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2)

바질은 이모진 비슬에게 달려가 자전거에 앉은 채 공연히 그녀 앞에 있었다. 그때 바질의 얼굴 무언가에 끌렸는지 이모진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미인으로 자라 몇 년 후면 많은 무도회에서 여왕으로 뽑힐 아이였다. 지금은 큼직한 갈색 눈동자와 아름다운 모양의 큼직한 입술, 여윈 광대에 어린 짙은 홍조 때문에 땅의 요정처럼 보였고, 아이가 아이다워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얼굴을 좋아하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바질은 미래를 내다보는 기분이었고, 이모진의 생기가 마력처럼 단숨에 그를 덮쳤다. 여자란 그와 정반대되는, 그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임을 난생처음 깨달으면서, 즐거움과 고통이 뒤섞인 포근한 냉기가 엄습해왔다. 이 명확한 경험을 그는 즉각적으로 의식했다. 여름 오후-보드라운 대기, 그늘진 산울타리와 소복이 핀 꽃들, 오렌지빛 햇살, 웃고 떠드는 소리, 길 건너편에서 뚱땅거리는 피아노-는 이모진에게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 모든 것을 떠난 향기는, 앉아서 방실거리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이모진의 얼굴로 스며들었다.


(63)

오랜 전통처럼 사내아이들은 어른이 된다는 개념에 집착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제약을 이따금 푸념하면서 말이다. 반면에 소년으로 지내는 것이 마냥 좋은 시절도 오랜 기간 존재하는데, 그 만족감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된다. 바질은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에게 긴 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긴 바지가 갖고 싶긴 했지만, 의상으로 따지자면 풋볼 유니폼이나 경찰 제복, 심지어 밤에 뉴욕 거리를 누비는 괴도 신사들의 실크해트와 긴 망토만큼의 낭만도 없었다.


(112-113)

열다섯 살은 참으로 애매한 나이다. 손가락을 딱 짚으며 그땐 이랬었지라도 말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우울한 제이퀴즈는 열다섯 살을 언급하지 않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곤 소년기의 한창인 열세 살과 일종의 가짜 청년인 열일곱 살 사이의 언젠가, 두 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면서 생소한 경험들로 끊임없이 떠밀리고 어떤 대가도 치를 필요가 없던 시절로 되돌아가려 헛되이 몸부림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것뿐이다. 다행히도 그 시절에 우리가 어떻게 처신했는지는 우리 자신도 또래들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해 여름 바질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커튼을 걷어보려 한다.


(175-176)

창밖으로는 지나가는 차들의 빛줄기가 가을의 황혼을 가르고 있었다. 이 자동차들 안에는 위대한 풋볼 선수들과 사랑스러운 데뷔탕트들, 신비로운 여성 모험가들과 국제 스파이들이 타고 있었다. 부유하고 유쾌하며 매혹적인 이 사람들은 뉴욕의 화려한 댄스파티와 비밀스러운 카페에서, 혹은 가을 달 아래의 옥상 정원에서 이루어질 눈부신 만남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바질은 한숨 지었다. 이런 낭만적인 일에는 나중에 낄 수 있으리라. 먼저, 가지 넘치고 화술이 능란한 동시에 강인하고 진중하며 과묵한 사람이 될 것. 너그럽고 솔직하고 헌신적이면서도, 약간은 신비롭고 섬세하며 애수 어린 비통함까지 깃든 사람이 될 것. 밝으면서도 어두운 사람이 될 것. 이런 점들을 조화롭게 버무려 단 한 사람으로 녹여낼 것. , 그러려면 할 일이 있었다. 완벽한 인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바질은 야망의 황홀경에 취하고 말았다. 잠시 더 그의 영혼은 질주하는 빛을 따라 대도시로 향했다. 그러다 그는 결연히 일어나 담배를 창턱에 비벼 끈 다음 전기스탠드를 켜고 완벽한 인생의 요건들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257-258)

구제 불능의 주벌이 소유욕을 내뿜으며 다가오자, 바질의 심장은 분홍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장을 이리저리 배회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우유부단함의 안개에 갇혀버린 바질은 베란다로 나갔다. 때 이른 눈이 대기에 흩뿌려지고 있었고, 별들은 차가워 보였다. 별들을 올려다본 언제나처럼 그의 별들, 야망과 고투와 영광의 상징들이 보였다. 별들 사이로 바람은 그가 항상 귀 기울여 찾던 높은 원음(原音)을 나팔 소리처럼 울렸고, 전투를 위해 찢겨 가늘게 흩어진 구름은 열병식을 거행하며 지나갔다. 비할 데 없이 찬란하고 장엄한 광경 앞에, 사령관의 노련한 눈만이 그곳에서 하나의 별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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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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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박상현이라는 분이 쓴 <친애하는 슐츠씨>라는 책이란다. 지은이 박상현 님은 처음 알게 분으로, 저자 소개를 읽어보니 미국에서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온라인 뉴스매거진 오터레터를 운영한다고 하는구나. 이 책의 내용도 오터레터에 실렸던 내용들을 정리해서 출간한 책이야. 아빠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우연히 책 소개를 읽어보았는데 재미있을 것 같았고, 먼저 읽은 이들의 평점이 좋아서 읽게 되었단다.

