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밀양, 약산 김원봉이 태어난 도시다. 약산의 평생지기 석정 윤세주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약산의 고모부 백민 황상규를 비롯해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독립유공 애국지사만 80여 명이다. 안동과 더불어 인구대비 가장 많은 숫자다. 한마디로 독립유공자의 산실과 같은 장소다. 2018년 봄 약산의 생가터에 밀양시가 의열기념관을 세우고 나서 밀양을 찾아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그러나 2019년 들어 밀양시가 친일파 박시춘을 중심으로 한 <가요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지사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약산의 생질 김태영 박사와 밀양 출신 청년들을 중심으로 가요박물관 건립을 막고 있다.


(28-30)

반 토막 난 독립운동사에 약산의 이름을 올려야겠다고 결심한 첫 번째 이유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친일파 7인 김백일, 김홍준, 신응균,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이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만주군에 복무하면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인사들이다. 게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아래 다시 국군으로 돌아와 보란 듯이 현역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 높은 자리로 영전했고 각각 군 사령관과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이 됐다.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묻힌 일본군 장교 출신 신태영과 이응준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요 인사 묘역과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들이 묻힌 장군 제2묘역이 있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들 친일파의 묘역이 애국지사 묘역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한 탓에 친일파 무덤이 애국지사 무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형태다. 더 화가 나는 건 이름 없이 쓰러져간 수만의 독립군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대한독립군 무명 용사 위령탑역시 친일파 묘역 입구 하단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위령탑 아래가 의열단 출신 김익상과 김상옥, 박재혁, 곽재기, 최수봉, 이종암 등이 잠든 애국지사 묘역이다. 한마디로 친일파의 무덤이 조국 독립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다 바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보다 더 높고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있다는 말이다.


(75-76)

1910년에 태어나, 약산보다 정확히 12살 어렸던 박차정 지사는, 집안이 모두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대한제국 탁지부 주사를 지냈던 부친 박용한은 일제의 침략에 분노해 자결했다. 숙부 박일형과 친척들, 오빠들도 모두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외가 쪽 역시 독립운동가 김두전과 김두봉이 친척인 집안이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 때문에 신간회, 의열단 등에서 활동한 큰오빠 박문희, 둘째 오빠 박문호 등과 함께 박차정 지사 역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일찍이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일신여학교 시절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독리운동가로 활약했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 1월 서울 여학생 시위사건을 배후에서 지도했다. 그러나 근우회 사건으로 구금된 다음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병석에 누워있던 박차정 지사를 의열단에 몸담고 있던 둘째 오빠 박문호가 불렀고, 지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합류했다. 1930년 봄의 일이다.


(100)

<의열단 공약 10>

1. 천하의 정의를 맹렬히 실행한다.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해 신명을 희생한다.

3.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히 자라야 의열단원이 된다.

4. 단의(團義)를 우선하고, 단원의 의()도 급히 실행한다.

5. 의백 일인을 선출해 단체를 대표케 한다.

6.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매월 일차식 사정을 보고한다.

7.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초회(招會)(부름)에 반드시 응답한다.

8. 피사(被死)(죽음을 피하지) 아니하며 단의의 전력을 다한다.

9. 하나의 아홉을 위하여 아홉이 하나를 위해 헌신한다.

10. 단의(團義)를 배반한 자는 척살한다.


(103)

그러나 백민 황상규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 1차 의열단 의거 실패 후 감옥에서 6년여를 보냈다. 출소 후에도 밀양에서 지역 운동을 전개하며 지역 리더로서의 역할을 실천했다. 1927 12월부터는 신간회의 밀양지회장으로 선출되고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고문 등으로 이미 몸이 쇠약해진 상태, 한때 관운장이라 불릴 정도로 강인한 그였지만 과로 등이 겹치며 결핵성 복막염을 앓았다. 1929 11월 광주학생사건이 터지자 황상규는 진상조사단이 돼 몸을 돌보지 않고 사건을 알렸다. 결국 더 이상 버티질 못했다. 1930년 초 황상규는 다시 고향에 돌아와야만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 9월 황상규는 눈을 감는다. 사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발생한 폐결핵과 복막염 악화. 의열단의 정신적 스승이자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던 백민 황상규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135)

부산 출신 박재혁은 1920 9월 초 상하이를 떠나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1920 9 14일 고서상으로 위장한 박재혁은 부산경찰서 서장 하시모토 슈헤이와 마주한다. 그리곤 고서 상자 속에서 미리 준비한 폭탄을 꺼내들고 하시모토에게 나는 상하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들을 잡아 우리 계획을 깨뜨린 까닭에 우리는 너를 죽인다라고 외치며 폭탄을 투척한다. 폭탄에 맞은 서장은 수일 뒤 사망했다.

박재혁 역시 현장에서 폭탄을 맞아 부상을 당하고 체포됐다. 1921 3,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과 상처로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사형 선고 전, ‘왜놈의 손에서 욕보지 말고 차라리 내 손으로 죽겠다라고 결심한 뒤 곡기를 끊고 단식하다 옥사하였다. 의열단다운 결기였다.


(149-150)

김산은 의열단 의백 김원봉과 의열단원 김성숙과 특히 사이가 가까웠다. 베이징에서 자주 모임을 가질 만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다. 이 만남은 훗날 황포군관학교라는 공통분모까지 이어진다. 그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김산과 약산 모두 책벌레였다. 특히 두 사람이 다 러시아 문학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두 사람은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그만큼 머리도 비상했다. 중앙학교-덕화학교당-금릉대-신흥무관학교를 거친 약산의 비상한 머리야 익히 알려진 바고, 김산 역시 신흥무관학교-난카이대-협화의대-황포군관학교-중산대 등을 거친 수재였다.


