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내 부모는 늙었다고,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지. 그들은 앞으로 우리는 말을 타듯이 날게 되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여자들은 수염을 달고 남자들은 보석으로 치장하리라는 걸. 내 부모의 세계는 죽었어. 넌 좀비를 무서워하지만 네가 무서워해야 할 건 바로 그 세계라고. 그 세계는 죽었는데도 여전히 움직이거든. 누구도 그것을 보고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까. 바로 그런 까닭에 그건 위험한 세계야. 그 세계는 저절로 무너져.”

 

(199-200)

나의 표정에 별항은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입을 헤벌리고 나를 응시했으니까.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리석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대리석은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의 평행 육면체였다. 나의 구상을 실현하기에 완벽했다. 하지만 비올라의 생일은 11 22일까지는 고작 열흘이 남았다. 나는 제일 좋은 도구를, 치오가 날은 닳고 자루는 갈라져서 손가락에 가시만 남기는 도구들을 쓰게 하고는 만져 보는 것조차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던 도구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야만 할 바로 그 장소를 쪼았다. 별항이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258)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조각하는가가 아니야. 왜 그것을 하는가이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봤니? 그게 뭘까, 조각한다는 게? <형체를 부여하기 위해 돌을 쫀다>라는 답은 하지 마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잖니.”

스스로에게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던 질문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었고, 나는 아는 척하지도 않았다. 메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조각을 한다는 게 뭔지 깨닫는 날, 넌 단순한 분수대만으로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할 거다. 그동안, 미모, 충고 하나 하지. 인내하라. 이 강, 변함없이 고요한 이 강처럼 말이야. 이 강, 아르노강이 화를 낸다는 생각하니?”

 

(357)

많은 사람들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든 피에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려고 옷 주름의 완벽함, 해부학적 정확성, 몸짓의 우아함, 그 밖의 이런저런 것들을 강조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전문가들이야 불쾌하든 말든,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은 얼굴에 있다. 성모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한, 그는 자신의 성모를 곱사등이로 만들어도 괜찮았을 거다. 거의 패배한, 피로가 포기의 순간, 영혼을 내맡긴 그 순간에 포착된 여인의 얼굴. <포착된>이라는 말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조각가가 그 모습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미켈란젤로는 스냅 사진을 찍은 거였다. 단순한 끌과 대리석 덩어리만으로 무장하고 전투를 치러 낸 3.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이 그 얼굴의 전부는 아니다. 그 얼굴에는 자신에게 벌어졌던 모든 일이, 앞으로 곧 일어나려고 하는 모든 일이 담겨 있다. 그 지점으로 데리고 온 시간과 다가옴을 예고하는 시간이, 수백만 초의 죽음과 또 다른 수백만 초의 약속이.

 

(376-377)

비올라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바람이 일면서 마지막이 남아있던 몇 조각의 안개들을 몰고 갔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지? 시로코인가? 포넨테인가, 미스트랄인가, 그레크인가? 혹은 비올라가 말해 준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바람일 수도? 나는 비올라를 다시 만나면 모든 것이 보다 단수해지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바람에도 수도 없이 많은 이름을 붙이는 세상에 단순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422)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만약 전부 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겠지, 미모. 네가 단 한 번도 틀리는 법 없이 처음부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넌 신인 거야. 네게 품은 그 모든 사랑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조차 신을 낳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428)

나는 정치를 하지 않았고 종교에 귀의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종교는 피하는 게 가능하다면, 정치는 퇴폐적인 애인이라 그 열정에 사로잡히고 만다.

 

(493)

나는 당신들이 일으킨 전쟁 한복판에 우뚝 선 여자다 / 나는 당신들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 당신들이 부르는 여자다 / 하지만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자마자 당신들이 불태울 여자이며 혹시라도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내가 보게 될까 봐 / 당신들은 나를 재로 만들어 사방에 뿌려 버리리라, 아니, 당신들의 불은 뜨겁지 않고 아무것도 태우지 못하니 당신들은 그저 그런다고 생각할 뿐 / 나는 우뚝 선 여자다, 나는 당신들만큼이나 귀하다.”

