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도정일 산문집 도정일 문학선 1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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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무엇을 말하고 누구를 말하는가? 지식인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 또는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애매한 표현이다. 일정한 수준이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비논리적인 의미가 대략적으로 대충봐서 결정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식의 수준이라는 것을 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한계가 바로 일정한 수준이라는 표현을 나오게 만든 듯 하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근거로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지식이라고 명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자신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은 전부 지식인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딱히,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기 위해서 시험(우리나라가 아주 좋아하는 계량화 과정)을 통해 지식인을 선정할 수는 없다. '신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준 적도 있는데 참 무식한 일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모든 사람이 전부 인정하는 지식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 중에 많은 범주의 사람들이 '지식인'이라고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은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식이라고 이야기 안 할지 몰라도 남들이 지식인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지식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지칭 받는 사람이 아니라 지칭 하는 사람들의 지식 수준차이가 천차만별이라고 볼 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식인'이라고 칭할 때는 남들과는 구분되는 지식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식인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할 것인데 단지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지식인이라고 지칭할 것인가? 규정할 수 없는 비언어적 지식을 언어로 풀어 이야기할 수 있다면 지식인인가? 다양한 지식을 언어로 풀어내면 지식인이라고 우리는 지칭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지식인에 대한 구분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론이 결여된 실천이나 실천이 결여된 이론은 둘 다 불완전한 토대위에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문제는 실제 현실에서는 실천이 없는 이론만으로도 얼마든지 잘난체를 할 수 있고 마구 마구 떠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남들에게 듣는 사람이 지식이 풍부할 지 몰라도 실천이 없다면 그를 우리가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외로 지식인은 무척 많다. 나보다 지식이 많다고 생각되느 인물에게는 다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식인이라고 하는 그 인물은 지식인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일 것인데, 우리의 실정에서 과연 지식인은 얼마나 될 것인가? 외국에서는 지식인들이 자신의 지식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경우가 많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청나게 박학다식한 지식을 습득하고 어느 분야나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를 할 줄 안다고 해도 아무런 실천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수 없는 놈이라고 봐야 할 것인데 우리는 이런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칭송할 때가 많다. 외국처럼 말로만 지식을 떠들고 지식의 실천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앞장서서 외치고 지식을 글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분법적인 사고가 팽배한 시대를 건너와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사상적인 한계가 스스로 자신을 특정 틀에 가둬놓는지도 모르겠지만.

 

현대의 지식인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지식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움직이게 만드냐가 바로 지식인의 사명일 수 있다. 글이 없던 시대나 글을 읽기 힘든 시절에는 말로써 전달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인원도 얼마되지 않아 전달과정의 변질이 다소 될 수 있어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대에는 자신의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글이라는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만큼, 글쓰기의 중요성이 필요한데 지식을 많이 쌓는다는 것과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은 다른 듯 하지만 같은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인 풋이 좋아야 아웃풋이 좋다는 말을 한다. 들어오는 것이 있어야 나오는 것이 있게 된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술적인 측면으로 노력하는 것은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글은 조금씩 조금씩 개선되고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기술이 늘게 되어 있지만 이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지식은 스스로 쌓지 않으면 결코 늘 수 없다. 백날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강의를 다닌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많은 것을 읽지 않아도 많은 것을 듣고 - 일정 한계가 존재한다 - 많은 것을 생각하고 - 한 개인의 생각에는 사고의 확장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 글을 쓰면 되겠지만 이에 대한 한계는 분명하다. 고로, 많은 것을 보고 읽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 지식이 쌓여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토록 길고도 긴 지식인의 의미와 지식인이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썼다. 그만큼 지식인을 알아채는 방법은 그의 글을 읽는 것 밖에는 없다는 뜻이 된다.