책 제목에 나온 슐츠 씨는 누구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이따가 이야기해줄게. 이 책의 부제는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로 되어 있듯이, 이 책은 편견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로 할 수 있단다. 책의 시작은 지은이 어렸을 때 지은이의 아버지가 집에서 담배를 피웠던 기억으로 시작했어. 그렇듯 예전에 실내에서 담배 피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으까. 아빠도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실내에 담배 피는 공간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공간이었던 거지. 요즘 담배를 피려면 엄청 부지런을 떨어야 하고, 온갖 눈치를 다 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단다. 아빠가 만약 담배를 피웠더라도 게으름 때문에 끊었을 것 같구나.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담배에 대한 편견만큼 안 좋아진 것이 있을까 싶구나.

 

1.

편견이나 차별이라고 하면 인종 차별, 그것도 미국에서의 흑인에 대한 차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구나. 보통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마약범죄가 많다고들 알고 있단다. 하지만 이것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통계역설이 있단다. 만약 흑인의 1%가 마약을 하고, 백인도 1%가 마약을 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마약 범죄 조사를 흑인을 집중적으로 한다고 하면, 마약 사범은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게 되는 거야. 그래서 마약은 흑인이 많이 한다는 편견이 생겨나게 되고, 이후 마약 범죄를 조사할 때 흑인을 더 많이 조사하게 되는 거야. 이게 실제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야. 이렇게 흑인은 마약 같은 것을 한다는 안 좋은 편견이 생기면서, 사회 진출에도 알게 모르게 제약이 생기고, 그렇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흑인이 많아지는 악순환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인종 차별 말고 성차별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바지에 있는 호주머니도 편견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어. 여자 옷에 호주머니가 없거나 적은 것이 디자인 측면에서 고려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여성 차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오래 전에 호주머니는 남자들의 옷에만 있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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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05)

칼슨에 따르면 자유로운 남자들이 주머니를 독점하면서 주머니는 남성의 실용성과 호기심의 상징처럼 묘사되기 시작한다. 우선 남자가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에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포켓 사이즈(pocket-size)’ 버전이 생겨났다. 일하는 남자들이 언제든 도구를 꺼내어 사용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유능하다는 이미지를 준다.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던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이었다. 철학과 과학, 건축과 농업,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전형적인 계몽주의자였던 제퍼슨은 주머니에 작은 가위와 줄자, , , 온도계, 나침반 등 다양한 (포켓 사이즈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해서 걸어 다니는 계산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제퍼슨이 휴대한 물건 중에는 상아로 만든 노트도 있었다. 제퍼슨은 쓰고지울 수 있는 상아 노트에 생각을 적고 나중에 집에 가서 종이에 옮겼다고 한다. 그에게 주머니는 움직이는 실험실, 작업실이었던 셈이고 이는 계몽된 남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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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액정 수리를 하는 남자와 여자의 비율을 보면, 여자가 월등히 높은데, 그것도 여자 옷에 호주머니가 없거나 작은 여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는구나. , 그랬구나엄마가 핸드폰 액정을 가끔 깨는 이유가 다 있구나.

….

미국에서 인종 차별은 흑인 말고, 아시아 인종에 대한 차별도 있단다. 아무튼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백인 아니면 모두 무시하고 차별하는 성향이 있으니까중국을 상징하는 완톤 폰트라는 글씨체가 있어. 알파벳을 한자의 획처럼 쓰는 글자로, 중국 식당의 간판 등에 많이 이용하여 한 눈에 봐도 중국 식당임을 홍보하는데 쓰기 시작했대. 중국이나 아시아의 관련된 내용을 기록할 때 많이 사용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이나 아시아를 조롱하는 글씨체로 변질되어 사용하기도 했단다. 한국계 미국인 하원의원 앤디 김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선거 때 반대 진영 후보가 홍보물을 만들 때 앤디 김의 글씨체를 완톤 폰트로 써서 의연 중에 조롱하여 선거법에 걸리기도 했다는구나. 미국이란 나라의 인종 차별은 언제 사라질까 싶다가도 백인우월주의의 끝판왕인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기도 하구나.

간성(間性)인라는 사람이 있어.. 한자풀이를 하면 남성과 여성의 중간의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자이나 남자 호르몬이 많거나 남성 염색체를 지닌 사람들을 이야기한단다. 자신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차별과 편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단다. 예전에 성전환 수술한 사람이 육상 대회에 나와서 논란이 있던 적이 있었는데, 간성인은 태어나면서 신체적으로는 여성인데 남자 호르몬을 많이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야. 당연히 여자들이 하는 대회에 참석을 하겠지.. 캐스터 세메냐라는 육상선수도 그런 선수였어. 그에 대해 논란이 많아지면서, 여성과 남성의 기준을 생식기 기준이 아닌, 호르몬 수치로 규정해서 캐스터 세메냐 선수가 여자 경기에 참석을 못하는 상황까지 이어졌어. 법적 소송까지 이어졌다고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구나.

