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벤트페이지로 직접 연결됩니다.





시, 소설, 인문학이 한데 어우러지는 책 축제의 향연

풍성한 한가위가 머무는 9월이라 그런지 9월의 책 행사에는 '넉넉함'이 깃들었다. 눈에 띄는 몇 가지 행사들을 미리 한 번 살펴보자.

9월 26~28일 서울 홍대 부근에서 열리는 '와우북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전북 익산, 대구, 제주 등 전국 10여 개 지역에서 책과 관련한 지역축제가 열린다.

9월 26일 저녁 7시 30분 홍대 부근의 이리카페에서는 '제4회 문학과지성사 낭독의 밤' 행사가 열린다.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를 펴낸 이원 시인의 사회로 김혜순, 문태준 시인이 시의 향연을 펼친다. 지금까지 같은 도형을 그린 적이 없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9권의 시집을 통해 매순간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 김혜순 시인은 주로 실존의 모습을 담아 냈다. <불쌍한 사랑 기계>(문학과지성사, 1997),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문학과지성사, 1994) 등 그간의 제목을 보면 그의 시세계를 알 수 있다.

문태준 시인은 김연수, 김중혁 작가와 함께 '김천 트리오'로 더 유명하다. <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라는 시로 유명한 그의 시세계는, 그가 한 인터뷰에도 밝혔듯이 "쉬우면서도 감동이 있는 시, 아름답고도 슬픈 서정시"를 지향한다. 특히 그의 세 번째 시집인 <가재미>는 작년에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집으로 꼽혔다. 이 책은 2006년에 출간됐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삶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으면서도 매번 새로운 아홉 개의 시집을 품은 시인과 쉽고 사랑스러운 시어로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시인들이 하는 낭송은 또 하나의 시 그 자체일 것이다.

언어의 정수가 농축된 시향(詩香)이 어지럽다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소설을 만나보자. 벽초 홍명희의 대하 소설 <임꺽정>이 사계절출판사에서 올초에 출간되었는데, 세 가지 맛으로 버무렸다. 대중적인 역사서로 인기가 많은 이덕일씨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임꺽정>을 분석했으며, 고미숙씨는 고전평론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의 바다에서 임꺽정이라는 월척을 건져올릴 것이다.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문장 관리자 김훈은 벽초의 소설을 소설가의 관점에서 구수하게 풀어낸다.

9월 27일에는 고미숙씨가, 10월 4일에는 김훈씨가 기다리고 있다. 홍대 상상마당 4층 아카데미 대회의실에서 오후 2시. 주지하다시피 <임꺽정>은 2006년 6월 5일 남북 최초로 평양에서 '출판권 설정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계절 출판사의 노력으로 우리는 벽초 홍명희의 원작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게 됐다.

두 행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는 '보너스 이벤트'를 걸었다. 강연을 듣고 나서 '후기'를 올려주는 독자에게는 최대 10명에게 적립금 1만원을 증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야말로 좋은 작가도 만나고 상금도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제대로 읽고, 놀면서 공부하자

태어나서 가장 처음 만나는 책은 <백설공주>일 확률이 높다. 인터넷 서점에서 '백설공주'를 쳐보면 현존하는 종은 무려 168개나 된다. 여기에 1종을 더 추가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169번째 백설공주가 아니라 첫 번째 백설공주인 셈이다.

백설공주는 그림 형제의 대표 작품인데, 독일어 원전에는 '공주'라는 표현이 전혀 없다는 게 이 책의 저자 이양호씨가 밝힌 바다. 즉 원어 슈네비츠현(Sneewittchen)에서 Snee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 witt는 하얗다는 뜻, chen은 자그마하다는 뜻으로 굳이 번역하자면 '새하얀 눈 아이'가 된다.

'공주'라는 표현이 어떻게 해서 들어온지는 알 수 없지만, 명확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일본어 번역에 '공주'라는 표현이 보인다는 점이다. '시라 유끼 히메(白雪姫, しらゆきひめ)'라는 번역어 중에서 '시라'는 '희다' 유끼는 '눈', '히메'는 '공주'를 뜻한다.

백설공주의 '공주'라는 표현은 계급적일 뿐만 아니라 콤플렉스의 표현이란 점에서 교정되어야 하며, '동화'라는 것 역시 어린이들에게 읽히는 쉬운 작품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보는 전래동화'라는 원래의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도서포털 리더스가이드는 9월 26일 오후 3시 영풍문고 종로점에서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글숲산책)의 작가 이양호씨를 초청해 일곱 번째 작가와의 만남을 마련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예스24의 독서도우미클럽과 공동으로 주최하며, 독자가 직접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래동화는 동화와 어떻게 다른가요", "전래동화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새로운 교육 문화, 이렇게 시작합시다"라는 주제로 동화 번역과 교육에 관한 유익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역사를 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 없을까, 어떻게 하면 '이야기'라는 그릇에 역사를 근사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출판사 있다. <역사속으로 숑숑>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 토토북 출판사이다.

역사 판타지 시리즈라는 전무후무한 장르에 도전한 출판사는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1,2권 출간을 기념하여 어린이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선물을 선보였다. 이른바 '숑숑 올림픽'은 <역사속으로 숑숑> 1,2권을 무료로 나눠주고 책을 읽고 풀 수 있는 문제를 직접 출제하거나(문제 내기) 10문10답에 답하는 '어린이서평'이라는 두 가지 종목으로 나뉜다.

 

책은 둘 중 한 권만 신청해도 되고 두 권 모두 신청할 수 있다. 종목도 역시 두 종목 모두 참여가 가능하다. 10문10답은 워드프로세서 등으로 가능하지만, '문제 내기'는 반드시 종이에 친필로 글씨를 써서 보내야 한다.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경기가 진행되며 입선한 독자는 다음 권과 토토북의 다양한 책을 상품으로 받는다. 입선하지 못한 독자도 누구나 경기에 참여가 가능하다. 이렇게 경기의 결과를 집계해서 10권 완결본이 나올 즈음에 '종합우승자'를 가려 토토북의 '야심찬 선물'을 줄 예정이다. '야심찬 선물'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 토토북 출판사의 윤정현 팀장은 "어린이를 위한 역사판타지인 만큼 어린이가 이 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번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현재 티스토리 블로그(http://liastory.tistory.com/)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totobooks)에서 신청자를 접수받고 있으며, 10월 1일부터 한 달간 우승자를 가린다.(자세한 내용은 블로그를 참조)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한달 동안 15세 이상 서울시민 2만명을 대상으로 독서실태를 조사한 결과 1년 동안 만화책조차 읽지 않은 시민이 36.1%에 달한다고 밝혀졌다.(경향신문 9월 18일자 보도) 그것은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의 범람과 지식공유의 속도라는 시대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이 독자에게 다가갈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낭동회나 강연회 같은 고전적인 책 행사에서부터 블로그를 이용한 '색다른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가 돋보이는 이유다.

