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끝에 서라 -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가장 쉬운 창조법
강신장.황인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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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1세기는 창조의 세기다. 창조적인 사람이 대우받는 시대가 되었다. 20세기가 이미 주어진 지식을 습득하여 그것을 적용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주어진 지식은 언제든지 습득이 가능하기에 그러한 지식을 어떻에 응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주어진 지식에 자기만의 무엇을 더하는 시대,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던 시대에서 이제는 무언가를 더 보태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무언가를 더 보탠다는 것은 창조적인 삶을 산다는 말이다. 창조란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미 있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사용한다는 의미도 있으니,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이 더욱 우대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조성은 어떻게 해야 키워지는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연습까지 시켜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겉표지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가장 쉬운 창조법'이라는 말이 있고, '위대한 창조의 시작,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말도 있다.

 

창조성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시인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고,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감성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감성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감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에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단순한 사물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자신과 같은 대상이 된다. 그들의 말을 대신해 줄 수 있기도 한다. 이게 바로 시인이다. 그리고 이런 시인의 감성을 우리가 지닌다면 우리는 기존의 지식에 우리의 지식을 덧붙여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에 대한 설명을 말해주듯이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책의 내용을 전개해 가고 있다. 읽으면서 그렇지, 이렇게 할 수 있겠군 하는 생각을 쉬임없이 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고...

 

내 생각을 자극하는 면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여기에 창조적인 생각과 더불어 시를 쓰는 즐거움도 선사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녀야 할 자세는...사물의 마음을 먼저 보아야 한다고 한다. 사물의 마음을 본다는 것은 사물과 일체가 된다는 말인데... 일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물로 자신의 입장을 바꿔보아야 한다고 한다.

 

사물로 자신을 바꾸어보고, 그 사물의 마음을 서술어(동사, 형용사)로 표현해보라고 한다. 이를 "마음 DO"라고 한다. 그 사물이 되어 사물의 마음을 표현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물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시인들의 창조법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것을 "오감법, 오관법, 오연법, 오역법"이라고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감정을 느끼기, 자세히 살피기, 관련 사항 찾기, 거꾸로 보기라고 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구체적인 내용이야 책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창조법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주기는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냥 읽어가면 이해가 되니 창조적인 발상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창조적 생활. 별 거 아니다. 우리 자신이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살피기 시작한다면 우리네 삶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창조적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창조성이라는 것이 부단한 연습을 통해서 주어지기도 하지만, 삶에 여유가 있다면 자연스레 갖춰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일은 노동시간을 줄여 여유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너무도 바빠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는 사람에게 넌 왜 창조적이지 못해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창조성을 살리려면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 하는 것도 좋은데,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 하려면 우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유 속에서 창조성은 태어나게 된다.

 

아마도 이 책은 그러한 여유를 기본전제로 하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리라.

 

21세기.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또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한 번 "감성의 끝에 서" 보자. 이제는 그럴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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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마음을 만지다 - 시가 있는 심리치유 에세이
최영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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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인지, 시를 쓰기 때문에 시인이 되는 것인지 하는 질문이 있었다. 참으로 심오한 질문이기는 한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왜냐하면 시인이 아니더라도 시를 쓸 수 있으며, 시를 쓰면서도 시인이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는 무엇일까? 도대체 왜 우리들은 시를 쓴다는 시인들을 특별한 사람 취급할까? 이렇게 된 데는 우리나라 문학교육이 한 몫을 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학교 다닐 때 시교육 수업을 생각해 보면 도대체 뭔 소린지도 모르는 시들을 온갖 표현법부터 상징적 의미까지 쪼갤 수 있는 데는 모두 쪼개 놓고 보았고, 또 시란 아무나 쓸 수 없는 무슨 특별한 종류의 문학처럼 여기도록 배워왔다.

 

도대체 왜 시가 그래야 하지? 이 시가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수업은 전혀 없었다. 요즘은 시를 시로써 감상해야 한다는 교사들도 많아졌고, 그러한 수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시를 어려워 한다. 시는 여전히 국어 시험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를 통해서 치유를 한다고? 오히려 병이 걸리지 않고?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학창시절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이 시는 치유의 효과를 발휘한다. 어느 순간 시는 마음 속에 다가온다. 어, 이 시가 이랬어? 이 시가 내 맘을 이렇게 잘 아네... 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시인이 된다. 그리고 그 시를 다시 읽는 순간, 소리내어 낭송하는 순간, 시인이 쓴 시를 우리가 또다시 쓰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런 순간을 이렇게 말한다.

