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간 사자 웅진 세계그림책 107
미셸 누드슨 지음, 홍연미 옮김, 케빈 호크스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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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꽤 교훈적인 책이다.

도서관에 사자가 나타났다.
처음 사자를 발견한 맥비씨는 기겁을 하지만 도서관 관장인 메리웨더씨는 사자가 도서관의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된단다.
이 사자는 도서관을 아주 좋아함에 틀림없다.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책에 머리를 비비고 이야기방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모두 어리둥절하고 겁먹은 표정으로 사자를 쳐다보지만 사자는 아랑곳없이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처음으로 도서관에 온 사자는 도서관의 규칙을 잘 몰랐다.
이야기 시간이 끝나고 난 후에 더 해달라고 으르렁거리다니.... ^^
하지만 메리웨더 관장님의 따끔한 꾸지람과 규칙에 대한 이야기에 이제 사자는 도서관을 다시 올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사자는 도서관에서 관장님의 일을 돕기도 하고 아이들의 소파가 되어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도와주기도 하는 친구가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메리웨더 관장님이 다치게 되는 바람에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 사자는 뛰면 안된다는 규칙과 도서관에서 소리를 지르면 안된다는 규칙을 어겨버리게 된다.
규칙을 어긴 사자는 슬프게 도서관을 떠나고....
사자가 떠나 다시 나타나지 않자  슬퍼하는 아이들과 관장님
관장님 방 화분의 식물마저도 시들시들하다.
여기서 평소 사자를 언짢게 여겼던 맥비씨가 사자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예외의 상황에서는 규칙을 어길수도 있다는 새로운 규칙이 도서관에 생겼다고...
이제 사자는 다시 도서관에 돌아오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면 안된다는 규칙을 어기며 환호한다.
심지어 메리웨더 관장님까지 규칙을 어기고 복도를 뛰어가다니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아이와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은 책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지켜야 할 규칙 이야기도 나눌 수 있지만 도서관에 사자가 와도 될까 안될까라는 질문을 중간 중간에 던져줬었다.
아이 나름대로 "음~~ 처음에 안될 것 같았는데 사자가 규칙을 잘지키면 괜찮을 것 같아."라는 대답을 하고, 또 연이어 왜 처음에는 사자가 도서관에 가며 안될 것 같았어?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도 있다.
아이에게 규칙이란게 뭔지를 쉽게 가르쳐줄수도 있고, 또 그 규칙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는걸 얘기해줄 수도 있고...
사실 아이들에게 융통성을 가르친다는건 참 어려운 일인데 의외로 쉽게 가르쳐줄수 있다.
도서관에 온 사자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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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7-3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그 규칙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이죠....
맘은 자유롭게 마음대로 이용하게 하고 싶지만, 책이 금방 엉망이 되어 버려요.
요즘 어린이자료실 가면 "책은 한권씩만 꺼내보고, 다 읽은 다음에 제자리에 놓고 다시 꺼내보는 거예요, 의자는 밀어 넣고 나가세요" 하고 잔소리합니다. ㅎㅎ

바람돌이 2008-07-30 22:47   좋아요 0 | URL
오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보는데 곳곳에 줄을 그어놨더라구요. 행정편의주의적이라 하더라도 규칙은 규칙이죠. 아이들에게도 지켜야 할 건 꼭 지킬수 있도록 가르치는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순오기 2008-07-30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고베 '준쿠도서점'에 가서 봤어요~ 그렇다고 일어를 읽은 것 아니고 그림만 봤지요.ㅋㅋㅋ

바람돌이 2008-07-30 22:4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의 일본 여행기 기대하고 있어요. ^^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 유재현의 아시아 역사문화 리포트, 프놈펜에서 도쿄까지 유재현 온더로드 1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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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모두 한 애비와 에미의 자식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형제들을 아시아를 모두 남한족의 아래의 하위족으로 두는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작가 유재현의 서문 중 발췌)

아시아지역의 현대사는 모두 공통적으로 2차대전 종전 이후 미국의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흐름속에서 위치지워졌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각국에서의 비극의 출발점이자 강화제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아시아에 대해 무관심하다.
아니 하위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한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아시아는 이제 우리에겐 값싼 휴양지이거나 이국적인 문화유적의 답사지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둘의 공통점은 어느것도 오늘의 아시아의 실체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지형에서 유재현은 아시아의 현대사를 걷는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라고, 한배에서 나온 같은 자식이라고 끊임없이 읇조린다.

