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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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엔 맹금류>

 


나는 오래전에 제희와 헤어졌다. 헤어질 무렵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 나눈 대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즈음엔 제희네까지 갈 일이 있어도 안에는 들르지 않고 집 앞에서 헤어졌다. (65)

 

 

나는 오래전에 제희와 헤어졌다. 수목원 나들이가 있고 이 년쯤 지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헤어질 무렵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을 계기로 헤어지게 되었는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그날의 나들이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86)

 

 


황정은 소설집 『아무도 아닌』을 읽었다. 단편 전부를 읽은 건 아니고, <상류엔 맹금류>, <상행> 그리고 <명실>을 읽었는데, 2014 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상류엔 맹금류>가 좋았다. 전에 읽고 다시 읽으니 좋은 건지, 이 작품이 내게 맞는 작품이라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상류엔 맹금류>가 좋았다.

 



지난번에 읽었을 때는, 이 부분이 좋았다.


 

제희네 부모님은 비탈 위쪽을 단념하고 근처 식물원이나 둘러보자고 말했다. 피곤해 보였고 나들이에 관한 의욕도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느리게 이동했다. 나는 비탈을 다 내려온 곳에서 아까는 보지 못 했던 안내판을 보았다. 맹금류 축사라고 적힌 안내판이 화살표 모양으로 비탈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뒤처진 채로 그 앞에 한동안 서 있다가 일행에게 돌아갔다.

위쪽에 맹금류 축사가 있더라고 나는 말했다. 똥물이에요.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 (86)

 

 


지난번에 읽었을 때는, 이 단락이 주는 충격이 좋았다. 제희네 가족과의 수목원 나들이. 제희네 아버지는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고, 자동차 안에서는 에어컨디셔너를 켜나 마냐 문제로 입씨름이 벌어졌다.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이 너무 많아 산책길에 어울리지 않는데도, 제희네 어머니는 다 필요한 거라며 몽땅 가지고 가야한다고 고집했고(75), 뜨거운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짐을 쌓고 내리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던 제희는 고무줄을 당기다가 수리 발톱처럼 생긴 금속 고리에 복사뼈를 다쳤다. 제희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제희를 카메라에 담아보려 했지만, 누군가는 앵글 바깥에 있어 결국 무궁화와 반송, 당단풍을 찍었다. 늙어버린 제희네 아버지와 그를 원망하는 제희네 어머니.

 


깎아낸 산비탈과 야트막한 물이 흐르는 계곡에 이르러, 제희네 어머니는 아래로 내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제희네 아버지가 동의했다. ‘는 그게 싫었다. 무엇보다도 직관적으로 그 장소가 싫었고,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로 가고 싶지 않아서 다른 곳을 찾아보자고 했다. (83) 하지만, 결국 그 계곡 어디쯤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게 되는데그 다음이 이렇다.

 

 


위쪽에 맹금류 축사가 있더라고 나는 말했다. 똥물이에요.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 (86)

 


 

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생각한다. 만약 가 제희네 부모님과 함께 맹금류 축사 아래서의 점심 만찬을 마음껏 즐겼더라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편이 모두에게 좋지 않았을까. 그러는 게 옳지 않았을까. (87) 그리곤 생각한다.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 (87)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부딪히는 순간이 있다. 첫눈에 반한다는 건 내 마음이 흘러가 그에게 가 닿았다는 뜻이고, 내가 그 사실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내 몸을 떠나 그에게로 흘러가버렸다는 걸 눈치챘다는 뜻이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와 상관없이, 서글프고 외로운 일방통행일지라도, 이미 그렇게 되어 버렸음을 알아채는 순간이 있다. 극적으로 연출된, 영화같은 장면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움찔대는 그런 순간 말이다.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는 왜 안 되는가,의 문제다. 제희와 제희네는 무뚝뚝해 보이고 다소간 지쳤지만 상냥한 사람들인데 (87), 나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고, 그리고 좋은 사람들인데. 그런데도 제회와는 헤어졌다. 무슨 일 때문인지도 기억나지 않은 채로 그렇게 헤어졌다. 수목원 나들이에서의 그 사소한 어긋남이, 불편함들이 나와 제희를 멀어지게 한 걸까. 제희네 아버지의 사람 좋은 웃음이, 제희네 어머니의 억지가, 계곡 바닥 돌의 노란 줄무늬가, 맹금류 축사 안내판이, ‘와 제희를 헤어지게 한 걸까. 모른 척 마주 앉아 웃어 주지 못한 나 때문인가. 등지고 앉아 먹지 않는 나, 그런 나를 눈치 챈 제희 때문인가.

