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의 책 『올 어바웃 러브』에 대한 리뷰를 읽을 때도 나는 저자가 유명한 페미니스트 학자인지 몰랐다. 인용된 문장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는, 작가 이름도 모른 채 책 제목만 덜렁 외우고 있었다. 알라딘서재에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이야기가 한참일 때도 뭐, 이런 제목이 있어? 라고만 했더랜다. 하지만, 직접 추천받지 않았지만 책표지와 커피 사진으로 추천받은 『정희진처럼 읽기』를 시작하면서 발동이 걸렸고,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는 뒤를 돌아볼 수 없게 됐다.

때는 바야흐로 미국에서 동성애 결혼 합헌 결정으로 SNS가 무지개 물결이고, 모르는 사람이며 글 한 번 읽어본 적 없지만,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던 남자들의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떠돌면서, 관련 기사가 많이 늘어났다.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기사가 눈에 띈다. 그 전에는 모르고 지나쳤을 이야기들이, 자꾸 보이고, 들리고 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기에 적기가 아닌가 싶다. 이른바 적기 교육이다. 적기 교육, 적기 공부.

사례 1. 2015년 6월 24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밀당 못 참는... 집착남을 조심하라"

(http://www.cbs.co.kr/radio/pgm/board.asp?pn=read&skey=&sval=&anum=18931&vnum=3638&bgrp=4&page=&bcd=007C055E&pgm=1383&mcd=BOARD2)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데 특히 데이트 폭력은 관계집착, 질투심, 이런 것들. 그러니까 요즘 페미니스트라고 널리 알려진 사람, 진보파, 노동운동 일선에서 뛰던 사람, 이런 걸 가리지 않는 거군요?

◆ 서경현> 네, 그렇습니다. 사실은 원래 저도 그 특징을 가지고 연구를 해보았는데 사실은 가부장적인 성격, 남성이 우세하고 여성은 열등하다. 아니면 소극, 수동적이다라고 하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데이트 폭력을 더 많이 하고 여성도 만약에 그런 신념을 갖고 있으면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많은데요. 그렇지만 상대를 남성으로 여자들을 굉장히 사랑하고 사랑해야 하고 여자들을 존중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 정관용> 페미니스트들.

◆ 서경현> 의외로 욱한 성격, 네, 페미니스트가 될 가능성들도 있습니다. 물론 페미니스트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남성 중에 페미니스트는 뭐냐 하면 사실 이 데이트 폭력 가해자들 중에 여자들을 아끼려고 하는 마음이 굉장히 강한 사람들 중에서도 의외로 꽤 많습니다.

◇ 정관용> 참, 그러면 어떤 특징이 있으니 이런 사람들은 주의하시오, 이런 말도 못하겠군요?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건지, 보통의 사람들도 이해를 못 하는 건지, 그걸 잘 모르겠다. 여자들에게 잘 해주는 페미니스트가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방송에서 원했던 게 이런 식의 결론이었을까?

사례 2. 2015년 6월 30일, 한겨레신문, “연애를 허하라!”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98225.html)

페미니스트들은 애초부터 데이트 비용은 분담하고 결혼할 때면 형편껏 함께 집을 마련하자고 제안해왔다. 봉건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연애를 허하라”는 운동이 벌어진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좀 다른 맥락에서 다시 그 슬로건을 펼칠 때가 온 것 같다. 연애는 의자 뺏기의 놀이가 아니다. 싱싱하게 연애를 하고 싶다면 나무를 올라갈 사다리를 함께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용기 있고 기품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면 삶의 기획이 가능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엄마가 아닌 여성(들)과 함께 연애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신나게 연애하는 것, 어려울까?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사례 3. 저번주, 지하주차장.

집으로 오는 길, 아롱이가 말한다.

“엄마, 우리 양성 평등 교육 받았어요.”

그래? (혹은 그래에?) ‘그래?’는 항상 성의 있게 해야 한다. 두 음절, 내지 세 음절로 동의와 경청의 의미를 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 그래? 뭐를 교육받았는데?

“남자와 여자가 살아가면서 조금씩 불편할 수 있다고.”

