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스승 -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
자크 랑시에르 지음, 양창렬 옮김 / 궁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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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르는 교사가 가르칠 수 있다? 참 충격이다. 그런데 이를 실천한 교사가 있다고 한다. 교사라고 하기 그렇다면 사람이라고 해도 좋다. 그는 프랑스어를 모르는 네덜란드 학생들에게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프랑스 사람이 교육을 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거의 완벽하게 프랑스어를 할 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무지한 스승의 첫 출발이다.

 

도대체 어떻게 모르는 사람이 알게 가르칠 수 있을까? 의문은 여기서 생긴다. 그런데 꼭 알아야 가르칠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은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함께 성장한다는 말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 말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교육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없으나 모든 것을 배우지 못할 사람도 없으니... 이 말이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가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교사가 알고 군림하기 시작하면 여기서부터 불평등이 생긴다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교사와 학생의 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학생은 점점 바보가 되고, 이 바보는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의 거리를 없애는 것. 여기서 교육이 출발해야 하는데, 교사는 학생의 의지를 자극하여 실천에 나서도록 해야 하며, 지능의 면에서는 교사나 학생이나 거리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즉 학생은 교사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배워야 하고, 책을 통해서 배울 때 교사의 설명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다른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암기와 반복을 이야기한다. 암기와 반복, 이는 태어나서 아이들이 처음 배울 때 자연스레 지니는 태도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쓰라고 이해하라고 하지 않는다. 오직 반복을 통해서 자연스레 외워지게 한다. 그것이 바로 부모가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이다.

 

그러니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깨우쳐갈 수 있는 의지를 자극해주기만 하면 교사의 역할은 끝이다. 교사의 설명은 필요없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예전 교육에서 말하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읽고 읽고 또 읽어라. 이 때 교사는 학생이 제대로 읽었는지만 확인해주면 된다. 학생은 스스로 깨닫는다. 어떤가? 이것이 바로 요즘 말하는 배움의 공동체 아니던가.

 

여기에 어떤 교수법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최고의 교사라고 하여 엄청난 기술을 자랑하는 교수법이 이런 데서 어떤 소용이 있단 말인가?

 

교수법을 자랑하는 교사들은 무지한 스승이 아니라, 유식한 스승이다. 그들은 그들의 유식함으로 학생들을 점점 더 무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적어도 이 책의 논리를 따라가면 그렇다. 이 책의 논리가 아니더라도 곰곰 생각해보면 스승이 유식할수록 제자들은 더욱 무식해진다. 스승과 제자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에서 참선 중에 화두 하나만 주는 방법이 있다. 그 화두를 잡고 제자가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깨우친 다음에는 스승과 제자의 거리는 없다. 함께 온전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모든 사람은 평등한 지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단지 의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못 배울 사람, 덜 배울 사람은 없다.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이 배울 수 있음을 깨닫게 하고, 배울 의지를 실현시키는 존재가 바로 교사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교육에서 지금의 공교육은 바보 만들기 교육이다. 바보 만들기... 지금 우리나라 공교육을 보면 정확한 지적이기도 하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학력 수준은 높다고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삶에 필요한 지식은 지니고 있지 않은... 자기 스스로 깨우친 지식이 아니라 주어진 지식을 받아먹게만 이루어진 그런 교육.

 

공교육에 대한 비판은 통렬하다. 보자. 

 

  식자들이 무지한 자들을 지도하고, 헌신하는 인간들이 이기주의적인 물질적 고민에 처박힌 인간들을 지도하고, 공적인 이성과 역량을 갖춘 보편자가 특수주의에 갇힌 개인들을 지도할 것, 이것이 공교육이라고 부르는 것, 다시 말해 인민 주권 개념을 대표하는 자들이 계획한 경험적 인민에 대한 지도이다.