 

여러 곳에 기고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특정 주제를 이야기하는데 반해 이 책은 특정 주제는 없다. 수 많은 주제에 대해 글을 썼던 당시의 상황에 맞는 시의적절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쓴 글들을 엮어 펴 낸 책이다. 각 주제에 맞는 글이 얼마나 논리정연하게 전달하느냐가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데 그런 부분에서는 방대한 지식을 동반한 자연스러운 내용전개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분명히 어려운 내용인데 번역되는 과정에서 더 어렵게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어 넘사벽이 되는 글이 많다. 자신의 무지를 탓하며 극복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무지를 인정하고 포기한다. 이럴 때 한국사람이 쓴 어려운 글은 그나마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의 사고를 갖고 우리나라 말로 풀어내기 때문에 어렵다고 해도 읽을 수 있는 친근함이 존재한다. 이 책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내용과 글이지만 읽는데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딱히, 잘난체를 하거나 지식인이라고 지식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열하지도 않는다. 물론,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다.

 

글에는 다양한 분야가 존재하는데 현대의 글쓰기는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자연스럽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더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1에서 1을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100에서 1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필사라는 방법이 있다. 좋은 글을 계속 베껴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글쓰기의 기술을 체득하는 방법이다. 그만큼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의 노력을 단기간에 훔치는(??) 방법이다. 신문의 칼럼을 베껴쓰는 것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 책은 그런 교본으로 쓰기에도 참 좋은 책으로 보인다.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사례와 함께 기승전결로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전달하는 글의 맛을 알려준다. 이거,, 쉽지 않다. 나도 그랬으면 참 좋겠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저자가 얼마나 풍부한 지식을 통해 글로써 풀어내며 단순히 글로 지식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에 발생하는 문화, 사회, 정치, 외교등의 전방위적인 지식의 전달과 실천을 요구하는 글에서 지식인의 글쓰기가 이렇다는 것을 알게되고 지식인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만들었다. 어린이 도서관이 '기적의 도서관'을 만드는데도 노력하고 있다고 하니 진정한 지식인이라는 판단이 든다. 이런 지식인들이 보다 더 많아졌으면 한다. 감히, 내가 지식인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주제넘게 마구 마구 이야기하고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어불성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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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남았다면 - 죽기 전에 후회하는 7가지
카렌 와이어트 지음, 이은경 옮김 / 예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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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죽음은 경외의 대상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이 인간에게는 영원한 미지의 대상이 된다.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혹 존재하지만 그들은 죽었던 것이 아니라 잠시 눈을 감았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알려주지 못한다. 인간은 최소한 누군가 경험을 해야 그 경험을 토대로 간접경험으로 지식을 쌓고 대처를 하고 슬기롭고 현명한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어느 누구도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자신이 직접 죽음을 경험하지는 못해도 타인의 죽음을 경험한다. 죽음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다 처음으로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알게 될 때의 감정은 신비스럽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죽음이란 피하고 싶고 될 수 있는 한 가까이 하고 싶지 않게 된다. 특히,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보게 된다는 것은 말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가슴에서 나온다.

 

무섭기만 하고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타인의 죽음이 익숙해진다. 나이를 먹어가며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눈에 보이지 않고 연락할 수 없게 된다. 단순히, 연락을 주고 받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가 생존해 있지 않다는 부존재의 사실은 먹먹한 심정이 든다. 죽음이 점점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디까지나 타인의 죽음이 익숙해지는 것이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남의 일로 느껴진다. 과연,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익숙해 질 수 있을까?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일 것이다.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은 진리이고 피할 수 없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이 점을 잊고 산다.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점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생각할까? 많은 것들이 변화될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행동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마저도 변화될 것이다. 죽는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지금의 인간을 만든 배경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죽음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언제 죽을지 알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몇 년 몇 월 몇 시에 죽을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라도 얼마 정도 후에 죽게 될 지 안다는 사실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자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타인에게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인생과는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똑같은 생활을 한다고 해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변화를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도 느끼게 된다. 

