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3 - 제1부 격랑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요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독서편지가 다시 밀리고 있구나. 오늘도 더 이상 밀리지 않기 위해 컨디션이 썩 좋지 않지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단다. 오늘은 아빠가 주말마다 다시 읽기를 하고 있는 조정래 님의 <한강> 3권의 이야기란다. <한강>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강> 3권이 1격랑시대의 마지막 이야기란다. 그럼 곧바로 이야기를 해줄게.

2권에서는 1961년 군사쿠데타와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 펼쳐졌잖니. 3권에서도 그 연장선상의 이야기라 볼 수 있단다. 먼저 해남댁 이야기부터 할게. 해남댁은 이규백의 형수로 이규백의 형이 사라 태풍 때 죽고 나서 해남댁은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어. 2권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해남댁을 짝사랑하던 황춘길에게 해냄댁도 어느 정도 마음을 내주었지. 황춘길은 해남댁에게 도망가서 따로 살림을 차리자고 설득을 계속 했어. 그러던 중에 해남댁이 임신까지 하게 되어 해남댁도 황춘길의 의견대로 도망가기로 마음을 먹었단다. 도망 가기 전에 황춘길은 빌려준 고리채를 받고 가려고 했는데, 그만 이것을 사기 당해서 못 받는 지경에 이르렀어. 당시 나라에서는 고리채를 불법으로 규정해서 빌려간 사람이 이를 이용하여 안 주려고 했던 거야. 이에 화가 난 황춘길은 채무자를 찾아가 강제로 받아내려고 했으나, 채무자는 끝까지 버티고 있었어. 결국 실랑이 끝에 황춘길은 채무자를 죽이고 말았단다. 뜻밖에 상황이 발생하여 황춘길은 해남댁을 찾아와 바로 도망을 갔단다. 원래 해남댁의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이들은 다음을 기약하고 둘이 먼저 길을 떠났단다.

고등고시를 노리던 김선오는 불합격을 하고, 남천장학사에서는 김선오의 일년 선배 이규백이 유일하게 합격을 했단다. 김선오는 당연히 붙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불합격을 했고, 경쟁자이자 선배인 이규백이 합격하여 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단다. 남처장학사에서는 이규백의 합격 축하 파티를 했고, 국회의원 강기수는 이규백을 데리고 고향까지 가서 축하를 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강기수는 영악하기 그지없는 정치인이구나.

 

1.

1권에서 나왔던 나삼득의 장남 나복남은 천두만 아저씨의 도움으로 공장에 들어갔는데, 그 공장이 스테인리스 공장이었어. 그 공장의 일은 너무 위험한 작업이 많아서 손가락이 성한 사람들이 적었어. 나복남도 언제 손가락이 다칠 수 있는 위험이 있어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 다른 일을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술도 없었어.

유일표의 친구 허진은 일과 공부를 무리하게 병행하다가 그만 늑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 그러나 입원비가 없었지. 허진의 할머니는 독립운동가 유공자 가족으로 알고 지내던 정보살한테 도움을 청했고, 정보살은 유족회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단다. 유족회 회장은 다시 이용진이라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이용진은 근로재건단이라는 운영하고 있는데, 근로재건단은 가난한 아이들을 도와주며 넝마주이 사업을 하는 단체였어. 위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독립운동가 후손들인데 나라에서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어. 특히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유족회도 강제로 해체되었다고 했어. 이용진의 도움으로 허진은 몸이 회복되었어. 이용진은 허진이 공부도 곧잘 하는 것을 알고 근로재건단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했어. 그 대신 자신은 허진의 검정고시와 대학을 지원해주겠다고 했단다. 허진은 이에 친구인 최주한, 이상재에게 이야기해서 함께 근로재건단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단다. 허진의 단짝인 유일표도 당연히 동참해야겠지만, 얼마 전부터 유일표와 연락이 두절되어 함께 하지 못했단다.

….

유일표의 형 유일민은 군에 입대하여 강원도 인계에서 군생활을 했어. 유일민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계속 경찰의 조사를 받고 직업에도 계속 제한이 있었잖니. 그런 유일민을 짝사랑하는 임채옥도 기억나지? 임채옥은 유일민의 군대에 면회를 갔단다. 유일민은 임채옥을 멀리하기로 마음 먹어서 면회 장소에 안 나오려고 했지만, 또 사람 마음이란 것이 그리 냉정할 수 없잖니.. 그렇게 멀리서 면회를 왔는데 말이야. 유일민과 임채옥은 재회를 했단다.

유일표는 학과를 고민하다가 결국 철학과에 입학했단다.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가고 싶은 정치학과는 선택하지 못했지. 대학교에 붙자, 강숙자 누나가 대대적인 축하를 해주었단다. 강숙자의 아버지는 강기수 국회의원이잖니. 강숙자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지만, 뭐랄까 순수함은 있었던 것 같아.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아 헤프게 쓰고 경제적 관념은 없어 보였지만, 아버지처럼 영악하지 않고 순수했던 것 같아. 유일표가 가난하고 별볼일 없어도 대학에 붙으니 선물도 사주고 축하고 해주고 말이야. 그리고 강기수가 고등고시에 합격한 이규백과 결혼시키려고 하자, 강숙자는 이규백을 만나 당신 같은 사람은 싫다고 딱 잡아떼며 이야기했단다. 이규백은 여기저기 선 자리가 들어오고, 재벌가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단다.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들의 정권이 길어지면서, 4.19 혁명에 참여했던 대학생들도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미국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토론도 했단다. 그들의 말 중에 공감이 가는 말이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미국도 결국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말이지.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자국 이기주의의 최고봉인 트럼프까지 이어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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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2)

이봐, 술도 아직 안 취하구선 그런 순진한 소리 하지 말어. 케네디가 뭐 별거야? 그는 충실한 미국 대통령일 뿐이야. 미국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쏘련과 대적하는 자유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고, 케네디는 그 총사령관으로서 세계에서 제일가는 반공주의자야. 그러니까 그가 가장 환영하는 건 반공을 내세우는 나라의 지배자들이지. 박정희는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 거야. 그런데, 박정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가 차지하고 있는 지정학적 중대성이야. 미국의 입장에서 남한이 적화된다 하면 어떻겠어? 그거야말로 눈 뒤집힐 끔찍한 일인 거야.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는 곧바로 일본의 공산화로 확대되고, 그렇게 두 겹의 방화벽이 무너지면 미국은 자기네 호수처럼 독차지하고 있던 태평양을 반이나 잃으면서 쏘련과 맞닥뜨리게 되는 거지.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 태평양으로 진출한 쏘련의 승리는 중공을 자극해서 대만을 단숨에 손아귀에 넣게 되고, 월남이나 라오스같이 지금 불안한 상태에 있는 나라들까지 금방 중공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말야. 그럼 어떻게 되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는 연쇄적으로 적화 위험에 빠지게 되고, 미국은 동북아시아에 이어 동남아시아까지 잃게 되어 마침내 세계 2대 강국에서 탈락하는 비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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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두만은 인천의 부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도 열악한 환경은 마찬가지였어. 좁은 숙소에서 여러 명이 함께 숙식하면서 일했고, 병이 나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있단다. 하지만 나라는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지.

