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뭐예요? - 1초에서 100년까지 시간 읽기를 배울 수 있는 놀이책
파스칼 에스텔롱 글.그림, 이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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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뭘까?
이런 추상적인 개념은 아이가 질문해도 딱히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까 고민되는 질문일것이다.
그렇다고 책을 보고 가르쳐줄려해도 도대체 어떻게?

이 책이 나온걸 보고 아 이 책이라면 혹시 했는데 역시나였다.
볼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어요.
하지만 셀 수는 있어요
그건 흘러가는 시간이에요라니.... 정말 멋진 표현!!

그래서 사람들은 흘러가는 시간을 알기 위해 시계를 만들었다죠.
가장 작은 시간 1초부터 시작해요.
책장을 넘기는 시간
그리고 샤라락 낙서하는 시간
엄마 이렇게 낙서하는 시간??? 아니 그렇게 하면 3초
그럼 이렇게?? 응 딱 1초야. ^^

그럼 1분은 1초가 60개
우리 60까지 세어보자
정말 60까지 세라고 해놨네요.
60까지 세고는 휴 힘들어 엄마! 이게 일분이야?

그럼 1시간은 파운드케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지.
그러고는 파운드케익을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데
집에서 파운드 케익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우리 애들에게는
간단히 엄마가 밥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야
근데 너네가 먹는데는 10분밖에 안걸리지 하면서 웃는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달, 1년, 심지어 1세기까지....
아이들이 여기 나오는 시간의 개념을 한번에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어렴풋이 알게 되는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앞으로 한동안은 엄마 이건 몇분이야?
이렇게 하는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려라는 질문에 시달릴듯....

자칫 지루해지기 쉬원 이야기인데
곳곳에 아이들이 들춰보고 돌려보고
또 스티커를 붙여보고 하는 페이지들이 나와
지겹지 않게 즐겁게 본다.
그리고 시계와 달력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게 만든 부록도 맘에 든다.
유치원생부터 초등2학년정도까지 아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
혹시 이런 시리즈가 없나 궁금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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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의 털] 서평단 알림
열일곱 살의 털 사계절 1318 문고 50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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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예전에 있던 학교에 머리에 목숨을 거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헤어스타일은 정말 가관이어서 입을 대지 않는 선생이 없었달까?
지 얼굴의 3배쯤 되게 머리를 부풀려서 사자 갈기처럼 만들어놓고
얼굴을 그 안에 아예 파묻어버리는...
당연히 염색도 했고...
염색은 어찌 어찌 해서 겨우 설득했지만
정말 그 머리의 파마만은 죽어도 안된다는 거였다.
그 아이의 요지는 저는 얼굴이 커서 머리로 가려야 한다는 것.
정말 딱 그거 하나였는데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푸느니 학교를 안나오겠다는 것.
어느날은 집에서 지네 아버지한테 맞아서 눈이 핏줄이 터져서 나타나고
학교 두발에 대한 단속이 있으면 아예 안오고...
그 머리 덕분에 그녀석의 학교생활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뭐 문제를 따지자면 머리뿐이겠냐만은 어쨌든 핵심은 머리였다.
결국은 담임도 수업들어가는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거의 포기하고
머리야 어떻게 돼든 그냥 학교만 나와라.
밖에서 사고만 치지마라로 포기상태.
근데 이녀석의 그 무대포 반항은 선생님의 생각도 살짝 바꾸긴 하더라.
그놈의 두발단속에 지친 선생님들은
"그놈의 머리가  뭐 그렇게 문제라고 애들하고 이렇게 신경전을 벌여야 하느냐?"식의...
그 학교의 선생들은 다행히도 이 책에 나오는 학교선생들처럼 아이 머리를 가위로 자르는 식의 만행을 저지를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아! 이건 선생님들이 학생인권에 대한 의식이 투철해서 어쩌고가 아니라 단지 정말로 간이 배밖에 나오지 않았다는것일뿐....

