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또 다른 영토가 있다 - 대안의 영토를 찾아가는 한국의 사회 혁신가들
송화준.한솔 엮음, 김종휘 외 인터뷰 / 알렙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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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남들과 같은 생활을 하려고 하면 치열한 경쟁을 통해야 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더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그것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생활은 고사하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 자본주의 사회니 자본의 논리를 추구하더라도 청년들의 일자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고령화 사회 또는 고령 사회로 진입이 되면 일자리는 없지만 연금은 수령하는 고령층의 비율이 엄청 높아진다.

 

이런 고령층을 부양하기 위해서도 청년들이 일자리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이에 따라 고령층들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그러므로 청년들의 일자리는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데 그 일자리가 무엇인가? 남들이 모두 원하는 직업인가?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직업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직업을 택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아 고생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으니,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과 사회적으로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일이 나를 살아 있게 하기도 하고 나를 표현하기도 하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일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나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일치하는 일을 하는 것이리라.

 

이 책에서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일치시키려는 모습을 일에서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을 다루고 있다.

 

17명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자신의 일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임을 확신하고 있으며, 그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17그루의 나무라고 하는데, 이 나무들이 튼실하게 자라 숲을 이루면 그만큼 우리 사회는 풍요로운 사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모두 돈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돈을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본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최소한의 자본에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보다 더해서 이들은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는 사람들, 이 행복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임에 더욱 행복해 하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쉬운 말로 사회적 기업가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일을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로 하는데...

 

이런 사회적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이 하는 일만 해도 17개의 일인데, 이 일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일이기 때문에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다른 많은 일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도 이런 사회적 기업, 즉 나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일치하고 더하여 자신이 행복해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청년들이라는 것. 청년기에 다른 길을 돌아서 결국 이 자리로 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청년 실업의 시대에 청년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가 있다.

 

또 이들은 이야기한다. 자신들을 무작정 따라하지 말라고. 이들은 이들의 길이 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길이 있음을. 그 길은 자신 스스로 걸어갈 수밖에 없음을. 이들은 단지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청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꼭 돈만을 추구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돈은 정말로 필요한 순간 나에게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하나뿐인 내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내가 행복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 일이 사회적 가치와 맞는지 살펴본 후 거기에 몰두해보는 일이다.

 

이것저것 재는 생각만 하는 바보로 남지 말고 청년기에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그런 실천가가 되어야 한다.

 

이런 태도로 지냈으면 좋겠다.

 

이 책에 나온 사례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다. 소위 말하는 88만원 세대들... 길이 여기 있다. 보지만 말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 보라.

 

덧글

 

단, 청년들이 이렇게 시도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적어도 청년들이 실천하다가 안되었을 경우에도 이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 우리는 다시 기본소득을 고민해야 한다.

 

기본소득... 예산 타령을 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 생각으로 기본소득에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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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 - ‘여성스러운 소녀’ 문화의 최전선에서 날아온 긴급보고서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김현정 옮김 / 에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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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미있다.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니...

 

얼핏 신데렐라로 대변되는 여성 이야기가 여성을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성에 머무르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 책은 이런 이야기보다는 문화에 중심을 두고 전개되고 있다. 신데렐라도 이야기가 아니라 이를 캐릭터로 만들어 아이들이 그를 따라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고, 방송에서는 어린이를 내세워 그들의 모습을 따라하게 하고 있으며, 각종 어린이 미인대회를 개최하여 여성으로서 꾸미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게 한다.

 

아주 많은 예들이 나오고 있으며, 그런 예를 읽는 재미도 쏠쏠한데... 저자는 자신의 아이는 그런 공주풍의 여성으로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핑크'에 대한 반대를 하고, 공주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여주길 꺼려하며 자신의 아이가 그러한 장난감이나 인형을 갖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

 

평소에 공주풍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온 작가가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의 주장을 그대로 실현시키려고 하는 모습은 당연한데, 그게 녹록치 않음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집에서 철저하게 교육을 하고 금지를 하더라도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문화가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남녀의 차이를 교육받고 체화된 아이들이 그것을 모르는 아이와 거부하려는 아이를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여성성, 남성성은 없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여성성, 남성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것이 그냥 차이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그러한 차이가 있음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이 책에서는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 쪽 성에 국한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성에 앞서서 온전한 인간으로 먼저 살아가는 법을 아이들이 익히게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생물학적인 성보다는 사회학적인 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또 사회학적인 성은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 그런 방법을 어린 시절부터 익히게 하는 것. 그것을 중심으로 나는 읽었는데...