(232-233)

그런데 이곳(금릉대학)이 우리 역사에서 더욱 중요하게 평가돼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1935 7, 기라성 같은 애국지사들이 금릉대학교 강당인 대례당에 모여 민족혁명당을 만든다. 면면이 화려했는데 의열단 출신은 약산을 필두로 석정 윤세주, 진이로, 박효삼이 함께 했고, 신한독립당 출신으로 지청천과 신익희, 윤기섭이, 조선혁명당 출신은 최동오와 김학교가 함께 했다. 김두봉과 조소앙, 김규식, 김상덕, 최창익, 허정숙, 안광천 등도 동참했다. 220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함께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김구는 위해 중앙집행위원회의 집행위원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었으나 마지막까지 고사했다. 임시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위원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서기부와 조직부와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했다. 서기부의 부장은 약산, 조직부의 부장은 김두봉이 맡았다.


(302-303)

두 사람(김구, 김원봉)은 진심으로 화합해 조국 독립을 바랐다.

우리 두 사람은 3.1운동 이후 해외에서 일본제국주의를 향해 계속 분투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한 개의 강적에 대한 투쟁을 통일적으로 강하고 유력하게 진행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군중을 떠난 우리 두 사람의 특수환경의 영향도 없지 않았으나, 주로는 우리가 민족적 경각성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족혁명의 전략적 임무를 정확히 파악 실천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과거 수십 년간 우리 민족운동 사상의 파쟁으로 인한 참담한 실패의 경험과 중국민족의 최후의 필승을 향하야 매진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민족적 총 단결의 교훈을 이전의 착오를 통해 통감한다. 우리 두 사람은 신성한 조선 민족 해방의 대업을 위해 동심협력할 것을 동지동포 앞에 고백하는 동시에 목전의 내외 정세와 현 단계의 우리 정치 주장을 이하에 진술하려 한다.”


(328)

다만 1942년 인도의 영국군 총사령부는 조선민족혁명당에게 인도 버마 전선에 공작원 파견을 요청한 것이 사실이다. 이 시기는 이미 약산이 임정과 광복군 참여를 결정한 상황, 약산은 최종적으로 광복군 이름으로 공작원을 인도에 파견한다. 그리고 43 5월 인도 주둔 영국군과 조선민족혁명당은 조선민족군선전연락대파견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43 8월 최성오와 주세민 등을 인도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추가 파병은 이뤄지지 못했다. 약산이 영국군과 가까워지는 상황을 임정 내부에서 용인하지 않았다. 영국군과 공동 작전을 수행했기에 훈장을 받은 것으로 파악되자 정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다. 돌아보면 약산은 임정 참여 선언 후 광복군 부사령관 군무부장으로 역할했지만 내부에서 끊임없는 견제를 당하며 주요 작전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특히 1945년 광복군과 미국 OSS측의 합작훈련 추진 과정에서 약산은 광복군 부사령임에도 불구하고 작전에서 배제됐다. 약산이 임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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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

우리가 추상미술 앞에서 난해함을 느끼며 갸우뚱할지라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미 추상적 이미지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상품은 추상적으로 디자인되어 있고, 우리는 그 추상적 이미지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낍니다. 주변의 모든 건축물은 추상적으로 디자인된 공간을 무척 좋아하고, 심지어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고 있죠. 21세기에 와서는 누구나 좋아하는 미적 취향이 된 기하학적 추상’. 기하학적 추상에 숨겨져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미적 매력을 누구보다 앞서 또렷이 느낄 수 있는 심미안을 갖췄던 사람.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떳떳이 예술가. 그가 바로 몬드리안입니다.

(37)

그렇습니다. 그림을 꼭 사진 찍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려야 하는 절대적 이유가 있을까요? 그 고정관념을 제거하면, 그림은 평면 위에 화가가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장이 됩니다. 이렇게 유럽의 회화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고 벗어납니다. ,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화가가 더 자유롭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바로 이것이 피카소와 브라크가 20세기 초에 활짝 연 현대미술 혁명의 요체입니다.

(69)

그렇다면, 몬드리안은 고작 십자 모양(+)으로 어떻게 미의 진리를 회화에 표현한 것일까? 그는 하얀 캔버스 평면 위에 여러 개의 수직선과 수평선을 직각 대립시켜 그렸을 때 자연스럽게사각형 평명()이 생성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수직선과 수평선을 많이 사용할수록 사각형 평면()의 수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더불어, 그 사각형 평면들이 놓인 위치크기모두 제각각임을 발견합니다. 몬드리안 화면 전체에 평형상태를 만들기 위해 수직선과 수평선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사각형 평면()위치 관계크기 관계를 조율합니다. 그 목적은 캔버스 화면 전체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화로운, 즉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해 필요하다면 사각형 평면()에 빨강, 파랑, 노랑, 흰색, 회색 등을 채워 사각형 색 평면을 만들어 색채 관계를 조율합니다.

(89)

수업이 트렌드에 매우 뒤처져 있다고 여긴 달리가 대학 울타리 안에서 고분고분할 리 만무했습니다. 교수보다 전위적이며 다른 학생보다 훨씬 뛰어난 그림을 그린다고 자신한 나르시시스트 달리는 반바지에 망토를 걸치고 다니며 괴짜 짓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신임 교수 취임식에서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취임식장을 박차고 나사 1년 정학 처분을 받습니다. 그 이후에도 괴짜 기질을 참지 못한 달리는 대학 미술사 시험 도중 심사위원인 교수들에게 심사위원들을 합쳐놓은 것보다 내가 더 똑똑하고, 주어진 문제를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심사받기를 거부한다고 말하며 퇴학당합니다. 이렇게 착실히 학교 다녀 교수가 되리라 믿은 달리 아버지의 꿈은 산산조각이 됩니다.