….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로 유명한 조니 뎁과 역시 영화배우인 그의 아내 엠버 허드의 가정 불화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단다. 조니 뎁은 가정폭력범으로 언론 기사에 실렸는데 이로 인해 손해를 봤다면서 조니 뎁은 소송을 걸었고, 보수적인 영국에서는 의외로 조니 뎁이 승리하였고, 미국에서는 조니 뎁이 패배했다고 하는구나. 언론의 역할에 대한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구나. 언론이 잘했니, 잘못 했니를 따지기 전에 조니 뎁의 행실에 먼저 문제가 있다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소송도 소송이지만, 먼저 반생하고 새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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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이렇게 조니 뎁의 인기가 시들어가던 시기가 앰버 허드와 결혼 생활을 하던 때라고 해서 허드를 악처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허드가 가정에서 어떤 사람이었느냐와 상관없이 뎁의 인기하락은 본인의 관리 능력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 할리우드에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 남자 배우가 자기관리에 실패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런 인물로 대표적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우니 주니어는 그런 일을 젊은 시절에 겪으며 바닥을 치고 올라온 반면 뎁은 50이 넘어 인기가 사그라지는 시점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연예계 소식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한 <롤링스톤> 2018년에 실은 기사 조니 뎁의 문제는 이 모든 잘못이 분명하게 뎁 본인에게 있다고 설명한다. 이 기사는 조니 뎁은 술과 마약에 취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났으며,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라이트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현재 뎁은 재산을 날리고 고립되어 있으며 한 번만 더 실수하면 업계에서 추방당할 것이라는 잔인한 진단을 내렸다. 앰버 허드의 칼럼보다 4년 앞서 나온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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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이제 책 제목에 나온 슐츠 씨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찰스 슐츠라는 사람이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낯선 이름이겠지만, 그가 그린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구나. 그는 스누피, 찰리 브라운 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 <피너츠>의 작가란다. 그는 1922년생으로 처음 만화를 그리고 한동안 스포츠를 하는 장면은 남자들만 등장했다고 해. 당시 시대적으로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말이야.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라톤 대회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여자가 처음으로 뛴 것은 1966년이었대. 1966년에 뛴 것은 비공식적인 것으로 경기를 뛰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지당하기도 했다는구나. 1967년에서야 공식적으로 여자가 처음으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었대. 그만큼 당시 스포츠는 남성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지배적이었어.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거 찰스 슐츠에게 여자아이가 스포츠하는 장면도 그려달라고 했대. 찰스 슐츠는 빌리 진 킹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고, 이후 여자 아이가 스포츠하는 장면을 자주 등장시켰다고 하는구나. 그로 인해 스포츠는 남성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슐츠 씨는 여성 차별뿐만 아니라 흑인 차별을 깨는데도 일조를 했어. 자신의 만화 <피너츠>에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거야. 그가 흑인 캐릭터를 처음 등장시킨 것은 1968년으로 흑인인권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단다. 어떤 사람이 슐츠에게 흑인 캐릭터를 그려달라고 요청을 받고, 슐츠 씨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준비를 하고 흑인 캐릭터를 추가하였다고 하는구나. 그것도 좋은 역할로 말이야. 슐츠 씨를 친애할 만 하구나.

1960년대 흑인인권운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루터 마틴 킹 목사란다. 그는 비폭력 흑인인권운동의 공로로 196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1964년 이후 가끔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게 되었어. 루터 마틴 킹도 비폭력주의를 주장하지만, 흑인들의 폭동도 이해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백인들이 흑인인권운동과 루터 마틴 킹을 바라보는 인식이 좀 바뀌었대. 흑인인권운동으로 흑인들의 권리가 어느 정도 올라왔지만, 여전히 백인들에 비해 권리가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흑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계속 주장하는데, 백인들은 흑인들의 권리와 혜택이 어느 정도 늘어났는데, 왜 아직도 불만이 많냐는 식으로 생각했다는구나. 중도층의 백인들도 흑인 차별을 나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자신과 동등한 권리와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안 좋게 생각했던 거지.

=================

(311)

하지만 미국의 중산층 백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흑인들의 상황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제 중요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 상황에서 흑인들의 추가적인 요구는 지나치다고 여겼다. 사회의 변화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니 성급하게 요구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백인들의 생각에 대해 킹 목사는 유명한 <버밍햄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종분리의 날카로운 고통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기다리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나운 무리가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침없이 폭행해서 죽이고 당신의 형제와 자매를 물에 던져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면, 증오가 가득한 경찰이 흑인을 욕하고 발로 차고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면 (…) 기다리는 것이 왜 힘든지 이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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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차별을 이야기할 때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빼놓을 수 없을 거야. 쥬디 휴먼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평생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쥬디는 어머니의 노력으로 일반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교직에 취업을 하게 되었지만 장애인이기 때문에 취업의 길이 막히게 되었어. 이 때부터 장애인인권운동에 평생을 헌신하게 되었대. 그로 인해 장애인 관련 법들이 많이 제정되었다고 하는구나.

마지막으로 일본이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를 해야겠다. 혼혈로 오사카는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는 선수로 일본에 잘 하는 테니스 선수가 있어 배가 아픈 것도 있던 것도 사실이란다. 그래서 오사카 나오미에 대한 기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런데 오사카 나오미는 스포츠 선수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스포츠 선수들의 정신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해 무시를 하는 단체와 언론을 상태로 쓴 소리를 내면서 스포츠 인권 신장에 노력을 했다는구나. 오사카 나오미 선수, 좀 멋진 것 같구나. 아빠가 테니스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선수가 잘 되었으면 좋겠구나.

….

대충 아빠가 괜찮게 읽은 부분에 대해서는 다 이야기한 것 같구나. 편견을 버리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하지만 그 어떤 종류의 편견이라는 것을 깰 수 있어야 자신이 좀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고 말이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내 머리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첫 기억 중 하나는 아버지가 방에서 TV를 보고 계신 장면이다.

책의 끝 문장: 경험 많은 전문가의 정직한 의견을 듣기 싫어하는 사회는 대중을 기꺼이 속이려는 사람들이 이끌게 되기 때문이야.

