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를 보면서 든 생각. 녹색당을 찍으면 사표가 된다고, 의미 없는 투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수 정당에 투표를 하면 안된다고... 될 만한 정당을 찍어야 한다고. 최선이 아닌 바에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언제까지 남들에 의탁해서 내려고 하는가? 

 

비록 소수 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적은 수의 사람이라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투표가 끝난 다음 녹색당의 득표가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2년 전에 녹색당의 득표율이 0.48%, 103,811표였다. 정당이 해산되었다가 정당법의 개정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녹색당의 이름을 걸고 지방자치 선거에 도전했는데...

 

몇 %인지는 계산을 해보지 않았다. 선관위에 들어가 광역시비례대표 득표수를 계산해 보았더니, 170,522표가 나왔다. 2년 전보다는 7만표 정도 더 얻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진적인 정당은? 또는 가장 좌파인 정당은?이라는 질문을 하면 대답이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겠지만, 우리나라 정당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알고 있는 사람은 그에 대한 답을 "녹색당"이라고 한다.

 

녹색과 좌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녹색은 지금 체제를 부정하면서 우리가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근본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는 가장 급진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녹색이 편안함을 주지만, 그 편안함은 바로 우리가 자연과 사람과 함께 할 때만이 서로가 함께 공존할 때만이 주어질 수 있음을 녹색당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공약을 내걸고 광역자치단체 비례대표로 출마를 했다. 정당의 이름으로. 지난 번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얻으리라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대에 녹색당을 알린다는 목표로, 이런 정당도 있다는 것을, 녹색당의 정책을 알린다는 목표로 나왔다고 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광역자치단체 어느 곳에서도 5%이상을 득표를 하지 못해 아마도 비례대표를 내지는 못했을 거 같은데,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 나아감을 보며 황규관의 시집 "패배는 나의 힘"이 생각났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 중에 녹색당과 어울리는 시들이 많이 있고, 또 제목이 된 '패배는 나의 힘'은 지금의 녹색당을 너무도 잘 말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를 보자.

 

패배는 나의 힘

 

어제는 내가 졌다

그러나 언제쯤 굴욕을 버릴 것인가

지고 난 다음 허름해진 어깨 위로

바람이 불고, 더 깊은 곳

언어가 닿지 않는 심연을 보았다

오늘도 나는 졌다

패배에 속옷까지 젖었다

적은 내게 모두를 댓가로 요구했지만

나는 아직 그걸 못하고 있다

사실은 이게 더 큰 굴욕이다

이기는 게 희망이나 선(善)이라고

누가 뿌리 깊게 유혹하였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싸움을 맞는 일

이게 승리나 패배보다 먼저 아닌가

거기서 끝까지 싸워야

눈빛이 텅 빈 침묵이 되어야

어떤 싸움도 치를 수 있는 것

끝내 패배한 자여

패배가 웃음이다

그치지 않고 부는 바람이다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 창비 2014년 초판3쇄. 72-73쪽

 

이 시에서 말하고 있듯이 녹색당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패배를 웃음으로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녹색당의 싸움은 배제가 아니라 품는 것에 있다. 이들은 모든 것들을 품으려 한다. 그래서 모두 함께 살자고 한다. 그런 지난한 싸움... 녹색당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황규관의 또 다른 시 '품어야 산다'를 보면 아마도 이런 자세가 바로 녹색당이 지향하고 있는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비록 미미하지만, 정당법, 선거법을 개정해서 녹색당이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면서 남들을 품는 정책을 펴기를 바란다.

