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의 털 사계절 1318 문고 50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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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이 말은 효경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므로 감히 다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처음이라는 말. 맞는 말이다. 부모에게 하는 효도가 별것 아니다.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효도가 된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온통 자식에게 신경이 간다. 그러니 자신의 몸을 돌보거나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효도의 처음이 된다. 공부, 출세... 이것은 나중일이다. 

 

그런데 이 말을 정면에서 거역하는 일이 일어났다. 조선말에, 아니 대한제국 시기라고 해야 하나... "단발령"

 

우리나라가 개화를 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명령, 그것도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반대하는 백성들의 머리를 강제로 자르기도 했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야 했던 그 어마어마한 재앙.

 

아마도 우리 조상들에게 이 "단발령"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재앙이었으리라. 조상을 배신하는, 부모를 욕되게 하는 그런 일. 하여 어떤 이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지키기도 했는데...

 

몇 십년이 지난 뒤 세상은 다시 단발령이 난무하였으니.. 어른들에게는 장발 단속으로(이래서 역사는 반복되는가?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들의 머리카락을 자르라 마라 하는 공권력은 그 나라 성인들도 진정한 성인으로 대우하지 않고 미숙한 사람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이 바로 장발 단속령이라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학생들에게는 두발 규제로 나타났다.

 

단발령이 포고되고 머리를 자르는 사람이 '체두관'이었다면 몇 십년 뒤에는 경찰관이 또 학교에서 학생부장이 그 역할을 맡았다.

 

이 소설은 이런 점에 착안해서 내용이 전개된다. 주인공은 열일곱 살이 된 송일호. 그는 태성이발관 주인의 손자이고, 그의 고조할아버지는 사람들의 상투를 잘랐던 체두관이었다. 그야말로 그는 짧은 머리를 하고 지내야 할 태생이었던 셈.

 

그런 그가 두발 규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계획하다 정학을 당하게 된다. 학교 교문 앞에서 벌어지는 현대판 체두관 학생부장 '오광두'의 머리깎기를 보고, 그 비인간성에, 비교육적인 면에 반발해 두발 자유를 외치는 시위를 계획하지만 사전에 탄로가 나고...

 

학교에서는 정당한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학교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부모님 소환을 하고(이게 학교에서 가장 잘 쓰는 방법이다. 학교는 늘 '악법도 법이다'는 말과 '중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을 상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일호의 아버지가 학교의 방침을 비판했다는 이유까지 가중치가 되어 정학 30일 처분을 받는다.

 

시위를 한 것도 아니고, 시위 계획에 정학 30일이라.. 이는 괘씸죄가 추가된 것일텐데...문제는 주인공이 이발소집 자손이라는 것. 조상은 단발령을 철썩같이 신봉하고 실행했던 사람이라는 것. 현재의 이발소 주인인 할아버지 역시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그 집 자손이 두발 규제 반대 시위를 하는 것은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중재하는 역할로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 20년 전 집을 나가 세계를 유랑하다 돌아온 사람. 그는 자유를 찾아 떠났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그로 인해 아들은 송일호는 더 먼곳을 볼 수 있게 되고...

 

재개발 문제가 겹치면서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되고 결국 할아버지의 결단으로 학교는 두발 문제를 재심의하기에 이른다.

 

열일곱살의 털... 제목으로 이상한 생각을 하겠지만 이 때의 털은 바로 머리카락이다. 그리고 이 머리카락은 바로 청소년의 신체다. 그들의 몸이다. 또 그들의 권리다. 그들의 자유다.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침해하면서도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너희는 한참 공부해야 할 때니까.. 또 이것은 학교 규칙이니까라는 말로 합리화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또 여기에 예전에는 한 학교마다 꼭 존재하는 별명 '미친개'가 있지 않은가. 이 작품에서는 현대에 맞게 영어로 '매드 독(mad dog)'이라는 교사가 등장하고, 아이들은 요즘 추세에 맞게 이를 줄여서 '매독'이라고 부르는데... 아이들의 인격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하는 교사.

 

아이들의 행동을 촉발시키는 그런 교사가 등장하여 소설의 내용을 더욱 흥미롭게 해주고 있다. 물론 그의 역할은 사건이 터지는 순간까지이다. 그 다음부터는 이런 인물의 역할은 중요해지지 않는다. 이미 사건이 터졌다면 그것은 그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되었다는 이야기고... 그는 다음부터는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하여 열일곱의 털은 행복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청소년 소설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고, 청소년들의 성장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도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 많은 시,도에서(비록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기껏 제정된 청소년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청소년 인권조례를 제정하여 학생체벌 및 학생의 신체표현의 자유를 명문화하고 있으니... 그렇게 지방자치 조례로 학생들의 털에 대한 자유가 명문화되기까지는 이 소설에서 전개된 그런 사건들이, 그런 싸움들이 수없이 많았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으니...

