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의 딸 2
정지아 지음 / 필맥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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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었더니,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그렇다 보니 독서 편지 쓰는 것이 하나 둘 밀려 쌓여가고 있구나. 어제는 잠을 좀 많이 자서 그런지 오늘은 좀 컨디션이 괜찮아서, 또 피곤이 몰려오기 전에 얼른 독서편지를 하나 써야겠구나. 오늘 이야기할 책은 지난번에 이어서 정지아 님의 <빨치산의 딸> 2권에 관한 이야기란다. 지난 번에 말한 것처럼 2권은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뒷부분 이야기와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그러면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1조국이 부르다의 뒷부분 이야기를 해줄게.

<빨치산의 딸> 1권은 한국전쟁 중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방에 있던 국군들과 미군들이 빨치산을 진압하기 위해 지리산 인근으로 대거 내려왔고, 그들을 피해 빨치산들은 쫓겨가고 있는 부분까지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국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빨치산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들은 작전 변경을 해야 했어. 그 중에 하나가 위중자수였단다. 유혁운의 연인 김춘옥이 그 작전에 제격이었단다. 왜냐하면 김춘옥의 집안이 잘 사는 집안이었거든. 김춘옥도 그 작전에 흔쾌히 동의하였단다. 위장자수를 한 이후 지하에 침투하여 세력을 키워가기로 했어.

유혁운은 김춘옥의 위장자수 준비를 도와주었어. 믿을만한 지인의 집에 은거하면서 준비를 하였고, 김춘옥은 자수를 하였고 경찰도 김춘옥의 자수를 인정해 주었단다. 그런데 김춘옥의 위장자수를 준비하면서 유혁운도 위장자수를 하라는 설득과 압박을 받았어. 더욱이 산에서 내려 와 있었기 때문에 퇴로까지 막힌 상황이었어. 고민 끝에 유혁운도 위장자수를 하기로 했단다. 위장자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길고 긴 시간싸움이었단다. 경찰의 감시가 이어지는 와중에 지하 세력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았어.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는데 일년의 시간이 필요했어.

위장자수를 하고 일년이 지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옛동지를 만날 수 있었단다. 하지만 그 동지가 배신을 했을 줄이야. 옛 동지의 배신으로 위장자수라는 것이 드러나고 체포되고 온갖 고만을 당했단다.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확정되었어. 그 때가 1954년이었어. 위장자수를 했던 김춘옥은 진짜 자수를 선택했단다. 힘든 산 생활을 하다가 편한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 같더구나. 그렇게 변심한 김춘옥이 면회를 왔는데, 유혁운은 김춘옥과 결별하였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57년 유혁운은 전향하기로 결심했단다. 전향을 하면 일단 출소할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진짜 전향이 아니고 전향인 척 하려고 했어. 밖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다시 그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 여기까지가 1권부터 이어진 1조국이 부르다의 이야기란다. 아빠는 1부를 읽으면서 김춘옥이라는 사람이 정지아 작가의 어머니가 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1.

2지리산의 영웅들은 앞서 이야기했지만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이야기란다. 아빠는 이런 내용을 모르고 읽어서 처음에 읽을 때는 1분의 뒷이야기가 이어지는 줄 알았어. 그런데 좀 읽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고, 이내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님의 이야기란 것을 알게 되었단다. 옥남이라는 여자가 있었어. 공부하고 싶어했지만 집안이 어렵다 보니 부모님은 딸까지 공부를 시키지는 않았어. 하지만 혼자 틈틈이 공부를 했단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고, 옥남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남편은 최규복이란 사람으로 장난기도 많고 재미있는 말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어. 처음에는 정을 붙이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최규복에게 정도 붙였단다. 그런데 1944년 최규복은 일제에 의해 전쟁터에 끌려가게 되었고, 다행히 1945년 가을에 몸 건강히 살아서 돌아왔단다. 그 사이에 남편은 사회주의 사상을 알게 되어 사회주의 운동을 하였어. 빨치산 활동도 하게 되었는데, 최규복은 옥남에게 같이 하자고 했단다. 최규복이 빨치산 활동하는 것이 알려지자 경찰은 최규복 집안을 들쑤셔 놓았고 최규복의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어. 옥남도 최규복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을 했단다. 그리고 산에서 아이도 낳았어. 산에서 도망 다니면서 어린 아가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어. 먹는 것도 편편치 않고 말이야. 결국 아이는 얼마 못 가서 그만 죽고 말았단다.

옥남은 지리산의 이현상 부대에서 소속되어 일했단다. 이름도 본명을 버리고 옥자로 바꾸어 활동했어남편과 한참 떨어져서 일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만나기도 했단다. 그런 와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어. 1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물밀듯이 내려와서 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에게도 활약을 넣어주었지. 더 이상 산에 숨어 활동할 필요가 없어졌어. 이현상 부대는 낙동강 전선에 인력을 지원하기로 했어. 이때 최규복도 참가했단다. 하지만 최규복은 그 전투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단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상황은 급변하게 반전되었어. 전선은 다시 중부 지방에서 형성되었고, 이현상 부대는 중부 지방을 지원하기 위해 태백산맥을 타고 북상하였단다. 전선은 중부 지방에서 계속 올라갔고, 이현상 부대도 계속 북상하여 북쪽 땅까지 가서 거물급 인사인 이승엽을 만나기도 했단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어.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후방을 교란하라는 역할이었어. 그래서 그들은 남부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남하하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았던 옥남에게 북에 남아서 공부하라고 제안했지만 옥남은 끝까지 현장에서 투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남부군에 합류했단다.

남부군은 다시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왔단다. 내려오면서도 여기저기서 국군과 결전을 벌였고, 지리산까지 내려왔어. 지리산을 거점으로 유격활동을 했단다. 지리산에 가보면 세석 산장에서 장대목 산장까지 가는 길에 넓은 평원이 이어져 있고 나무들이 별로 없는 곳이 있는데, 빨치산 토벌을 위해 나무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그렇듯 지리산은 아픈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곳이란다. 아빠가 예전에 지리산을 좋아해서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그곳에 깃든 역사로 인해 숙연해지곤 했단다.