 

그 변화는 바로 내일을 준비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를 희생하고 참는 이유는 내일은 지금보다 더 좋았으면 하는 이유다. 내일이 없다고 하면 현재를 희생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만이 내 인생을 가장 풍요롭게 사는 것이다. 굳이 돈을 모아야 할 이유도 없고 남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도 없고 감정을 속일 필요도 없다. 내일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나와 만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일이 있지만 내일을 기약하지 않게 되었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좌절하기도 하고 저주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남아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 이 상황 자체는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 세상을 살아 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자각은 - 이것도 똑같다 - 서서히 상황을 인정하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 후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바로 지금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책 제목인 '일주일이 남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 내일, 내달, 내년등으로 우리는 장기간의 계획을 세운다. 몇 십년 후까지는 설계하지 않아도 몇 년 후까지는 감안하면서 일을 한다. 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일주일만 남았다고 해도 그런 행동을 하고 감정을 표현하게 될까? 여전히, 그럴 사람도 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감정에 충실하고 미련을 두지 않으려 할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삶을 살라고 독력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내가 왜 회사를 위해 충성하고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기쁜 경험과 즐거운 경험, 행복한 경험들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내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기에도 바쁜 하루가 될 것인데 말이다. 상사의 지시는 무시할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는 듣지 않을테고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면 만나지 않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야 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나라는 사람의 감정이 만족스러운 일만 해도 하루가 짧게 될 것이다.

 

'사랑' '용서' '행복' '포용' '열정' '여유' '감사'라는 7가지가 바로 죽기 전에 후회하는 대표적인 것들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고 나와 다른사람을 용서하고 슬픈 감정보다는 행복한 감정으로 바라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전부 포용으로 받아주고 하고자 했던 것을 열심히 하고 긴장된 삶을 살기보다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유롭게 생활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후회한다.

 

책에는 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각 챕터에 맞는 인물이 등장하여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전달해 준다. 호스피스로 생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고 지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 그들이 후회하는 감정을 알려주는데 하나같이 마지막에 가서는 편안하게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후회되는 행동과 감정이 남아 있었지만 감정의 찌꺼기를 소각시키고 마지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꼭 죽기전에 감정의 찌꺼기를 없애야 할까?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없고 감정의 찌꺼기가 존재해도 약간 불편하면 불편한 정도로 인내하고 살아간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응어리가 되어 병으로 변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른다. 아니, 나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매일 매일 감정의 찌꺼기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고 쌓인다. 그중에 자연스럽게 날아가는 것도 있겠지만.

 

울림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원래대로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해 살아간다. 알면서도 감정을 솔직하게 밝히지 못한다. 내일, 내일하면서 미루다가 끝내는 전달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해 끝내 늦었다고 생각해서 할 생각조차 안한다. 뭐, 이런 말을 할 자격조차 없는 똑같은 사람이지만 될 수 있는 한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살지는 못해도 감정에 솔직해지려 노력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은 너무 많이 희생하지 말고 살면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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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
이현세 지음 / 토네이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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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를 다닐 때 - 지금의 초등학교 - 만화가게가 있었다. 지금의 만화방도 도서대여점과도 다른 개념이였다. 돈을 내고 앉아서 만화를 본다는 개념인데 그 어린 나이에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보게 되었는데 아주 아주 우연히 '공포의 외인구단'을 읽게 되었다. 용돈이라는 것도 얼마 되지도 않는 나이와 시기에 읽게 되었던 '공포의 외인구단'은 미치게 만들었다.

 

겨우 몇 권을 읽고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상황에 집에 와서 온갖(??) 노력을 통해 다시 돈을 마련해서 또 다시 다음 권을 봤지만 여전히 다 읽지 못했을 때의 그 감정이란. 어느 날 영화로 개봉이 되었을 때 - 아마도 중학교 때로 기억한다 - 관람을 하고 또 다시 전국은 열풍이였다. '난 네가 기뻐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노래는 전 국민의 노래가 되었고 난리가 났었다.