 


무엇 때문에 는 제희와 헤어졌는가.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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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12 0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마치 칼이 꽂힌 듯 찍으셨군요.

단발머리 2017-06-12 14:59   좋아요 0 | URL
사진 찍을 때는 그 생각을 못했는데, 말씀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책 뒷면입니다. ㅎㅎㅎ
 











 







진화심리학이 구애하는 남성과 선택하는 여성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 어떻게 작동하는지 논증하고 있는 이 책은 『하버드 사랑학 수업』의 저자 마리 루티에 의해 쓰여졌다. 저자의 의문은 진화심리학이 자신들이 믿고 있는 특정한 이념을 주장하기 위해 과학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신념을 신념대로 주장하라고 말한다. 연구자 자신도 특정 부분에 끌리고 있음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과학이라는 커튼 뒤에 숨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우리들에게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겠다고 말할 때, 그들은 대개 문화적 신화 만들기에 가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특정한 사회적 이념을 지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른바 과학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 이념의 핵심은, 자식을 가능한 많이 남기라는 진화적 명령으로 연애 행동(이른바 짝짓기 행동’)의 모든 면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다시 말해, 연애는 섹스의 문제고, 섹스는 아기를 만드는 문제다. (21)

 



나 역시 젠더와 성에 대해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방식들 가운데 특정 부분을 선택적으로 보고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들처럼 내 동기도 이념적이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내가 객관적인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4)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축으로 하는 성 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만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35)

 

 



인간의 짝짓기는 정자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의 섹스는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진화의 무지개』의 저자 러프가든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실제로 이루어지는 짝짓기의 횟수는 수태에 필요한 것보다 백배에서 천배쯤 더 많다. (58) 러프가든은 현대 성 선택설이 기만을 진화 원리로 격상시키는 것이 실수라고 주장한다. (59) , 정자 전달을 위해 더 많은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려는 남성은 여성을 자신의 침대로 꼬셔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녀를 속여야하며, 자신을 유혹하는 남성이 여성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할 때까지 여성은 계속해서 남성의 진심을 시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 이면에 정말 이러한 투쟁이 펼쳐지고 있는가. 그것이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 관계의 기초인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키스할 때조차,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탐색을 멈추지 않고 서로의 진심을 가늠하기 위해 애쓰는가. 이것이 진화심리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런 방식, 이런 형태, 이런 사랑이?

 

 