김선오의 동생 김명숙은 시골에 처박혀 사는 것이 염증을 느끼고 무작정 가출을 해서 성냥공장에서 일했단다. 좋은 공장에 가고 싶었지만 거금의 뒷돈이 필요했어. 결국 친구 나복녀와 함께 서울에 가서 일자리를 얻기로 했단다.

군생활을 하고 있던 유일민을 방첩대에서 찾아왔어. 유일민의 어머니와 동생 유일표가 사라졌다는 거야. 유일민도 처음 듣는 소식이었어. 나중에 한참 지나고 유일표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어머니가 얼마 전에 곗돈 사기를 당한 것이 있었는데, 이것을 복수한다고 똑같이 다른 곗돈을 들고 서울에 와서 유일표와 함께 숨어 지냈다는 거야. 앞서 허진과 친구들 이야기하면서 유일표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는데, 어머니와 은거하고 있어서 그랬던 거란다. 8개월만에 어머니는 경찰에 잡혀 구치소에 들어가셨다고 했어. 유일민이 휴가를 나와 어머니를 면회를 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유일민은 서동철을 만났단다. 서동철은 건설대에서 1년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 와서 지내고 있었거든. 서동철은 자신이 어머니를 빼낼 수 있는지 빽을 알아본다고 했지만, 유일민의 어머니가 실형을 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단다. 시간이 흐르고 유일민이 제대하는 날, 임채옥은 먼 군대까지 찾아오고, 폭설로 버스가 중간에 멈춰 버려 둘은 같이 하룻밤을 함께 보냈단다. 유일민의 어머니 해촌댁은 감옥에서 나와서 서울에서 식당을 차렸는데, 유일민과 유일표가 도와주었어.

….

이 소설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끊어질 수 있는데 이해해주렴. 이번에는 남재구란 사람의 이야기야. 한민곤의 친구로 한인곤이 민주당 국회의원이 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그 사람. 남재구도 군인 출신인데 어느날 후배 군인이 찾아와서 혁명 세력이 정당을 만드는데 함께 하자고 설득을 했어. 그 동안 남재구가 걸어온 길을 보고, 친구 한민곤을 도와주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돈과 권력 앞에 장사가 없다고 남재구는 후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단다. 한민곤을 제대로 배신한 거지.

다시 일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김선오는 고등고시에 합격을 했단다. 그러자 이번에는 강기수가 김선오를 강숙자의 남편감으로 생각했단다. 그러나 김선오는 강숙자의 친구 박영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어. 김선오는 자신은 여자친구가 있어 강숙자와 결혼하기 어렵다고 하자, 강기수는 곧바로 김선오를 선절했어. 강기수라는 빽을 잃은 김선오는 순천으로 발령을 받았단다.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박정희는 결국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예편하고 본격 정치인이 되어 민주공화당을 만들었고, 대통령 선거에 나섰단다.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와 벌인 대통령 선거에서

15만표의 차이로 간신히 당선되었단다. 당시는 아직 지역 감정이 없었던 시절이라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전라도의 몰표라고 하더구나. 그런 박정희가 향후 지역감정을 이용하게 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 참 안타깝구나.

….

당시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많았지만 가장 큰 것은 한일협정이었단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일본과 다시 손을 잡다니그것도 3억 달러라는 적은 금액의 보상으로 길고 긴 일제 시대의 아픔을 퉁친다는 것이 말이 안되었지. 대학생들 주도로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연일 일어났단다.

3권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란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급변하는 시대의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발생해서 이런 것들을 모두 이야기를 해주려고 하니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았던 것 같구나. 이 시대의 역사를 너희들이 학교에서 배울 텐데, 이 소설을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 같구나. 그렇지만 10권이나 긴 소설을 너희들이 읽은 시간이 없을 테니 아빠가 열심히 읽고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PS,

책의 첫 문장: 어이 웨 동주, 시방 사람이 죽어가고 있당께로.

책의 끝 문장: 허진은 강하게 고개를 내둘렀다.

 



"……의문을 갖지 말아라. 회의도 하지 말아라. 미래를 아는 인간은 아무도 없으며, 가망 없는 미래를 예상해서 현재의 삶에 불충실하는 것처럼 큰 어리석음은 없다. 공부에 열중해라." - P29

"시어머니는 해방 전해에 돌아가셨고, 시아버지는 해방되고 4년 만에 돌아가셨지요. 고문당하고 해서 감옥에서 얻은 병은 자꾸 깊어가고, 살림은 쪼들려 병 다스릴 돈은 없고, 나라가 섰대도 독립운동한 분네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시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말예요. 이승만이가 시아버지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새 나라가 서고 장관들이 임명되는데, 그중에 소문난 친일파들이 한둘이 아니었잖아요. 그걸 보시고 시아버지께서는 한바탕 통곡을 하시더니 그 다음부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런데 글쎄 다음날 보니까 베갯잇에 눈물 젖었던 자리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지 않겠어요. 처음엔 그게 뭔가 했는데, 그게 글쎄 말로만 듣던 피눈물이었어요. 그 뒤로 시아버지께서는 말 대신 한숨만 땅이 꺼지게 쉬시고, 병세는 날로 심해지다가 결국 한 달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어요." - P66

"한 번 배신한 자 두 번 배신한다는 말 있잖아. 만군으로 독립군 등뒤에 총질한 친일파가 또 한 짓이 쿠데타 주동이야. 자네 알지? 만군의 만행을. 자네와 내가 광복군으로 임정에 있지 않고 만주에서 활동했더라면 그자가 우리의 등뒤에 총질을 한 거라고. 그런 자가 일으킨 쿠데타에 야합해 뭘 해? 국회의원? 맙소사, 그것들이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어. 그자들 수뇌부에 만군과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한둘이 아닌 걸 자네도 잘 알지? 난 그자들과 맞서 싸우는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어." - P214

