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크게는 웃음 버튼과 울림 버튼이 있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루시 버튼(『바닷가의 루시』 한글판 출간, 축하드립니다!). 친구는 읽기 버튼과 쓰기 버튼 중에, 쓰기 버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야무지게 피력했는데, 나는 그만큼 중요한게 구매 버튼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이 세상에는 읽기와 쓰기와 (책) 사기가 있는데, 그 중에 제일은 책사기니라. 

















내 읽기 버튼 중에 하나가 알릴레오 북스이다. (참고사항: 유시민 좋아하는 편, 공장초기화의 난관 속에서도 유시민 작가님과 1미터 거리에 앉아 환한 미소를 띄며 강연 듣던 사진 찾아낸 나를 칭찬합니다) 알릴레오 북스 전편을 보는 건 아니지만, 소개된 책이 무엇인지, 출연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하는 편이다. 최근에 올라온 책들이 모두 다 마음에 들어 내가 사는 S구와 근거리의 K구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거의 대출 중이며, 예약자가 꽉 찬 상태다. 이 정도 기세라면 올해안에 대출해서 읽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냥 구매를 하는게 낫겠다 싶기는 한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청소기를 돌렸다. 손으로는 청소기를 잡고 있지만, 머릿 속은 책 생각 뿐이다. 박태균 교수의 『이슈 한국사』는 일단 상호대차 신청했으니까, 그 책은 살짝 살펴보고 구매해야겠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근대론과 관련해 나는 저자의 의견에 솔깃했는데, 그러니깐 식민지가 되었던 국가들 중 한국의 특이성 부분이었다. 이에 더해서, 일본과 우리 나라의 과거사 문제도 흥미진진했고, 반유대주의와 정체성의 정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던 나로서는 좋은 레퍼런스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래, 일단 그 책을 읽어보고 나서. 


















이러고 있는데 거실 책상에 콘래드가 보인다. 아, 콘래드. 정희진의 공부 8월호 <우리가/저들이 저들을/우리를 다스릴 것인가?> 듣고 나서, 이 책 저 책 다 꺼내놓고, 요걸 좀 써봐야겠다 싶었는데, 어느 새 잊어버린 나. 비교적 최근에도 『전체주의의 기원』 읽고 '보어인의 인종주의'에 대해 쓰면서 콘래드는 살짝 언급했었다. 친애하는 알라딘 이웃님들의 댓글에서 제일 주요한 지점은 일곱 살이었는데,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건, 26년 전. 26년 전에 읽었으니 나는 많이도 변했으리. 다시 읽고 나서 써보자, 했는데.... 는데... 



그리곤 또 다시 다른 생각에 빠져든다. 더운 여름 다 지나가는데, 아롱이 연청 반바지, 도대체 어디에 간거지? 여름 다 가기 전에 한 번은 입어야 하는데. 어디 갔지? 아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고. 어디 갔지? 도대체? 






큰아이 책을 반납해 주고, 서브웨이에 샌드위치를 사러 가는 길에는 정희진의 공부 8월호 <전쟁 무기로서 남성의 몸>을 들었다. 나오자마자 한 번 들었는데, 그 때는 다른 일 하면서 들었던가. 이런 문장들이 귀에 딱 꽂히는 거다. "... 일본 우익의 문제가 끊임없이 일본 내부에서 해결이 안 되면서, 서로가 인제,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민족주의가 적대적 공존을 하는, 그러니깐, 우리도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야되는데, 언제나 일본이 아직도 저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되는 거죠." 



네, 선생님. 그게 저에요. 제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인데. 말만 한게 아니라 글로도 썼어요. 


한반도의 상황은 다르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실질적, 군사적 압력으로 북한이 존재하는 작금의 분단 현실 속에서, 군사 전체주의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일본의 침략 야욕은 노골적이고 확고하다. 용서를 바라지 않는 가해자,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가해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렇게 썼어요, 제가요. 아.... 나의 공부 버튼, 정희진 선생님! 선생님, 존경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아시지요. 한국은 한참동안 이걸 넘어서기 힘들거에요. 그리고, 저는요. 한국의 민족주의,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서려는 지식인들이 존재하는데 반해 일본에는 그런 사람이, 그런 지식인들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그 분들을 잘 모르기는 하지요. 그래서 제가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전쟁과 죄책』을 사서 읽어보려고는 하는데. 일단, 아직은 안 샀어요. 선생님이 저의 공부 버튼이신건, 제가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기는 한데. 선생님, 제발 한 번에 버튼 한 번만 눌러주세요. 여기저기, 이 분야 저 분야 총망라해서 여기 저기 누르시면, 저는.... 어떡하나요. 네? 선생님? 저는 어떡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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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08-17 17: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버튼 너무 많이 눌려요 버튼 오작동?!

단발머리 2024-08-17 22:43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정희진쌤 추천 도서 목록은 버튼이 그냥 눌려 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눌려서 안 올라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8-17 1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구매 버튼 알라딘 서재. 읽기 버튼 정희진. 쓰기 버튼 단발머리. 세 가지를 합치면 공부 버튼 이나니.
한국의 특이성에서 저도 혹합니다. 나도 저 책 따라 읽고 싶은데... 아마 못 읽겠져 날은 덥고 저는 바쁘니깐 ㅋㅋㅋ

널리 이롭게 하고 싶어 한번 더 강조하는데요. 쓰기 버튼. ‘쓰기 욕망‘은 특정하고 특이하고 특별하기가 ‘특이성‘이라 할만 하도다. 라고 생각해요... 쓰십시다. 제 욕망이 거기에 있고, 거기에 있으며, 거기에 있다는 것에 뿌듯함과 자존감 및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 써야하는 사람은 써야만합니다. 그게 욕망이니까.. 더는 참지 말자...ㅋㅋㅋ 단 읽히게 쓰는 것은 어렵다. 어려운 문제.