『도덕적 동물』의 저자 라이트는 현대 미국 사회를 일부다처제 사회로 바꿀 것을 제안하는데, 그것만이 일부일처제로 고통받고 있는 남성들을 구원하며, 남성의 부양이 필요한 가난한 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적합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63) 기회주의적 섹스를 호시탐탐 노리는 남성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둠으로써, 그 자신의 본능에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여성들은 잘난 남편을 공유하며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럴까? 라이트가 그리는 이상적인 사회를 떠올려보면, (물론 잘 되지 않겠지만, 억지로라도 떠올려 보면) 돈 많은 일부 남성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얻는 반면, 여성의 성은 강력하게 제한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라이트의 주장은 진화심리학의 이름을 빌리고 있지만,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 존재한 도덕 질서를 복원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욕망의 진화』의 저자 데이비드 버스의 주장에 대한 논증에서는 버스의 진화심리학 대중서에서의 주장과 학술 논문에서의 결론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우선 버스는 배우자 자질에 대한 선호도에 나타나는 차이에서 성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작았음을 시인한다. “일반적으로 배우자 선호성별이 미치는 효과는 문화의 효과에 비해 작았다.” 총 서른한 가지 자질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선호도에 나타나는 총 차이 가운데 성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2.4퍼센트에 불과했다. (99) 버스의 학술 논문에서 배우자감에서 바라는 열여덟 가지 자질에 대한 비교문화적 연구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 상호 끌림 사랑’, ‘신뢰성’, ‘정서적 안정과 성숙함그리고 긍정적 성향을 가장 중요한 네 가지로 꼽았을 뿐만 아니라, 남성들과 여성들은 이 자질들을 같은 순서로 선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대중서에서는 남녀 사이에 보편적 성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버스의 책은 여성들은 무엇보다 돈(그리고 지위)를 원하는 반면 남성들은 무엇보다 젊음(그리고 아름다움)을 원한다는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102) 무엇 때문일까. 왜 진화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특정한 방향으로만 해석하는 것일까. 왜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는 남녀에 대한 문화적 가정들을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이러한 가설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과학인 것이다. (105)

 


 

중학교 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정독했다. 남자들은 혼자 있고 싶을 때 동굴로 들어간다는 설명이 옳다고 굳게 믿었고, 그 연장선장에서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고, 다르게 생겨 먹었다는 주장을 의심하지 않았다. 남자는 성적으로 갑자기 확! 돌아(?)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 남자의 그 욕구, 그 성욕이란 건 도대체 어찌할 수 없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컸고, 방법은 여자가 조심하는 것 뿐이라는 설명을 마음에 새기며 자랐다.


 


이 세상 모든 남자가 섹스에 목매달지 않는다는 것, 섹스를 좋아하는 여자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자동차, 좋은 직장, 신용카드가 아니더라도 여자를 유려하게 유혹하는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남자에게 미친듯이 돌진하는 어떤 예쁜 여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예쁘지 않은데도 자신만의 특별한 매력으로 남자를 줄 서게 만드는 여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모두 다 최근의 일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구애하는 남성과 선택하는 여성의 이데올로기 밖에 있는 남성과 여성을 나도 모르게 예외로인식한 것일 수도 있다. 남성은 성에 적극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하며, 생물학적으로 적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 여성은 성에 소극적이며, 관심이 없고, 자신의 즐거움이 아닌 남성을 위해 섹스한다는 주장. 그것만이 옳다고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그런 설명이 과학적이라는 믿음.

 

 


진화심리학이 어떻게 남성의 바람기를 긍정하고, 여성의 성을 억압했는지 보다 더욱 관심이 갔던 주제는 결혼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성과 동일시하도록 훈련받는다. 어느 정도냐 하면, 우리는 지속되는 관계가 우리를 아무리 비참하게 만들지라도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우리는 지속되지 않는 관계는 아무리 즐겁다 해도 아무리 생기 있고, 활력이 넘치고, 자신을 탈바꿈시키는 경험이라 해도 실패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장기적인 안정과 결부시키는 성향은 우리 마음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사람들은 감히 그 대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250)

 

 


사랑과 지속성을 꼼꼼하게 연결시키고, 일부일처제의 결혼 제도 속에서 지속되는 관계만이 진짜 사랑이라고, 그것만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사회적 공통 믿음에 대해 저자는 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 제도는 영혼의 근대적 개념, 즉 사랑 없이 텅 빈 존재를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247) 주장에 동의하고, 행복한 결혼에 반대하지 않지만, 결혼을 행복의 정점으로 이상화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결혼 외에 사랑하는 관계를 영위하는 더 나은 방법에 대한 고민은 저자의 고민일 뿐만 아니라, 가족 붕괴, 가족 해체, 1인 가정, 저출산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고민일 수도 있겠다.