"허! 그거 꽤 논리적인 지적이군." 신준호는 민경섭을 빤히 쳐다보며 담배를 빼들고는, "그게 말이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군사정권에서 추진한 그런 일들은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권에서나 해야 했고, 국민들이 원하고 호응하는 일이었어. 4.19, 그 혁명의 상황 속에서 정권을 수립한 장면정권은 그런 일들을 처리할 강한 의지를 세웠어야 했고, 국민의 불신으로 경찰력이 무력화된 상황이었으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인들을 동원했어야 해. 그런 권한은 엄연히 법이 보장하고 있었거든. 그랬으면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도 대환영이었을 거야. 그런데 불행하게도 장면정권은 나라를 바로잡을 국가적 문제점도 투시하지 못했고, 국민적 요구를 파악할 능력도 없었고, 혁명적 정치를 추진할 의지도 없었어. 그러니 주어진 권한을 활용하지도 못하고 권력을 잃은 거지. 너무 가혹했나?"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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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2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2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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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2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게. 이 책의 차례를 보고 뭔가 오타가 있다고 생각했어. <님의 침묵> 초판본이 실려 있는데, 페이지 표시한 부분이 406~226으로 되어 있고, 페이지도 내림차순으로 적혀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해당 페이지를 살펴보니 차례를 그렇게 적은 것이 이해가 되더구나. <님의 침묵> 초판본을 그대로 싣다 보니, 세로 쓰기가 그대로 되어 있고, 책 페이지는 초판본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되도록 되어 있었단다.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2권의 구성을 보면, 먼저 도올 김용옥 님이 쓰신 <님의 침묵>에 실린 시들에 대한 설명이 130여 페이지까지 실려 있고, 137페이지부터 225페이지까지는 만해 한용운 연표가 실려 있단다. 연표의 페이지 분량이 꽤 많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삶과 연관된 사람들, 역사적 사건들이 자세하게 실려 있단다. 그 점도 좋았단다. 그리고 406페이지로 가서 뒤에서부터 <님의 침묵> 초판본이 담겨 있었단다. 이런 걸 영인본이라고 했던 것 같아. 원본을 사진으로 찍어 그대로 실은 것 말이야. 그래서 당시 맞춤법으로 적혀 있어 직관적으로 그 뜻이 와 닿지 않는 시들도 있었단다.

소리 내어 읽으면 대충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 그럼에도 당시의 말 뜻을 이해 안 되는 것들이 많아서 아빠는 오디오 북의 도움을 받았단다. 밀리의 서재에서 <님의 침묵> 오디오 북을 들으면서 이 책의 초판본을 함께 읽는 것이었지. 그렇게 읽으니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의미도 쉽게 전달되었단다. 가만 생각해 보니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이 엄청 유명한데, 아빠는 그 시집을 완독한 적이 없었더구나. 이번에 이 책을 통해서 <님의 침묵>에 실린 88편의 시를 모두 읽어보았는데, ‘님의 침묵시뿐만 아니라 다른 시들도 다들 좋았단다. 독립운동가나 스님이 아닌 시인으로도 인정을 받기에 충분한 좋은 시들이 많았단다. 너희들도 학교 시험에 한용운 님의 시들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88편 모두 읽어보면 좋을 것 같구나. 아빠처럼 오디오 북의 도움을 받아서 읽으면 어렵지 않을 것 같구나.

 

1.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2권은 <님의 침묵>에 실린 시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단다. 88편의 시를 모은 시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시들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단다. 지은이 김용옥 님이 말씀하시기를, 시집 <님의 침묵>은 첫 번째 시 님의 침묵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여든여덟 번째 시 사랑의 끝판으로 끝나는 연작시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어. 첫 번째 시 님의 침묵에서는 님이 떠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마지막 시 사랑의 끝판에서는 떠난 님이 다시 온다고 읊고 있단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지금은 주권을 잃었지만, 다시 독립을 하고 만다는 것을 시로 지은 것이라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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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만해의 시가 연작시라는 것은 주체의 흐름의 구성이 매우 명료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님의 침묵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별을 이야기한 님의 주제는 이제 마지막에 님의 오심으로 귀결되고 있다. 오서요라는 시는 85번째로 실려 있는데, “오심의 당위성에 관하여 읊고 있다. 님의 오심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고, 그 마땅함을 가능케 한 것은 님을 기다려온 민중의 주체적 역량이라는 것이다. 만해는 이미 25년 전에 광복을 예견하고 독립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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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에 실린 사랑의 끝판이라는 시는 아빠는 이번에 처음 읽어봤는데, 희망찬 미래를 나타내는 그야말로 끝판왕 같은 시 같더구나. 이 책에 실린 것은 초판본이라서, 그대로 적기가 쉽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찾아서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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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끝판

-       한용운

 

네 네 가요 지금 곧 가요

에그 등불을 켜려다가 초를 거꾸로 꽂았습니다 그려 저를 어쩌나 저 사람들이 흉보겠네

님이여 나는 이렇게 바쁩니다 님은 나를 게으르다고 꾸짓습니다 에그 저 것 좀 보아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하시네

내가 님의 꾸지람을 듣기로 무엇이 싫겠습니까 다만 님의 거문고줄이 緩急을 잃을까 저허합니다

 

님이여 하늘도 없는 바다를 거쳐서 느름나무 그늘을 지워버리는 것은 달빛이 아니라 새는 빛입니다

홰를 탄 닭은 날개를 움직입니다

마구에 매인 말은 굽을 칩니다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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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시집에 이 계속 등장하는 이것은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우리나라, 조국을 의미한단다. 첫 번째 시에서 떠난 조국이 마지막 시에서 돌아온다는 것시집의 구성도 완벽하구나.

….

