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들 1 한국문학을 권하다 32
김동인 지음, 구병모 추천 / 애플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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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나라 근현대에 활약하던 소설가들이 많단다. 하지만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우리나라 근현대시대는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암흑의 시대나 다름 없었어. 그렇게 열악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소설가들이, 더 많은 작품들을 쓰지 않았을까 싶구나. 오늘날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한 K-Culture가 더 빨리 왔을 수도 있고, 노벨 문학상도 진작에 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단다. 그런데, 그 시대의 소설들은 많이 읽히지 않는 것 같구나. 아빠도 그 시대의 소설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니까서양의 고전 소설을 더 많이 읽게 되는 것 같아. 아무래도 우리나라 근현대 소설들의 노출이 적은 것 같아. 그래도 그 시대의 단편 소설들은 교과서에 실리다 보니,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읽는 건 같은데, 그 시대의 장편 소설들은 더욱 읽히지 않는 것 같구나. 그런데 너희들 책에 실리는 단편들을 아빠도 몇 편 읽어봤는데, 숨어 있는 걸작들이 많더구나. 아무튼 그 시대에도 장편 소설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잘 소개가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깝구나.

이번에 아빠가 읽은 소설은 그 시대에 쓰여진 장편 소설이란다. <감자>, <배따라기>, <발가락이 닮았다> 등 단편소설로도 유명한 김동인 작가의 <젊은 그들>이라는 소설이란다. 제목부터 오늘날 소설이라 해도 썩 괜찮은 제목이구나. 이 책의 앞부분에는 <파과> 등 인기작을 많이 쓰신 구병모 님의 추천글이 있단다. 김동인은 일제시대 말기에 친일로 변절하여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 전념하다가 마약 중독까지 걸리는 등 건강을 잃고 병마에 시달리다가 친일을 하게 되었다고 동정하는 듯한 글도 추천글에 있단다. 김동인이 왜 생활고와 마약중독까지 빠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일본에 저항했던 작가들과 비교해서는, 그의 친일 흔적은 합리화는 안 되더구나. 적어도 아빠에게는김동인은 해방된 이후에도 병마에 시달리다가 1951 51세의 나이에 죽고 말았단다.

아빠가 오늘 이야기할 <젊은 그들> 1930년과 1931년에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란다. 아빠는 김동인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란다. 20여년 전 당시 아빠 후배의 추천으로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을 읽은 적이 있거든. <운현궁의 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흥선대원군 관련된 내용으로 어떻게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게 되었는지를 그린 소설이었단다. 김동인의 대표 장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운현궁의 봄>에 비해 <젊은 그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읽어보니 아빠도 <운현궁의 봄>이 좀더 나은 것 같구나. <젊은 그들> 역시 흥선대원군이 활약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단다. 가상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야. 흥선대원군, 민겸호, 민영환 등 실존했던 인물들도 등장하지만, 주인공들은 모두 지은이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들이란다. <젊은 그들>은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을 1권을 이야기해줄게.

 

1.

때는 민비가 대원군을 쫓아내고 권력을 잡은 지 10여 년이 되던 시기였단다. 요즘에는 명성황후로 더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명성황후라는 말보다 민비라고 더 많이 불렀단다. 사실 민비가 한 짓들을 보면 명성황후라는 칭호는 너무 과한 칭호가 아닌가 싶구나. 아빠는 소설 속의 호칭인 민비라고 할게. 그리고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흥선대원군을 태공이라고 불렀단다. 당시 흥선대원군을 부르던 존칭이라고 보면 돼. 흥선대원군의 친구 중에 활민 선생이라고 부르는 이활민이라는 사람이 있어. 활민 선생은 활민숙이라는 학습소 같은 것을 만들어 민비에 의해 몰락한 양반가의 아들들을 모아 인재를 육성하고 있었어.

민비에 의해 몰락하여 죽음까지 당한 명 참판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명 참판의 아들 명진섭도 활민숙에 있었단다. 그런데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따르기에는 위험하다 생각하여 안재영이라는 가명을 썼어. 명 참판이 죽기 전에 먼저 죽은 친구의 딸 이인숙을 키웠었는데, 그가 죽고 나서 이인숙도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어. 활민 선생이 이인숙을 거두어 키우고 이인화라는 가명을 쓰고 남장을 시켜서 활민숙에서 지내게 했단다. 어렸을 때 잠깐 같이 지낸 이인숙과 명진섭은 부쩍 청년으로 자란 후 이인화와 안재영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났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단다. 나중에 안재영은 이인화가 이인숙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스승인 활민 선생은 아직은 모른 척 하고 지내라고 했단다. 어렸을 때 둘은 양가 부모님에 의해 약혼을 한 사이였더구나. 이인숙이 안재영이 명진섭이라는 것을 알아보지는 못했고, 이름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집 아들과 자신이 약혼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어.

이인숙은 활민 선생의 지시로 흥선대원군의 반대측인 민씨 집안에 잠입해서 흥선대원군 시해 음모를 알아내서 돌아왔어. 그래서 쉽게 그 자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단다. 그 자객을 문초하는데 그의 성이 씨라서 이인숙은 깜짝 놀랐단다. 자신이 어렸을 때 잠깐 함께 지냈던 명진섭도 씨였거든. 이인숙은 명진섭의 이름까지는 기억을 하지 못하고, 성이 씨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어. 이인숙은 그 자객이 자신의 약혼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단다. 그래서 이인숙은 광에 갇혀 있던 그 자객, 명인호를 풀어주었단다. 자객이 도망가는 것을 우연히 본 안재영은 몰래 쫓아가서 다시 자객을 잡았지만, 그의 신세 또한 불쌍히 여겨 다시는 흥선대원군을 노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풀어주었단다.