(128-129)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폭발 이미지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은 달리. 이제 달리의 관심사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원자의 세계가 되었죠. 그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원자 속 세계가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흥분합니다. 그는 물질세계의 본질을 회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해답이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에 있다고 여기며 원자물리학, 양자역학 공부에 빠져듭니다. 프로이트보다 하이젠베르크와 아인슈타인을 신봉하기 시작하죠.

(204-205)

제가 현대미술사에 기록되는 위대한예술가를 망나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살펴보면 아마 고개가 끄덕여질 겁니다. (정말 쓸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잭슨 폴록의 진짜 면모를 허례허식 없이 전하기 위해) 한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보자면, 폴록은 자신을 아껴준 스승 벤턴의 아내 리카와 불륜을 저지릅니다. 한술 더 떠 25세 폴록은 술에 찌든 상태로 리타로 찾아가 청혼까지 하지만 리카는 거절하죠. 그녀의 거절에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폴록은 벤턴을 찾아가 빌어먹을 놈, 내가 너보다 더 유명해지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역사에 기록하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과 인간성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227)

세상이 돕는 이런 긍정적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체면을 차리고 작업도 더욱 열심히 할 만했지만, 우리의 폴록은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벽화> 작업으로 창작의 고통을 느낀 것이 치유하기 어려운 큰 상처가 되었는지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난폭함은 점점 커져만 갔죠. 만취해 술집의 기물을 부수며 난동을 부리는 건 기본.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예삿일. 급기야 술집에서 폴록의 출입을 제한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렇게 뉴욕 술집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는 눈이 오면 취한 채 도로를 나뒹굴며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고, 눈 위에 오줌을 흩뿌리며 전 세계에 오줌을 싸겠다고 고성방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보통 망나니라고 부르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위대한 예술가상과는 꽤 다른 모습입니다.

(233)

폴록의 회화를 살펴보면 여전히 초현실주의 영향이 지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무의식을 활용해 예술 창작을 하고 싶었던) 초현실주의자들이 작은 종이위에 이성의 통제 없이 자유롭게 손을 써서그림을 그리는 자동기술법. 그것을 폴록은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손만이 아닌 몸 전체를 써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초현실주의자들과는 꽤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화가가 그림 안으로 들어가 그림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림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며 화가가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림이 자기만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 것. 폴록이 창작 과정에서 중시하는 이런 생각과 느낌은 폴록이 스스로 일종의 샤먼이 되어 그림과 교신하는 행위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점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플록의 특징이죠.

(282)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알리며 미국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명확히 헤게모니를 잡게 됩니다. 그때 뉴욕 미술계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전쟁을 피해 미국에 왔던 유럽 미술가들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버렸고, 미술관과 갤러리 등 제도권에서 미국 미술가들을 차별하는 분위기는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상황은 크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유럽의 전위 예술가들과 수년간 교류했던 미국 미술가들의 예술 세계가 크게 성숙한 것이죠. 더불어, 승전국이자 세계의 패권을 잡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생긴 자부심은 미국 미술가들 사이에 유럽의 예술을 추종하던 기성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독자성을 가진 진정한 미국적 예술을 창조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310)

내가 젊은 청년이었을 때 예술은 고독한 작업이었습니다. 갤러리도, 수집가도, 평론가도,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황금기였습니다. 우리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대신 비전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다.”

비관적인 연설. 모든 것을 가졌기에 잃을 일만 남아서일까?” 66세의 로스코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비전만이 찬란히 넘쳐흐르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심리 속 로스코의 내면에 남겨진 색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직 검정과 회색뿐이었습니다.

(319)

,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를 다른 시각으로 관찰하면, ‘복제의 시대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미디어에서 텍스트, 이미지, 영상이 무한히 반복적으로 복제되고 있고, 이제는 그 영향이 오프라인까지 범람하며 무엇이 원본이고 복제본인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죠. 이런 현대 사회의 특징을 (일찍이) 1960년대에 예리하게 간파해 예술에 절묘하게 녹인 예술가가 바로 앤디 워홀입니다.

(339-340)

더 나아가 워홀은 이런 미국의 사회 구조 속에서 하나의 진실을 발견합니다. 바로 기업이 상품을 반복적으로 생산하고, 미디어 광고를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소비자가 된 미국인은 광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소비를 반복한다는 진실. 다시 말해, ‘반복 생산, 반복 노출, 반복 소비의 문화를 발견합니다. 워홀은 미국의 사회 구조 속에 숨겨진 이 진실을 자신의 전매특허 미학으로 승화시키기로 합니다. 한마디로 반복’. 캠벨 수프 캔 하나를 그리던 워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중에 판매 중인 32종의 캠벨 수프 캔을 반복적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크기도, 형태도, 형식도 모두 완벽하게 표준화된 32개의 <캠벨 수프 캔>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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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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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2023년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타임 셸터>라는 책을 이야기했었잖아. 그 책을 살 때 2023년 맨 부커상 본상 수상작인 폴 린치의 <예언자의 노래>라는 책도 같이 샀단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바로 폴 핀치의 <예언자의 노래>라는 책이란다. 2023년 맨 부커상을 받은 폴 린치는 아일랜드 작가로 아빠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란다.

책 소개를 보다가 깜짝 놀랐단다. 국가 비상 사태를 다룬 소설이었단다. 지은이는 시리아 내전 소식을 접하고, 그 상황이 자신의 모국 아일랜드에서 일어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라는 가정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했단다. 몇 달 전 일어난 우리나라 비상계엄과 내란 소식을 지은이가 접했다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완전한 내란 종식을 위해서는 다음주 대선이 무척 중요하단다.

