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새벽 3시. 왜 이렇게 덥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이마에 손을 대보니 뜨겁다. 냉동고에서 아이스팩 하나를 꺼내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시원하니 좋았다. 하지만 손이 시렸다. 아이스팩을 내려놓으니, 이마가 문제. 시린 손으로 다시 아이스팩을 이마에 올려두었다.


이제 새벽 4시. 웬만큼 더워도, 온 세상이 열대야로 들끓어도 한 번도 깨지 않는 내가, 내 속에 가득한 열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다. 앉았다가 모로 누웠다. 아이스팩을 이마에 대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새벽 4시. 주님께 드리는 새벽의 기도, 시편 42편.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기도를 하는데, 그날은 새벽에 기도를 했으니, 하며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리를 양쪽으로 쭉 뻗는다. 그래봤자 110도. 북플에 들어가서는 이런 책을 보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책 소개, 책 속 문장을 읽게 된 거다.










“다 와서 좀 헤맸어요.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라고 말하는 내게 손님은 “이거 단건 배달 아닌가요? 어플로 보니까 박달동 갔다가 오신 것 같던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항의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 일 이후 나는 묶음 배달을 완전히 포기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치킨에 대한 순정으로, 피자에 대한 사랑으로, 수제버거에 대한 로망으로 배달이 오기만을 설레어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한 집만 가자. 그게 덜 위험하고, 나도 마음 편하다. 나는 고객의 ‘설렘’을 배달하는 사람이다.

- (「한 번에 한 집만」)


인문학 박사의 생활고에 대한 이야기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입니다>에서 이미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당 강의료 3만 5천 원에, 신문과 잡지의 고료를 다 합해도 2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도 또 들어도 뜨헉! 이다.


위에 인용하지 않은 김밥과 떡만둣국 이야기도, 위에 인용한 '한 번에 한 집만' 이야기도, 배달이라는 업무의 특성 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다. 그 특별한 일상의 기록이 이 책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이 일들을 대신 해주는, 이 고마운 사람들을 하찮게 대한다. 툭하면 협박하고, 툭하면 소리를 지른다.


이렇게 고된 노동의 대가는 열두 시간 노동에 202,290원. 시집 50권 팔아서 40,240원 수입보다는 낫겠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위험도나 안정성을 고려하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단지 "건강한 몸으로 길 위에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작가의 말이 메아리친다.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뭉클해지는 마음.

그 새벽에는 그랬던 거 같다. 이렇게 열이 치솟고 (감기 걸려도 열 안 나는 타입), 온 몸이 두들겨맞은듯 아프고 휘몰아치는 기침 때문에 허리까지 울리는데도 나는 출근을 해야 하나. 물어보니 답은 '해야 한다' 였다. 나는 계약직에 더해 일용직이고, 내 일을 대신해줄 사람은 없다. 몸을 일으켜 출근해서 '내 몸'을 직장에 갖다 놓아야했다. 어찌 되었든 일단 가서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나도 모르게 '출근하려는 나'를 기특히 여기려는 찰나에 내가 읽은 글이 이 책 『시간강사입니다 배민합니다』였다. 다들 열심히 살았고 또 그렇게들 살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몫을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내 아픔과 고통이 덜하다는 뜻이 아니라(마이 아파요ㅠㅠ) 각자 어려움과 고통, 실망과 실패를 안고 또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서둘러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다.


친구에게 퇴근의 맛(바람돌이님의 고견) 못지않은 출근의 힘에 대해 말했더니, 친구 왈, '뭔가 짠하지만 ㅜㅜ 세상에 단발님을 짠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테니 저라도 어엿삐 ㅜㅜ 여겨.... 대신 건강주스를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것이다. 세상에 나를 짠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내 어려움과 고통이 작아서가 아니라, 각자 삶에 드리워진 고생과 고통과 어려움과 난관이 이처럼 다종다양한 것이니.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하였고. 내일은 토요일이다.