아빠 생각에 이런 약간의 억지 설정들이 이 소설을 명작으로 만드는데 방해요소가 되지 않았나 싶어. 그런데 안재영은 누가 자객을 풀어주었는지 궁금했어. 그래서 활민숙에 돌아와서 방들을 살펴보니, 어지러워진 신발과 인적 소리고 이인숙이 풀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인숙은 부모님이 맺어준 약혼녀이자 자신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이가 적을 풀어주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단다. 다음날 광에 가둬두었던 자객이 사라져서 다들 놀랬지만, 도망가는 자객을 쫓아가 죽였다는 안재영의 말에 다들 안심했단다. 이인숙 한 명 빼고.

 

2.

활민 선생도 이인화가 자객을 풀어주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단 모른 척 했단다. 안재영도 그 이유가 궁금해서 자객 명인호를 다시 만나기 위해 민겸호의 집에 몰래 가게 되었단다. 민겸호는 실제 인물이란다. 민겸호는 민비의 측근으로 당시 민씨 세도가 중에 한 명으로 간신 중에 간신이었단다. 민겸호의 집에 몰래 들어간 안재영은 민겸호의 무리들에게 잡혀서 광에 갇히게 되는 신세가 되었어. 때마침 민겸호의 집에 기생들이 와 있었는데, 그 기생들 중에 안재영을 흠모하던 연연이라는 자가 있었고, 그 연연이 안재영을 구출해 주어 도망갈 수 있었단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는 설정이 계속 나오지만, 그러려니 하고 들어주렴.

끈질긴 안재영은 결국 명인호를 다시 만나게 되고, 이인숙에 대해 물어보지만 명인호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야기했어. 안재영은 명인호와 이야기하면서, 그가 비록 반대 진영에 있지만, 그가 지향하는 뜻도 결국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 안재영은 명인호가 왜 대왕비당에 붙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어. 명인호의 아버지가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단다. 그 이후로는 명인호는 아버지의 생사도 모른다고 했어. 안재영은 자신이 아는 흥선대원군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설득하고, 명인호의 아버지도 살아계실 수 있으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했어.

안재영은 나중에 흥선대원군을 만나 명인호와 그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 그러자 흥선대원군이 이야기하기를, 명인호의 아버지는 자신이 덕국 백림에 일부러 보낸 것이라고 했어. 덕국 백림은 독일 베를린을 의미한단다. 그리고 작년 여름까지 계속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렇지 않아도 흥선대원군도 그 이후 소식이 끊겨 명인호의 아버지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었대. 명인호가 혼자 오해하고 있었던 거구나. 명인호의 아버지가 잘못했네. 아들한테 편지를 안 보냈으니 말이야. 내막을 알게 된 안재영은 명인호를 다시 만나 흥선대원군에게 데리고 왔단다. 그제서야 명인호는 오해를 풀고, 흥선대원군에게 귀순하게 되었단다. 명인호와 안재영은 의형제도 맺었어. 명인호가 귀순한 사실은 일단 안재영과 흥선대원군만 알고 있기로 하고, 명인호는 계속 대왕비당에 머물기로 했단다.

한편 이인숙은 명인호가 자신의 약혼자이고, 지금은 죽은 줄 알고 소복까지 입으면서 괴로워했단다. 활민 선생은 이인숙을 불러 확실치 않은 일에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했고, 약혼자가 맞다고 해도 배신한 사람인데 그를 위해 소복까지 입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단다. 그냥 이인숙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당분간 비밀을 지키라고 해도 될 것을이유도 없이 이인숙에게만 사실을 숨기는 것은 너무 억지 같더구나. 이인숙은 마음을 추스리겠다면서 한 달의 시간의 달라고 했어. 안재영은 모른 척 이인숙을 예전처럼 동료로 대했지만 이인숙은 안재영을 자신의 남편을 죽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거리를 두려고 했어. 하지만 예전부터 안재영을 마음속에 품었던 지라 또 마냥 미워할 수 있는 여자의 마음.

….

안재영은 이인숙과 그렇게 갈등 아닌 갈등을 겪다가 뜬금없이 기생 연연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그냥 진실을 말하고 이인숙과 비밀 연애를 해도 될 것을이인숙에게 안재영의 정체를 숨기는 것은 정말 이해가 가질 않는 설정이더구나. 연연과 사랑을 나누느라 정신 없는 안재영을 명인호가 불러냈단다. 정신차리라는 한마디와 함께 민겸호의 집에서 비밀회동이 있는데 몰래 들어가서 정보를 캐오라고 말이야. 명인호 자신은 병이 들어 움직일 수 없으니 안재영에게 대신 가서 그 비밀회동의 이야기를 엿들으라고 했어. 얼마나 아픈지 모르겠지만 명인호가 가는 것이 더 안전하게 정보를 빼올 수 있을 것 같은데아직 명인호는 자기네 사람이라고 생각할 텐데 말이야.

민겸호의 집에 몰래 들어간 안재영은 대왕비당 무리들이 활민숙을 급습한다는 계획을 알게 되었지만, 또다시 잡히게 되었단다. 안재영은 모진 고문을 당하여 문초를 당했지만 끝내 배후를 발설하지 않았단다. 그렇게 갇혀 있는데 어릴 적 친구 민영환이 그를 찾아왔어. 민영환은 민겸호의 아들이긴 하지만 민씨 집안에서는 별종으로 나라에 충성했던 그런 사람이란다. 나중에 을사늑약이 맺어질 때 반대 상소를 수 차례 올리기도 했고, 결국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그 부당함을 유서로 남기고 자결한 사람이란다. 그런 민영환이 찾아왔지만 안재영을 구해줄 힘은 없었어민영환은 유언을 남기면 전달해주겠다고 했단다. 결국 안재영은 총살당하고 만단다.

여기까지가 1권의 이야기란다. 안재영이 총에 맞긴 하지만 죽진 않겠지. 지금까지의 설정에 의하면 백 퍼센트 죽지 않았을 거야. 안재영이 뿌린 떡밥들도 많고 더욱이 주인공이기도 하고 말이야.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개연성이 떨어지는 억지 설정들이 있긴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읽으면 재미는 있는 것 같구나. 그리고 잘 각색하면 괜찮은 역사 드라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은이 김동은은 확실히 흥선대원군 빠인 것 같구나. 흥선대원군이 잘못된 선택과 실책들도 있는데, 이 소설을 보면 거의 완벽한 인간으로 나오는구나. 그 완벽함이 2권에서도 이어지는지 한번 보자꾸나. 그러면 오늘 <젊은 그들> 1권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너 저고리 벗어라.”