  공교육은 이렇게 진보의 세속적 권력이자, 불평등을 차츰차츰 평등하게 만드는 수단, 다시 말해 평등을 무한정 불평등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모든 것은 늘 하나의 유일한 원리인 지능의 불평등 위에서 작동한다. 이 원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아무리 좋은 논리에서라 하더라도 그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똑똑한 카스트가 어리석은 다중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 (247쪽-248족)

 

정말... 인정하지 않고 싶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지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라고 하기보다는 이미 바보 만들기 교육이 고착되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모두가 바보인 세상에서 바보가 아닌 사람은 그가 바보 취급을 받는다. 지금이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조금이라고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대안교육이었고, 탈학교 운동이었는데... 여전히 공교육은 강대하다. 아니 이미 무너져버렸어야 하는데, 간신히 외양을 지탱하고 있다.

 

무지한 스승... 이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 공교육 뿐만이 아니라 교육 전반에 대한 회의가 인다. 그렇다고 회의에만 빠져있어서는 안된다. 이 책의 내용을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교육도 변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으니... 이제 공교육에서도 배움의 공동체다 자기주도학습이다하여 교육의 주체가 교사에서 학생으로 많이 변하고 있다.

 

또한 주어진 정답을 찾는 교육에서 자신이 정답을 만들어가는 교육으로 바뀌려고도 하고 있다. 정답 찾기는 지식의 위계를 전제한다. 그러나 정답 만들기는 지식의 평등을 전제하고 있다. 이런 지식, 아니 지능의 평등에서 우리는 배우려는 의지를 작동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의지를 자극하는 교사, 그런 교사들이 공교육에서도 많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 "무지한 스승"을 제대로 계승한 것이리라. '조제프 자코토'라는 사람 이야기로, 그가 한 교육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저자가 교육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했다고 본다. 그가 한 말도 자코토의 교육을 번역한 것이라면, 이 책을 읽은 우리는 다시 이 책을 우리 나름대로 번역을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맞게 적용을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자유고,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의지를 작동시켜야 해방이 된 인간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가지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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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라종일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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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철.

기억하는 이름인가? 아는 이름인가? 이 사람을 안다면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리라.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도대체 강민철이 누구인지... 그의 본명이 강영철이라는데, 무엇을 한 사람인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한 사람인지, 어느 시대에 활동한 사람인지...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북한 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광고에서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이라는 책이 나왔다. '어, 아웅산 사건!' 이것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내 기억에도 또렷이 남아있고. 물론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대형 사건. 그리고 너무도 많은 희생자들. 너무도 아까운 인재들을 한 순간에 잃었던 그 사건. 그것을 모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강민철은 아웅산 사건의 주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가 그 때 안 죽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고, 한 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래도 큰 사건이었는데,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기억은 역사에 대한 의무 아니던가, 책임이 아니던가, 기억을 해야 반복을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에 출판사를 살펴보니 '창비'다. 그렇다면 함부로 책을 내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믿음도 있고. 벼르고 벼르다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 읽게 되었는데...

 

그는 아웅산 사건을 일으킨 세 명 중 한 명이다. 북한 특수부대 공작원이고, 버마(지금은 미얀마)까지 와서 사건을 일으켰다. 그 덕에 우리나라 각료들이 많이 죽었고,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이런 테러리스트에 대한 책을 쓴다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죽어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책을 쓴다는 일,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지은이는 그에 대한 글을 썼다. 그가 아무리 죽어마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행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고 비도덕적인 행위이지만, 그것이 그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한반도의 상황을, 정치권력들의 힘겨루기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그 개인의 행위는 용서할 수 없지만, 어릴 적부터 세뇌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의 행위는, 그렇게 하도록 교사한 사람들에게 더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를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제2의 그가 나오지 않게 우리는 그에 대한 일을 확실히 알고 기억해야 하고 대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취지에서 이 책이 나왔다고 본다.

 

하여 이 책은 한반도의 상황을 먼저 이야기한다.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얼마나 많은 폭력들이 일어났는지, 서로 폭력을 조장하고, 일으키고 상대방을 죽이려고 했는지 이야기한다. 이 정점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다. 이런 광주민주화운동이 아웅산 사건을 일으키는 간접적인 계기를 제공한다고 한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을 제거하면 혼란이 오고, 그 때 자신들이 개입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오판을 북의 지배자들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오판에서 아웅산 사건을 일으켰는데, 결과적으로 아웅산 사건은 북한을 고립되게 하였고, 이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은 사살되고, 한 명은 사형을 당하고, 나머지 한 명인 강민철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하다 죽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강민철 그는 국가의 명령으로 사건을 저질렀다. 그러나 국가는 그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끝까지 외면한다. 하여 그는 머나먼 이국 땅인 버마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토록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임종 순간 조국의 말을 하는 사람도 곁에 없는 상황에서.

