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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ㅣ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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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자기계발서적은 호평과 악평의 이중적인 잣대로 평가를 받는다. 자기계발서적도 깊숙히 들어가면 꽤 넓은 분야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동기부여가 대표적인 자기계발 서적이다. 신기하게도 자기계발에 대해 악평을 퍼붓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식자층이다. 지식이 좀 쌓였고 어디가서 지식으로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이 자기계발에 대해 아주 불호감을 갖고 있다. 인문학 분야에 있는 사람은 유독 더 그런 경우가 많고.
이에 반해 일반인들에게 자기계발서적들은 환호를 받는다. 이런 괴리감은 어디서 온 것이고 어디서 어긋난 것일까? 동기부여의 원류로 들어가면 심리학이 나온다. 심리학은 또 다시 철학에서 출발한다. 출발지점을 따져 들어가다 보면 철학이라는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동기부여 책을 호평하거나 악평하는 사람들이 전부. 인문학을 공부하면 그깟 동기부여 책들은 무가치하다고 여긴다. 탁상공론이고 실제 삶에 있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동기 부여 책을 읽고 인생이 변화된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별 일 없는 인생을 살던 내가 이렇게 극적으로 변화하고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우연히 읽게 된 동기부여책 덕분이라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인문학은 하늘의 지식이고 동기부여 책은 땅 위의 지식인가? 한동안 동기부여 책들이 많이 팔리고 사람들이 열광을 했지만 지금은 다소 흐름이 들어갔다. 상대적으로 인문학이 좀 더 각광을 받는다. 재미있게도 둘은 서로 함께 갈 수 없는 것인지 그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동기부여류의 자기계발서적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자기계발 서적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동기부여책을 거의 읽지 않기도 하지만 읽어도 예전만큼의 감흥은 덜하다. 또한, 흔히 말하는 동기부여 책에서 언급하는 개념보다 상급 개념의 인문학 책들을 주로 읽다보니 그런 점도 분명히 있다. 동기 부여 책들이 뜬구름 잡기식의 이야기도 포함된 것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런 류의 책들은 도움이 된다. 아무 희망도 없는 사람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노력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도 훌륭한 역할을 해내는 거다.
미국과 같이 동기부여가 발달한 나라는 이미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한 번의 강의로 몇 억을 버는 사람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도 거의 10년 넘는 시기동안 이런 동기부여 책들이 번역되어 소개되고 국내의 저자들도 펴 냈는데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더불어 동기부여류도 현재는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동기부여책대로 했는데 변한 것이 없다는 사사람들의 아우성이 외쳐지다보니 또 다시 이런 흐름을 읽고 자기계발서적을 공격하는 책들이 어느 정도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동기 부여 책을 욕하는기는 참 쉽다. 내가 봐도 공격하기 너무 쉬운 대상이고 그 책을 저술한 사람들도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책을 펴 내 책이 성공해서 성공한 사람들도 제법 많다. 무엇이 먼저이냐를 따지면 우스운 현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런 공격을 하는 당사자는 이론이나 책으로만 그 책을 읽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너무 동기부여책들이 자신이 실천하지도 않은 행동과 마음가짐을 뻔뻔하게 강요하는 문제도 있지만 최소한 따라해 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너무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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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부여 책들이 결국에는 심리학에서 나왔다고 말한거처럼 동기부여 책들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심리학 책들을 읽게 되고 행동경제학 책을 읽게 되고 최종적으로 철학까지 읽게 된다면 그것도 무척 괜찮은 결론이 아닐까 한다. 심리학은 크게 프로이트와 융에 의해 발전되고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고 본다. '미움받을 용기'는 또 한 명의 심리학자인 아들러를 소개한다. 동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단 한권의 책도 펴내지 않아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들러의 이론은 우리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선의 생각에 집착한다. 결과는 무엇이든지 그 원인이 있다. 원인을 파악하면 결과를 해석할 수 있다. 높은 산에 올라가는 사람을 묘사하는 것이 대부분 동기부여와 일반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에 반해 아들러는 선을 이야기하지 않고 점을 이야기한다. 산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어느 지점에 있든지 그 지점이 중요하다. 그 앞 지점은 중요하지 않다. 산에 올라간다면 바닥부터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하지만 길은 어디서 출발하나 똑같고 어느 곳에 있거나 똑같다.
우리는 인간관계때문에 힘들다. 사랑받기 위해 힘들고 인정받기 위해 힘들고 도망가려고 힘들다. 내가 아닌 상대방을 통해 나를 인정받으려 하니 힘들다. 남을 칭찬하는 것도 상하관계를 규정하게 된다. 칭찬받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칭찬하는 사람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다고 해야 한다. 100점을 받았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100점을 받아 고맙다고 해야한다. 관계의 규정을 서로 대등하게 해야한다.
우리는 늘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기 때문에 불행하다. 자신이 먼저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욕을 먹을까봐 고민하고 칭찬받고 싶어 노심초사하고 상처를 줄까봐 조심한다. 욕을 먹으려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욕먹을 각오를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다. 기존에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 하는데 난 솔직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였다. 익히 알고 있었고 따라하는 개념이었다.
과거를 통해 현재가 되고 현재를 노력해서 미래를 만들어 간다. 이게 아니라 지금 이순간을 충실한다. 목적이 중요하다. 화를 내서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고함을 지르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화가 났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굳이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이런 상태라는 목적을 위해 소리를 지르고 화가 났다고 알리는 거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은 것이 어릴 때 아버지에게 크게 혼나고 아버지가 싫은 원인때문에 현재 아버지와 관계가 서먹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지 않고 떨어져 있고 싶어 그런 원인을 부각한다. 내 목적때문에 원인을 끌어들인다. 이런 게 아들러의 이론이다.
어찌보면 이런 이론은 동기부여에서도 얼핏 나오는 개념중에 하나다. 동기부여의 넓은 분야란!!!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원인은 해결 불가능하다. 그에 반해 지금 용기를 내고 아버지와 친해지는 노력을 한다. 원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원인을 파악하고 치유해야 할 이유따위는 없다. 미래에 어떤 인물일 될 것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이유로 지금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점이 모여 있으면 멀리서 볼 때 선으로 보인다. 의도대로 되는 인생은 없다. 의도해도 평생 살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해보니 아들러의 주장과 아들러는 처음 접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제대로 아들러의 설명만 따로 들어본 적이 없을 뿐.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책에 의해 살아남은 것처럼 아들러도 대화를 통해 상대방에게 자신의 이론을 알렸다고 한다. 찾아보니 아들러에 대한 책이 제법 나와있다. 나중에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인간관계, 타자공헌, 지금 여기 등등. 이런 개념이 아들러에서는 중요하다. 책에서 언급된 모든 개념을 읽었지만 모든 것이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다. 몇 번 정도는 다시 들여다봐야 할 개념으로 여겨지고 개인적으로는 프로이트류의 심리학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내 입장과는 가깝다. 다음에 다시 아들러를 만나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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