결국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정말 간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생의 머리를 바리캉으로 미는 것도 모자라 라이타를 들이대는 미친 선생에게 본능적으로 달려들다 전형적인 모범생에서 최고의 문제아로 등극한 일호.
그런 일호를 두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일호의 아버지는 선생님에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또박 또박 말한다.

두발 규제라니요. 학교에서 아이들 머리를 멋대로 밀어버린다니요. 참 기가 막힙니다. 이런 일은 60,70년대에 끝냈어야지요. 21세기 아이들에게 전근대적인 규제가 가당하기나 합니까? 이런 환경에서 과연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선생님들께서 머리를 미는 행위는 반인권적입니다. 국제인권위원회에 제소할만한 일이지요.....

우리 애를 하루종일 상담실에 두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아이의 수업권을 박탈하시겠다는 겁니까?

이건 정말이지 일호의 아버지가 일종의 외부인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한국의 학교, 교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특히나 인문계 고교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학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저 말을 하기 위해 작가는 일호의 아버지를 십몇년을 바깥세상을 떠돌아다니게 했나보다.
이 땅 안에서 산 부모라면 정말 택도 없는 행동이라는걸 알기에...

그러나 아버지의 느닷없는 지원을 받았다 하더라고 그것으로 일호가 승리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학교 선생들의 말도 안되는 만행이 통용되는 것은 학부모들의 암묵적인 혹은 전적인 지지 내지는
내 아이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 무관심.
그리고 그런 어른들을 똑 닮은 아이들의 개별화
이런 삼박자가 척척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호의 반항은 아이들의 각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혼자 외로이 패배를 감내해야 하는거고 그게 현실이다.
하지만 소설이란 자고로 꿈을 말하지 않던가?
일호의 머리를 모범생으로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일등 공신 일호의 이발사 할아버지.
아이들 머리에 별 하나씩을 달아 아이들의 꿈과
그 꿈을 잃어버린 예전에 아이였던 이들의 기억과 연결해주는 해결사.
물론 현실이 이렇게 될리야 없겠지만 그러기에 소설이지 않는가?
어른들도 예전에는 모두 어린아이였고 꿈이 있었지 않냐말이다.
어른들이 열일곱살의 털을 기억에 담아둘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이들도 좀 더 숨쉬기가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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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8-09-30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저도 이책 눈둑 들이고 있는데요..

바람돌이 2008-10-01 22:29   좋아요 0 | URL
의외로 재밌게 읽었어요. 받자마자 단숨에 읽었다죠? ^^

순오기 2008-10-0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책 우리는 아직 안 왔는데~ 아들녀석이 서평단에 됐거든요.
왜 안 오는지 알아봐야겠네요~

바람돌이 2008-10-01 22:34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 받은건 일주일쯤 됐는데 정말 어떻게 된건지 알아보셔야겠네요. 순오기님 아들의 서평이라 기대되는데요. 근데 닉네임이 뭐죠? ^^
 
톰팃톳 네버랜드 세계 옛이야기 2
스베틀라나 우슈코바 그림, 이상교 글 / 시공주니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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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팃톳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이야? 응?
그리고 저 표지에 이상하게 생긴 녀석은 뭐냐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알게된다.
톰팃톳은 바로 저녀석 이름이라고...
그리고 톰팃톳은 심술궂은 쬐끄만 꼬마 악마 녀석이고...

외국의 전래동화를 보다보면 가끔 이게 정말 어린이용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가 선악개념이 없다.
이 책도 그런 쪽에 속한다고 할까?

책 속에 도대체가 긍정적인 인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매일 빈둥빈둥 하면서 늙은 엄마가 해준 파이를 몽땅 먹어치워버리고도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딸.
게다가 멍청하기까지 하다.
그런 딸이 엄마의 거짓말 덕분에 왕비가 되고 그 후에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오로지 운이 좋아서 왕비자리를 지키는 딸이라니...
거기다 엄마는 거짓말로 딸을 왕비로 만들지 않았나말이다.
왕 역시 마찬가지
딸이 하루에 실을 다섯 타래나 지을 수 있다느 말에 속아 왕비로 삼지만 일년의 마지막 한달은 무조건 하루에 다섯타래의 실을 자아야한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왕이라니...
무슨 왕이 이렇게 쫀쫀하냐?

