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이 되어 - 신현림 치유시.산문집
신현림 글.사진 / 사과꽃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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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추모 모임에 갔었다. 거기서 들은 노래가 있는데... 마음을 후벼팠다고 해야 하나, 아련히 밀려오는 슬픔을 어떻게든 마음이 감당해내어야 하는 그런 노래.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고, 슬픔을 더 높은 감정으로 만들어가는 그런 노래. 그런 가사.

 

궁금했다. 도대체 저 노래는 언제부터 불렸던가. 이번에야 처음으로 듣게 된 노래고, 처음으로 보게 된 가사인데... 왠지 그 가사가 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분명 시일 거야. 시에 곡을 붙인 걸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됐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이거다. 바로 이거야.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구입한 책.

 

순식간에 읽어내려가는데...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그냥 아려오는게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해서,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서, 그리고 슬픔과 함께 해야 하는 우리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한꺼번에 생각하게 한다.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낭송되고 노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이 책에 나와 있어서 구체적인 사항을 알 수 있게 된 지적인 면도 있었지만...

 

슬픔은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이 슬픔이 언제까지 슬픔으로 멈춰서는 안된다. 슬픔은 나아가야 한다. 그 나아감. 그것이 바로 시이든 아니면 다른 글이든, 말이든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펼쳐보면 좋다.

 

죽음이 상실이 아니라 우리가 맞이해야 할 또 하나의 만남임을, 슬픔이 우리가 멀리해야 할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존재임을.

 

이제 전국민이 슬픔에만 젖어 있어서는 안된다. 이 슬픔이 힘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슬픔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는 일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 아니, 극복해야만 한다. 찬찬히 이 책에 나온 시를 읽어보자. 그냥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마음으로 느껴보자.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솟아오를 것이다.

 

상실의 아픔에 대한 치유에 관한 시도 있고, 그에 대한 산문도 있다. 하나하나 짤막하게 펼쳐져 있어 읽기에도 편하다. 그리고 한 편 한 편을 읽고 생각하기에도 좋다. 조용히 자신을 관조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천 개의 바람... 그냥 읽어보자. 우선 영어로 된 시. 뜻을 알지 못해도 좋다. 그냥 읽기만 하면 무언가가 마음 속에 차오른다.

 

영어로 된 시는 다음과 같다.

 

a thousand winds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 o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 rain.

 

when you awake in the morning’s hush,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 author unknown (17쪽)

 

한글로 된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지 않아요
나는 천의 바람, 천의 숨결로 흩날립니다.
나는 눈 위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입니다.
나는 무르익은 곡식 비추는 햇빛이며
나는 부드러운 가을비입니다.

당신이 아침 소리에 깨어날 때
나는 하늘을 고요히 맴돌고 있어요
나는 밤하늘에 비치는 따스한 별입니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죽지 않습니다.

 

원작자 미상/신현림 번역

 

다양한 버전의 노래가 있고, 가사가 있던데, 내가 추모 집회에서 들은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가사를 음미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내 영혼 바람 되어

 

그 곳에서 울지 마오 /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 그곳에서 슬퍼 마오

나 거기 없소, 그 자리에 잠든 게 아니라오.

 

나는 천의 바람이 되어 / 찬란히 빛나는 눈빛되어

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 / 하늘한 가을비 되어

 

그대 아침 고요히 깨어나면 / 새가 되어 날아올라

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 되어 / 부드럽게 빛난다오

그곳에서 슬퍼 마오 / 나 거기 없소, 그 자리에 잠든 게 아니라오

 

나는 천의 바람이 되어 / 찬란히 빛나는 눈빛 되어

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 / 하늘한 가을비 되어

 

그대 아침 고요히 깨나면 / 새가 되어 날아올라

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 되어 / 부드럽게 빛난다오

 

그곳에서 슬퍼 마오 / 나 거기 없소, 그 자리에 잠든 게 아니라오

나 거기 없고, 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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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는 새
최성각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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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풀꽃상"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나라 환경에 중요한 영향을 준 대상에게 주는 상인데, 특이하게도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게 주는 상이다.

 

아마도 1회 풀꽃상을 동강의 비오리가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풀꽃상을 만들고 환경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고 노력한 사람이 바로 최성각이다.

 

그는 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데, 예전에 그의 소설을 두 권 읽은 적이 있다. "엽편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아주 짧은 소설을 보통은 '꽁트'라고 하는데, 그는 나뭇잎 같이 짧다고 엽편소설이라는 말을 썼다.