 



외로운 사람들도 일종의 궁핍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궁핍은 인간관계의 부족, 즉 친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인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신이 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것. 그렇게 보니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어색해지는데,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즉 대인관계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집착이 친구를 사귀고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것을 막는다. 이는 그 개인이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궁핍한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그들을 붙잡고 있는 환경이다. - P62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도날드 트럼프는 이 사건을 두고 "(뉴욕주에) 사형제도를 재도입해야 한다"며 이들을 사용하자는 전면광고를 신문에 게재했다. 트럼프는 이미 그때부터 백인들의 인종차별적 사고에 기반한 분노를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쌓아온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인종주의자들의 표를 끌어오기 위해 돌아선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나중에 이들의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당시 게재한 광고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 P77

지금은 어떨까? 몇 년 전 한 대학교 캠퍼스 옆에서 아이폰 수리점을 운영하는 분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나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평소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깨진 화면을 수리하러 오는 사람 중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이 많으냐는 게 내 궁금증이었다. 내 주변에서 화면이 깨진 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답은 "깨진 화면 수리를 원하는 고객은 90퍼센트가 여성"이었다. 그 이유를 두고 온라인에서도 많은 추측이 있지만 여자 옷에 스마트폰이 들어갈 주머니가 남자 옷만큼 많지 않아 손에 들고 다니는 시간이 길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 P117

슐츠의 아내 진 슐츠는 2000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회상하면서 그의 만화가 워낙 부드러운 톤을 갖고 있어서 ‘스포츠는 여학생들이 하는 게 아니다’라는 당시 사회적 통념과 배치된 내용을 그려도 사람들은 반발을 하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피너츠>의 캐릭터들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여자아이들이 스포츠 활동을 하는 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 슐츠는 남편의 역할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여성들이 불평을 하고 법안 통과를 촉구했기 때문이지, 남성들이 준 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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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

도화서 화원들은 궁궐 외에 주문을 받곤 했던 양반 고객들은 대부분 북촌(北村))’에 살았다. 당시 북촌은 벌열 양반과 왕의 인척들이 사는 조선조 최고의 부촌이었다. 화원들의 후원자가 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북촌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원 입장에서는 궁에서 멀지 않고, 부수 입을 올릴 수 있는 서화 가계들이 있는 광통교 근처이고, 자신들의 후원자가 사는 북촌에서도 멀지 않은 지역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이 세 곳이 모두 연결되는 중심부가 지금의 인사동 지역이었다. 이러한 입지는 후에 인사동이 서화와 전전(典籍), 고미술 거래의 중심지가 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29)

안중식은 솜씨 좋은 서화가였을 뿐 아니라 국민 계몽의 필요성을 느낀 개화사상가이기도 했다. 1906년에는 대표적인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대한자강회(大韓自彊會)에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이듬해 <대한자강회월보> 8호 첫 페이지에 을사늑약에 항의하다가 자결한 충신 민영환(閔泳煥)(1861~1905)을 기리는 <민중정공혈죽도>를 그려 싣기도 했다. 또한 이듬해에는 어린이용 교과서 <유년필독>과 진보적이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잡지 <청춘(靑春)>, <아이들보이>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1913년에 창간된 <아이들보이>에는 군복을 입고 백마를 탄 우리나라의 옛 무사를 그린 삽화가 표지화로 실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근대적인 면모를 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보면 전통적 기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도 있다.

 

(88)

고희동은 그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역사적 의미와 새로운 조형 방법을 후진에게 가르친 미술 교육자로서 높이 평가받았다. 화단을 형성하고 이끌어나간 미술 행정가의 성격이 강해 일부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초였음에도 결국 서양화를 포기하고 동영화로 돌아온 화가로서의 정체성 문제는 더욱 그에 대한 평가를 박하게 만들었다. 이런 치우친 평가가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다.

실제 전하는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들 못지않은 개성과 미덕을 가지고 있다. 원근이 살아 있는 생동감 넘치는 산수화나 뛰어난 색채감을 보이는 개성적인 화면은 다른 화가들에게서 보기 어려운 새로운 면이다. 이는 현대에 와서 더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화가로서의 고희동에 대해 더욱 정치한 연구가 필요하다.

 

(154)

첫눈에 반한 김기창은 박래현이 도쿄로 돌아가자 계속 편지를 보내 그녀의 환심을 산다. 김기창의 4년간의 끊임없는 열정에 박래현에 처음에는 바위 덩어리처럼 시커먼 물체처럼 보였던 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어, 결국 두 사람은 4년 뒤 결혼한다. 결혼한 두 사람은 부부 이전에 예술적 동반자였다. 미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미술세계를 넓혀갔다. 같은 공간에서 살며 작업하다 보니 두 사람의 예술세계는 서로 다른 듯 닮아갔다. 마치 피카소와 브라크의 그림이 서로 닮아 예술의 동반자임을 드러냈듯이, 김기창과 박래현의 그림은 어느 시기까지 서로 비슷한 면을 많이 보였다.

 

(205)

이렇듯 빼어난 감성으로 좋은 그림을 그렸던 최재덕이었지만, 북으로 가서는 자신의 화풍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의 감성적이고 예민한 예술적 성향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주창하는 북한의 예술론과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았을 것이다. 그가 계속 남쪽에 남아 그림을 그렸다면 또 어떤 작품을 남겼을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앞서 박고석은 최재덕이 북쪽으로 가고, 이중섭이 남쪽으로 왔으니 비긴 셈이다라고 했지만, “이중섭이 북쪽에 남고, 최재덕이 남쪽에 남았으면 또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다면 어쩌면 남북의 미술이 지금보다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역시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다.