저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국어로 생각합니다. 거기에 조상님 감사합니다. (갑자기?) 포스트 콜로니얼 언젠가는 공부할건데... 뭔가를 넘어서겠다는 야심은 별로 없고요... 그냥 하는 말이 신기해서 읽고 싶고 읽게되는 것 같아요. 혹시 그걸 많이 읽어서 뭐 넘어선다(?)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 된다 한들... 제가 한국어로 사유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을 거 같아요.

마지막 일본상황 모르는데. (일반적인.... 그래도 평균이상의 독서력을 가진) 제가 아.는. 그런 지식인 희진 샘 밖에 없으시다... 물론 이제 이책 저책 참고하다 보니.. 아 그렇구나.. 하지만... 저는 정말 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ㅠㅠㅠㅠㅠ 저 같은 태어나기를 국민으로 호명되어 국민으로 자라난 일반 시민, 이데올로기적 주체 ㅋㅋㅋㅋ의 지식 수준에 한차원 높은 경종을 울려주시는. 선생님 경애합니다. 저는 선생님을 읽고 싶어서 똑똑해지기로 했어요. 여기서 또 혼자 러브레터....쓰기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8-17 23:09   좋아요 2 | URL
상호대차된 책이 도착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일단 내일, 제가 가서 받아올게요.

쟝쟝님의 ‘쓰기론‘에 동의합니다. 쓰기에 욕망이 있다는 것에 자존감과 깊은 애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써야하는 사람은 써야 하죠. 그리고 결국 그 사람은 쓰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와중에도ㅋㅋㅋㅋ ‘쓰이지‘ 못했지만 표현되는 다른 방식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그게 왜 중요하냐면... 저는 예전에는 읽기만, 쓰기만, 오직 책만 그런 위치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드라마 보는 날 한심해하지 마라... 는 이야기를 친구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는 ‘보는 행위‘의 수월성이 깊은 사고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는 바뀌었습니다. 쓰기가 중요하지만, 쓰지 않는 사람 중에도 쓰기만큼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책 읽지 않아도 여전히 지혜로운 사람들이 ㅋㅋㅋㅋㅋ 책 많이 읽어도 여전히 모를 수 있고,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는 모두 다 똑같다는 그런 생각이... 제 댓글 어디로 가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어로 사유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셔서... 퍼뜻 생각납니다. 저는 박정희의 모델로 제시된 이순신 장군에 대해 호감이 없었는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이순신의 역할에 대해 읽노라면 ㅋㅋㅋㅋㅋ 이순신 장군 아니었으면, 우리 이 대화 전부 일본어로 하고 있을 겁니다. 그니깐, 민족과 국가라는 이데올로기로의 호명, 헌신. 이순신과 우리 조상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이 시간, 식민지 근대화론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거지요. 한국어로요. 저는 그 부분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러브레터는 내가 썼어요. 다른 점이라면 쟝님은 선생님과 통한 사이이고, 나는 불통인 사이라는 건데 ㅋㅋㅋㅋ 난 괜찮아요.
부럽지만 부럽지 않고,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웁니다!!!

공쟝쟝 2024-08-19 13:55   좋아요 0 | URL
˝쓰기가 중요하지만, 쓰지 않는 사람 중에도 쓰기만큼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책 읽지 않아도 여전히 지혜로운 사람들이 ㅋㅋㅋㅋㅋ 책 많이 읽어도 여전히 모를 수 있고,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는 모두 다 똑같다는 그런 생각이...˝

<-- 정확히 반대 되는 지점에 대해서 ㅋㅋㅋㅋㅋ 요즘 생각 거슬러 오르는 중이었어요. 언제나 읽고 쓰기가 그렇게 까지 중요한 건 아니다(그럼 못 읽고 못쓰는 사람 어떡하냐?)라고 막막 입 툭튀어나온채로 읽다가... 그런 제 생각이........ 엄청나게 배아픈 왜곡(?)이었다는 걸 깨닫고... 읽고 쓰는 것이... 그런 사람들이 넘나 멋지다(이상화ㅋㅋㅋ).. 이렇게 생각 바꿔먹은 저 로서는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님, 드라마 보는 저를 한심해하지마세요. 저는 요즘 1. 굿 파트너 2. 돌풍 을 보고 있습니다. 결혼 혐오와 운동권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아니고요 (그런 내용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너무 재밌음... 드라마 너무 좋아!!!

정희진 선생님, 혹시 이 러브레터 읽으신다면... 경애합니다! 눈 밝은 선생님 팟캐스트의 부끄럽지 않은 청취자가 되기 위해 공부 중입니다!!

단발머리 2024-08-20 09:00   좋아요 1 | URL
엄청나게 배아픈 왜곡.....에 대해서 저는 동의합니다. 쟝쟝님 항상 강조하는 ‘필력 결정론‘에도 동의하고요.
장강명, 잘 썼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잘 써서 내가 좋아한 거였어요. 이유를 인제 찾았어요. 하하하하하하하!

드라마 보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던 저를 회개합니다. 드라마를, 그 깊이와 넓이를 이해 못했던 저의 무지 때문입니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종영되고 7-8년 뒤에 정주행했거든요. 어김없는 회개 타임 ㅋㅋㅋㅋㅋㅋㅋㅋ

달자 2024-08-17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버튼 한 번에 한번씩 눌러주세요” 공감 꾹 하고 갑니다 ㅋㅋㅋㅋㅋㅋ 얼마전 대만 여행 때 동행자의 대만인 친구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하고 아주 즐겁고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눴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일본의 식민기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약간 농담반 진담반으로 ‘중국에 비해선 일본이 나아서’라고 하더라구요. 어느 정도는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사실 한국인에서 나고 교육을 받고 자란 저로서는 그 정서가 확실히 이해하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리고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들의 정서는 또 다르더라구요.

