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는 죽음에 관한 책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이 넘쳐났다. 메리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죽었고, 평생의 친구 앤이 죽었다. 진심으로 마음을 주었던 사람 헨리가 죽었고, 그리고 메리가 죽었다. 다 죽었다.


 

<마리아>는 남편에 의해 정신병자용 수용소에 갇힌 마리아의 삶과 그녀를 돕는 재미마의 인생이야기를 고백의 형태로 들려준다. 당시 유행하던 고딕 소설의 틀을 차용한 것인데, 내용 자체는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우주여행이 가능하고 인공 심장술이 보편화되고 있는 이 21세기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고통받는 여성들의 삶과 소설 속 여인들의 삶이 너무나 닮아있어, 읽는 내내 답답했다.

 


그 사람과 저는 근처 거리로 나가서 구걸했고, 제 몰골이 일 없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몇 푼 끌어내 잠자리를 구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병이 낫고, 누더기를 가장 좋아 보이도록 입는 법을 배운 저는 만나는 짐승 같은 자들의 욕망에 굴복하게 되었고, 더욱 짐승 같은 주인어른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혐오감을 느꼈어요. (179)

 


재미마의 고백은 가난한 여성이 가난한 남성과는 다르게 경험하는 범죄와 유혹의 현장을 그려내 보인다. 똑같이 철저히 가난한데, 왜 가난한 여성의 고통은 가난한 남성의 고통과 같지 않은가. 왜 여성은 다른 종류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미치지 않은 마리아가 정신병자용 수용소에 갇힌 이유는 그녀가 소유한 재산을 남편이 원했기 때문이고, 재산을 소유한 그녀가 남편을 떠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좀 진정하더니 주머니에서 신문을 꺼내더니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지만 별수 없이 남편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신문을 낚아채어 보았다. 광고 하나가 곧 눈에 들어왔다. “마리아 베너블즈는 특별한 사유 없이 남편으로부터 달아났음. 그녀를 숨겨주는 사람은 누구든지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임.” (264)

 


헤어지고 싶은데, 헤어질 수가 없다. 폭군 같은 처사와 외도를 참아왔는데도, 거짓말로 마리아를 속이고 그녀를 노예처럼 다른 남자에게 팔려고 하는 남자인데. 그런 남자와는 헤어져야 하는데. 그는 헤어지자는 말을, 그만 만나자는 말을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왜 사람들은 그녀가 특별한 사유 없이 남편으로부터 달아났다는 그의 말만 믿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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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27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틸다 읽는 중인데 이 세 편 중에서 마리아가 제일 좋았어요. 부당함을 알고 고쳐야된다고 말하고 있어서요. 이 책이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면 그건 마리아가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메리는.. 저한테 너무 답답해요. 병약하고 죽고 병약하고 죽고.. 하아-

단발머리 2021-06-01 21:57   좋아요 0 | URL
병약했던 메리가 죽을 때 저의 슬픔이라는 것은 뭐...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메리가 죽으면서 소설이 끝났죠. 하아~~~

Falstaff 2021-05-27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다른 건 다 모르겠고요, 이 책, 오지게 비싸기로 유명짜한 한국문화사에서 만든 건데, 솔직하게 얘기해주시면 정말 좋겠는데요,
영어를 잘 한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 번역문 수준이 괜찮은가요?
제가 워낙 데서 이 출판사 번역서는 선택을 하지 않아 그렇습니다. 대학원생이 아니고 공부 잘 하는 학부생 시켜서 번역한 거 그냥 책으로 낸 수준이, 이 책은 아닌 모양이지요?
에구... 딸꾹. 취중진담, 나중진땀...이라더니 그 꼴 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근데, 이거 취중에 자폭 아녀?

단발머리 2021-06-02 11:03   좋아요 0 | URL
일단 오지게 비싸기로 유명한 이 출판사의 이 책을 전 구입하지 않아서요. 도서관에서 사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 번역 수준에 대해서는, 저는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이.... 소설의 내용 자체가 평이합니다. 특별한 영어실력을 요구하지 않아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는요. 문제가 있는 부분은 <작품 해설>쪽입니다. 내용이 어려운 게 아니라 앞뒤가 안 맞는ㅠㅠ
자폭은 아니신걸로 생각됩니다^^
 


















신지예를 응원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빈 서판』을 읽겠으니 가지고 오라고 해서 실제로 봤더니, 생각보다 두껍다. 다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목차만 봐야지 하고 펼쳤는데, 18장이 <젠더>. 18장을 펼쳤다.