퇴근의 맛은 일단 이따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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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21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 책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오늘도 출근을 하였고 내일은 토요일인게 기쁜, 퇴근을 기다리는 1인이 이 페이퍼를 읽고 좋아요를 누른 뒤, 링크된 책을 담아갑니다. 꾹- 땡투도 누르고요.

단발머리 2024-06-25 11:22   좋아요 0 | URL
출근과 퇴근 사이도 명랑 발랄한 다락방님~~ 퇴근을 기다리며 이 댓글을 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전)
땡투는 감사드리고요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6-21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아
출근 하지 마오…
아… 물에 휩쓸려 출근하시니…
아 가신 임을 어이할꼬…. 🙄
(ㅋㅋㅋㅋ 바쁜 거 끝나기 무섭게 독서실 와서 앉은 지독한 사람ㅋㅋㅋ 이 부당한 출근에 바치는 노래…)

단발머리 2024-06-25 11:22   좋아요 0 | URL
물에 휩쓸려 출근 2회 더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느라 고생많았고요. 지금부터 퇴근 준비!!

서곡 2024-06-21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음팩을 손수건에 감으시길요 ㅎㅎㅎ 남은 이 달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4-06-25 11:23   좋아요 1 | URL
그니깐요. 여기저기 널린 게 손수건인데 그 때는 생각이 안 나고 ㅋㅋㅋㅋ 아, 손 시려~~
서곡님도 건강하게 이 달 잘 보내시기 바래요. 여름 감기 무섭습니다.

수이 2024-06-21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게 날아온 이 난관을 헤쳐나갈 힘을 주시옵소서!

단발머리 2024-06-25 11:23   좋아요 0 | URL
아멘, 주님! 도와주소서!!!

독서괭 2024-06-21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구구 감기인가요!! 감기 걸려도 열 안 나는데 이번엔 나는 건가요?? ㅜㅜ 어서 나으시길… 단발님, 출근자 친구로서 응원을 날립니다😘

단발머리 2024-06-25 11:25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의 에구구....가 제일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런 맛에 알라딘에 글 쓰나요? 독서괭님의 ‘에구구‘를 받아듣고 터벅터벅 버섯돌이는 감기 퇴치에 나서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님 응원 감사합니다!

2024-06-24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4-06-25 11:25   좋아요 0 | URL
성공적인 런칭을 축하드립니다.
다른 제언 올려드려요.

출근과 퇴근 사이

어떠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플라잉더치맨 2024-06-24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쾌차하길 빕니다

단발머리 2024-06-25 11: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많이 나았습니다^^
 
젠더와 민족 트랜스 소시올로지 11
니라 유발-데이비스 지음, 박혜란 옮김 / 그린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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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womanhood은 관계성의 범주이며 그와 같이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더욱이 민족성nationhood의 구성물들이 대개 ‘남성성‘manhood과 ‘여성성" 모두의 특정 개념들과 관련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주장 가운데하나다.
이 책의 인식론적 뼈대는 지식이 상황적이며(Haraway, 1990), 한 가지 입장에서 나오는 지식은 ‘완성되지 못한다(Hill-Collins, 1990)는 인식에 기반한다. - P15

공/사의 이분법은 페미니즘을 비롯한 사회과학 문헌에서 여성을 남성의 정반대 극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분법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뿐이다. 그 밖에 자연/문명의 구분도 있다. 여성과 자연의 동일시는 ‘문명‘화된 공적 정치 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하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문화에서나 남성보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가치가 덜하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도 했다. - P23

미셸 푸코(Foucault, 1980a)와 토머스 래커(Laqueur, 1990)가 지적했듯,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에 따라 문화적으로 분명했던 것은 단지 모든 인간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 P28

게이튼스는 이런 종류의 사고에 대해 이들이 환경론적인가 본질주의적인가로 귀결되는 단순화된 이분법적 사회이론에 근거한다고 비판하며, 적어도 몸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몸은 언제나 성이 있는 몸이기 때문에 동일한 행위라도 그것을 남성이 수행하는 여성이 수행하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개인적·사회적 중요성을 지닐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아는 언제나 상황적이다. - P30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은 기술 혁신이 ‘인쇄 자본주의‘를 성립했을 때에서야, 즉 독서가 ‘엘리트‘로부터 다른 계급에로 확산되고 사람들이 고전적 종교언어가 아닌 자신들의 언어로 대량 출판물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언어적·민족적 ‘상상의 공동체가 성립되었다. - P40