 

남과 북, 어디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했지,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그. 그는 바로 우리 민족 비극의 중심에 서 있다가 비극의 급류에 휩쓸려 죽어갔다고 해야 옳다.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훈련된 살인 무기로써 대우받았던 그. 끝내 그는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고, 버림받고 말았다. 그런 그를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하게 잊혀져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그를 굳이 우리 기억 속으로 불러내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비국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

 

사람보다는 정치적인 고려를 앞세우는 경우가 아직도 많기 때문. 이제는 이러한 정치적인 고려와 더불어 경제적인 고려도 사람의 앞에 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앞설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분단현실로 인해 정치적인 고려보다는, 우리 민족 구성원인 사람들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칼기 폭파범이었던 김현희는 "이젠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는 그리고 여자가 되었다.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행하던 기계에서 사람이 되었는데, 강민철은 그는 결국 남자가 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누구도 그에게 남자가 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결혼하고 싶어했다던데...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했다는데.

 

이런 그의 비극. 이것은 그에게 우연히 닥친 비극일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비극이기도 하다. 이 점이 바로 그를 다시 불러내어 기억하도록 하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이렇게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우리 자신이 깨어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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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려면, 녹색 - 좋은 삶, 다른 사회, 녹색 정치를 꿈꾸다
하승수.서형원 지음 / 이매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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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색이 녹색이다. 자연이 녹색을 띠고 있을 때 우리 사람도 가장 편안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지구는 본래 녹색이다. 이를 통틀어 푸른색이라고 하자. 우주에 외로이 떠 있는 푸른 행성. 그것이 지구 아니었던가. 왜 외로이 떠 있다고 표현할까? 그것은 푸른색을 지닌 행성이 지금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우주 탐구가 더 발전하면 지구와 비슷하게 생명체들이 살아 푸른색을 띤 행성을 발견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지구가 우주에서 유일하다. 그리고 그 지구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끼면 살아왔다.

 

그런데 인간의 지식이 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푸른색을 점차 회색으로 바꾸어가기 시작했다. 푸른색을 없애기 시작했다. 기계문명... 기계로 대표되는 회색도시가 건설되고, 녹색은 점차점차 줄어들기 시작해서 우리의 삶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환경, 생태 운동이 탄생했고, 녹색당이 건설되었다.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미리 경험한 나라들에서 녹색당이 만들어지고 그들의 운동이 지지를 얻어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게 되었는데...

 

후발국이라는 우리나라도 역시 심각한 환경파괴를 겪고, 몇 년 전에 녹생당이 창당되었다. 비록 첫선거에서 녹색당은 2%미만의 표를 얻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녹색당이 존재해야 한다는 당위와,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성을 보여준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선거를 앞두고 있다. 온갖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그 많은 공약들이 공약(空約)이 되기 쉬운데...그 중에 가장 신선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 정당이 녹색당이다.

 

어떤 이들은 현실불가능하다, 공상이다 하면서 녹색당을 폄훼하는데, 인간이 지금까지 세상을 이루어왔던 힘은 바로 상상력이다. 그러한 상상력이 지금의 인간을 만들었는데, 지금 힘들다고 해서 앞으로도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옳지 않다.

 

책의 제목이 "행복하려면, 녹색"이다. 우리 헌법에도 행복추구권이 있듯이 행복 추구는 인간이 지닌 당연한 권리이다. 이런 행복이 최근에 신자유주의의 전개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있다.

 

세계최장의 노동시간, 세계최장의 학습시간, 세계최고라는 자살률, 세계에서도 높은 노인빈곤율, 급속도로 늘어나는 비정규직에 난개발로 인한 자연파괴 등등.