 

이현세의 만화는 오래도록 여러 편을 읽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 신작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워낙 대박 작품을 많이 펴 내기도 했었고 나이도 점점 들어가는지라 그러려니 했다. 한 편으로는 '아마게돈'의 흥행 실패에 따른 여파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부분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 책에서 이 부분은 언급하지 않는다 - '천국의 신화'가 음란물로 소송을 하면서 창작열이 사라지고 10년 정도를 작품활동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신문사에 기고했다고 하는 천재를 이기려 하지 말고 천재는 먼저 보내버리고 자신의 속도에 맞게 계속 가면 천재를 이길 수 있다는 내용이 아직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어 얼핏 본 기억은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전문을 다 읽을 수 있었는데 평소에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라고나 할까? 천재는 모르겠고 나보다 잘 난 인간들이 너무 많다. 그들을 이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나는 내 속도에 맞게 뚜벅,뚜벅 걸어가면 그들만큼의 자리에 올라가지는 못하더라도 내 스스로 원하는 바를 얻으면 된다는 입장이다.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는 이현세의 전기는 아니고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나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화가 아닌 글로써 전달하는 책이다.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이현세의 성장과 겪은 경험등은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져 있다. TV에서 재연 드라마로 하는 것도 본 적이 있을 만큼 익숙하지만 여전히 대단하다는 느낌은 든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의 인터뷰 기사를 좋아한다. 얼마나 좋은 말을 끌어내느냐가 핵심일 수 있지만 인터뷰를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무엇인가 그 사람만의 고유한 영역과 생각과 삶의 자세등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읽으면서 나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비교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역시나하기도 하면서 읽는데 특히 실력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의 인터뷰는 더더욱 얻는 것들이 꽤 많다. 자주 접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

 

이현세 정도의 위치와 실력과 경험이라면 그가 하는 이야기는 허투루 들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어느덧 60이 된 어느 완고한 이미지의 불통의 아저씨가 일방적으로 하는 교훈과 가르침이 아니라 크리에티브의 자리에서 늘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분야에서 장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하려고 오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하기도 하고 자신이 볼 때 재능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하기도 하지만 어떤 재능을 갖고 있든 결국 자신을 믿고 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두각을 나타난다는 것이다. 비록, 재능이 부족하여 만화가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도 만화가가 아닌 다른 일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 비해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책 초반의 프롤로그에서 책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부분도 읽어도 이현세가 이야기하려는 바가 무엇인가 깨닫게 되고 그것만 지킨다고 하면 이 책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한다.

 

"될 거라는 확신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다면 성공한다고 한다. 긍정적인 답변을 한 사람들은 무조건 함께 이야기를 하지만 주저하는 사람들은 돌려 보낸다고 한다. 실제로 실패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저 대답에 자신있게 확신한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을까에 대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물음표이다.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앞만 보고 달린 적은 없는 듯 하다. 단 나에게는 이런 점이 있었다. '될 거라는 확신이 있는가?'에 이어서 

"매일 10장의 크로키를 그려라.

1년이면 3,500장이다.

10년이면 3만 5,000장이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풍경이 있다."

이것은 내가 실천하는 바이다.

 

비록, 확신을 하고 일을 하지 않더라도 묵묵히 티가 나지 않아도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내가 해야 할 것을 누구의 지시나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실천이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이라 보는데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확신을 갖고 하기보다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얻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하는 편이라서 말이다.

 

나라도 나를 믿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책 내용처럼 뜨문 뜨문 이곳 저곳에서 좋은 말을 얻어 들을 수 있었던 이현세의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를 통해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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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 삶의 굴곡에서 인생은 더욱 밝게 빛난다
김재식 지음, 이순화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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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로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산다. 아니,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아 더..더..더..를 외치면서 욕망을 불태우며 산다. 지금 정도의 삶으로는 절대로 만족하지 못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열심히 달려가고 있고 사회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따르려고 노력한다.

 

인간으로써 욕망을 갖고 무엇인가를 더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본능에 충실한 원초적인 행위이다. 모든 사람들이 위만 바라보고 살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위는 커녕 현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그저 건강한 삶을 되 찾는것만으로도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의 저자는 원래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원이지 않을까 한다.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 난치병에 걸린 아내는 온 몸이 사지마비에 걸려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 돈이 있다면 간병인을 쓰면 되고 가족들이 돌아가며 할 수는 있다.