메릴린 스트래던은 한 아이의 잉태가 지속적인 관계의 과정이기보다는) 단 한 번의 성행위의 산물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는 유럽-미국 특유의 문화 지형도라고 주장한다(Strathern, 1996a; 1996b). 입양 아동들과 인공수정을 거쳐 태어난 자녀들이 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돌보고 양육했던 부모들을 인정하지 않고) ‘참‘true 부모를 찾아 나서는 것이 유행이 된 상황은 이것이 서구적 유형의 정체성 구성이라는 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 P60

정말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생물학적 혈통을 찾으려는 요구, 그리고 이 요구가 자기 정체성의 구성에 대해 갖는 직접적인 함의들이 발생함과 동시에, 다른 의학 및 유전 공학의 발달을 통해 인간의리고 최근에는 동물(돼지)의 신체부위를 이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 P61

맬서스 정책의 효과는 매우 젠더적인 경우가 많다. 엄격한 자녀수 제한의 압력이 있는 곳에서, 그리고 남아가 사회 및 경제적 이유로 귀히 여김 받는 곳에서 낙태와 유아살해의 표적은 주로 여아들이었다. 중국이나 인도의 마을에는 맬서스 정책이 시행된 후 태어난 일정 연령집단이 100% 남성이라는 소문도 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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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20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저는 이 책 왜이렇게 어려워요? ㅠㅠ

단발머리 2024-06-20 11:23   좋아요 0 | URL
엄청 장난 아니게 어렵습니다. 힘내서 읽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ㅋㅋㅋㅌ참고로 전 재독인데도 어렵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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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을 읽고 쓴다.



내가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저거 꾀병이다'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손쉽게 재단하는 사람을 주의 깊게 본다. 고통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깨달음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랬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아이 키우는 사람이 이 말을 하는 경우라면 더하다. 내가 보기엔 아이들만큼 어른들도 충분히 거짓말을 하는데 그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거짓말쟁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게 잘못이다. 아이들은 금방 탄로 날 것이 분명한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은데(학원에 안 갔는데, 다녀왔다고 말하는 경우), 어른들은 더 계획적이고 치밀하다. 어른들은 보통 생략과 강조의 방법을 사용하는데(네, 그래요. 제가 그렇습니다),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다른 부분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중요한 사실이 보이지 않게 처리해 버린다. 아이들만큼 어른들도 거짓말을 잘하고, '저건 꾀병이야'라고 쉽게 말해버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매품, 저 사람은 엄살이 심하다.



"저건 꾀병이야"라고 잘 말하지 않는 내가, "엄살이 심하네"라고 잘 말하지 않는 내가, 읽는다. 남편 잃은 아내의 슬픔에 대해 읽는다. 갑작스레 남편을, 내 인생의 사랑이라 확신했던 남편을 잃어버린 여인의 좌절에 대해 읽는다. 그 절박함을 읽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시련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여성의 단호함에 대해 읽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생각한다.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아? 남편이 죽었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거, 엄살 아니야?



슬픔을 표출하거나 감당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다. 갑작스레 남편을 떠나보낸 사람들 곁에 있은 적이 있다. 잠깐 몇 시간을, 그리고 그 후의 시간을 같이한 경우도 있고, 3일 내내 같이 있었던 경우도 있다. 그중에 누구도 이렇지 않았다. 비비언 고닉의 엄마 같지 않았다.


엄마는 머리를 쥐어뜯고 살갗을 찢고 몇번씩 혼절했다. 누구도 감히 엄마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엄마는 기이한 투명 막 안에 홀로 격리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엄마 주변을 에워쌌지만 어느 누구도 그 안으로 침범할 수 없었다. 엄마는 마법에 걸렸다. 귀신에 홀려 있었다. (245/829)


귀신에 홀린 것과 같은 상태. 실패와 좌절, 압도적인 절망감 앞에 그녀는 쓰러지고 또 쓰러진다. 그 광경을 지켜본 가까운 사람이 말한다.


