.
자기가 입은 피해의식과 대중의 인식 사이의 벽이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에 창작자는 그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이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켰다고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가족과 이웃 사람이라는 소박한 관계망으로 승화시킨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문 감독은 언제부터 이것을 만들려고 생각했을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최초의 시점은 언제였을까?
그는 2003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대통령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라는 어머니의 발언이 나온 것으로 보아 다큐멘터리가 오래 전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문 감독은 영화를 접으려고 했다.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도 할머니에 대한 선물이라는 소박한 목적이지만, 영화를 접으려는 것도 역시 할머니의 죽음에 의한 영화 정체성에 대한 불확신이다. <할매꽃>은 철저히 문정현 감독의 사적인 영역에 있다. 이것은 단점이기보다 오히려 강점일 수 있다. 사회적인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표현하지 않고 사적인 영역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능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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