음, 그래? 정색하지 않고, 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근데, **아, 남자보다는 여자가 불편한게 더 많아. 아롱이 급정색.

“아니에요, 엄마! 남자들도 불편한 거 되게 많아요.” 뭐가 불편한대?

“데이트 할 때, 돈도 내야 되고, 또... ” 음, 그래. 그렇지. 근데, 요즘에는 여자들도 많이 내.

“아니에요. 남자도 불편한 거 많아요. 돈도 내야 되고.”

아롱이는 집에 오면서 남자가 돈을 내야 된다는 이야기를 1번 더해서 총 3번을 했다. 아롱이는 국어를 아주 잘 하지는 않지만, 보통 10살의 남자아이들보다는 이해력과 공감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내용으로, 어떤 방식으로 양성 평등을 교육했는지는 모르겠지만, 10살 보통 수준 이상의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애에게 데이트할 때 돈을 남자가 내야한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나 보다.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는 두 번째 논문부터 읽기 어려워, 피하는 심정으로 (아무개님, 보고 계세요? T.T) 『행복한 페미니즘』을 읽고 있다. 쉽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처럼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그게 쉽다는 이야기인가?

계급에 상관없이 집에 있으면서 주부의 일만 하는 여성은 고립감과 고독감, 침울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118쪽)

주부의 일만 하는 여성? 뭐야, 지금 내 얘기하는 거야?

여자는 남자와 아이들이 없을 때에만 가정에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119쪽)

어떻게 알았어?

가정 안에서 여자가 자신의 모든 시간을 다른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에 쓸 때, 가정은 그녀에게 긴장을 풀고 쉬면서 기쁨을 얻는 장소가 아니라 일터이다. (119쪽)

내 말이 그 말이예요. 

 

 

 

놀라운 책이군. 작가 이름을 기억해야겠어.

『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2002년에 발간된 책을 앞에 두고, 이렇게 혼자 놀고 있다.

1인 2역. 주거니 받거니. 적기교육. 적기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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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04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은책이에요. 쉽게 페미니즘에 접근하게 도와주었던 기억이 ‥ 님의 인용구 보니 문득 돼지책,이라는 그림책이 생각납니다. 행복에 한 사람이 소외되는 희생이 따라야 한다면 바람직하지 않겠죠. 사회적으로 확산해도 마찬가지구요.

단발머리 2015-07-04 00:51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신나게 읽고 있어요.^^

돼지책, 처음 아이를 읽어주다가 저도 모르게 눈이 막, 커졌던게 기억나네요.
엄마는 항상 고개를 숙이고 일을 하고 있죠. 돼지들을 부양하느라...
행복에 대한 프레이야님 의견에 완전 공감합니다.
소외된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요.

아무개 2015-07-0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저도 두번째 논문에서
엎어졌나이다 ㅠㅠ
그래도 조만간 다시 도전해볼껍니다
단발머리님도 화이륑!!!!!

단발머리 2015-07-04 14:45   좋아요 0 | URL
아하.... 그래서 저는 일단 다른 책으로 갈아탔고요. 저도 다시 재도전!! 해보려구요. 아무개님이랑 같이 하니 힘나는대요!! 아자아자 가자!!!

2015-07-04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4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4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5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7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80년대에 페미니스트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정말 알지 못했다. (72쪽)

 

어제는 D도서관에 갔다. 내가 주로 다니는 S도서관이 확장공사를 하고 있고, 3주에 한 번씩 가는 M도서관과 다른 S도서관은 이번주 토요일이 가는 날이다. D도서관은 시립 도서관답게 책도 많고 신간도서도 많이 구입한다. 전날 저녁에 검색을 통해 내가 찾는 책이 있는 걸 확인하고, 아롱이를 수영장에 떨궈 주고, 혼자서 도서관에 갔다.

 

 

대출하려고 했던 책은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와 『올 어바웃 러브』. 같은 저자 벨 훅스의 책 『행복한 페미니즘』이 페미니즘 책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여 대출했다. 헤세의 책에 대한 책,이 읽고 싶어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을 대출했는데, 집에 와서 살펴보다가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은 정여울의 『헤세로 가는 길』이였음을 알게 됐다.