 

















네 권의 책 『도덕적 동물』, 『욕망의 진화』, 『연애』,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의 주장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논증의 형식으로 이어져 가는 책이기에, 앞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법하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남성의 성욕, 성욕 자체가 아예 없는 여성의 성욕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사람이라면, 그들의 주장은 이미 너무나 자세히 알고 있는 바, 저자의 반박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이 책의 추천사 또한 그 자체로 훌륭한 한 편의 글이라, 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정희진이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는 과학이나 성차별에 국한되는 책이 아니다. 지식이 만들어지는 앎의 원리를 일깨운다. ‘지적 대화를 위한 깊고 넓은 지식을 원한다면 이 책이 출발점이다. 근래 나온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낯선 시선>>의 저자)






 


진화심리학의 여성혐오는 확실히 문제지만,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진화심리학의 더 큰 문제는, 현대 페미니스트들이 낡고 권위적인 관행으로 여기는 젠더 프로파일링을 고집하는 것이다. (138쪽)

진화심리학의 모범 답안은 남성과 여성에 관한 ‘진실’이 현재의 평등주의적인 문화보다 더 뿌리 깊은 영역인 생물학에 있음을 암시한다. (144쪽)

많은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섹스에 대한 관심이 (이른바) 덜한 것은 사회적 요인보다는 생물학적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8쪽)

내가 라이트에게 분노하는 점은 그가 억눌린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 숙녀들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우리를 설득하기 위해 ‘과학’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213쪽)

라이언과 제타는 이른바 중년 남성의 위기를 분석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다른 때는 그렇게 똑똑하고 자상하고 다정하고 신중한 남성들이, 대체 뭐 때문에 순간의 성적 흥분을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걸까? 이어 대해 라이언과 제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대답을 내놓는다. 바로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생겨 먹은 탓에 남자들은 다양한 성경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 두 저자는 남성들의 성욕 과잉에 대해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노라 에프런이 한 말을 인용한다. "남자들의 문제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들의 문제는 인생의 어느 순간이 오면 한 여자에게 충실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냥 그런 거다. 그들 잘못이 아니다." … 나는 대부분의 독자보다 바람피우는 남자들 – 그리고 바람피우는 여성들 – 의 심정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지만, 그렇다고 용서 운운하며 오버하지는 말자. 한 남자가 아내를 두고 바람피우면 그것은 그 남자 잘못이다. (218쪽)

이미 분명하게 밝혔지만, 나는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성적으로 문란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그러한 경향을 억제하기 위한 도덕주의적 시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내 요지는 문란함의 젠더화 – 즉 그것이 특별히 남성의 기질이라는 생각 – 가 여성에게, 남성의 상처 주는 성행동을 용서하도록 극단적인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233쪽)

내가 진화심리학을 조사하면서 알아낸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 분야가 성 –특히 여성의 성-을 생식과 떨어뜨려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241쪽)

젠더 프로파일링은 단지 생기를 앗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비윤리적이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얻어 가기를 바라는 것을 딱 하나만 고른다면, 그것은 젠더 프로파일링이 관계를 다루는 폭력적인 방식임을 아는 것이다. 우선 무엇이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만드는가에 시선을 고정할수록, 우리는 사랑한다고 고백한 상대방을 포함한 타인들의 특이성을 볼 수 없게 된다.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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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6-08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벌써 이 책 다 읽으셨군요! 저는 또 진작에 사두고 아직..

저 지금 필립 로스 읽고 있는데요(휴먼 스테인), 이거 은근 불편한 시점이 많네요. 프랑스 여자 교수 설명하는 부분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해 깔보는(?) 시선 같은 걸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불편하게 읽혀서 당황스러워하고 있어요. 흐음..


단발머리 2017-06-08 16:26   좋아요 1 | URL
필립 로스에 대해서라면... 최근에,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거든요. 어디에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질문하는 사람이 필립 로스에게 페미니스트들이 당신 소설을 불편해한다더라. 이렇게 질문했더니,
필립 로스가, 뭐라고? 나는 개의치 않는다. 이런 식으로 답했던거 같아요. ㅠㅠ

제가 2년 전쯤에 필립 로스를 읽었을 때도 불편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지금 읽으면 또 어떻게 읽힐지.
사실 궁금하면서도.... 아....