 

1.

래리 스택과 아일리시라는 평범한 부부가 있었어. 그들은 열일곱 살 마크를 첫째로 몰리, 베일리, 벤 이렇게 아이가 넷이었어. 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갓난 아이였단다. 아일리시는 미생물학자로 연구소에서 일하고, 래리 스택은 아일랜드 교원 노조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어. 소설 속 아일랜드는 비상대법권 상황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비상 계엄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조그마한 의혹에도 경찰에 연행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상황. 래리 스택은 어느날 경찰 출두의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왔어. 경찰서에서 무혐의로 나와도 계속 GNSB(치안국 비밀 경찰)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었어. 다른 노조 간부는 체포된 뒤 면회도 안 되는 경우도 있었어. 래리도 당분간 조심을 하겠다면서 집에서만 생활했단다.

반정부 시위가 있던 날, 아일리시는 래리를 만류했지만, 래리는 자신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위에 참석했단다. 하지만 그 시위에서 래리는 체포되었고, 연락 두절이 되었단다. 어디로 잡혀가서 조사를 받는지도 몰랐어. 정부 기관에 재판을 받도록 요구해 보려 했지만 방법도 없었고 그런 걸 요구하면 오히려 그 사람도 구속될 수 있다고 했어. 국가는 국민연합이라는 정당이 정권을 잡고, 비상대법권이 발동된 상태였어. 외국에서도 엄청 비난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 국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정당은 소설 속이나 현실에서나 암튼...

아일리시는 래리와 함께 구금된 사람의 아내와 만나 이야기해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단다. 정부기관에 편지를 보내봤지만 묵묵부답. 아일리시 가족은 신원조회에 보안위험인물로 분류되어 여권도 만들지 못했어. 아일리시는 혼자 사시면서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 있는 아버지 사이먼도 돌봐야 하고 네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남편은 연락 안되고.... 악몽 같은 시간이었단다. 그리고 17살 밖에 안된 마크에게 입영통지서가 나왔어. 상식 밖의 일들이 계속 벌어졌어. 17살 밖에 안된 아이들에 입영통지서가 나오다 보니, 학생들과 부모들이 시위를 시작했단다. 흰옷에 양초를 들고 평화 시위를 했지만, 경찰들은 강경 진압을 했고 수천 명이 체포되었단다. 시위에 참석했던 마크도 체포되었다가 며칠 만에 집에 돌아왔어.

아일리시는 마크를 군대 보내느니, 국경 밖 북아일랜드로 대피시키려고 했단다. 그러나 마크는 엄마 몰래 저항군에 들어가려고 집을 나섰단다. 얼마 후 아일리시는 직장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남편의 일로 연좌제로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야. 뿐만 아니라 자동차는 테러로 파손이 되었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버스 타고 학교에 다녀야 했단다. 그런데 며칠 뒤 베일리의 담임 선생님으로 전화가 왔는데, 베일리가 학교에 자주 결석한다는 거야. 아버지 사이먼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점점 심해졌어. 아일리시 혼자가 네 아이와 병든 아버지를 보살피는 것은 역부족이구나. 남편이 사라진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단다.

 

2.

저항군과 정부군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생필품을 살 때를 제외하고는 통행 금지령이 내려지고, 학교도 휴교령이 내려져서 집에만 있어야 했어. 전기와 물도 자주 끊겼어. 아일리시 집 근처에도 정부군들의 전선이 구축되었단다. 딸 몰리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정신적으로 점점 힘들어했단다. 정부군이 밀려 물러나고 반란군, 아니 저항군이 동네에 들어왔단다. 그래서 낮 시간 동안은 동행이 허용되어, 아일리시는 아버지를 데려오기 위해 아버지 집으로 갔어. 그 전에도 몇 번이나 아버지를 모시고 오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혼지 지내는 것이 편하다고 거절했어. 하지만 이번에는 강제라도 모시고 오려고 했어. 이번에는 아버지는 막무가내셔서 결국 혼자 집에 돌아왔단다.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왔는데, 캐나다에 살고 있는 동생이 보낸 사람이었어. 가족들을 나라 밖으로 빼내주겠다고 온 사람이었어. 하지만 아일리시는 남편 래리와 마크가 마음에 걸려서 갈 수 없다고 했단다. 며칠 뒤 아버지에 들렀는데 아버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단다. 인근 마을을 다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캐나다에 살고 있는 동생이 사람을 보내 아버지를 안전한 곳으로 모셨다는구나. 다행이구나.

….

정부군과 반란군의 전투가 심해지면서, 포탄이 그들의 집 근처에도 떨어져서 집 일부가 파손되기도 했어. 베일리가 작은 파편이 뒷머리 박히는 부상을 입게 되었단다. 몰리와 벤은 집에 두고, 아일리시는 베일리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갔어. 베일리는 병원에 맡겨 주고 집에 있는 아이들 때문에 집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다음날 베일리 상태를 보기 위해 병원에 갔는데, 베일리가 사라졌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거야. 아니, 보호자한테 말도 안하고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일리시는 병원에서 이야기해준 다른 병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베일리는 없었단다. 아일리시는 미친 듯이 베일리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시신안치소에서 찾을 수 있었어. 시신 상태는 엉망이 되어 있었는데, 사인은 심장마비였단다.