 

(235)

사람들이 현대사옥을 정경 유착의 결과물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 건물 건축의 첫째 의문은 건축의 허가가 정당했는지의 문제이다. 우선 크기가 너무 크다. 지금도 너무 커 위압감을 느낄 정도인데 1983년에는 어떤 정도였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창덕궁이 바로 옆에 있어 건축법상 이렇게 높고 큰 규모의 건물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 실제 주변 다른 곳의 경우 고도제한을 받는다. 이런 높은 건물이 어떻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309-310)

2001년 월북한 서양화가 배운성의 작품 48점이 발견되자 한국미술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때 발견된 작품이 대부분 유화 작품이어서인지 주로 그의 유화 작품에 대해서만 언급되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이나 한국에서 배운성이 미술세계가 주목을 받은 것은 유화보다는 판화 부문이었다. 배운성이 한국에 돌아왔을 1940년 당시에도 한국 화단과 언론에서의 관심은 그의 기구한 삶과 함께 뛰어난 판화 실력이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서 대서특필한 기사도 세계적인 판화가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실제 배운성은 여러 살롱전과 공모 전람회에서 판화로 입상했으며, 개인전에서도 유화 못지않게 판화를 전시하곤 했다.

 

(338)

2009년 일본의 명문 학교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는 개교 80주년을 맞아 학교 역사를 대표할 만한 단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하고자 했다. 교수와 학생들의 엄격한 추천과 심사를 거쳐 일본화, 서양화, 조각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가장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가 한 명을 선발했다. 그 한 명이 바로 1949년에서 1953년까지 이 학교를 다닌 한국인 조각가 권진규(1922~197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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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10 - 제3부 불신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드디어, 아니 벌써 <한강> 마지막 10권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구나. 일주일에 주말마다 한 권씩 읽으려고 했는데, 마지막 10권은 9권에 연이어 읽어버렸다. <한강>을 읽는 동안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된 시기인 것 같구나. 불과 1, 2년 사이에 이렇게 나라가 후퇴할 수도 있다니, 우리나라 시스템이 많이 불안정한 것 같구나. 조정래 님의 <한강> 속 우리나라보다 살기 좋아지고 경제도 발전하고 그랬지만, 소설 속 계엄령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니

그럼 <한강> 10권의 이야기를 바로 해줄게.

10권의 이야기는 안경자의 산부인과 병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한 여성 노동자가 중절 수술을 하러 왔어. 안경자는 속으로 분별없이 사랑을 나누어 임신을 하고서, 중절 수술하러 오는 그를 탓했는데,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막힌 사연이 있었단다. 그 여자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관리들에게 잡힌 다음 강간을 당했다는 거야. 하지만 그 관리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없고, 그 여성 노동자는 임신을 하게 되어 중절 수술을 받으러 왔다는구나. 안경자는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냐고 이야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하는구나. 안경자는 돈이 없어 친구들이 십시일반 병원비를 마련해 주는 그 여자에게 무료로 치료와 수술을 해주었단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

….

또 다시 국회의원 선거철이 왔어. 탐욕주의자 강기수는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국회의원 선거라고 생각했어. 다음에는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어. 다들 여당을 욕하면서 여론이 야당으로 급격하게 기울었어. 하지만 강기수는 여전히 안심하면서 언제나 그렇듯 돈을 쓰면 될 것으로 생각했어. 그런데 딸 강숙자가 알아본 밑바닥 민심은 최악이었어. 그제서야 딸의 조언대로 돈을 몇 배로 쓰고, 남천장학사 출신 법조인들을 모두 불러들여 선거 운동을 했어. 그렇게 해서야 간신히 당선되었단다. 이번 선거에서 한인곤은 낙선하고 말았단다.

 

1.

임채옥의 남편은 결국 죽고 말았어. 그리고 1년이 흐르고유일민은 임채옥에게 청혼을 했단다. 그들의 결혼을 반대할 식구들은 모두 이민을 가버리고, 임채옥은 그 청혼을 계속 기다렸을 거야. 풋풋한 20대 초반의 그들의 뜨거운 사랑이 이제서야 결실을 맺게 되었구나. 유일민이 10권에 와서야 행복을 찾게 되어 정말 다행이구나. 유일표는 몰래 노동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결국 꼬리가 잡혀 피신하기로 했단다. 동생 유선희가 소개해준 절간에 숨어 지내기로 했어. 유일표의 아내 서경혜는 다행히 큰 고초 당하지 않고 조사를 마쳤어. 임신한 여자를 심하게 다루지는 못하겠지. 유일표가 피신하고 임신한 서경혜가 혼자 지난다는 소식을 들은 이상재는 자신의 돈도 보내주고, 친구 허진에게 찾아가 유일표가 피신했다는 이야기를 전했어. 그 동안 자신이 섭섭하게 한 일이 있어서인지, 허진은 큰 돈을 보내주었단다.

유일표와 이상재의 또다른 친구 최주한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고 있었어.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나라와 환경이 다르다 보니, 낯선 병들이 생기곤 해서 사우디 병이라고 불렀단다. 그 중에 가장 많이 걸리는 것이 요로 결석증이래. 아무래도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 병이 걸리나 보다. 그런데 문태복이 그만 이 병에 걸리고 말았어. 이 병에 걸리면 치료를 위해서 한국에 와야 해서 강제 귀국 조치를 당했단다. 결국 문태복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와서도 목표로 했던 돈을 제대로 모이지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단다. 이것의 시작은 모두 베트남에서 벌인 도박 때문이었지. 박준서의 회사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을 했는데, 그곳에서 노동자들이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이유로 폭동을 일으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장을 가게 되었어. 친구이자 매제인 원병균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진보 성향의 해직 기자 출신인 원병균은 노동자의 편이었기 그곳에 가는 것을 여러 번 거절했지만 결국에는 가게 되었단다. 원병균은 박준서에게 노동자들에 처벌을 최소화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단다.