 

2.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지리산에서 유격 활동은 쉽지 않았어. 특히 여자에게는 더욱 힘들었단다. 용변 보는 것도 그렇고 생리 현상도 그렇고 말이야. 하지만 여성 동지들도 꿋꿋하게 유격 활동을 했단다. 북으로부터 지원이 끊긴 남부군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400여명이었던 남부군은 150여 명으로 줄어들었어. 북쪽에서 이승엽 간첩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일이 남부군에까지 전해졌단다. 전쟁 실패의 책임을 남로당 출신인 박헌영과 이승엽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북한의 음모라는 것이 정설이란다. 이 일로 이승엽 측근이었던 이현상도 종파주의자로 비판을 받고, 직책에서 물러났단다. 그리고 1953년 매복 중 죽고 말았대. 이현상이 죽고 나서 남부군을 궤멸되었다고 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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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306)

지리산의 가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산꼭대기에서부터 화려하게 타오르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 낙엽이 지고 거센 북풍과 함께 겨울이 닥쳐오는 것이다. 남부군의 마지막 낙원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11월 초 서남지구 경찰병력이 총동원되어 비행기까지 합동으로 달궁을 공격해 들어왔다. 대형폭탄과 기총사격에 밀려 남부군은 결국 한 달여의 천국을 버리고 그 달 말까지 지리산 곳곳의 골짜기를 전전하면서 월동준비에 바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깊어가는 겨울과 함께 남한 빨치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그 유명한 수도사단의 공세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후평에서 9백여 명에 가까운 대부대로 승승장구하던 남부군은 이 수도사단의 공세가 끝나고 난 후 150여 명 정도만이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 수많은 인민군 정규부대도 넘지 못한 낙동강을 넘어 종횡무진 적의 심장을 들쑤시고 다니던 남부군, 후평에서부터 지리산까지 몇 천 리 장정 동안 유격부대답게 후방의 적을 마음껏 섬멸하고 다니던 남부군의 사실상의 유격투쟁은 이제 막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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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아빠가 예전에 안재성 님의 <이현상 평전>을 읽고 쓴 독서편지가 있으니 다시 한번 읽어보면 오늘 해준 이야기랑 연계되어 좋을 것 같구나.

옥남은 부상을 입어 환자트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동료의 배신으로 토벌대에 생포되었고, 산에서 내려오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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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389)

남편의 얼굴이, 이현상, 박종하, 이진범, 양봉순, 다 기억할 수도 없는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동지들의 피가 스미고 살이 썩은 이 산은 봄이면 더 눈부신 녹음을 피워낼 것이다. 이 산으로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역사는 소용돌이치며 저 거대한 지리산의 산맥처럼 수많은 봉우리를 만들며 흘러갔다. 우리는 어떤 봉우리를 만든 것일까. 우리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또 다른 동지들이 정상으로 오를 것이다. ‘평등이라는 말만큼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꽃같은 열정으로 또다시 꿈꾸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혁명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이현상도, 박종하도, 마실 동무도, 김 영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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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빨치산의 딸> 2권의 이야기란다. 1부에서 이야기한 아버지와 2부에서 이야기한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까지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이야기는 옥남이 하산하는 부분에서 끝을 맺었단다. 소설 어디선가 다른 소속으로 근무하던 혁운과 옥남이 한번 스치듯 만나 인사를 나눴던 장면이 있긴 했지만 말이야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고, 이후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 궁금하기도 하구나. 그런데 이전에 읽은 정지아 작가님의 책들 중에 부모님이 어떻게 만났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았거든한참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내려 했지만 슬프게도 생각이 나질 않았단다. 독서편지를 뒤져봤지만 그런 내용이 없었어. 아쉬운 기억력을 탓해야겠구나.

빨치산의 딸.. 참 잘 읽었단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총부리까지 서로 겨누어야 했나 싶지만, 그들에게는 사상은 목숨보다 중요했나 보구나. 그리고 그들의 열정을 다 마칠 수 있던 것이 또 그들이 믿는 사상인가 보다. 무엇인가 하나에 빠져 온몸을 다 바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면서, 아빠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구나. 아무튼 정지아 님의 글빨로 인해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책 속에서 지리산이 많이 등장하여 문득 지리산에 가보고 싶구나. 마지막으로 천왕봉에 오른 것이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구나.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지리산 천왕봉에 한번 가보고 싶구나. 너희들도 함께 가면 더 좋고…^^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52 4 10일경, 곡성 봉두산에 있던 도당 연락과 분트가 적의 기습으로 전멸당하고 생포자까지 생기는 바람에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기존의 모든 연락루트가 차단됐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녀는 그 산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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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 1
정지아 지음 / 필맥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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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공존의 히트를 친 정지아 작가의 30여년 전 작품인<빨치산의 딸> 1권의 이야기란다. 이 책은 총 2권으로 되어 있고 오늘은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던 1990년에는 아직 반공의 시대를 살고 있던 시절이라 이 책은 금서로 지정되었고, 출판사 사장은 실형까지 선고 받았고 정지아 작가는 지명수배까지 당했다고 하는구나. 그 이야기는 정지아 작가의 에세이에서도 읽은 적이 있단다. 아빠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해 정지아 님의 팬이 되었고, 이후 정지아 님의 책들을 하나 둘 찾아 읽고 있단다. 이번에 읽은 것도 그의 연장선상이란다.

<빨치산의 딸>은 정지아 작가의 초기작이지만 그 때부터 필력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었단다. 처음 출간된 것은 1990년인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출간되자 금서 처리가 되었고, 그로부터 15년 뒤인 2005년에 새로 출간되었단다. 아빠가 읽은 것은 2005년도판인데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히트를 친 후 2023년에 다시 한번 개정판이 나왔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빨치산이 지리산 근처 어디쯤 있는 산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해서 너희들에게도 함 물어봤더니, 아직 빨치산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빨치산은 비정규 게릴라 부대를 말하는데 이것은 영어 partisan 을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다가 변형된 것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조선인민유격대를 보통 빨치산이라고 한단다. 그래서 반공의 시대에 빨치산은 거의 금기어나 마찬가지였고, 빨치산들이 체포되어 자유민주주의 진영으로 전향하지 않으면 계속 감옥에 있어야 한단다. 그런 사람들이 오랫동안 감옥에 있어서 장기수(長期囚)라고 했는데, 아빠가 어렸을 때 그런 장기수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간혹 나왔던 기억도 있구나. 정지아 작가님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나 에세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듯이 부모님들이 빨치산 경력이 있던 분들이었어.