 

적어도 이런 정당이 우리나라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품어야 산다

 

어머니가 배고픈 아기에게 젖을 물리듯

강물의 물살이 지친 물새의 발목을

제 속살로 가만히 주물러주듯

 

품어야 산다

 

폐지수거하다 뙤약볕에 지친

혼자 사는 103호 할머니를

초등학교 울타리 넘어온 느티나무 그늘이

품어주고,

 

아기가 퉁퉁 분 어머니 젖가슴을

이빨 없는 입으로 힘차게 빨아대도

물새의 부르튼 발이

휘도는 물살을 살며시 밀어주듯

 

품어야 산다

 

막다른 골목길이 혼자 선 외등을 품듯

그 자리에서만 외등은 빛나듯

우유배달하는 여자의 입김으로

동이 트듯

 

품는 힘으로

안겨야 산다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 창비 2014년 초판3쇄.  104-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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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단체장 선거가 끝나고,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교육감이 뽑혔다. 이들은 이제 4년간 지방자치를 실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단체장이라고 하면 남 앞에 나서서 남들을 이끌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꾸로 공무원이 국민의 종이라면, 단체장은 시민의 뜻을 대변해서 행하는 대리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들은 군림하는 자들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몇 천 년 전에 살았던 맹자의 말에 의하면 군주는 배고, 백성은 물이라고 했다 배가 제 맘대로 가는 것 같지만, 물이 없으면 배가 갈 수 없고, 또 배가 제대로 가지 않으면 물이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다는 그런 말.

 

하여 이번에 뽑힌 지방자치 단체장들은 자신들이 바로 물 위에 위태롭게 떠 가는 배라는 생각을 하고, 물의 흐름을 거스리지 않는 정책을 펼 수 있기를 바란다.

 

우연히 황규관의 시집을 읽게 되었다. 꼭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와 맞물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집에 첫번째로 실린 시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내가 세운 뜻

 

나이 서른을 몇 년 넘기고서야 뜻 하나 세운다

뭐 그리 큰 뜻은 아니고

인적도 드문 벌판 한 가운데

나무 한그루로 서는 것이

이제사 슬며시 바래보는 소망이다

저 울울창창한 산자락의 숲이

얼마나 보기 좋으냐, 하지만

아무래도 내 자리는

가끔 지나는 새가 한번씩 앉아 쉬고 

그늘이라고 해야 듬성듬성 뙤약볕 내리쬐는

못난 그림자 한 뼘 있으면

좋겠다는, 뜻 하나 세운다

정말 아무래도 그 모습이 내 본모습인 것 같아

나도 가슴이 서늘해지지만

부는 바람에 다른 세상 소식 귀동냥하고

새의 낯빛으로

내 벗들 근황 읽어내면 그만이지

나이 서른을 몇 년 넘기고서야

뜻이라고 세워본다

혼자 묻고 혼자 답하고

내 잎에게

땅 속 벌레 얘기 전해주는 뜻,

이제사 슬며시 세워본다

 

황규관, 물은 제 길을 간다, 갈무리. 2000년. 9쪽-10쪽 

 

이렇게 소박하게 자신의 위치를 소망하는 사람. 남 앞에 서되, 남 위에 군림하지 않고 남과 함께 가는, 그래서 남에게 작은 그늘이나마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소망, 참 작은 소망같지만 너무도 큰 소망이다. 이런 사람이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단체장이 되면 이런 작은 소망을 세웠어도 지키기가 힘들다. 이것이 작은 소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체장들, 정말로 남에게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정책을 펴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감추어도 남들은 편안해질 수 있는 그런 정책을 펴겠다는 소망을 세웠으면 한다.

 

하여 그런 소망은 이렇게 이루어내야 한다. 그는 '폭포'라는 시에서 말한다.

 

폭포

 

물이 비명을 지른다

 

곤두박질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먼바다로 가는 길에

꼭 맞아야 할 제 운명에

물이 소리를 지른다

공포에 질린 괴성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 저를 부수는 파열음이다

숲도 그 소리에

한결 더 푸르러진다

떨어져야 하는 운명 없이

누구도 빛나는 바다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걸

물은 아는 것이다

물은 제 비명에 담긴

운명에 대한 남김 없는 사랑을

쉴새없이 내지른다

날벌레 한 마리까지 비추는 마음도

자신에 대한 아득한 사랑부터라고

 