 

  시도 누군가에게 읽히기 전에는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큰 소리로 낭송할 때 그에게로 가서 완결된 한 편의 시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시인의 진액이 녹아 있는 고통과 희열의 잔을 시인과 나누어 마신다. 그리하여 낭송하는 자도 더불어 시인이 되는 것이다.

  시 낭송은 이처럼 가만히 한 자리에 머물러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시선과 흔적을 따라 시를 체험해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시와 삶의 행복한 일치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시를 낭송해보면 그냥 눈으로 읽었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행간 깊숙이 숨어 있는 시인의 마음을 한순간에 낚아챌 수 있다. 그 시를 쓴 시인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31쪽

 

한 번 시를 낭송해 보라. 시에는 어떤 시를 불문하고 음악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낭송을 하는 순간 우리에게 어떤 운율을 부여한다. 우리가 어떤 가락을 느끼고 그 가락이 온몸을 울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시의 내용이 아니다. 시를 읽는 동안 그 소리들의 울림이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울린다. 그 울림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일상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이미 시를 낭송하는 순간, 나는 나에게서 거리를 두고 시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말이 내 가슴에서 울리고 나를 울리고 내 영혼을 울린다. 그런 울림으로 나는 나에게서 있던 슬픔, 우울, 고통 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지닐 수 있게 된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시는 지니고 있다. 아니 시가 지니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이 책의 지은이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듯이 낭독되는 시가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는 낭송해야 한다. 소리내어 읽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말을 소리내어 말하고 듣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계에 대고 하는 소리는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뱉어내는 소리에 불과하다. 내가 말하고 듣는다는 것은 일방적인 뱉어냄이 아니라 내 맘 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 낭송은 시를 내 맘 속에서 받아들이고, 그것이 울림을 통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치게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내 맘은 어느 정도 치유가 된다.

 

시에서 멀어진 시대... 그러나 시대가 험할수록 시를 읽어야 한다. 시를 읽어야 험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할 수 있다.

 

나 자신이 부드러워질 뿐만 아니라 세상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일... 그것이 바로 시가 지닌 힘이고, 시를 낭송하는 우리들이 지닌 힘이다.

 

이렇게 시를 낭송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시인이 된다. 그런 시인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더욱 밝아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혼자만 있는 공간에서 조용히 시를 낭송해 보았다. 내 목소리가 내 가슴을 울리고, 그 울림이 내 머리까지, 내 영혼까지 울리는 경험을 한 책읽기였다.

 

시, 저 멀리 고고하게 혼자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함께 있는 존재다. 시를 가까이 하자. 가끔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하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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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교수법으로 행복 가르치기 - 교사와 학생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마음챙김 실천서
Deborah Schoeberlein 외 지음, 고형일 외 옮김 / 학지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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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학생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마음챙김 실천서'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책이다. 교육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들을 하면서도 교육이 오히려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고는 하는데, 이런 교육이 계속 유지된다면 그것은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교사도 학생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교사와 학생이 행복해지면 교육은 자연스레 행복교육이 될 터인데, 교사와 학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마음챙김이 그러한 행복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마음챙김이란 뒤에 요약되어 있는 대로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순간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고, 이러한 마음챙김을 통하여 따스한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된다고 하는데, 교사와 학생이 마음챙김을 한다면 서로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감정에서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는 것, 그 알아챔은 순간적으로 정지의 순간을 이룬다.

 

정지의 순간에서 다른 행동이 나올 수 있다. 다른 생각이 나올 수 있다. 이제는 감정대로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읽고, 마음을 챙기고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생각을 할 수 있고, 좋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음챙김의 효과다.

 

이러한 마음챙김은 특정한 때가 없다. 때를 정해놓고 마음챙김을 하지는 않는다. 마음챙김은 하루 내내 마음챙김이 필요할 때 할 수 있다. 그리고 해야만 한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눈 뜨자마자 하는 마음챙김부터, 출근길에서 하는 마음챙김,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서 하는 마음챙김, 수업이 끝난 후에 하는 마음챙김, 그리고 집에서의 마음챙김까지 하루 내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마음챙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챙김이 이루어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이제 마음챙김을 직접 실천하는 일이다.