이 소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 정지아 작가님의 가족의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단다. 2권으로 되어 있고, 책의 구성은 아주 긴 프롤로그가 있고, 1부와 2부가 있단다. 프롤로그에서는 정지아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1부에서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2부에서는 정지아 작가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 줄 <빨치산의 딸> 1권의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1부 대부분의 내용까지란다. 1부의 나머지 부분과 2부의 이야기는 <빨치산의 딸> 2권에서 이야기해줄게.

 

1.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지만, 100년도 안 되어 그 실험을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인단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일부 나라에서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말이야. 한 때 그런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해주겠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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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래전에 쓴 글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다시 한번 역사라는 것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 현대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목숨까지 걸게 했던 사회주의는 이미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지고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 쿠바 정도가 사회주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주의를 현실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사회주의란 소련이나 중국으로 대표되는 어떤 제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사회주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가리키는 추상명사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추구하는 동물이므로, 사회주의가 사멸했다고 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더 나은 어떤 세상,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옛 사람들의 기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위안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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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초등학생이었던 지아. 당시 아버지는 감옥에 있었고, 친구들로부터 빨갱이의 딸이라고 놀리며 따돌림을 받아야 했어. 결국 어머니는 그런 이력을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서울로 이사하기로 하고 은평구 갈현동으로 이사 왔단다. .. 은평구 갈현동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동네로구나. 지아가 중학생이 되고 글솜씨가 좋다는 것을 인정 받으면서 학교에서도 인정 받는 학생이 되었단다.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중학교 때 처음으로 어머니도 빨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대. 그래서 늘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 사춘기였던 지아는 이런 부모님의 이력에 불만이 많았고, 엄마와 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대. 왜 빨갱이를 해서 이렇게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냐면서 말이야. 하지만 어머니는 그럴수록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당당하셨다고 했어.

1979 8월 특사로 아버지가 8년만에 출소하셨어. 그리고 얼마 후 1979 10월에는 반공의 상징이자 독재정권의 심장인 박정희가 암살당했단다. 새로운 세상이 오는가 싶었지만, 두 달 뒤에 너희들과 함께 본 영화 <서울의 봄>의 실제 배경인 1212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어. 1980년 지아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늘 소설만 읽었어. 그러자 성적이 계속 떨어졌지. 아버지는 시골에 내려가서 살자고 했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 구례로 내려오게 되었어.

지아는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단다. 부모님은 고향인 반내골에 정착을 하셨고, 두 분은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농사를 처음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처음 하는 농사이다 보니 서툴고 돈벌이도 제대로 안되었단다. 구례에 내려와도 가난은 벗어나기 어려웠지. 지아는 재수를 해서 원하는 학과에 진학을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제대로 된 지식과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어. 그러면서 부모님의 행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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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6)

역사란 세계사 책 속에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걷는 이 길, 내가 사는 이 반내골에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다는 게 신비로웠다. 구름 위로 솟은 지리산을 볼 때면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 비로소 구체적인 형상을 띠고 다가왔다. 할머니의 말대로 공산당이 모두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면, 설령 두 분 때문에 연좌제 정도가 아니라 목숨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반쪽짜리 역사였거나 어쩌면 완전히 잘못된 역사인 것만은 분명했다.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은 배웠지만,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적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학교에서는 내 혼란의 일부분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왜 세상에는 차별이 있는지, 왜 나는 공산당의 딸로 태어나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지, 할머니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할머니는 책에 씌어진 역사와는 다른, 보통사람들의 역사가 있다는 것, 내 부모는 그 역사의 와중에서 그것이 옳든 그르든, 없는 사람들의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신념으로 목숨까지 내던졌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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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도 바뀌어서 부모님은 옛 동지들을 만나서 회포도 풀고 그랬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빨치산의 딸은 가난과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했단다. 긴 프롤로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지은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을 빌려서 들려주었단다. 아참, 지은이 정지아의 이름은 부모님이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지리산의 와 백아산의 를 따서 지어주신 것이라고 하는구나.

 

2.

1부의 제목은 조국이 부르다란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작가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이야기란다. 때는 1945 4월 정운창은 구례역 철도원으로 취직을 했단다. 1945 4월이면 2차세계대전의 막바지이고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던 시기로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끌려가던 시기였단다. 철도원이라는 직업은 다행히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대. 얼마 안 있어 해방이 되고 친일파들을 처치할 수 있어 기뻐했는데,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친일파들이 다시 고용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어. 일제시대 후반기부터 새로운 사상인 사회주의가 지식인들과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퍼져 있었단다. 당시는 이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친일파가 다시 극성을 부르고, 노동자들의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1946 9월 전국적인 총파업이 시작되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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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그러던 9월 전국적인 총파업이 시작됐다. 그가 소속해 있는 철도에서의 파업이 총파업이 불씨였다. 애당초 철도파업이 내건 요구사항은 쌀을 달라는 대부분 인민들의 요구와 별다른 바 없었다. 일급제 반대, 기본급료 인상, 가족수당 일인당 육백 원 지불, 물가수당 인상, 식량을 본인에게 네 홉, 가족에게 세 홉씩 지급할 것, 운수부 직원도 동등하게 대우할 것 등이 노조의 요구조건이었다. 당시 모든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엄청난 물가상승으로 일제시대의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철도국장 맥크라인은 철도노조가 제출한 요구조건에 대하여 인도 사람은 굶고 있는데 조선 사람은 강냉이를 먹고 있으니 행복하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군정청의 회답이 없자 철도노조는 24일 오전 9시를 기해 사만여 노조원들이 일제파업에 돌입했고, 26일에는 서울지역 출판부문 노동자들이 동조파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26경성지방 총파업 출판노동조합 투쟁위원회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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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대화가 아닌 무력 진압을 선택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남한 정부에 실망한 이들 중에 북으로 가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남북한 이동이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다시 내려오기도 했대. 운창은 남로당에 가입을 하고 본격적인 사회주의 활동을 했단다. 대부분의 좌익 활동하던 이들이 가명을 쓰고 활동을 했는데, 운창은 유혁운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어. 하지만 체포되어 감옥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어. 동지들의 이름을 끝내 불지 않아서 더 심한 고문을 받았지. 다시 풀려나서는 1948년 여수순천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저항군에 합류하여 계엄군과 맞서 싸웠어. 전세가 불리해지자 산으로 대피했어. 운창의 아버지는 골수 우익이라서 피해를 입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엄군에게 그만 총살당하시고 말았어.