….

천두만과 서동철의 도움으로 가게를 차릴 수 있었던 나복남.. 가게는 안정적인 수입도 내고 있고, 결혼도 하게 되었단다. 손가락이 없는 것을 빼면 이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어. 동생 나윤자도 뒤늦게 결혼을 했어. 그런데 유산을 네 번이나 하고 다시 임신을 했단다. 이번에는 정말 조심을 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었어. 예전에 같이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묘숙 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어. 봉제공장에서 먼지 속에서 일한 후유증으로 폐암에 걸렸다는 거야. 나윤자는 묘숙 언니 병문안을 갔다 왔단다. 그런데 묘숙 언니만 봉제공장의 후유증을 앓고 있던 것이 아니야. 나윤자도 체력이 급격하게 줄어줄었고, 출산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배상집은 독일에서 경험했던 내용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정부기관에서 그를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잡아가 고문을 했단다. 그가 신문에 쓴 글들이 문제가 된 거야. 독일 경험을 쓰면서 우리나라와 비교를 해서 쓴 것이지. 그들은 배상집에게 친정부 관련된 글들을 쓰면 풀어주겠다고 협박을 했단다. 두려움에 배상집을 그렇게 하겠다며 풀려났단다. 당시 독재 정권은 점점 악랄해지는 그런 시기였단다.

 

2.

국회의원에서 떨어진 한인곤은 오랜만에 집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어. 그러다가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단다. <친일문학론>은 친일파 문학인들을 비판하는 책이었단다. 너무 감명 깊게 읽어서 그는 지은이 임종국을 찾아갔단다. 검색을 해보니 임종국이라는 분은 실존 인물이더구나. 그는 친일을 하더라도 깊게 반성하는 채만식의 경우는 좋게 보았지만, 끝내 사과하지 않은 이광수 같은 경우는 매섭게 비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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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그야 뭐 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잇속으로 서로가 다 얽혀 있는 관계니까요. 아 참, 딱 한 사람이 반성을 했군요. 소설가 채만식이라고, 제 책 때문에 해방이 되자마자 그 사람은 민족 앞에 죄지은 붓을 더 놀려 글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했습니다. 그 사람의 친일은 이광수에 비해 몇백 분의 1도 안 되는데, 친일의 글을 쓴 것은 민족을 위해서였다고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괴변을 늘어놓으며 끝끝내 반성을 하지 않았던 이광수하고는 좋은 대조가 되지요. 다른 문인들이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온갖 비양심적이고 해괴망측한 변명들을 해대며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뻔뻔스럽게 살아가는 데는 이광수가 반성하지 않은 것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지요. 왜냐하면 이광수는 친일의 거두일 뿐만 아니라 문단의 최고 원로였으니까요. 이광수가 민족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더라면 그 뒤에 선후배들이 어찌 감히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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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으로부터 조언을 들은 한인곤도 자신의 회고록을 써보기로 했단다. 광복군 시절부터 해방 후 경험했던 일들을 회고하는 글이었어. 출판사는 임종국의 소개로 이상재가 운영하는 물결출판사에서 내리고 했단다.

유일표는 절에서 운영 스님이라는 분과 함께 생활했어. 위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님처럼 머리도 밀었단다. 그런데 그곳에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어. 박정희가 죽었다는 거야. 그것도 총에 맞아서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독재 정권이 무너진 거야. 유일표는 그 소식을 듣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단다.

박통이 죽고 나서도 계엄 상황은 계속 이어졌단다. 그러다가 너희들도 들어봤을 12.12사태, 그러니까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단다. 박통이 죽고 민주국가 될 것을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고 있었는데, 12.12 군사 쿠데타는 그 희망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어. 나라에서는 점점 심한 검열을 하기 시작했고, 대학생들 중심으로 한 데모는 점점 격렬해졌단다. 해가 바뀌고 봄이 다 지나가도록 사정이 좋아지지는 않았어. 5월에 들어서가 대학생들의 데모는 더욱 격렬해졌어. 그리고 뒤늦게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하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단다. 계엄하에 언론을 믿지 않는 것은 학습된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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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너 그 따위 소리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애저녁에 정치 때려치워라. 박통은 뭐 군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겠다는 혁명공약을 국민 앞에 내걸지 않아서 18년 동안이나 해먹다가 그렇게 비명횡사했냐? 정치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는 것 빼놓고는 뭐가 있냐? 그리고, 너 지금 이 나라 정치가 누구 손에서 놀아나고, 권력이 누구 손에 틀어잡혀 있는지 몰라서 그 따위 소리하는 게냐? 그리고 권력이라는 건 뭐냐? 애비가 아들도 죽이고, 아들이 애비도 죽이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걸 순순히 내봐? 어림 반품어치도 없는 소리하지도 말아라. 정치인들은 즈네들이 다시 권력 잡을 욕심으로 그 말을 믿고 싶고, 게엄이 빨리 해제되어 군인들의 꼴을 안 보기 바라겠지. 허나, 그건 십중팔구 잘못 짚은 몽상이야. 알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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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광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무서운 소문도 전해졌어. 원병균과 이상재는 그곳 소식이 궁금했지만 광주에는 들어갈 수 없었단다. 나라에서 막았어원병균과 이상재, 그리고 유일표는 광주 진입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광주로 향했단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

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한강>1950년대 후반부터 1980 5월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약 20여 년간 격동의 시절을 소설로 그린 걸작이라고 짧은 평을 내리고 싶구나. 20년 동안 글을 쓰시다니 그 집념과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조정래 선생님은 요즘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책을 출간하신단다. 오랫동안 건강하셔서 쓰고 싶은 글을 다 쓰셨으면 좋겠구나.