 

스티븐 핑거 주장의 핵심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남녀는 한 종으로서 함께 진화했고, 최고의 심리 측정 기술에 따르면 일반 지능의 평균도 비슷하지만(601), 분명히 남녀 간에는 차이가 존재하는데, 남자들은 던지기를 잘하고 여자들은 손재주에 뛰어나며, 여자는 인간관계에 더 세심하고, 남자는 불분명한 보상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처럼 각각의 영역에서 남녀 간에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603) 남녀 간의 차이와 그로 인한 구별은 전 지구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성 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남녀 학생 간의 수학 점수 차이가 적게 나타나는 것이나, 여성의 이동이 극도로 제한되는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의 공간 지각 지수가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보다.

 

604쪽과 615쪽에는 상반된 주장이 나온다. 604쪽에는 이미 대학, 전문직, 스포츠에 진출하는 여성의 비율이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압도적인 남성 우위에서 50 50 또는 여성 우위로 바뀌었다고 말하면서도, 615쪽에서는 많은 여성이 계속해서 공부하지 않음으로써 고급 인력이 부족하고 산업적으로 손해를 입고 있으며, 이것이 여성의 잘못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남녀 간의 불균형이 성적 편견의 증거로 사용되는 것(616)을 비판하고, 결과의 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을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617)고 주장한다.

 


세상에. 622쪽에는 남자는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여자는 정부 기관과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정말 몰라서인가. 여성이 아이들의 일상적인 울음에 더 민감하다는(604) 그와 같은 학자들의 과학을 빙자한 주장과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현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여성의 일로 고정화된 상황 속에서, 일하고 싶은 여성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가. 남성 위주의 기업문화가 지배하는 일반 기업체인가. 아니면 비교적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고 근무 시간 이외의 업무 압박이 적은 정부 기관과 비영리 단체인가. 결국, 스티븐 핑거,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가 말하고 싶은 바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의 가능성이고, 개인의 능력을 도외시하는 이런 환경은 모두에게 비효율적이어서 여성마저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625)인데, 그렇다면 제발, 그 비용을 우리가 지불하게 해 달라.

 


강간에 대한 부분도 너무 뻔하다. 인간은 동물인데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 사이에서도 강간이 성행하며, 남자들은 종종 그들과 섹스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성은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모든 생명체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도록 지극하고 진지하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은 문명의 발전을 통해 동물적 행동 방식을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지양해왔다. 아무 장소에서나 배설을 하고 육류를 생으로 먹고, 맘에 안 든다고 지나가는 사람을 때리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화를, 인간 문명의 발전을 왜 무시하는가. 다른 부분은 다 사회화되고 문명화되었는데, 어떻게 성적인 욕망만은 원시 상태 그대로인가. 유행하는 셔츠에 로퍼를 신고 손에 아이폰을 들고 있는데, 왜 심성은 원시인과 똑같다고 주장하는가. 왜 원시인 수준으로 떨어지려 하는가. 630쪽부터 643쪽에서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서 함께 읽었던 수잔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 대한 반론이 가열차다. 한 번 읽어봄직하다. 

 

 


20대 남성들의 억울함을 이해한다. 이를테면 2021년 현재, 서울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서 회장(7080 이전 세대에게는 반장) 선거가 있었는데, 회장과 부회장에 모두 여자아이들이 선출되었다. 16명씩 남녀 동수인 반에서 여자아이들이 대표로 선출되었다는 건, 여자아이들은 전부 여자아이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크고, 남자아이 중 일부 표가 이탈해서 여자아이에게 투표했다는 뜻일 것이다. 남자 아이들이 보기에도 회장과 부회장에는 여자아이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달랐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와 6학년 때 학급 반장이었는데, 사이좋게(?) 반장은 남자아이가, 남녀 부반장은 남녀로 나뉘어 선출되던 때에 흔하지 않은 경우였다. 아니나 다를까, 전교 회장 회의에 참석하러 갔더니 12개 학급 반장 중에 여자가 한 명뿐이라 내가 한다고 하면 투표도 할 것 없이 바로 전교 부회장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전교 부회장이 되었을 때, 학교의 발전과 선생님들의 친목과 아이들의 복지에 우리 엄마가 기여할 만한 돈과 시간이 없었기에, 난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여자 부반장 중 한 명이 전교 부회장이 되었다. 그다음 해에도 그랬다. 12개 학급 중에 여자인데 반장인 사람은 나 하나였다. 아니, 그 해도 그 전해도, 여자이면서 반장인 사람은 학교에서 나 하나였다.