 

(546-547)

비올라는 단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고마웠다. 비올라가 입원해 있으면서 왜 나를 멀리했는지 그제야 이해했다. 이제 그 시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모든 감옥은 다 거기서 거기이니까. 수감자들 역시 동일한 죄를 저질렀다. ,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믿었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를 냈다는 죄.

 

(595)

떠나자, 비올라. 난 이런 폭력에 신물이 나.”

떠난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최악의 폭력, 그건 관습이지. 나 같은 여자, 똑똑한 여자, 난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해. 그런 여자가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습. 그런 말을 하도 듣다 보니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고, 뭔가 비밀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어. 그 유일한 비밀이라는 건 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더라. 내 오빠들, 그리고 감발레네 사람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이 보호하려고 앴는 건 바로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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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알라딘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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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람들은 지금이 역사상 전례가 없을 만큼 사실이 통하지 않는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럴 만하다. 비근한 예로, 현재 미국 대통령이 매일같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건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무엇이 사실인지 자기도 모르면서, 알아볼 생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별반 다를 게 없다. <워싱턴 포스트> 팩트체킹 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사 작성 시점 기준으로 취임 이래 869일 동안 거짓이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주장 10,796건 했다고 한다. 특히 2018년은 유례없는 기만의 해였다고 한다.

 

(26)

진실은 아버지를 하나만 두었으나 거짓말은 수천 명의 사내가 낳는 사생아로서 여기저기 곳곳에서 태어난다라고 1606년 앨리자베스 시대의 작가 토머스 데커는 한탄한 바 있다. 16세기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수필 <거짓말쟁이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짓의 얼굴이 진실의 얼굴처럼 하나뿐이었다면 상황은 더 나았을 것이다. (…) 하지만 진실의 반대는 그 모습이 수십만 가지이며 펼쳐질 마당이 무한이니 거기엔 끝도 한계도 없다.”

 

(30-31)

그 밖의 종류로는 우선 여론몰이라는 게 있다. 정치인들의 기만술책 중 하나다. 여론몰이의 교묘한 점은 꼭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놓고 거짓말하는 정치인도 많지만, 여론몰이 기술의 정점은 진실만 말하면서도 완전히 거짓된 주장을 펴는 것이다. 정직의 벽돌을 가지고 허튼소리의 집을 짓는다고나 할까. 그 다음으로는 망상이라는 게 있다. 틀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철석같이 믿는 능력으로, 그 형태는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집단 히스테리에 빠지거나 대세에 굴종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아마도 가장 만연하게 퍼져 있고 피해도 가장 큰 형태가 되겠는데, ‘개소리라는 게 있다.

 

(46)

심지어는 거짓이 거짓으로 드러난 후에도 진실이 퍼지는 데는 걸림돌이 있어서, 이미 퍼져나간 거짓을 따라잡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 걸림돌이란 간단하다. 우리는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정말 싫어한다. 우리 뇌가 그걸 질색한다. 그리고 각종 인지 편향 때문에 자기가 잘못 짚었을 가능성을 좀처럼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거짓에 속았음을 용케 깨닫는다 해도 각종 사회적 압력 때문에 자신의 오류를 숨기고 싶어 한다. 구라의 마수에 일단 걸려들고 나면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잃기 쉽다.

 

(66)

당시엔 뉴스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이처럼 어이없게 바라보는 시선이 팽배했을 뿐 아니라, 인쇄물의 폭증이 인간과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불안감도 만연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정보 과부하에 대한 우려가 심각했고, 불길한 말들이 나돌았다. 1685년 프랑스 학자 아드리앵 바예는 이렇게 암울하게 예측했다. “하루가 다르게 엄청난 기세로 폭증하는 서적으로 인해 앞으로 다가올 수백 년은 로마제국 멸망에 뒤이은 수백 년에 못지않은 야만시대로 퇴보하리라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

 