, 그럼 오늘로 <한강> 10권의 이야기를 마칠게. 나중에 너희들도 커서 공부와 숙제로부터 좀 여유로워지면 조정래 님의 대하소설 3부작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환자가 아닌 사람은 밖에 나가 기다리세요.”

책의 끝 문장: 한강은 영겁의 세월을 담고 긴긴 흐름을 짓고 있었다.



"말을 다 허자면 속에서 천불이 올르는디, 막말로 인자 대통령도 안 믿소. 아 금메 우리 농촌사람들 다 죽이기로 작정혔는지 농산물값이 해마동 똥값이 되는디다가, 돼지값도 똥값이 되는 판에 워쩔라고 나라가 사딜이는 미곡수매가꺼정 말뚝 박어 묶어뿌냐 그것이오. 근디다가 그 빌어묵을 놈으 주택개량인가 집 껍데기 뒤집어 바꾸긴가를 억지로 몰아대서 글 안 해도 찢어지게 가난헌 살림에 집집마동 빚더미에 올라앉게 혀부렀단 말이오. 판이 요리 각다분허니 되야분께 땅 파묵어 갖고는 앞날이 캄캄허다 생각헌 사람들이 보따리 싸짊어지고 줄줄이 도시로 나가기 시작혔고. 도시에 나가 막노동에 등짐을 져도 세 끼 밥 편케 묵고 새끼덜 공부 갤칠 수 있다고 험서. 인자 처녀 총각들만 도시로 내빼는 시상이 아니다 그것이오." - P27

그런데 그 조직이 어느 날 갑자기 통일혁명당이라고 지목되었다. 그와 동시에 대규모 간첩단으로 몰리고 말았다. 그건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월남으로 몸을 피해가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건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누명이었다. 토론회에서 가끔 민족 분단이 의제가 되긴 했지만 통일을 혁명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제가 등장한 일은 없었고, 박정희의 강압정치를 비판한 적은 있지만 간첩 노릇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만약 위에서 혁명적 통일을 위해 이북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낌새라도 보였더라면 단연코 그 조직에 등을 돌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일 뿐이면서 황제적 권한을 휘둘러대는 박정희도 싫을 뿐만 아니라 1인 독재로 우상이 되어 있는 북의 김도 똑같이 싫었고, 민족 통일에 관한 한 끝도 한도 없이 반목만을 일삼고 있는 남과 북의 정치 집단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불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02

"네, 사실이 그렇더라도 인간과 인간사를 너무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허무를 강조하고, 또 너무 결과론적으로 만사를 정의하며 허무를 입증하다 보니 이 세상 모든 것이 허무의 바다에 뒤덮여 인간의 현실이 너무 도외시되거나 묵살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모든 종교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현실적 삶의 문제를 위한 창조물인데 불교는 지나치게 무상의 사상에 치우치다 보니 현실과 멀어지고 있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 P201

"이것 봐, 아까도 말한 거지만 말야. 자네 6.25 때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신문이고 방송을 믿어? 그때 방송에서 뭐라고 떠들어댔어? 국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을 사수할 테니 시민 여러분들은 하등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충실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알고 보니 어찌 됐어? 그 방송이 나올 때는 벌써 이승만이는 한강을 건너 대전으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고, 한강 다리는 폭파된 뒤였잖아. 그 빌어먹을 놈에 방송 때문에 피난도 못 가고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어. 그런데도 방송을 믿어?"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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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5 소설 보다
강보라.성해나.윤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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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소설보다 : 2025>라는 책을 이야기할 것인데, 이 책은 아빠가 충동 구매로 산 책이란다. 이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책 표지가 너무 예뻐서 눈에 띤 책이었어. 먹음직스러운 딸기가 그려져 있었어. 아직 익지 않은 딸기와 잘 익은 딸기들아빠가 어렸을 때 텃밭에 딸기가 있어 봄이면 딸기밭에서 따먹던 딸기도 생각이 났단다. 요즘에야 비닐하우스에 기른 딸기 때문에 봄보다 겨울에 딸기를 더 많이 먹는 것 같지만, 딸기는 엄연한 봄을 대표하는 과일이란다.

그런 딸기 그림과 함께 적혀 있는 책의 제목은 <소설 보다 봄>. <소설 보다> 시리즈는 인터넷 서점에서 자주 보여서 알고 있던 계간지였지만 아빠는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겉표지에 혹해서 클릭해 보았고,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 버튼을 눌렀단다. <소설 보다>는 일 년에 네 번 계절마다 출간되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들이 들려 있단다. 매 호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호에서는 단편 소설 세 편과 작가의 인터뷰가 실려 있더구나. 이번 <소설 보다 : 2025>에는 강보라 님의 <바우어의 정원>, 성해나 님의 <수무드>, 윤단 님의 <남은 여름>이 실려 있었단다. 세 편 모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며 가볍지만 따뜻한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봄과 어울리는 소설들이라는 생각을 했단다. 세 작가 모두 아빠는 읽은 적이 없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재미있어서 작가들의 다른 책들도 함 살펴봐야겠구나.

 

1.