황규관, 물은 제 길을 간다. 갈무리, 2000년. 15쪽-16쪽

 

남에게 작은 그늘이 되고 싶다는 소망,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는 소망, 결코 작은 소망이 아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빛나는 바다'다. 이 '빛나는 바다'에 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온전히 내던져야 한다. 자신을 내던지는 울음소리, 온몸이 내지르는 소리를 자신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살 때 나 자신도 잘 살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

 

이 두 시를 읽고 마음에 새기는 단체장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을 펼 수는 없으리라. 그들은 약한 사람을 위해서, 힘든 사람을 위해서,무언가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정책을 펼칠 수 있으리라. 그러면 그들은 '빛나는 바다' 즉 자신이 가고자 했던 곳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시인 김수영은 이 시와 같은 제목의 시에서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고 했다. 물은 저 혼자 흐르지 않는다. 함께 흐른다. 함께 흐르면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물은 곧 시민이다. 국민이다.

 

새로 출범하는 자치단체장들... 시민이 물임을, 자신들은 물 위에 떠 있는 배에 불과함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은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유롭게, 언제든지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늘을 마련해주는 일에 '폭포'처럼 온몸을 던져 나서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지켜보는 존재, 길을 알고 제 길을 가는 존재, 그것이 바로 우리 '시민들'이니... 우리 역시 두 눈 똑바로 뜨고 우리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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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디자인 - 아이들이 몰입하는 맘에드림 혁신학교 이야기 10
남경운.서동석.이경은 지음 / 맘에드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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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지방자치 단체장 및 교육감 선거일이었다. 오늘 결과가 나왔는데, 교육감을 선출하는 17곳 중에서 13곳에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다고 한다.

 

특히 서울의 경우는 혁신학교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던 후보가 낙선하고, 혁신학교를 계승발전시키겠다는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혁신학교가 뭐길래 이렇게 논쟁이 되었는지, 혁신학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잘 알 수가 없으리라. 다만 교육이란 진보니 보수니 하는 진영논리로 이야기될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진영을 떠나 함께 협력해야 할, 백년을 내다보고 실시해야 할 그런 백년지대계라는 사실만 명심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서울의 한 혁신학교에서 수업혁신을 시도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수업혁신!

 

어느 순간부터 수업이 되지 않는다고, 학생들이 수업으로부터 도피한다고 그런 말들을 했었는데,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혁신학교에 지원하고 수업혁신을 중점사업으로 삼은 학교의 이야기다.

 

수업혁신이 교사가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까 하는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서로 협력하며 배울 수 있을까 하는 방향에서 접근하는 노력이라면, 수업혁신은 교육의 입장에서 출발하지 않고, 배움의 입장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교사를 중심에 놓은 교육이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교육. 교사의 설명이 주가 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이 주가 되는 수업. 그런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배움으로부터 멀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 될 수는 없는 일. 이 학교에서는 한 학기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한다. 수업혁신이라는 것이 교사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한 학기를 지나면서 깨닫게 되고, 결국 교사들이 함께 수업혁신에 나설 때 수업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되고 그렇게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 수업이니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가 아니라, 우리의 수업이니 우리가 함께 책임지자라는 자세로 돌아서는 이 지점. 바로 이 지점에서 수업혁신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우리의 수업이 같은 교과만의 수업이 아니라, 모든 교사의 수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내 수업을 같은 교과의 교사들에게 보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과의 교사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이 이 학교가 실시한 수업혁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다른 교과의 교사들이 모여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이게 혁신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겠지만... 우선 교사의 잡무를 없애야 한다. 전담행정사를 두어 교사를 공문으로부터 해방하는 일. 그 다음에는 방과후 수업을 현직 교사들이 하지 않도록 한 일. 그래서 오후의 시간을 낼 수 있도록 한 일.

 

이런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 비로소 교사들이 시간을 내어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자, 이것이 불가능한가? 이렇게 되기까지 지원을 해주는 것이 혁신학교에 대한 특권인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방과후에 교사들끼리 모여 의논을 할 수 있게 하는 일. 이건 학교 교육의 기본이 아니던가.