 

그리고 우리나라 상황과 연결지어 성형열풍, 이것은 결국 잘못된 성역할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남자들에게도 성형열풍이 불어닥치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단지 성역할의 고정이 아니라 사회에서 자신이 살아남는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형에 관한 이야기는 성차를 확대하는 방향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돌로 대표되는 연예인 문화는 이 책에 나오는 나이와 우리나라 아이돌과는 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면 우리나라도 점점 나이가 어려지고 있으니... 여자들에 대한 성적 환상을 아이돌이라는 문화로 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는 남성 아이돌 문화도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아이돌 문화가 남녀의 성역할을 고정시키고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스런 소녀', '남성스런 소년'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차이를 지니고 태어난 '인간'임을 먼저 명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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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빅 브라더 - 지그문트 바우만, 감시사회를 말하다 질문의 책 1
지그문트 바우만 & 데이비드 라이언 지음, 한길석 옮김 / 오월의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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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빅 브라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감시자. 그는 전지전능하다. 모든 것을 다 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존재를 알 수 없다. 얼마나 무서운가.

 

벤담의 '파놉티콘'이 이런 원리로 되어 있고, 감옥이 이런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감시체제가 근대의 감시체제라고 한다면, 사실 이 감시체제는 허점이 많은 체제다.

 

적어도 감옥에 가지 않거나 또 누군가의 시선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감시를 당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따라서 근대는 감시하는 자와 감시받는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감시받는 자와 감시하는 자가 구분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구분할 수가 없다고 보는 편이 옳다.

 

모든 정보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보들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일방적인 감시사회가 될 수 없어 보인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여기에는 배제가 먼저 작동이 된다. 이 배제된 자들은 감시당하는 자에도 끼지 못한다. 이들은 추방당한 자들일 뿐이다. 감시도 필요없는. 적어도 감시될 자들은 배제된 자들이 아니라 배제될 자들이다. 그들은 어떤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낙인찍힌 자들이 된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감시를 당한다.

 

이런 감시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분리가 필요하다. 분리를 바탕으로 배제가 이루어지며, 배제를 효율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 감시라는 기제가 작동을 한다.

 

이 때 감시하는 기제는 예전에는 한 공간에서 특정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현대는, 바우만의 용어대로 유동하는 현대는 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공간에서 특정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의해,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어느 시간에라도 가능한 시간에 이루어진다.

 

 유동하는 현대에는 소비하는 모든 활동들, 움직이는 모든 활동들, 말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감시의 대상이 된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료들이 모이고, 분석되고 활용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감시에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감시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마치 자신의 편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자유를 줄이기라도 하듯이.

 

이 점에 대해서 바우만이 데이비드 라이언과의 대담을 통해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논점들이 명확하게 들어오지는 않고, 역시 대책은 제시되지 않지만 문제의식만은 공유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자료가 집적되고 있는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신용카드를 쓸 때마다, 또는 특정한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 때마다, 검색 엔진을 이용하여 검색을 할 때마다 자신의 정보는 집적되고 있다.

 

하다못해 우리나라는 학교에서조차도 모든 정보가 집적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의 집적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즉, 감시당하는 자가 스스로를 감시하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은 감시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감시당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이 역설. 이것이 현대판 빅 브라더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빅 브라더를 두려워하고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들 하나하나가 모여 빅 브라더를 만들고 있다.

 

소위 말하는 '신상털기'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아마도 몇 시간이면 자신의 모든 것들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질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감시하는 것 만큼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감시사회에서 벗어나지? 지금으로선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바우만은 말한다. 절망의 순간이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이 최후까지 놓지 못할 것이 바로 희망이라고. 희망을 놓지 말자고.

 

그렇다. 아무리 감시사회가 되어도 구멍은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를 보아도 벗어날 구멍은 늘 있지 않던가.

 

그 구멍을 누가 만들어주길 바라서는 안되겠다. 그 구멍은 나부터 먼저 말들어내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바우만이 말한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서운 감시사회. 여기에 더 이상 일조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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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진화론 - 창작의 원리에서 도구까지 위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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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유행이긴 하지만, 이렇게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는 몰랐다.

 

스토리텔링 진화론이라고 하여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으며, 어떻게 하면 스토리텔링을 잘할 수 있나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겠거니 했는데, 왜냐하면 저자가 소설가이자 교수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아니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프로그램의 발전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이다. 오래 전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스톨리텔링에 도움이 될 연구를 해왔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음도 역시 알 수 있었다.

 

특히 외국의 프로그램보다도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스토리헬퍼라는 프로그램이 상당히 우수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바로 스토리헬퍼를 개발한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기 때문이다.

 

즉 창작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만든 프로그램이고, 그런 프로그램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기에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다.

