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아이
마쓰오카 교코 지음, 오코소 레이코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동안 아이들 수수께끼 타령에 죽는 줄 알았던 나
여기도 딱 그런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는 너랑 수수께끼 놀이하는데 지쳤단다. 정 수수께끼 놀이가 하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찾아보렴"
근데 아이가 만난건 사람이 아니라 늑대라니....
그런데 많은 이야기들속의 늑대가 흔히 그러하듯 이 녀석 역시 좀 멍청하다.
여자아이와 수수께끼 내기를 하지만 늑대가 오히려 본적이 없을 자신의모습을 묘사하니 도통 아무 생각이 안나는 늑대.
그 틈을 타서 여자아이는 잽싸게 도망치고...
나중에 답을 알게 된 늑대가 찾아와 이번엔 늑대가 수수께끼를 내지요.
하지만 수수께끼의 달인인 여자아이를 이길수야 없네요. ^^

이야기는 뭐 특별할 것 없는 구조에 그림도 스케치와 담담한 수채화의 칼라그림이 번갈아 나오면서 단순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잘 들여다보이는 늑대의 표정변화가 꽤 재밌다.
그에 비해 아이와 엄마의 표정은 좀 지나치게 단순한게 아닌가 싶고...
이 책 그림은 늑대의 표정을 살피는게 훨씬 재밌다.
수수께끼를 풀기위해 고뇌하는 늑대.. ^^

초등 1, 2학년정도의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한 딱맞춤형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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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꼭 가야해? 생각의 힘을 키우는 꼬마 시민 학교 3
마띠유 드 로비에 지음, 까뜨린느 프로또 그림, 김태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꼬마시민학교 시리즈 3권
큰 애가 학교들어가기 직전에 도움이 될 듯해서 산 책이었다.
근데 난 솔직히 재미 하나도 없었다.
뻔한 질문과 뻔한 대답이랄까?
거기다 그림도 아주 단순한 만화체 그림에다가...

근데 이상한건 아이들은 이 책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

책의 구성은 가스똥이라는 아이가 부모에게 하는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진다.
아빠 나 학교 안가고 집에 있으면 안되나요?
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울수 있어
엄마 우린 왜 학교에 가는거예요?
학교에서는 우리가 사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것들을 가르쳐준단다.
할머니, 읽고 쓰고 계산할 줄 알면 뭐가 좋아요?
읽고 쓰고 계산할 줄 알면 장난감이 몇개인지, 친구는 몇명인지, 별은 몇개가 떴는지 세어볼 수 있어
아빠 선생님은 나한테 모든걸 가르쳐주나요?
선생님은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잘알고 계셔..

그리고 2편은 우리 아빠야라는 제목인데
아이들에게 아빠란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 준다.
아빠는 아이들한테 어른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주는 존재이며,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걸 알려주기도 한다.
같이 살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아빠는 있으며
아빠의 꿈은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라는 것.

너무나도 단순하고 너무나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답들
어른들에게는 너무 단순해서 뭐 특별한 거 없잖아 싶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궁금해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것들을 대신 표현하고 물어봐주는 책인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책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들어간지 한참이 된 아이는 지금도 때때로 이 책을 꺼내들어 읽곤 한다.
덩달아 둘째도 읽어달라 덤벼들고..
그러면서 가스통이 질문하면 이제는 모두 답을 알아버린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대답을 하며 즐거워한다.

때로는 이렇게 직설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책도 아이들에겐 필요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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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8-11-15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그냥 그런데 애들은 정말 좋아하더라구요.

바람돌이 2008-11-16 22:58   좋아요 0 | URL
그렇죠? 가끔 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과 제가 좋아하는 책이 다를때가 있어요. 이 책도 그런데 다른 시리즈도 사줘야지 하면서 아직 미루고만 있네요.
 
[히틀러의 딸]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히틀러의 딸
재키 프렌치 지음, 공경희 옮김, 기타미 요코 그림 / 북뱅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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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게 딸이 있다고?
그럼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이를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자기 딸만은 무지하게 사랑했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히틀러의 딸이 아버지의 범죄를 보면서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얘기일까?
히틀러의 딸이란 제목 자체가 극적이다.
히틀러 정도 된다면 가족이니 뭐니 이런건 정말 없을 것 같은데 그것도 딸이라니 말이다.