아일리시는 얼마나 분노가 치밀고 황망했을까. 하지만 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했어. 아일리시는 결국 탈출하기로 했단다. 몰리와 벤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고난의 탈출길이 시작되었는데, 그들이 보트에 탑승할 때까지 조마조마하면서 읽었단다. 끝내 래리와 마크는 돌아오지 못한 채, 남은 가족이 보트에 몸을 싣고 바다로 나아가면서 소설은 끝이 맺었단다. 이게 무슨 허무맹랑한 이야기냐고 할 수 있지만, 실패하기는 했지만 비상 계엄과 내란을 경험한 사람으로써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란이 실패하지 않고, 현재 우리나라가 총칼을 앞세운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해보렴. 이 소설 속의 일들이 일상이 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지난 12월은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단다.

아직 내란 수괴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그들을 동조하는 세력들이 국가기관 여기저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구나. 아직도 불안해 죽겠구나. 얼른 다시 안정적인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밤이 왔고 창가에 서서 정원을 내다보던 그녀는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책의 끝 문장: 바다가 삶이야.




아일리시, 다른 때였다면 불법 구금으로 고등법원에 고소했을 겁니다, 래리를 꺼내왔을 거예요. 하지만 국가비상법 때문에 인신보호영장(불법 구금 방지 목적으로 행하는 구속적부심사 제도)이 중지됐어요, 국가가 특별 권력으로 사실상 사법부의 입을 틀어막았어요. - P54

날씨에 기억이 있다. 하늘에 무르익은 봄이, 날렵한 제비가, 온통 새까만 칼새가 있다, 돌아온 새를 보면서 세월이 흐르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열매를 당연하게 여겼던 순수한 시절이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누군가 내미는 열매를 받아서 맛을 보지도 않고 깨물어 먹었고, 아무 생각 없이 씨방을 버렸다. 아일리시는 피닉스 공원에서 혼자 걸어 다니며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눈앞에 자기 생각밖에 보이지 않는다. 잎이 넓은 나무들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위를 올려다보며 저 나무들 밑에서 흘러간 시간을, 나무들이 나이테로 기록하는 세월을 생각한다. 세월이 흘러가고 그녀는 붙들 수 없다, 세월이 계속 흘러가지만 떠나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그것이 그녀를 끌고 간다. - P164

인생이라는 세월에 먼지가 쌓이고, 그 세월이 서서히 먼지로 변한다, 무엇이 남을까,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겠지, 한쪽 눈만 감아도 우리 모두 사라질 것이다. 바로 그때 래리가 곁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리지만 마주치는 것은 그녀의 슬픔이다, 아일리시는 양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캐럴의 말이 사실일 리가 없다고, 이제 무엇이 진실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말하고 또 말한다, 자신이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고, 다른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여움은 희망이라는 옷을 입은 슬픔이다. - P210

아빠는 늘 너와 함께 있어, 아일리시가 말한다. 떠나 있어도 마찬가지야, 그게 그 꿈의 의미야, 아빠는 항상 여기에 너와 함께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집에 온 거야. 왜냐면 아빠는 늘 네 마음속에 살아 있으니까, 아빠는 지금 여기서 팔로 너를 감싸고 있어, 아빠는 항상 여기 있을 거야. 왜냐면 어렸을 때 우리가 받은 사랑은 우리 안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아빠는 너를 너무 많이 사랑했어. 너에 대한 아빠의 사랑을 빼앗거나 지울 수는 없어, 나한테 설명을 묻지는 말고 그냥 진실이라고 믿어, 그게 진실이니까, 그게 인간 마음의 법칙이야. - P235

예언자들의 노래는 그 어느 때나 항상 반복되던 똑 같은 노래임을 깨닫는다, 칼의 도래, 불에 삼켜지는 세상, 정오에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태양, 어둠에 잠긴 세상, 곧 눈에 보이지 않도록 쫓겨날 사악함에 대해서 예언자가 길길이 날뛸 때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신의 분노,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 세상은 어느 곳에서는 늘 끝나고 또 끝나지만 다른 곳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은 늘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상의 종말이 당신 나라에 찾아가고 당신 동네를 방문하고 당신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머나먼 경고, 짤막한 뉴스, 전설이 되어버린 사건들의 메아리일 뿐이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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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5-28 00: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계엄 직후에 읽었거든요. 그 땐 진짜 심장이 부들부들 떨렸더랬죠. 계엄이 성공했으면 어쩔 뻔 했을까 무서웠구요. 이 책 정말 시기가 절묘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전세계가 막장으로 치닫는 걸까요. 베일리 너무 안타까웠어요ㅠㅠ

bookholic 2025-05-29 00:00   좋아요 2 | URL
세상이 정말 ‘정상‘의 정의가 바뀌고 있는 기분이 많이 듭니다.ㅜㅜ
우리나라는 아직 내란이 끝나지 않은 것 같구요.
계엄, 내란이 책 읽기를 엄청 방해하고 있는데,
얼른 안정적인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1-32)

바질은 이모진 비슬에게 달려가 자전거에 앉은 채 공연히 그녀 앞에 있었다. 그때 바질의 얼굴 무언가에 끌렸는지 이모진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미인으로 자라 몇 년 후면 많은 무도회에서 여왕으로 뽑힐 아이였다. 지금은 큼직한 갈색 눈동자와 아름다운 모양의 큼직한 입술, 여윈 광대에 어린 짙은 홍조 때문에 땅의 요정처럼 보였고, 아이가 아이다워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얼굴을 좋아하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바질은 미래를 내다보는 기분이었고, 이모진의 생기가 마력처럼 단숨에 그를 덮쳤다. 여자란 그와 정반대되는, 그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임을 난생처음 깨달으면서, 즐거움과 고통이 뒤섞인 포근한 냉기가 엄습해왔다. 이 명확한 경험을 그는 즉각적으로 의식했다. 여름 오후-보드라운 대기, 그늘진 산울타리와 소복이 핀 꽃들, 오렌지빛 햇살, 웃고 떠드는 소리, 길 건너편에서 뚱땅거리는 피아노-는 이모진에게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 모든 것을 떠난 향기는, 앉아서 방실거리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이모진의 얼굴로 스며들었다.