 

병 앞에 장사가 없다는 표현처럼 하루 이틀 정도는 얼마든지 가족끼리 도와가며 간병을 할 수 있다. 기간이 한 달정도라면 간병인을 쓸수도 있었을 것이다. 몇 달 정도 치료를 받으면 퇴원하거나 완쾌 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으면 마찬가지로 비록 간병인은 쓰지 못해도 가족들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해가면서 돌아가며 간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완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치 말라는 이야기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질병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족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있겠지만 가족들이 아직 어린 자녀들이라면 그저 요원한 욕심일 뿐이다. 부모된 입장으로써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이들의 삶에 방해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내 자신의 질병이 내 의지로 생긴 것이 아닌 것처럼 병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이 도와주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의지만으로 될 수 있는 부분은 결코 아닐 것이다. 또는 의지는 있으되, 실천할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 몇 달을 넘어 몇 년이나 되는 투병기간이 길어지면 환자와 간병하는 가족이외에는 점점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의 저자도 아내가 갑자기 희귀 난치병에 걸린 후 처음에는 간병인도 쓰고 자식들이 돌아가며 돌봐주었지만 기간이 점점 길어지며 힘들어 하는 아이들과 계속 옆에서 돌봐줘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돈이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내 옆에서 간병을 한다.

 

병원비는 죽기전까지는 끊임없이 나오고 벌 수 있는 돈과 벌어놓은 돈은 사라져서 결국에는 모든 것을 전부 팔아버린다. 심지어, 집까지 팔아 버린다.  세 자녀들은 부모들이 있음에도 각자 흩어져서 고아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저, 가끔씩 엄마를 병문안 오는 것 이외에는 별 방법이 없을 정도로.

 

더이상 돈이 없었지만 희망이라는 것은 존재해서 지금까지 어찌 어찌 버티고 버틸 수 있게 되었다. 통장에 단 몇 만원 밖에 없을 때에 사연이 여러 곳에 소개되고 주변 사람들이 -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특히 - 알음 알음 도와줘서 생각지도 못한 돈이 통장에 들어오고 병원비가 마련되어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고 힘들지만 참고 살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것아 아닐까 한다.

 

몇 번이나 차라리 같이 죽자는.. 생각도 했지만 다시 한 번 살자고 마음을 다잡은 것은 그처럼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계좌번호를 물어 본 후에 통장에 넣어 준 일도 있다는 것을 보면 세상은 각박하지 않고 살아갈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내가 도와 줄 사람들도 존재한다.

 

내 아내가 희귀 난치병을 걸린다면 나는 과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병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환자가 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사라져서 시간은 내 것이지만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없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매일같이 매 시간마다 펼쳐지게 된다. 이런 상황,순간,환경을 견뎌낼 수 있을까?

 

책에서도 서로 짜증도 내고 차마 이야기는 못하고 혼자서 조용히 삭히는 내용도 나온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도 견뎌내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큰 병에 걸리면 환자뿐만 아니라 간병을 하는 가족들도 피폐해진다고 하는데 모든 관심과 집중은 오로지 환자에게 간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런 점이 더 서글플 수도 있다. 환자 자신도 알지만 자신 스스로도 추스리지 못하니 알면서도 간병하는 식구를 미처 받아줄 여유가 없다.

 