(68)

사실 악의적인 소책자에 대한 비판은 17세기에 흔했다. 소수의 엘리트 계급을 대상으로 했던 초창기 뉴스레터는 정보의 신뢰성에 근거한 평판으로 먹고 살았다. 하지만 당시 쏟아져 나오던 인쇄물은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었다. 최신 뉴스에 중독된 사람도 많았지만, 그에 대한 불신 역시 만연했다. 인쇄물에 적힌 내용이라고 하면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일쑤였고, 여전히 손으로 쓴 편지가 근본적으로 더 믿을 만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77)

첫 사기 시도를 보란 듯이 성공시킨 프랭클린은 기분 좋게 그다음 행각을 이어나갔다. 1730년에는 자신이 필라델피아에서 간행하던 신문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에 한 마녀재판에 관한 기사를 완전히 지어내서 실었다. 실제로는 당시 미국에서 수십 년간 이렇게 할 마녀재판이 열린 적이 없었다. 그런 다음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으로 옮겨가서-또다시 가상의 인물이 되어 글을 쓰면서-불쌍한 타이탄 리즈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97)

보통 날조, 위조, 가장을 뜻하는 ‘faking’이라는 단어는 그 이전까지 주류 담론에서 다루어지는 개념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도둑, 사기꾼, 배우 등 일부 불미스러운 직업군에서 쓰이는 은어였을 뿐이다. 앞서 뱀 기사를 연구했던 언론사학자 터커에 따르면, 그 용어는 1880년대 말 바야흐로 새로운 직업군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언론인 업계에 상륙했다. 그런데 그 말뜻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저지르면 업계에서 매장당하는 죄악같은 개념이 아니었다. 몇몇 연구자들에 따르면 ‘faking’ 꾸며내기는 언론인의 필수능력으로 여겨졌다.

 

(189)

정치인이 거짓말을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큰 거짓말도 하고, 작은 거짓말도 하고, 온갖 크기의 거짓말을 다 한다. 직업 신뢰도를 조사해보면 정치인이 꼬박꼬박 꼴찌로 나온다. 부동산 중개업자와 심지어 (믿기지 않지만) 언론인보다도 더 낮게 나온다. ‘정치인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대다수의 정치인은 사실 생각만큼 그렇게 거짓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게 대체 뭔 소린가 싶을 것이다. 특히 작금의…… (막연히 세상에 대고 손짓하며) 이런저런 사태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하지만 믿어주기 바란다. 정치인들의 말을 팩트체킹하는 게 내 직업니다. 사실 정치라는 직업 활동에서 거짓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가 흔히 가진 통념보다 아주, 아주 적다.

 

(191)

정치인은 일어나서 아침밥 먹기 전에 여섯 번은 거짓말할 기회가 있다. 그뿐 아니라 거짓말하기 좋은 무대와 잘 들어주는 청중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항상 듣기 좋거나 무대와 잘 들어주는 청중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항상 듣기 좋거나 화를 돋우는 거짓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곧 좋은 시대가 온다거나, 우리가 고생하는 게 누군가의 탓이라거나, 세상은 복잡하거나 애매하지 않고 흑과 백으로 시원하게 가를 수 있다거나 하는 말들 말이다. (방금 얘기가 남의 얘기처럼 들리는 독자가 있다면, 본인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268-269)