차라리 왕비를 도와주며 자신의 이름을 맞출 기회를 하루에 세번 씩 한달이나 주는 긴꼬리의 저 악마녀석이 제일 괜찮아 보인다.
어쨌든 제일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잖아?
거짓말도 안하고...
내가 전래동화 작가라면 그래서 딸과 꼬마 악마는 그 다음부터 쭉 잘 살았습니다라고 결론맺겠다 뭐.....

책 후기를 보니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영리하게 살아남는게 미덕일수도 있다는데..
그리고 착하고 예쁘고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꿋꿋한 사람들만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싫어하고 먹는 욕심을 참기 힘들어하고 할 수 없이 거짓말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한테도 행운이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전해준단다.
이거야 말로 로또 당첨인가?
아이들은 재밌어 하긴 하는데 이건 어쩌면 어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한 동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사리분별은 할 수 있는 어른들 말이다.
사리분별 못하는 어른들은 절대 안된다. ㅠ.ㅠ

이야기는 썩 맘에 들지 않지만 그림은 정말 멋지다.
아주 이색적인 그림이랄까?
온갖 구슬종류로 장식한 옷들과 식탁 물건들을 보노라면 눈이 휘황할 정도.
보기 힘든 그림체로 정말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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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8-09-2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제목보고 이게 무슨 말일까 궁금했는데요^^ 도서관 가서 그림구경해야겠어요.

바람돌이 2008-09-23 00:33   좋아요 0 | URL
그림은 참 이색적이고 멋져요. 여자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

순오기 2008-09-23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도 얼마 전에 이 책 리뷰 쓰면서 맘에 드는 구석이 없다고 썼는데~~ㅋㅋㅋ
아이들은 그래도 좋아했어요.^^

2008-09-23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9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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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 둘은 같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길이다. 내가 망명에 성공한다면, 내게 남는 것은 여권에 나와 있는 그 생물학적인 존재, 단독자적인 존재임이 분명하다. 내게는 이름과 성별과 나이와 국적만이 남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다른 존재다. 공항에서 비행기표와 여권만 들고 출국심사대를 빠져나갈 때마다 나는 거의 다른 존재가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은 참으로 감미롭다. 그런 점에서 공항은 환각의 극장이며 착각의 궁전이다. 그리하여 공항은 마침내 삶에 대한 절절한 역설이 되는 셈이다. 맞다. 덧없이 반복적으로 스쳐가는 것들만이 영원하다. – 289쪽

 여행 그리고 그 출발점 공항 또는 정류장, 기차역 모두 기대와 설레임의 단어들이다.
그것이 기대와 설레임인것은 결국 내가 아닌 나를 만나는 시작점이기때문이리라....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 - 가족의 틀, 지위, 일상의 지겨움, 나를 아는 것들로부터의 안녕이라는 것.
나라는 존재의 외피를 모두 벗어버린다는 것은 물론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일터,
기대와 설레임의 여행은 결국 돌아올 곳을 준비한 벗어남일테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럼으로써 나를 좀 더 객관화시켜 볼수 있는 것?
아니 그것만은 아닐것 같다.

작가 김연수는 국경이라는걸 가져보지 못한 우리의 비애를 얘기한다.
동, 서, 남으로는 바다뿐인, 그리고 북으로는 결코 갈수없는 휴전선으로 막힌 섬나라 한국.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나와 타인을 같이 바라보며 사고를 확장하거나,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자신속에 갇힌 세계관을 벗어나는것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를 기대할수 없다.
기껏 이곳을 벗어나려면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거나
아니면 월북이다.
둘다 이것은 공동체로부터의 이탈이며 배신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써야 한다.
자유로운 월경이 봉쇄당한 곳.
그래서 늘 우리를 강조하며 우리속에 있을때만이 모든것이 좋아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곳.
이 공간을 탈출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렇다면 이 여행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아니 설사 지리적인 이동을 하더라도 늘 김치와 고추장을 싸다니고 우리끼리 우루루 패키지로 몰려다니며 그래도 우리께 제일좋아, 집이 제일 좋아를 연발하고 다닌다면 그건 그저 지리적 이동일뿐이다.