책의 끝 문장: 낙엽이 또 몇 개 꼬리를 저으며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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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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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이야기란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이미 여러 번 이야기를 했으니, 곧바로 책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그 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단다.

때는 1139 10. 수도원에서 800미터 떨어진 곳에 풀크 레이널드 수사가 병원장인 세인트자일스 병원이 있고, 이 곳에는 나병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단다. 이번 시리즈의 제목을 봐서는 세인트자일스 병원과 관련된 내용임을 예측할 수 있었단다. 이번에 수도원에서 혼례가 진행하게 되어 캐드펠 수사는 이 혼례를 준비하고 있었어. 신랑은 영주인 휴언 드 돔빌 남작이라는 사람인데, 혼일 적령기가 한참 지난, 거의 예순에 가까운 그런 사람이었어. 신랑 일행이 먼저 수도원으로 오고 있었는데, 이 행렬을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했는데, 그 중에는 세인트자일스 병원의 나환자들도 있었단다. 괴팍한 성격의 돔빌 남작은 그들을 향해 채찍을 날렸어. 다들 그 채찍을 피해 도망갔는데, 일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라자루스라는 사람이 채찍을 맞았어. 이에 캐드펠 수사의 조수 중 한 명인 마크 수사가 나서서 라자루스를 보호해 주어 더 상 맞지 않았단다.

자신의 결혼식날 채찍을 휘두르는 사람이라니신랑이라는 사람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잘 알겠지. 곧이어 신부 행렬도 이어졌는데, 신부는 이베타 드 마사르라는 열여덟 살의 어린 신부였단다. 열여덟 살밖에 안된 아가씨가 예순 가까운 신랑과 결혼을 한다? 이것은 평범한 결혼이 아니란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거야. 가뜩이나 신부의 얼굴은 무척 어두워 보였어. 이베타는 피카르 부부의 조카였는데,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어. 그러니까 이 결혼은 피카르 부부가 자신의 조카를 갑부인 돔빌 남작과 강제로 결혼을 시킨 것이란다. 돔빌 남작은 자손이 없었고, 사이먼이라는 유일한 조카가 있을 뿐이었단다. 이런 설정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가 있으니 이베타를 사랑하는 조슬린이라는 사람이었어. ,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

 

1.

기도회 때 이베타는 몰래 빠져나가 조슬린을 만났어. 수도원에서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허브약제소에서 만났는데, 감기약을 만들러 온 캐드펠 수사와 마주쳤단다. 그들은 서로 놀라긴 했는데 곧바로 피카르 부인이 이베타를 찾으러 왔어. 그녀는 세 사람을 보고 피카르는 화를 내려고 했지만, 캐드펠 수사의 기지로 이 난처한 상황을 잘 넘겼단다. 두 사람은 각자 따로 약을 구하러 왔다가 우연히 만난 것이라고 했어. 역시 캐드펠 수사는 젊은이들의 사랑에 관대하고 잘 연결해주는 큐피드와 같은 사람이야. 이베타는 피카르 부인과 돌아가고 조슬린은 약제소에 남아서 캐드펠 수사에게 이베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이베타는 고아가 된 이후 삼촌 부부가 키우다가 예상한 것처럼 돔빌로부터 돈을 받고 그와 결혼을 시키는 것이라고 했어. 이베타를 사랑하는 조슬린에게 있어 그들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어서인지 캐드펠 수사에게 이야기하다가 화를 내며 그들을 죽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

결혼식날이 되었어. 조슬린은 해고당했다고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어. 이베타의 삼촌인 고드프리드 피카르가 거짓말로 조슬린을 고발하여 해고당한 것을 알게 된 조슬린은 피카르를 찾아갔고 둘은 고성을 오가며 다투었단다. 그들의 난동으로 수도원장과 수사들도 그들에게 모여들었고, 수도원장 라둘푸스가 중재를 하려고 했어. 그때 돔빌 남작과 함께 있던 길버트 프레스코트 행정관이 와서 혼례용 귀금속이 사라졌다고 이야기를 하고 용의자로 조슬린을 지목했단다. 조슬린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의 소지품에서 사라진 목걸이가 나왔어.

누군가의 음모가 너무 뻔해 보였단다. 결국 조슬린은 끌려가게 되었고, 방심한 틈을 나서 도망쳤단다. 돔빌 남작의 유일한 조카인 사이먼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 사이먼이 조슬린과 친했나봐. 사이먼이 조슬린을 도와주어 건초 창고에 숨어 있었어. 그러다가 조슬린은 이베타를 구출해서 도망갈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가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었어. 그러다가 우연히 나환자 라자루스를 만났는데, 라자루스가 도와주어 밤새 그와 숨어 있을 수 있었고, 그 다음날부터는 두건을 깊게 눌러쓰고 나환자로 위장을 했단다.

결혼식날 신랑 돔빌 남작이 나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시체가 된 돔빌을 발견했단다. 마지막 행적은 전날 조카 사이먼에게 이야기를 하고 말 타고 산책을 나간 것이 마지막이었어. 캐드펠 수사도 사건 현장에 도착하여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단서들을 찾아냈단다. 돔빌 남작은 이슬이 내린 후에 사망한 것으로 보였어. 그러니까 밤새 다른 곳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망한 것이지. 나무 양쪽에 잘 보이지 않는 밧줄을 매달아 놓았는데 이 밧줄에 목이 걸려 말에서 떨어졌고, 이후 범인은 돔빌의 목을 줄라 죽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어. 엄연한 살인사건이었단다.