 

 

 

 

 

 

제일 먼저 읽고 싶은 책은 『올 어바웃 러브』. 그 다음은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아, 이건 아닌데.

총 707쪽. 저는 이렇게 각 잡고 공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에, 대출하지 말아야겠다, 소심한 결심. 그래도 책을 찾았으니, 펼쳐는 봐야지. 책을 펼친다. 그리고 이 문단을 읽는다.

 

 

 

나는 늘 어머니가 돈 많은 애인이 싫은 건지, 아니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가 주는 걸 넙죽 받는 자기 가난이 싫은 건지 궁금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사람은 나이가 많고 약간 불구인데다 말더듬이에 가난했고, 엄마를 무척 배려해주었다. 아니 대단히 정중하게 대했다. (77쪽)

 

엄마의 돈 많은 애인에 대한 이야기. 절로 눈이 간다. 이 책의 부제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35인의 여성/노동/계급 이야기’. 정희진의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이 책은 내가 접한 페미니즘 입문서 중에서 가장 우수하며 가장 ‘충분’하다. 또한 가슴 죄는 명언들이 즐비하다. (97쪽)

 

가장 우수하며, 가장 충분한데다 가슴 죄는 명언까지 즐비하다니 더 이상 두꺼운 무게를 탓할 수 없다.

읽는다. 알든 모르든 읽는다.

일단,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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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30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30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5-06-30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흡 ㅜ..ㅜ
사실....
저는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읽기를 포기하고 책장에 모셔두었습니다....

단발머리님 꼭 완독하셔서 멋진 리뷰 남겨주세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아아!!!!

단발머리 2015-06-30 14:55   좋아요 1 | URL
아흐~~ 아무개님이 포기하셨다니 급 걱정 밀려옵니다. 저는 지금 78쪽이요. 완독가능할까요? 완독은 못 해도 리뷰는 가능하구요, 멋진 리뷰는 어려워도 일단 리뷰는 가능합니다. *^^*

아무개 2015-06-30 16:40   좋아요 1 | URL
으라찻차!!!!!!!!!!!

단발머리 2015-06-30 16:45   좋아요 0 | URL
차랏차라라라라라라라리라랏!!!!

cyrus 2015-06-3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스트 섹슈얼리티도 페미니스트 사상 분파의 일종인가요? 워낙에 페미니스트의 분파가 다양해서 공부할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

단발머리 2015-07-04 01:23   좋아요 0 | URL
제가 이해한 바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의 분파가 다양한 것 같기는 한데, 서로 비슷한 점도 많지만 미세한 차이점도 많아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
공부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쭈욱~~~~~~~~~~~~~~~~

해피북 2015-07-0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님의 책을 읽고 또 그 책에서 알게된 책을 찾아 읽는모습 참 좋아요 ㅋ 저도`정희진처럼 읽기`를 준비해뒀는데 단발머리님의 모습이 제 미래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걱정이..ㅋㅂㅋ,,

단발머리 2015-07-04 01:24   좋아요 0 | URL
일단 그 걱정을 매우 축하드리구요!!!

저도 시작은 `정희진처럼 읽기`였던 것 같아요. 서문 읽다가 퍽! 충격을 받았더랬지요.
아무런 정보 없이 이리저리 막 부딪혀 하는 거라 모르는게 많아요.
저 좀, 도와 주세요~~ ㅋㅎㅎㅎ
 
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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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뱃속까지 보여주는 화끈한 솔직함

서평집은 인지도로 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책을 내도 괜찮은 수준에 이른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나보다 인지도가 높은 분이 숱하게 있다. 하지만 그분들은 너무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어쩌다 읽어도 서평 같은 걸 잘 쓰지 않는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적당히 인지도도 있으면서 서평도 봐줄 만큼은 써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 없는 탓에 내가 서평집을 내게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2014년 이후로 방송 출연을 거의 못하고 있어 인지도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인물과사상사가 서둘러 서평집을 만들게 된 이유였다. (8쪽)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다. 서평을 쓰는 이유가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 자랑하기 위해서라거나, 금전적 이익 때문(5쪽)이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실제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멋진 모습, 근사한 모습으로 보여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그 욕망을 인정하고, 자신 안에 그런 모습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 않은 일을, 골몰히 생각해보면 나름 어려운 이 일을, 저자는 참 쉽게 한다. 솔직하게 말한다. 이런 이유로 서평집을 냈노라고 말한다. 그의 이런 솔직함은 저자의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급호감’을, 이미 그의 솔직함을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의 솔직함이 독자를 무장해제 시킴과 동시에 저자와 독자의 암묵적 거리를 단숨에 단축시킨다.