 




<책 행사 관련 책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 단오, 추석은 우리나라의 3대 명절로 꼽힙니다. 어릴 때 많이 놀아서 그런지 '명절'이라는 생각만 했지, 각자 어떤 의미가 있고 무엇을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윷놀이는 언제 하고, 연날리기나 씨름 같은 것은 언제 하는지 정확히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추석 특집으로 온고지신 우리문화그림책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책읽는곰)이 나옴으로써 설, 단오, 추석에 대한 어린이 그림책이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이 책들의 내용을 토대로 각각의 명절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놀이를 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홀수가 좋아요

1월1일, 3월3일, 5월5일, 7월7일, 9월9일

우리 조상들이 좋아한 숫자입니다. 홀수는 모든 것이 활발하게 살아나는 기운, 곧 '양기'를 뜻하는 데 좋은 기운의 숫자가 두 개나 겹쳤으니 그 날을 길일로 삼은 것이지요. 1월1일부터 순서대로 설날, 삼짇날, 단오, 칠석, 중양절이라고 합니다.

설날의 '설'은 아직 익숙하지 않고 낯설다는 뜻이죠.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처음은 익숙하지 않은 법이지요. 영어로 1월을 january라고 하잖아요. 고대 로마신화에 나오는 문(門)의 수호신을 야누스라고 하는데, 흔히 두 얼굴을 가진 이중적인 모습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죠. 야누스의 묵은해의 얼굴과 새해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서 1월을 상징하는 신이 되었습니다. 1월1일은 다른 말로 '정월초하루'라고도 합니다.
5월5일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돌아오는 태양의 축제로, 오랫동안 우리 겨레의 가장 큼 명절이었습니다. 양의 기운 그 자체인 태양의 날이니까 오죽하겠어요.


명절놀이 - 명절에 맞게 놀아보자


윷놀이는 설에 가장 많이 하는 놀이입니다. 나무 막대기 넷을 던져서 몇 개가 뒤집히고 누웠는지에 따라 도개걸윳모를 매기고 그 만큼 윷판을 움직이는 데 도에서부터 돼지, 개, 양, 소, 말을 뜻한다고 해요. 뒤로 갈수록 걷는 속도가 빨라지니 도개걸윷모가 된 것이죠. 윷놀이를 하다 보면 윷을 던지는 사람과 말을 움직이는 사람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윷을 던진 사람은 말을 겹쳐서 가고 싶은데, 윷을 옮기는 사람은 위험하니 앞선 말을 빨리 움직이자며 시비를 겁니다. 이런 실랑이들이 모두 재밌습니다.


연날리기는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했다고 합니다. 연날리기는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하지만, 연싸움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해요. 연싸움에서 이기려면 연줄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물론, 연줄에 날카로운 사금파리 같은 것을 발라서 상대방 연줄을 끊어놓는 게 관건이죠. 하지만 연싸움에서 이기려면 무엇보다 연이 훨훨 높이 잘 날아야 합니다. 연을 만들 때 균형을 잘 맞추지 못하면 바람을 제대로 탈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단옷날에는 씨름을 많이 했습니다. 씨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다양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힘 쓰는 일이 좀 많겠어요. 전쟁도 해야 하고 논밭도 일궈야 하고. 원시시대에도 맹수(猛獸)나 기타 종족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오로지 자기의 힘과 체력으로 싸워서 이겨야만 했으니 씨름은 가장 원초적이며 인간적인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씨름에 대한 기록은 고구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잦은 전쟁에 시달린 조선시대에는 시험과목이 되기도 했습니다. 씨름은 개인과 개인 간의 겨루기를 떠나 마을 대항전의 성격이 강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추석에는 역시 강강수월래죠. 강강술래의 유래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논란이 있어서 정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따로 없을 지경입니다. 임진왜란 때 전투를 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설에서부터 남편들 고깃배 타고 바다에 가면 아낙네들이 만선을 기원하며 췄다는 설도 있고, 도둑을 잡으려고 하던 행위라는 설도 있죠. 설도 좋지만, 보름달을 보면 싱글벙글 입가에 웃음이 나잖아요. 모두가 손을 맞잡으면 보름달처럼 동그란 모양이 될 테니 동그란 달을 보며 동그란 표정으로 동그란 원을 그리는 놀이라고 생각하면 딱인 것 같습니다.


가마싸움은 주로 서당 다니는 학동들이 많이 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가마에 바퀴를 달아 서로 부딪쳐서 부서지는 편이 지는 놀이인데, 이긴 편 서당에서 그 해 과거 시험에 붙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의 목숨걸고 다투곤 했습니다^^

명절의 먹거리와 풍습

우리나라 사람들은 첫째도 조상, 둘째도 조상이었습니다. 햇과일이 나오면 조상에게 가장 먼저 바치고, 추수 전에도 풍작이 나도록 음식을 제대로 차려놓고 기원을 하곤 했습니다.



연이(<연이네 설맞이>의 주인공)네는 가래떡을 빚었네요. 떡국은 가래떡을 짧게 썰어서 만든 음식입니다. 먼저 쌀가루를 반죽하여 찐 뒤에 떡메로 쳐서 차지게 하고 양초 가락처럼 길게 비벼 가래떡을 만들어 가래떡을 말려 꾸덕꾸덕해지면 타원 모양으로 얇게 썰어서 떡국을 끓입니다. 가래떡의 흰색은 새해 첫날의 밝음을 나타내고 둥그런 모양은 해의 모양을 나타낸 거라고 합니다. 그나저나 연이가 가래떡으로 '무엇'(?)을 만들었네요^^



추석에는 온 식구가 밝은 달을 보며 송편을 빚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까지 방 안에서만 빚었는데, 다음부터는 유리창이라도 열어놓고 빚어야겠네요. 송편 속에는 콩이나 팥, 밤, 대추 같은 소를 넣어서 맛을 내는데 모두 그 해에 새로 거둔 곡식들입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잘 생긴 짝을 만나고 밉게 빚으면 못생긴 짝을 만난다고 해서 처녀 총각들은 또 송편을 목숨걸고 예쁘게 빚었다고 합니다. 그 분들은 모두 시집 장가를 잘 가셨겠죠^^



연이네 옆집에 사는 덕이네가 달걀 꾸러미를 갚았습니다. 지난 봄 햇병아리를 내느라 꾸었던 달걀인데, 묵은해에 진 빚은 섣달그믈이 가기 전에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 참 좋은 풍습이죠.