뒤늦게 행정장관도 와서 조사를 했는데, 행정장관은 곧바로 조슬린을 용의자로 지목했단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정황으로만 봐도 조슬린이 첫번째 용의자라고 생각했을 거야. 반면 캐드펠은 사실을 기반으로 수사를 했어. 돔빌 모자에 꽂힌 희귀한 허브를 발견하여 돔빌이 밤에 갔던 곳을 추적했단다. 그 허브가 있는 곳을 찾아갔더니 돔빌 소유의 오두막집이 있었어. 하지만 그곳에는 집사와 집사의 어머니만 계셨는데, 집사가 이야기하길 돔빌은 4년 전에 오고 그 이후로는 한번도 오지 않았다고 했어. 그러나 캐드펠 수사는 그곳에서 돔빌의 흔적을 발견했어. 그러니까 어젯밤에 돔빌이 여기에 온 것이 확실하고 집사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어. 더욱이 또 다른 사람의 흔적, 즉 어떤 여자의 향수 냄새를 맡았단다. 그러니까 어젯밤에 돔빌은 이곳에 와서 어떤 여자와 지냈던 거야.

 

2.

한편 조슬린은 라자루스와 함께 있으면서 이베타에게 연락하여 도망갈 궁리를 했단다. 책을 읽다 보니 라자루스와 조슬린은 남남이 아닌, 어떤 관계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캐드펠 수사는 결국 돔빌이 만난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고 찾아갔어. 고드릭 포드의 베네딕트 수도원에 있는 어바이스라는 여자였어. 어바이스는 당차고 자기 주장이 강하면서도 돔빌의 정신적 안식처 역할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더구나. 돔빌이 여행이나 멀리 갈 때마다 비밀리에 함께 했었대. 어바이스는 그 역할을 꺼리지 않았어. 성격답게 돔빌의 죽음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이제는 수녀로 살아가겠다고 했어.

어바이스를 만나고 수도원으로 돌아오던 캐드펠 수사는 길 잃은 말 한 마리를 발견했어. 그 말을 쫓아가보니 피카르의 시신이 있었단다. 사람들을 데려 오려고 수도원에 왔더니, 조슬린이 행정장관의 무리에 쫓기다가 싸우고 있었단다. 조슬린은 병원에서 몰래 나와 수도원에 들어온 거야. 이베타를 만나 도망가려고 했던 것이지. 조슬린이 좀 성급한 성격인 것 같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고 함께 도망치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좀더 기다려서 때를 봐야 할 것 같은데, 젊은 혈기가 신중함을 내쫓았구나. 캐드펠 수사는 조슬린의 알리바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슬린이 돔빌과 피카르를 죽인 범인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어. 어바이스와 이야기를 해보니 돔빌이 어바이스와 함께 있던 시간에 이미 조슬린은 병원으로 도망가 있었고, 오늘은 캐드펠 수사의 조수인 마크 수사가 하루 종일 조슬린을 감시했기 때문에 피카르를 죽인 범인도 될 수 없었어.

조슬린과 행정장관의 무리의 싸움이 중지되자, 그제서야 캐드펠 수사는 피카르가 죽은 소식을 알렸단다. 그러자 피카르 부인은 슬픔에 분노를 하며, 갑자기 사이먼을 붙잡고 범인이라고 소리를 질렀단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는데, 피카르 부인은 사이먼과 피카르 사이에 있던 일을 이야기했어. 사이먼은 자신이 이베타와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피카르와 거래를 하려고 했다는 거야. 그리고 피카르에게 협박을 하다가 말다툼까지 했다는 거지. 사이먼은 사실 이베타를 짝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돔빌 남작도 죽였던 것이란다. 어바이스가 캐드펠 수사에게 이야기했던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도 사이먼이었고 명백한 증거도 찾았단다.

그렇게 범인을 찾아내고 사건을 일단락되었지만, 캐드펠 수사는 피카르의 진짜 범인은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어. 캐드펠 수사는 나환자 라자루스를 찾아갔단다. 그를 보자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었던 거야. 이전 시리즈를 이야기하면서 캐드펠 수사가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었다고 했잖아. 그때 예루살렘에서 활약하던 기마르 드 마사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라자루스였던 거야. 그는 포로로 잡힌 후 나병에 걸리고 만 거야. 나병에 걸려서 포로로 풀려난 이후로도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던 거야. 그리고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손녀가 못된 후견인의 손에 키워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지. 그 손녀가 바로 이베타였던 거야. 그 전에도 알게 모르게 손녀를 지켜봐 주고 있었던 것이란다. 그리고 이베타가 사랑한 조슬린도 잘 보살펴 주었던 것이란다. 손녀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후견인을 제거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아무도 모르게 말이야. 이 사건이 해결되고 라자루스는 마을에서 사라졌단다. 어디선가 거리를 두고 손녀를 지키고 있지 않을까 싶구나.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단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의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되는구나. 다음 이야기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기대해보자꾸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139 10월의 어느 월요일 오후, 수도원 문지기실을 나선 캐드펠 수사는 자신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에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책의 끝 문장: 분명한 게 있다면 이제 그가 영원히 슈루즈베리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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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 너는 찾았니?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줄 줄 알았던, 바깥에서 얻어 온 상처를 감싸줄 줄 알았던, 언제든 돌아갈 둥지인 줄 알았던 하나뿐인 부모가 우리의 삶을 종말로 만들려 했던 이유.


(98)

밑동이 휘어진 나무는 그대로 휘어진 채 자란다. 기둥에 파인 흉터는 회복되지 않고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흉터 위에 벽을 세운다. 그건 새살이 돋아 상처가 아물어 사라지는 회복과는 다르다. 그래서 상처 입은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에 흉터 자국이 혹처럼 남아 있다. 어느 시절에 받은 상처인지 보인다. 상처를 평생 품고 산다. 아물지 않은 채로, 붕어빵 가게 뒤에 습해진 여름 날씨에 썩어 죽어버린 보호수에 있었다. 300년이 넘게 산 나무였는데, 밑동이 휘어져 반쯤 기울어진 채 자란 이상한 나무였다. 소문에 의하면 도시 개발 때 나무를 뽑기 위해 밑동을 자르던 중 인부들이 연달아 죽는 일이 일어나자 저주받은 나무라며 자르기를 멈췄는데 그 상태로 다시 자랐단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저주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나무였다. 그렇게 보호수는 이 마을의 터주신처럼, 액막이처럼 자리 잡고 있다가 어느 날 돌연 하루아침에 썩어버렸다. 묵호의 필리핀 출국 이틀 전의 일이었다.