섹스의 천국, 태국 방콕의 길을 걷는 것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땅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기지촌을 걷는 길이기도 하다.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미군은 든든한 후방기지를 필요로 했고 그 후방기지의 역할을 해주었던게 또 태국이다. 후방기지로서의 태국은 또한 미군의 대규모 휴식-오락-회복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이걸 R&R이라고 한다는데 이것은 또한 참전 미군에게 연차로 주어지는 일주일간의 공인된 휴가를 지칭하기도 한단다.)
한국전쟁때는 도쿄가 이런 R&R기지로서의 역할을 했고 인도차이나 전쟁에서는 태국이 그 역할을 떠맡았던 것. 이쯤되면 태국의 섹스산업의 원조가 어디에 있는지는 뻔한 일이다.
우리가 밟았던 아픈 역사를 왜 우리는 같이 아파하지 못하는걸까?
왜 남한의 수많은 남자들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섹스관광을 가는거냐고?

모든 악의 출발점이 추악한 미국의 제국주의정책이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을 확대강화시키는데는 언제나 자국 정부의 방관과 적극적인 지원이 항상 같이 넘나듬으로써 가능했다.
흔히 태국의 정치를 얘기할때 빼놓을 수 없는것이 국왕의 존재이다.
아직도 국왕이 신성시되며 국민의 추앙을 받는 나라, 정권의 성립과 변동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태국이다.
흔히 태국이라는 나라의 이 이상한 왕정의 현존과 영향력을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 태국의 왕이 행했던 역할들 -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를 거치지 않도록 했던 왕의 외교력이나 중요 역사적 변화의 시기에 왕이 국민을 뜻을 대변했다는 등의 이야기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미국의 했던 역할은  내가 잘 몰랐던 부분이다. 전쟁 후방기지로서의 안정성이 절실하던 미국은 그 안정성을 보장해줄 인물로 왕을 택했고 그것은 왕에 대한 전격적인 지원과 신성화로 나타났던 것. - 그것은 세뇌였다. 이 세뇌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우리의 반공이데올로기 세뇌를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의 나라. 이 상반되는 이미지가 캄보디아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코드가 될 것이다.
크메르루즈는 킬링필드 덕분에 악의 화신으로 지금까지 회자되지만 문제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원인제공자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캄보디아 땅 곳곳에서 만날수 있는 킬링필드의 흔적들 - 인골로 이루어진 기념물들은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감정만을 자극하기 위해, 그럼으로써 크메르루즈에 대한 분노와 캄보디아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럼으로써 그런 상황을 만들어냈던 미국과 어이없게도 공산주의 형제국이라 할 수 있는 베트남의 책임을 절묘하게 비껴간다.

베트남전쟁이야 워낙에 많이 알려져있는 부분이고 그만틈 베트남 혁명의 지도자 호치민에 대해서는 비판이란걸 거의 접해본적이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그 호치민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남베트남민족전선의 궤멸에 진정으로 호치민은 책임이 없을까? 오히려 그에 대해 방조함으로써 혁명에서 북베트남의 주도권을 확고하게 하는데 이용하지는 않았나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건 자연스럽게 우리의 역사로 옮겨갈 수 있겠다. 분단정권 수립이후 부단히 진행된 북한에서의 남로당 죽이기 - 결국 혁명의 이념도 순수성도 권력앞에서는 그저 무력할 뿐... 어쩌면 혁명의 이념이니 순수성이니 하는 말 자체가 그저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작가의 발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미국이 라오스를 아편공급기지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쫒기도 하며 필리핀에서는 막사이사이대통령의 행적을 쫒으며 그의 본질이 막사이사이상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결코 평화적이지도 민중적이지도 않았음을 얘기한다.
영화 <비정성시>의 어두운 골목을 훑으며 일본을 대체해 들어온 본토외성인들 즉 장개석을 따라온 본토인들이 원래의 대만 주민들에게 정복자로 행세하면서 이루어졌던 무자비한 탄압과 학살을 고발하기도 한다.

유재현의 여행기를 읽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대면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과거를 날것으로 만나는 과정이다.
또한 우리의 추악한 현재를 실감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유재현의 여행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끊임없이 하는 문제제기가 바로 우리자신을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 애비와 에미에게서 난 자식들이 연대를 통해 공동의 삶의 조건을 창출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지금은 그에게서 우리들에게 화두로 던져지고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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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첫 수수께끼 사전 글송이 어린이 첫사전 시리즈 2
신재환 지음 / 글송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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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된 딸래미,
어디서 주워들어오는지 매일 수수께끼 타령이다.
아이때는 왜 그렇게 수수께끼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지만 뭐 내기억에도 나 어릴때 참 좋아했었으니 아이의 자연스런 성장과정이지 싶다.
하지만 매일 수수께끼 내기를 하자고 하니 죽을 지경이다.
그 먼먼 옛날에 알았던 수수께끼가 기억이 나겠냐 말이다.
그래서 알라딘에 검색해서 집저준 책이 바로 요것.

정말 딱이다.
아이 손에 들기에 딱좋은 아담사이즈의 크기.
한페이지당 한문제씩이지만 대신에 두께가 두꺼워 359페이지에 달하니 내용이 적은 것도 아니다.
큼직큼직하고 칼라풀한 글씨
그리고 재미있는 삽화까지...