 

누가 내 친구들에게 남자가 반장이어야 한다고 말해줬을까. 누가 반장은 남자가 해야 한다고 말해줬을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입 밖으로 그 말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았다. 반장은, 그 반을 대표하는 아이는 그 반의 남자아이여야 한다는 걸 말이다. 열둘, 열셋의 아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젠더의 차이가 역할과 능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래 집단 속에서 그 사실을 배웠고 내면화했다. 아이들은 배웠고 그렇게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열두 살에 형성된 가치 판단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개인을 지배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시장 선거가 끝나고 토론회가 있었는데, 젠더 갈등에 대해 토론을 하던 중, 더불어민주당의 여성의원이 여성들에게는 제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장애물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식이 변호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들인 경우에는 자랑스러울 수 있겠지만, 딸이 변호사를 한다거나 정치적 리더가 된다고 할 경우에는 원하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재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이며 최근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그건 가정교육 문제인데 그걸 왜 여기에 가지고 오냐며 말을 자르며 윽박질렀다.

 

나는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않아서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굳이 해보겠다. 아주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아이들이 교수를 꿈꾸지 않고 교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교사는 교수만큼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의 예는 같은 일이되 사회적으로는 한 단계 아래 직군으로 이해되는 교사를 의미한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는 남자아이가 반장을 해야 한다는 인식과 그 틀을 같이 한다. 공부를 잘하면, 아주 잘하면 S대에 입학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S대에 가면 된다. 입학 여부는 성적으로 결정되고, 그건 남자와 여자에게 차별적인 요소로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학 지도 설문 자료에 재수를 할 수 있다재수는 절대 안 된다항목 중에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할 수 있다, 여자아이들 대부분은 할 수 없다에 표시하는 현실 속에서, 사회적 인식이 개인의 역량과 능력, 그리고 미래까지를 한정하고, 그 근거가 성별이라고 할 때, 그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딸들에게는 1년을 더 투자할 만한 여력이 이 세계에는 없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랬다. 환경이 이러해서, 삼수해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 명문대에 입학한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많이 보았다. 대부분 남자아이들이었다. 난 여자인데, 우리집은 안 그랬는데! 라고 말하는 여성이 있다면, 축하한다. 여성인데도, 딸인데도 자원을 아끼지 않고 투자해 주신 부모님께 오래오래 효도하시길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중학교에서는 여자 회장이 여자 부회장과 함께 학급의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취업 시장에서 남녀가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는가, 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여자가 모유를 먹일 수 있어서, 여자가 더 양육에 적합하도록 진화했으니까, 여자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서 상대적으로 급여가 적은 직업군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여성의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또한 실질적으로 강요되는 양육과 가사, 각종 돌봄 노동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똑똑하고 야무진 여자아이들이 부모의 현명한(?) 조언에 따라 그러한 직업군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나는 저자들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내 생각과 책의 내용이 맞설 때, 내 의견이 틀린 게 아닐까 묻는 사람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내가 무식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석학 스티븐 핑거의 우리는 동물이다의 주장과 비효율성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라는 협박에는 아, 정말 할 말을 잃게 된다. 스티븐 핑거는 틀렸다. 제발, 역차별의 공포에서 벗어나라. <국민의힘>은 다른 사람을 빨갱이로 부르며 내부의 적을 키우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당대표 후보 중의 한 명이며 여론조사에서 1위인 사람은 2030 남성들에게 너희의 적은 저 이상한 페미들이라고 선동하며, 선동에 대한 정치적 이익을 맘껏 누리고 있다. 스티븐 핑거는 협박하고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는 겁박한다.

 


그래서 신지예를 응원한다. 나는 사실 신지예를 잘 모르고, 여러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혐오의 정치, 분열의 정치를 선동하는, 그래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저 못된 사람과 마주 앉아서, 그 예의 없는 소리침과 윽박지름 속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차분하게 피력한 신지예를 응원한다. 페미니즘적 가치를 실천할 만한 권력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이제부터 신지예를 주목해 보려고 한다. 피해자 코스프레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꾀하는 분열의 정치가 물러서고, 제발 표면적으로라도 남녀평등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위해. 힘내라, 신지예! 잘했다, 신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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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22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핑거 너무 충격입니다. 이 분 <우리본성의 선한천사>그 분 아닌가요?정작 여성학 관련책은 전혀 안읽은 듯한 사고방식이네요. 저 좀전에 졸렸었는데 지금 잠이깼어요.

단발머리 2021-05-22 22:10   좋아요 2 | URL
네, 그 분이죠. 진화심리학이나 인지심릭학,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기는 해요. 과학, 특히 사회과학에서 관찰자의 관점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는데, 전능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18장만 읽고 페이퍼를 쓴 거라 제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확신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청아 2021-05-22 22:18   좋아요 1 | URL
900쪽의 압박이 좀 있지만 저도 읽어볼래요. 특별히 빨간펜 준비!