한가위를 전후해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햇곡식의 이삭을 한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에 걸어 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 합니다. 내년에도 풍년이 들게 해달라고 비는 거지요. 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이웃을 불러 술과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경제사정도 좋지 않고 분위기도 어수선해서 명절 분위기는 잘 나지 않지만,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기분을 전해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어릴 때 그랬지만, 아이들은 명절날을 그야말로 손꼽아 기다렸을 테니까요. 신문을 보니 노인정이나 요양원 같은 데에서 이런 명절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두른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음식이 있으면 이웃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언제 한번 풍족한 적이 있겠습니까마는, 마음만은 넉넉했죠. 옛날보다 사람들의 '욕심'이 과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만 더 마음을 넉넉하게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명절 그림책을 가지고 이야기꽃을 피워보세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보 2008-09-1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이책 모두 가지고 있는데 류가 너무너무 재미있어하는 그림책들이예요,,

승주나무 2008-09-17 13:18   좋아요 0 | URL
울보 님~ 안녕하세요. 추석에 고향 갔다 와서 이제야 댓글 남겨요^^
반갑습니다~

순오기 2008-09-12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데요. 어느분이 제가 이런 페이퍼 올릴거라고 기다렸다는데~ 귀찮아서 관뒀거든요.^^승주나무님이 올린거로 대신할까봐요.ㅋㅋ

승주나무 2008-09-17 13:18   좋아요 0 | URL
그래도 순오기 님 판 페이퍼가 더 좋은데 ㅋㅋ
저를 수제자로^^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되지 못할까?
'배타성', '타자'라는 말은 아마도 우리를 가장 오랫동안 짓누르는 특징일 것이다.
이는 중화주의를 본받은 소중화주의와 기득권적인 유교의 관습 때문이다.
특히 왕실을 전체 가족과 일체화하여 단결력을 강조한 집단논리는
집단 외적인 요소들을 일체 거부함으로써 순혈주의를 키워 왔다.


▲ 16세기 마카오에 상륙한 포르투갈인들


조선에서 가장 먼접 접근해온 나라도 조선의 소식을 서양에 맨 처음 알린 나라도 포르투갈인데, 포르투갈인에게 비친 조선의 첫인상은 썩 개운치 않다. 1578년(선조11년) 마카오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포르투갈 선박이 태풍을 만나 조선으로 향하다가 다시 일본 나가사키로 되돌아간 일이 있었는데, 이때 프레네스티노(Pader Antonio Prenestino)가 남긴 <1578년 일본행 포르투갈선 표류 항해기록>에는 포르투갈 선박이 조선에 표류했다는 증언이 실려 있다.

7월17일 맹렬한 태풍을 만나는데 안내자는 "만약 앞 좇이 찢어지지 않는다면 코리아(Coria)에 도착할 것이다"고 말했는데, 코리아를 소개하며 일본보다 미개한 달단(만주를 말함) 사람이 사는 섬이라고 소개했다. 배는 조선에 당도하게 되는데, 안내자는 "거기에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백성이 사는데, 달느 나라 사람과 통상을 바라지 않는다. 몇 해 전 포도아(포르투갈) 사람의 정크선이 그곳 해안에 도착했을 때, 이 흉악한 주민들은 그 배의 소정(小艇, 작은 거룻배)을 빼앗고 그 안에 탄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전원이 학살되지 않기 위해 적잖이 고생했다'는 후문을 전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포르투갈인들은 몹시 두려워서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 16세기 포르투갈 상선의 모습

당시 일본에서 전교활동을 폈던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은 당시 조선의 폐쇄적인 상황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1549~1594년 사이의 일본 통사인 <일본사(Historia de Japan)>에서 그는 "조선인은 매년 상품을 거래하러 오는 일본인 3백명을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외국인이 국내에서 거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썼다. 포르투갈 범선이나 그 밖의 배가 바람이 조류 같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조선의 항구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조선인들은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다수의 무장 함선을 출동시켜 사정이나 정황을 들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쫓아낸다는 것이다.

1622년 서양 선박으로 추정되는 배가 조선에 나타났을 때의 일이 <광해군일기>에 기록돼 있는데 크기가 산과 같고 배 위에 30여 개의 돛대를 세운 배 한 척이 사도진(오늘날 전남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앞바다에 들어왔는데, 첨사 민정학이 편전(片箭, 길이가 1척 2촌(약36cm)인 짧은 화살)을 쏘았다고 하는데, 편전을 본 그들은 "조선의 작은 화살이 배를 거의 절반이나 뚫고 들어갔으니 활을 잘 쏜다고 할 만하다"고 했다고 한다.



▲ 네덜란드 선박으로 추정되는 서양 배를 향해 조선군이 쏘았던 편전은 두 뼘만한 크기이지만, 배를 절반이나 뚫고 갈 정도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뽐냈다. 사진은
<친절한 조선사>의 저자 최형국 씨

물론 신대륙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서양의 식민지 약탈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고,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의 저의가 악의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다. 스페인 깡패들은 마추픽추의 잉카 제국을 무식하게 멸망시켰던 것처럼 서양이든 당시 조선이든 어느 쪽도 개운한 구석이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폭력과 전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은 이익을 포기할 만한 절제력이 없고, 조선은 서양과 교섭을 할 만한 유연성이 없었으니까.

당시 서양인들과 무작정 싸움을 벌였던 선조들의 피가 흐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 얼굴색이 같더라도 체제를 달리하면 사정없이 몰살시키고, 설령 우리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체제의 피가 들어있으면 인정사정 없이 죽여버린 것이 우리 현대사의 모습이 아닌가. 극심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던 6.25 당시 1,800명에 달하는 대전형무소 재소자 학살(미 대사관 문서, 책 40쪽)이나 최소 5만 혹은 10만에 달한다는 보도연맹 학살 등은 조금이라도 다른 것이 들어있는 것을 용납치 않았던 폐쇄적인 조선인의 모습 그대로다.

2008년 현재는 좀 다른 피가 섞이게 됐을까? 하필이면 불교인 수십만 명이 들고일어섰을 때 대대적인 공안사건이 터지면서, 공안검사(이른바 정치검사)라든가 공안정치인이 자기들의 세를 확보하려는 욕심으로 신 공안정국을 기획하고, 이명박 정부와 하나라당이 이해관계에 따라 받아들인 모습을 보면서 '배타성'으로 먹고사는 나라의 한심하고 불쌍한 백성이 된 기분이 사뭇 초라하기 그지없다.




▲ 이상의 내용은 <현실문화> 출판사에서 출간된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를 참조했습니다. 보면 볼수록 서양인이 악령인지 조선인이 악령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악령같은 오늘날 우리 자화상의 기원을 보여주고 있어서 책을 놓지 못하겠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40만명이 보게 된 사연---------------------------------

블로그에 가끔 책 이야기를 쓰기는 하지만
포스트가 책과 관련됐다는 사실을 알면 인기가 떨어지더라구요.
예컨대 블로거뉴스에 '책 카테고리'에 뉴스를 송고하면

다른 카테고리에 비해 조회수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 같은 뉴스 사이트, 알라딘이나 예스 같은 인터넷 서점 블로그 외에는 책 관련 글을 잘 안 올리게 됩니다.









네티즌들이 좋아하는 글은 실생활 관련된 이야기나 시사, 외신 번역 기사 같은 거죠. 특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는 광적인 흥미를 보였습니다. (예 "한국VS쿠바 야구를 본 네티즌들의 반응" 조회수 10만 이상)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정직하게 책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책에다가 생활이나 시사, 외신 같은 것을 덧붙이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책으로 세상보기'라는 코너인데,
책의 내용 중 세상과 통하는 부분을 추려서 생각을 덧붙여 쓰는
일종의 퓨전리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전파는 전쟁파를 이길 수 없을가?