이 책을 든 순간 한동안 아이는 다른 책을 거들떠도 안보고 아예 이 책을 끼고 산다.
문제는 매순간 엄마한테 수수께끼를 낸다는 것.
문제를 내고 키득거리고,
다시 그림을 보면서 장황하게 엄마한테 설명까지....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초등 1학년 이상의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놀잇감이다.

아직 한글이 안되거나 어휘력이 딸리는 아이들한테는 별로다.
우리집 6살 딸래미는 이 책에 별로 흥미없음.
걔가 내는 수수께끼래야 이런거다.
엄마 차는 찬데 못가는 차는 뭐게?
정답은 고장난 차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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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코스모스
아스카 후지모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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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소설을 가장한 황당하기 그지없는 뻥의 잔치다.
멀고먼 아스카시대 권력을 한손에 쥐고 주물렀던 소가가문(이 소가가문은 백제계의 도래인이라는 설이 많다)에서 지은 악업이 후대 일본 군국주의 시대로 이어진다는 말도안되는 설정을 기본으로 하는 이 소설은 설정이 너무 황당하다보니 뭐 만화도 아니고 이게 뭐야라는 심드렁한 반응을 가져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하도 기가막히게 좋다보니 나중에는 이거 실존인물 아냐? 일부러 코믹하게 만든거 말고 나머지는 모두 실존인물 아냐?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실제로 나 역시 책속의 주인공 소가 히토시나 가구야 공주를 구글에서 검색해보기까지 하게 되었다.결과는 소설얘기외엔 안나오더만.... ㅠ.ㅠ
가구야 공주는 그나마 일본 전설속의 주인공이라도 되었지만 소가 히토시란 인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책을 두고 일본역사를 통렬하게 비꼬았다고도 하는데 솔직히 통렬하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통렬하다는 말은 정확한 인식으로 그 본질과 허위를 제대로 짚어낼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방향이 좀 다르다고나 할까?
그저 역사를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실제와 허구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면서 전혀 말도 안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것.
그럼으로써 역사가 가지는 무거움을 싸그리 벗겨버리고 무한히 가벼운 놀잇감으로 재창조하는 것.
따라서 모든 무거운것들에 대한 조롱은 함뿍 지니고 있지만 그 조롱이 지나치게 희화화되다보니 그것이 풍자라는 영역의 통렬함으로 가기엔 모자란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것을 이 책의 단점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런 통렬함을 포기함으로써 이야기의 재미는 몇배나 강화시켜 놨으니말이다.
소설의 재미만으로 따진다면 이 책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다만 마지막의 소가 히토시의 소우주(미크로 코스모스)의 정체는 조금 뜬금없다 하겠다.
그것을 연결하는 소가가문의 마지막 몰락도 같이....
스포일러의 가능성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지만 앞의 재미를 완전히 반감시키는 느닷없는 반전이라고나 할까? 이해도 공감도 별로 안가는.... 아 이런데서 작가의 내공이 드러나는구나 싶은 안타까움....
내가 작가라면 이 마지막 장면은 필생의 사업으로 다시 고쳐쓰고 싶겠구나!!

덧붙여서 이 책의 작가에 대한 한마디
아스카 후지모리라는 이름의 이 작가는 처음 <네코토피아>라는 책을 낼때는 일본인 여성이라고 했다가 이 책을 내면서는 30대 프랑스남성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일단 소설에서 프랑스문화 특유의 느낌이 안난다는 것. -이건 그냥 내가 받는 느낌인데 하여튼 프랑스인들은 별거아닌것을 갖고도 유난히 폼을 많이 잡는 느낌이 들때가 많다.
뭐라 딱 집어 말하기는 뭣하지만 일본 작가 특유의 글쓰기의 특징들이 많이 나타난다는게 내 생각.

그러면 그는 왜 프랑스인이라고 바꿔서 자신을 소개했을까?
일단 이 역사가 비틀어대는 인물들이 심상치 않다.
모든 사람은 다 제끼더라도 쇼토쿠 태자에 대한 비틈은 심각한 수준이다.
쇼토쿠 태자는 백제 문화와의 관련과 불교문화의 부흥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우리 나라에선 쇼토쿠 태자가 일본의 유명한 역사인물일뿐이지만 일본에서 쇼토쿠 태자가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 오늘날 일본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낸 인물로 거의 국조(國祖)처럼 떠받들어 지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 쇼토쿠 태자에 대한 비틀기는 이 사람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심하다.
진짜 멍청이에 마마보이에 무모하기 그지없는 얼간이로 그려놨으니말이다.
이 소설을 보는 일본인들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볼까 싶다. 우익들이라면 이 작가를 살만 루시디처럼 만드는거 아냐 싶을 정도.
그러면 작가는 왜 이렇게 쇼토쿠 태자를 비틀어놨을까라는 의문도 잠시 든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은 쇼토쿠 태자는 그 자신과는 상관없이 항상 정치적으로 이용당해왔다.
일본의 위기시대마다 국가의 단결과 통합의 구심점으로서 활용되어왔던 것.
그 정점이 일본 군국주의임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작가는 이런 상징으로서의 쇼토쿠 태자를 해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느닷없이 프랑스인이라고 자기를 숨긴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같이 들고....