물론 한 번씩 지머먼 아줌마가 스토브 앞에서 수프를 저으며 참지 못하고 구시렁거리곤 했다.

"하루 종일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자빠졌네. 나라면 말야. 집에 갔는데 남편이 죽어 있으면 경사났네 하겠어".(264/829)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는 이 말이 들리지 않는다. 완벽한 좌절, 완결된 실패 앞에서 아빠 잃은 아이들은 조연이 된다. 동생 혹은 사촌형을 잃은 사람들은 엑스트라가 된다.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고닉의 엄마에게만 비춰진다. '엄살이 심하군.' 이 생각이 다시 떠오르기 직전, 이런 문장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일어나려던 엄마는 마비라도 온듯 다리가 후들거리고 꼬여 다시 주저앉았다. 눈동자가 뒤집어지고, 사지는 흐느적거리고, 발은 땅을 딛기를 거부하면서 단두대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문으로 억지로 끌려갔다.(260/829)


그러니까, 이 '눈동자가 뒤집어지고'에서 내 마음도 같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녀는 '... 하는 척'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동자가 뒤집어지고 발을 제대로 땅에 내딛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 그런 상태인 것이다.


남편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을 잃어서. 가족이 아니라, 온 세계를 잃어서. 그녀는 울고 있다. 울부짖고 머리를 쥐어뜯고 살갗을 찢고 파놓은 무덤 속으로 뛰어든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려서, 다시는 찾을 수가 없어서.



이 책을 읽고 말하고 싶었던 건 당연히, 당연하게도 나의 엄마 이야기였다. 내 엄마가, 나의 엄마가 비비언 고닉의 엄마와 얼마나 다른지 쓰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친구들의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다종다양한 엄마들의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툭하면, 엄마를 앞에 앉으시라 하고는 쉼 없이 이야기했다. 엄마, 엄마가 제일 착해. 엄마가 엄마들 중에서 제일 착해. 10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20대 후반에 들어선 사촌 동생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엄마(우리 이모) 같은 엄마는 없어요. 이모(우리 엄마) 같은 사람은 없어요. 엄마, 이모 같은 엄마는 없어요.


이미 나는 많이도 놀랐다. 시몬 드 보부아르 엄마에서부터 시작해 고닉의 엄마까지. 나는 우리 엄마가 내 엄마라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도 내 딸에게 '그래도 엄마가 착해. 엄마들 중에서 엄마가 착한 편이야.' 이런 말을 듣고 싶지만, 글쎄.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만큼 착한 엄마는 아닌 것 같고. 우리 딸도 이리 말해줄것 같지 않아 쿨하게 접는다. '우리 엄마가 제일 착해' 이 말은 아빠에게나 많이 해드려야겠다.



후반부에는 고닉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비로소 『끝나지 않은 일』에서 고닉의 문장들이 이해됐다. 자세히 쓰고 싶은데 앞으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의 즐거움을 앗아가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만 쓴다. 참고로 이 책은 1987년에 나왔다.


고닉이 만난 남자들 가운데 니노(개새)와 비슷한 남자가 1명 나온다. 일부다처제에서 살았으면 참 좋았을 그런 남자. 니노 뒤의 괄호는 '페란테 피버'의 <나폴리 4부작>를 읽으신 분들만 동의하실 수 있을 테지만, 적어도 내게 니노는 그런 사람이라 저 표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사실 괄호도 내가 많이 양보한 거다. 오히려 그 특정 동물에게 미안해지려고 한다.


바로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시작했다. M리의 서재에 있어서 읽기도 간편하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구입하려고 한다.

고닉이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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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6-13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노는 정말이지 역대급 (개새)가 맞습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절레절레...ㅋㅋㅋㅋㅋ 와 <사나운 애착>을 아련하게 떠올리게되는 그런 글입니다. ^^ 저는 언급하신 장면들에서 울다가 또 웃기도 했더랬죠. 정작 고닉은 옆에서 힘들었을 것 같기도해요. 그러고보니 제목 참 적절합니다.