 

이 소설은 이렇게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쪽으로 사회가 변해가고 있음을, 아니 변해가야 함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렇게 '털'에 대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직도 학생들에게, 청소년들에게 규제되고 있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것에 대해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찾는 노력을 하라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지켜야 함을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럼에도 내용 전개가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이루어져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버지를 통해서는 하늘을 보는 법을 배웠고, 할아버지를 통해서는 땅에 발을 딛는 법을 배운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청소년들은 이상은 높고 멀리 하되, 실천은 현실에 발을 굳건히 디디고 해야 함을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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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 무의식과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 초현실주의의 거장 시공아트 62
돈 애즈 지음, 엄미정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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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

 

미술시간에 배운 사람이다.

 

초현실주의하면 웬지 이해가 안되고 그냥 난해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거리를 두게 되는데, 달리는 그래도 뭐라 해석을 할 수는 없지만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기는 하다.

 

화려함, 아니면 그 속에 들어있는 기괴함, 이런 것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달리는 미술 시간이 더이상 지속되지 않는 학창시절이 끝난 다음에는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진 사람이 되었고, 그는 아득한 지식의 저편으로 이름만 남아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었는데...

 

다시 읽게 된 달리는 내 막연한 생각보다는 더 대단하다는 느낌을 주었고, 그의 그림이 그래도 초현실주의임에도 무언가 있다는,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것은 그가 고전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또 달리가 내가 얼핏 생각하기로는 아주 오래 전 사람이지 않을까 했는데 1989년에 사망했으니 그는 최근 사람이다. 근대와 현대 초현실주의를 온몸으로 겪고, 나중에는 초현실주의와 거리를 두고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점이 좋았고...

 

그가 무의식에 의존해 자동기술법으로 작품을 창작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한 다음에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지은이의 주장을 읽고, 초현실주의가 그냥 우리의 무의식을 자신도 모르는 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을 고찰하기 위해서 의식을 철저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는 점.

 

우리나라에서는 초현실주의 작가 하면 이상을 떠올리는데, 이상 역시 자신의 작품을 무의식적으로 쓰지 않고 의식을 끝까지 살펴서 했다는 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미술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만 배운 달리는 그냥 초현실주의자로 남아 있었는데... 사실 그는 나중에 초현실주의에서 탈피해다는 점(탈피라고 해도 좋고 제명이라고 해도 좋다), 하여 초현실주의자 달리로만 기억하는 것은 그의 일부만을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 그곳은 무정부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초기의 달리는 무정부주의에 가까웠지만 나중에는 보수주의자로 변신하고... 좀 우습지 않은가? 초현실주의는 이성적 세계를 일부분으로 보고 인간의 무의식을 추구하는데... 보수주의라니... 그러니 그가 초현실주의와 끝까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한 초현실주의는 정치사상이 맑시즘 또는 아나키즘과 많이 어울리는데, 그들은 현상을 인정한다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 많기 때문에, 이상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하여 그들은 체제 전복을 꾀하거나 아니면 생각의 전복을 꾀하는데... 달리는 체제 전복은 생각도 않으니...

 

다만 그는 생각의 전복은 끊임없이 추구한다. 이것이 그의 작품을 초현실주의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고 이유가 되겠지만... 기존의 생각들을 뒤집어서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달리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기존에 지니고 있던 우리의 고정관념들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런 점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달리의 많은 작품들까지 더불어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고.

 

여기에 초현실주의자 달리로만 알고 있지 않고, 비록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달리가 영화에도 참여를 했다는 사실, 또 그는 그림만큼 글도 많이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여러 매체를 통해 충분히 실험한 사람이 달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한 관점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달리의 그림만이 아니라 다른 그림들을 볼 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살바도르 달리. 한 번 검색해 보라. 그의 다양한 그림들이 나올테니. 그 그림들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라. 그림 보고 생각하고, 또 그림 보고 생각하고, 그러다가 달리란 사람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자.