위 글은 <촌놈들의 제국주의>(우석훈)의 책 내용에 인터뷰 내용, 제 생각 등을 덧붙여 쓴 글인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약 8천명 정도면 적지 않은 숫자죠.

그런데 이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숫자가 나왔습니다. 40만명!

'서양'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현실문화)라는 책에 나온 사진 한 장이 문제였습니다. 이 글을 본 지인들은 대체로 '낚시글'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만, 요즘 외교의 상황이 쇄국정책의 상황과 맞닿아 있어서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책의 내용과 무관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여름 강화 광성보에 갔다가 찍은 처참한 사진을 덧붙여 나름대로 성의 있게 썼는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는데, 이번 건은 블로그가 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방향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시험이 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현실문화>에 의하면 특별히 홍보를 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게 블로그 파워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인 셈이죠.

첫 출발은 좋습니다.

8월20일 알라딘 세일포인트가 1,180이었는데,
8월21일 하루만에 500이 올라 1,680이 됐습니다.

<< 펼친 부분 접기 <<

 


<8월 20일 알라딘 세일포인트 : 1,180>



 <8월 21일 알라딘 세일포인트 : 1,680>



책이 팔려서 제게 득될 것은 하나도 없지만,
좋은 책을 퍼뜨렸다는 자긍심은 제게 소중한 가치입니다.
만약 책을 읽고 후회를 한다거나 돈이 아깝다는 반응이 나온다면
저는 그야말로 역적이 되는 것이니만큼 책을 엄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값이 32,000원이나 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실험은 계속될 것이니 즐겁게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생 소베가 1806년에 그린 한국 남녀의 모습입니다.
무슨 멕시코 원주민 같죠?
출판사에 의하면 조선에 왔던 프랑스인들이 바라본 조선인의 이미지를 프랑스의 화가가 전해듣고,
상상해서 그린 게 맞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쟈수도 있고 복장도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인이 해석한 최초의 한국인 이미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이 가슴을 드러내놓는 것은 주로 하층민에서 볼 수 있는 풍습으로
아들을 낳았을 때 보이는 자신감의 상징일 수도 있고,
신선한 젖을 물려주려는 모성과 실용의 관점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서양인이 자의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녹색 부분은 출판사에서 밝혀온 부분과 댓글에서 교정된 부분을 반영한 것입니다.)





---------------------- 최초로 한국인을 그린 사람은?------------------------





15세기 이래로 식민지를 개척하던 '대항해 시대', '지리상의 발견의 시대'를 거치면서 동양은 서양에 의해 규정되었습니다. 인문학자 사카이 나오키에 따르면, 근대적 동양은 서양의 침략을 받고 패배하고 착취되었을 때 탄생했습니다. 서양의 침입과 착취로 인해 근대에 들어서게 되었으니 불행한 출발이었던 셈이죠.

조선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서 서양의 접근이 늦었던 나라였는데, 우리는 그것이 조선인들의 완강한 저항과 불굴의 의지 때문이라고 선전을 하지만, 서양인의 눈에서 볼 때 조선은 그다지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그려진 '지팡구'(일본)처럼 황금이 지천으로 널린 황홀한 나라가 아니었죠.

한중일은 개방에 대해서는 아주 철저하게 봉쇄정책을 고수했다고 하는데, 다만 '일본'의 경우 유일하게 교류하던 네덜란드에게 당시 서양의 선진화된 문물과 '난학'(蘭學)을 받아들여 중국과 조선보다 더 근대적인 모양을 갖춰갈 수 있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치면서 더욱 완고해지고 결국 처참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얼마 간은 봉쇄정책이 통하겠지만, 물이 엄청 불어난 둑을 막고 있었던 것처럼 한번 터지니까 거칠것없이 쓰나미가 불어닥쳤죠.





인천 강화에 있는 광성보 흔적입니다. 1871년 6월 11일 신미양요 기간 동안 미군과 조선군의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는데, 결과는 조선인의 참패였습니다. 위는 해안을 점령한 미군이 찍은 사진입니다. 정말 처참하군요.

※ 붉은 색 부분은 최초에는 '섬멸'이라고 썼다가, 한 네티즌 님(자구에 신경을..)의 지적을 받아 '참패'로 수정하였습니다. 적절치 않은 용어를 쓴 점 사과드립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옛날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청나라와 명나라의 자리를 미국이 대신할 뿐이죠.
미국만 철썩같이 믿고 있는데, 이번 그루지야-러시아 전쟁 사태를 보더라도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밑천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기력한 미국·유럽…러 외교·경제 압박수단 없어(경향, 8월12일)
그루지야-러시아 전쟁 최후 승자는 푸틴·사르코지(경향, 8월13일)


다변화된 외교전략을 수립할 때인데, 막힌 봇물을 손가락으로 막고 있는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외교는 예부터 한번도 위태롭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지금처럼 무방비였던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 이상의 내용은 <현실문화> 출판사에서 출간된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를 참조했습니다.쪽수가 상당히 부담되긴 하지만(808쪽), 동서양의 자료와 그림, 사진 등을 총망라해 당시 조선의 상황을 매우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눈이 즐거운 책인 것 같습니다.





※ 최초로 한국인을 그린 사람은 누구인가?  - 폴 루벤스(미술사 최초) VS 생 소베(역사 최초)

최초의 그림과 관련해 플랑드르의 화가 폴 루벤스의 그림이 최초의 한국인(제목 : '한복 입은 남자'(Korean Ma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 참조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10&eid=Ao7WXJaG0zztrlA8534mysCKUivyRZEO&pid=f6rL7woi5UCsssZJBPZsss--048761&sid=SKrNLwCMqkgAAAE7WQo

하지만 '최초'와 관련해서 세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1. 루벤스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일종의 개인적 스케치이거나 오브제로 보고 있기 때문에 대표성 논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그림을 역사적으로 판단할 것이냐, 미술사적으로 판단할 것이냐에 따라서 '최초의 주인공'은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2. 이 그림이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당시 서양인들이 상상했던 집단적인 이미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한국인을 그렸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해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 그림이 '최초'라는 대표성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3. 출판사는 '최초'라는 부분을 표현함에 있어서 오해의 여지를 남긴 점에 대한 네티즌들의 따끔한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며, 재판을 낼 때 그 부분을 반영해서 수정하겠다고 하였습니다
<< 펼친 부분 접기 <<

 

※ 최초로 한국인을 그린 사람은 누구인가?  - 폴 루벤스(미술사 최초) VS 생 소베(역사 최초)

최초의 그림과 관련해 플랑드르의 화가 폴 루벤스의 그림이 최초의 한국인(제목 : '한복 입은 남자'(Korean Ma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 참조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10&eid=Ao7WXJaG0zztrlA8534mysCKUivyRZEO&pid=f6rL7woi5UCsssZJBPZsss--048761&sid=SKrNLwCMqkgAAAE7WQo

하지만 '최초'와 관련해서 세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1. 루벤스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일종의 개인적 스케치이거나 오브제로 보고 있기 때문에 대표성 논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그림을 역사적으로 판단할 것이냐, 미술사적으로 판단할 것이냐에 따라서 '최초의 주인공'은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2. 이 그림이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당시 서양인들이 상상했던 집단적인 이미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한국인을 그렸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해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 그림이 '최초'라는 대표성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3. 출판사는 '최초'라는 부분을 표현함에 있어서 오해의 여지를 남긴 점에 대한 네티즌들의 따끔한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며, 재판을 낼 때 그 부분을 반영해서 수정하겠다고 하였습니다
<< 펼친 부분 접기 <<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08-08-2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의 그림 몇 개가 안보이네요. 그나저나 40만이나 보고 가고 실제로 책을 사간 사람들도 많다니 훌륭한 홍보 효과를 보게 되었군요. 대단합니다!