단발머리 2021-05-22 22:35   좋아요 2 | URL
전 다 읽으려 했는데 18장 읽다가 급실망해서요. 어떻게 할지 아직 모르겠어요.
미미님 읽으신다니 미미님 리뷰만 읽을까요 어쩔까요~~~

청아 2021-05-22 23:00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이 적절하게 호두까기하듯 까신것 보고 감동받았어요. 계속해주심 너무 고맙고 아니어도 저는 덕분에 자극받음요. 오늘 저도 짧막하게 이준석이 뉴스에서 비슷한 얘길하는거 듣고 뒷골이... 월욜 책 주문때 같이 시키려구요.

단발머리 2021-05-22 22:53   좋아요 3 | URL
제가 뭐 호두까고 그런 부지런한 사람은 아닌데요. 아.... 저기 위의 18장 중 강간에 관련된 부분은 참 어이가 없습니다. 저는 일반 남성들이 이런 글을 읽고(물론 책 읽는 남성이겠네요. 책이 두꺼워요 ㅠㅠ) ‘여성‘들에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펼쳐갈 그 언어의 향연이 두렵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스티븐 핑거잖아요. 그렇다잖아요. 세계적인 석학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가요. 남성의 본성과 욕망을 무한정으로 긍정해주는 이런 언설이 걱정스럽습니다. 남년간에 차이가 없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것이 시대를 통해 이렇게 남성과 여성 전체에게로 그 역할과 능력이 고착화되는 데는 사회적인 영향이 큰데 말입니다. 휴우~~ 마음 좀 가라앉히고, 전 차분히 미미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국민의힘 당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게 궁금해요. 저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 제1야당 당대표가 된다면. 헐.

난티나무 2021-05-22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진짜.... ㅠㅠ
어쩌면 좋을까요...
단발머리님 말씀 구구절절 옳습니다.

단발머리 2021-05-22 22:33   좋아요 2 | URL
어휴ㅠㅠㅠ 그렇지요 뭐. 유치원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한결같이 여자애들에게 밀리는 대다수 남자 아이들의 심정 이해합니다. 진짜 제가 완전 이해합니다. 하지만 스티븐 핑거가 역차별 이야기하는데 그건 좀 아닌거 같네요 ㅠㅠ

2021-05-22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2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2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2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2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2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3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1-05-31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참, 신지예님 정말 좋죠. 장혜영의원님과 함께 제가 응원하는 여성정치인 😙전 가끔 발언영상 보고 그러다가 막 울어요. 그리구 글 잘 읽었어요!! 그나저나 이준석 때려주고 싶다 ㅋㅋㅋ 얔ㅋㅋ 나와 넌 나랑붙자 ㅋㅋㅋ 감히 지예님과는 끕이 안돼!!

단발머리 2021-06-02 13:11   좋아요 0 | URL
신지예님 좋아요. 맨날 훼손된 벽보로만 얼굴 보다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날 자세히 봤네요.
이준석과 한 판 붙을 사람 제가 계속 찾고 있었어요. 아주 잘됐습니다!! 이준석, 나와!!!!!!!!!!!!!!!!!!!

다락방 2021-06-02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준석 인기가 상당하죠... 사회에서 누가 인기를 끌고 있느냐가 또 그 사회를 말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당대표로 뽑힐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것 자체가.. 하아.
저는 저 토론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제, 신지예를 잘 알지 못하고 이준석도 잘 모르는 회사동료(여)가 토론을 보면 신지예가 밀리는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도무지 몰 수가 없어요. 보면서 막 제가 제 가슴을 칠 것 같아서요.

저는 신지예랑 매우 많이 어긋나는 시점이나 시선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다른 후보들과 함께 있다면 신지예보다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편이지만, 그러나 신지예가 신지예이기 때문에, 여성이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고, 이 나라에서 정치를 하고자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또 차별당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준석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을테고요.

아 답답하네요 이런 상황이. 저런 사람이 한 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답답해요 ㅠㅠ

단발머리 2021-06-02 13:15   좋아요 1 | URL
제가 토론을 풀버전으로 본 바로는, 신지예씨가 밀리지는 않았지만 워낙 이준석이가 말을 자르고 소리를 지르고 하다 보니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구요. 이준석도 이 쪽으로 아주 개발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 뭐, 쉬운 상대는 아니죠.

여성 정치인이어서 겪는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신지예씨는 페미니즘을 전면으로 내걸고 있어서 ‘전면적인‘ 거부 반응 뿐 아니라 적극적인 방해 공작도 있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신지예씨 의견 중에 반대하는 것도 많아 사실 이 글을 올릴 때도 좀 고민되고 했습니다. 다만, 다락방님 댓글처럼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그가 감당해야할 차별과 억압이 너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올렸어요.
이준석이는.... 아마 당대표가 되지 않을까요.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시간이 흘러가기를,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며 보냈던 수많은 날들이 떠오른다. 