단발머리 2024-06-14 11:20   좋아요 1 | URL
네, 미미님. 역대급 개새 니노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런 니노를 사랑하는 레누의 심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같이 이야기해 봐요^^

저는, 고닉의 엄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더라구요. 어린 고닉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서요. 에휴...

잠자냥 2024-06-13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안 고치셨죠? ㅋㅋㅋ

단발머리 2024-06-14 11:20   좋아요 0 | URL
진지하게, 겁나 진지하게 고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치는 게 나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6-13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은 아무리 화가 나도 보통 글에 욕을 쓰지 않으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새‘라고 표현하신 걸 보니 니노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큰 지, 그 놈이 얼마나 나쁜놈인지 나폴리 시리즈 안읽은 사람들도 알 수 있을듯합니다. 니노 으.. 너무 싫어요. 으.. 싫어.

저는 고닉의 글보다 고닉을 읽고 쓴 단발머리 님의 글이 더 좋습니다. 그리고 고닉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닉이 단발머리 님께 읽을 거리를 주고 생각할 거리를 주고 쓸 거리를 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4-06-14 11:23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저는 글에 욕을 쓰지 않는 편인데, 정말 니노에 대해서라면 ‘개새‘도 아깝습니다. 니노 같은 인간의 승승장구에 대해 저는 관심이 많습니다. 자매품: 빌 클린턴

다락방님의 감사한 마음, 고닉님에게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사실 저는 인상에서부터 고닉이 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였거든요. 그래서 이름 알아도 얼굴 보고 안 읽은 ㅋㅋㅋㅋ 이제 제가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작가가 되셨습니다. 내 안에 고닉 있다! 이런 거 한 번 해야겠어요!

2024-06-14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14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중학교 1학년 3월의 필독도서는 『안네의 일기』였다. 완독률 100%, 아니지 100은 어디든 불가능하니깐, 97%. 4월의 필독서는 『감자, 배따라기』였고, 5월은 기억이 안 나고, 6월은 『운수 좋은 날』. 그다음도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3월이 지나 4월을 통과할 때부터 나는 참 싫었다.



소설을 동화로 착각하고 사는 나. 그런 나의 중1버전으로서 나는 우리의, 정확히는 우리 선조들의, 더 정확히는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왔던 우리 선조들의 생활을 아는 일이 너무 괴로웠다. 어디 저기 바다 건너, 머나먼 나라의 다락방에 사는 여주인공(소공녀)은 참아내겠는데, 간도 땅에서, 전라도에서 고생하는 이야기는 읽기 힘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를 알아 왔던 친구가 말하기를, 나는 갈등에 맞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회피하는 형이라 했다. 그건 참 맞다.




기구한 운명이, 그 운명이 가져온 생활이, 그로 인한 아픔과 고통이 나는 싫었다. 나는 그렇게 모든 리얼리즘을 반사하고 싶었고, 멀리하고 싶었고, 그리고 모른 척하고 싶었다. 나는 오래오래 한국 소설을 읽지 않았다. 특히, 단편을. 나는 한국 단편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한다. 바다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그러므로 후대를 위해 보호해야 한다고 블라디미르 베르나츠키라는 러시아 지질학자가 1940년대에 이미 경고했지만 그런 얘기는 아무 소용도 없었고 내가 아무리 플라스틱을 적게 쓰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바다에 방사능 오염물질을 국가 단위로 쏟아붓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북극해도 발트해도 동해도 모두 오염되고 깨지고 부서졌다. 도망칠 곳은 없다. 인간도 대게도,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코를 골며 잠든 남편에게 이런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조금 울었다. (66쪽)



나의 결혼 생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살았고 생활 공간 안에 다른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해야 했다. 남편은 나와 살아온 이력도 생활 방식도 완전히 달랐다. 남편이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남편이 아니라 위원장님이던 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오밤중에 일어나서 새벽까지 밤새 술을 마시거나 몇 시간씩 뭔가 먹는 습관이 있었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보면 식탁과 거실에 술병이 즐비하거나 정체불명의 해양 수산물 부스러기가 바닥에 잔뜩 깔려 있었다.  ... 어쨌든 남편은 김 가루와 멸치 부스러기(로 판명되었다)를 여전히 흩날리면서도 다 먹고 나면 스스로 치우기 시작했고 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그가 자신의 싸움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듯이 내가 나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사실을 인정했다. 그게 어떤 싸움인지 서로 언제나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68-9쪽)




정보라의 소설은 이번에 두 번째다.