작가는 지리적인 여행속에서 이런 월경의 경험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자 한다.
해방후 일본에서 조국으로 돌아와 부산항 앞의 닥지닥지 붙은 초라한 집들을 바라본 작가의 어렸던 아버지는 평생을 여긴 내가 있을데가 아닌데라는 심정으로 살았단다.
그러면서도 우리속에서 내처질까봐 그 마음을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단다.
그분에게 지리적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의 고향은 바다 건너 저편인데....
그런 마음을 억압하는 섬의 비애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주고 표현해주는 것, 그럼으로써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것의 강고한 압박을 벗어나는 것
그 틀에 갇혀 나와 또다른 나들을 사고하지 못하는 정신의 감옥을 벗어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작가 김연수의 여행이리라...
그리고 여행할 권리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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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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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국경을 넘어 다른 민족 속으로 들어가, 이윽고 사라지는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세계를 향해 떠난뒤, 거기서 다시 돌아오지 안은 선조들이란 도무지 우리에겐 없으니까. 결국 모두 돌아왔으니까. 결국 자살이 아니면 월북뿐인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비행기나 선박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 수평선 안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란.-13쪽

"모든 건 너에게 달린 문제다. 네가 여기서 살고 싶다면 너는 여기서 살수 있다."
"아니 비자문제도 있고."
내 말에 후사꼬 할머니는 눈가의 주름이 보이도록 웃으면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반문했다.
"지금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도 한때는 모두 불법체류자들이었어. 그런건 상관없어. 네가 살고 싶다면 너는 살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버클리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일은 이처럼 간단했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삶만 알아내면 된다. 그다음에는 그냥 살면 된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101쪽

뭔가를 찾아 영구 운동하지 못하는 문학, 영구 망명을 꿈꾸지 못하는 문학은 결국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학이 될 수 없었으니까.-159쪽

한번도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계관이란 그런게 아닐까?-167쪽

그런 까닭에 작가는 씸퍼사이저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이상이 되는 경우, 작가는 사상가로 바뀌면서 '국내'라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국내란 중심을 향해 응축되는 공간이다. 진지한 문학이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만들어 자아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게 만드는데, 국내용 문학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아는 세계에 맞게 자아를 만들어내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고 나면 경계선 바깥은 모두 타자가 된다. 국내용 문학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169쪽

정치적으로 봤을때,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존재가 그 목소리로 증명된다. 반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 즉 입술이 없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서 말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본디부터 정치적이다. -198-199쪽

저항적이건 공격적이건 모든 민족주의는 '국내용 사상'이고 '지역적 사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야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중국인 가게를 공격하면서 기염을 토할 수 있었겠지만, 국경만 넘어가면 상당히 곤란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1930년대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를 친일파와 동일시했다. -215쪽

공항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 둘은 같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마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길이다. 내가 망명에 성공한다면, 내게 남는 것은 여권에 나와 있는 그 생물학적인 존재, 단독자적인 존재임이 분명하다. 내게는 이름과 성별과 나이와 국적만이 남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다른 존재다. 공항에서 비행기표와 여권만 들고 출국심사대를 빠져나갈 때마다 나는 거의 다른 존재가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은 참으로 감미롭다. 그런 점에서 공항은 환각의 극장이며 착각의 궁전이다. 그리하여 공항은 마침내 삶에 대한 절절한 역설이 되는 셈이다. 맞다. 덧없이 반복적으로 스쳐가는 것들만이 영원하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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