(130)

꼭 날아야만 새인가? 우리를 정확히 분류하려면 공룡까지 거슬러 올라 가야 해. 고작 인간 따위 따위 뿌리의 깊이가 달라. 우리에겐 날개와 부리가 있어. 알을 낳지. 그런 여러 특징이 있어. 하지만 날개가 꼭 날기 위해 있다고는 할 수 없지. 모든 인간이 자기 신체를 전부 활용하며 사는가? 사용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닌가? ‘비행은 날개의 활용일 뿐, 새의 정의가 될 수는 없지. 마찬가지로 보행언어, 다리와 입의 활용일 뿐 인간 본질이 될 수 없지.


(145)

엄마의 상태를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결혼했다고 하면 배우자와 아이가 당연히 존재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정상 범주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 안에서, 그러니까 그것이 낮과 밤이 존재하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봐. 아빠는 그런 경우가 더 어렵고 힘들었단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설명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굳이 꼭 모든 걸 말해줘야 하는지, 어차피 한 번 이야기 섞고 말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나를 위로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거나, 나 역시 위로에 고마워하는 시늉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을지그래서 자주 거짓말을 했어. 아빠도, 지난 설에는 여행을 간 척,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평범한 가정과 다를 게 없는 하루인 척, 부동산과 주식이 삶의 가장 큰 고민인 척, 뱃살을 빼야 하는데 술 줄이는 게 제일 버거운 일인 척


(146)

이런, 아빠가 너무 나약한 소리를 하는구나. 아빠가 이럴 때마다 이해해 줄 수 있니? 사실 나약한 소리처럼 들렸겠지만, 이건 정말로 약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야. 더 단단해지기 위해 마음에 낀 거품을 빼는 거란다. 거품을 뺄 줄 알아야 해. 그래야 밀도가 높아져.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거품을 빼는 과정은 필수야. 그러니 아빠가 하는 나약한 말들을 깊이 새기지 말고, 여러 번 곱씹지 마. 온도가 높아지면 지워지던 펜 기억나? 그 펜으로 쓴 문장이라 생각해. 제비의 따뜻한 온기가 닿으면 거품이 다 터져버려 사라지는 문장들이야.


(149-150)

아빠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행동하지 않았다면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는 죄가 될 수 없다는 거다. 마음마저 순결한 사람을 적어도 아빠는 살아오면서 본 적이 없다. 단지 순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열매 같은 거란다. 씨앗은 같지만 어떤 과육은 싱그럽고 어떤 과육은 썩어 있지. 또 어떤 건 달기도 하고 어떤 것은 쓰기도 하지. 떫기도 하고, 혀를 아리게 만들기도 해. 같은 씨앗이 모두 같은 맛을 내지 않는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중요한 건 씨앗보다 과육이야. 마음보다 보이는 모습이 어떤지가 더 중요한 법이야. 아빠가 늘 말했잖니. 사람들의 친절은, 그냥 친절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그 속에서 어떤 안타까움이나, 어떤 우월함이나, 어떤 기만이 들어 있다고 한들 우리가 그것까지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고. 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 엄마는 그저 종일 누워 하늘만 바라볼 뿐이니까. 그러니 엄마가 심심해할 거라고, 외로워할 거라고, 슬퍼할 거라고 생각해서 너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지 말기로 아빠랑 약속했잖니.


(156)

엄마는 이제 숨으로 우리랑 대화할 거야. 그러니 잘 듣고, 온몸으로 기억해 둬. 아가가 가장 가까이서 들었던, 한때 너의 숨이기도 했던 숨의 말을 잘 들어야 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숨에 모든 말이 새겨져 있으니까. 어렵지 않아. 집중의 문제지. 긴장할 때 숨은 빨라지고, 편안할 때 숨은 느려지고, 두려울 때 숨은 딱딱해지고, 슬플 때 숨은 축축해진단다. 화가 날 때 숨은 잘게 쪼개지고, 답답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욕망할 때 숨은 뜨거워지고 낙담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사랑을 느낄 때 숨은 찬란해지고 그리움을 느낄 때 숨은 잠시 멈춘단다. 그리고 이런 숨은 코나 입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는 엄마의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어깨와 등에서도 숨을 느낀단다. 특히 엄마처럼 숨으로 소통하는 인간들은 더 잘 느낄 수 있어. 엄마 품에 안겨봐. 아가를 가장 온전하게 안고 있던 품. 한때 아가의 전부였던 품. 오르락내리락하는 숨의 리듬을, 아가가 영원히 기억했으면 좋겠어. 아빠는 그럴 거거든. 그럴 수 있거든.


(195)

태어난 게 벌이 될 수는 없어. 살아 있는 게 죄인 사람은 없어. 오해하지 마. 가끔 벌처럼 느껴질 땐, 등을 봐. 그 사람의. 노윤이의. 한참 동안 바라보면 햇살에 반짝이는 털들이 보여. 특히 뒷덜미에. 숨을 쉴 때마다 그것들이 움직여. 광대에도 털이 나 있어. 반짝여. 어깨가 미세하게 위로, 아래로, 또 위로, 다시 아래로숨을 쉴 때마다 바뀌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어서 더 편하고 때로는 슬퍼. 얇은 옷에 앙상하게 튀어나온 척추가 보여. 오돌토돌. 가녀리지만 단단함이 느껴져. 뼈로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약하지 않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


(206)

우주를 정의 내린 건 인간이잖아요. 저 밖에 있는 공간을 우주라고 부르자고. 저기에 우주가 있다고. 더 큰 것에 작은 것이 담기는 게 진리니까. 우주는 제 안에 인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팽창하지만, 인간은 우주를 알고, 우주를 명명하고, 우주를 헤아리려 하잖아요. 사람들은 우주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예요. 우주가 우리 뇌에 담긴 거예요. 더 큰 쪽이 늘 작은 걸 이해해요. 더 큰 게 언제나 더 고요하고, 잠잠하고, 잘 견뎌요. 노윤이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참고, 견디고 있어요. 세상이 노윤이를 이해하는 속도보다 노윤이가 세상을 훨씬 빨리 이해했으니까.’