그런 노력이 통한다는 믿음을, 그리고 그런 노력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졌다고 세상은 진실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며 자포자기하는 태도는 그리 어른스럽다고 하기 어렵다. 인터넷은 개소리 생산 공장이고 아무도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는 생각도 역시 바람직하진 않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살펴봤지만, 사람들이 그런 우려를 하는 게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루머의 난무, 신생 통신 기술에 대한 집단 공황, 가짜 뉴스에 대한 공포, 정보의 홍수에 대한 두려움, 전부 여러 세기 동안 있었던 현상이다. 과거에도 잘 넘겨냈고, 이번에는 잘 넘겨낼 수 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하고 자포자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가짜 뉴스담론의 제일 우려스러운 점은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믿는다는 점이 아니라, 진짜 뉴스도 믿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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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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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김기태 님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인터넷 서점 리뷰를 통해 알게 된 책으로 평이 좋아서 읽게 되었단다. 장편 소설인줄 알았는데, 단편 소설집이더구나. 소설이라는 것이 초반부에 상황 파악을 해야 하는데, 단편 소설집은 그런 소설마다 상황파악을 자주 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서 단편보다는 장편 소설을 선호하는 편이란다. 장편 소설은 책 한 권당 한번의 수고로움이 있으면 되니까 말이야. 그런데 오늘 소개할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책에 실린 모든 단편 소설들이 상황파악이 쉽고 명확했단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배경들이 소설의 소재가 되었어. 이 책에서는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포함하여 총 아홉 작품이 실려 있단다, 작가 김기태 님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인데, 2024년 젊은작가상도 수상하셨다고 하는구나.

 

1.

<세상 모든 바다>

요즘은 K팝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잖니. 그래서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이 전지구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닌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구나. 첫 번째 실린 <세상 모든 바다>라는 소설도 그런 배경으로 한 소설이란다. 주인공은 한국으로 유학 온 일본인 하쿠라는 사람이야. 하쿠는 오랜 유학 생활으로 우리나라 말도 능숙하게 할 줄 알아. 하쿠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 세상 모든 바다의 찐팬이었어. 세상 모든 바다(세모다)의 콘서트 티켓을 구하지 못한 하쿠는 밖에서도 보려고 콘서트장에 갔단다. 그리고 못 들어온 팬들을 위해 콘서트가 끝나고 콘서트장 밖에서 추가로 공연한다는 소문이 있었어. 콘서트 밖에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 하쿠는 그곳에서 영록이란 소년을 만났어. 영록도 세모다의 팬으로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했어. 후쿠는 영록에게 그 소문을 이야기해주었어. 세모다가 공연을 마치고 못 들어온 팬들을 위해 공연장 밖에서 공연한다는 소문. 그런데 비도 오고 해서 하쿠는 중간에 집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그곳에서 테러가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소문대로 세모다가 밖에서 공연을 했는데, 갑자기 총을 꺼내 들고 서로 쏘는 장면을 연출했대. 나중에 알고 보니 세모다 팬들이 세모다인 척 공연을 하고 가짜 총으로 그런 퍼포먼스를 한 것이라고 했어. 그런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실제상황인줄 알고 도망가다가 압사사고가 발생하여 9명이 죽었다는 거야. 그 중에는 후쿠가 만났던 영록도 포함되어 있었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빠는 이태원 사건이 떠올랐는데 지은이는 그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아니었기를...

<롤링 선더 러브>

이 소설은 짝짓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모방한 소설이었단다.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본적은 없어. 그래도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라서 대충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알고 있어. 두 번째 소설 <롤링 선더 러브>솔로 농장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참가한 맹희라는 사람이 주인공이란다. 프로그램 이름에 농장이 들어가 있어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채소의 이름으로 참가하는데, 맹희는 완두라고 불렸단다. 그런데 맹희는 참가자보다 자신을 담당하는 PD에 더 호감을 갖게 되었어. 그러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단다.

<전조등>

어떤 평범한 한 남자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였어. 어린 시절부터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이야기가 이어지게 돼. 그런데 그의 삶에서 단 한번 평범하지 않았던 사건이 하나 있었어. 아내에게 청혼하려고 지방으로 여행을 갔고, 무엇인가 부딪힌 것 같아서 차를 세우고 밖에 나갔더니 오른쪽 전조등이 깨지고, 여자 신발이 하나 있었어.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단다.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어. 그 이후에도 그 일로 어디선가 연락이 올 것 같은 불안감읽는 이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단다. 그날 밤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러시아에 태어난 우리나라 교포 4.. 그러다가 부모님이 한국에 이주해서 살아서 한국에서 자라게 된 김 니콜라이. 김 니콜라이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는데, 국적이 러시아인이다 보니 외국노동자 취급을 받았어. 한국 영주권을 따려고 알아보았는데, 36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아야 했어. 외노자 신분으로 쉽지 않은 연봉이지. 애인이 자주 바뀌는 엄마랑 단 둘이 사는 권진주. 행정학과에 들어가서 공무원을 준비했지만 쉽지 않았어.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지. 권진주와 김 니콜라이는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졸업 이후 오랜만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고 그 이후 가끔씩 만나 밥을 먹고 그러다가 친해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MZ 세대들의 남녀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