자 그럼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소설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줄게. 강보라 님의 <바우어의 정원> 바우어라는 짙은 파란색을 띠는 새가 있단다. 구애를 위해서 자신의 둥지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하다는구나. 자신의 몸 색깔과 마찬가지로 온통 파란색 물건으로 둥지를 장식하기도 한다는구나.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말 파란색 플라스틱 조각을 비롯하여 둥지를 파란색으로 꾸며 놓았더구나. 주인공 은화는 중년으로 접어드는 배우로 한때는 주인공도 하여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단다. 결혼 이후 세 번의 유산으로 3년 여 공백기간을 가졌고 다시 재기를 위해서 연극 오디션에 참가를 했단다. 그곳에서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후배 정림을 오랜만에 만났어. 정림은 은화만큼 뜨지 못했고 여전히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꿈을 키워나갔어. 오디션을 마치고 은화는 정림이 연극 연습을 하는 극장까지 태워다 주며 오랜만에 안부로 이야기를 채워나갔단다. 정림도 아이를 유산했다는 사실에 아픔을 공감하면서도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했어. 얼마 후 은화는 연극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하지 않으려고 했단다. 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였어. 앞서 이야기한 바우어 새와 주인공 은화의 연결점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마지막에는 은화가 아픔을 이겨내려는 희망이 보였단다. 작가의 의도는 어떤 줄 모르겠지만 아빠는 그렇게 이해했어.

두 번째 소설은 성해나 님의 <스무드>. 듀이는 유명한 설치미술가 제프의 매니저였어. 듀이는 한국계 재미교포 3세로 외형적으로 한국인처럼 보였지만 한국말은 전혀 못하고, 한국의 문화와 음식도 전혀 모르는 완전 미국인이었어. 한국을 얼마나 모르냐면 동남아 국가와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했단다. 제프가 전시회 때문에 방한을 하게 되었는데, 듀이는 그 일로 처음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단다. 전시회 때문에 한국인 스태프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한국 음식을 대접하자 듀이는 입맛이 맞지 않았어. 호텔에 머무르다 시간이 나서 듀이는 혼자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게 되었단다. 커다란 광장에서 축제 같은 것이 벌여져서 구경을 했는데, 나이 많이 드신 분들이 축제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들의 선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었어. 읽는 이들은 그것이 축제가 아니고, 태극기 부대의 시위 현장이란 것을 알 거야. 하지만 듀이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단다. 젊은이가 시위를 찾아주니 나이 든 시위 참가자들은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먹을 것도 주고 핸드폰 배터리 충전도 해주는 등 친절하게 대해 주었단다. 그러면서 짧은 영어이지만 어떤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 최고인지 듀이에게 알려주었고, 이 광장의 이름은 이승만 광장이라고 이야기해주었어. (태극기 부대는 정말 그곳을 이승만 광장이라고 부르나?) 듀이는 그들의 말에 철썩 같이 믿고 그들이 찬양하는 대통령이 새겨진 키링도 샀어. 듀이는 끝내 그들의 정체를 모르고 출국을 하게 되는데…. 지은이의 문체로 봐서는 풍자를 하는 듯 쓴 것 같은데, 어찌 보면 태극기 부대를 미화한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느낌이 들었단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듀이의 잘못된 상식이 나중에 깨질 수 있을까?

마지막 세 번째는 윤단 님의 <남은 여름>이란 소설이란다. 서현은 얼마 전 직장에서 정리해고로 잘리고 실업수당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어. 어느날 어느 양지 바른 길거리에 파란 소파가 나타났어. 잠시 앉아 있었는데 생각보다 편해서 매일 그곳에 와서 한동안 앉아 있었단다. 그런데 전에 다니던 회상의 상사 추 팀장이 와서 왜 이곳에 와서 시위하냐고 따져 물었어. 알고 보니 파란 소파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어. 서현은 그런 의도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추팀장은 믿지 않았고, 서현은 이후에도 계속 파란 소파에 왔단다. 추팀장도 가끔 그곳에 와서 서현에게 안부를 전하게 되는데 추팀장도 본래 마음이 약한 사람인지라 서현을 정리해고 한 것에 대한 미안함, 부채감 뭐 그런 걸 갖고 있었어. 서현은 파란 소파가 길거리에 며칠 동안 덩그러니 있는 것으로 보아 누가 버린 것이라 생각하여 집으로 가지고 올까 생각도 했는데, 자신의 집이 너무 작아서 소파를 놓을 곳이 없었어. 그런데 추팀장이 자신이 가져갔다는 거야? 그런데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헛갈리게 이야기를 했어. 추팀장은 서현과 식사를 하면서 끝내 미안하다는 말과 찐 옥수수 한아름 사서 건네주고 돌아갔단다. 서현은 해고 같은 충격적인 소식에 크게 놀라지 않는 사람 같았어. 지난 과거에 자신이 친구의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그 친구가 얼마 후 자살을 한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다른 사건들은 다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여러 해가 지나도 죄책감을 지울 수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였단다.

….

이렇게 <소설 보다 : 2025>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을 이야기해보았단다. 단편 소설이라서 그런지 툭 끊긴 기분이 드는데, 등장인물들의 그 뒷이야기들도 무척 궁금하구나. 지은이들이 뒷이야기를 쓰면 좋겠는데, 어쩌면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는 독자들의 몫일 수도 있겠구나.

오늘은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눈은 갑자기 그쳤다.

책의 끝 문장: 마음만큼 부지런히 지내고 싶습니다. 마음만큼 부지런하게 지내지 못하더라도 덜 좌절하고 싶고요. 모쪼록 해야 할 일들에 몰두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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