(267)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바다는 변하지 않거든. 변덕이 심해. 종잡을 수 없어. 하지만 파도가 닿지 않는 바다 깊은 곳은 묵묵해. 아름다워. 휩쓸리지 않아. 지구의 대부분은 바다였어. 지구는 원래 묵묵해. 담담하고. 하지만 변했어. 인간이, 그렇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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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책 - 금서기행
김유태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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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책 소개를 해주는 책도 가끔 읽곤 한단다. 그 책을 통해서 새로운 책들을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있지. 오늘 이야기할 책도 책 소개를 해주는 책인데, 독특하게도 금서들만 모아놓은 책이란다. 김유태 님의 <나쁜 책>이라는 책이고 부제는 금서기행이란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는 책들이 있단다. 우리나라도 물론 마찬가지이지. 최근에는 금서가 거의 없지만, 예전에 군사독재시절에는 많은 책들이 금서로 지정되었고, 그런 금서를 출간한 지은이나 출판사들은 법적 처벌을 받기도 했단다.

보지 못하게 하면 더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 아닐까? 그렇게 금서로 지정되어 오히려 더 유명해진 책들도 많이 있단다. 오늘 이야기할 김유태 님의 <나쁜 책>은 매일경제신문사 온라인 뉴스로 연재했던 내용을 엮은 것이라고 하는구나. 김유태 님의 책은 처음인데, 글솜씨가 좋으셔서 술술 잘 읽히더구나. 그리고 소개해주는 책들은 읽고 싶게 소개해주었어. 그래서 이 책에서 소개된 금서들 중 몇몇은 아빠의 독서리스트에 추가해 두었단다. 그럼 어떤 금서들을 소개해주었는지 몇몇 이야기해볼게.

 

1.

첫 번째 챕터는 아시아인들이 못 읽는 책들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했어.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이라는 책은 1937 12월 일어났던 난징대학살 사건에 관한 책인데, 난징대학살을 서구세계에 처음으로 자세히 알린 책이라고 하는구나. 난징대학살로 30만 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얼마나 잔인한 만행이었냐면, 당시 중국에 머물던 나치 출신의 독일인 욘 라베라는 사람도 일본의 만행에 치를 떨면서 일본군의 만행으로부터 20여만 명을 구출했다고 하는구나. 나치도 두손두발 다 들게 한 만행을 일본이 저지른 거야. 이 책을 쓴 지은이 아이리스 장은 중국계 미국인이었는데, <난징의 강간>이라는 책을 쓰고 나서 일본 극우들로부터 협박을 받고 그로 인해 정신적 고통과 신경 쇠약을 겪다가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는구나. 일본에서는 <난징의 강간>을 반박하는 책이 오히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니, 사과와 반성을 모르는 일본을 어찌하면 좋을꼬.

그런데 일본의 만행이 이것 하나뿐이겠니. SF 작가로 유명한 켄 리우의 단편 중에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일본의 또 다른 만행 731부대의 인체실험을 소재로 소설이란다. 이 작품 또한 일본에서는 금지되어 켄 리우를 출간할 때 이 작품은 빼고 출간했다고 하는구나. 켄 리우 작품에는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작품도 있는데, 그렇다 보니 중국에서도 켄 리우의 작품은 일부 빠져서 출간되었대.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만 제대로 된 켄 리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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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켄 리우는 이 소설에서 먼저 과거의 정보와 기억을 그래도 체험할 수 있는 기술의 발견을 언급한 뒤, 그 기술이 인간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했습니다. 반일 소설만은 아니고, 중국과 미국까지 동시에 비판한 작품입니다. 소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켄 리우의 단편 14편이 실린 <종이 동물원> 맨 끝에 수록됐는데, 일본에서는 이 소설만 빼고 작품집을 펴냈습니다. 그의 책은 중국에서 4권 이상 출간됐는데, 중국어판에는 공산당을 비판한 대목이 곳곳에서 삭제된 채 출간됐다고 전해집니다. 한중일 가운데 이 소설을 온전한 형태로 읽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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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팡의 <우한일기>라는 책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몇 년 전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갔던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책이란다. 전세계로 퍼져나간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한 우한의 상황에 대해서 사실대로 쓴 글이나 이 책은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되었고, 지은이 팡팡은 이 책 이후 중국 내에서 집필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구나. 글을 써도 출간해 주는 출판사가 없다는 거야. 책 하나를 금서로 지정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은이까지 억압하다니양심 있는 출판사가 없는 것인가, 공산당 정권에서 불가능한 것인가. 아빠가 얼마 전에 이야기해 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지은이 옌렌커도 금서 타이틀을 많이 갖고 있는 작가라는구나. 그의 책 중에 무려 여덟 권이 금서래. 이 책에서는 집단 에이즈 발병을 소재로 중국 공산당 정치를 비꼬는 작품인 <딩씨 마을의 꿈>이란 책을 소개해 주었단다.

...

얼마 전에 박찬욱 감독이 미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서 유명해진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도 소개했단다. 이 책은 호치민을 비판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베트남에서 금서로 지정된 책이래. 자국의 영웅들이나 역사적 사실들을 비판하면 금서로 지정되기 쉬운데, 너무 속 좁은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닌가 싶구나.

 

2.