주소도 없다. 여러 병원은 전전하며 살고 있다. 식구들이 함께 할 공간도 없다. 각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떨어져서 살고 있다. 언제 이 투병이 끝날지 기약도 없다. 그저, 오늘을 살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만 갖고 살 뿐이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상황과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이 있을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사람에 비하면 나는 참으로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한다. 각자 자신의 삶의 무게가 있는 것인데 남과 비교하여 만족하는 것만큼 비겁하고 부질없고 간사한 것은 없다고 본다. 여전히 투병중이고 아이들은 그나마 잘 자라고 있는 듯 하여 읽으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마무리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에 나온 식구들이 다들 함께 살 날이 어서 빨리 돌아오길 기원하고 이 책이 많이 팔려 많은 사람들에게 사연이 소개되어 최소한 병원비라도 걱정하지 않고 치료와 간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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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아직도 그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충 이런 식으로 영화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더 집중을 하고 영화를 보는내내 '이게 정말이야?'하면서 보고 있는 화면이 상상이 아닌 바로 내 주변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에 긴장하고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와일드'는 바로 그런 종류의 책이다. 책은 진실이고 직접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다. 그것도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하나도 숨김없이 전부 밝힌 책이다. 남들에게 자신을 알릴 때 자기보호본능에 의해 어느 정도는 거를 것은 거르고 알려주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 저자인 셰릴 스트레이드는 남김없이 전부 보여준다. 자신의 생활과 생각과 행동을.

 

걷는 다는 것은 의외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1시간 정도를 걷는 일이 있게되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잡생각도 들고 현재 고민하고 있던 것도, 뜬금없이 떠 오르는 생각도 있다. 이런 생각들은 의식하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걸으면서 떠오르게 되고 걸으면서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다가 또 다시 갑자기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고 멍하게 걷다가 다시 또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걷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만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는데도 좋다. 사람들이 올레길같은 곳을 굳이 찾아가 걷는 이유는 분명히 좋은 경관을 보며 건강해지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찾고 싶은 욕망도 어느정도 있을 것이고 모든 것을 잊거나 생각하고 싶어 걷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걷는다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생활의 한 부분이였지만 갈수록 도구의 편리에 의해 걷기를 싫어하는 현대인들에게 걷는 것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순례자의 길이라 부르는 산티아고 가는 길 같은 경우에도 단순히 건강을 위해 그곳을 걷는 사람들은 드물것이다. 그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택한 방법이라 보인다. 

 

바쁜 현대인들이 명상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도 점점 자신이라는 존재가 무의미해지면서 하나의 도구로써 사용되는 것에 대해 스스로 힘들고 지쳐 자신을 다시 찾고 싶어 하는 일이라 본다. 잠시도 우리를 조용하게 쉬게 만드는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니 말이다. 집에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TV를 보고 컴퓨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 역시 집에서 잠시도 가만 있지않고 TV보고 인터넷하고 책을 읽는다. 그래도, 혼자 있는 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음악을 틀어놓고 정적상태는 만들지 않는 상태에서 있게 되면 갑자기 잡생각이 들면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되는데 이런 방법도 괜찮지 않나 싶다. 집에서 여러 식구가 함께 거주하고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집이 아닌 외부 공간에서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길을 걷는 것이다. 아니, 꼭 유명하고 멋진 경관을 제공하는 길을 걷지 않고 그저 아스팔트 위를 걸어도 본질에 충실하다면 그 자체로 충분해 보인다. 작년까지는 일주일에 몇 번을 그렇게 1시간 이상 걷기도 했는데 - 3시간이 걸려 집에서 한강을 건너 용산까지 걷기도 하고 - 최근에는 하지 않고 있어 책을 읽으며 다시 추억(??)이 나기도 했다.

 

편모슬하에서 3남매가 살다가 새로운 아빠와 나름 괜찮은 삶을 살았지만 엄마가 암에 걸려 사망한 후에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막나가는 삶을 살아 이혼까지 한 저자가 우연히 PCT라고 하여 퍼시피 크레스트 트레일이라는 미국 서부 횡단 여행에 관한 책을 발견하고 몇 개월 준비한 끝에 직접 혼자 배낭을 메고 끝까지 완주한 내용이 바로 '와일드'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책의 내용을 적으니 단순하지만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일단, 책을 참 잘 만들었다. 여행을 한 시기는 90년대 중반이고 책이 나온 시기는 2012년이니 무려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쓰고 다듬고 쓰고 다듬고 기록을 보강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라 상당히 밀도있게 세세한 부분까지 잘 묘사되어있다.