<님의 침묵>에는 인물에 관한 시들도 여럿 등장한단다. 모두 일제에 항거했던 역사적인 인물들이었어.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 장수를 안고 촉석루 아래 남강으로 뛰어내려 죽은 논개를 추앙하는 논개의 애인이 되야서 그의 묘()라는 시가 있었단다. 굳이 논개를 추앙하는 시를 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제에 항거한다는 마음을 굳은 의지가 아닐까. 진주성 전투는 비록 마지막에는 무너졌지만, 임진왜란 당시 그리고 그 이후 일본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준 전투였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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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1)

논개나 이순신, 김시민, 김성일, 김천일, 최경회 같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 항쟁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또다시 일본놈들이 이 조선삼천리금수강산을 짓밟는 강도질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제2차 진주성대첩 때 성내에 있었던 6만 명의 국민들이 모두 목숨을 던졌던 것이다. 열흘 동안에 25번의 전투가 있었는데 24번을 이겼고 마지막 한 번만 졌다. 그때는 성내에 사람이 없었다. 처절한 전투였는데 결코 일본이 승리한 전투가 아니었다. 조선땅에 있던 왜군 10만이 집결하여 4만 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만 생각하면 치를 떨었고 다시는 진주에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또다시 3백여 년 후에 일본의 식민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집필하고 있는 이 시점의 정권은 일본의 한국상륙을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후회스러운 현실인가! 지금와서 동아시아에 나토 비슷한 집단군사동맹체제를 만든다면 화약고를 자처하는 꼴이 아닌가?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아무리 보수라 할지라도 국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전쟁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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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명의 임진왜란 당시 여인 계월향에 대한 시가 있단다. 계월향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왔는데, 북한에서는 논개만큼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평양성 전투에서 김응서가 왜장을 죽이는데 계월향이라는 기녀가 큰 도움을 주었다고 했어. 왜장을 죽이고, 탈출하다가 계월향은 부상을 입게 되고 죽여달라고 했다는구나. 계월향에 대한 시를 실은 이유도 논개에 대한 시를 실은 이유와 같다고 볼 수 있단다. 그 밖에 여러 시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 시들은 모두 조국을 사랑하고 독립을 열망하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단다.

도올 김용옥 님은 현 정부를 비판하는 데 서슴지 않는 분인데, 이 책이 쓰여진 작년 10월에도 이미 우리나라 정부는 무너지고 있었기에 그의 비판 강도가 강했고, 읽은 이들은 시원했단다. 한용운 님의 시를 설명해주는 책으로서 서문 대신 서시를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1권에 실었는데 2권에도 시를 통해 책을 마무리했단다. 친일 정권, 무능 정권을 강도 있게 비판하면서 말이야. 그 중에 일부를 발췌하면서 오늘 독서 편지는 마치련다. 그래 연산군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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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의 인권선언을 모태로 한 법질서,

세계사 민주주의의 모범을 달려온

조선민중의 피눈물나는 노력의 결실이

고작 요 따위 양아치정권일까요?

대통령이 사법 입법 질서를

뭉개뜨리고

매일밤 술만 마시고 있습니다.

연산군의 폭정은 개인적 슬픔의 사연이라도

있었습니다.

오서요. 어서 오서요.

이제 엎어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사랑의 끝판입니다.

 

오늘 우리 민중의 요구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닙니다.

폭정에 대한 해명도 아닙니다.

이 사회의 리더십이 저열해지고

퇴락하고 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현 정권은 역사의 근원적 퇴행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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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나는 본시 이 책을 집필할 때는 만해의 다면적 생애 그 전체를 다룰 생각이 없었고, 오직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 한 권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나의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책의 끝 문장: 한강은 흐릅니다.



만해라는 존재는 평화 그 자체이다. 평화는 단지 전쟁(싸움)의 부재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이 부질 없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날 때 달성되는 것이다. 만해의 시는 이러한 해탈이 사랑의 단절이 아니라 사랑의 속박으로 달성된다는 아이러니를 제시하고 있다. 평화는 문명의 궁극적 목표이며 자연의 원상(元相)이다. 평화라는 가치가 없으면 진과 선과 미가 모두 불인(不仁)해진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부재하면 모험조차 불인해진다. 인류의 역사는 과정이며 노경(老境)이 없다. 끊임없는 청춘의 노래이다. 청춘의 꿈은 항상 비극의 결실을 수확하게 마련이다. 이 우주의 모험은 꿈과 더불어 시작하지만 항상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수확한다. 이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만해는 자유라고 부른다. 이 민족에게 자유는 해방을 의미하며 일본이라는 사악한 권력의 패망을 사실로서 전제한다. - P20

민중들의 생활이 다 무너져 젊은이들은 삶을 설계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자식 낳을 꿈도 꾸지 못한다. 물가는 치솟고 세계적으로 모범적으로 의료체졔를 망가뜨려 사기업화시키려 하고, 이상(異常)적인 금융체제 속에서 투자가들은 불건강한 투기에 시달리고 있으며, 부동산, 토목공사, 건설업이 모두 건강한 싸이클을 벗어나고 있다. 이에 기후위기가 가중되고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던 사회통합이나 공통체모랄이 붕괴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독자적으로 해결해나갈 힘이 있다. 만해의 시대로부터 오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진보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은 자력갱생(自力更生)의 자결권을 확보하여 왔다. 이제 와서 반일 종족주의를 반성하고 친일로 나아가자니! 이게 도무지 국가비젼을 만드는 자들이 할 말인가? - P44

만해문학에 쎅씨한 느낌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 "아름다운 여인 선호 성향" 운운하는 것은 만해문학의 오묘한 질감을 천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는 것만큼 본다 하는 것이 정론일 것이다. 여기 중요한 것은 "젊은 여자"가 아니라, 길에는 우주론적 법칙과 인간론적 행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론적 법칙은 객관적인 질서가 나에 선행하지만, 인생론적 법칙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발자취라는 질서에 선행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행동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사전>이 말하는 "성지자성야(成之者性也)" 즉 "이루어지가는 것이 본성이다"라는 인간의 능동성과 책임성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덕이라는 것이다. 도덕이란 자연의 법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 내재하는 것이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아 갑니다."
- P79

만해는 어쩌다 술이 들어 거나하게 취하면 흥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한다.
"만일 내가 단두대에 나감으로 해서 나라가 독립된다면 추호도 주저하지 않겠다."
- P83