책의 내용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읽다가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아주 간혹 있단다. 그 불편함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작품이 분명 있단다. 그렇게 읽는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작품들 중에 금서로 지정되었던 작품들이 있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중에도 그런 작품들이 있는데,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이란 작품도 그런 작품 중에 하나란다. 책 내용에 근친상간과 소아성애 등을 다루어 읽는 내내 불편함을 준다고 하는구나.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아메리칸 사이코>라는 소설도 소개했는데, 이 작품은 소설보다 영화가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구나. 이 영화는 아빠도 어떤 경유에 의해서 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20여 년 전에 본 기억이 있구나. 보면서 너무 불편했던 영화인데, 이를 원작으로 한 소설도 너무 잔인한 소재로 인해 금서로 지정되었다는구나. 우리나라에서도 금서로 지정했었는데, 출판사의 항소로 19금 소설로 지정했다는구나.

아무튼 이 작품은 아빠는 영화로 봤지만 잔인함만 기억으로 남는 작품으로 너희들에게는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구나. 스페인 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의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작품은 엄마를 살해하는 소재를 했는데, 스페인 내전 당시 군부에 참여했던 지은이가 나중에 금서를 결정하는 검열관이 되었대. 그럼에도 그 사람의 작품도 금서로 지정되었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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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셀라의 문학적 위상은 독특합니다. 그의 생애와 작품은 두 가지 아이러니를 형성합니다. 셀라는 스페인 내전을 겪은 시민들의 무의식을 건드려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는 프랑코의 군부에 참전한 군인 출신이었습니다. 폭력의 원인에 대한 소설을 썼는데 작가 스스로가 폭력의 가담자였다는 예기지요. 또 그는 금서의 작가였지만 프랑코 정권이 들어선 이후 금서를 결정하는 검열관으로 참여했습니다. 그가 검열관으로 일한 이후에도 그의 다음 소설 <벌집>은 또 금서가 됩니다. 금서를 결정하는 검열관의 작품이 금서가 되는 아이러니라니 인생이든 문학이든 참으로 복잡한 요물입니다. 셀라가 논쟁적인 인물일지라도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이 가진 사회문화적 위상까지 부정하진 못할 겁니다.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작품은 작가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자와의 공동 소유물이 되니까요. 어쩌면 어머니를 살해한 소설이 아직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읽힌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을 둘러싼 가장 큰 아이러니일 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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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유명한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라는 작품이 밀란 쿤데라의 자국 체코에서 금서라는 것은 조금 놀라운 소식이었단다. 아빠가 대학교 다닐 때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이 거의 필독서일만큼 유명한 작가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는 작가라고 하는구나. 그의 책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아빠는 읽어보질 않았는데, 이 책에서 <농담>을 소개해주었는데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조만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또 다른 체코 작가인 보후밀 흐라발이나는 작가의 <너무 시끄러운 고백>이라는 책도 소개해 주었는데, 두 작가 모두 체코 작가라서 그런지 두 작가를 비교하여 이야기해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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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71)

한탸라는 인물의 하층민적 지위, 그리고 작가 흐라발이 한탸를 그려낸 방식은 흥미롭습니다. 보후밀 흐라발과 밀란 쿤데라는 같은 체코 출신 작가이면서 여러 면에서 대조적 위상을 지닙니다. 위기의 시대를 문장으로 견뎌낸 작가라는 점에서 둘은 동질적이지만 쿤데라는 프랑스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소설을 썼고, 흐라발은 끝까지 체코에 체류하며 체코어를 고집했습니다. 이는 단지 거주지 차이만이 아닙니다. 쿤데라와 흐라발의 소설 속 주인공도 차이를 보이니까요. 쿤데라가 창조한 문학적 인물이 시대를 내려다보며 고뇌에 빠진 허무주의적 지식인인 반면, 흐라발의 피조물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사회에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바보로 묘사됩니다. 또 쿤데라의 소설에는 성적 자유를 획득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이 줄곧 등장하는 반면, 흐라발의 소설에는 성적 불구의 인물이 자주 나타난다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의 실현이 한 인물의 자아를 형성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볼 때 흐라발의 남성상은 좌절된 동시대인들의 정서를 대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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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소개한 금서들 중에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은 두 작품이 소개되었단다. 이문열의 <필론의 돼지>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은 1980 4월에 출간되었대.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뒤 1980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는데, 마치 이 책의 내용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인들을 비판하는 듯한 내용처럼 보였다는구나. <필론의 돼지>의 내용은 군인들과 전역병들의 싸움을 다룬 소설이었대. 그래서 계엄군과 광주 시민 모두 이 책을 싫어했다고 하는구나. 이문열은 정치적 노선이 아빠와 상극이라서 그의 작품은 무조건 패스. 또 다른 작품은 마광수의 <운명>이라는 작품인데, 한때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외설적인 작품을 썼다고 해서 세상에 크게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단다. 그 이후 교수직도 잃고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작품은 작품으로만 평가하지 지은이까지 연좌해서 평가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그 밖에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 디스토피아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오웰의 <1984>, 예전에 아빠도 읽어보려고 사두었다가 아직 읽지 않은 필립 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 등 금서로 지정된 적이 있는 많은 작품들이 실려 있었단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지은이 김유태 님이 노벨문학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시고, 예측도 하시곤 했어.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24 4월이라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조심스럽게 예측도 하셨는데, 실제 수상을 우리나라 한강 작가가 되었을 때 지은이 김유태 님은 어떤 기사를 썼을까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단다. 그런데 김유태 님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얼마 전에 인터뷰를 했었고, 그 인터뷰를 신문에 실으려고 준비 중에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거야. 그래서 그날로 바로 작업을 해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발표 후 다음날 한강 독점 인터뷰로 장문의 인터뷰를 싣는 대박을 터뜨렸단다. 아빠도 그 기억이 나는구나.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 하루 만에 어떻게 독점 인터뷰가 가능하지? 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게 이미 몇 주 전에 이루어진 인터뷰였더구나. 그 인터뷰를 한 사람이 이 책의 지은이이고 말이야. 아빠도 이번에 그 인터뷰를 다시 찾아 읽어봤는데,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깊이 있게 읽어야만 할 수 있는 양질의 질문이고, 한강 작가의 답변들도 문학작품 같은 답변들이라 좋았단다.