 

환경파괴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데... 녹색은 단지 환경 생태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녹색은 우리의 삶 전반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생각을 전환하자고 한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자연과 공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과도 공존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는 생각을 녹색은 한다.

 

그래서 녹색은 기본적으로 "기본 소득"에 대해서 고민하자고 한다. 국민 모두에서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어 적어도 생계에 위협을 받지 않게 한다면, 국민들이 좀더 창의적인 일자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일자리를 찾게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이야기한다. 지금 기술력으로는 하루 4시간만 노동해도 충분하다고 한다. 아직도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인 우리나라에서 하루 4시간 노동이 너무도 파격적이란 생각이 들면 하루 6시간 노동도 충분하다.

 

다만, 이를 강제하게 해야 한다. 지금도 하루 8시간 노동, 주당 40시간 노동이 법제화되어 있지만, 그 조항은 법에만 있을 뿐이다. 하루 6시간 노동을 철저히 지키게 할 사회적 기구가 있다면, 그래서 하루 6시간만 노동하게 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질 것이다.

 

이것과 더불어 아이들의 학습시간.. 지금의 교육제도... 국민 대다수가 힘들어하는 교육제도를 손볼 것을 주장한다. 어쩌면 기본소득과 노동시간 단축이 먼저 이루어지면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대학에 안 가도 자신의 삶을 잘 살 수 있다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정말로 교육은 달라질테니 말이다.

 

이런 저런 문제... 타이타닉 현실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 성장이데올로기를 던져버리고, 이렇게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고 녹색은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한다. 풀뿌리라는 말이 있듯이 지역에서부터 실천하되, 동심원을 넓혀가듯이 세계로 넓혀가야 한다고. 정치는 사회적 인간인 우리가 지닌 기본적인 행동이라고.

 

하여 이번에 녹색은 정치에 참여한다고 한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이런 사회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진정,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지구에서 푸름을 없애가면서 더불어 우리의 행복도 없어지는 그런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구에서 푸름을 다시 만들어가면서 사람끼리도, 자연과도 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제기한다고 한다.

 

분명 다르게 살 수 있음을, 그 다르게 삶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줌을 "녹색"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이렇게 "녹색"을 통해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찾아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새겨들을 말이고, 나부터 실천할 일이다.

 

나는 연약한 존재지만, 우리는 강한 존재다. 그렇지 않은가?

 

훈데르트 바서라는 사람이 했다는 말, '나 혼자 꿈꾸면 꿈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함께 꿈꾼다면 현실이 됩니다"

 

그런 현실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세대들에게 더이상 죄짓지 않고, 우리만의 행복이 아니라 미래세대들의 행복까지도 만들낸 정말로 행복한 세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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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우리학교 작가탐구클럽
박일환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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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이름만 들으면 남잔지 여잔지 헷갈린다. 잘 몰랐던 시절에는 그의 시를 읽고 또 이름을 보고 여자네 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 아이들도 김소월이라는 이름과 '진달래꽃'이라는 시만 주고서 남잔지 여잔지 생각해 보라고 하면 여자라고 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소월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에 그러리라 생각하는데, 김소월에 대해서 배우면서 그의 본명이 '정식'이라고 하면 '아, 남자구나!'하게 된다.

 

그래도 김소월은 김정식이라는 이름을 묻히게 했고, 우리는 그를 김소월로 기억하고, 그의 '진달래꽃'은 우리나라 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 순위를 매긴다면 윤동주의 '서시'와 더불어 1,2위를 다투는 시일 것이다.

 

이렇게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김소월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시인이구나 일찍 죽었구나 하고 말뿐이다.

 

하지만 작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은 그의 작품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의 말미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를 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문학작품은 작가의 경험이 밑바탕에 깔려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고 김소월의 삶과 시에 대해 조금이라도 잘 알게 되었다면 다행이에요.(195쪽)

 

김소월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그의 시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작품이 단지 '한'을 다룬 것이 아니라는 점, 단지 사랑타령의 시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의 시에는 민족의 아픔과 현실을 노래한 시들도 많다는 점... 그가 나름대로 철저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살았다는 점 등등을 말할 수 있게 된다.