할말이 너무 많아 아무 말도 쓰지 못할 것 같다. 상황과 환경에 확연한 차이가 있음에도 몇몇 장면은 『82년생 김지영』과 겹쳐진다. 

여자의 삶이 똑같이 하나의 모습이라는게 슬프다.  



내가 네 살 때, 스웨터 소매가 팔 위로 말려 올라가지 않게 손으로 소맷자락을 붙들고 코트 입는 법을 가르쳐준 아버지에 대해서는 오직 자상함과 배려의 이미지만 남아 있다. 그의 말이 곧 법인 가장,식구들에게 호통을 치고, 말대꾸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가장, 전쟁 영웅이나 일터의 영웅, 그런 아버지는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내 아버지의 딸이었다. - P26

게다가 어머니는 정리해야 할 영수증, 맞이해야 하는 부인네들, 풀어놓아야 하는 상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장미 나무 밑의 야생초를 뽑고, "이렇게 하면 피부가 좋아진단다"라고 말하면서 5월의 아침 이슬로 내 뺨을 문질러 나를 깨우는 여유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언제 어디서나 독서에 몰입한다. - P33

그 점에서 나는 지역 소식을 알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저녁 식사 후에 신문을 훑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나를 벗어나, 우리를 벗어나, 굳어진 낯선 그 얼굴이, 어머니가 빠져드는 그 침묵이, 꼼짝도 하지 않는 완벽한 부동자세에 빠져 무거워진 그 몸이, 나는 부럽다. 오후마다, 저녁마다, 일요일마다, 어머니는
신문이나 시립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때로는 새로 산 책을 꺼내 든다. 그러면 아버지는 "내가 말하고 있잖아, 그 소설책들 지겹지도 않아!" 하고 고함을 치는데, 어머니는 "이 이야기 다 읽게 좀 내버려둬"라고 대꾸한다. - P33

나는 나의 파렴치한 행동, 예를 들면 좋은 점수를 받으며 느끼는 기쁨,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는 즐거움, 어머니에게서 사탕을 훔치는 즐거움 같은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하지만 내 타고난 장난기, 나의 조심성 부족은 어떻게 해도 숨길수 없다. 공책에 얼룩을 묻혀놓고, 식탁에서 공부했다는 말을 어찌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바느질 천에 묻은 얼룩진 손가락 자국들, "청결은 영혼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여러분!" 내 본모습이 드러난다. - P78

이야기 속 여자들은 언제나 속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실패하고, 결국 행복은 와지끈 부서지고 만다. 브리지트는 그 부분에서는 실패했고, 나는 더는 브리지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게다가 완전한 헌신에 대한 그녀의 열광,한 남자를 사랑하면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의 똥도 먹을 수 있다는 그런 열광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P96

아주 어려운 수학에 관해서,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어에 관해서, 예를 들면 루소에 관해서 그들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그들은 지루해한다. 여자아이들의 대수학 문제는 남자아이들의 문제와 견줄 수 없다. 우리 집에서나 학교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으면 그런 성공은 오히려 결점이 되어버린다. - P125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자유롭게 가고, 점심은 먹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 내 방에서 공부하는 그런 자유를 누리는 처녀 시절. 결국 나는 고독을 상실할 것이다. 둘이 사는, 가구가 딸린 조그만 방에서 우리가 쉽게 격리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하루에 두 번 식사하기를 원할 것이다. 온갖 종류의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결국 재미없는 삶. 나는 이런 생각들을 내몬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자아를 걱정하고, 근본적으로 버릇없는, 외동딸이 하는 생각, 부끄럽다. - P171

점잖은 사람들은 비웃는다. 결혼의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면 아예 결혼하지 마, 남자도 결혼하면 손해다, 주위를 둘러봐, 최저임금만 받는 사람들, 공부할 기회도 없었던 사람들, 종일 볼트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고, 아니야, 세상의 불행을 모두 다 긁어모아한 여자의 말문을 막아버리기란 너무나 쉬운 일이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내가 입을 다물 수밖에. - P206

시시포스와 그가 끊임없이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바위, 지평선을 등지고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남자는 그럴듯하게라도 보이지만, 부엌에서 1년에 365번 프라이팬에 버터를 던져넣는 여자는, 멋지지도, 부조리하지도 않다. 그냥 여자의 삶이다. 그러면 대체, ‘당신은 체계적이지 않아‘는 무슨 말인가. 체계적, 여성들을 위한 멋진 말, 모든 잡지에는 조언들로 넘쳐난다. 시간을 버세요, 이렇게 저렇게 하세요, 내 시어머니 같다. 만약 내가 여러분이라면 좀 더 빨리하기 위해 이렇게 하겠어요, 하지만 사실 이런 비결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우울해하지도 않으면서 최단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일을 할 수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 P214