단발머리 2024-08-17 23:11   좋아요 2 | URL
선생님~~ 제발 한 번에 한 번씩만 눌러주세여 ㅋㅋㅋㅋㅋㅋ

제가 위의 캡처해 놓은 책 <이슈 한국사>의 저자도 달자님 댓글 써주신 바로 그 부분을 지적했는데요. 그 요인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근접성을 들더라구요. 가까운 이웃으로부터의 지배가 훨씬 더 싫다? 이런 느낌이요. 달자님 동행자의 대만인 친구와 같은 결인거 같아요. 대만 입장에서는 중국보다 차라리 일본이 낫겠지요.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보다 차라리 영국이나 독일이 나았을 수도 있고요.

유부만두 2024-08-18 0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도 버튼 씨게 씨게 누르는 글인디요?

단발머리 2024-08-18 18:2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잘 문질러 주세요! 가끔 고장나면 눌렸다가 안 올라옵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4-08-18 1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버튼이 눌리는 것도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같은 자극을 준다고 해서 누구나 그 버튼이 똑같이 눌리는 건 아니니까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혀 버튼이 눌리지 않을 수 있잖아요? 단발머리 님이 눌리는 버튼이 쓰기, 읽기, 공부하기 여서 너무나 좋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쪽으로 버튼 계속 눌리시길 바라고요, 저도 같이 눌리도록 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4-08-19 21:32   좋아요 0 | URL
버튼 눌렸을 때, 물 들어왔을 때 열심히 전진해야 하는데.... 는데.... 오늘 간만에 출근이라 좀 피곤하네요.
계속 계속 눌러주세요, 다락방님! 우리 서로서로 눌러 주고 또 눌러 주고 ㅋㅋㅋㅋㅋ 그런 ‘눌러 주는‘ 사이가 됩시다!!

독서괭 2024-08-20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매버튼이 중요하다, ㅋㅋㅋㅋㅋㅋ 너무 좋네요 ㅋㅋㅋㅋ 저도 알라딘 오면 구매버튼, 공부버튼, 쓰기버튼, 읽기버튼 다 눌리는데 그중 구매버튼은 매우 조심하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2024-08-21 13:17   좋아요 0 | URL
구매버튼을 매우 조심하고 계신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귀여운 냐옹이들이 모두 다 출동해서 괭님의 구매버튼을 사정없이 눌러주기를ㅋㅋㅋㅋㅋㅋㅋ저는 참고로 읽기 버튼을 제일 중히 여깁니다ㅋㅋㅋㅋㅋ
 
















배제와 혐오의 정서가 작동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분법 벗어나자. 왜 두 가지 밖에 없나. 죄송해요, 지금 생각나는게 이거 두 개 밖에 없습니다) 문화의 저변에 굳건히 자리잡아 그것이 '혐오'이고, '배제'의 정서임을 철저히 감추는 방식. 그런 행동 양식이 '혐오'라고 지적했을 때, '아니, 그게 왜?', '그거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말하도록 강제하는 방식. 그런 방식의 가장 강력한 실례는 당연히 5천년 인류 문명의 결정판 여성 혐오다. 남녀 평등을 표면적으로 거절하는 사람은 없지만,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훨씬 많다. 그렇다고 여성혐오가 작동될 때, 두 번째 방식이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방식은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 배제와 혐오의 정서를 폭력적으로 과시하는 것이다. 최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서 일어났던 폭력 소요사태가 그에 대한 가장 적절한 예가 될텐데, 먼저 일어났던 사건의 피의자가 영국 태생의 기독교인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짜 뉴스에 속은 사람들의 외침은 일관되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돌아가라, 너희 나라로! 이민자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표출되었다. 대낮에 길거리를 막아서서 운전자의 얼굴색, 인종을 확인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정상성을 유지하는,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야만적 행동이다.

유대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행동 양식은 이 두 가지 방식 중 두 번째 방식에 해당한다.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능욕했는데, 이는 눈빛이나 태도등의 소극적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규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반유대주의 전설에 따르면, 빌라도에게 "그 사람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라고 외친 이래로 유대인은 치질로 고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치질을 고치는 길은 그리스도의 보혈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유대인이 그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질에 효험이 있는 유월절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피를 얻으려고 매년 그리스도 대신 한 사람을 죽여야 했다는 이야기다. ... 이렇듯 한 사건에서 출발한 유대인에 대한 비난은 살인 의식에 대한 고발과 피의 비방(중세시대 유대인이 아이들을 유괴하고 죽여서 종교 의식에 쓸 피를 마련했다는 비방에서 유래한 용어로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 대한 부당한 비방을 가리킨다-옮긴이)으로 뻗어나갔다. (『유대인의 역사』, 359쪽)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들을 사랑한다』를 읽고 페이퍼를 2개 썼지만, 사실 쓰지 못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새롭게 알게 된 정보와 지식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걸 풀어내는 유대인 작가의 서늘한 시선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쓸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습격이 계속되는 요즈음, 나의 '반유대주의' 독서가 이렇게 계속되어도 되는지, 결국 이 읽기가 도착하고자 하는 궁극의 자리는 어디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집은 여전히 만차 상태, 남은 휴일은 내일 하루, 월요일부터 출근인 사람이 취할만한 적합한 태도는 아니지만, 일단은 도서관에 상호대차로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과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를 신청해 두었다. 그리고는 다시 데어라 혼의 책을 펼친다.

<11장 샤일록과 함께하는 통학길>. 저자는 자동차라는 닫힌 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같이 듣게 된다. 그녀는 스스로도 그 작품을 다시는 읽고/보고 싶지 않았던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그 사람이 그 작품을 듣지 않게 하기 위해 그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녀의 열 살짜리 아들은 고집이 세고, 요구가 많고, 집착이 심하고, 무시무시하고, 종종 너무 똑똑해서 결국 그녀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작품을 듣는 과정에, 아들은 날카롭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그녀에게 퍼붓는다. 그녀는 계속해서 작품 속의 '복잡미묘한 결'에 대해 아들에게 설명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꺼버리자'는 저자의 말을 뒤로 하고 아들은 끝까지 들어보겠다고 한다. 마침내 극이 끝나고, 그녀의 아들이 말한다. "저거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요." "분명히 다시 듣게 될 거야."