이 문제랑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김훈을 좋아하지만, 좋아했지만, 한결같이 불편했어요.
읽을 때마다 불편했고, 그래서 <칼의 노래> 는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도 했거든요.
근데, 최근 작품 <공터에서>로 논란이 있었잖아요. 그 때 혼잣말을 했죠.
그래... 내 느낌이 맞았어. 불편해. 불편했어. 왜 여자의 신체만...난 김훈이 불편해.

어찌되었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휴먼스테인> 독서 여행이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ㅠㅠ
 































3주 전에 시내에 나갔다가 The Second Sex을 샀다. <바로드림>으로 구입하면 알라딘보다 5,000원이 저렴해 충동적으로 그만…. 충동구매는 후회를 부른다. 거의 대부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한 책이라서 대출 건수를 늘려주는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아무개님이 이 책에 별 3개를 주면서(*^^*), 7새로운 사회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전망에 대하여만 읽어도 되겠다 하셔서 그렇게 해볼까 생각 중이다.


『젠더와 민족』은 정희진님의 토요일 칼럼에 소개된 책이다. 상호대차로 빌린 책이라 가능하면 꼭 읽어보려 했는데, 전혀 가능하지가 않았다. 생각보다 어려워 이번에 돌아가면 이 책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잘 가. 아쉽지만 빠이 빠이~~



책 세 권을 미뤄두고, 오늘 읽은 책은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아직 3분의 1 밖에 읽지 않아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 하고. 지금까지 읽었던 부분 중에서는 이 부분이 인상깊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욕망이 꽂히는 지점이 저마다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욕망이 다른 동물들의 번식 본능과 유사한 것인 양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묘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또는 그녀가 번식적 이점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기꺼이 동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있는 상대가 유전적 로또일 때도, 그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별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않을 경우 억지로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덜 까다로운 사람들도 있지만, 인간의 욕망이 보여주는 진정으로 놀라운 점은 그것이 매우 차별적이라는 것이다. …. 요컨대 우리는 특정한 사람, 특정한 배우자를 진화심리학이 설명할 수 없는 전혀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경험한다. (127)




특정한 사람에게 느끼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내 앞의 그 사람이 전혀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느껴지는 그런 순간. 그런 순간을 설명할 때, 보통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우리가 특정한 사람, 특정한 존재에게 한없이 끌리는 순간, 그의 인력에 거부할 수 없는 순간, 내 눈동자와 손과 발, 몸 속 세포 하나 하나가 오직 그 사람에만 향하는 그 순간을 우리는 설명할 수 없다. 증명할 수 없고, 밝혀낼 수 없다.




『욕망의 진화』의 저자 데이비드 버스는 배우자 자질에 대한 선호도에 나타나는 차이에서 성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작았음을 시인하면서도(99), 여성들은 무엇보다 돈 (그리고 지위)를 원하는 반면 남성들은 무엇보다 젊음(그리고 아름다움)을 원한다는 개념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101)  버스의 주장에 반박하는 이 책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는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가 남녀에 대한 문화적 가정들을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이러한 가설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105) 그런 과정이 과학적이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조금 더 읽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진화심리학은 인간,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무시하는 듯하다. 인간은 영장류의 한 종류인 동물일 뿐이고, 또한 한낱 동물에 불과하지만, 본능에 따르지 않는, 본능을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설명에서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사랑. 나에게 유익하지도 않고, 나를 이롭게 하지도 않는, 오히려 나를 절망과 한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그 어떤 대체 불가능한 존재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과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없이 이타적으로 변해버리는, 희생을 희생이라 여기지 않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양보해버리는 혹은 양보하고 싶은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설명이 불가능한 그 모든 행복하고 즐거운, 절망과 후회의 순간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타인의 특징은 아주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우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 톤, 눈빛, , , 눈썹, 손톱 모양, 또는 커피 잔을 집는 방식에 매료되기도 한다. 한 사람이 말하거나 움직이는 방식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남성이 과거의 상처로 방황하는 모습이 어떤 여성들의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한 남성의 무엇이 자신을 매료시키는지 구체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그 남성의 독특한 분위기를 말하며 그 수수께끼 같은 자질을 묘사하는 여성들도 있다.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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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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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아내들이 대개 여자였다. (31)