공원에서 우리는 여자들끼리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거나, 오후 한창때 오솔길 사이로 한가롭게 산책을 한다. 시간을 죽이며,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며. 여자들이 내 아이의 나이를 물어보았고, 그들의 아이와 치아, 걸음, 청결 상태를 비교했다. 나중에 아이가 걷게 되고 다른 아이들과 놀게 되었을 때, 우리는 날카롭게 감시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 P218

그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길거리의 사람들을 밀치면서 안시를 돌아다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벤치에 앉아서, 오후가 흘러가기를, 아이가 어서 자라기를, 기다려본 적도 절대 없었다. 그는 일이 끝난 후,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넣고, 조용히 안시를 구경했고, 그에게는 모든 공간이 자유로웠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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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아롱이가 모든 학생이 필히 가입해야 하는 특별활동반에 들어갔는데, 원하던 반(바둑반)에 들어가지 못하고 과학실험반에 가게 됐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엄마, 내가 가려던 반이 마감됐어요, 3분만에, 하길래, 원래 1분 안에 마감이야, 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원치 않은 과학실험 반에서는 하필이면 손이 많이 가는 생태기둥 테라륨 만들기가 과제였다. 1.5리터 패트병이랑 고운 흙은 개인이 준비하고 씨앗과 자갈, 물풀, 송사리 3마리는 학교에서 준비해줬다. 집으로 오는 중에 한 마리가 죽었다. 굿바이, 송사리. 



뚜껑을 양파망 같은 망으로 막고 자갈, 흙을 깔고 씨를 심었다. 손으로 간신히 잡을 만한 씨를 네 칸으로 나눈 흙 위에 종류대로 심었다. 그 아래에는 물을 받아 물풀을 넣고, 송사리 2마리를 풀어줬다. 이틀이나 지났을까. 얇게 깔린 흙을 뚫고 새싹이 자라났다. 생명은 얼마나 위대한가. 얼마나 놀라운가. 씨가 너무 작아 넉넉하게(?) 묻었는데, 세상에, 작은 새싹들은 흙을 밀어내고, 서로 어깨를 걸고 세상을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 이 작은 씨앗들이 살겠다고, 빛을 보겠다고, 자라나겠다고, 어기영차 힘을 내는 모습이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끈질긴 생명력이 부담스러웠다. 손으로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씨앗이, 죽은 것처럼 보였던 작은 씨앗이, 흙 속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영양분을 섭취하고 물을 마시고 햇볕을 쏘고 나서는, 새로운 존재로 변신했으니 말이다. 예전의 씨앗은 잊어라. 나는 새싹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작은 새싹들이 너무 당당해서 조금 무서웠다.

 


그렇게 생태기둥 테라륨 2층이 번성하는 와중에 1층에 살던 송사리 두 마리가 죽었다. 볕이 너무 잘 들면 물이 뜨거워질까 베란다 한쪽에 잘 보관했는데. 부지런한 물질이 안 보여 물풀 속에 숨었나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물풀에 걸려있는 송사리를 발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활기차게 움직이며 즐겁게 수영하던 송사리들이 이제는 죽었다. 썩고 있었다, 송사리 두 마리가.

 


생명이 있을 때는 그 작은 씨앗조차도 그렇게나 활발하고 당당하고 예쁘건만, 생명을 잃은 송사리는 무서운 흉물이 되어버렸다. 생명이 있을 때와 생명이 없을 때. 그 얇은 간극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사는 것과 죽는 것. 생명있음과 생명없음. 삶과 죽음

 

 


죄 많은 사람을 공격할 때, 죽음은 진정 공포의 제왕답다! 동정심 많은 사람은 어떤 위로도 찾지 못하고, 영원히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살아남은 자들도 각자의 길을 마쳐야 하니, 다시 만나자는 인사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검다! 무덤은 진정 망자를 받아들인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고통이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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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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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이 상상하기 어려운 두 사람의 시간은, 은영과 인표가 함께 보냈던 시간과 닮아 있을지 전혀 다를지 궁금했다.

마음속에서 부실한 선반 같은 것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어두운 곳에서 낡은 나사에  매달려 있던 것들이 결국에는 내려앉는 그런 소리였다. 여기 계속 있을 수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도 있을 듯한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47)

 


외국소설과 한국소설의 좋음지점이 다르다. 외국소설의 경우는 시대나 배경, 주인공의 성, 인종 등의 점프를 통한 ‘새로운 경험이 소설 읽기의 중심이 된다. 나는 흑인이고, 남자아이고, 고아이다. 나는 미혼모의 딸이고, 그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집 막내딸이며, 그리고 워킹맘이다. 여기는 대학교 캠퍼스이고 여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고 여기는 미국이어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나를 상상한다. 한국소설은 다르다. 한국소설을 읽는 나는, 작가가 말하는경험을 이미 경험한 사람이다. 나는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것 같), 이상한 일인지 알면서도 왜 그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작가가 말하는마음속의 선반이 내려앉는 소리가 뭔지 안다. 그래서 좋다.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고등학교 동창과 통화하는 그런 기분이다.