나는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여러 층위를 포함하고 있으며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인물의 불명예스러운 흉물스러움은 심지어 열 살짜리 아이에게도 명백하며, 이 희곡이 얼마나 많은 층위를 포함하고 있든 간에 그런 흉물스러움도 분명 하나의 층위이다. 학대 당하는 아내가 다정한 남편이 왜 자신을 때렸는지 설명하는 것처럼, 내가 왜 이렇게 극도로 명백한 사실에 대해 변명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껴야 하는지 궁금했다. 나 자신이 속한 민족에 대한 모욕을 단지 만화에 국한된 적이 없었고 너무도 많은 내 선조들의 존엄과 심지어는 목숨까지 앗아간 모욕을 정당화하는 이런 비뚤어진 역사적 심리 조종에 내가 왜 참여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315쪽)

나는, 인간이 언어의 동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언어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유일한 종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그녀의 열 살짜리 아들이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를 미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해서 변명한다. 열 살짜리 남자 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명확한 혐오와 멸시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 애쓴다.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베니스의 상인』 전반에 전시된 반유대주의에 대한 비판은 '수준 낮게 징징거리는 인간들'(300쪽)의 것이라 치부되고, 그 작품의 원래 의도, 즉 자본주의 비판과 '타자'에 대한 논평이 이 작품에 대한 '제대로된' 해석이라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게 현실이다. 열 살 남자 아이도 단번에 알아듣는 그 진실을, 사람들은 모른체 하고, '예술 작품' 속 다양한 층위를 설명하는 하나의 장치라 여긴다. 그렇다고 말한다. 열 살 남자 아이도 단번에 알아듣는 그 진실을. 모두 다, 모른 척 한다. 여전히 셰익스피어는 옳고, 틀리지 않은 상태가 계속 되고 있다.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공권력의 힘을 동원한 실제적인 억압으로, 문화의 탈을 쓴 교묘한 속임수로. 여성, 이민자, 장애인, 성소수자 이에 더해 이제는 어린이와 노인에 대한 혐오마저도 부끄러워 하는 기색도 없이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유대인은 핍박받는 피해자에서 가해자의 위치로 탈바꿈한 거의 유일한 집단이다. 그들은, 가자 지구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를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과 이를 구경하려 온 피난민들에게 폭탄을 투하하면서도, 자신들이 피해자라 생각할 것이다. 정체성의 정치에 매몰되어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라 믿으며, 피해의식의 경쟁에 올인할 때,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네타나휴의 이스라엘에는 희망이 없다.

하지만.

한반도의 상황은 다르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실질적, 군사적 압력으로 북한이 존재하는 작금의 분단 현실 속에서, 군사 전체주의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일본의 침략 야욕은 노골적이고 확고하다. 용서를 바라지 않는 가해자,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가해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윤석열 정권의 국영방송 KBS는 광복절 새벽 0시에 <나비부인>을 상영함으로써, 기미가요를 부르는 여배우를 비춰줌으로써 하나의 답을 제시했다. 화해와 협력, 그리고 공동 번영. 내 생각이 여전히 '정체성의 정치'에 함몰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다. 내 나라 보다 일본을 더 위하고, 내 나라보다 일본을 더 사랑하는 윤석열 정권 하에서, 나의 '정체성의 정치 공부'는 좀처럼 전진하지 못할 듯하다. 그런 예감이, 불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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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8-16 09: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한줄한줄 따라가면서 읽었습니다. 이번 호 정희진의 공부를 들으면서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전범국가 일본은 피폭 때문에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서 저는 이상한 감정이 갈등한다는 걸 느꼈거든요. 저 핵폭탄이 떨어질 때. 일본인들은 그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단발님의 이 글을 읽으니 혐오는 촘촘했고 배제의 역사도 인간의 역사였지만. 그것이 ‘대량 생산‘되는 시스템에 대해서 물은 사람. 그 자신이 유대인이자 난민이었음에도 그 정서를 끊어내면서 사유해야한다고. 말했던 사람. 그게 세계 사랑이라고 말했던 사람. 현시점의 조건을 탐구하면서 사유는 위험하지만 그것만이 방법이라 말한 우리 아렌트의 탁월함이 계속 떠올라요... 멈춰서 숙고하고 생각해야하는데... 전체주의의 기원을 너무너무 읽고 싶은 데... 지난달 밀린 읽기들 때문에 맘이 바쁜 나날들입니다. 먼저 훨훨 가시는 단발님 글 읽고 저도 찬찬히 따라갈게요.

“(179) 내 생각에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심사숙고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실제로 모든 사유는 엄격한 법칙, 일반적인 확신 등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기반을 약화시켜요. 사유하다가 일어나는 모든 일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비판적으로 검토할 대상이 돼요. 즉, 사유 자체가 그토록 위험한 일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위험천만한 사유란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어떻게 확신하느냐면….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한나 아렌트의 말

단발머리 2024-08-16 10:17   좋아요 4 | URL
일본은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죠. 원폭의 피해자인건 사실이고요. 문제는 이전의 악행이 그걸로 덮히느냐하는 문제고요. 그런 피해자인 일본이 그 일의 직접적인 가해자인 미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뭐랄까요, 저는 일본이야말로 ‘힘의 외교‘에 완벽하게 반응하는 국가 같아요. 강제 개항시키고 원자폭탄 떨어뜨린 미국에 대한 굴종, 맹목적 굴종. 가깝고도 먼 나라, 맞습니다.