 

2. 이런 생각 또 없습니다, 독특한 시선

      

 

 

 

『유령퇴장』은 작년에 내가 읽었던 책 중 Best 3에 속하는 책이고, 필립 로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70대의 노인이 자신보다 40살이 어린 30대의 유부녀에게 끌린다는 이야기‘ 너머의 다채로운 빅재미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야기가 가장 매력적이다.

내가 매료된 부분은 주커먼과 에이미의 가상대화인데, 에이미의 어린 시절을 묻는 이야기, 그녀가 읽었던 책 이야기, 주커먼이 권하는 책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관심 가는 여자, 유혹하고 싶은 여자에게 독서 이력을 묻는 남자라니. 이런 남자야말로 진짜 ‘뇌색남’이다.

저자의 독특한 시선은 이 지점에서 발휘되는데,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가 재선에 성공한 2004년의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연결지어 설명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나도 그 생각을 했었다. (은근슬쩍 묻어가기^^)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하다는, 불길한 방송 사고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그 다음날 아침까지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박근혜’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완벽한 절망. 그 상황을 저자는 이렇게 풀어 쓴다.

발기도 안 되는 노인이 왜 여자에게 집적대는 걸까? 어쩌면 이 장면은 상징적인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발기불능은 영영 집권이 불가능해진 우리나라 좌파를, 노인이 집적대는 유부녀는 이미 새누리당과 결혼한 우리나라 유권자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전히 집적대는 노인에게 유부녀는 그의 발기불능을 상기해준다. ... 책에서 노인은 결국 뉴욕을 떠난 원래 있던 산속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하는데, 이는 저자가 한국 좌파들에게 “정치판을 떠나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27쪽)

 

부시가 당선되었을 때 에이미의 절망과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 2030세대들의 절망은 나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발기불능 = 한국좌파, 유부녀 = 새누리당과 결혼한 우리나라 유권자, 의 해석은 정말 창의적이다.

저자만의 독특한 해석, 특별한 독법은 『유령퇴장』을 식탁 위에 두고 짬짬히 읽어가는 내게 이 책의 재독, 삼독을 간곡히 권유한다.

 

3. 유쾌상쾌 거침없는 매서운 비판 정신

 

 

아래 인용은 존 퀘이조의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에 대한 글이다.

사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스노가 바라던 안전한 물 공급은 결국 이루어졌고, 이제 웬만한 나라에서는 콜레라 환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정원이 바라는 것처럼 유우성이 결국 간첩이라고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국정원에도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어 국정원을 망치는 더러운 물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결국 스노의 의견을 받아들인 빅토리아 여왕과 달리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정원이 깨끗해지는 걸 바라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괜히 간첩으로 몰리지 않게 우리가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 (87쪽)

 

정부의 잘못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만의 토로이다. 누구라도 정색을 하고 물어볼라치면, 은근슬쩍 꼬리 내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정부에 대한 비판, 정책에 대한 비판,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일전에 고소를 당했을 때,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고, 산더미 같은 자료를 준비하셨던 지혜로운 아내를 두셨으니 망정이지(42쪽), 읽을 때마다 속 시원하고 통쾌한 건 사실이지만,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다. 고소장 한 장에 벌벌 떨면서 “앞으로 글을 좀 부드럽게 써야겠다”라고 자체 검열하는 자신을 돌아보면서도(45쪽), 날선 비판을 멈추지 않는 그의 용기가 새삼 존경스럽다.