 

그의 생애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특히 초현실주의 시대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달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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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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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가 지배한다. 단순한 구조의,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는, 짧은 이야기들, 교훈적인 우화들과 가슴을 적시는 수많은 미담들, 그 이야기들은 너무 쉽게 기억되고 매우 넓게 적용되며 아주 그럴싸해서 끊임없이 세상을 떠돌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바라보는 강력한 관점을 제공한다. (6쪽. 작가의 말에서)

 

이 말이면 된다.  이야기는 결국 우리 삶이다. 우리 삶이 풍부할수록 이야기 역시 풍부해진다. 풍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삶을 발견하게 되고, 그 다양한 삶 속에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효과가 큰 이야기는 짧은 이야기다. 짧지만 강력한 의미를 내뿜는 이야기. 그것도 무언가 비유가 있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래도록 전달이 되고 사람들의 가슴에 살아남는다.

 

짧은 이야기, 그 중에서 우화는 생명력이 길다. 고대의 이야기인 이솝 우화가 아직도 우리에게 살아남아 삶의 의미를 전해주듯이, 우화는 삶 곳곳에서 살아남아 있다.

 

그런데 제목이 "지금은 없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없는'이라는 말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니 예전에는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과거나 미래에는 존재할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존재할 것 같은 이야기... 이 책에 나오는 우화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야기의 결과는 암울하다. 강자에게 당하는 약자들이 이야기, 다양성을 살리지 못해 결국 자신을 잃어가는 이야기... 등등.

 

좋은 말, 긍정의 심리학이 넘쳐나고 힐링이 유행하는 이 시기에 '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세상은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그것이 지금은 없지만 미래에는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것을 우리 사회는 이래 하는 것이 아니라, 우화의 형식을 통해서 넌지시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의 힘이 미래에 나올 이야기를 미리 막을 수 있게 한다.

 

만화 형식과 짧은 이야기의 형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빠르고 쉽게 읽을 수 있다. 하나하나의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조심하라고... 어쩌면 지금 이것이 우리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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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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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하면 오로지 단테만을 알고, 사상가라고 해야 기껏 마키아벨리라든가 그람시만 알고 있는데, 칼비노라는 이 작가는 처음 듣는 이름이고, 이 작가의 이 작품 역시 내게는 생소한 작품이다.

 

이런 생소한 작품을 골라든 이유는 단 하나. 정기용 때문이다. 정기용의 "사람, 건축, 도시"에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이 상당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한 번 확인해 볼 필요는 있는 셈.

 

그것도 건축학 책이 아닌 소설이라는데... 소설은 현실에서 있음직한 일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유토피아 소설과 디스토피아 소설들도 존재하고 있으니, 그가 작품 속에서 도시를 어떻게 형상화해내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다행히 책은 구하기 쉬웠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구비되어 있는 도서관이 많았기 때문.

 

책은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으로 잘 알려진 마르코 폴로와 원나라 세조라고 불리는 '쿠빌라이 칸'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이 여행해 온 도시들을 설명해주는 내용으로 작품이 이끌어져 가고 있다.

 

그런데 각 도시마다 제목을 달고 있는데 어떤 도시는 '기호'로, 어떤 도시는 '이름'을, '눈'을 '죽은 자들'을,  '하늘'을, '교환'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며, 어떤 도시들은 '숨겨진'이나 '지속되는'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즉 온갖 도시들의 변주가 작품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인데.. 지금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도시는 148~150쪽에 걸쳐 있는 '지속되는 도시들1'의 레오니아이다. 새로움을 위해서 날마다 나오는 쓰레기들을 처분해야 할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도시... 엄청난 쓰레기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 그렇게밖에 존재할 수 없는 도시. 그 도시가 바로 레오니아인데... 이는 아마도 우리나라 또는 전세계의 대도시를 연상하게 하는데, 이 도시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르코 폴로는 이처럼 다양한 도시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칸은 이 도시들에 대해서 듣고 또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리고 지도책을 보면서 수많은 도시들을 찾기도 한다. 이렇게 지도책을 넘기던 칸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칸이 말한다.

"최후의 상륙지가 지옥의 도시일 수밖에 없다면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지. 바로 그곳에서 강물이 나선형으로 점점 더 좁게 소용돌이치며 우리를 빨아들이고 말 테니." (207쪽)

 

칸은 수많은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결국 우리는 이런 도시들의 생활에서 지옥만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책을 한다. 인간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건설한 도시들이 인간의 삶을 옥죄고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급격히 산업화를 이룬 우리나라는 농촌은 낙후된 곳, 그래서 농촌의 도시는 사라져야 할 도시라는 생각을 하였고, 사람들은 새로 생기는 도시로 모여들기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도는 상태에 불과했다.