만해, 금강산 표훈사에서 안중근의사의 기대를 읊은 한시를 짓다.
<해주에 사는 안중근> : "일만석의 뜨거운 피와 열말의 큰 담력, 담금질 끝낸 서릿발 칼날 칼집속에 넣어두고, 벽력치는 의용 홀연히 밤의 적막을 깨드리니, 육혈포 탄환은 꽃처럼 날고 가을빛은 드높더라."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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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지붕 갈면 참새고 구렝이고 굼벵이고 노래기 웂어지는 것만 알았제 그놈으 스레튼지 신식 양철인지 허는 지붕이 삼동에는 사람 고드름 맹글게 외풍이 일어 춥고, 삼복에는 사람 숨맥히고 찜쪄죽이게 후꾼후꾼 더운 것 워째 몰르시오. 고것이 보기만 뺀드르르혔제 사람 잡는단 말이오. 사람이 삼동에는 뜨뜻허니, 삼복에는 시언허게 살아야 몸도 풀리고 일도 지대로 되고 허는 법인데, 공연시 그 존 초가지붕 걷어내고 쌩돈 딜여감시 그 못쓸 스레트로 바꾸라고 물이 못 나게 잡져대니 요것이 무신 얄랑궂인 일인다요? 글고, 저 생생헌 탱자나무 울타리가 우리 실림을 가난허게 맹그는 것도 아니겄고, 무신 손해를 입히는 것도 아닌디 워째 싹 쳐내뿔고 그 멋대가리 웂는 쎄멘트 담으로 바꾸라고 욱대기고 그래 싼다요. 저것도 다 살아 있는 목심인디. 워디 그뿐이당게라? 철 따라 잎 피고 꽃피고 탱자 익어가는 운치가 꽃밭이 따로 웂고, 잘 익은 탱자는 아그덜 입맛 돌게도 허고 한약방에 약재로 폴기도 안 허요. 근디 쎄멘트 담은 주는 것이 머시가 있소.

 

(84-85)

이규백은 필터가 타들도록 담배를 빨며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박정희정권은 벌써 16년이었다. 유신 반대 데모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 들어가고, 고문을 당하고, 징역을 살고, 풀려나고, 또 잡혀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4.19 때처럼 군중의 물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왜 그럴까? 무엇 때문일까……? 그만큼 무섭게 탄압하기 때문일까? 중정과 쌍벽을 이루며 군 수사기관까지 빈틈없이 감시를 해대기 때문일까? 중정과 쌍벽을 이루며 군 수사기관까지 빈틈없이 감시를 해대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무슨 정치 기술이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말대로 국민들이 잘사는 것에 정신팔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저 잘살 수 있기를 바라는 절대다수의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정치의 부자유가 별다른 불편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것이 이승만정권과 다른 점일 수 있었다. 군중의 물결이 일어나지 않은 정치투쟁, 그것은 개인의 희생일 뿐이었다. 동생과 그의 동료들은 그 점을 놓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경솔일지 몰랐다. 그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나섰을 수도 있었다. 자기들이 먼저 싸움에 나서서 대중을 자극하고 불러일으키려는 계책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외친 역사가 이 법정을 심판할 것이다라는 구호는 허망한 것 같으면서도 의미심장했다. 역사……, 그것은 얼마나 모호하고 막연한 것인가. 현실에서 볼 때 모양도 형체도 없는 것이 역사였다. 또 역사의 힘이 있다한들 그 힘이 발휘될 때는 오늘의 현실은 이미 과거가 된 다음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역사의 힘을 믿고 독재의 폭력 앞에 몸을 내던진 것이다. 그건 오늘 당하는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결의가 없이는 못할 일이었다.

 

(217)

더 이상 개발독재에 순응해선 안 돼. 정치와 경제가 결탁해서 전체 민중들을 갈취하는 이런 구조는 하루빨리 부셔야 해. 신흥 재벌들이 생겨나는 걸 경제 기적이라고 떠들어대는데 그거야말로 고등사기 선전술이야. 그건 권력의 비호와 노동자 착취가 얼마나 극심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야. 세계 어느 나라에도 단 몇 년 사이에 신흥 재벌들이 생겨나는 일이란 없어. 지금부터 노동자들을 조직화해서 개발독재의 구조를 깨고, 노동자의 몫을 제대로 찾아야 할 때야.”

 

(236-237)

한국사람들이 쇠로 만들어졌을 리 만무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뚜렷한 땅에서 나고 자랐으니 더위에 강할 수 있는 체질도 아니었다. 더위에 강하기로는 더운 나라 태국이나 필리핀사람들일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구덩이를 서너 개 팔 때 태국사람은 구덩이를 한 개밖에 파지 못하고, 한국사람들이 일하는 식으로 필리핀사람들에게 시키면 하루 일하고 사흘을 앓아눕는다는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다. 태국이나 필리핀사람들은 대개 대만 회사들에 고용되어 있었다. 한국사람들은 오로지 가난을 면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우디사람들조차 피하는 살인적인 더위를 무릅써가며 사생결단 일에 나서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이 허약해져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비행기에 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석회 성분 많은 물 때문에 담석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305)

내가 정말 다혈질이고 돈키호테였던가? 우리가 언론자유를 위해 나섰지만 이루어진 것은 무엇인가?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신문사에서 내쫓겼을 뿐 독재는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어이없고 비참하게도 자신들의 행동은 독재자들에게 독재를 강화하도록 자극하고 깨닫게 해준 역할을 한 셈이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자신들이 내쫓긴 자리를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며칠이 못 가 이런저런 사람들이 메우고 만 일이었다. 그들도 다 배울 만큼 배우고 사리분별을 할 능력을 갖춘 지식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처음 얼마 동안은 슬슬 피하고 몸을 사리는 눈치더니 차츰 해가 바뀌어가자 기를 세우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맞대면하기를 어려워하지 않았고, 술 한잔하자는 말을 서슴없이 내놓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어차피 누군가는 채워야 할 자린데 그나마 저 같은 사람이 들어가 선배님들 뜻 지키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하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한한 논리에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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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2 - 제1부 격랑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다시 읽기 2권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빠가 또 독서편지가 밀리기 시작해서, 바로 책 이야기를 해야겠다. 1권은 1950년대 후반에 이야기가 시작되어 4.19 혁명까지의 이야기를 했잖니.