내 삶의 일부가, 내 현재의 일부가 정보라와 겹쳐지는 부분에서 마음이 찡하고,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내는 정보라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페미니즘을 읽고 있는 사람으로서, 남편을 사랑한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라는 말이 이렇게 진실하게 전해지는 글을 정말 오랜만에 읽는 듯해서, 그게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그러니까, 나는 대부분의 리얼리즘을 반사하고 싶고, 오랫동안 반사해 왔지만, 무슨 일인지 모르게 정보라의 리얼리즘은 더 알고 싶다고 한달까. 아무튼 그렇다. 아무튼,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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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12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거 살게요.

단발머리 2024-06-12 16:33   좋아요 0 | URL
앗ㅋㅋㅋㅋ 아무튼, 다락방님!🥰

꼬마요정 2024-06-12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슴 찡하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염수 방류, 전쟁 이런 것들 너무 안타깝고 슬펐어요. 휴...
정보라 작가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책이었어요!!

단발머리 2024-06-14 15:48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저도 가슴 찡할 때가 얼마나 많던지요. 오염수 방류 이야기할 때는.... 우리에겐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는가 싶어서 ㅠㅠㅠ 참,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정보라 작가 책, 한 권을 샀지요. 음하하하하하! 우리 오래오래 정보라 작가 응원하기로 해요!!

햇살과함께 2024-06-13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저는 위원장님을 오빠라고 부르는 부분이 너무나 생경... 저에게 오빠는 이제 부르지 못할 호칭이 되어서..ㅋㅋㅋ

단발머리 2024-06-14 11:2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햇살과함께님 말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위원장님이 여보도 아니고 금방 오빠로 변신 ㅋㅋㅋㅋㅋㅋㅋ
부르지 못할 호칭이죠. 그래도 저는 1년에 몇 번씩은 사용합니다. 부탁할 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의 미친 여자] 버사는 제인의 분신인가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080436)

[다락방의 미친 여자] 로체스터를 믿을 수 있는가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148038)



<여느 글>에서 임옥희는 스피박의 중요한 주장을 질문으로 정리한다. "여성으로서 '우리'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우리는 몇 명인가."



<1장, 철학의 정신분석: 칸트, 헤겔, 마르크스 오/독하기>에서는 철학이 역사의 신비화와 신화에 복무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한다(79쪽). 2장 <문학: 영혼을 발명하는 서사>에서는 영국 제국주의 기획의 문명화 사업과 문화적 재현에서 영문학의 역할을 밝힌다.(80쪽) 스피박은 서구 개인주의를 영혼 형성soul-making의 관점에서 연구하는데, 이는 곧바로 19세기 부르주아 개인주의와 연결된다.



귀족사회에서처럼 미래가 보장된 신분, 그런 신분을 뒷받침해 줄 인맥과 같은 사회자본이 없더라도 혼자 힘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고 그 결과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부르주아 개인주의였다. 1장에서 보다시피 칸트는 영혼이 없는 야만인들을 문명화시키는 것이 제국의 소명이라고 보았다. 그런 제국주의 기획에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와 유사한 단계에 이를 수는 있다. 반면 토착 하위주체 여성은 이런 담론의내부에서는 빈 공간이자 공백이 된다. (82쪽)


19세기 영문학의 대표작격인 『제인 에어』와 그것을 다시 쓴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샤를 보들레르의 시와 키플링의 단편을 새롭게 해석하고,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다시 쓴 존 쿳시의 『포Foe』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에 알라딘 서재의 '먼댓글' 서비스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고객센터에서는 스팸 메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설명했는데, 알뜰살뜰 그 서비스를 이용해왔던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비언 고닉은 『끝나지 않은 일』에서 자기 표절에 대해 말하는데, 그 말에 100% 동의한다. 같은 이야기를 쓰고 다시 쓰면서 이야기는 더 확실해지고, 더 견고해진다. 이제는 먼댓글을 이용할 수 없어서, '제인 에어'에 대한 페이퍼를 먼댓글 모양으로 만들어 맨 위에 달아둔다.