승주나무 2008-08-21 14:23   좋아요 0 | URL
어.. 감은빛 님~~ 저는 잘 보이는데요..
어느 부분인지 말씀해주시면 고칠게요^^
암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이드 2008-08-2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지막 책이미지 빼고 다 엑박이라능;;

승주나무 2008-08-21 16:32   좋아요 0 | URL
그림 다시 넣었습니다. ㅎㅎ

감은빛 2008-08-24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잘 보이네요 ^^
 


▲ <촌놈들의 제국주의>(개마고원)의 저자 우석훈 박사


반전파는 전쟁파를 이길 수 없을가?

역사의 과정은 한마디로 '전쟁파'와 '반전파'의 싸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야누스 신전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다고 한다. 로마 사람들은 그 문을 전쟁의 문이라고 부르는데, 전쟁시에는 열어두고 평화시에는 닫아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이 닫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로마 제국이 강대해지고 점점 커지면서, 이웃의 민족들과 적들이 끊임없는 도전을 해왔기 때문에 평화로운 때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를 정복한 다음에 단 한번 성문이 닫혔을 뿐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1권) 현대전에는 '비지니스'라는 개념이 하나 더 추가된다. 그것이 전쟁경제학이다. 우석훈 박사가 소개한 미국의 '전쟁 정의'에 의하면 어디서든 참전한 상황이 전쟁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미국은 1945년 이래로 계속 전쟁중이며, 한국 역시 이라크 전쟁 이후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통한 비용과 수익의 흐름을 보면, 전쟁파들이 전쟁을 일으키며 '단기 이익'을 챙기면, 전쟁의 피해자들과 반전파들이 매우 오랜 시간동안 비용을 내는 방식으로 흘러왔다. 결국 전쟁파든 반전파든 궁극적으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지만, 자기 영토 안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전쟁파에게 불리할 게 없다. 현재 지구상에서 자기 영토 안에서 전쟁을 하지 않고 용병을 써서 전선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우석훈 박사는 평화경제학을 일종의 주식투자 개념으로 풀어서 설명했다. 예컨대 전쟁을 해서 주가가 폭락하는 기업과 반대로 주가가 폭등하는 기업이 있다면, 어느 상황에 처한 기업이 많으냐에 따라서 전쟁의 운명이 결정난다는 거다. 예컨대 전쟁 피해주들이 많다면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 할 거라는 거다. <촌놈들의 제국주의>(개마고원)은 사실 평화경제학과 전쟁, 제국주의를 언급하고 있지만,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모든 개념을 설명한 책이다. 평화의 달콤함을 한번 맛본 자는 그것을 잊지 않는다. 이것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강력한 이유이다.
6회째 맞는 리더스가이드의 저자간담회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일반독자 2명이 우석훈 씨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방청객들의 질문을 받는 방식이다. 공동진행단은 행사 전에 3회 이상의 사전조율과 '작전회의', 출판사와의 조율을 마쳤으며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이제까지 간담회를 빼놓지 않고 참여했던 한 출판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했던 간담회 중에 가장 흥미로웠다"고 평가했다. 8월 14일 저녁 7시 영풍문고 갤러리에는 40명이 넘는 방청객들이 찾아 평화에 대한 열망과 우석훈 씨에 대한 호감을 보여주었다. 특히 우석훈 씨의 팬클럽이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액션대로망' 카페 회원들이 많이 찾아주었다. 2시간으로 예정된 간담회는 열띤 질문과 토론으로 30분 정도 늘어났고, 간담회 이후 뒤풀이에서 남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 한중일의 전쟁위기 어디까지 왔나, ▲ 대안으로서의 에라스무스 모델, ▲ 10대들에게 희망을 읽다, ▲ 아직 못 다한 이야기이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 이번 작가와의 만남은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우석훈 씨의 책을 좋아하는 일반독자 2명이 질문지를 만들어 공동진행하는 방식으로 꾸몄다. 질문의 수준과 독자들의 흥미를 고르게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왼쪽은 기자, 가운데는 리더스가이드(알라딘) 리뷰어 제이드, 오른쪽은 우석훈 씨


한중일의 전쟁위기 어디까지 왔나

"딴지일보에서 우석훈 경제학을 ‘호러경제학’이라는 표현할 정도로 경제대안시리즈에서는 대안보다 처절한 현실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신문만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데 그 현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 까닭은 무엇인가요? 희망을 불어넣기 전의 단계리고 봐야 하나요?"

- 책을 주로 새벽에 써서 그런 거 아닌가 싶구요.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를 읽었던 게 중학생 시절이었는데 그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88만원 세대는 원래 처음 버전은 되게 슬픈 이야기잖아요. 20대의 사회부적응자에 대한 사례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눈물이 너무 많이 나요. 제가 명랑제왕이라서 눈물 짜는 것들은 많이 뺐거든요. 궁상맞다고 뺐는데 슬픈 것을 뺐더니 공포만 남았어요. 희노애락을 다 넣고 싶은데 슬픈 것은 빠지고 즐거운 것은 충분치 않고 공포만 남은 셈이죠. 어떻게 보면 한국이 이미지를 벗기고 나면 사실 지옥이거든요.


"우석훈 박사의 메일 계정의 뜻이 ‘메도우 여사에게 영광을’이라는 뜻인데,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읽으니 왜 그렇게 제목을 붙인 지 알 것 같습니다. 여성 경제학자, 특히 메도우 여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소개해 주시죠."

- 저도 여성경제학자라고 해서 좋아했던 건 아닌데, 5년 전쯤에 제 이론을 구성하는 경제학자를 찾아보다가 공교 롭게도 3명이 모두 여성이더라구요. 좌파로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있었고, 우파는 조안 로빈슨이 있었고, 로마 클럽의 집필자였던 메도우 여사가 있었어요. 하고 보니까 세 명 다 여성학자, 세 명 다 전쟁을 반대했던 사람이었죠. 케인즈도 그렇고 남자 경제학자들은 이론을 전개하다 보면 전쟁을 그렇게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전쟁도 좀 하고 그러는 거지 이런 식이죠. 맑스가 전쟁을 반대했겠느냐 의문입니다. 전쟁을 안 하면서 경제학을 구성하는 사람을 보니 여성 경제학자만 남은 거죠.
메도우 20대에는 엔지니어였습니다. MIT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자원과 인류의 미래를 시뮬레이션을 했죠. 40대 중반에 귀농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쓰고 자기 연구를 계속 했는데, 그렇게 살면 굉장히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타깝게 장수는 못했고 60세 좀 넘어서 급사를 했습니다. 그게 2002년. 연구를 했을 때 맨 마지막 파일에 2030년에 전쟁이 일반화될 것이다 돼 있던 건데, 갑자기 급사해서 뒤에 어떻게 하면 좋을 거를 남기지 않아서 안타깝게 됐습니다.