 

작가는 천재다. 또는 소설이나 극본은 작가의 영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속설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 의하면 누구라도 소설을 쓰거나 극본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조금만 노력을 하면 말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 작가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발판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이 책이 주장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이야기는 나름대로의 핵심요소들을 지니고 있기에, 그런 핵심요소들의 공통점을 추출해서 자신 나름대로 재배열하는 방법을 익힌다면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서 이 프로그램은 시작을 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최근에 발전한 기술을 이용해서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직접 예를 들어서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의 주요 요소를 '아바타'가 어떻게 차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어떤 작품이든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창작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하여 충분히 스토리헬퍼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창작을 할 수 있음을,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다른 나라의 다른 프로그램보다도 훨씬 우수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이런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이는 스토리텔링의 발전이 기계문명과 어떻게 결합하여 완성되어 가는가를 보여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창작의 고통을 느끼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아직은 아날로그적인 작가들이, 작품들이 더 좋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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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도 무거워서, 너무도 어두워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정말로 화병에 걸려 쓰러질 것만 같아서... 전국민이 모두 울화병에 걸릴 정도로 무능한 모습을 보면서... 화사해야 할 봄날을 지옥으로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시집을 찾아보았다. 시라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미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고른 시집이 안찬수의 "아름다운 지옥"

 

아름답다는 말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지옥에서도 희망을 보고 싶으니, 그래서 지옥에 가서 뭇중생들을 다 구하고 싶다는 지장보살도 있었으니... 제발 이 지옥에서도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서. 자신의 죄를 알고 인정하면 지옥 속에서도 최소한 아름다움은 만들어질테니. 조금은 지옥이 훈훈해질테니.

 

아름다운 지옥

 

나는 지옥으로 가련다

 

철로 둘러싼 산이 동쪽에 있는데

그 산은 깊고도 어두워

해와 달의 빛이 없다 한다

거기에 큰 지옥이 있으니

한 칸도 아니고 두 칸도 아니고

끝이 없는 지옥이다

 

지옥은 또 있으니

사각의 외로운 방이 자꾸만 작아지는 지옥

마음을 찌르는 반성의 화살이 쏟아지는 지옥

밑에서는 불을 때고 위에서는 용광로를 쏟아붓는 철판 위에서

하루도 잠들 날 없이 그리워해야 하는 지옥

지옥은 또 있으니

불을 뿜어대는 분화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지옥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쟁론해야 하는 지옥

피를 닦아내면서 다시 피를 흘려야 하는 지옥

아침부터 외쳐서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계속 외쳐야 하는 지옥

지옥은 또 있으니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너풀거리는 마음의 누더기가 채찍질하는 지옥

자기가 누어놓은 똥을 먹어야 하는 지옥

썩어들어가는 손을 잘라내면 다시 자라나는 손을 잘라내야만 하는 지옥

지옥은 또 있으니

혀를 뽑아내는 지옥

혀에 바늘을 꽂고 말을 해야 하는 지옥

혀로 땅을 갈아엎어야만 하는 지옥

혀로 갈아엎은 땅에 묻혀야만 하는 지옥

 

이런 지옥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으니

지옥문을 다 통과해도 다시 처음 문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장이여, 지장이여

나는 이미 내 죄근을 알고 있으니

나는 지옥으로 가련다

 

안찬수, 아름다운 지옥, 문학동네. 1996년. 49-51쪽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엘리어트가 말했다고 했지.

 

사월은, 꽃 피는 사월은 우리에게는 진달래와 같은 피가 생각나는 달이었지.

 

4·19로 대변되는 사월은 우리에게 피를 연상시켰던, 희생을 연상시켰던 달이었는데, 그럼에도 사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우리에게 희망을 준 달, 새롭게 민주주의에 대해서 알게 해준 달이었는데...

 

이제 사월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 되었구나!

 

생떼같은 목숨들이 바닷속에서 아직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5일을 보내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배 안에 있는데, 있는 줄을 알면서도 배 안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 뱅뱅 돌던 5일. 그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 했던 5일은 그야말로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큰 잘못이 되어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우리 어른들이 저지른 잘못에 한창 봄을 누려야 할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생사도 모르는 채 그렇게 있어야 한다는 이 현실.

 

마치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는 양, 자신만은 도덕적인 양, 자신의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양, 저 높은 곳에서 우월한 도덕심을 지니고 있은 채 그냥 이런 아비규환을 내려다 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높은 자리일수록 책임은 무거워야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높은 자리일수록 책임이 가벼워질까? 마치 자신은 책임이 없는데, 밑에서 다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할까?

 

이래저래 위에서부터 아래에서까지 총체적인 무능을 드러내고 있는 이 현실은 차라리 지옥이다. 지옥이라고, 이건 지옥이라고 생각을 하면 조금 인정이 되려나.

 

이 지옥에서, 어른들이 만들어낸 이 지옥에서 아이들만은, 제발 아이들만은 탈출하게 해달라고 기원을 하는데...

 

정말로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이제서야 봄에 도달한 그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겨울을 살고 있는 우리 어른들인데...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그런 사람들인데...

 

잔인한 사월... 정말로 잔인한 사월로 기억될 올 사월.

 

조금이라도 기적이 있다면... 정말로 기적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다시 이 아이들이 봄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지옥은 아이들의 몫이 아니다. 지옥이 있다면 그건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은 절대로 지옥을 경험해서는 안된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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