<3장, 역사: 아카이브의 문학적 재해석과 젠더의 문제들>에서는 정신분석학의 전이 개념을 이용해 유럽을 타자의 위치에 세운다. 세계를 해석하는 중심이며, 주체로서만 존재할 거라 여겨지는 서구는 타자가 된다. 스피박의 언어로이제 서구는 분석의 대상이 된다.


유럽을 타자의 위치에 세우는 한 방식으로 그녀는 역사를 방법론적으로 정신분석하고자 한다. 그것은 역사를 문학으로 읽어내는것이나 다를 바 없으며 사료와 문서보관소의 권위를 물신화하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다. 항상 주권적 주체였던 유럽을 타자의 위치에 세우고, 타자의 입장에서 주체를 분석할 수 있는 한 방식이 정신분석학에서의 전이transference 개념이다. 전이는 분석가analyst와 분석 주체analysand의 위치를 전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124쪽)



136쪽의 <사티: 역설적인 여성의 주체 구성의 장?>은 내 생각에, 이 책에서 제일 문제적이고 논쟁적인 부분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고산 지대 인도의 왕국인 시르무르의 라자(왕)인 카람 프라카쉬는 영국인들에 의해 폐위되었다. 카람 프라카쉬의 뒤를 이어 그의 어린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라니(여왕)가 섭정을 하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영국의 식민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낯선 백인 남성은 궁궐에 침입하여 남편을 폐위시키고 아들을 왕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낯선 백인 남성의 보호를 받게 된다. 라니가 자신은 남편과 일심동체라며 불에 타 죽겠다고 하자 지오프리 버치 대위가 그녀를 만류한다. 왕국과 어린 아들을 생각하라는 간곡한 요청이었다.



가부장제/제국주의 사이에 포박된 라니의 위치에 대한 스피박의 논고다.


사티에서 여성의 몸은 이데올로기의 전쟁터가 된다. 『리그베다』와 같은 힌두 경전은 자살을 엄격히 금한다. 이때 사티는 자살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스피박이 말했다시피 과부의 자기희생 관습은 신성한 행위로서 예외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여성이 목숨을 끊어도 될 만큼 신성한 자리는 어디인가? 스피박 식으로 표현하자면 "여성이 자신의 고유한 자아의 파괴를 통해 자살이라는 명칭을 폐기하기에 적합한 장소는 죽은 배우자의 화장용 장작더미 위이다." 그래서 라니가 사티를 하겠다고 선포하자, 버치 대위는 그녀의 모성을 자극하면서 만류한다. 사티라는 관습을 놓고 벌인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영국은 사티가 여성을 살육하는 것으로 규정 지음으로써 여성을 살육의 대상으로 구성한다. 그리하여 영국의 백인 남성은 이런 살해의 현장에서 인도 남성으로부터 인도 여성을 구출하는 교양 있는civil 신사가 된다.(139쪽)



힌두교 가부장 담론에서 사티는 인정되지만, 강제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스피박은 이 행위에 있어서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에 집중하는데, 영국의 인도 침략 이후 사티가 불법으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여성 주체가 강제가 아니라 자유의지로 스스로 희생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사라졌다는 부분을 강조한다. 사티를 이교도적인 제의 혹은 미신적인 '반인권' 범죄로 재구성한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토착식민 엘리트들의 주장을 병렬한다. 즉, 사티를 자기희생의 민족주의적 전통으로 낭만화하는 말들, 타고르의 시에서 표현된대로 '애국적인 벵골 할머니들'에 대한 찬미를 소개한다.


