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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라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 영화를 보라고? 아예 명령이다.
책 목차를 쭉 보니 다행히 안 본 영화는 없군.(아! 이 소심함 ㅠ.ㅠ)
늘 명쾌하고 직설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고미숙씨가 영화에 대해서 말한다?
조금은 의외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인문학자의 영화 얘기라 좀 골치아프겠군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의외로 책은 참 잘 읽힌다.
그렇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만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솜씨가 역시 고미숙씨 하는 감탄을 나오게 한다.
어쩌면 영화에 관한 얘기라기 보다는 6편의 한국영화가 보여주는 오늘의 한국 현실, 그리고 대안적 삶에 대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녀의 말들은 충분히 경청할만하다.
오늘의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 <괴물>
영화 <괴물>에서 저자가 보는건 위생권력의 탄생과 지배력이다.
위생권력이 강두를 노란 침낭에 둘둘 말아 질질 끌고 가는 장면에서 저자는
"어떤 독재권력도 대중을 이 따위로 '허접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오직 위생권력만이 할 수 있는 짓이다. 왜? 모든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건 의학의 힘이고, 그 힘은 '전문가나 국가기관만이 독점할 수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31쪽)
아! 근대 이후의 권력은 얼마나 치밀한가?
그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지배하는 이 힘은....
자본의 권력은 비단 정치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님을, 그것은 우리의 일상과 의식의 모든 부분을 관통하고 있음을 저자는 <괴물>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괴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러하듯이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영화 <황산벌>을 통해 민족과 역사의 엄숙주의를 걷어내고 사투리를 질펀하게 쏟아내면서 좌충우돌하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온갖 엄숙한 개념과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해체되어버리는 곳에 어쩌면 진짜 인간의 삶이 있을지도....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이듯 가족 역시 근대국민국가의 산물이란다.
<밀양>의 신애는 끝도없이 추락하면서도 그 상상의 가족, 화목한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이 만든 상상의 스위트홈을 위해 행복은 오직 가족이라는 배치속에서 가능하다고 믿으며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을 여전히 붙들어매려 하는 안간힘은 가족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견고한가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한국인의 이미지로 고착화되어 버린 '한"의 정서는 서편제에서 또 얼마나 절절하게 노래되어졌던가....
이런 현재의 한국사회의 각종 권력과 이데올로기들의 지형은 <라디오스타>에서 새로운 모습을 준비한다.
서울-중앙이 아닌 지극히 변두리인 영월에서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내는 삶들의 이야기.
권력의 축에서 이탈해나가는 그럼으로써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만들어내는 이들.
솔직히 라디오스타를 이런 식으로 읽어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나오는 책들이 끊임없이 얘기하는 유목민적 삶의 가능성을 <라디오스타>에서 발견할 줄은.....
자본과 온갖 권력에 의해 경계지어진 삶의 정형적인 틀에서의 미끄러짐, 새로운 중심을 창조하는 부단한 유목민으로서의 삶 - 이것들이 정말 우리 사회를 바꿀수 있을까?
아니 그런 유목민적 삶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동의되어질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지금의 추락을 끊임없이 계속한다면 자기 삶에서 유리되어진 사람들이 이렇게 끊임없이 늘어난다면 그것이 새로운 삶의 공동체, 새로운 삶을 창출하는 역동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하나의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맘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