의외로 이야기의 배경은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된다.
학교로 가는 스쿨버스를 기다리며 4명의 아이들은 비가 오거나 해서 뛰어놀지를 못하면 이야기 게임을 한다.
서로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주는 것.
그날도 그랬다.
4명 중의 이야기꾼인 안나가 히틀러의 딸 이야기를 시작한 것도...
히틀러에게 딸이 있었어.
얼굴에는 반점이 있고, 다리도 한쪽이 약간 짧아서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었던 딸  말이야.
그 애 하이디는 시골마을에서 없는 듯이 가정교사 선생님과 살았지.
아주 가끔 아빠를 볼 수 있었고...
그 애는 아빠라고 하지 않고 더피라고 불렀지만...

이야기 속의 히틀러의 딸 하이디는 아버지의 범죄를 알지 못한다.
하이디에겐 그저 늘 보고싶은 아빠일 뿐이다.
다만 주변 상황이 변해가고 주변의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얼핏얼핏 들으면서 뭔가 미묘한 변화에 불안해 할뿐...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하이디는 좀 더 은밀한 곳,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다닌다.
시골의 커다란 집에서 좀 더 작은 그러나 지하실이 있는 집으로 그리고 베를린의 방공호까지...

하지만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히틀러의 딸 하이디가 아니다.
안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문과 공감과 깨달음을 얻어가는 마크가 오히려 주인공이다.
안나의 얘기가 혹시 끊어질까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리는 마크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크의 머릿속은 너무나 복잡해진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히틀러나 폴 포트같은 악한 짓을 했다면 그 자식도 악할까요?"
"히틀러나 폴 포트가 저지른... 대량학살 말이지요. 그들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나요?"
이렇게 마크의 질문은 전쟁을 대하면서 어린아이들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질문들에서 자신의 역사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고조 할아버지는 우리 농장을 어떻게 얻으셨어요?" (오스트레일리아의 백인의 역사는 바로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추방시킨 역사가 아닌가말이다.)
자신의 역사에 대해 "원주민에게 빼앗은 것은 아니겠죠?"라며 지극히 정당한 질문을 던지는 아이.
"하지만 엄마, 모든 사람이 진짜 못된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 독일 국민이 히틀러가 옳다고 생각한 것처럼요!"
"엄마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다면 엄마는 저항했겠어요?"

이런 이런...
아이이기에 누구보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는 마크.
이 질문들에 책속의 어른들은 과연 어떤 대답을 해주었을까?
이 책속에 나오는 어른들은 정말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과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침묵으로 일조하는 어른들말이다.
그들 누구도 마크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못한다.
무대를 바꾸어서 오늘의 한국이라도 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은 얼마나 있을까?
아니 이 질문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어른들이 얼마나 있을까?

어른들은 대답하지 못하지만 마크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때때로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는 직관의 세계에 우리에게 필요한 대답이 이미 마련돼 있으니말이다.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어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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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이 너무 심각해서 아이들이 읽기 어려워하지 않을까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저렇게 심각한 내용을 참 재밌고 쉽게 잘 풀어놓았다.
평균정도의 독서력이라면 초등5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을 듯...
다만 히틀러가 누구예요라고 하면 어른들이 좀 더 도와줘야 할듯...
그리고 정말 부모가 먼저 읽고 아이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정말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책 마지막의 여운을 남기는 결론부분도 참 마음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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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8-11-14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부모가 먼저 읽고 아이들과 얘기 나누는 것이 참 필요할 것 같은 책이에요.

바람돌이 2008-11-14 21:51   좋아요 0 | URL
미설님도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어디 페이퍼에서 평화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말을 봤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말이 참 와닿더라구요.