 

혁신학교라서 가능하다가 아니라 모든 학교가 이렇게 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기관이 바로 교육청이다. 다행히도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이 때 아마도 교육조건에 대한 이런 논의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수업혁신이 되었다고 당장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조급증이다. 이 조급증을 버리고, 수업혁신을 통해 아이들의 수업태도가 달라졌음에 만족을 해도 되고,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음에 만족해도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아이들은 배움으로 한발짝씩 다가서게 된다.

 

여기에 결과 중심의 평가보다는 과정 중심의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수업혁신은 더욱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수업이 아니라 우리의 수업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수업을 고민하면서 수업했던 서울형 혁신학교...한울중학교 선생님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수업혁신이 모든 학교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그게 가능하게 교육의 조건을 만들어가야 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교육감들이 이런 조건을 만들어 내는 정책을 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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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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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 왜냐하면 우리나라 역사책에 잘 나오지 않을 뿐더러, 가해 당사국인 일본에서는 철저하게 감추려고 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라는 말에도 논란거리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 중국이나 우리나라 또 서양의 여러 나라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로 보고, 그 규모에 관해서만 논쟁이 되고 있는데...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이를 조작된 것으로 보고, 사실이 아니라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꽤나 오래 전에 서점에서 우연히 "남경대학살"이라는 책을 본 기억이 있는데... 정확한 제목도 출판사도 생각이 나지 않고, 책에 나와 있는 사진이 너무도 충격적이라 책을 살 엄두도 내지 못해서 그냥 사진만 훑어보다 만 책이었는데... 그래서 남경대학살이라는 말은 내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한자어로 남경을 중국어로 난징이라고 하니, 그 때 내가 본 책이 도대체 어떤 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

 

독일이 자행한 유태인 학살에 비견될 수 있는 이 집단 학살극이 어떻게 묻힐 수 있었는지... 세계 정세와 각국의 힘이 역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의 영어판 제목은 "난징의 강간"이다. "강간"이라는 말이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 의사대로 강제로 상대방을 겁탈하는 것이니, 강간이나 대학살이나 비슷한 의미로 쓰면 될 듯한데.. 굳이 "강간"이란 용어를 쓴 이유는 "대학살"은 죽음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반면에 "강간"은 상대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더 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고, 상대방 본인에게만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행위, 그것이 "강간"이고, 난징에서는 아예 집단적으로 이러한 "강간"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피해규모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없던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니, 진정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아이리스 장..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는 자신의 가족에게 들은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난징 대학살에 대한 철저한 자료 조사를 한다. 그러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책을 써냈기 때문에 이 책은 난징 대학살에 관해서 상당히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난징 대학살은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실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엄청나게 끔찍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고, 난징 대학살을 경험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얼핏 보면 역사는 강자의 편에 선다. 아니, 역사 자체가 강자의 역사다. 패자의 역사는 왜곡되거나 사라져버리고 만다. 하여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현상이 역사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역사는 늘 강자의 편에 서는가? 아니다. 강자가 영원하다면 모를까, 인류의 역사상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은 순간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순간, 강자가 될지 모르지만 영원히 강자일 수는 없다.

 

20세기 초 일본은 동양에서 최강국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중국에 넘겨주고 있다. 이처럼 강자는 바뀐다. 그렇다면 역사는 도대체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역사는 바로 진실,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강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숨기려 하지만, 어떻게든 진리의 편에서는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역사의 진리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 속에서 순간 감추었던 진실은 결국 드러나고 마는데... 일본이 사과도 하지 않고 감추려고만 하는 난징 대학살은 이미 중국에서는 드러날 대로 드러나 기념관까지 생겼으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봤자 비웃음만 살 뿐이다.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드러낸 대가는 어떨 때는 혹독하기까지 하다.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은 사람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 난징 대학살에 대해서 언급한 사람들은 엄청나게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쓴 아이리스 장 역시 어려움에 처했다. 테러 위협 등을 겪으며 심각한 우울증세를 나타냈다고 하는데... 결국 2004년 아이리스 장은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자살이라고 판명이 났다고 하지만... 이것은 타살이라고 해도 된다.