 


아내 가뭄이라는 제목을 문장으로 바꾸면 우리는 모두 아내가 필요하다혹은 여성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쯤 되겠다. 전통적으로 아내란 집 안 여기저기 쌓여가는 무급 노동을 더 많이 하려고 유급 노동을 그만둔 사람이다.(30) 아내가 집 안의 자질구레한 일을 맡아주기에 결혼한 남자는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있는 남자는 직장에서 미혼의 남자보다 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아내의 도움으로 남자는 더욱 안정적으로 자신의 일에, 자신의 인생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첫 아이의 출생과 함께 신체 리듬은 육아, 정확히는 수유 간격에 따라 맞추어지고, 아이와 관련된 모든 일에 자동적으로 ‘1순위가 될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는 일에 소홀한 무책임한 사람으로,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소홀한 무심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20년 동안 여성 대졸자 수는 남성 대졸자 수를 크게 앞질렀다. 1985년에 앞지르기 시작하여 지금은 전체 대졸자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 또한 직장에서 어느 정도 끈질기게 버텨 경력 사다리를 반 정도 오른 여성들도 있다. 이들은 중간 관리자의 45퍼센트를 차지한다. 하지만 회사 중역에 이르면 여성의 비율은 고작 1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 증권 거래소 200대 기업의 CEO 중 여성의 비율은 게일 켈리(오스트레일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웨스트팩은행의 CEO)가 휴가 중인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2~3퍼센트를 왔다 갔다 한다. (68)

 

 


전체 대졸자의 60퍼센트가 여성이고, 또 많은 수의 여성들이 직장에서 일하지만, CEO를 비롯한 최고위 자리에까지 올라서는 여성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이 남성보다 일을 못하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야망이 적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불성실하기 때문에? 아니다. 남성이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회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면, 여성도, 그 일과 관련해 노력과 실력을 갖춘 여성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결혼하고, 똑같이 취업해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여성 CEO의 비율이 2~3퍼센트라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성에게는 아내가 없다라는 것?


 







일하는 여성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더 많은 여성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로 더 많은 여성들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가정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을 가정에만 묶어두려는 여성의 신비가 약화된 것은 기뻐할 만한 일이지만, 문제는 여성이 직장에서 일하는 만큼또는 여성이 직장일 때문에 가정의 일을 돌보지 못하는 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남성들이 채워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여성을 직장으로가 서서히 자리잡아가는 반면, ‘남성을 가정으로는 여전히 먼 일처럼 보인다. 결국, 일하는 여성은 이중 노동에 시달린다. 직장에서 일하고, 가정에서 일한다. 생계부양자로서 일하고, 아내로서 일한다.


 





많은 여성들, 특히 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업무 경쟁이 치열하고 스트레스가 많은데, 집에 오면 집안일도 내 차지고…… 남편 짜증과 비위 맞추기에 지쳤다.”며, “나도 마누라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페미니즘의 도전>, 103)

 

 