아렌트의 탁월함을 떠올리셨다면, 그건 제대로 된 독해일 것입니다. 제 글과의 연관성 보다는 ㅋㅋㅋㅋㅋ그냥 우리 아렌트님의 천상계 이론과 사유. 그 넓이와 깊이와 폭을 우리가 쪼금이라도 맛볼 수 있다면, 사고 실험과도 같은 우리의 읽기와 쓰기가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끝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ㅋㅋㅋㅋㅋㅋ 그 책이 어디로 갈지 예상되었으니까요. 전 그런 결론에 동의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친밀한 적>을 읽고 나서는,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걸,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걸 알아보고 생각해 볼 여유가 제 안에 생겼습니다. 조금 더 읽어보겠습니다.

공쟝쟝 2024-08-16 10:47   좋아요 2 | URL
친밀한 적을 읽기에는 너무도 서구화되신 한국인 단발님께 데리다를 함께 읽자고 권합니다. 메롱!

단발머리 2024-08-16 10:58   좋아요 1 | URL
정중하게 반사합니다! 메롱😜

다락방 2024-08-16 09: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알라딘이 좋습니다. 이런 글을 써주시는 단발머리 님이 계시는 알라딘이 좋습니다. 알라딘이 아니라면 제가 이런 글을 도대체 어디에서 읽겠습니까. 단발머리 님의 독서는 계속 되어야 하며 물론 쓰기도 계속되어야 하는 바, 저는 단발머리 님의 독서에 물질적으로도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돈을 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4-08-16 10:20   좋아요 2 | URL
알라딘이 아니라면 제가 이런 글을 도대체 어디에 쓸 수 있겠습니까. 저의 알라딘 정착에 바람막이와 그늘이 되어주신 다락방님께 오늘 아침에도 찐~~~~~한 감사의 말씀을, 올려 드립니다.
저의 읽기와 쓰기는 계속되어야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의 물질적 지원도 계속되어야 하는바, 오늘도 열일 부탁드리오며, 1인 2메뉴, 달리기, 요가, 스몰 토크, 큰고모 독서클럽.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 주시기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8-16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침 오늘 아침에 유대인 문학평론가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대표작 <미메시스>에서 셰익스피어 챕터를 읽었습니다. 아우어바흐는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 가운데 천민, 평민, 중인 계급 중에서 비극적 인물은 거의 없는데, 유일한 예외가 유대인인 샤일록이었다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럴 듯해서 하루종일 기억에 삼삼했다가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게 되는군요. 물론 셰익스피어도 유대인에 대해 절대 호의적이지 않았지만요.

단발머리 2024-08-17 14:23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의 삼삼한 기억과 만나게 된 단발머리입니다^^ 저는, 셰익스피어가 호의적으로 쓰지 않았다기보다는 악의적인 면을 잘 ‘가공‘해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들이 줄창 떠들어내는 대목도 그 부분이라고, 저자는 지적하더라구요. 당시 영국 사회에서 유대인 혐오가 얼마나 방대하고 일반적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요.

독서괭 2024-08-16 18: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 들으니. 고전문학 속 여성혐오 비판하면 꼭 따라붙는 이야기들이 생각나는군요ㅜㅜ
단발님 덕에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됐습니다. 치질이라.. 그게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질병이었을 줄은.. 쿨럭

단발머리 2024-08-17 14:24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이 무얼 발견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걸 알게 되셨다니 저는 기쁨의 공중 3회전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치질이....... 참 역사가 오래되고 끈질기고 중요한 질병이에요. 그죠?

달자 2024-08-16 2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양질의 글을 읽을 수 있어 너무 벅찹니다… 반유대주의 독서에 균형이랄까(?)를 줄 수 있는 팔레스타인 작가의 소설책 <사소한 일/ 아다니아쉬블리> 살포시 추천하고 갑니다 총총

단발머리 2024-08-17 14:27   좋아요 2 | URL
어머... 반유대주의 독서에 균형을 생각해주시는 달자님의 우정에 감사드리고요. <사소한 일/아다니아쉬블리> 야무지게 적어놓습니다. 줄 서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지만, 얼른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해요, 달자님!

다락방 2024-08-18 20:00   좋아요 1 | URL
너무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원래는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를 마무리하고, 문학 작품에 나타난 반유대주의와 유대인 혐오에 대해 쓰려고 했다. 다음주는 개학이고, 첫날부터 바쁠 것이 예상되기에 나의 반유대주의와 유대인 탐구는 이번주까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무엇이 피해이고, 피해자를 규정할 수 있는 권력의 장소는 어디인가. 진영 논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논쟁이다.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다. 가해 피해는 팩트가 아니라 경합의 과정이지만, 경합의조건-다양한 목소리-이 없다는 의미다. 타인을 타자로 만드는 이들은 "우리는 억울하다. 우리는 당신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존중했다(봐줬다)"고 반발한다. (해설, 357쪽)




피해자성과 피해자 정치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기에 오늘은 적당하지 않은 날이다. 나는, 인도의 피식민지배 경험과 우리의 그것이 여러 측면에서 구별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을 정교화하기에도 오늘은 적당한 날이 아닌 것 같다. 이에 대한 연구와 숙고가 지식인,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한 걸음 앞서서 나아간다는 건 그런 것일테다. 사람들은 비난할 수도, 비판할 수도 있고, 결정적으로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으나, 그건 그대로 두어야 할 일이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책으로, 문장으로, 논리로 그 일을 이뤄가면 될 것이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았다. 강제노동에 대해 명확히 하기 위해 전시시설에 '강제'라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담아달라는 한국의 요구를 일본 정부는 거부했다. 우리 정부를 이를 받아들였고,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 외교부 장관이 말하는 국익이 도대체 어떤 나라의 국익인지를 가늠하지 못하겠는 나는, 한쪽 자리가 텅빈 광복절 행사에서 대통령이 뭐라 할지 궁금해지려고 한다. 미역국을 끓이면서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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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으면서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는데, 글로 남겨두지 않고 생각만 했던 것인지, 글을 썼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8장 <대륙의 제국주의: 범민족 운동>에는 '공통 기원'의 감상적인 표출인 민족주의(432쪽)을 통해 유럽의 여러 민족들이 '국민 공동체'를 구성해가는 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이는 민족 공동체라는 이상을 통해 내부를 통일하려는 의지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렌트는 범민족 운동이 선민에 대한 절대적인 권리 주장에서 출발한 점에 주목했다.(435쪽)

범민족 운동의 종족주의와 한 민족의 '신적인 기원'이라는 개념의 핵심은 '한 개인의 가치가 우연히 독일인 또는 러시아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좌우된다'라는 것이다.(439쪽) 국가는 단지 부차적인 것이며,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민족'이라는 범민족 운동의 주장에 제일 반대편에 위치한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국가도, 제도도 없는 민족이었고, 그들 역시 '신적인 기원'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 그들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체화했던 것이다.