 

        

 

 

 

저번주 토요일에는 교보문고 명강의 BIG 10에 다녀왔다. 마태우스님의 책은 무척 재미있지만, 강의는 5배 정도 더 재미있었다. 초등학생들이 적지 않게 참석했는데, 이 아이들은 마태우스님의 책을 다 읽었는지, 퀴즈란 퀴즈는 죄다 아이들이 맞혀 좋은 책선물을 많이 받아갔다. 기술이 부족해 마태우스님의 멋진 모습을 잘 포착하지 못 해 아쉬울 뿐이다. 사인을 받을 때, ‘단발머리’라고 써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 바쁜 와중에도 단발머리는 아니시잖아요, 라며 깨알개그를 선사하셨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네팔 어린이 돕기 팔찌는 아롱이 선물로 재탄생했다.

간만에 즐거운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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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6-29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저 팔찌 받았어요!
끝번호가 0,3,6인가 맞죠? ㅎㅎㅎ

마태우스님 싸인 바뀌셨네요.
그전엔 멋진 말그림이였는뎅

그나저나 우리는 왜 일면식도 없으면서
두리번 거리면
알라디너를 알아볼수 있을꺼라 생각했던 것일까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5-06-29 19:50   좋아요 1 | URL
앗!! 아무개님도요? 그럼 우리 팔찌 받는 줄 앞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겠군요. ㅋㅎ
저는 3으로 끝났어요.

아무래도 말은 그리려면 시간이 좀... 그래서 바꾸신것 아닐까요?

그게 저의 가장 큰 의문이죠. 저는 왜!!! 알라디너들을 만나면 단박에 알아볼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마에 `알라딘`이라고 써 있지도 않는데 말이죠.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다음에는 ˝알라딘˝이라고 써서 등에 붙이고 나갈까봐요. 진짜로요~~~~~

AgalmA 2015-06-29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유령퇴장>이랑 존 쿳시 <추락>이랑 비교해 읽어보고 싶어요...늘 그랬는데 시간이 없는 걸까요. 제 맘이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한 걸까요ㅎ

서버가 해외면 못 잡는다고 푸념하듯이 대통령, 나라 질타를 맘껏 하려면 해외에서;; 쿨럭)) 젠장)))

˝단발머리는 아니시잖아요˝ ㅋㅋ 마태우스님 유해진 닮았어요. 실례는 아니겠죵ㅎ;;
하트머리ㅋㅋ 보슬비님 유머 실력도 상당한데!
그래! 유머를 서재에서 배우는 거야!!ㅎㅎ

단발머리 2015-06-29 19:55   좋아요 1 | URL
아하... 저는 그래서 또 존 쿳시의 <추락> 검색 들어갑니다.
Agalma님 많이 바쁘시고 시간도 없으시니까, 한가한 제가 비교하면서 읽어볼께요.^^

마태우스님을 실제로 본 사람으로서 말씀드릴께요.
유해진보다는 마태우스님이 더 멋지구요.

유머를 서재에서 배우시고, 갈고 닦으세요~~ 보슬비님 같은 고수분들이 아주 많구요.
참고로 저는 Agalma님 유머 스타일도 좋아합니다^^

icaru 2015-06-2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오~ 단발머리님이시닷,, 하트 치워주세요 미투요!

단발머리 2015-06-29 19:56   좋아요 0 | URL
우하핫....
마태우스님을 봐주시구요.
저기 줄 서서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 보면서 느낀 건데요. 마태우스님이 머리가 작으세요.
그래서 사진 옆의 사람이 대두처럼 나옵니다.
김수현 옆 일반인처럼요.
제 사진도 그런 식으로 나왔구요. 공개 못 하는 진짜 이유는....

제가 너무 명랑하게 나와서요.
저, 명랑한 여자로 나왔어요. 흐흑...................................................

다락방 2015-06-2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단발머리님의 저 하트 안에 숨겨진 초미모의 포쓰가 느껴져요!! >.<

단발머리 2015-06-29 19:58   좋아요 1 | URL
진짜, 다락방님도.... 히히힛...
다락방님, 사랑합니다.

다락방님이 완전 초미모시죠. 저는 아닙니다.

저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마태우스 2015-07-04 0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런 멋진 서평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ㅠㅠ 제 강의도 들으시고, 흑, 뭐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앞으로 나오는 책은 꼬박꼬박 보내드릴게요! 글구 저도 페미니즘 공부 한창 했었는데, 그때 읽은 책 중 하나가 행복한 페미니즘이었지요. 저도 님 서재 가끔 들러서 인사 올릴게요.