 

"택시 드라이버" 그리고 "사막의 우물을 파는 인부" 이렇게 두 권의 소설집을 읽고 환경에 대해서, 생태에 대해서 이렇게 집중해서 소설을 쓴 작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우리나라 환경이 생태가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지켜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 그가 시골에 들어가 살고,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의 소설집이 나왔다. 생태소설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기존에 발표한 소설들을 묶어서 방대한 한 권의 책으로 내었는데, 가히 생태 문학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형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작품은 이게 소설이야, 르포야 할 정도로 실명이 직접 나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소설의 형식이라고 하는 이유는 현실 자체가 이미 소설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집에 나온 환경, 생태에 관한 이야기들은 4대강, 밀양 송전탑,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전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가 그토록 환경, 생태에 대해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한 발짝도 더 나아지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럼에도 이 작품들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단지 과거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우리의 현재를 결정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단지 역사 속의 한 사건으로만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로 불려나오게 된다. 현재로 불려나오는 과거, 이것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준다.

 

최성각이 이번 작품집이 하는 역할도 그것이다. 우리가 지금 심각한 환경, 생태 위기에 처해있지만, 생태감수성이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느끼고 있지만, 우리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환경, 생태 문제들을 작품을 통해 불러냄으로써 다시 우리의 생태 감수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제목이 "쫓기는 새"다. 서양 환경운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레이첼 카슨의 책 제목이 "침묵의 봄"이듯이, 그가 자신의 생태 소설들을 묶은 책 제목은 "쫓기는 새"이다. 새들이 쫓기면, 과연 우리에게 봄이 있을까?

 

봄은 새들과 함께 맞이하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쫓기는 새"라는 제목은 우리에게 많은 경각심을 준다. 거기다 제목을 새의 처지에서 썼다는 점도 좋다. 결국 새가 쫓긴다는 얘기는 우리가 새를 쫓아냈다는 얘기가 되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제목이 말하고 있다.

 

중편도 있고, 단편도 있고, 엽편도 있는데, 한 편 한 편의 소설이 다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또한 생태감수성을 일깨우고 있다. 우리가 과거 자연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작품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은 결코 떨어져 살아갈 수가 없다. 새가 없으면 봄이 없다. 봄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 결국 새가 없으면 인간도 없다. 이 말은 자연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는 말이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 이렇게 생태소설집이라는 이름을 단 소설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되돌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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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넘도록 충격에 휩싸여 지내고 있는데... 그래서 무언가를 털어놓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다 싶어 "털어놓기와 건강"이란 책을 집어들고 읽었는데...

 

얼마 전에는 국민을 미개하다고 한 사람이 나타나질 않나(국민들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낸 우리나라인데, 그렇게 민주화를 이루어낸 국민이 미개하다면, 그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화를 하게 한 정치인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미개보다 못한 수준은?),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나 참으로 한심하다.

 

"가난한 집 애들이 설악산이나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가면 될 일이지, 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어느 목사의 말.

 

부끄러워서 실명을 거론하기조차 싫은 그런 말이다. 이게 말이 되나? 목회자란 사람이. 도대체 이 사람이 진정 종교인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인이라면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주어야 하지 않나?

 

종교인이라면 사람들의 영혼을 파 먹는 것이 아니라, 황폐화된 영혼을 사랑으로 가득차게, 기쁨으로 가득차게 해 주어야 하지 않나?

 

존 러스킨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란 책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행복한 사회를 꾸리는 모습을 상상했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가 꿈꾸던 세상이고, 모든 종교인이 꿈꾸는 세상 아니던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그것도 종교인에게서. 이렇게 종교인이 사람들의 영혼을 파먹어도 되는 것인지... 답답하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위안과 행복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존재가 바로 종교인 아니던가. 오강남의 역설적인 제목이 붙은 책이 생각나는 나날들이다.

 

"예수는 없다"

 

예수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종교인들에게는 예수는 없다. 그들은 예수가 가장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동등한 대우를 해주었다는 사실을, 예수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으로 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들에게 과연 예수가 있을까? 하여 오강남이 쓴 또 다른 책이 생각난다. "예수가 외면한 그 한 가지 질문"

 

진정한 종교인이란, 우리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종교란 어떤 것일지... 우리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해주는 종교 아니던가. 하느님 아래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존재. 모두가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 그것이 바로 우리 사람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종교인들이 많고, 종교도 많다. 이들이 굳이 언론이 드러낼 필요가 없어서 그렇지, 세상에는 훌륭한 종교인들이, 진정한 종교가 많다.

 

이제는 이들도 좀 드러났으면 좋겠다. 영혼이 맑아지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매번 이렇게 내 영혼을 갉아먹는 소리를 이제는 언론을 통해서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알고 있기로 60-70년대 그 험악했던 시절에 진정한 종교인으로 살아간 사람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강원룡 목사 같은 분도 있었고, 김재준 목사 같은 분도, 문익환 목사 같은 분도... 지학순 주교 같은 분도,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도... 함석헌, 유영모 같은 그런 종교인들... 우리의 영혼을 채워주었던 그런 종교인들이 많았으니,

 

강원룡 목사(강원용이라고 나온다. 그럼에도 나는 강원룡이라는 이름에 더 친숙하다)의 자서전인 "역사의 언덕에서1-5"를 읽고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졌던가. 어떻게 지내야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인지를 알게 되었던가.