 

교사도 학생도, 부모도 자식도, 그리고 직장인도 모두 이러한 마음챙김을 실천한다면 자신의 삶을 좀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찌 마음챙김이 학교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겠는가. 이것은 우리의 삶 전체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면 개인의 행복과 더불어 사회도 행복해진다.

 

구체적인 방법이 나와 있는 이 책. 불안한 사회, 불안한 삶에 시달리는 우리들,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하다. 아니, 시도해 보아야만 한다.

 

마음챙김에 대한 요약은 다음과 같다. 


 

ㅇ  마음챙김은 자신의 내면과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다. 그것은 그 경험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머무르는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ㅇ 마음챙김은 현재 순간에서 현재 순간에 대한 주의집중과 알아차림을 훈련한다. 이것은 평생 학습을 위한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은 학업 성취뿐만 아니라 사회정서적 학습에도 기여한다.

 

ㅇ 마음챙김하면서 가르치는 것과 마음챙김을 가르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것은 단지 다른 측면의 강조일 뿐이다. 교사는 가르치면서 배우고 그럼으로써 학생들의 학습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구체적인 기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을 더 성장하게 하고 깨어있는 삶을 살도록 준비하게 한다.

 

ㅇ 마음챙김은 회복력을 촉진하고 사회정서적 능력을 향상시킨다. 공감, 친절, 그리고 연민이 함께 하는 마음챙김은 효과적으로 행동하고 배려하도록 돕는다.

 

ㅇ 마음챙김하는 삶은 더 큰 마음챙김을 낳는다. 마음챙김을 실천할수록 더 큰 마음챙김이 삶의 경험과 일 그리고 대인관계에 스며들 것이다. 마음챙김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멋진 해법을 가질 수 있는 필수 능력을 촉진한다.

 

ㅇ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알아차림과 주의집중 그리고 감정적 균형을 구현하는 것이 마음챙김이며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들과 함께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는 기법을 공유하는 것이 마음챙김 교육의 핵심이다. 277-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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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거운 나날들이었다.

 

세상에 나서 무언가를 이루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그럴 틈도 없이 어느 순간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더 이상 무엇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이승과 저승이 참 멀리도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한 순간 이곳이 바로 이승이고 저승이구나 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메멘토 모리!"

 

한 순간만 방심해도 죽음은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을 잊지 말라고 강요한다. 도저히 잊을 수 없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는 바로 이 곳에 있다고 늘 죽음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죽음에게 벽을 쌓고, 마치 죽음은 이 곳에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다 순간, 그 벽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다시 죽음을 이 곳에서 만나게 된다. 경계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승의 길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데, 죽음의 길은 전혀 다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승의 길을 달리다 보니 죽음의 길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아니, 죽음의 길로 들어서 있었다.

 

이런 일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많이 겪게 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 하루하루 죽어간다는 것. 이승의 길을 많이 달리고 달려 죽음의 길을 만나게 된다는 것.

 

그렇기에 이승의 길을 달릴 때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한 순간 길을 바꿔버린 사람. 그런 사람을 애도하며, 다시 한 번 "메멘토 모리!"

 

경계, 무너짐

-삶과 죽음

선이 있다고

명확한 경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삶을 충실히 살고,

죽음을 향해 가야 한다고,

한 면과 다른 면이

같지 않다고,

만나지 않는다고,

선을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과 밖이

하나임을,

한쪽을 달리다 보면

이미

다른 쪽에 와 있음을

선과 선이

엉켜있음을,

삶이 곧 죽음인 것을

나이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런 일들과 더불어...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번에 읽은 황규관의 시집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에는 이런 죽음에 대한 시들이 있다. 그게 현실이니...

 

죽음들

귀신 따위는 믿지 않던 내게도

얼굴의 핏기를 싹 빼앗긴 이들이

매일매일 찾아온다

반복은, 심장을 두려움으로

천천히 진화시키는 힘인가

하얀 알약을 한 움큼 털어 먹고 죽고

유독가스를 울음처럼 울쩍이다 죽고

일가족을 태운 채 강물에 뛰어들어 죽고

고전적으로 공중에 목을 매단

숱한 죽음들이, 조간신문처럼

꼭 눈을 뜨면 찾아온다

전쟁을 치른 어머니의 공포가

유전된 것도 아닐 텐데

심지어 맞아 죽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떠밀려 죽고

몽땅 방화된 죽음도 섞여 있다

비슷비슷한 내력으로

별다를 게 없는 설움으로

굴욕에 무너진 식은땀으로

자꾸 내 삶에 부벼대는 것이다

오늘도 부산의 조선소에서

어제는 집에서 멀지 않는 전자공장에서

그제는 강 건너 허름한 재개발 지역에서

그리고 물고기가 모여 사는 냇물에서

식어버린 몸들이 매일매일 찾아온다

 