 

어느 곳이 하나 하나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도시는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도시들에게 길을 잃기도 하지만 결코 그 도시를 벗어나지 못함을... 그래서 칸은 결국 우리 인간이 도달하는 지점이 바로 지옥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마르코 폴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결국 지옥은 바로 이곳이 아니겠는가 하고. 칸이 아무리 화려한 도시, 화려한 왕궁에서 호사스러운 권력을 누리고 살지만, 칸이 살고 있는 이곳도 지옥에 다름 아니라고... 이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에는 두 가지밖에 없다고. 

 

  그러자 폴로가 대답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207-208쪽)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은 지옥을 잊을 정도로 지옥에 침윤되어 버리던지... 아니면 지옥 속에서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어 그것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던지... 그것밖에는 없다고 한다.

 

도시 속에 찌들어 살면서 다른 것을 보지도 생각지도 않고 그 때 그 때 시간에 쫓기듯, 또 공간에 쫓기듯 살면 그건 첫 번째 해결방법을 택한 것이리라.

 

그렇지 않고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관조를 통해 자신의 위치와 다른 것들을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면 두 번째 방법을 책한 것이 되리라.

 

그리고 우리가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는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대한 답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는가? 없다. 그래서 작가는 폴로의 마지막 말로 작품을 맺고 있는 것이다.

 

정기용으로 인해서 읽게 된 책인데... 순식간에 읽힌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읽는 재미도 있고, 또 여기에 나온 도시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어느 도시와 연결이 되나를 생각해 보는 재미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는 어떤 도시에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정말로 우리가 살고자 하는 도시는 '보이지 않는 도시'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사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도시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함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라는 의미를 전달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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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
라파엘 보넬리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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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안톤 슈낙의 수필이 생각나는 제목이다.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이. 떨어지는 낙엽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절없이 떨어져버린  수많은 목숨들이, 특히 어린 목숨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아직도 생사를 알 수 없는 그들이 나를 슬프게 하고, 나를 지치게 한다.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지치게 하고, 총체적인 무능을 드러내는 정권의 대응이 나를 지치게 한다. 정말로 지치게 한다.

 

더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책임에 대해서 남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는 책임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양, 오로지 잘못은 밑에서 소수의 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의 무책임에서 도래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즉 권리가 많아질수록 책임도 많아짐을 생각하지 못하는 그들이 나를 무척 지치게 한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니, 이 책대로 한다면 이렇게 고위층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도 책임전가에 불과하다. 결국 나를 지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즉, 내가 나를 지치게 하고 있다. 나 역시 책임이 있음을 인식해야만 하는데...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그래, 최소한 내 책임은 인정하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이것이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세상이 더럽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를 오해해도 내가 지치지 않는 방법은 바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나를 바로 보는 것. 모든 일의 일차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 그래서 나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다. 이렇게 거리를 두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요소가 바로 유머다.

 

유머, 웃음, 이 웃음은 작동이 되는 순간 나를 나에게서 거리를 두게 한다. 나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한다. 이렇게 거리가 두어진 나... 여기서부터 출발한다면 나를 지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는 마련한 것이리라.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것이 내 행동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배-가슴-머리'라는 사실이다. 배는 본능이라고 한다면 배에 중점을 두는 행동은 나에게서 거리를 두지 못하는 행동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머리에 중점을 두면 머리는 이성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감정이 배제된다.

 

감정이 배제된 행동은 합리적일지는 몰라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즉 머리에만 집중을 하면 나는 더욱 지치게 된다. 아니, 나는 지치지 않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을 매우 지치게 한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지친다면 결국 그 피곤함은 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가슴이다. 이 가슴은 배와 머리를 종합한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는 가슴에 중점을 두는 생각, 생활을 해야 한다. 이렇게 가슴에 중점을 두는 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나를 지치게 했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용서는 내 삶을 행복하게 복원해주는 힘을 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은 복원력을 향상시킨다." (356쪽)

 

이 때 복원력은 오뚜기에 비교하면 오뚜기의 탄력성이다. 이러저리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고 곧 중심을 잡는 탄력성... 이를 심리학에서는 '안정성'이라고 한다는데...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배로 따지면 '복원력'이다.

 

이런 탄력성, 안정성, 복원력이 확보된 삶은 행복은 삶을 살 수 있다. 이런 능력을 지닌 사람은 남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용서할 수 있다. 이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집착은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나타나니, 집착을 벗어난 삶. 그것이 바로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이 책은 이런 방법에 대해서 많은 사례들을 통하여 이야기해주고 있다. 심리학 책을 읽는 이유는 이것이지 않을까. 단지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그 점에서 이 책은 나에 대해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내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고 있다.

 

그래,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힘들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해도... 문제는 늘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 나를 직시하고 나를 언제든지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는 탄력성을 확보하는 일, 그래서 웃음부터 시작하는 일... 이 책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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