이승만 독재가 끝난 대한민국이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가 이루어지고 살만한 국가가 될 거라고 기대를 하던 시기에서 2권의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고등학생인 유일표는 친구 이상재와 함께 또 다들 친구 허진의 집을 찾아갔단다. 허진이 며칠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야. 허진의 집을 찾아가보니 허진은 판자집에서 할머니와 동생들과 힘들게 살고 있었어. 암에 걸린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집안살림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하고 얼마 전에 그만 자살하셨단다. 그래서 허진이 가장으로 자신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어. 더욱 안타까운 것은 허진의 할아버지는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였는데, 6.25 전쟁 중에 돌아가시고 말았어. 일제 시대 때 투철한 독립운동을 하셨어도 그 때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6.25 전쟁 때 돌아가셔서 독립운동가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을 수가 없었대. ,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있냐. 친일파들은 다시 요직을 잡고 떵떵거리는데, 독립 운동한 후손들은 하루 먹기 힘들어 학교까지 그만두어야 하다니

유일표와 친구들은 허진의 사연을 듣고 조금이라도 허진을 돕기 위해 학교의 교실들을 돌아다니면서 허진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부의금을 모았단다. 적지만 그렇게 모인 돈을 허진에게 전달했어. 그리고 유일표는 강숙자 누나에게 부탁을 해서, 허진의 일자리까지 소개를 받아 허진은 취직을 하게 되었단다. 허진은 유일표의 도움으로 취직하여 일을 했지만 공부에 대한 열의는 줄어들지 않았어. 낮에 힘들게 일하고 밤에는 혼자 독학을 했단다. 허진의 동생 허미경도 유일민이 강숙자에게 부탁을 해서 강숙자의 친구 박영자의 아버지 박부길의 회사에 경리로 일하게 되었단다.

....

 

1.

4.19 혁명 이후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어. 이승만의 추종자였던 자유당 출신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무소속으로 출마를 했단다. 남천장학사의 강기수도 그렇게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남천장학사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선거 유세에 이용하였고, 온갖 불법으로 선거 운동을 했단다. 선거 유세에 어쩔 수 없이 참가해야 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자금줄이 걸려 있는 것이라 참가하긴 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갈등을 하기도 했단다. 강기수는 무소속이라는 불리함을 극복하고 다시 한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단다. 1권에서 억울하게 예편하고 민주당에 들어가 정치를 시작했던 한인권도 간발의 차이긴 하지만 당선이 되었단다.

유일민은 어느날 경찰에 연행되어 며칠 동안 조사를 받고 나왔단다. 이것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단다.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유일민은 경찰에 잡혀가 며칠씩 조사를 받곤 했단다. 이제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고, 남한에 내려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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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아버지, ……아버지, 제발, 제발 내려오지 마세요. 만나서 당하는 비극보다 만나지 않고 그냥 그리워하며 사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북에서는 왜 자꾸 사람들을 내려보내는지 모르겠어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선가요? 그건 남쪽을 너무 모르고 하는 일입니다. 6.25를 겪고 난 남쪽 사람들은 공산당이나 사회주의를 너무 무서워하고 싫어합니다. 나라에서 감시하고 처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6.25를 통해 북쪽에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며 공산당을 싫어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상황에 사람들을 내려보내 무슨 효과를 보지는 겁니까. 여기 있는 가족들만 더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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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유일민은 과외 자리도 잘렸어. 고향 선배인 김선오와 이규백에게 도움을 청해 보려고 했지만, 그들도 유일민을 외면하였어. 과외 학생인 임호태의 누나 임채옥만 유일민을 찾아와서 옷도 사주고 챙겨주었어. 유일민의 임채옥의 이런 대시를 불편해하여 몇 번이고 떨쳐내려고 했지만, 임채옥은 유일민 바라기였단다.

4.19 혁명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 정권민심을 잘 헤아려서 국가 재건에 힘을 쓰면 좋았겠지만, 권력을 처음 잡아봐서 그런지 무척 서툴렀단다. 당내 신파와 구파 사이의 갈등도 컸어. 국민들은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데 민주당 내에서는 싸움만 하고 있으니 민주당은 빠르게 민심을 잃어갔단다. 4.19 이후 여러 가지 법 개정도 이루어졌는데, 사법 시험을 대학교 졸업해야만 볼 수 있고, 30세 이하만 볼 수 있게 바뀌었어. 남천장학사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인 법이었단다. 대학교 다니면서 시험을 못보고, 대학을 졸업해서도 만 30세 이전에 합격을 해야 하는 것이었지.

영악한 강기수는 남천장학사의 지원을 축소했단다. 그래서 김선오는 부족해진 돈을 벌기 위해 가정교사를 해야 했어. 강숙자를 통해서 안면이 있던 안경자의 소개로 안경자의 동생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되었단다. 참고로 이야기를 하자면 안경자의 아버지는 광주에서 병원을 크게 하는 지역 유지였어. 이규백도 남천장학사의 줄어든 지원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했어. 이규백은 형이 죽었기 때문에 형수와 조카들의 생계를 위해 돈이 더 필요했거든. 어쩔 수 없이 논을 팔기도 했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논을 강기수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샀던 것이란다. 강기수는 그렇게 땅을 계속 늘리고 있었던 거야. 그런 강기수의 모습에 이규백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돈 때문에 남천장학사를 떠날 수는 없었단다. 자신의 이런 신세를 탓할 수밖에..

1권에서도 나온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 천두만과 나삼득에 관한 이야기도 해줄게. 그들은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지만, 여전히 가난을 면치 못했어. 누군가의 제안으로 석탄을 몰래 홈쳐서 파는 일을 하기로 했단다. 위험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밥벌이조차 어려웠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석탄 더미가 무너지는 사고가 났어. 천두만은 간신히 빠져 나왔지만, 나삼득은 그만 석탄 더미에 묻혀서 죽고 말았단다. 다른 이들은 도망갔지만 천두만은 나삼득을 살려보겠다고 그 자리에 있다가 경찰에 잡혀서 감옥살이도 하게 되었어. 천두만은 6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고 출소했단다. 그 사이에 있던 일자리도 잃어버렸지만 그보다도 나삼득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이 무척 컸어. 그는 움막집을 팔아서 나삼득의 장남을 공장에 취직시키는 뒷돈을 쓰면서 마음의 짐을 좀 덜었단다. 그리고 자신은 서울을 떠나 인천 부두에서 일하기 위해 인천으로 떠났단다.

유일민이 대학생이 된 다음 선배들을 통해서 통일 운동에 참여하라는 반강제 반설득이 이어졌단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력 때문에 유일민은 참여할 수 없었어. 자신의 아버지 이력을 이야기할 수는 없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핑계로 참가하지 않았단다.