사티에 대해 이전에 알고 있던 정보, 그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판단은 이 지점에서 멈춰진다. 사티가 여성 주체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는 말인가? 이를 통해 여성이 금기시된 자살에 영광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사티 금지와 처벌은 제국주의 남성을 구원자로 만들기 위한 책략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에 여성으로 살고 있는 나는,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그것이 문화와 관습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반대한다. 여성의 생명을 앗아가는 사티와 같은 관습에 문화 상대주의를 적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외부인이다. 미개한 관습으로부터 당신들을 구해내겠다고 나선 백인 남성들을 옹호할 생각이 없고, 그들의 주장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제1세계 백인 여성 페미니즘에 빚지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나는 스피박이 무얼 말하는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여성'이어서 만들어진 환경과 조건 때문에 불합리함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고 있고, 마리아 미즈의 말처럼 내가 제3세계의 어린 여성이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의 남성들과 연대함으로써 그들의 착취에 동조해왔음을 알고 있다.



식민지배를 받고, 전 세계적인 규모의 불운한 전쟁을 겪었지만, 2005년 시작으로 GDP가 세계 10권 내외인 국가(올해는 13위를 기록했다)의 국민으로서, 내가 처한 상황과 위치에서의 질문을 이어가 보겠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검사하는 사람은 있다고 한다(그 이름도 아름다운 잠자냥님^^).



"여성으로서 '우리'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우리는 몇 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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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6-10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면하고 싶은 문제를 단발머리님께서 계속 제기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먼댓글(트랙백) 기능이 막혔나요? 아직 메뉴는 있는 것 같은데...

단발머리 2024-06-10 16:29   좋아요 1 | URL
궁금한게 많은 나이입니다 ㅎㅎ 읽어주시는 덕분에 더 열심히 쓰고 싶어집니다. 감사해요, 건수하님!


아쉬운 마음에 먼댓글에 대한 알라딘 답변 남겨둡니다.


안녕하세요.
알라딘 고객센터입니다.

이용에 불편을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담당부서 확인 결과, 송구하게도
먼댓글을 통해 스팸 댓글 달리는 등의 문제가 있어
현재 닫아 둔 상태에서 점검 중이라고 합니다.
이후 서비스를 재개 여부나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아
상세한 안내가 어려운 점 양해 말씀드립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4-06-10 16:38   좋아요 1 | URL
이 글에 테스트로 해봤더니 흔적이 안 남길래 안 되는가 보다 했었어요.

답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네요 먼댓글.. 단발머리님이 먼댓글 달아주시면 신났었는데.. ^^

단발머리 2024-06-10 16:5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많이 아쉽기는 해요. 느낌이 다시 서비스를 재개할 거 같지 않아서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방법은 ㅋㅋㅋ 저렇게 먼댓글처럼 만들어서 링크를 넣는거에요.
곧 신나는 시간 돌아옵니다! 개봉박두🤗

2024-06-11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1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4-06-11 2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검사하는 잠자냥! ㅋㅋㅋ
감사하는 공쟝쟝! ㅋㅋㅋ
먼댓글 아쉬워요. 저는 나의 열등함을 우월함에 의탁하고자 하는 심리에 그러면서 타인의 열등함을 박해하고자 하는 심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탈식민과 페미니즘은 연루되어 있어요. 그러나 근대의 모든 것을 부정하진 못하고요. 신자유주의와ㅜ여성의 불편한 만남처럼. 제국주의와 식민지 남성성에 대해 생각해요! 이 모든 게 너무 재밌어요!
쭉- 이어가 보도록 해요. 쉽게 찾지 맙시다. 그렇게 해요! 😎

단발머리 2024-06-12 22:25   좋아요 1 | URL
탈식민과 페미니즘, 근대, 제국주의, 식민주 남성성이 재미있지는 않지만 조금 더 알고 싶기는 해요.
그러나! 쉽게 찾지 맙시다!
에 제가 ‘싫어요‘한 거 들리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쉽게 찾을거에요. 메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