인종주의자들의 유대인 증오는 신이 선택한 민족, 신의 섭리로 성공을 보장받은 민족이 자신들이 아니라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우려에서 나왔다. 거기에는 결국 모든 외양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에서 마지막 승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증을 받았다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민족에 대한 의지박약한 분노가 있었던 것이다. (『전체주의의 기원』, 451쪽)

여기에서 밑줄을 그어야 하는 지점은 ‘신의 섭리로 성공을 보장받은 민족이 자신들이 아니라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우려’다. 주체는 누구인가? 그러한 의심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인종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들과 다르다고 믿었다. 신의 섭리로 성공을 보장받은 민족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민족이 유대인보다 우월하고, 유대인들은 열등한 민족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심 불안했다. 신의 섭리로 성공을 보장받은 민족이 자신들이 아니라 혹시 유대인인 건 아닐까. 쉽사리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놀라운 지점은 인종주의자들의 우려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자기 확신이다. 이 세상 모든 민족들은 자신들의 특별함을 확신하고, 신화를 통해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이 세상 모든 민족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며, 신의 아들이고, 신의 아내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그 자체로 신으로 여겨지고, 일본 역시 신들의 결혼으로 만들어진 나라이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는 나름 소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친가는 하늘에 속한 집안(아버지 환웅)이지만 외가는 땅에 속했다(엄마는 웅녀).

유대인 역시 자신들이 신에 의해 '선택 받은' 민족임을 강조한다. 여기는 유별난 지점이 아니다. 특이점은 유대인의 그 말을, 그들의 이웃이, 다른 민족들이 믿었다는 데 있다. 유대인들이 '특별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라 주장하는 유대인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에, 그것을 확증된 사실/진리/미래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에 대한 주변 민족들의 증오심은 더더욱 강화되었을 거라고, 나는 추측한다.








이 책은 반유대주의가 어떻게 죽은 이들을 숭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효과로 살아 있는 동시대 유대인의 시민권까지 박탈하는가에 대한 래디컬한 문제 제기다. 책은 지적으로 풍요로우면서도 신랄하고 유려하다. 융합적 방식으로 공부한다면, 서양사를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해설, 정희진, 353쪽)

정희진 선생님의 해설을 숙고하면서 반유대주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꺼낸 책을 다른 책들과 함께 쌓아두고, 큰아이에게 내게 주려고 했던 간식을 미리 달라 하니, 김치냉장고인게 너무 티나는데 꼭 거기에 책을 쌓아두고 찍어야겠냐고 묻는다.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느니. 국밥집에서 스피노자 읽어주는 것이 이 동네의 국룰이거늘, 김치냉장고 위의 아렌트는 사소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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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8-14 13:13   좋아요 0 | URL
찬찬히 읽어요. 막 뛰어가지 말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08-14 13:31   좋아요 1 | URL
넘어지면 일으켜줘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8-14 13:39   좋아요 0 | URL
일단 넘어지면 안 되고요. 넘어지면 일으켜 드릴게요. 무릎도 털어드리고, 물티슈로 닦아드리고, 후시딘 발라드리고, 밴드 붙여 드릴게요 ㅋㅋㅋㅋㅋ

수이 2024-08-14 13:45   좋아요 0 | URL
사랑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8-14 14:06   좋아요 0 | URL
우웅~~ (뽀뽀!) 키보드라 이모티콘 안 나옴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8-14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렇게 답했을거라는 걸 예상한 쟝님을 칭찬합니다. 모든 종교가 배타적이지는 않잖아요.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지독하게 배타적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것과 더불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관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어요. 인내와 마늘의 화신이며, 웅녀의 후손이여! 같이 해봅시다 ㅋㅋㅋ

수이 2024-08-14 11:58   좋아요 2 | URL
복사하기가 잘못 눌렸는데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8-14 12:2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모든 걸 다아는 그녀는 인터넷 사용에 무지합니다 ㅋㅋㅋㅋ 제 웃음지뢰 ㅋㅋㅋ

단발머리 2024-08-14 12:29   좋아요 1 | URL
나 이거 뭐임요 ㅋㅋㅋㅋㅋㅋㅋ 뭥미? ㅋㅋㅋㅋ 현재 상황 차 안에서 무선 키보드로 댓글 달다가 생긴 불상사입니다.
이건 다 이상기온 때문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08-14 13:33   좋아요 1 | URL
이해하겠습니다 덥습니다 난리입니다 난리 헥헥, 모든 거 잘 알지만 아이클라우드 연동에 게으른 그녀가 잼나 꼭 읽어라 라고 말한 책 빌리러 도서관 왔는데 사람들 왜 이리 많아? 대체? 도서관에? 😱

단발머리 2024-08-14 13:40   좋아요 0 | URL
다 거기로 피신간 거에요. 작년에는 말이지요. 도서관에 사람들 집중되는 시간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니깐 10시부터 1시.. 1시 지나면 좀 자리 빠지고, 3시부터는 좀 한가하단 말이에요. 올해는 ㅋㅋㅋㅋㅋ 5시 50분까지 만차에요. 무더위 쉼터에요, 도서관이 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08-14 13:46   좋아요 1 | URL
바쁘다 바빠 우리 단발님, 아이스바닐라라떼 한잔 드시구요, 댓글 천천히 달아요 ㅋㅋ