단발머리 2015-07-04 22:48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저자 직접 방문 완전 감사드립니다. 저, 가족들한테 막 자랑하고 이 화면 캡쳐했어요~ 마태우스님의 역작과 야심작들은 제가 모두 차곡차곡 사 모을테니 걱정마시구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하며 감동까지 주는 좋은 책들 많이 쓰시기를 바래요~~~ 마태우스님과 아리따우신 사모님, 그리고 귀여운 기생충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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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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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완전 좋은 점은 내가 신청한 책이 선정되어 내게로 오는 일이고, 나름 좋은 일은 내가 신청하지 않은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저자, 새로운 책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박상미 에세이, 『나의 사적인 도시』는 나름의 즐거움을 준 책이다.

미술에 대해서는 모르는 내가, 더더욱 현대 미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재밌게 술술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예술을 다루는 사람의 진솔한 속이야기를 듣는 재미는 솔솔했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하니까. (서문)

그녀만의 사적인 이야기, 뉴욕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미술을 공부하기에 여러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내게는 생소한 작가들이고, 처음 보는 작품들도 많았지만, 그녀의 설명과 함께 하니 조금 더 쉽게 이해된다.

 

 

 

<뉴욕 부류>의 글도 재미있었는데, “서울과 별로 다를 게 없던데? 더럽기만 하고”라고 말하며 뉴욕을 좋아하는 않는 사람들은 보스턴 백인 동네를 아주 좋아한단다. 깨끗하고 예쁘고 안전하다면서 말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뉴욕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란 공항에서 맨해튼으로 들어오는 미드타운 터널을 통과할 때부터 흥분했다는 사람들이다. (215쪽)

그런 사람들이 뉴욕을 즐기는 장소는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그리고 밀도가 높은 빌딩 숲이라 한다. 뉴욕에 가게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인생에 놀랄 일만 있다면 그것 또한 별로겠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일들도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뉴욕에 가게 된다면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그리고 밀도가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서 보겠다. 마천루가 그리는 밀도의 미학과 1점 소실 원근법의 드라마(216쪽)를 경험해 보고 말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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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5-06-25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상미의 <뉴요커>라는 에세이를 재밌게 읽었어요. 그당시에 읽었던 책 팔할은 중고로 내놨던 거 같은데, 뉴요커는 갖고 있어요.. ㅎ 책이 나름 예뻐서...

단발머리 2015-06-25 15:32   좋아요 0 | URL
나름 유명한 필자군요. 전 이번에 처음이었는데 담백함 느낌이 좋았어요. 많이 어렵긴 했지만요^^

다락방 2015-06-25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는 십년전에 타임스퀘어, 엠파이어스테이트, 센트럴파크에 다녀왔습니다! 히히히

단발머리 2015-06-25 17: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는 십년전 추억이고, 저한테는 미래 계획이네요. 우앙~~~~~부럽습니다.

AgalmA 2015-06-27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 신청하고 싶다가도, 워낙 책을 이것저것 읽는 제 습관과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 회피증 때문에;_;)
평가단이 원하는 책을 건의하고 의견조율을 하나 보죠? 알라딘에서 일괄적으로 정해서 주는 줄 알았어요.

단발머리 2015-06-27 20:52   좋아요 0 | URL
네~ 신간평가단이 신청한 책 중에서 출판사와 연락이(?) 되는 책으로요. 저는 풀이 좁아서 신청한 책이 많이 선정되었다죠~~ 저도 아직 적응이 안 됐는데 벌써 6개월이 지났다는..... 슬픈...

AgalmA 2015-06-2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와 연락이 안되는 경우도 있어요? ㅎㅎ재밌다. 그러게, 벌써 6개월이군요. 흥미로운 신간이 많은 시즌이라면 신간평가단 대박이겠군요! 신기신기

단발머리 2015-06-27 21:22   좋아요 1 | URL
연락은 되는데, 책은 공짜로 못 준다~~ ㅋㅎㅎ 그런 경우가 있겠죠. 네~ 좋은 책이 많아서 좋았어요. 다음에도 하고 싶은데... Agalma님은 인문/사회쪽으로 하시면 딱이신데요~~~^^

AgalmA 2015-06-27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번에 인문/사회쪽에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신간평가단 책인 거 보고 얼마나 땅을 치며 부러워 했던지;_;))...