이번에 읽은 김유태 님의 <나쁜 책>은 새로 알게 된 책들이 많아서 좋았고, 글솜씨 좋은 작가 한 명을 알게 되어 좋았단다. 김유태 님의 다른 책들도 한번 눈여겨 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몇 해 전 어느 주말, 나는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어 서울 시내의 한 대학 중앙도서관 책장과 책장 사이에 말없이 혼자 앉아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책의 바다에서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의 강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오래된 책을 정기적으로 펼쳐 읽는 행위는 생의 곁길로 빠지면서 즐기는 잠깐의 군것질이 아니라 정신의 식탁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즐기는 정찬의 의례에 가까웠다. 묵은내가 폐부 끝까지 전해지는 도서관을 에어포켓 삼아 숨 쉬어보는 몽상을 거듭한 나는 수은을 삼키고 불가사의하지만 흡족한 미소를 짓는 표정으로 귀가하곤 했다. 일회적이지 않고 영원성을 간직한 책들을 내 안에 꾹꾹 눌러 담고 나오는 날의 노을빛은 아름다웠다. 생활인으로서, 한 명의 독자로서 그것은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책은 누군가의 삶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 P7

해외의 한 출판사 편집장이 국내의 유명 평론가에게 해준 이야기를 떠올려옵니다. 이 평론가가 ‘좋은 책의 조건’을 편집장에게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고 하네요. 저도 사석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옮겨봅니다. "첫째, 흥미진진할 것. 둘째, 새로울 것. 그리고 셋째가 가장 중요한데, 바로 독자를 ‘불편’하게 할 것. 별생각 없이 드러누워 보다가 엇, 하고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잡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인비저블 몬스터>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습니다. 흥미진진하면서 전에 없던 새로움까지 있는데, 독자에게 ‘하나의 불편한 질문’을 남기기 때문이지요. 그 질문은 이렇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인 나의 참된 자아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 나 자신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척 팔라닉은 바로 그 점을 묻습니다. - P123

예술가의 창작이란 당이 추구하는 이념적 지평 위에서만 유효하다고 보기 때문이었지요. 일체의 낭만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주의 예술의 엄숙주의가 지닌 문제점을 쿤데라는 간파했습니다. 예술의 도구화는 사회주의 예술, 좀더 구체적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실체이자 한계점입니다. 핸드리흐와 같은 사회주의 당직자들은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고 이로써 ‘예술의 한계’를 규정하는 데 열중했습니다. 예술의 한계를 규정하는 순간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의 한계가 노정된다고 쿤데라는 확신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예술은 스스로를 도구화하지 않는 무한한 자유 위에서의 진보적 창조이며, 문학이란 자유와 옹호를 위한 인간의 총체적인 언어활동이 아니던가요. 현실의 의미를 밝혀내고 해석하는 것이 언어예술로서 문학의 유일하고도 입체적인 목적이며, 예술에 굴레를 확정하는 순간 이는 죽어버린 예술이자 예술의 종막이 됩니다. - P157

문학은 정치와 동떨어진 예술로 간주되곤 합니다. 문학이 현실과 괴리되었다는 반감은 독자와 문학 사이의 거리를 멀게 만듭니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예술 장르이며 때로는 정치 그 이상일 수 있음을 이스마일 카다레는 삶으로 또 작품으로 증명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러므로 영원히 빛날 겁니다. - P206

<눈먼 부엉이>를 읽은 일부 독자의 우울증과 자살은 이 책에 담긴 문장들로 생(生)의 근원을 염탐했다는 좌절과 막막함 때문이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결과 자기 삶에서 유의미성을 발견하지 못한 영혼들은 영영 삶을 포기한 것이겠지요. 물론 이 책도, 이 글도, 삶을 지양하고 죽음을 찬미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인생이란 살 만한 가치가 있으며, 세상에 주어진 모든 삶에는 섭리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적 죽음은 문학 바깥에서는 제한되어야 하며, 죽음을 다룬 문학은 삶의 깊이를 고민할 기회를 제공하는 선에서 그쳐야 합니다. 다만 삶의 이유가 모두에게 다르더라도, 우리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삶으로부터 죽음을 격리하고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좀더 삶 가까이에 두고 정확하게 통찰하면서, 삶의 유의미성을 발견해야 한다는 진리만큼은 영원히 불변할 것입니다. - P333

런던에 세워진 조지 오웰의 동상의 벽면에 그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가 무엇인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선과 악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갈망했던 오웰의 이 한마디를 저는 오래 간직할 생각입니다. 그의 이름은 필명으로, 오웰(orwell)은 그의 부모가 사는 지역에 흐르는 강의 이름입니다. 책의 바다에서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의 강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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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11 0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읽으면 좋은책 아닐까요?

bookholic 2025-12-12 22:27   좋아요 0 | URL
ㅎㅎ 네, 맞아요~~ 저도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 몇 권을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182)

<보부상 나데르의 잠언집> 중에서 다음 글은 그날의 장면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 바위에 함께 앉았을 때 나는 타니오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앞에서 또다시 문들이 닫히거든 네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그리고 또 다른 인생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배에 올라서 너를 기다리는 도시를 향해 떠나거라.”


(196)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특권 폐지를 바란다면 외국인들을 그 지역 주민들이 부러워하지 않는 신세로 살도록 강요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을 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인들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우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359)

살인자의 머리를 갖고자 그들은 무고한 사람을 네 명이나 살해했다. 카흐탄 베이크는 자신은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었다고 내게 말했다. 이제 내일이면 크파리야브다 사람들이 또 다른 무고한 사람들의 목을 베러 몰려갈 것이다. 늘 그렇듯 그럴싸한 이유를 내세우면서 그들의 복수전은 대대로 이어지고, 오랜 세월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그저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359-360)

이렇게 된 것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산악지대 사람들을 서로 대립하게 만든 사람은 이집트의 파샤가 틀림없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나폴레옹의 전쟁을 연장하고 있는 우리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태만과 자만을 일삼은 오스만 튀르크인들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산악 지대를 제2의 고향으로 사랑하게 된 내가 보기에 누구보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기독교도들이든 드루즈파든이 고장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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