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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닥터 슬립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평점 :
스티븐 킹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3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3억부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안 되기는 하지만, 정말 엄청난 것만은 확실하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최근에는 그의 문학성을 새롭게 평가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어서, 2003년에는 전미 도서상에서 수여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니까 이런 호러문학도 문학의 일부로 볼 수 있냐는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이제 스티븐 킹의 문학적 업적에 대해 일부나마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작품 중 하나이다. 작법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뭐, 이런 아들 둘을 어떻게 키웠나, 싶어 스티븐 킹 어머니가 대단하다,고 감탄하게 된다.
스티븐 킹은 작품수가 많다. 다작하는 이유를 본인이 밝혔다.

예전에 인터뷰 기자들에게 나는 크리스마스와 독립기념일과 내 생일만 빼고 날마다 글을 쓴다고 말하곤 했다. 거짓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일단 인터뷰에 동의한 이상 반드시 ‘뭔가’ 말해줘야 하기 때문이었고, 기왕이면 좀 그럴싸한 말이 낫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간이 같은 일벌레로 보이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일벌레라면 또 모를까).
사실 나는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남들이 얼간이 같은 일벌레라고 부르든 말든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쓴다. 크리스마스와 독립기념일과 내 생일도 예외일 수 없다. (어차피 내 나이쯤 되면 그 지긋지긋한 생일 따위는 싹 무시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일하지 않을 때는 아예 아무것도 안 쓴다. 다만 그렇게 완전히 손놓고 있는 동안에는 늘 안절부절못하고 잠도 잘 오지 않아서 탈이다. 나에게는 일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노동이다. 오히려 글을 쓸 때가 놀이터에서 노는 기분이다. 글을 쓰면서 보냈던 시간 중에서 내 평생 가장 힘들었던 세 시간도 나름대로 꽤 재미있었다. (유혹하는 글쓰기, 186-187쪽)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스티븐 킹다운 대답이다. 어떤 매체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인터뷰에서 ‘어쩌면 그렇게 많이 쓸 수 있나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그러게요. 나도 그게 궁금합니다. 다른 작가들은 그 시간에 다들 뭐 하나요?’하고 되물었다는 이야기가 세트로 유명하다. 그냥 킹이 되는게 아닌가 보다. 스티븐이 킹이다.
[닥터 슬립]은 그의 대표작 [샤이닝]의 후속작으로, 2013 브람 스토커 상 최고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리고 인간은 변한다. [닥터 슬립]을 쓴 사람은 [샤이닝]을 썼던 그 사람 좋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다. 강렬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한다는 관심사는 같지만, 대니 토런스를 다시 발견하고 그의 모험담을 추척하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여러분도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 꾸준한 팬들이 그래 준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저자 후기, 2권, 409쪽)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솜씨 좋은 스티븐 킹에 의해 대니 토런스의 삶이 다시 펼쳐진다. 이쯤에서, 아.... 나는 고백해야겠다.
나는 이 책을 민음사 서평 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았다. 나는 스티븐 킹의 작품을 하나도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는데, 첫째는 무서웠기 때문이고, 둘째는 무서웠기 때문이며, 셋째는, 아,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11/22/63]을 두꺼운 페이퍼백으로 구입한 것도, 안 되는 영어 실력으로 일말의 공포를 피해보려는 노력 때문이었으나, 결국은 영어와 공포 내지는 공포와 영어가 합작을 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작품 소개를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으리라, 미루어 짐작했다. 내 예상은 틀렸다.
문제의 단락들은 대략 이렇다.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칙칙한 얼룩이 변기 커버에도 있고 샤워 커튼에도 있었다. 처음에는 대변인가 싶었는데 똥이 누르스름한 자주색일 리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살점과 썩은 살가죽이 시야에 들어왔다. 매트에도 발자국 모양으로 그런 얼룩이 남아 있었다. 남자의 발자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너무 앙증 맞았다.
"맙소사." 그녀는 속삭였다.
그녀도 결국에는 싱크대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1권, 19쪽)
그 후로 여덟살때부터 자신을 성폭행한 아버지를 죽이는 앤드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패스해야겠다. 그 이후로도 어마무시 무서운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 했다. 이유는 상기와 같다. 하지만, 스티븐 킹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히 [샤이닝]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이 책은 무더운 여름밤의 즐거운 동행자가 되어 줄 거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