그 다음은 악순환이다. 미뤄둘 수 없고, 기다려 줄 수 없는 육아의 특수성 때문에, 여성들은 좀 더 책임 있는 전임제 일자리보다 탄력적 근무가 가능한 임시직, 시간제 일자리에서 일하기로  스스로’, ‘결정한다. 그래야만 가정일과 직장일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여성은 남성의 재산이었다. 여성들은 아버지-남편-아들 (혹은 오빠나 남동생)의 법적인 지배 아래 있었다. 1893년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고, 미국에서는 1920, 대한민국에서는 해방 이후 실시된 선거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가장 최근에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나라는 2015년 여성의 선거 참여를 허용한 사우디아라비아다. 이게 끝은 아니다. 여자는 취업할 수 있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퇴직해야만 했다.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실제로 그랬다. 44년간이나 유지되던 기혼자 퇴직법’, 여성에게만 적용되었기에 정확히는 유부녀 퇴직법은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1946년에야 폐지되었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많은 불평등들이 하나씩 바뀌어 가고 있다. 앞으로도 갈 길은 무척이나 멀어 보이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는 여성들과 남성들이 반세기 전에 그랬듯이 함께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새로운 전국적 운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40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은 이제 30시간이 돼야 할 테고, 합쳐서 주 80시간을 노동하면 안 되는, 아이를 키우는 남성과 여성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노동하는 부모들에게는 하루 6시간 노동이 알맞고, 젊은 남성과 여성은 교육과 심화 훈련의 기회를 노동과 결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0세가 넘는 사람들은 집안일만 돌보기보다는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계속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좀더 많은 일자리가, 그리고 여성과 남성에게 새로운 성공의 기준이 주어져야 한다. (<여성의 신비> , 16)

 

 

남성과 여성, 아이와 노인이 함께 행복한 사회에 살기 원한다는 데에 모든 사람들이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권위적이고 자신의 주장만 말하는 아빠와는 누구도 저녁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피곤에 절어 무력감에 빠져있는 엄마와는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항상 그립지만, 어린이집 차에서 내렸을 때 두 팔로 맞아주는 아빠가 서있다면 아이는 활짝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같이 키우며,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하는, 다시 또 살아가고 사랑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모두 행복한 이 시간 속에서, 혼자만 울고 있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이리저리 1 3, 혼자만 뛰어다니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혼자 속앓이 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식구들 모두 웃을 수 있고, 모두가 행복해야 그게 진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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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7-05-30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_ 좋음. 오늘 글 짱 좋음.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단발머리 2017-05-30 17:22   좋아요 0 | URL
우리 모두 아내가 필요하지요~~
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야나님이 좋다고 하니 나도 좋네요. 헤헤
 
루슬란과 류드밀라 비룡소 클래식 7
푸슈킨 지음, 카랄리코프 그림, 조주관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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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에서 제일 먼저 소개된 작가가 푸시킨이고, 책 제목을 비룡소 클래식에서 본 것 같아 찾아보니, 이 책이다. 다짜고짜 첫날밤.

 

 

여러분! 속삭이는 사랑의 소리가 들리는가?

달콤한 키스 소리가 들리는가?

마지막으로 신부의

더듬거리는 수줍은 말소리가 들리는가?

신랑은 이미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안으려고 가까이 다가섰다.

이때 갑자기 … (19)

 


 






신부 류드밀라는 밤안개보다 더 검은 그림자와 함께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딸을 잃은 대왕은 류드밀라를 찾아주는 사람에게 그녀를 아내로 주겠다고 선언한다. 이미 그녀는 루슬란의 아내인데.... 그녀를 짝사랑하던 기사 3명과 그녀의 남편까지, 한꺼번에 네 사람이 길을 떠난다.









질투의 화신들인 기사들과 결투하고, 머리통과 대결하고, 핀란드 노인의 도움을 받아 난쟁이 마법사 체르노모르에게서 아내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 루슬란. 한 번의 위기를 더 겪은 후에 잠자는 류드밀라를 마법에서 해제시키고 그녀를 구한다. 그리고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오래오래 행복하게.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사랑과 모험이야기보다 더 관심이 가는 건, 작가의 이야기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말 그대로 동화 같은 이야기. 사랑과 질투, 명예 회복을 위한 결투 신청 그리고 죽음. 푸시킨은 정말 아내를 그렇게 사랑했을까. 사랑. 사랑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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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시킨이 자존심이 센 성격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랑과 명예, 두 마리 토끼를 되찾고 싶어서 결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


단발머리 2017-05-30 14:31   좋아요 0 | URL
나탈리아가 니콜라이 1세와도 썸싱이 있고 해서, 사실 푸시킨이 많이 예민했던 건, 맞는 것 같아요.
사랑과 명예 중에,
사랑과 진지한 대화, 일테면.... 너는 날 사랑하지 않냐... 를 먼저 나눴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