단발머리 2015-06-28 07:37   좋아요 0 | URL
이번에 또 모집하거든요. 6개월에 한 번씩이요. 저는 신간평가단을 연속으로 5번 하신 분도 보았어요. 성실하게 활동하면 오래 하시는 것 같아요. 다른 인터넷서점 신간평가단은 책 그냥 줘도 읽고 싶지 않은데 일단 알라딘은 그 쪽으로는 탑입니다^^ 선정된 책들이 와우!!! 앗! 사은품도 탑인가요? ㅋㅎㅎㅎㅎ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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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이 의미를 잃는 시대에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변방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쓴 소설이 나오면 으레 고색스러운 방 하나에 한꺼번에 모아놓고 체크인 해버리는 게 요즘 풍토이다. 토속적이다, 질펀하다, 한마디 내뱉어주면 된다고 여긴다. 평론가들의 모국어 기피, 근친 혐오. 그 배경 속에서 쓰고 있다.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대부분이다.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들어가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108쪽)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서울이 고향인 나에게 한반도 저 끝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 냄새, 정취, 풍경은 오히려 이국적이다. 그럼에도 그 토속적이고, 질펀하며, 끈끈한 그 무언가는 계속 내 마음을 끈다. 더 많이 듣고 싶다. 더 많이 읽고 싶다. 하나의 완벽한 우주, 하나의 완전한 세계, 한창훈이 만드는 우주, 한창훈이 만드는 세계를 말이다.

돌아올 준비를 하는 잠깐 동안 서둘러 낚시를 던진다.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가 물어댄다. 노래미, 용치놀래기 따위다. 뭐라도 좋다. 운좋으면 감성돔과 문어도 문다. 아주 커다란 동갈치를 낚은 적도 있다.

오후 새참으로 충분하다. 잡은 생선 회 뜨고 대가리와 껍질에 점심때 남은 김치를 넣고 소금 간하여 앉은뱅이 냄비 하나 대충 끓여놓으면 훌륭한 안주가 된다. 되들이 소주병이 빛을 발하는 것도 그 때이다. (32쪽)

 

근래에 젊은 작가들의 발랄한 문체와 최첨단 소재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면 이들이 나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존재함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나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가들이 살고 있음을 느낀다.

이 책에서는 예전에 상상했던 시인, 소설가, 작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테면, 시인은 가난해야 한다거나, 소설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전국을 떠돌아야 한다거나, 작가는 깊은 동굴 속에서 격력한 기침을 참아가며 인고의 순간들을 창작의 재료로 삼는다는 생각들이 꼭 상상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환상적인 모습’으로 상상했던 작가의 ‘원형적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생소하면서도 놀랍다. 작가님이 좋아하는 형, 유용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사고 많았다. 오해 때문에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뜯어말리고 달래서 들쳐업고 들어온 날도 많았다. 풀어낼 방법이 없는 슬픔. 제멋대로 돌아가는 상황. 파멸되어버리고 싶은 충동. 그게 수시로 얼굴을 디밀었다. 피는 더 데워지고 주먹 불끈거려졌다. 껍질은 삭풍에 벗겨지는데 용광로 같은 마음속 불길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한겨울 이불도 안 덮고 밤을 새우곤 했다. (185쪽)

 

마음에 불꽃을 품고 사는 일이 어디 쉬울까.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삶을 산다는 건 또 어떨까. 시시때때 안현미, 곤두박질 안현미, 그리하여 한번 더 안현미를 외치는(260쪽) 작가님이 말한다.

그럼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그러니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 시인의 성공은 세상의 실패를 증명하는 척도이다. 좋은 세상에는 아픈 시인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걱정 없는 것은, 계약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근사한 자세를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262쪽)

 

이제는 그의 소설을 읽어야겠다.

수필의 말이 아닌, 소설의 언어로, 한창훈을 읽고 싶다. 읽어내고 싶다.

그가 들려주는 바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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