 

하여 이 책은 김소월의 생애를 작품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냥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김소월에 대해서 많은 자료들을, 특히 김소월의 숙모가 쓴 글을 토대로 내용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여기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여 청소년들이 읽기 쉬운 어투를 선택해서 어렵지 않게 책을 읽어나가게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정신이상, 그래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간호때문에 김소월에게 정성을 쏟을 수가 없었고, 이 자리를 숙모가 대신했다는 사실. 돈을 많이 번 할아버지는 민족의식이 없어서 김소월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그가 오산학교에 다녀서 민족의식이 깨우쳐졌다는 것. 존경하는 조만식 선생에게 바치는 시 '제이 엠 에스'를 쓰기도 하고... 일본 유학을 갔으나 관동대진재로 인해 공부를 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현실.

 

그리고 문단에 데뷔해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는 이야기, 기껏 어울려야 스승인 김억과 동년배인 나도향과 어울렸는데... 나도향이 요절하는 바람에 충격을 많이 받았을 거란 이야기.

 

20년대에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지만 30년대에는 거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고, 일제의 감시를 많이 받았다는 점 등이 소상하게 설명되어 있다.

 

김소월에 관해서 논란이 되었던 많은 점들을 짚어보면서... 최근의 성과들을 수용하여 정리해주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결코 현학적이지 않게 청소년들이 이해할 수 있게 써내려 갔다는 점이 더 큰 장점일테고.

 

책의 끝부분에 김소월에 관한 여러 생각거리를 제공해주어서 청소년들이 김소월의 작품에 대해서 다각도로 생각해 보게 했다는 점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은 교과서에서 질릴 정도로 들었던 김소월. 글쓴이의 말처럼 그의 삶을 안다면 그의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김소월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글

 

정말 소소한 오타다. 책을 읽은 사람이면 너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런 년도는 조심해야 한다.

1932년 12월 23일 밤에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 자리에 누운 소월이 다음 날 아침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사실 (185쪽) --> 소월의 죽음은 1934년으로 나와 있으니... 이런 오타는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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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 - 우리 시대 작가 49인이 차린 평온하고 따뜻한 마음의 밥상
성석제 외 지음 / 뜨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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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식천(以天食天)

 

이 책을 읽으며 이 말이 떠올랐다. 동학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또 굳이 불교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뭇생명들을 먹는다. 뭇생명들의 생명으로 우리의 생명을 이어간다. 그러니 하늘로써 하늘을 먹는다는 말이 밥에 들어있는 것이다.

 

내 생명은 다른 뭇생명들의 죽음의 대가라는 사실. 이 사실을 마음 속에 명심한다면 어떻게 음식 하나하나를 허투루 대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음식을 버릴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음식을 막 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굳이 절에서 절밥을 먹을 때 쌀 한 톨, 김치 한 조각 남기지 않는 모습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음식을 대할 때는 이렇게 경건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밥을 우리에게 영양분을 주는 물질로 대할 것이 아니라, 밥은 곧 우리인 것이다. 하늘이 하늘을 먹는 것, 우리가 우리를 먹는 것, 우리가 우리로서 생명을 유지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밥인 것이다.

 

이 책은 절에서 먹은 밥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굳이 절밥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된다.

 

음식 하나하나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특히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오관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절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암송하는 말이라고 한다. 음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말이다. 이 말이 이 책에서는 도처에 나온다. 한자어로 된 말이라 약간씩 번역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늘 명심하면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지닌다면 음식을 남길 수가 없다. 함부로 버릴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음식에게 지녀야 할 자세다.

 

다들 사연이 있어 다양한 방식으로 절밥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절밥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절밥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우쳤다는 의미도 있고.

 

49인의 절밥 경험.

 

난 비록 절밥을 단 한 번밖에 먹어보지 못했지만... 절에서 먹은 절밥이 아니더라도 내가 먹는 밥을 하늘로 여길 것이다. 하늘을 내가 먹는다는 마음으로, 모든 음식을 하늘로 섬겨 나를 하늘로 만들 것이다.

 

마음이 참으로 따뜻해지는 책이다. 그냥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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