산에 들어간 이후에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게릴라 작전을 펼쳤단다. 곡성, 화순, 광주, 구례로 이동하면서 게릴라 작전을 펼쳤지만, 토벌대의 대대적인 공격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었어. 유격대는 절멸의 위기가 있었어. 그런데 그 때 전쟁이 일어났어. 북쪽에서 많은 동지들이 밀고 내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안되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다는 거야. 그들이 있던 곳은 모두 북한 인민군의 점령지가 되어서 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은 모두 산에서 내려와 인민해방군으로 각 지방을 관리하게 되었단다.

금방 승리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낙동강에서 한동한 소강 상태로 이어졌고, 얼마 후에는 인천을 빼앗겼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지. 얼마 후 남한은 서울도 수복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어 국군은 북으로 치고 올라가고 있었어. 그러자 산에서 내려왔던 빨치산들은 다시 쫓기는 몸이 되어 산으로 들어갔단다. 다시 유격 게릴라군이 되어 활동하게 되었어. 그들의 임무는 후방에서 국군을 공격하여 전방에 있는 국군 세력을 남쪽으로 유인하는 것이었어.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방에서는 휴전 협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이것은 후방의 빨치산들에게는 청천벽력의 소리였단다. 왜냐하면 전방에 있는 국군들이 후방으로 대거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야. 예상은 현실이 되어 전방의 국군들은 빨치산쪽으로 이동하였어. 지리산, 백운산, 백아산에서 빨치산들은 대규모 국군들에 맞서야 했어. 지원이 끊긴 그들의 싸움을 쉽지 않았지. 많은 동지들이 죽어나갔어. 그런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 의지하는 힘은 강해지고 그러면서 사랑도 하게 되었단다. 유혁운은 김춘옥이라는 동지와 사랑하게 되었어. 하지만 둘 모두 사랑보다는 혁명이 먼저라고 생각했단다. 외롭게 싸워가든 그들에게 드디어 지원군이 나타났어. 북에서 보낸 남부군이 그들이야. 남부군과 합세하여 국군에 대항했어. 하지만 국군은 미군과 연합하여 총공세를 했는데, 세균전과 화학전까지 이용했어.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재귀열이라는 병에 걸려 죽고 네이팜 탐에 죽고 말았단다. 그들의 전력이 엄청나게 열세였지만, 그들은 혁명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게 된단다.

여기까지가 <빨치산의 딸> 1권의 이야기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은이의 필력이 좋으셔서 금방금방 책장이 넘어간단다. 그리고 마치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어. 그렇게 어려움에 빠지고 옆에 있던 동지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계속 항쟁할 수 있는 신념이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빠라면 그렇게 못했을 텐데 말이야.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내 인생 최초의 싸움은 아버지 때문에 시작되었다.

책의 끝 문장: 이제 밀알이 되는 것, 땅에 뿌려져 더 많은 밀로 태어날 그날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 그것이 남은 그들의 자리였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어항 속의 금붕어였을 뿐이었다. 어항의 벽을 깨뜨릴 수 없다면 굴욕적으로 숨쉬느니 어항 벽에 머리를 박고 죽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내게는 벽을 깰 방법이 없었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 있을 따름이었다. 판검사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든가, 판검사가 될 수 없으니까 가능한 한도 내에서 의사라도 되겠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음으로 해서 세상을 비웃어주고 싶었다.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살기로 했다. 나를 소외시킨 세상을 오히려 내가 소외시킨면서 말이다. - P33

천하의 개망나니 박종하는 46년 말이 되면서 차차 변하기 시작했다. 동네사람들은 천하의 박종하를 저렇게 얌전하게 만든 게 누구냐며 수군거렸다. 박종하를 변화시킨 장본인은 곧 밝혀졌다. 바로 공산당이었다. 주먹이나 휘두르는 것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말뿐인 해방조선 젊은이의 답답함이 무신자를 위한 평등한 새 세계 건설과, 친일파를 비호하며 조선을 새로운 식민지로 만들려는 미 제국주의로부터의 민족해방이라는 이 땅의 역사적 사명을 알아가면서 비로소 진정한 자기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직활동을 시작하면서 놀랍게 변해가는 박종하를 보며 마을사람들은 공산당의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당시 남조선 대부분의 인민이 그랬지만 박종하와 같은 동네 사람들이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노인네나 젊은이들이나 모두가 좌익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동네에서 조금 말썽피우는 사람을 보면 으레 "저놈 공산당 만들어야 사람 된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 P151

"동무들! 우리는 조선노동당 당원들이오. 굶주리고 짓밟힌 무산대중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가들이오. 혁명가는 이미 자기를 버린 지 오래요, ……혁명가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혁명당을 따라야 하오. 동무들은 한 지도자의 일시적인 오류로 혁명사업을 그르쳤다고 해서 영원히 혁명을 포기하겠다는 거요? …… 이번 전쟁은 언젠가 중앙에서 다시 검토될 것이오. 그때 모든 과오들이 가려지고 비판되겠지요. 이 점 명심하고 동무들 몇 명이서 북으로 가겠다는 거요? 이미 퇴로도 끊겼소. 지금까지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지금 당장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결정하시오. 내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 각자 자기 부서로 돌아가 자기 임무를 다하시오." - P262

묻혀진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한국의 현대사와 같은 뼈아픈 비극은 없었고,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묻혀진 비극의 역사도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는 금기로 묻혀져 있다. 최근 들어 간혹 한두 사람의 묻혀진 이야기들이 비밀스럽게 들춰지기도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흐름이 사실대로 밝혀지지 않는 한 한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거대한 물줄기의 한 지류일 뿐이고, 그 작은 흐름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도 도도한 원 물줄기가 제자리를 잡을 때뿐일 것이다. - P363