마노아 2008-11-1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인상적이었는데 내용은 더 깊게 다가오네요. 보관함에 담아두려고요. 당장은 못 볼 테고요^^;;

바람돌이 2008-11-14 21:51   좋아요 0 | URL
주제는 꽤 심각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동화책입니다. 어린이용이니 글자 크고 그림있고... 보는데 얼마 안걸려요. ^^
 
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 - 평생 잊지 못할 몽골의 초원과 하늘,그리고 사람 이야기
강제욱 외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초원과 사막이라는 말을 한 번 떠올려보라.
무엇이 떠오르는가?
단언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내가 머리에 떠올리고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릴듯하다.
무한대로 펼쳐진 초원이나 사막의 모습과 함께 문명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진 자유로움,
떠도는 유목의 낭만
또는 자연과 일체된 삶을 사는 자의 내면의 여유.....
아! 그래... 당신이 나처럼 이런 것들을 떠올렸다면 이 책속에 그 모든 것이 들어있다.

6명의 사진가는 몽골의 초원과 사막을 지극히 사랑하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그들의 카메라에 잡히는 풍경은 현대 도시인이 원하고 예상하는 풍경 그대로를 잡아준다.
끝도 없이 푸른 초원과 하늘, 그리고 양을 몰고 가는 유목민
바람에 물결치는 끝없는 사막
그리고 욕심없어보이는 순박한 사람들.....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어쩌면 카메라는 현실보다 더 로망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구질구질한 일상이나 기대에 어긋나는 풍광이 모두 생략되고 딱 원하는 그것만을 잡아주잖아....
카메라가 잡아내는 초원과 사막의 표정을 보라구
정말 이보다 더 멋질수도 없을걸...
그래! 그래서 이런 책을 보면 우리 모두는 당연히 사막으로 초원으로 가는 꿈을 꾸는거야.
사진 그대로의 세상이 거기 펼쳐져 있다고 우리는 늘 착각하거든...
근데 뭐 딱히 착각도 아닌 것이 잠시 스쳐가는 우리들에겐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잖아.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게 진짜 몽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뭐 나만 그런것도 아니고 인간이란게 원래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건 없고....

눈에 보이는게 그런 거라면 그의 손에서 나오는 편지도 별반 다르지는 않아.
어쨌든 글과 사진은 어울려야 하잖아.
물로 내가 쓰는 것보다는 훨씬 잘썼다는 면은 있지만 내용은 딱히 새로울건 없어. 거의 대부분 딱 기대한만큼의 얘기들을 해주지....
그래도 몇가지  이야기는 좀 새로웠어.

먼저 석재현씨의 <초원에서 만난 닌자 광부들>
아니 왠 닌자냐고?
이들은 불법채금업자들이야.
자원이 널린 몽골에서 개발이다 뭐다 하면서 외국기업들을 끌어들인다네. 이거야 뭐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긴데...
 그 외국기업들이 들어와 금 채굴을 하고 떠난 광산에 남은 부스러기 금이라도 캐서 먹고 살려고 나선 사람들이 바로 닌자 광부들이야.
이들의 주 도구가 바로 우리가 세수할때 쓰는 바로 그 대야인데 그 대야를 등에 지고 채굴작업을 하는 덕분에 닌자 광부란 별명을 얻었다지...
이들은 금 알갱이 몇개를 얻기 위해 하루종일 흙구덩이를 파고 들어가서 채금작업을 한대.
아무런 보호시설이 없으니 언제 흙구덩이가 무너져서 파묻힐지도 모르고...
실제로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 주변 사람들이 그 무너진 흙을 파낼 장비가 하나도 없으니 결국 묻히면 죽는거지.
그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닌자 광부들이 늘어나는 건 이거라도 아니면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일거야.
그들은 초원이 고향이고 삶터인데 그 초원이 변해가고 있어.
지구의 이상기온은 이들에겐 바로 생존의 문제가 돼버리지. 한해만 이상 기온으로 가축들이 쓰러지고 나면 그들에게 초원은 더이상 삶터도 쉼터도 못되게 되고 밀려나버린거지...
결국 닌자 광부들은 초원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야.
그 밀려난 이유를 그들은 알까? 자신의 잘못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까?