 

2.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워서 알겠지만, 1960 4.19 혁명 이후 혼란이 계속 되어가다가 1961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잖니. <한강> 2권에서도 그 사건이 일어났단다. 어느날 갑자기 장도영과 박정희가 이끈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단다. 하룻밤 사이에 군인들은 정권을 장악하고 비상계엄을 발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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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비상계엄이 선포된 상태에서 혁명군사위원회에서는 정권 인수와 국회 해산을 선언함과 아울러 장면 내각 장차관 전원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고, 주한미국 대리대사와 미8군 사령관은 불법적인 쿠데타를 부인하고 장면 정권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윤보선 대통령은 쿠데타 지지를 표명하고, 쌀값은 당일로 치솟아 혁명위에서는 매점매석하는 미곡상들을 극형에 처한다는 포고령을 발동하고, 장면 총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그 행방이 묘연하고, 혁명위에서는 서울시내 각 경찰서장들을 중위 대위로 임명하고, 검열을 당한 신문들은 부분부분 먹통이 된 채 찍혀 나오고, 혁명 수행상 필요 시에는 체포, 구금, 수색을 영장 없이 집행한다는 포고령이 잇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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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이 일어나면서 군인들은 사회를 정화를 한다면서 용공분자들을 조사한다고 했는데, 이것 때문에 유일민은 다시 잡혀 들어갔단다. 이번에도 아버지가 북에 계시다는 이유 때문이야.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형이 사라져서 유일표는 형을 찾으려고 했지만 허탕이었고 며칠 째 형은 돌아오지 않았어. 유일민은 무려 두 달 만에 풀려났단다. 한 학기가 그냥 다 날라갔어. 학교에서도 유일민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유일표는 형이 그렇게 잡혀갔다가 오는 것을 보고, 자신도 대학생이 되면 똑같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어. 유일표는 정치학과를 원했지만 아버지의 이력으로 정치 일을 못할 것이 뻔했어. 무슨 과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단다.

이번에는 유일민의 친구 서동철도 잡혀 들어갔는데, 군인들은 사회를 문란하게 하는 깡패들도 모두 감옥에 넣는다고 해서 서동철도 잡혀 들어간 거야. 서동철은 자신을 봐주던 사장님의 도움으로 비교적 편한 탄광지대 국토건설 사업근로대라는 곳에서 1년간 복무하게 되었단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만들어졌는데,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게 했고 중고생들의 삭발령이 내려져서 머리를 짧게 잘라야 했단다.

….

이규백의 형이 사라 태풍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했잖아. 이규백의 형수 해남댁은 아이들을 데리고 시어머니와 힘들게 살아가 있었어. 그런데 황춘길이라는 자가 해남댁을 짝사랑하고 있었어. 황춘길은 홀로 있던 해남댁을 겁탈했어. 그리고는 행복하게 해주겠다면서 도망가자고 했단다. 처음에는 황춘길을 괘씸하다고 생각했는데, 황춘길이 자신을 무척 위해주고 아이들도 당연히 함께 가서 산다고 이야기해서 황춘길의 뜻에 점점 동의하게 되었단다.

….

5.16 쿠데타와 비상계엄으로 국회는 해산되었단다. 국회의원이었던 한인곤도 피해를 보았단다. 한인곤의 매제 양봉석은 대위로 군대에 있었는데, 5.16 쿠데타 이후 예편하고, 중앙정보부에 일하게 되었다고 하자 한인곤은 반대를 했단다. 그 시절 중앙정보부는 막강한 권력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양심의 소유자라면 일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지.. 한인곤이 반대하자 동생 한정임은 그런 오빠를 반대했단다. 돈도 많이 벌고 권력의 중심인 중앙정보부 자리를 왜 반대하냐고 말이야. 5.16 쿠데타 이후 군정부는 사회정의를 구현하겠다면서 부정한 일들을 바로 고치는데 앞장섰어. 그렇다 보니 군정부에 대한 여론이 좋아졌단다. 하지만 그 쿠데타는 불법적으로 정권을 차지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어.

=====================

(314-315)

그건 당연히 박수를 받을 만큼 잘한 일이오. 조직폭력을 일삼아 시민생활을 불안하게 한 깡패들을 소탕애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국민의 기본의무를 기피해 개인의 이득만 추구한 파렴치한 자들을 색출해내 국가의 기강을 바로세우는 건 백 번 잘한 일이오. 그런데 그런 겉에 드러난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 국민들이, 아니 이성적인 대학생들이 쿠데타정권의 부당성까지 망각하게 된다면 그건 큰 문제요, 무슨 말인고 하면, 지금 군인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그런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 그 저변에는 불법으로 정권을 탈취한 부당함을 하루빨리 정당화시키기 위해 자기네 능력을 과시하고 민심을 회유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그거요. 그들이 참으로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그런 중요한 일들을 빨리 끝내고 군인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하고, 그땐 온 국민이 박수를 치고, 박정희에게는 중장 진급이 아니라 국민의 이름으로 별 다섯, 원수를 달아줘도 아까울 것 없소. 허나, 지금은 감시의 시기요.”

=====================

빠른 시간 내에 다시 정권을 이양해야 했단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어. 5.16 군사쿠데타로 잡은 불법 정권이 20년 가까이 이어질 거라고는 당시에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구나. 오늘날 비상계엄과 내란이 대통령에 의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야….

….

여기까지가 <한강> 2권의 이야기란다. 글이긴 하지만 지은이 조정래 님께서 당시의 생활상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셔서 그 당시의 우리나라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어.

오늘은 그럼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공덕동의 언덕바지 비탈동네는 성북동 골짜기의 판자촌들보다 한결 더 어수선하고 번잡스러웠다.

책의 끝 문장: 그러나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는 정동진은 그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치란 마술 같은 면이 있고, 특히 기회 포착이 중대합니다. 국민이나 대중들은 순진한 관객이구요. 마술사가 연달아 실수하면 관객들이 가만히 있습니까? 특별법을 지연시킨 건 분명 잘못이고, 그걸 당장 만들 수는 없고, 국민들 마음은 급하고, 그렇게라도 임시방편을 하지 않으면 정말 수습할 수 없는 큰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한 의원님이나 저나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서 따낸 당선인데, 일도 못 해보고 밀려날 수야 없는 일 아닙니까?"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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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처음으로 방문한 일본인의 집이라 긴장하며 잘하지도 못하는 서투른 일본말로 첫인사를 했다. 나의 인사가 끝나자, 하타케야마 부부는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를 대신해서 사죄한다라고 인사를 했다. 처음 받는 인사 치고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나의 가족 중에는 강제 연행을 당한 사람도 일본군 위안부도 없다고 손사래를 치며 젊은 부부를 일으켜 세웠지만,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이미지로 생생히 남아 있다.