황규관,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실천문학사. 2011년. 96-97쪽

 

개인적인 죽음이든, 사회적인 죽음이든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언제까지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이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게. 비록 죽음은 늘 삶에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존재지만, 그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게 우리의 삶을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잘 살자, 그것이 잘 죽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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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 나를 위한 용서 그 아름다운 용서의 기술
프레드 러스킨 지음, 장현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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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울화가 만연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사회 전체에 울화가 많을 때 분노와 좌절이 넘치게 되고, 이는 사회 문제로 비화되기 십상이다.

 

용서란 참 힘든 일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대상을 용서한다는 일, 그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반면에 그 용서를 실천한다면 얼마나 강한 사람이 될까? 이 때 강함은 외면적으로 강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강하다는 얘기가 된다.

 

내면적으로 강하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결정하고, 남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다가오는데, 이런 사람을 만드는 데 용서가 큰 몫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용서를 하는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의 평화는 외적인 환경에 크게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는 쉽지 않다. 더구나 자신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거나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용서를 해야만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왜냐 용서란 과거의 일을 잊는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그 일이 다시 반복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 되돌릴 수 없는 일에 자신의 마음을 지나치게 많이 주고 있으면 나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 그래서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일에 마음을 쓰는 일은 퇴행에 불과하고, 자꾸 자신을 울화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하여 지나간 일은 기억을 하되, 그것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않는 일. 그것이 자기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명심하는 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내게 일어난 것.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는 것. 하지만 그것에서 다시 출발할 수는 있다는 것. 여기서 용서가 출발을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왜?"라는 질문만 하는 사람은 과거에만 얽매이게 된다. "왜 하필이면 내게?"하고만 하는 사람... 원인 분석에만 매달리고, 그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음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불행에 빠뜨리게 된다.

 

인생 자체가 울화와 분노와 절망으로 점철되어 시간이 갈수록 자신을 파괴하고 만다.

 

이 때 "왜?"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분명 일은 벌어졌다. 그렇다면 과거의 원인 분석에 매달리기 보다는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때 할 수 있는 질문이 "어떻게"이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실천방법이 이 책에 나와 있다. 용서가 왜 좋은지만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 아니라, 용서의 기술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현재의 자신을 울화로 이끈 사건을 명확히 파악하게 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알며,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말을 한다는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그리고 울화를 용서로 바꿀 수 있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용서는 자신의 건강까지도 좋게 만들 수 있으니, 마음 건강과 몸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바로 용서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평화로 충만한 사회일테니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용서의 마직막 네 가지 기술은 참으로 단순하다. 아니 단순하기 때문에 용서의 기술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므로.

 

희망(H)-교육(E)-긍정(A)-장기적 다짐(L)

 

이 말들을 연결지으면 HEAL이 된다. 즉 용서는 치유가 되는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갖지만 그 희망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래서 실패했을지라도 다시 그것을 발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이엇이 바로 용서의 기술이다. 자세한 것은 책에 나와 있으니 읽어보면 알 일이고... 사회가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때, 내 마음이 분노로, 울화로,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한 번 시도해 볼 일이다.

 

마음 건강과 몸 건강을 챙길 수 있고, 더불어 사회 건강도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더하여 주로 용서의 기술이라 함은 남을 용서하는 기술을 말하는 것으로만 이해하기 쉬운데, 이 책에서는 용서의 기술에서 자신을 용서하기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자기를 용서하는 방법은 남을 용서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용서, 솔직히 어렵지만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다. 아니 이제는 시도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을 평화로 이끄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이 책에서도 누누히 이야기하고 있지만 용서가 결코 망각은 아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굴복하는 것도 아니다. 용서란 상대방의 행동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의 책임을 무마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책임을 철저하게 묻되 나 자신의 마음이 상처받는 것을 막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니 용서와 굴복을 혼동하지 말고, 용서와 망각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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