그리고 네이멍구자치구를 여행하고 쓴 강제욱씨의 편지
몽골의 땅이었지만 중국이 차지했고 결국 지금은 인구의 80%가 한족이 되버린 옛 몽골인의 땅.
중국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그래 부당하지.
게다가 그 이유로 징키즈칸을 중국인으로, 몽골제국조차 중국역사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오늘의 중국의 팽창주의에 분개하는건 백번 이해가 가. 그리고 동의도 하고...
하지만 너무 흥분해서 도를 넘은 비판은 뜬금없는 비난과 과도한 추론으로 이어져버리네.
중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에 분노하다가 그럼 중국인들은 조선족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니 곧 대한민국사람들도 중국인이라고 하지 않겠냐며 흥분하는데 이건 좀 지나친것 같아.
왜냐하면 조선족은 현실적으로는 중국인이 맞고 그래서 중국인들이 조선족도 중국인이라고 하는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따라서 저런 비약이 나와야 할 이유는 없다는거지.
동시에 중국의 위험성과 그들의 폭력적 팽창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남미의 민중들이 해방된 민중이 돼버리는데, 글쎄... 그는 남미에서 꽤 오래 살았다고 하니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남미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중국이나 우리하고 맞먹어도 결고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제외한 해방이란 어떤건지 잘 모르겠다.
단순히 지나가는 말실수였다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이 중국의 팽창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유난히 적과 나를 구분하고 강조하며 국수적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것 같아 읽는동안 내내 마음이 불편한 글이야.
제국주의의 반대는 민족주의나 국수주의가 아니거든...
그것들은 오히려 쌍둥이라고 하는게 맞을거야. 민족주의나 국수주의가 조금만 힘이 생기면 바로 제국주의가 된다는걸 역사가 증명하잖아....
강제욱씨는 영화 <미션>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데 그가 어느 장면에서 어떤 면 때문에 눈물을 흘렸는지가 문득 궁금해졌어.

이상엽씨의 <몽골 불교 순례기>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해준 글.
솔직히 말하면 지금 몽골에 불교가 있다는 것 자체를 한번도 생각도 안해봤어.
옛날 몽골제국의 국교가 티벳불교인 라마교였다는건 알았지만 그것이 계속이어졌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한번도 궁금증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어.

몽골의 불교는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리 활발하게 믿어지지는 않다가 원이 멸망하고 초원으로 돌아간 이후 몽골부족의 재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어졌다네.
16세기 몽골인들은 티벳의 겔룩파 스님 소남 갸초를 모셔와 불교진흥을 도모하고 소남 가쵸 스님에게 처음으로 달라이 라마(바다같은 지혜를 가진 스승)라는 이름을 준 것도 몽골인들이었구나.
이후 몽골의 불교는 20세기 초반에는  몽골 초원에 약 1,000여개의 사원들이 있었고, 거의 몽골 남성의 절반이 승려였다니 대단한 불교국가 아냐?
근데 이렇게 대단했던 몽골족의 불교가 1930년대 스탈린의 법난에 의해서 여지없이 파괴되고 승려는 강제환속당하고 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정말 몰랐었어.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몽골불교의 비극은 시작되었다는군.

몽골의 독립을 도운 소련은 독립 영웅 수흐바타르를 포함해 독립운동가 수십 명을 코민테른으로 초청, 사회주의 혁명의 당위성과 의식화를 시도했지만 강한 불심으로 뭉친 독립영웅들을 교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소련군의 지원을 받고 있는 몽골 군부가 중심이 돼 불교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1929년 1차로 승려와 사원의 재산을 몰수했고 이에 반발한 승려들이 1932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빌미로 1937년 세계 역사에 유례없는 대규모 불교 숙청이 시작됩니다. 그 해 여름 청년 돌격대원들은 전국 각지의 사찰을 습격, 주요 린포체들과 깝쥬(박사학위를 받은 승려)및 지도급 승려들을 잡아다가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295쪽)