(63)

오랜 전통처럼 사내아이들은 어른이 된다는 개념에 집착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제약을 이따금 푸념하면서 말이다. 반면에 소년으로 지내는 것이 마냥 좋은 시절도 오랜 기간 존재하는데, 그 만족감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된다. 바질은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더러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에게 긴 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긴 바지가 갖고 싶긴 했지만, 의상으로 따지자면 풋볼 유니폼이나 경찰 제복, 심지어 밤에 뉴욕 거리를 누비는 괴도 신사들의 실크해트와 긴 망토만큼의 낭만도 없었다.


(112-113)

열다섯 살은 참으로 애매한 나이다. 손가락을 딱 짚으며 그땐 이랬었지라도 말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우울한 제이퀴즈는 열다섯 살을 언급하지 않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곤 소년기의 한창인 열세 살과 일종의 가짜 청년인 열일곱 살 사이의 언젠가, 두 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면서 생소한 경험들로 끊임없이 떠밀리고 어떤 대가도 치를 필요가 없던 시절로 되돌아가려 헛되이 몸부림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것뿐이다. 다행히도 그 시절에 우리가 어떻게 처신했는지는 우리 자신도 또래들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해 여름 바질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커튼을 걷어보려 한다.


(175-176)

창밖으로는 지나가는 차들의 빛줄기가 가을의 황혼을 가르고 있었다. 이 자동차들 안에는 위대한 풋볼 선수들과 사랑스러운 데뷔탕트들, 신비로운 여성 모험가들과 국제 스파이들이 타고 있었다. 부유하고 유쾌하며 매혹적인 이 사람들은 뉴욕의 화려한 댄스파티와 비밀스러운 카페에서, 혹은 가을 달 아래의 옥상 정원에서 이루어질 눈부신 만남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바질은 한숨 지었다. 이런 낭만적인 일에는 나중에 낄 수 있으리라. 먼저, 가지 넘치고 화술이 능란한 동시에 강인하고 진중하며 과묵한 사람이 될 것. 너그럽고 솔직하고 헌신적이면서도, 약간은 신비롭고 섬세하며 애수 어린 비통함까지 깃든 사람이 될 것. 밝으면서도 어두운 사람이 될 것. 이런 점들을 조화롭게 버무려 단 한 사람으로 녹여낼 것. , 그러려면 할 일이 있었다. 완벽한 인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바질은 야망의 황홀경에 취하고 말았다. 잠시 더 그의 영혼은 질주하는 빛을 따라 대도시로 향했다. 그러다 그는 결연히 일어나 담배를 창턱에 비벼 끈 다음 전기스탠드를 켜고 완벽한 인생의 요건들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257-258)

구제 불능의 주벌이 소유욕을 내뿜으며 다가오자, 바질의 심장은 분홍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장을 이리저리 배회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우유부단함의 안개에 갇혀버린 바질은 베란다로 나갔다. 때 이른 눈이 대기에 흩뿌려지고 있었고, 별들은 차가워 보였다. 별들을 올려다본 언제나처럼 그의 별들, 야망과 고투와 영광의 상징들이 보였다. 별들 사이로 바람은 그가 항상 귀 기울여 찾던 높은 원음(原音)을 나팔 소리처럼 울렸고, 전투를 위해 찢겨 가늘게 흩어진 구름은 열병식을 거행하며 지나갔다. 비할 데 없이 찬란하고 장엄한 광경 앞에, 사령관의 노련한 눈만이 그곳에서 하나의 별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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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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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박상현이라는 분이 쓴 <친애하는 슐츠씨>라는 책이란다. 지은이 박상현 님은 처음 알게 분으로, 저자 소개를 읽어보니 미국에서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온라인 뉴스매거진 오터레터를 운영한다고 하는구나. 이 책의 내용도 오터레터에 실렸던 내용들을 정리해서 출간한 책이야. 아빠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우연히 책 소개를 읽어보았는데 재미있을 것 같았고, 먼저 읽은 이들의 평점이 좋아서 읽게 되었단다.

책 제목에 나온 슐츠 씨는 누구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이따가 이야기해줄게. 이 책의 부제는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로 되어 있듯이, 이 책은 편견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로 할 수 있단다. 책의 시작은 지은이 어렸을 때 지은이의 아버지가 집에서 담배를 피웠던 기억으로 시작했어. 그렇듯 예전에 실내에서 담배 피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으까. 아빠도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실내에 담배 피는 공간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공간이었던 거지. 요즘 담배를 피려면 엄청 부지런을 떨어야 하고, 온갖 눈치를 다 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단다. 아빠가 만약 담배를 피웠더라도 게으름 때문에 끊었을 것 같구나.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담배에 대한 편견만큼 안 좋아진 것이 있을까 싶구나.

 

1.