어쨌든 일본인이 아닌 우리로서는 재밌게 키득거리며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소설이다는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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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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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씨는 참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다. 너무 평범해서 아예 존재감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등기사무소에서 일하는 아주 아주 평범한 공무원, 그것도 비정규직 직원이다.
누군가 특별히 여기는 사람도, 주제씨를 특별히 여겨주는 사람도 하나 없는 노총각이다.
사는 곳도 특이하여 이웃하나 없이 등기사무소 옆에 딸려있는 단 하나의 방이 그의 집이다.
작가가 주제씨라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그에게 이름을 지어준것 조차 희안하다고나 할까?
차라리 그냥 "그"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주제씨의 진짜 이름은 어쩌면 '익명'이 아닐까?

그가 그런 자신의 익명성을 보상받기 위해 하는 유일한 취미는 유명인의 기사를 스크랩하는 일이다.
아! 그게 보상심리인지 어쩐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그가 유명 추기경의 신상서류들을 살짝 빼오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한 여인의 신상서류를 같이 끼워오게 된다.
전혀 유명하지 않은 그녀.
서류를 통해 알수있는건 그녀의 이름과 태어난 날, 주소, 결혼날짜, 이혼날짜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의 주제씨 여기서 운명을 느낀다.
그녀를 찾아야겠다는.....

찾아서 뭘 어쩌겠다고?
아니 그딴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는 무수한 서류더미들 속에서 그녀의 서류가 그에게 왔다는 것이 중요할 뿐....
이제 그녀를 찾는 주제씨의 모험이 시작된다.

그녀를 찾기위한 주제씨의 노력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모하고 아날로그적이며 진부하다.
그녀를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모두를 무시하며 어렵고 힘든길만 골라서 가는 주제씨.
하루는 그녀의 흔적과 지금을 추적하기 위해 그녀가 다니던 학교에 침입하기도 하는데, 겨우 그녀의 생활기록부를 추적하기 위해 그가 벌이는 모험은 정말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후에 그가 들킬지도 모를 온갖 상황에 대해 주제씨가 벌이는 머릿속 상상은 지나치게 심각해서 어이가 없을정도...꼭 엄마몰래 엄마주머니를 털어 사탕을 사먹는 아이가 생각하는 변명들 같다고나 할까?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이 결코 될것 같지도 않은 주제씨의 노력들이 슬슬 지겨워질 즈음 느닷없이 등기사무소의 소장이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한다.
왜인지 모르게 주제씨를 보살펴주는, 그럼으로써 주제씨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겁에 질리게 하기도 하고..
그리고 느닷없이 등기사무소의 전산화에 반대하며 쌓여있는 서류더미들을 옹호하기도 하고, 산자와 죽은자를 같이 있게 해야 한다는 묘한 말을 남기기도 하는 소장.
아 이쯤되면 주제 사라마구가 하려는 얘기가 뭔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등기사무소로 대변되는 극단의 관료주의사회, 그리고 그속에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엄청난 인간들.
모두 잊혀지고 말 인간들의 이름.
어쩌면 현대 사회의 모든 인간이 그렇게 익명의 존재가 아닌가라는 질문...
주제씨가 결국 찾아냈지만 결국 안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녀의 존재의 역설.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무자비하게 드러냈었고,
눈 뜬자들의 도시에서는 현대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허구성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했다면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에서는 거대한 도시속에서 익명화되고 존재감 자체가 없어지는 원자화된 개인을 부여잡는다.
주제만으로는 정말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책들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후편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는 것이 아쉬울따름이다.
저 책들의 순서대로 내 별의 갯수도 줄어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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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7-28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든 이름들'이란 제목으로 읽었는데요... 저런 제목을 달아서 파는 상술이란... ㅎㅎ 원제목이 모든 이름들이더군요. 정말 주제가 무겁죠. ㅋㅋ 오늘 브이 포 벤테타란 영화를 봤는데... 인간이란 것이 뭔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뭐냐...

바람돌이 2008-07-28 23:21   좋아요 0 | URL
읽고나니 역시 원제목인 '모든 이름들'이 더 적당한 것 같군요. 뭐 이런 책은 저런 상술을 써서라도 좀 더 많이 사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ㅎㅎ
인간이 뭔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면 슬퍼지거나 허무해지지 않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