페넬로페 2024-08-14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책 위에 올려진 kitkat 초콜릿이 눈에 들어 옵니다.
어제 도서관에서 들은 강의에서 저 초콜릿이 영국의 유명한 테이트 재단 거라는 것을 알았어요
자본주의의 발전이 핍박받은 유대인을 가해자로 만든 건지는 않은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단발머리 2024-08-14 13:58   좋아요 1 | URL
아.. 그랬군요. 오늘 처음 알았어요, 저는요.
<유대인의 역사>를 읽으면서 저도 그 생각을 했었는데요. 유대인들은 어디에서나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 돈을 자신의 불안한 지위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더라구요. 페넬로페님이 말씀해주신 부분을 저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독서괭 2024-08-14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치냉장고 위의 아렌트 쯤이야!!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8-14 13:36   좋아요 2 | URL
주부 포스 날리고 아렌트 읽기 ㅋㅋㅋㅋㅋㅋㅋㅋ 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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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생일에 책을 선물해 준다. 나는 어떤 선물보다 책 선물을 좋아하는데, 친구들이 골라서 선물해 준 책도 좋고, 친구들이 골라라~~ 해서 선물 받은 책도 좋다. 문제는 친구들이 생일이 아닐 때도 책을 선물해 준다는 것인데, 그래서 매일은 아니지만, 매우 자주 내 생일이 돌아오는 형국이며. 그 아름답고 예쁜 책들을 요리조리 쌓아놓고 찍은 사진들은 공장 초기화로 모두 날아가 버렸으니, 사건의 여파는 여기에까지 미치는 모양이다.






친구가 선물해 준 『유대인의 역사』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무언가를 외워야 할 필요 없이 저자의 서술과 설명을 순순히 따라가는 이런 책이 좋다. 특히 21일간 열대야가 지속되고 한낮 기온이 평균 32도에 육박하는 한반도 중부지방 생활자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표면적으로 '사건화'된 사건으로는 '드레퓌스 사건'을 꼽을 수 있을 텐데, 사실 그 사건은 반유대주의의 오랜 역사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 반유대주의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에게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 가지는 성경에 근거를 둔다.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던 유대인에게는 자의적 사형 집행이 불허되어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신성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예수의 사형을 로마 관료에게 요구한다. 그에게 죄 없음을 확인한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주려 하지만, 유대 지도자들과 성난 민중의 소동으로 빌라도는 예수를 그들의 손에 놓아준다. 그때의 상황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마태복음 27장 23-25절)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유대인을 가장 강력하게 배척했던 기독교인들이 증오의 근거로 제시하는 본문이 바로 여기다. 하지만, 유럽에서 유대인 혐오는 훨씬 더 오래되고, 훨씬 더 강력하다. 그 이유가 뭘까. 이 책에서 내가 확인한 두 가지는, 유대인의 독특한 식문화를 통한 정결 의식과 유대인의 지나친(?) 똑똑함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폴 존슨의 해석이다. (그러니 그의 책이다) 반유대주의의 근본적 이유, 그 오래된 혐오의 원인.



사회 교류를 막는 주범은 따로 있었다. 유대인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심화시킨 가장 큰 요인은 식사법과 정결법이었다. 유대인의 이런 관습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이상해 보였다. 바로 이 이상하고 생소한 느낌이 고대 세계에 반유대주의를 유발했다. 유대인은 단순한 이주민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민족을 다른 민족과 구별하고 분리시켰다.(231쪽)



음식은 민족 간에 서로를 구별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요소 중 하나다. '무엇을 먹는가' 뿐만 아니라, '무엇을 먹어서는 안 되는지'가 민족의 고유성을 보여준다. 유대인의 극도로 세세한 식사법과 정결법은 이민족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왔다. 식사법과 정결법에 대한 규례는 구약성경에 끝없이 이어진다. 유대인은 이를 철저하게 준행했다. 나는 괜찮은데, 우리는 괜찮은데, 그래서 우리는 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그걸 직접적으로 거부하는 사람, 그 음식들이 부정하다고(다른 말로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건 불편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김치 냄새를 몹시 싫어하는 프랑스인이 있고, 프랑스의 특정 치즈 냄새를 역겨워하는 한국인이 있다. 이는 문화가 접촉하는 상황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이방인이었고, 떠도는 민족이었던 유대인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섞이기를 거부했다는 점은 특이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고수했고, 이는 당연히 그들 전체 집단에 대한 거부감을 강화시켰다.




유대인은 그리스인보다 더 유서깊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이나 몇 가지 분야에서는 그리스인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문학만큼은 모든 양식에서 우월했다. 로마 제국 안에는 그리스인만큼이나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비율은 유대인이 더 높았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문화 정책을 주도한 그리스인은 히브리어와 히브리 문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 그리스인은 이집트 언어에 무관심했듯 히브리어와 히브리 문학, 유대 종교 철학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예 무시하기 일쑤였고 그나마 아는 거라고는 소문으로전해 들은 부정확한 지식이 전부였다. 유대 문화를 멸시하는 그리스인의 태도와 그리스 문화를 대하는 학식 있는 일부 유대인의 애증은 계속해서 긴장을 유발했다. (207쪽)




유대인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기독교는, 정확히 말해서 한국에 전해진 기독교는 이제 유대인들을 또 다른 형태로 이해하고 소비한다. 적은 인구수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세계를 장악하고 흐름을 주도하는 천재적인 두뇌 집단일 수 있는 이유가 그들이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이고, 이는 그들의 학문적 우수성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학문적 우수성의 근거로 사람들은 편리하게도(?) 노벨상 수상자 중 유대인의 비율을 들기도 한다.