편견이나 차별이라고 하면 인종 차별, 그것도 미국에서의 흑인에 대한 차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구나. 보통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마약범죄가 많다고들 알고 있단다. 하지만 이것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통계역설이 있단다. 만약 흑인의 1%가 마약을 하고, 백인도 1%가 마약을 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마약 범죄 조사를 흑인을 집중적으로 한다고 하면, 마약 사범은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게 되는 거야. 그래서 마약은 흑인이 많이 한다는 편견이 생겨나게 되고, 이후 마약 범죄를 조사할 때 흑인을 더 많이 조사하게 되는 거야. 이게 실제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야. 이렇게 흑인은 마약 같은 것을 한다는 안 좋은 편견이 생기면서, 사회 진출에도 알게 모르게 제약이 생기고, 그렇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흑인이 많아지는 악순환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인종 차별 말고 성차별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바지에 있는 호주머니도 편견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어. 여자 옷에 호주머니가 없거나 적은 것이 디자인 측면에서 고려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여성 차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오래 전에 호주머니는 남자들의 옷에만 있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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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05)

칼슨에 따르면 자유로운 남자들이 주머니를 독점하면서 주머니는 남성의 실용성과 호기심의 상징처럼 묘사되기 시작한다. 우선 남자가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에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포켓 사이즈(pocket-size)’ 버전이 생겨났다. 일하는 남자들이 언제든 도구를 꺼내어 사용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유능하다는 이미지를 준다.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던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이었다. 철학과 과학, 건축과 농업,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전형적인 계몽주의자였던 제퍼슨은 주머니에 작은 가위와 줄자, , , 온도계, 나침반 등 다양한 (포켓 사이즈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해서 걸어 다니는 계산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제퍼슨이 휴대한 물건 중에는 상아로 만든 노트도 있었다. 제퍼슨은 쓰고지울 수 있는 상아 노트에 생각을 적고 나중에 집에 가서 종이에 옮겼다고 한다. 그에게 주머니는 움직이는 실험실, 작업실이었던 셈이고 이는 계몽된 남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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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액정 수리를 하는 남자와 여자의 비율을 보면, 여자가 월등히 높은데, 그것도 여자 옷에 호주머니가 없거나 작은 여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는구나. , 그랬구나엄마가 핸드폰 액정을 가끔 깨는 이유가 다 있구나.

….

미국에서 인종 차별은 흑인 말고, 아시아 인종에 대한 차별도 있단다. 아무튼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백인 아니면 모두 무시하고 차별하는 성향이 있으니까중국을 상징하는 완톤 폰트라는 글씨체가 있어. 알파벳을 한자의 획처럼 쓰는 글자로, 중국 식당의 간판 등에 많이 이용하여 한 눈에 봐도 중국 식당임을 홍보하는데 쓰기 시작했대. 중국이나 아시아의 관련된 내용을 기록할 때 많이 사용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이나 아시아를 조롱하는 글씨체로 변질되어 사용하기도 했단다. 한국계 미국인 하원의원 앤디 김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선거 때 반대 진영 후보가 홍보물을 만들 때 앤디 김의 글씨체를 완톤 폰트로 써서 의연 중에 조롱하여 선거법에 걸리기도 했다는구나. 미국이란 나라의 인종 차별은 언제 사라질까 싶다가도 백인우월주의의 끝판왕인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기도 하구나.

간성(間性)인라는 사람이 있어.. 한자풀이를 하면 남성과 여성의 중간의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자이나 남자 호르몬이 많거나 남성 염색체를 지닌 사람들을 이야기한단다. 자신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차별과 편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단다. 예전에 성전환 수술한 사람이 육상 대회에 나와서 논란이 있던 적이 있었는데, 간성인은 태어나면서 신체적으로는 여성인데 남자 호르몬을 많이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야. 당연히 여자들이 하는 대회에 참석을 하겠지.. 캐스터 세메냐라는 육상선수도 그런 선수였어. 그에 대해 논란이 많아지면서, 여성과 남성의 기준을 생식기 기준이 아닌, 호르몬 수치로 규정해서 캐스터 세메냐 선수가 여자 경기에 참석을 못하는 상황까지 이어졌어. 법적 소송까지 이어졌다고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구나.

….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로 유명한 조니 뎁과 역시 영화배우인 그의 아내 엠버 허드의 가정 불화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단다. 조니 뎁은 가정폭력범으로 언론 기사에 실렸는데 이로 인해 손해를 봤다면서 조니 뎁은 소송을 걸었고, 보수적인 영국에서는 의외로 조니 뎁이 승리하였고, 미국에서는 조니 뎁이 패배했다고 하는구나. 언론의 역할에 대한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구나. 언론이 잘했니, 잘못 했니를 따지기 전에 조니 뎁의 행실에 먼저 문제가 있다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소송도 소송이지만, 먼저 반생하고 새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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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이렇게 조니 뎁의 인기가 시들어가던 시기가 앰버 허드와 결혼 생활을 하던 때라고 해서 허드를 악처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허드가 가정에서 어떤 사람이었느냐와 상관없이 뎁의 인기하락은 본인의 관리 능력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 할리우드에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 남자 배우가 자기관리에 실패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런 인물로 대표적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우니 주니어는 그런 일을 젊은 시절에 겪으며 바닥을 치고 올라온 반면 뎁은 50이 넘어 인기가 사그라지는 시점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연예계 소식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한 <롤링스톤> 2018년에 실은 기사 조니 뎁의 문제는 이 모든 잘못이 분명하게 뎁 본인에게 있다고 설명한다. 이 기사는 조니 뎁은 술과 마약에 취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났으며,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라이트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현재 뎁은 재산을 날리고 고립되어 있으며 한 번만 더 실수하면 업계에서 추방당할 것이라는 잔인한 진단을 내렸다. 앰버 허드의 칼럼보다 4년 앞서 나온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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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이제 책 제목에 나온 슐츠 씨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찰스 슐츠라는 사람이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낯선 이름이겠지만, 그가 그린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구나. 그는 스누피, 찰리 브라운 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 <피너츠>의 작가란다. 그는 1922년생으로 처음 만화를 그리고 한동안 스포츠를 하는 장면은 남자들만 등장했다고 해. 당시 시대적으로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말이야.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라톤 대회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여자가 처음으로 뛴 것은 1966년이었대. 1966년에 뛴 것은 비공식적인 것으로 경기를 뛰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지당하기도 했다는구나. 1967년에서야 공식적으로 여자가 처음으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었대. 그만큼 당시 스포츠는 남성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지배적이었어.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거 찰스 슐츠에게 여자아이가 스포츠하는 장면도 그려달라고 했대. 찰스 슐츠는 빌리 진 킹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고, 이후 여자 아이가 스포츠하는 장면을 자주 등장시켰다고 하는구나. 그로 인해 스포츠는 남성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슐츠 씨는 여성 차별뿐만 아니라 흑인 차별을 깨는데도 일조를 했어. 자신의 만화 <피너츠>에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거야. 그가 흑인 캐릭터를 처음 등장시킨 것은 1968년으로 흑인인권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단다. 어떤 사람이 슐츠에게 흑인 캐릭터를 그려달라고 요청을 받고, 슐츠 씨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준비를 하고 흑인 캐릭터를 추가하였다고 하는구나. 그것도 좋은 역할로 말이야. 슐츠 씨를 친애할 만 하구나.