 




넷플릭스 예고편과 유튜브 클립을 몇 개 보았는데 안은영 역에 정유미가 너무 잘 어울려 이 책은 정유미 때문에라도 영화화 됐어야 했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한문 선생님이 좋아하는 배우인 건 감사한데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한문 선생님과는 많이 달라서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졌을지 그것도 궁금하다. 안은영이 힘이 딸릴 때마다 충전하는 게 좋았다. 충전 방식이 뽀뽀나 키스, 섹스가 아니라 한문 선생의 손을 잡는 것이어서 더 좋았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키워가는 시간 속에서 손을 잡는 것만큼 매력적인 접촉방식이 있을까 싶다. 가장 떨리고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오랫동안 사용 가능한 사랑 충전 방식, 손잡기. 손잡기를 애용하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자. 그 손을 잡고 내 삶을 충전해가자. 이상 안은영식 손잡기 캠페인.

 


결말이 너무 안전한 선택 아니었나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일부러 뺀 것처럼 로맨스적 장치를 뺀 듯했지만 마지막 그림은핑크빛 사랑이 담뿍 담긴 커플이었으니 말이다. 한 사람만을 위한 심장을 믿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가끔 폭풍우가 불어닥칠 때는 어깨를 파묻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인간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듯 내게 필요한 사람도 딱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 딱 한 사람. 바로 그 사람.

 

 

요즘 고딩 사이에서는 곱창이 유행이다. 먹는 곱창 아니고 굵은 머리끈 곱창이다. 20년 전 유행이 다시 돌아온 듯하다. 아니다, 어쩌면 20년 내내 유행했는데 나만 몰랐을 수도 있겠다. 하여튼 유행에 민감한 우리 집 패션 리더에게 곱창을 몇 개 사줬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서 놀랐다. 검색 전문가 패션 리더는 링크를 보여주며 여기에서는 곱창 30개에 11,000원이라 굳이 알려주기에 심기 관리 차원에서 주문해줬다. 30개 중에서 내가 고른 게 이렇게 4개다. 며칠 전만 해도 나는 정세랑 덕분에 신비한 능력을 소유한 초강력 곱슬머리였는데, 이번 문단을 지나오면서 세련되지 못하고 정신없이 산만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결론적으로는, 이상한 능력을 소유한 초강력 곱슬머리의 정신없이 산만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인표는 꽃무늬를 싫어했다. 꽃에 반감이 있다기보다는, 그게 너무 쉬운 선택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꽃무늬를 고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련되지 못하고 정신없이 산만한 편이라는 게 인표의 속생각이었다. 꽃무늬 원피스도 꽃무늬 가방도 싫다. 신발이라면 더더욱 싫다. 은영에겐 열대의 꽃이 다홍색으로 크게 번지는 블라우스가 있었고, 잔꽃들이 바랜 색으로 가득한 어정쩡하게 긴 원피스도 있었고, 복주머니처럼 힘없이 생긴 인조가죽 가방 안쪽은 뜬금없이 꽃무늬 안감이었고, 지갑조차 낡은 꽃무늬의 비닐 코팅 장지갑이었다. 별로 여성성을 강조하는 타입도 아니면서 은영은 늘 꽃무늬를 골랐다. (239)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만약 능력을 가진 사람이 친절해지기를 거부한다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치관의 차이니까.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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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5-17 2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기만 하고 글은 못 쓴 책... ㅎㅎㅎ 다시 읽어야 겠네요.(언제쯤?) 막 단발머리님 말씀 뭔지 알겠고 막 막 .. ㅎㅎㅎ

곱창끈 유행 돌아온 거 맞네요! 20년도 전에 했던 건데!! 오래된 곱창 얼마전에 하나 버렸음.ㅎㅎ 근데 곱창 이름 바꿀 수는 없나 급 생각이... 듭니다...ㅎㅎㅎㅎ

청아 2021-05-17 20:29   좋아요 2 | URL
그쵸?!! 채식 이름으로요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17 20:32   좋아요 2 | URL
난티나무님 / 다시 읽어도 좋으실듯합니다 ㅎㅎㅎ 유행은 돌고 돌아서 말이지요. 오래된 거는 다 레트로라 하대요.