저자의 주장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유대인의 비율이 로마 제국 문화 정책의 핵심이었던 그리스인보다 높았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보다 더 유서 깊은 문화, 문학에서의 압도적인 우월성을 가진 유대인들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리터러시'라는 측면에서 가히 전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 똑똑한 사람을, 똑똑한 민족을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물리적으로는 점령당했으나, 정신적으로는 로마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똑똑한 그리스인들에게 자신들만큼 혹은 자신들보다 똑똑한 유대인들은 미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그리스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끈질긴 긴장 관계가 그리스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 작품 속에 투영되고, 이는 반유대주의가 유럽 문화의 뿌리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오랜기간 지속되어 온 배제의 정서, 세대를 통해 전해져온 혐오의 감정이 동력이 되지 않았더라면, 홀로코스트는 현실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자 지구에서의 처참한 소식이 연달아 전해지는 요즘, 유대인의 괴로운 역사를 추적하는 일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도덕적 상대주의 시대에 홀로코스트는 악의 절대적 기준, 절대 악'(<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86쪽)이라는 시몬 베유의 주장을 읽었을 때, 나는 홀로코스트'만'이라고 말할 수 있나 하고 물었다. 영국에 의해 자행된 범죄들은? 벨기에는? 에스파냐는? 그들에게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은? 그들 역시 국가 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고통당하고,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는데, 어떻게 홀로코스트만 특별하다는 거지? 나는 이제 홀로코스트가 악의 절대적 기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들, 특별히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은 악의 절대적 기준에 부합하는 절대악이라고 생각한다. 피해 사실 자체가 가해자 구성의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웠던 과거가 이 지독한 악행, 절대악의 변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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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8-12 0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의 페이퍼를 통해 다시 만나는 유대인의 역사는 또 제가 알지 못하는 유대인의 역사네요. 유대인의 역사를 읽을 때에도 역시 이건 한 번 더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페이퍼 읽고나니 역시 한 번 더, 아니 두번 더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유대인의 역사를 읽고 쓰는 단발머리 님의 글을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계속 써주세요,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4-08-12 08:34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이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 추천해 주셔서ㅋㅋㅋㅋ 제가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를 읽을 수 있네요. 쉽고 재미있고 쭉쭉 읽힙니다. 자매품 <기독교의 역사>가 도서관에 있더라구요. 미리 찜해두었습니다.

이토록 지속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박해받았던 민족이 지금의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에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기다린다고 해주셔서 힘이 불끈 솟네요. 계속해서 읽어보겠습니다!

건수하 2024-08-12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 존슨 책 저도 예전부터 찜하고 있었는데 저번에 정의길님 책을 읽고 일단 밀어두었지요. 단발머리님 덕분에 접하니 좋네요. 식사법과 정결법.. 제가 읽었던 책에서는 이렇게 딱 규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럼 뭐라고 했었던가... 기억이 안 납니다. 이따가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

단발머리님의 괴로움에 뭐라 댓글 달아야 할 지 마음이 무거워 이제야 댓글 다는 1인... 그저 토닥토닥.

건수하 2024-08-12 13:02   좋아요 1 | URL
좀 찾아보니

예수를 부정하고 죽인 유대교도라는 오명에 더해 고리대금업으로 상징되는 비생산적이고 기생적인 직역에 종사하는 혐오스러운 집단이라는 주홍글씨가 찍혀 있었다.. 유대인의 정체성은 종교적인 차원에 더해 사회 경제적인 차원의 차별과 배제, 혐오가 만들어지면서 점차 굳어졌다.

고리대금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중세 유럽의 봉건체제에서 배제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중세 기독교 사회도 고리대금업을 부정한 일로 간주해 유대인에게 떠넘겼다. 이런 차별이 다시 박해로 이어졌다...

는 문장들을 발견했습니다. 식사법과 정결법에 대한 거부감이 시작이겠지만 이 책에서는 종교나 경제-사회적인 면을 더 크게 보는 것 같아요. <유대인의 역사>에도 좀더 뒤에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뒤에 게토가 유대인들이 스스로 요청해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그들을 가두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타자라는 개념을 한정하는 것이 현실로 구현되었다 볼 수 있겠네요. 인간이 참... 무섭습니다..

단발머리 2024-08-12 22:57   좋아요 1 | URL
저는 건수하님이 인용해주신 저 문장들이 유대인 혐오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에 종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를 통해 이윤을 얻는 유대인들을 멸시했다는 것이요. 건수하님 말씀대로 조금 더 뒤쪽으로 갈수록 경제-사회적인 측면에서 반유대주의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어요.

제가 궁금했던 건 그 이전이었는데요. 그러니깐 제가 읽는 이 책에서는 그 기원을 그리스인들과 유대인들간의 질시와 반목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문화적 우월성에 쩔어 있는 그리스인과 자신들이 최고라고 믿는 유대인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관계에 있었고, 그리스인들은 유대인에 대한 악감정을 자신들의 문학 작품에 그대로 표현했다는 설명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건수하님 읽으신 <유대인, 발명된 신화>를 저도 이어서 읽고 싶은데....... 그 쪽도 만만찮게 두껍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8-13 0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민족전체의 리터러시 밑줄 쫙. 한국의 문맹률 견줘보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이 글의 주장은.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을 싫어한다 이지요? 사람들은.
아... 어쩌지... 여기서 내 인기 없음의 이유를 찾아버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8-13 12:24   좋아요 2 | URL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을 싫어하지요. 그래서 온통 분홍빛이었던 쟝쟝님에 대한 제 마음이 요상하게 요동치고 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싫어한다 까지는 가지 않았으니까요. 더 똑똑해져라, 쟝쟝님! 촤락!!!!!

공쟝쟝 2024-08-13 21:09   좋아요 2 | URL
하하하지만 일정량의 똑똑을 뚫어헤치면 사람들은 탁월한 똑똑함을 사랑하게 되어있지요~! 이렇게 된 김에 사랑받아버리겠따리오! 단발님의 마음을 분홍분홍하게 만들기 일단 성공 🤎❣️🩷

단발머리 2024-08-13 22:25   좋아요 1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