"반전과 평화를 지향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오드리 햅번을 많이 좋아하는데요. 오드리 햅번이 어떻게 해서 삶의 평화를 찾았나를 좇다 보면 햅번이 결혼을 실패하고 그럴 때는 행복하지 않았는데, 육아를 하면서 행복을 느꼈다고 해요. 미국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으니까 이탈리아로 갔죠. 이태리로 가니까 기자도 많이 따라다니고 이태리 사람들도 많이 괴롭히니까 스위스의 제네바로 가서 비로소 삶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그가 왜 거기 갔는지 추적하다 보니까 일단 조용할 것, 그리고 전쟁이 없야 한다는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없다는 것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하니까, 저도 만약에 제가 아무 상관 없이 전 세계 어디든 고른다고 친다면 맨 처음 고르는 데는 전쟁이 없는 곳을 찾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전쟁이 없는 곳으로 간다는 게 바보같은 것이고, 내가 사는 곳을 전쟁이 없게 만드는 것이 궁극의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3권은 한중일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베이징 올림픽 이야기를 좀 해보죠. 한국팀이 경기할 때 중국응원단이 야유를 보내고, 또 중국팀이 저조한 플레이를 할 때 한국팀 응원단이 환호를 하는 등 일반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반발감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쓰촨성 지진이라든지 친미 일변도의 대외정책에 이어지는 현상이지만, 권부와 언론 외에 대중의 차원에서까지 반한감정이 일반화되는 것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석훈 씨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 전형적인 촌놈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정신분석학 용어를 하면 자기정체성을 어떻게 찾아낼 것이냐 하는 개념을 무아포(moi-peau, 피부적 자아)로 설명하는데요. 자기가 생각하면 피부의 안쪽은 나고 피부의 바깥쪽은 내가 아니라는 심리현상이 있는데, 자기 피부가 정신적인 게 돼 있는 것 같아요. 나라는 피부를 못 만드는 사람들이 다른 데서 피부를 빌려오는 것, 회사가 자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피부를 자체적으로 못 만들어서 회사의 피부를 빌려오는 거고, 가장 또라이들이 국가라는 피부를 빌려오는 거거든요. 국가가 곧 나다 라고 생각하는 거지만, 어떻게 보면 정신지체아, 자기가 누구라는 자기정체성과 정신적인 피부를 못 만드는데.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따라보면 형편 무인지경에 있는 거고,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프랑스, 영국, 스웨덴 같은 데 보면 전쟁을 덜 하고 사회가 좀 안정된 곳에서는 개인이 다 피부를 만들어요. 미국도 어떻게 보면 넓은 나라라서 개인을 피부로 못 만드니 국회를 피부로 쓰는 셈이죠. 모자란 나라들이 싸우니까 오죽하겠냐라는 건데, 그 중에서 일본은 상당부분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서 자기 피부를 만든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다 극우파 같지만 안 그런 사람들도 많죠.

중국 한국은 피부가 없는 사람들이 모인 거고, 이 둘이 붙었으니 볼 만한게 아닌가 싶어요.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피부를 자기가 가져서 나의 취향은 이거고 이게 나라는 건데, 그런 게 없으니까 국회를 빌리고 국가를 빌리고. 다른 가정이나 동네나 이를테면 스위스 같은 경우는 지역을 만든 사람이 많거든요. 국가를 자기 피부로 가진 사람이 많았을 때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촌놈>은 이대로 가면 30년 안에 동북아 삼국 사이에 전쟁이 필연코 발생하므로 평화체제를 지금부터라도 구축해야 한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은 책인데 동북아 삼국 간에 전쟁이 날 수 있다는 얘기는 말하자면 일종의 묵시록적 경고(비유적 표현)인가요, 아니면 과학적 전망에서 나온 저자의 확신인가요? 독자들은 묵시록적 경고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30년을 길게 잡은 것은 2040~50년에는 메도우의 전망에 의하면 전세계의 자원이 어쩔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오거든요. 공급이 줄어서는 아니고, 중국을 포함한 제3세계 국가들의 자원수요가 증가해서 공급이 감당할 수 없어서에요. 전체적으로 희송성 시대가 온다는 데 50년을 물질적으로 본다는 거고, 그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황포하게 전쟁이 벌어지죠. 물 같은 것은 더 빨라서 국지전이 일반화되는 시대가 2030년이라고 보는데, 저는 그것보다 훨씬 더 빨리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얼마나 빨리 올지 몰라서 넉넉잡아 30년을 잡은 거지 저는 10년 안에 생길 거라고 봅니다.

전쟁에 대한 정의가 우리는 국토 내에서 벌어지는 것을 전쟁이라고 생각하는데,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전쟁이라는 정의는 어디서든가 참전입니다. 그래서 1945년 이래로 계속 전쟁중이죠. 늘 교전중이었는데 한국도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라크 전쟁 이후로 계속 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죠.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데, 중국, 일본, 한국이 늘 같은 편에서 싸우리라는 보장이 없거든요.

지금 중국, 한국, 일본사람들이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 ‘붙을려면 붙어보자’는 식인 것 같아요. 이것을 제어하자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 독도문제가 퍼진 것도 일본의 사회당, 공산당이 그런 사람인데. 워낙 몰리다 보니까 포퓰리즘으로 가게 됐습니다. 한국도 전쟁을 반대하자는 세력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보면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세 나라에 전쟁을 말자는 세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게 우려됩니다.


동북아 주변의 안보 비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평화보다 긴장의 수위가 높아지기 때문인데요. 경제학자로서 한일, 한중, 남북 관계의 어떠한 점에서 그러한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 크게 보면 정권이 냉전이 30년 정도 지속되다가, 냉전이 없는 시대가 10년 정도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신냉전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면 북한과 남한의 국경이 작은 것인데, 이게 중국, 러시아, 일본으로 커진다고 한다면 안보비용은 더 늘어나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통일을 할 거고 어떤식의 지역체계를 만들 것이냐와 상관없이 안보비용은 늘기 마련인데, 어떤 장치를 만드느냐에 따라서 안보비용이 더 늘거라 이거죠. 우리가 생각하기에 통일이 되면 국방비용이 준 대신 복지비용이 늘 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이 상태로 가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중국, 러시아이랑 우리가 싸우든 국경을 지킨다고 생각하면 아찔한 거거든요. 그런데 스위스나 스웨덴, 벨기에 생각해볼 때 그 사람들이 국경에 돈을 써야 한다면 엄청 써야 되는데, 국경에 사실 별 거 없거든요. 경찰인데 주로 마약 단속을 위주로 가는데, 지금 우리나라 하는 꼴을 보면 진짜 총을 들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평화보다는 외교, 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싼데, 한국은 말로 하기보다는 힘으로 보여주자는 거죠. 지금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4~5년 이후에 진짜 돈이 많이 들 거라는 거죠.