1960년대 흑인인권운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루터 마틴 킹 목사란다. 그는 비폭력 흑인인권운동의 공로로 196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1964년 이후 가끔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게 되었어. 루터 마틴 킹도 비폭력주의를 주장하지만, 흑인들의 폭동도 이해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백인들이 흑인인권운동과 루터 마틴 킹을 바라보는 인식이 좀 바뀌었대. 흑인인권운동으로 흑인들의 권리가 어느 정도 올라왔지만, 여전히 백인들에 비해 권리가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흑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계속 주장하는데, 백인들은 흑인들의 권리와 혜택이 어느 정도 늘어났는데, 왜 아직도 불만이 많냐는 식으로 생각했다는구나. 중도층의 백인들도 흑인 차별을 나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자신과 동등한 권리와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안 좋게 생각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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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하지만 미국의 중산층 백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흑인들의 상황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제 중요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 상황에서 흑인들의 추가적인 요구는 지나치다고 여겼다. 사회의 변화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니 성급하게 요구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백인들의 생각에 대해 킹 목사는 유명한 <버밍햄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종분리의 날카로운 고통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기다리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나운 무리가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침없이 폭행해서 죽이고 당신의 형제와 자매를 물에 던져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면, 증오가 가득한 경찰이 흑인을 욕하고 발로 차고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면 (…) 기다리는 것이 왜 힘든지 이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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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차별을 이야기할 때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빼놓을 수 없을 거야. 쥬디 휴먼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평생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쥬디는 어머니의 노력으로 일반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교직에 취업을 하게 되었지만 장애인이기 때문에 취업의 길이 막히게 되었어. 이 때부터 장애인인권운동에 평생을 헌신하게 되었대. 그로 인해 장애인 관련 법들이 많이 제정되었다고 하는구나.

마지막으로 일본이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를 해야겠다. 혼혈로 오사카는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는 선수로 일본에 잘 하는 테니스 선수가 있어 배가 아픈 것도 있던 것도 사실이란다. 그래서 오사카 나오미에 대한 기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런데 오사카 나오미는 스포츠 선수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스포츠 선수들의 정신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해 무시를 하는 단체와 언론을 상태로 쓴 소리를 내면서 스포츠 인권 신장에 노력을 했다는구나. 오사카 나오미 선수, 좀 멋진 것 같구나. 아빠가 테니스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선수가 잘 되었으면 좋겠구나.

….

대충 아빠가 괜찮게 읽은 부분에 대해서는 다 이야기한 것 같구나. 편견을 버리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하지만 그 어떤 종류의 편견이라는 것을 깰 수 있어야 자신이 좀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고 말이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내 머리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첫 기억 중 하나는 아버지가 방에서 TV를 보고 계신 장면이다.

책의 끝 문장: 경험 많은 전문가의 정직한 의견을 듣기 싫어하는 사회는 대중을 기꺼이 속이려는 사람들이 이끌게 되기 때문이야.

 



외로운 사람들도 일종의 궁핍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궁핍은 인간관계의 부족, 즉 친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인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신이 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것. 그렇게 보니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어색해지는데,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즉 대인관계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집착이 친구를 사귀고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것을 막는다. 이는 그 개인이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궁핍한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그들을 붙잡고 있는 환경이다. - P62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도날드 트럼프는 이 사건을 두고 "(뉴욕주에) 사형제도를 재도입해야 한다"며 이들을 사용하자는 전면광고를 신문에 게재했다. 트럼프는 이미 그때부터 백인들의 인종차별적 사고에 기반한 분노를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쌓아온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인종주의자들의 표를 끌어오기 위해 돌아선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나중에 이들의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당시 게재한 광고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 P77

지금은 어떨까? 몇 년 전 한 대학교 캠퍼스 옆에서 아이폰 수리점을 운영하는 분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나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평소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깨진 화면을 수리하러 오는 사람 중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이 많으냐는 게 내 궁금증이었다. 내 주변에서 화면이 깨진 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답은 "깨진 화면 수리를 원하는 고객은 90퍼센트가 여성"이었다. 그 이유를 두고 온라인에서도 많은 추측이 있지만 여자 옷에 스마트폰이 들어갈 주머니가 남자 옷만큼 많지 않아 손에 들고 다니는 시간이 길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 P117

슐츠의 아내 진 슐츠는 2000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회상하면서 그의 만화가 워낙 부드러운 톤을 갖고 있어서 ‘스포츠는 여학생들이 하는 게 아니다’라는 당시 사회적 통념과 배치된 내용을 그려도 사람들은 반발을 하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피너츠>의 캐릭터들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여자아이들이 스포츠 활동을 하는 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 슐츠는 남편의 역할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여성들이 불평을 하고 법안 통과를 촉구했기 때문이지, 남성들이 준 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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