미미님 / 채식적 이름으로 뭐가 좋을까요. 꼬불꼬불하면서도 동그란 거니까.... 어니언링?
실용편: 너 어니언링 새로 샀구나! 완전 이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05-17 20:33   좋아요 1 | URL
으핫! 어니언링 너무 좋은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17 20:35   좋아요 2 | URL
괜찮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님도 다른 거 추천해주세요! 채식으로다가요!!

청아 2021-05-17 20:38   좋아요 2 | URL
음...채식은 아니지만 꼬불이 어때요? 야채조차 다치지 않게ㅋㅋㅋㅋㅋㅋㅋㅋ그저 관념만으로ㅋㅋㅋㅋㅋ
난 어제 꼬불이 두개 샀잖아ㅋ

단발머리 2021-05-17 20:39   좋아요 1 | URL
와아아아아!! 꼬불이 괜찮은데요!! 👍🏼👍🏼👍🏼👍🏼👍🏼근데 저는 왜 꼬북칩 생각나지요? 🤔

청아 2021-05-17 20:41   좋아요 2 | URL
단발머리님 간식먹을 시간인거죠😆 딩동딩동!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17 20:43   좋아요 2 | URL
전 방금 팥죽 한 그릇 때린 사람이라는 사실과 요즘 꼬북칩 중에는 웬일인지 초코꼬북칩이 계속 할인중이라는 사실을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5-1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 소설과 한국 소설의 좋은 점 다른 거 비유 참 좋네요~👍
저는 당분간 한국 소설은 안 읽을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이지만, 언제가 문득 그리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손잡으면 충전되는 거 너무 좋아요~ 멀리 있으니 저는 리모컨 하이파이브로 단발머리님께 충전을 받겠어요~🙏

단발머리 2021-05-21 10:34   좋아요 1 | URL
좋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기뻐하고 있습니다요^^
기회가 된다면 붕붕툐툐님과의 더 격렬하고 화이팅 넘치는 실사 하이파이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근데 왜 당분간 한국 소설 읽지 않으실 거라 느끼시는지 좀 궁금하네요~~~~

붕붕툐툐 2021-05-21 11:07   좋아요 0 | URL
실사 하이파이브~😍
어쩌다보니 쌓아놓은 읽을 책 리스트가 다 외쿡 작가라서요~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21 11:13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외국 여행 무사히 마치시고 곧 돌아오시어요!🤗

psyche 2021-05-18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외국소설과 한국소설의 좋은 지점이 다르다는 설명이 정말 찰떡이네요. 딱 맞는 거 같아요.

그리고 안그래도 저 작년에 한국에서 곱창 사 왔어요. 첨에 동생이 언니 곱창 사가라길래 먹는 곱창을 사가라는 줄 알고 뭔 소린가 했다는... ㅎㅎ 영어로는 scrunch라고 부르더라고요.

단발머리 2021-05-21 10:37   좋아요 1 | URL
프시케님도 그렇게 느끼셨다니 저의 느낌이 맞은 걸로 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
한국에서 곱창이 유행이 맞긴 하네요. 미국까지 물 건너 갔군요. scrunch는 곱창머리끈이라고 나오네요. 미미님이랑 저는 어니언링이랑 꼬불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5-20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페이퍼 너무 좋다. 인용하신 문장도 좋아요. 이 책 이미 읽은 책인데, 그리고 이미 정세랑 한껏 좋아하다가 이젠 좀 시들어진 편인데(시선으로부터 에서 저는 좀 매력이 반감됐어요), 근데 이 페이퍼 너무 좋고 인용문 너무 좋고, 맞아 정세랑이었지, 역시 좋아.. 했네요.

곱창 30개에 11,000원이라니. 그것도 좋네요. 뭐, 저는 이제 곱창 필요없는 사람이지만..


아니, 그리고 저 역시도 손잡기를 예찬합니다. 손잡기 너무 좋지 않나요? 손잡는게 짱이에요. 손잡는 걸로 다 돼요.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손잡기로 판가름 나는 것 같아요. 크-
충전을 뽀뽀로 하면 진짜 제가 책 속으로 들어가서 다 부숴버리고 말았을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21-05-21 10:40   좋아요 1 | URL
저는 다락방님의 ‘이 페이퍼 너무 좋다‘를 위해 이 페이퍼를 쓴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시선으로부터 읽는데 매력이 반감되고 있어 나 왜 이러지? 하고 있었단 말이지요. 무려 그 책은 제 책인데 말이에요. 역시나 나의 느낌은 옳았어요. 전 그래도 정세랑 몇 개 더 읽으려고 해요. 제가 애정합니다, 정세랑!!!

손잡기 충전법은 많이 장려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연애 초기에만 많이 애용되지 않나 싶어요. 지긋한 부부들이 손잡고 걸으면 의심의 눈초리가.... 진짜 부부라면 손을 잡지 않을텐데.... (허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