재작년이었던가요? 신문에서 아주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국청소년개발원이 중국의 청소년정치학원 청소년정책연구소, 일본의 쇼케이대학원대와 공동으로 3∼6월 한중일의 중고교 2학년생과 대학생 등 29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쟁이 나면 참가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일본(41.1%)이 중국(14.4%)이나 한국(10.2%)에 비해 훨씬 높았다는 건데

이렇게 한중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전쟁설문조사’를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사에서 굵직하게 다뤘습니다. 보도의 내용도 충격이었지만, 2006년 8월 13일~14일을 전후해 언론보도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 독일국민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이었는데, 경제위기가 생기면서 전쟁국면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히틀러도 점잖은 사람들이고 독일인도 문화인들이어서 프랑스도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지 않았죠. 독일이 침공할 줄 알았으면 프랑스도 준비를 했을 텐데, 1~2년 사이에 사태가 돌변한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평소에 얌전하다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와 전혀 상관 없이 경제위기가 심각하게 오면 1~2년만에 바뀌게 되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전쟁이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하고, 내가 가지 말고 용병을 시키고, 그렇게 하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은 미국뿐입니다.
러시아와 그루지아 전쟁도 한달 전만 해도 몰랐죠. 조건이 생겨서 전쟁이 들어가는 데 한달도 안 걸렸습니다. 뭔가 터지면 한달만에 갈 수 있는 건데, 한국은 보니까 일주일 만에 갈 놈들이 눈에 보인다는 거죠. 평상시에 만드는 장치라는 것을 지금 얘기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습니다.



▲ 촌놈들의 제국주의, 우석훈, 개마고원, 278쪽, 12,000원



대안으로서의 에라스무스 모델

선생님은 한중일 평화 인프라로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제안했는데 대안으로서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꺼내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에라스무스 교육 프로그램이 처음 도입될 때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몇 천 명 수준에서 시작했죠. 스위스도 다른 것은 참여 안 했지만, 에라스무스 모델은 그것만은 참여했어요. 지금 유럽은 전체 평균으로 10% 대학생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대성공을 거둔 거죠. 전체 대학생의 10%가 짧게는 한두달에서 6개월~ 길게는 1년. 성공하게 된 계기가 취직이 잘 된 거예요. 기업체 입장에서 볼 때는 바보처럼 한 나라에 있었던 사람보다는 여러 나라를 갔다 온 사람을 뽑은 건데 한국 같은 경우는 그것을 개인 비용으로 하잖아요. 그것을 정부가 돈을 냅니다. 비용이 클 것 같지만, 국방비, 도로 만드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갔다 와 보니까 효과가 좋았고 취직이 잘 되더라는 거죠. 용돈도 넉넉히 있어서 월 200만원씩 챙겨주면서, 국가의 명예를 걸고 빈민처럼 지내지 마라, 이러니까 오히려 딴 나라에 있을 때 돈이 넉넉하고 품위있게 생활하게 되는 겁니다. 최근에 정치학 하는 사람들의 평가를 보니까 에라스무스 세대라고 하더군요. 다른 나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넓게 보는 사람이 어른이 되면 진짜 평화가 올 거라고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대학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1,000만원 시대라고 표현될 만큼 엄청난 등록금인데, 이 상황에서 에라스무스 모델을 찾는다는 게 가능한지 회의적인 대학생들이 많습니다.

- 일본도 사실 부자국가고 한국도 부자국가고. 물론 중국 전체가 오면 부담스럽겠죠. 1만명 정도 온다고 하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입니다. 6개월에서 1년 정도라고 생각하고, 상식적인 선에서 200만원~100만원 하자 하면. 시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한중일이 같이 만드는 것이라면. 국회의원 20명 정도씩 협의해서 시범사업 하면 된다고 봅니다. 성과가 나면 점점 늘려가면 되죠. 조금 더 확장시키면 그게 외교지. 탱크 사고 비행기 살 돈 보다 그게 훨씬 쌀 거 아니에요. F18 한 대 살 돈 가지고 한다면, 비행기 한 대 값으로 학생 몇 천명을 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 한 대가 지켜주는 것보다는 이것이 더 많이 지켜주지 않겠어요. 그리고 이것이 더 좋은 것은 다음 세대에 대한 투자도 되기 때문이죠. 놀겠다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하겠다는데. 성공사례가 이미 있는 거기 때문에 노하우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0대들에게 희망을 읽다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는 10대에서 88만원 세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젊은층을 대상으로 집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 두 가지를 나눌 수 있는데, 평화에 대한 것 하나. 진짜 문제가 될 때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이 10대라고 생각해요. 만으로 40살인데 30년 후에 70대입니다. 그때는 전쟁을 하지 말자고 해도 잘 먹히지 않을 거 아니에요. 영감이 뭘 알겠어 이러겠죠. 10대들한테 몇 명에게라도 얘기하겠다는 것이 1차적인 목표입니다. 다른 하나는 10대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던 점입니다. 처음에는 안 통하더라도 자꾸 얘기하다 보니 어떻게 얘기하면 되는지 알게 될 거 아닌가 싶어요.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대학생들이 읽는 것만큼 10대도 많이 읽더라는 겁니다. 스폰지처럼 막 흡수하는 나이입니다. 20살 넘으면 도저히 어려워서 못 읽는 것도 10대때는 다 읽었습니다. 잡는데까지가 어렵지 잡으면은 노력을 할 거라는 가냘픈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10대와 채팅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나요?

- 10대는 마음을 잘 안 열더군요. 점잖게 얘기하면 자연스럽게 듣는데, 뒤에 가서 ‘저 꼰대’ 이러는 것이 100%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성공한 것은 담배필 때는 진짜 얘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머지는 접대용 멘트. 그것을 대화로 넘어서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마음을 열게 하는 첫 번째 계기가 너무 쉽지 않죠. 선생님은 학생과 터놓고 대화를 했다고 하는데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절대로 얘기를 안 했다고 반론합니다. '저 사람(선생님) 아무것도 몰라요' 이런 식이죠. 그러나 책이나 편지 같은 데서는 마음을 열기도 했습니다. 대화할 수 있다는 첫 번째 벽을 여는 게 되게 어려웠스니다. 권위가 통할 것 같은데 잘 안 통하고 그래서 제가 해본 전략은 웃기거나 웃어주거나 지거나, 권위를 버려야 좀 봐줄까 해요.

88만원세대도 그렇지만 블로그 활동 등 ‘소통’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10대와 소통하는 데 대해서 어려운 점은 어떤 점이었습니까? 아울러 이명박 정부가 소통을 강조하는 선생님의 소통과 이명박의 소통이 같은 건가요?