박갑출도 전적으로 그의 견해에 동의했다. 이제 남한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보라빛 먼 날의 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간부들 중의 어느 누구도 이전과 같은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당장 다시 오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최후까지 싸우다 죽는 것과,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다시 오고야 말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해 도시로 들어가 지하조직을 구축하는 길뿐이었다. 그날이 언제쯤일까? 10년 뒤일 수도 있고 어쩌면 50년 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뿌린 싹이 해방의 그날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았고, 살아서 볼 수 없는 날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좋았다. 단지 이 결정적 시기를 해방으로 성공시키지 못한 쓰라림이 남는 것뿐이었다. 이제 밀알이 되는 것, 땅에 뿌려져 더 많은 밀로 태어날 그날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 그것이 남은 그들의 자리였다.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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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김동춘) 그런데 왜 이들이 쿠데타라는 것까지 감행하게 되었을까요? 20세기 군사독재의 기억과 21세기 신자유주의 현실이 결합된 결과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윤석열, 김용현 이 사람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성장,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군부와 사법기관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동시대인이지만 우리와 전혀 다른 현실인식을 갖고 있는 거예요. 망상 속에 있으니까 쿠데타라는 터무니없는 일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이죠. 한편 그 배경은 매우 현재적입니다. 제가 이번에 친위쿠데타 사례들-1900년대부터 페루, 튀니지, 터키 그리고 쿠데타는 아니지만 브라질과 미국에서 일어난 난동 사태를 죽 살펴봤는데, 모두 신자유주의시대에 우익들이 통치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회주의진영 몰락 이후 우파세력은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에서 경쟁 상대 없이 통치를 해왔는데, 양극화라든지 혐오라든지 계속 터져 나오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행정권과 의회권력의 충돌을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쿠데타 같은 돌파구를 찾는 것입니다.

 

(26-27)

(김동춘) 오늘의 세계체제라고 하는 건 결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타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민주주의로 적절하게 제어해온 것입니다. 거칠게 말해서 1 1표제로는 체제가 붕괴하게 생겼으니까 자본가들이 일정 정도 양보를 한 것이지요. 가장 진보적인 형태가 사민주의 복지국가라면 군사독재는 가장 퇴영적 모습입니다. 그런데 1992년 사회주의 붕괴 이후 민주주의와 타협할 필요가 없어지자 자본주의의 고삐가 풀려버린 거예요. 그렇게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폭주가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복지국가였던 영국과 미국이고, 그 정도로는 안 망가져도 세계화 여파로 이주노동자들이 밀려들자 유럽에서도 극우세력이 등장합니다. 사민당, 노동당도 몰락하거나 우경화됐죠. 이렇게 최근 한 20년 사이에 이른바 선진국들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징후들이 나타났는데 좀 극단적 형태가 미국, 영국, 브라질이라고 볼 수 있어요.

 

(43)

윤석열과 그 일당이 주장하는 통치행위라는 예외적 권력은, 왕에게 법을 지키지 않아도 특권을 주었던 중세에나 있을 법한 일로서 독재자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윤석열이 입에 달고 다니던 자유민주주의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며 왕이나 권력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법치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비상계엄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발동한 것인지를 헌법과 법률에 규정해 놓았다. 그 규정을 지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길이다. 윤석열이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자였다면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이 원리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전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며 압제를 저지를 수 있는 이상성격자에 불과하다.

 

(55)

첫째, 9명 임명직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된 헌재가 국민이 선출한 300인 국회 위에 군림하는 것이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둘째, 헌재 결정의 타당성 여부를 가릴 견제 기관이 존재하는가.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한국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가 아니므로) 과두체제이며, (견제받지 않으므로) 독재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과두적인 독재기관은 때때로 민의를 배반하고 독재지향적인 권력, 특권층의 이해에 영합하는 하수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64)

시민의회는 일반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소규모 대표들이 공공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숙의를 거쳐 결정을 내리는 민주적 기구이다. 시민의회는 통계적으로 전체 시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추첨으로 구성되면, 운용은 숙의를 핵심으로 한다. 숙의는 단순히 사람들의 의견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이성적 토론을 통해 집단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흔히 다수가 참여하는 방식은 정제되지 않은 의견들의 충돌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나, 시민의회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개인들이 참여하더라도 숙의를 통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한다.

 

(71)

한국사회가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하기 위해, 시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는 시민의회와 양원제를 결합한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민의회와 양원제의 도입은 일회성 개헌을 위해서도 유용하지만, 지속적인 민주주의 발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읍면동 민회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기초지자체 민회, 광역지자체 민회를 거쳐 국가 민회를 구성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이는 국민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정치적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완화하는 유력한 방안이 될 것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아닌 국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99-100)

취재 후 1 6개월가량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치는 더욱 오염됐다. 그 결과 우리 앞에 남은 것은 폐허다.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대통령은 철저하게 정치를 버렸다. 가장 헌법을 할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공화국을 배신했다. 이 위험하고 불성실하며 비민주적인 대통령은 분명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이후는 얼마나 다를까. 국민의힘은 내란우두머리 피의자 대통령과 절연하긴커녕 부정선거 음모론과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마저 에둘러 감싸고 있다. 방탄 논란과 강경 일변의 전략에 갇힌 민주당은 갈등과 대립을 끊어내고 미래로 나아갈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두 정당의 적대적 공생만 견고해지는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만 말하는 것은 정확한 처방이 될 수 없다. 오랜 실패에서 확인됐듯 개헌은 신속한 방법도 아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이 맡겨져 있는, 선거 직전에 반짝 다루다 거대 양당의 최대 이익만 반영하고 마는, “정말 중요한선거제도를 논의해야 할 때다.

 

(119)

나는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자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인간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이 인류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좋은 삶을 구성하는 불가결한 요소라고 믿는다. 자연의 가치와 권리에 대한 존중이 법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나의 믿음이 법은 더 이상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 그리고 집단 책임성에 대한 개인 권리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생태적 상호의존성을 인정해 인간 삶의 자연적 조건을 내재화하고, 이를 헌법과 인권법, 재산권, 기업의 권리 및 국가 주권을 포함하여 모든 법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오슬로선언의 취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은 삶을 함께 생각하고, 이를 이뤄나가기 위한 개인적인, 또 집단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나의 행동이 대양의 작은 물방울에 불과할지라도좋은 삶을 위해.