 

(13-14)

2011년 발생한 3.11대지진도 아베 수상과 극우 보수세력의 등장을 초래한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준비되지 못한 제1차 아베 내각의 실패로 자민당이 장기집권의 바닥을 드러냈고, 2009년 결국 야당 민주당에 정권교체를 허용해 하토야마 유키오 수상이 취임했다. 민주당은 도로 및 댐 건설을 중심으로 한 자민당의 국책사업을 비판하면서 콘크리트에서 인간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또한 관료만능주의의 병폐를 지적하면서 의미 없는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시민 및 관료가 함께 토론해서 예산을 결정하는 참여형 정책결정 과정을 시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의 주재와 재정 확보 실패로 비현실적인 정책에 머무르며 언론의 비판이 계속되었다. 결국 준비되지 못했던 민주당 집권세력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여 일본 국민들의 머릿속에 낙인이 찍혔다. 일본사회에서는 3.11 대지진과 민주당의 무능이 동시에 떠오를 정도다.

 

(17)

일본 극우보수세력의 실체는 일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가 청산되지 못한 한국사회에도 그 잔영이 남아 있다. 이른바 친일 부일세력으로 불렸던 이들은 한국사회의 엘리트로 변모해 해방 후 우리 사회의 기본 골격을 만들고 유지시켜왔다. 한국사회는 한국전쟁 후 반공 및 한미일 안전보장의 틀 속에서 이른바 안보경제의 의존관계를 맺으며 일본사회와 공존해왔기 때문에 친일 부일세력들의 실체를 해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장기간에 걸쳐 군사정권을 민주정권으로 바꾸고 과거사 청산을 위해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난 국가폭력의 실체를 파악해가는 과정 속에서 청산되지 않은 일본 식민지의 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48)

2012년부터 등장한 일본회의를 중심으로 극우보수세력이 부상한 상황은 동아시아가 지금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냉전이 붕괴된 이후 약 30년간 중국이 강자로 대두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많이 약화되었지요. 그러나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약화되었지만 군사적 역할은 훨씬 커졌고, 각국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실패하고 극우보수세력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등 아시아는 혼란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과 북한의 화해 움직임이 활발해짐에 따라 일본이 한반도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이 그간 북한 위협론과 한반도 위기론을 주장하면서 일본 내에 자신들의 정치 기반을 유지해왔기 때문입니다.

 

(80-81)

우리가 일제 청산을 애타게 부르짖었지만 결국 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에 권세를 누리던 자들이 그대로 살아남았지요. 그리고 그들이 대한민국 군대를 운영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미국이 군을 해체했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육성한 일본군과 만주군의 조선인 장교들을 그대로 쓴 겁니다. 그들이 위안대를 만들었고, 그 규모와 위치를 <6.25사변 후방전사>에 자랑스럽게 실적이라고 써놓았습니다. 우리가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 아니 박정희식 군국주의에 빠진 그 식구들을 반대하는 겁니다.

 

(100)

이토 히로부미는 쇼카손주쿠에서 공부한 요시다 쇼인의 제자였습니다. 한미한 가문의 하급 사무라이로, 처음에는 존왕양이적 입장에서 각종 테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었죠. 그러다가 1863년 조슈번에서 선발한 영국 유학생의 한 사람으로 외국 생활을 하며 영국의 선진문물에 압도되어 존왕양이론자에서 개국론자로 근본적인 사상 전환을 하게 됩니다. 존왕양이파는 원래 한국의 위정척사파와 크게 바를 바 없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위정척사파들이 내 목은 잘라도 상투는 못 자른다고 버틸 때 이토 등 존왕양이파들은 서구 문물을 접하고 스스로 상투를 잘라버린 것입니다. 19세기 후반 한국과 일본의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112)

박정희가 1945년 이전에 물리적으로 한 친일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박정희는 친일파가 되기 위해 긴 기간 준비운동만 한 셈입니다. 대구사범학교부터 일본 육사까지 문무를 겸비해 제국에서 출세하기 위한 발을 내디디마자 일본제국에 패망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박정희를 원조 친일파라고 하는 이유는 집권한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일본 극우파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일본이 만주국을 경영했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의 사상적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세지마 류조고, 그 배경에 황도파의 사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23-124)

갑신정변(1884)의 주역은 김옥균, 서재필, 서광범, 박영효입니다. 이 사람들 친일파일까요? , 친일파 맞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친일은 지금 이야기하는 친일과 아주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봐야 합니다. 그때는 아직 일본의 침략적 본질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전이었습니다. 구한말 우리가 보는 일본에는 분명 두 가지 성격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모델로서의 일본입니다. 이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를 침략해오는 일본이지요. 적어도 1894년 갑오농민전쟁 이후에는 침략성이 아주 확고하게 드러났지만, 그 전에는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많이 배우려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영효나 김옥균이 취한 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을 이완용, 송병준과 같이 취급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199)

그런데 일본에서 외국인 학교를 각종학교로 취급하는 것은 조선학교 때문입니다. 외국인 학교를 정규학교로 규정하는 순간 조선학교에도 보조금을 지급하고 각종 제도로 보호해주어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은 것이지요. 그렇다고 조선학교만 각종학교로 취급하면 너무나 노골적인 차별 정책이 되어버립니다. 그 때문에 아예 모든 외국인 학교를 정규학교로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정책을 취하는 것입니다.

 

(265)

물론 다른 길도 있습니다. 한일 시민사회가 진정한 교류를 해낸다면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을 뛰어넘어 진정한 평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한일관계에서 시민사회가 해낼 수 있는 역할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고 시간도 걸리겠지만 한국사회에는 충분한 저력이 있습니다. 지난 촛불혁명을 돌이켜 보면 우리가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272)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일관계를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과 협력하지 못하면 동아시아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역시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지요. 물론 한국에는 북한이라는 동족이 있지만 이미 70년이나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장래 북한과 공존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당장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지요. 또한 중국은 어쩔 수 없이 한국에는 큰 나라일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일본을 포기하면,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대립 사이에 끼어서 한반도는 영원히 분단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싫든 좋든 실리적으로 이웃인 일본과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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