- 소통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양방향이고 얘기를 하면서도 본인도 바뀌도 들으면서도 바뀌고, 단어와 대화 말고 상당히 많은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과정이거든요. 서로 이질점이 존재하는데, 공통적인 뭔가를 만드는 작업이거든요. 이명박 정부에서 말하는 소통은 PR이라는 거고, UN 용어로 하면 public awareness라는 게 대중들한테 그것을 알린다는 겁니다. 듣는 것은 생략돼 있다는 것은 소통이라기보다는 여론조작 같은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제가 가까운 거리에서 볼 때는 국민과의 소통이 문제가 아니고 내부에서 소통이 안 되고 있다는 게 큰 문제거든요. 자기들끼리 얘기가 안 된 상황에서 따로따로 얘기를 하니까. 그 이유가 제가 생각을 해 볼 때는 대운하가 제일 큰 것 같아요. 우파 내에서도 인재풀이 굉장히 많거든요. 좌파는 사람이 없고 우파는 사람이 많은데. 이명박 정부에서 말하는 자기네 편은 대운하를 찬성하고 그리고 똑똑한 걸 얘기하거든요. 그런데 똑똑하면서 대운하를 찬성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상식적으로 그렇고. 지금 경제정책이 이상해진 게. 경제학과 행정을 잘 하고 대운하를 적극 찬성하는 사람이 강만수 외엔 없거든요. 그래서 강만수를 못 바꾸는 거죠. 2만불 넘어가면 지시가 잘 안 먹히거든요. 대화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좀 인간적이어야 하는데 그런 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미래세대를 위해 구성된 책이니만큼 미래에 중요하게 다가올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평화라는 키워드 말고 다른 키워드 중에 주목하시는 키워드라든지 실제로 집필 중인 게 있는지.

- 저는 미래세대라는 용어 자체가 생태경제학 키워드거든요. 생태가 왜 중요하냐면 부모세대가 다 쓰면 홀랑 다 쓰고 나면 어쩔 거냐. 좀 오래된 말을 하면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쓰게 해야 할 것 아니냐. 거기서부터 시작을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10대한테 투자하는 그런 건데 이 사회가 과잉 투자를 하고 잘못된 투자를 하는 게 아니냐. 사람 사는 게 똑같은 거 같은데,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많이 배울 수 있게 해주고, 그러다 보면 많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기본 원칙이거든요. 부모들이 뭘 생각하냐면, 놀면 얘네들이 깡패가 된다고 생각을 한 거거든요. 놀면서도 깡패가 되지 않는 사례를 만들면 되거든요. 얘네들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있다면, 중학교 1~2학년 때 사회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영화를 2~300편 만들 수 있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이면 학교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서 영화를 두세 편 정도 찍어보고 졸업을 할 수 있게 해주자.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라면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되면 유화 그림을 4~50개는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게 사회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긴 인성과 그렇게 생긴 경험이 우리를 잘 살게 해주는 거지, 대치동 학원 프로그램이 우리를 잘 살게 해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그림은 이런 겁니다. 부자들이 아니라 좀 가난하더라도 할 수 있는 장치를 사회가 좀 해주면 사실 다른 대안은 별로 필요 없거든요.


아직 못 다한 이야기

월간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무척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독자들이 들었으면 하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렇게 다작을 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제가 원래 스무살 때 저랑 한 약속이 '40살 되면 그냥 놀아야지'였습니다. 2~30대가 저도 괴로운 시기였었어요. 잠을 잘 못 자고 늘 과로상태, 그때가 마흔 되면 신나게 놀아야지 하는 일념으로 살았기 때문에 빨리 빨리 끝내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우리나이로 작년에 40이 됐거든요. 올해가 되니까 만 마흔이 된 거죠. 그러면 내년 초에는 뭐라고 내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지 고민입니다.
요즘 제가 종합일간지 비슷한 게 있어가지고.. 제가 칼럼도 거의 다 줄였다가 요즘 프레시안만 쓰고 있다가, 칼럼 되게 많았는데 다 없앴어요. 한겨레 3주짜리 1개, 경인일보 4주짜리 2개만 가지고 있는데 눈물나는 사연이 너무 많아서 종합민원실이 됐거든요. 칼럼을 요즘 다시 매주 쓰는 걸로 바꿨거든요. 책도 약간 민원실 비슷해요. 계속 그럴 순 없고 좀 하다 말 거에요.

한국 경제대안 시리즈가 4부 출간을 앞두고 있는데 4권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해주세요.

- 2권이 워낙 안 팔려서 2권 전면 개정판하고 같이 가면서 9월 초순으로 미뤄진 것으로 알고 있구요. 4권이 약간 어려운데, 상당히 재밌어요. 사실 1~3권이 수학식이 많이 들어갔는데 많이 뺐거든요. 4권에는 수학식을 많이 담지는 않았지만 어떤 이론이라는 것인지 정리를 좀 했거든요. 그래서 경제학 입문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한국 경제론에 대한 또다른 접근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구요. 이명박이 뭐가 문제인지 볼 수도 있습니다. 13개의 강의 형태로 돼 있어요. 강의록 형태구요.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생각해서 1학기 강의를 디자인을 한 거거든요. 하다 보니까요 보통 대학에서 20학점씩 주는데, 1강좌에 100만원이거든요. 강의가 100만원짜리인데 책 한 권이 1만5천원이면 꽤 싼 거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소설에 대한 애착으로 보면 안 돼요. 강의로 보면 좀 복잡하지만 재밌을 거에요. 3권보다는 어려울 것 같고, 좀 복잡한 그림들이 나오거든요. 부제가 적분항 모양으로 돼 있거든요.

혹시 이 책에 꼭 넣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하지 못한 말씀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 이 책을 처음 생각한 것은 2004년이거든요. 생활경제학을 것을 하면서 한국경제학에 대한 시뮬레이션 모델을 가지고, 전쟁이 날 것에 대한 수 모델, 예측 모델을 만들려고 했어요. 한중일 경제에 대한 6,000개의 방정식(각각 2,000개)으로 데이터 집어넣으면 몇 년쯤 후에 전쟁이 난다는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알고리즘은 뻔하지만 혼자 하기에는 벅차거든요. 기회가 되면 평화경제학에 대한 실증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못 집어넣은 게 좀 아쉽고요. 두 번째는 국방경제학에서 평화경제학으로 경제학 이론이 바뀐 것에 대한 설명을 좀 하고 싶었는데요. 2권때 앞에 조직론에 대한 정리를 했었거든요. 악명높은 게 돼서 되게 안 팔렸는데, 다음에 하지 하면서 뺐거든요. 지금 생각해봐도 평화경제학을 저 말고 공부할 사람이 당분간 없을 것 같은데. 국방경제학 끝에 있던 거랑 평화로 넘어갈 때 이론적 얘기들 하고 몇 개 프레임에 관한 얘기를 정리하고 싶고 그것을 못 넣게 된 게 아쉽고요. 남신의 전쟁에 대한 민감도와 여성의 전쟁에 대한 민감도를 넣고 싶었는데 입증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성별 평형 같은 얘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작업이 부족해서 뺀 거거든요. 세대간에 대해서는 데이터를 좀 정리를 해본건데. 젠더에 관한 문제를 못해본 게 좀 아쉽습니다.




▲ 독자와의 만남을 끝내고 우석훈 팬클럽 액션대로망과 리더스가이드 회원들이 우석훈 씨와 기념촬영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