 

(155)

자연에는 나쁜 디자인이 없습니다. 나쁜 디자인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자연의 어떤 부분을 살펴보더라도, 그 기능에 가장 적합한 디자인이 결합돼 있을 것을 알 수 있어요. 자연의 또다른 속성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거예요. 바로 이게 예술과 생명의 차이입니다. 학교에서 저는 예술은 완벽한 형태를 추구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예술작품은 단 하나의 요소를 더할 수도 뺄 수도 없을 만큼 완벽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미켈란젤로나 르 코르뷔지에 등으로 이어져 오는 고전예술 전통입니다. 그런데 제가 했던 작업은 그것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어요. 우선 살아있는 세계를 작품 속에 들어오게 허용하면, 완벽함이라는 것은 순간적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자연은 쉴 새 없이 변하기 때문이죠.

 

(226)

기후는 지구생명체의 거대한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지구 못 생명체의 수많은 작은 날숨과 들숨이 어우러져 기후라는 거대한 순환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라투르는 지구 바깥에서의 시선을 멈추고 지구 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시선을 위해 임계지대(critical zone)’에 주목한 바 있다. 그곳은 지구에서 날씨가 바뀌고, 강과 산과 평지가 있고, 바다가 있는 영역이며, 중생들이 거기에 깃들어 생명을 이어가는 곳이다. 칠게, 생합, 흑꼬리도요는 이 임계지대 안의 갯벌에 깃들어 살고 있고, 인간은 이 임계지대 안의 건실한 땅을 부쳐 먹고산다. 존재들의 이 상호 의존을 캐런 버나드 같은 양자역학자는 내부작용(intra-action)’이라고 표현하며, 동아시아에서는 천인상을(天人相應)’이라는 말로 표현해왔다. 환경이라는 용어에는 주인공과 배경이 따로 있지만 천응상응이라는 말에는 주인공과 배경이 따로 없다. 천지는 서로 감응하며 살고 죽는 존재들로 꽉 차 있다. 주역의 언어로 말하자면, “만물은 생생(生生)한다.”

 

(237)

모태 신앙이 기독교이고 평생 예수가 긴 머리카락의 백인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예수가 백인일 확률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각을 갖추자 진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담과 이브는 백인인가? 백인들이 그려놓은 모든 그림에서 아담과 이브는 명백한 백인이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홀딱 벗고 살았다. 선약과를 따 먹고 난 뒤에야 부끄러움을 느껴 중요 부위를 겨우 가렸다. 이건 애 주장이 아니라 성경이 기록이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사시사철 홀딱 벗고 살 수 있는 지역이 어디인가? 열대지역뿐이다. 그리고 열대지역에서 태어난 인종의 피부는 결코 휠 수 없다. 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짓밟을 때 그들은 에티오피아 지역을 에덴동산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에서 태어난 아담과 이브는 명백하게 백인이 아니다. 창조론을 믿느냐, 진화론을 믿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을 100% 따르더라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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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4-03 0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에 나쁜 디자인이 없다”는 아예 말이 될 수 없습니다. “나쁜 디자인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다 다른 숨결이 다 다른 몸을 입고서 다 다르게 살기 때문입니다. 더 낫거나 좋은 모습(디자인)이기 때문에 살아남는 결이 아니라, 그저 다른 숨빛으로 살기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숲을 제대로 본다면, 나무 한 그루에 달린 잎이 모두 다르게 생겼고, 강아지풀조차 잎이 모두 다르고, 토끼풀도 다 다른 크기와 모습인 줄 알 테지요. 다 다르기에 어울리며 살아가는 숲(자연)일 뿐, 나쁘거나 좋은 모습(디자인)이란 처음부터 없습니다.

이러한 결을 읽고서 마음에 새길 적에 비로소 사람 사이에서도 누구나 다르게 마련인 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못 여기는 대목 가운데 하나로, ‘흰사람(백인)’이기에 살갗이 희지는 않는데, 너무 모릅니다. 흰사람도 들숲에서 일하며 뛰놀 적에는 아이어른 모두 ‘구릿빛’이게 마련입니다.
 
한강 4 - 제2부 유형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4권을 이야기해줄게. 4권부터는 2유형시대의 제목을 가지고 있단다. 유형시대가 정확히 어떤 뜻을 의미하는지 좀 찾아봤는데, 찾을 수가 없구나. 2부를 읽으면서 그 뜻을 대충 유추해 봐야겠구나. 소설 속에서 년도가 나오지 않지만, 소설 속 역사적인 사건을 유추해 보면 <한강> 4(2부 유형시대) 1964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안경자의 아버지는 광주에서 잘 나가는 병원을 하는 병원장이란다. 안경자의 동생을 김선오가 가르쳤는데 그때부터 안경자의 아버지는 김선오를 눈 여겨 보았어. 김선오가 검사에 합격하게 되자, 안경자의 아버지는 김선오를 신랑감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뜻을 이야기했단다. 김선오는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병원장의 딸을 아내로 둔다는 것만큼 경제적 이익은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단다. 김선오는 그 동안 안경자의 친구였던 박영자과 사귀고 있었어. 김선오가 순천으로 발령되어 오면서 거리적으로 멀어지긴 했지만 애인은 애인이니까 말이야. 김선오는 며칠을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안경자를 선택하고 안경자의 아버지를 찾아갔단다. 그런데 김선오에게 복병이 있었단다. 강숙자. 자신을 멸시하던 김선오를 오래 전부터 싫어했던 강숙자. 강숙자는 안경자와 박영자 둘 모두의 친구잖니. 강숙자는 안경자에게 김선오와 박영자 사이에 대해서 다 이야기를 했단다.

충격을 받은 안경자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 김선오와 일을 없었던 것으로 했단다. 김선오는 박영자와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속이 쓰렸지만 자신의 잘못을 누구에게 탓하리오. 김선오는 자신의 검사 월급으로는 딸린 가족들을 챙기기 부족하다면서 걱정했단다. 김선오, 많이 타락했구나.