 

다시는 내 영혼을 파 먹는 소리를 하는 종교인, 내 귀를 씻게 만드는 종교인, 그런 사람들 소리가 안 들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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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놓기와 건강
페니베이커 / 학지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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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말처럼 들리는 이 말이, 예전에는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설마 하는 의문도 있었고, 입증되지 않은 사실은 믿을 수 없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인정이 되고 있고, 스트레스는 면역체계를 파괴해서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또한 스트레스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함으로써 더 심해지니, 감정을 억제하는 일은 우리의 건강에도 적신호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패니베이커의 책은 이런 방면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거의 입증이 된...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유용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프로이트의 정신의학을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프로이트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하지 않듯이 패니베이커의 이 책도 여전히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마음을 털어놓을 때는 말로 할 때도 있고, 글로 할 때도 있는데, 이 둘은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는데, 그는 이를 맹신하지는 않는다. 적당한 정도가 좋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어려운 얘기를 듣는 사람의 감정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 이것이 인간이 지닌 능력인데, 계속 안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그 듣는 사람의 감정 상태 역시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끊어야 한다고...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을 상태에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이것이 상담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우리는 서로 듣고 말하는 관계가 얼마나 우리의 감정을 풀어주고, 더불어 우리의 건강까지 챙기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

 

말하기가 힘들다면 쓰기를 하면 된다.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의 힘듦과 대면하고 이를 글로 옮긴다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고, 성찰을 하게 된다고.. 그런 성찰을 통해서 자기치유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다만 글쓰기를 할 때 주의할 점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글쓰기를 현학적으로 한다든지, 분노만 표출한다든지 하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참조할 사항이 많다.

 

또 큰사건을 겪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어째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 딱 맞게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는 이 사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데, 문제는 4주가 지난 다음부터다. 이 때부터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다른 사람들은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들에게는 그 사건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들은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어하는데,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그런 상태... 마음이 억압을 받는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건강이 상한다. 이게 문제라고 한다.

 

사건이 일어나고 4주 동안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전문가들도 가서 이야기를 듣고 치유에 힘을 쏟는데, 4주가 지나면 전문가들도 사람들도 잊고 만다는 사실... 정작 그들에게는 4주 뒤에 더 필요한 일인데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 그렇구나. 지금 우리나라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구나. 지금부터가 전문가들이, 또는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많은 시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 점을 명심하자.

 

또 이런 구절이 있는데..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학습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라면 객관식 시험은 법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통합하는 것을 증진시키는 주관식 시험이 치러져야 한다. 263쪽

 

전국민의 지능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시험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 점차 쓰기 능력을 잃어가는데, 이는 자신을 성찰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 그래서 우리는 쓰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것. 명심하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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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 공동체에 대한 고민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6
윤구병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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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은 공동체다. 함께 살아가는 곳.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품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이고, 함께 산다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이런 질문은 모든 사람들이 해야하지만, 특히 청소년들이 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갈 가능성이 많고, 또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품에 대한 질문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6명의 어른들이 대답을 하고 논의를 했다. 그 결과를 모아놓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질문을 하는 청소년이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질문을 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시키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질문을 한다는 것, 답을 찾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첫걸음이다. 이 첫걸음에 함께 하는 어른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신이 겪은 품, 자신이 함께 하고 있는 품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품이란 사람 각자가 찾아가야 할 것이고, 자신만의 품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윤구병은 변산공동체를 중심으로, 이현주는 종교를 중심으로, 이남희는 가정을 중심으로, 이계삼은 교육을 중심으로, 유창복은 성미산마을을 중심으로, 그리고 박성준은 길담서원을 중심으로 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 뒤에 청소년들이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런 과정이 없다면 이 책은 어른들의 일방적인 강의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품을 벗어날 수 없다. 오죽했으면 품이 넉넉해야 한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이 품은 나를 받아주기도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는데... 도대체 나는 어떤 품에서 살아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질문이 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가정이라는 품에서, 조금 나이들어서는 학교라는 품에서, 그 다음에는 직장이라는 품에서 살아가게 되는데, 그 많은 품들 중에서 내가 살아갈 품은 도대체 무엇일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실, 지금 우리나라는 가정이 해체되는 위기를 겪기는 가정도 많고, 학교 교육은 이미 무너져내려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소리가 나온 지 오래되었으며, 직장에서는 노조 조직율을 30%도 안되는 상태에서 자신의 고용보장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고... 기타 자연이라는 품도 우리 스스로 파괴하여 우리를 받아들이기에 버거워하고 있으니...

 

이런 우리 사회에서 품이란 무엇일까? 어떤 품을 만들어야 할까? 나름대로 품을 만들고 그 품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조해볼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이 책인데...

 

그렇다. 우리는 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것이 품을 더욱 넉넉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청소년...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 그들이 이렇게 품에 대해 고민한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희망은 있다. 그런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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