<보편 교양>

이 작품이 가장 재미있던 것 같았어. 확신이 아니고 재미있던 것 같다고 한 이유는 읽은 지 좀 시간이 지났고, 비슷비슷한 재미 중에 이 소설이 살짝 더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서 그런 거야. 곽은 고등학교 문학 선생님이었어. 고등학교 3학년의 선택 과목으로 <고전 읽기>가 있어서 나름 아주 열심히 준비를 했단다. 그런데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과목을 선택한 아이들이었어. 대부분 아이들이 수업시간을 자고, 서너 명이 듣는 둥 마는 둥 했어. 그런데 은재라는 학생만이 아주 열심히 들었단다. 은재가 자본론과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은재 아버지의 민원도 있었지만, 은재가 아버지를 잘 설득하여 큰 문제도 없었어. 3, 1년 내내 열심히 고전을 읽은 은재. 곽은 은재의 생기부에 아주 정성 들여 과목 활동한 것에 잘 써주었어. 그런데 은재가 서울대에 합격을 한 거야. 그 고등학교는 매년 한 명만 서울대에 합격하는데, 그 해에는 은재가 예상치 못하게 서울대에 합격하여 두 명이 합격한 거야. 학교는 난리가 났지. 교장도 기분이 좋아졌어. 다음 해는 <고전 읽기> 과목을 더 활성화해 달라는 말과 함께

<로나, 우리의 별>

TV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으로 월드 스타가 된 오로나에 관한 이야기란다.

<태엽은 12 1/2바퀴>

은혜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남자. 20여 년 전부터 숙박업을 했어. 예전에는 은혜장이라는 여관을 운영했는데, 딸의 조언으로 은혜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을 해서 한때 번성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손님이 거의 들지 않는 숙소가 되어 버렸어. 은혜가 아홉 살 때 아내를 잃고 혼자 은혜를 키웠고, 은혜는 지금은 타지에서 일하고 있었어. 손님이 거의 없는 숙소에 낯선 손님이 한 명 찾아오면서, 스릴러 소설의 냄새를 풍기면서 긴장감을 갖고 읽게 하는 소설이었단다.

<무겁고 높은>

탄광이 지금은 모두 문을 닫고, 카지노가 들어선 마을. 엄마는 도망하고, 아빠와 단 둘이 지내는 송희가 주인공이란다. 중학교 때 역도를 시작했어. 역도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고, 무거운 것을 버리는 느낌이 좋아서 역도를 한 것이야. 3이 될 때까지 입상 한번 못했어. 송희도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꿈인 100Kg을 들고 나면 역도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100Kg을 들지 못하고 역도를 그만 두었단다.

….

<팍스 아토미카>

팍스 아토미카라는 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들이 핵무기를 경쟁적으로 만들었는데, 그런 핵무기로 인해 세계 평화가 유지된다는 뜻이란다.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가 주인공인 소설로 주인공은 모든 것을 의심을 했어. 자신도 그런 문제점을 알고 있어 정신병자인지 병원에도 가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란다.

이렇게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조금씩 모두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몇몇 작품은 줄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아서 언제나 그렇듯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해해주길 바래. 아빠가 오늘 독서편지를 시작하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주변의 일상들을 소재로 해서 술술 잘 읽혀서 좋았단다. 필력도 나쁘지 않아서 장편 소설도 잘 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번 기대해 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당신은 세상 모든 바다의 팬입니까.