사회주의가 아닌 세력을 그 때의 사회주의자들 - 스탈린이든 중국이든 인정하기 힘들었겠지.
인간은 언제쯤이면 자신과 다른 생각도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까? 지구 멸망전에는 가능할까?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드넓은 초원이나 사막은 인간의 이런 차이나 고민, 그리고 세상살이의 잔인함을 모두 안아주고 치유해 줄 것 같지만 그것도 어차피 인간의 착각일뿐이다.
그곳에 뿌리박고 살지 않는 한 그곳은 도시인들이 잠시 쉬러가는 별장일뿐...
자신의 삶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지 않는 여행이란 동경일뿐일터.....
또 그 사진을 보고 몽골에 대한 환상을 쌓아가는 나도 마찬가지일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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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1-11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에서 끝났어요. (>_<)

바람돌이 2008-11-11 12:56   좋아요 0 | URL
앗 고쳤어요. ^^;;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노이에자이트 2008-11-1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만 가득한 서평보다 신선해서 좋았습니다.요즘은 국수주의가 점점 거슬려요.이제 우리도 약소국에겐 행패를 부릴 정도의 힘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바람돌이 2008-11-12 00:5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의 국수주의 만만찮죠? 중국 뭐라할 일이 아닌듯...

글샘 2008-11-12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늑대 토템. 안 읽었음 함 읽어 보셈.

바람돌이 2008-11-12 01:29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가서 보니 분량이 정말 장난 아니더만요. ㅎㅎ
근데 1권은 없고 2권만 있더이다. 다음번에 가면 다 있을까요? ^^
 
내가 사랑한 야곱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
캐서린 패터슨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굳이 성경이 아니라도 형제간의 부모의 애정을 둘러싼 다툼이야 무수히 리바이벌되고 변주되어왔다. 그 유명한 에덴의 동쪽도 그렇잖은가말이다.
결국 쌍둥이로 태어나 언제나 관심과 애정을 한 몸에 받는 동생과 늘상 동생에 가리는 언니의 이야기란게 별로 새로울게 없는 소재란거다.
하지만 소재는 결국 소재에 불과하다는걸 이 책은 알려준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어떻게 양념을 치고 버무려내느냐에 따라 정말 다른 맛이 나올 수 있음을 말이다.

딱 5분먼저 아주 건강하게 태어난 언니 사라 루이스, 그리고 언니보다 5분 늦게 나오는 바람에 위태위태하게 나와 부모의 애간장을 녹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동생 캐롤라인
그들의 탄생만큼이나 성장과정도 대조적이어서 언제나 겉으로는 아들못지않게 씩씩하여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돕기까지 하는 언니인 반면 동생은 타고난 미모와 재능으로 관심과 애정만을 받으며 자란다. 적어도 언니인 휘즈(주인공 사라루이스의 별명)의 생각은 그렇다.
이런 극적이라면 극적이랄 수 있는 설정이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아주 조용하다. 심지어 휘즈가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조차도 아주 조용하다.
늘 동생의 그늘에 가렸다고 생각하고 자라는 아이의 모습은 어쩌면 정말로 이렇지 않을까?
여태까지의 영화나 이야기들이 그려왔던 것처럼 그렇게 반항일변도로 흐르기보다는 말이다.
이렇게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반항을 심하게 하면 정말 부모에게서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을 듯하다.
그러다보면 제대로 반항도 못하고 순종적이고 휘즈처럼 먼저 나서서 집안 걱정과 부모 걱정을 하는 그런 애어른이 되가는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어쩌면 결국 휘즈에게 네가 그렇게 사는 건 네가 하고싶은게 뭔지를 진짜로는 몰라서 그렇다고 얘기하는 옆집 할아버지의 한마디는 너무나도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휘즈에게서 그런 꿈까지 빼앗아간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인데 말이다.
물론 아무도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상황들이 휘즈에게 다른 삶을 생각할 수없게 강요한건 아닌지...
소설이 휘즈에게만 몰아붙일게 아니라 이런 면을 좀 더 부각시킬 수 있었다면 소설의 리얼리티가 좀 더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 휘즈의 결단은 리얼리티가 확 떨어지면서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태까지 자신을 억눌러왔던 아이가 말 한마디에 각성이 이루어지는건 참 쉽지 않단 말이다.
게다가 이전에 휘즈의 꿈이 의식의 바깥으로 표면화되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 그러하다.

그 외 보너스
소설은 라스섬의 풍광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성장소설이라 하여 아이의 내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성장소설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 <내가 사랑한 야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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