또 다른 사랑 이야기. 임채옥과 유일민의 사랑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나가려고 한단다. 임채옥의 아버지 임상천이 임채옥이 유일민과 사귀는 것을 알게 되었어. 임상천은 자신의 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집에 감금시키고 일민을 못 만나게 했단다. 이 충격으로 임채옥은 하혈을 했는데, 알고 보니 임채옥은 임신을 하고 있었던 거야. 임상천은 사람들을 시켜 유일민을 반쯤 죽여 놓고 다시는 임채옥을 만나지 말라고 경고했단다.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펴지 못한 유일민은 사랑도 이렇게 제대로 할 수 없구나. 등장인물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인 것 같아.

유일민은 임채옥을 잊기 위해 서독 광부를 준비하였단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독에 돈을 벌러 가기 위해 광부와 간호사로 많이 갔거든. 유일민은 빨리 광부 경력증을 받기 위해 뒷돈도 쓰고 그랬단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버지 이력 때문에 서류에서 떨어지고 말았단다. 뒷돈 쓴 것 때문에 빚만 남았단다. 도대체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나. 유일민의 동생 유일표도 돈이 없어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갔단다.

 

1.

4.19 혁명 때 대학생으로 참여했던 박준서. 박영자의 오빠이기도 하지.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서 사업을 배웠단다. 아버지에게 형들보다 더 인정을 받기 위해 정말 열심이었단다. 4.19 혁명 때 정의를 향한 젊은 혈기는 사업을 향한 혈기로 바뀌어 있었어.

나복남의 동생 나윤자는 봉제 공장에서 일했는데, 봉제 공장은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이었단다. 장소를 확보하려고 일층 중간에 칸막이를 두어 2층으로 만들어 노동자들은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했고, 환풍시설이 제대로 없어서 먼지 속에서 작업을 해야 했단다. 그래서 폐병 걸리는 노동자들이 가끔 있는데, 그런 병에 걸렸다고 회사에서 의료비 지원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병에 걸린 사람을 잘라버렸단다. 정말 사악한 놈들이구나.

당시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한일협정이었단다. 일제시대의 보상을 돈 몇 푼으로 끝내려고 하는 한일협정. 당시는 해방이 된지 20년도 안 된 시점이니 사람들이 얼마나 울분에 찼겠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일협정반대 시위를 했단다. 야당 정치인들 중에서도 이를 강력히 비판하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어. 대표적인 사람이 한인곤이었단다. 정부가 이를 그냥 보고만 있겠니. 중앙정보부에서 직접 나섰어. 한인곤을 직접 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을 겨냥했어. 한인곤의 아버지 한무규의 회사에 세무조사를 해서 정미소 소유를 박탈시켰어.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결국 한인곤은 자세를 낮추고, 이젠 공화당이 된 친구 남재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단다. 이것이 당시 권력 잡은 이들이 휘두르는 권력의 진실이었단다.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 검찰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과 가족들을 털어 기소하고 그러잖니. 검찰권력이 너무 막강하구나.

김선오의 동생 김명숙은 가출한 이후 친구들과 함께 차장 일을 했는데, 성추행에 가까운 몸수색을 당하는 것이 정말 괴로웠단다. 어느날 맥주홀의 서빙 자리를 제안 받게 되는데, 술집이라는 인식 때문에 김명숙은 그 제안을 거절했단다. 그런데 그게 정말 잘 한 것이었어. 알고 보니 그곳은 성접대까지 하는 술집이었던 거야.

유일표는 군대에 들어간 이후에 아버지 때문에 주기적으로 조사를 받고, 보직도 계속 바뀌었단다.

 

2.

유일민이 서독 광부를 가려고 준비했었다고 했잖아. 그때 같이 준비했던 친구 배상집은 최종 합격이 되어 독일에 갔단다. 그곳 생활도 쉽지 않았어. 석탄 가루 날리는 탄광에서 하루 종일 몸을 쓰며 일을 해야 했어. 그런데 어느날 통역을 맡은 이가 통역을 잘못하여 한 노동자가 거의 죽을 뻔한 일이 있었어. 이에 독일 관리자는 평상시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배상집을 눈여겨보고 배상집에서 통역 일을 시켰단다. 그래서 배상집은 이제 탄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어.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유일민. 이번에는 월남파병 근로자를 신청했으나 이번에도 신원조회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단다. 당시 월남, 그러니까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어. 군인들 파병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많이 갔단다. 우리나라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 많은 노동자들이 베트남으로 향했단다. 유일민은 그곳도 갈 수가 없었어. 어느날 유일민은 우연히 임채옥을 만났어. 임채옥은 유일민에게 도망가자고 했어. 도망가지 않으면 자신은 부모님이 시키는 강제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어. 유일민은 자기 아버지 때문에 안 된다고 했어. 만의 하나 자기 아버지가 내려오면 자기뿐만 아니라 임채옥의 가족까지 파탄 날 수 있다면서 안 된다고 했어. 그러면서 이제 진짜로 헤어지자고 했단다. 임채옥은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임채옥은 자신이 틈틈이 모아 놓은 돈이라며 당시로서는 거금인 50만원을 주려고 했단다. 유일민은 당연히 안 받으려고 했지. 임채옥은 그 동안 있었던 일, 아이를 임신했던 일과 낙태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어. 유일민은 임채옥의 진심을 받아들여 돈을 받았단다. 유일민은 결국 임채옥의 도움으로 사업을 할 수 있었단다. 사업은 신원조회가 필요 없었지. 유일민은 친구 서동철에게 조언을 받아 술 도매업을 하기로 했단다.

….

그 밖에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쭉 간단히 이야기해줄게. 천두만은 월남 파견 근무를 지원했지만 떨어졌단다. 유일표의 친구 최주한은 카투사로 입대하여 근무를 해서 편하긴 했지만 미군들의 인종차별로 스트레스가 심했어. 안경자는 결국 의대 선배인 신기훈과 결혼하게 되었어. 김선오의 또 다른 여동생 김광자는 유부남에 속아 사랑에 배신을 당하고 서독에 가기로 결심했어. 간호학원에서 간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독일어 학원을 다니며 독일어 공부도 열심히 했단다. 강기수는 공화당으로 당을 옮겨 다시 한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단다. 박정희는 윤보선을 상대로 지난번보다 여유로운 표차로 대통령 재선에 성공을 했어.