 

단순하게 도보를 하며 힘든 여정에 대해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걸으며 자신의 과거와 대해 자신에 대해 떠오르는 순간을 책에 삽입했는데 분명히 그런 자세한 부분은 책을 저술하는 과정에 시간의 편린이 뒤죽박죽하며 여행 내내 머리속에서 떠오르고 떠나고 했을텐데 책으로 펴 내면서 차곡차곡 하나씩 여행에 맞춰 구성한 것 같다.

 

책은 에세이범주에 속하고 실제로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글을 썼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책을 읽어도 상관이 없어 보였다. 단순히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을 통해 자아를 탐구하고 못난 과거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낸 책이라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여행의 시간에 맞춰 하나씩 하나씩 스스로 해결하고 풀어내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특히,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부묘사가 적나라하다. 현재, 아이들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나 그 전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세부적으로 되어있어 이런 부분은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인 차이인지 작가가 정말 책을 통해 모든 것을 꺼림낌없이 밝히고자 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 여부가 조금은 궁금했다. 또는 편집부의 집요한 요청이거나.

 

남자 혼자도 힘든데 젊은 여성이 오로지 배낭을 하나만 메고 여행을 한다. 그전에 단 한번도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해 본적도 없고 이론적인 계획과 약간의 현금이 준비되자 실천에 옮긴다. 이런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특히, 돈을 만든 것도 몇 개월동안 알바를 하며 모은 돈을 각 포인트마다 돈과 책과 정말 필요한 것들을 우체국을 통해 수령하며 여행한다는 것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돈이 없어 겨우 겨우 먹고 텐트에서 자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겨우 샤워를 해도 입고 있는 옷은 그래도 계속 입고 여행을 한다. 돈이 없어 새로운 옷을 사지도 못하고 여유있게 여행을 즐기도 못한다. 또한, 각 포인트까지 나름 정해진 날짜내에 도착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GPS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글을 소개하는 책 한 권을 들고 여행한다. 잘 닦여있는 평탄길을 걷는 것도 아니고 하루종일 걸어도 단 한 명의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길을 걸으며 어두워지면 텐트를 피고 자야하는 생활을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국토종단 여행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나마, 잠은 모텔같은 곳에서 자면서 한 달 정도로 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한 적이 있었다. 굳이 곤핍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저녁에는 어느 정도 여유있게 밥도 잘 먹으면서 하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와일드'의 주인공은 PCT여행자중에서도 더 곤핍한 여행을 한다. 그래도,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도움도 받고 딱히 큰 위험없이 끝까지 여행을 잘 마칠 수 있게 되었다.

 

몇 달씩이나 오로지 걷디만 한다면 도대체 어떤 생각이 들까?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어도 과거에 대해 떠오르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걷다보면 이런 것들도 점점 생각하지 않게 되고 오로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현재 앞만 보고 걷고 있는 것처럼 내 자신의 앞 길에 대해서만 생각이 집중되고 좁혀지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힐링도 되고 반성도 하고 각오도 하고 상상도 하고 다짐을 하는 걷기가 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서울에서도 유명한 길이나 가보지 못한 곳을 가는 것에 대해 계획을 했었는데 - 물론 대중교통으로 간 후 걷는다 - 그럴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해 못했는데 다시 한 번 생각이 떠오르기는 했다. 걷는 것은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나는 나만의 여행이니 말이다. 물론, 왁짜지껄한 걷기도 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일 수 있는데 이 책의 저자도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하는 와중에도 저녁마다 여건이 되면 책을 읽고 포인트마다 새로운 책을 받아 읽는다. 다 읽고서는 무게때문에 불 태우지만. 그렇게 책을 읽고 생각을 한다.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책을 사람들에게 선보일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성이 게을러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생각하는 걸 더 선호할 수도 있지만 나도 걷는 것을 좋아한다. 30분~1시간 거리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걸어가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책처럼 이렇게 하루종일 걷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말이다. 결국 자기를 찾는 걸 그런 식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읽으니 한 번 생각하고 고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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