책의 끝 문장: “확실히 그렇네요



세상은 정치적인 음악가에게는 약간의 존경을 적선하지만, 정치하는 음악가에게는 무자비하다는 걸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언론은 정치에 발을 들였던 예술가들의 궁색한 말로와 군소정당의 반복적 실패를 부각중이다. 호사가들은 로나의 선언을 유력 정당 공천을 유리한 조건에 받기 위한 포석으로 폄하하고 있다.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은, 팬들조차 그녀가 ‘순수함’을 잃었다고 손가락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대 또는 아스팔트에 있어야만, 허락된 자리에 머물러야만 보존되는 ‘순수함’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 P204

공항이란 무섭다. 들어가도 되는 곳과 들어가면 안 되는 곳과 들어가야 하는 곳이 정해져 있다. 들고 가도 되는 것과 들고 가면 안 되는 것과 들고 가야 하는 것도 정해져 있다. 그렇게나 엄격하면서 정작 중대한 사정들은 내게 알려주지 않는다. 작은 딱지를 붙인 내 가방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내가 세상 저편이 갈 때까지 가방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떻게 내 손에 다시 쥐어질 수 있을까. 내 운명도 가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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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301)

몇몇 생애는 한 단 한 단 올라가는 층계와 같다. 매 시기마다 이전에 이룬 것을 바탕으로 그 위에 한 단을 더 높이 쌓아 올리는 식이다.

다른 생애들은 붕 하고 포물선을 그리는 날쌘 창의 궤적과 같다. 오직 한 가지에만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이다. 그 시작으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 얼마나 장려하게 집중되어 있는 인생행로인가. 그 날아간 길이 너무도 참되고 확실하여 숙명론의 증거가 될 것만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생애들은 도리어 호숫가의 돌덩이를 넘어 앞으로 가는 있는 어린애의 걸음과 닮았다. 지금은 오르다가, 지금은 내리다가, 목적지는 항상 가려서 안 보이고. 이제 발목이 삐끗하고, 이제 샌드위치를 흘리고, 이제 낚싯바늘이 얼굴에 와 부딪히고.

 

(303)

목적지를 결정하면 항상 날씨가 나아지는 법이다. 아니면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라도 든다. 비록 태양은 여전히 거칠고 바람은 약했지만, 그리고 높은 습도 탓에 젖은 코트를 입은 것처럼 몸이 무거웠지만 한동아리 아닌 한동아리 일행들은 탄력 있는 걸음걸이로 걸어나갔다.

 

(538)

이해가 안 되는데. 먼치킨랜드인들은 네사로즈를 독재자로 여기지 않았나? 물론, 네사로즈가 분리 독립을 주창한 사람인 건 맞아요! 그러니까 그녀가 먼치킨랜드 자유령의 어머니인 거죠. 하지만 먼치킨랜드인들은 네사로즈의 독단적인 경건 때문에 나중엔 진절머리를 냈잖아요. 아무튼, 네사로즈를 동쪽 나라의 사악한 마녀라고 부른 장본인이 바로 그 사람들 아니냔 말이에요. 이제 와서 갑자기 그이들이 네사로즈를 그리워하게 됐단 말인가요? 운이 나빠서 네사로즈를 치어 버린 범인을 재판에 회부할 만큼?”

 

(572)

거기에 진전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더 많은 의미가 그 속에 깃들어 있는데, 어찌해 볼 수 있는 건 더 적어질 뿐이다. 인생을 살아가고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욱 구체적으로 손 안에 잡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찰나 찰나가 아주 미세한 것들이 모두 소중해진다. 살아온 인생, 지내 온 시간들이 갈수록 모순에 차고 역설로 아로새겨지고 불가해한 것이 되어 가지만 그 때문에 의미가 없어지는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아마도, 해명되는 것이 적을수록 더욱 의미 깊은 것이다. (총합이 문제되는) 수학 방정식과 같지 않을수록, (결정적인 비밀에 좌우되는) 음악과 더욱 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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