이 시설 또 하나의 큰 사건이 있었어.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침략했던 거야. 이 중에 29명이 사살되고 한 명은 북으로 되돌아 도망갔고, 김신조 한 명만 투항하여 잡혔던 사건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 사건인데 가장 깜짝 놀란 사람들은 군인들이 아닐까 싶구나. 이 일로 갑자기 군생활이 6개월이 늘어났는데 제대를 앞둔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되었단다. 제대를 코 앞에 두고 군생활이 6개월이 늘어나다니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난 거지군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그들이 느꼈을 분노를 모두 이해할 것 같구나. 그뿐만 아니라 군인 훈련도 빡세져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을 받아야 했어.

….

여기까지 <한강> 4권의 이야기란다. 조정래 님의 소설은 살아있는 삶을 그대로 쓰셔서 정말 실감이 나는구나. 그 시절을 함께 살고 있는 기분이란다. 기쁜 일보다 슬프고 억울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아서 그렇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화순을 지나면서 비치기 시작한 눈발은 기차가 광주에 도착했을 때는 꽤나 탐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 오면 내가 위로주 살게.”



김선오는 눈을 맞으며 한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득한 눈발 저쪽에 무등산이 그 우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산, 광주에 오면 누구나 바라보는 산, 언제나 중후하고 의연하고 듬직하고 넉넉한 자태의 무등산은 겹겹의 눈발이 지어내는 환상적인 옷을 입으며 묘한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광주를 내려다보듯 보듬듯 하고 있는 그 산을 무시로 바라보며 무등의 의미를 가슴에 새겼던 지난날을 김선오는 왠지 슬픈 감정으로 더듬고 있었다. 등수를 매길 필요가 없도록 으뜸이 되겠다는 꿈 속에는 고등고시 최연소 합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자신의 모습은 무엇인가……
"꿈은 클수록 좋고, 욕망은 치열할수록 좋다."
- P10

"그게 말입니다…… 얼핏 보면 항아리에 담아놓는 것이 더 손해일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꼭 그럴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왜냐하면 딴 그릇에 따로 내와도 깍두기가 모자라게 되면 사람들은 또 달라고 합니다. 그럼 다시 갖다 주느라고 일손만 많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항아리에 담아두면 그 일손을 덜게 됩니다. 그리고 또…… 딴 그릇에 두 번 내온 것이 많아서 남기게 되면 그건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항아리에서 각자가 먹을 만큼씩만 꺼내 먹으면 그런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항아리에 이렇게 담아두면 인심을 후하게 쓰는 것 같아 손님들을 기분 좋게 하고, 그게 더 손님을 끄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 P37

"허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을 거야. 자기 할아버지와 집안을 생각하면 그 심정이 어떻겠어. 일본놈들이 백배사죄하며 돈을 싸짊어지고 와도 시원찮을 판인데, 오히려 이쪽에서 사죄 같은 건 상관없이 어서 돈이나 좀 달라고 매달리는 형국 아니냔 말야. 그러니 자기 할아버지가 짓밟히고 모독당하는 것 같고, 괜히 헛된 일 한 것 같고, 또 엉망이 된 집안 꼴을 보면 얼마나 기막히겠어. 우리가 허진의 심정을 다 알 수는 없는데, 어쩌면 죽고 싶은 심정으로 데모를 하는지도 몰라."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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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유모는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몰랐다. 엘파바는 악마의 씨일까? 반은 인간이고 반은 요정일까? 설교자로서 아빠가 제 구실을 못한 벌일까, 아니면 몸가짐이 헤프고 기억력이 나쁜 엄마에게 내려진 벌일까? 아니면 그저 모양이 괴상한 사과나 다리 다섯 개 달린 송아지처럼 단순한 기형에 불과할까? 유모는 악마와 신앙, 민간 전승 따위의 영향으로 자기가 세상을 보는 눈이 흐릿하고 혼란스러운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멜레나와 프렉스 부부가 분명 아이가 아들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프렉스는 일곱 번째 아들이었고 그의 아버지 역시 일곱 번째 아들이었으며, 심지어 그는 집안의 7대 목사였다. 어찌 다른 성의 아이가 감히 이토록 상서로운 순서를 따를 수 있겠는가?

유모는 어쩌면 이 초록색 아기 엘파바가 부모를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자기만의 성과 색깔을 고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52)

, 과학은 자연을 해부하여 보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부분으로 축소하지요. 마술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마술을 조각조각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찢어진 부분을 잇지요. 분석보다는 통합니다. 기존의 것을 파헤치기보다는 새로이 조립하지요. 정말로 재능 있는 사람의 손에서는(이 대목에서 그레일링 교수는 머리핀에 찔려 비명을 질렀다.)…… 예술입니다. 사실 누구나 마술을 우월한, 아니 가장 훌륭한 예술이라 할 거예요. 마술은 회화나 연극, 암송 같은 여러 예술과 다른 면에서 우월합니다. 마술은 세계를 꾸미거나 표현하지 않아요. 세계가 되는 거예요. 더없이 고귀한 소명이라 할 수 있죠.”


(348)

아니야. 나한테 영혼이 있다는 증거가 어딨어?”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너한테 양심이 있을 수 있겠니?”


(349)

어떤 것이 더 나쁠까, 피예로? 개성이라는 관념을 부정하는 것과, 고문과 감금과 굶주림을 통해 진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부정하는 것 중에서? , 넌 네 주변의 도시 전체가 불차고 진짜 사람들이 불에 타 죽어 가고 있는데도 박물관의 귀중한 감상적인 초상화를 구할 걱정이나 할 거야? 잘 좀 따져 봐!”

하지만 무고한 방관자, 예를 들어 아무한테도 도움 안 되는 사교계 귀부인이라 할지라도 진짜 사람이야. 초상화가 아니라고. 네 비유는 논점을 회피하고 축소하는 거야. 범죄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거라고.”

사교계 귀부인은 살아 있는 초상화로서 자신을 과시하는 쪽을 택했어. 그러니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지. 응분의 대가야. 일전에 한 얘기로 되돌아가서,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너의 악이야. 넌 할 수만 있다면 상대가 사교계 귀부인이든, 이 모든 압제적인 체제에 기대어 번창하는 기업의 사장이든 상관 않고 구해 주겠지. 하지만 다른 이들, 더 진짜인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그래서는 안 돼. 네가 그들을 구할 수 없다면 못 하는 거야.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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