 

진실을 드러내려 했다는 이유로 온갖 위협을 받았을 그가 견딜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슻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이것이 어떻게 자살일 수 있는가. 그것은 사회적 타살이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아이리스 장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이야기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리스 장도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목숨을 버리게 되었다. 이게 진실을 대가라니...

 

그래도 이런 진실의 대가로 우리는 이제 난징 대학살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난징 대학살은 20세기 중국의 난징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집단 학살극이라는 인식을 한다. 아이리스 장과 같은 사람 때문에 난징 대학살이 역사의 한 사실로서 자리를 잡았다.

 

일본...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인데, 아직도 이들은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요집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책에 나오는 난징 대학살이 어떻게 중국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우리나라도 위안부 문제, 징용, 징병 문제부터 우리나라 사회가 왜곡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일본에 있지 않은가.

 

우리는 무려 34년 11개월을 식민지 생활을 했으니 말이다. 이런 일본이 통렬히 반성을 하고, 참회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용서를 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 문제다.

 

다시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얼핏 강자의 편에 설 것 같지만, 아니다. 역사는 진실, 진리의 편에 선다. 지금은 감추고 왜곡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곧 드러나게 된다. 그 드러냄.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결국은 드러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해서 우리 인류의 역사는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들 가운에 한 사람... 아이리스 장.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글

 

책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책이 미국에서 1997년에 발간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14년에 번역 발간되었다. 그리고 아이리스 장은 2004년에 죽었다고 나와 있다.

 

중간에 책이 다른 판본으로 나왔다는 설명이 없는데...이 책 300쪽 '여전히 계속되는 역사 왜곡 망언' 부분에서는 2004년 이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은 누가 쓴 것인가? 재판을 발행하면서 편집자들이 보충을 한 것인가, 아니면 번역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보충을 한 것인가. 거기에 대한 설명이 없다.

 

차라리 주나 보충설명을 통해서 이 부분을 이야기하고, 아이리스 장이 쓴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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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신화 - 흐린 영혼을 씻어주는 오래된 이야기
신동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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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재미있게 읽기만 하여도 뭔가 남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신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우리 신화보다는 외국의 신화를 먼저 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는 것이 천대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신화만큼 홀대받은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우리 신화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껏해야 단군신화나 고주몽 신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하여 이 책은 그러한 신화를 모아 놓았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신화를 모아 놓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이본이 존재하는 신화 중에서 가장 서사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거나, 우리 민족의 심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본을 선택해서 실어놓고 있다. 

 

가히 완성된 신화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히 신화만 정리해 놓았어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텐데, 여기에 나름대로 해석을 싣고 있다.

 

그 신화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네 삶의 어떤 부분들을 보여주고 있는 건지, 우리는 그 신화를 통해서  무엇을 생각하고 얻을 수 있는지를 풀이해 놓고 있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신화 풀이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읽어서 알고 있는 신화도 있고, 처음 읽는 신화도 있었지만, 재미를 주지 않은 신화는 어느 하나도 없었다.

 

새록새록 우리 신화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었고,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이 신화는 우리 민족의 이런 생활을 나타내고 있구나 하게 만든 책이었다.

신화가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으렸만, 우리는 우리의 신화에 대해서 너무도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 신화가 가진 특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은이는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잘 가꾸어진 정원과 같은 이야기라면 우리 민간 신화는 거친 들판의 야생화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권력자나 문인 지식인의 보살핌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멸시화 배제와 억압에 노출된 상태에서 자생적으로 생명력을 이어온 야생의 신화가 바로 우리 민간 신화다. 596쪽

 

바로 이것이 우리 신화다. 집집마다 적어도 한 권쯤은 우리 신화에 대한 책을 가지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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