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두 번째는 지금까지 조명되지 않은 광주시민들을 중심에 두고 써보자는 관점이었다. 평전이 발간됐거나 신문과 방송 혹은 잡지에 집중인터뷰를 했던 분들은 널리 알려졌으므로 동어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인간의 보편적인 입장에서 참여한 신부님과 스님은 종교적 양심에 따라 행동한 분들이므로 뺄 이유는 없었다. 한편, 나중에 정치를 한 분은 순수성 측면에서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역할은 가능한 한 줄였다. 따라서 <광주 아리랑>에 등장하는 인물은 식당주방장, 요리사, 시장 상인,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방직공장 여공, 예비군, 예비군 소대장, 대학교 교직원과 수위, 비운동권 학생, 영업사원, 재수생, 구두닦이, 농사꾼 등등이다. 이들도 805월에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엄연한 실존이자 최대 피해자였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이분들을 한 분 한 분 광주 5.18 역사로서의 소설에 주인공이자 증인으로 영원히 기리고 싶었다. 화강암 같은 개결한 역사의 비석에 이름을 깊이깊이 새기듯.

 

(65-66)

김성섭이 여러 유인물 중에서 내민 것은 58일자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와 조선대학교 민주투쟁 위원회 이름으로 뿌려진 1시국 선언문이었다. 선언문 종류는 그것뿐이었으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민족적 양심과 민주적 지성의 부름으로 우리가 그간 역사앞에 외쳐왔던 목소리는, 타율과 강압에 의해 수그려들기도 여러차례 있어왔으나, 끝내 불붙은 민주에의 열정은 오늘의 역사적 전환기를 앞당겨 그 피의 도정을 계속 밟아왔고, 모골이 송연한 유산공포정치 아래서도 끝까지 투쟁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 중대한 역사적 시점에서 우리 대학인이 걸어야 할 길은, 무엇보다 구조적 수탈의 배후에 숨어있는 탐욕의 세력을 정확히 파헤치고, 이들이 어떻게 외세 매판자본과 결탁 반민족 작태를 멈추지 않고 있는가를 직시하여 조국의 민족정기를 진작시키는데 앞장서는 그 길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국의 현실은, 독재자 한 사람의 영면이 마치 구약과 적폐의 일소인 양 오도시키려는 무리들 때문에, 민주민족 세력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어쩌면 우리 세대의 미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잃지나 않을까 하는 심한 우려를 낳고 있다....... “

 

(89)

14일 전남대생들의 시위는 처음 가두로 진출할 때는 최루탄을 쏘는 경찰과 격렬하게 맞선 양상이었는데, 오후 3시쯤에 시작한 민주성회와 이후 가두 행진 때는 뜻밖에 평화로웠다.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나왔던 것이다. 한복에 고무신을 신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오후 6시까지 집회를 마치고 귀교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해서였다. 경찰은 전남대생들이 귀교할 때는 시위 행렬을 따라가며 교통정리까지 해주었다.

 

(98)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군인이듯,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경찰의 본분이라고 안병하 경찰국장은 생각했다.

(중략)

시위진압 시 안전수칙 잘 지키기를 바란다. 시위 학생에게 돌멩이를 던지지 말라. 도망가는 학생은 쫓지 말라. 시민이 다치는 일 없도록 하라. 알겠는가?“

(중략)

부대 지휘관은 과격한 행동을 금하고 시위대를 추격하지 말라. 사과탄은 안면에 던지지 말고 공중에 투척하라. 최루탄도 각도를 유지해서 발사하라. 알겠는가?“

(중략)

시위 시민에게 절대로 자극적인 언행을 삼가라. 시민들의 야유와 비난이 있어도 절대 대응하지 말라. 시민과 우리 경찰의 안전을 최우선하라.“

 

(199-200)

문장우는 체격이 날렵하고 단단했지만 그의 친구는 둔하고 허약해 보였다. 허약한 친구가 문장우를 잡았지만 오히려 그가 끌려갔다. 창 너머는 바로 충장파출소였다. 학생 예닐곱 명이 진압봉을 든 공수부대원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러나 충장로 지리에 밝은 학생들은 잽싸게 골목으로 달아나버렸다. 그러자 공수부대원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아무나 붙들고 진압봉을 휘둘렀다. 청바지에 긴팔 티를 입은 여학생을 잡아당기더니 길바닥에 내팽개쳤다. 여학생의 티가 벗겨져 가슴이 보일 만큼 난폭하게 질질 끌고 갔다. 그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오십으로 보이는 남자를 붙잡은 뒤 진압봉으로 두들겨 팼다. 시민들 보란 듯이 자전거는 길바닥에 사정없이 던져 망가뜨렸다. 지켜보는 시민들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항변을 못했다. 문장우 역시도 처음에는 말을 못하다가 꾸역꾸역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 개새끼들아. 니들이 대한민국 군인이냐? 죄읎는 사람들까지 왜 때려!“

 

(215)

선생님,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도 답답하고 암울하기는 여러분 같아요.“

지금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합니까?“

여러분 마음을 나도 알아요.“

금남로에서 우리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학생이 역시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울먹였다. 박행삼도 학생들과 같은 심정이었으므로 교사 신분을 잊어버리고 분필을 집어던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박행삼이 비통하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어째서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는지 참담할 뿐입니다.“

 

(222)

국민들이 낸 방위세로 무장한 군인이 아닌가! 외적을 막으라고 지급한 총을 시민들에게 돌리고 있다니. 이런 군대는 필요 없다. 주인을 모르고 미쳐 날뛰는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 누가 이 군인들을 미치게 했는가? 시민을 살상하라고 명령한 원흉은 누구인가?’

 

(304-305)

전옥주의 가두방송 멘트는 전날보다 더 거칠었다.

형제 동생들이 죽어가는데 다리를 쭉 뻗고 잠이 옵니까. 공수들이 광주 시민을 다 죽이려고 하는데 도대체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갑니까. 일제 때 학생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광주입니다. 광주정신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광주시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팔십만 광주시민 모두가 나서 대한민국 군인이기를 포기한 공수 놈들과 싸워야 합니다.

 

(341)

그때였다. 바퀴 달린 시위 장갑차 한 대가 도청 분수대 쪽으로 달렸다. 장갑차 뚜껑을 열고 한 청년이 용감하게 상체를 드러냈다. 머리에 흰 띠를 두른 청년은 윗옷을 벗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도청 광장을 지키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그 청년을 향해 가차 없이 집중사격을 했다. 목에 총을 맞은 듯 청년의 머리가 푹 꺾였다. 공수부대원의 집중사격으로 충장로 입구 빌딩에 있는 노인과 동구청 앞의 학생과 처녀, 시민 등 여덟 명이 쓰러졌다. 도청 광장으로 돌진했던 시위 장갑차는 분수대를 돌아 노동청 쪽으로 빠져나갔다. 그제야 시민들이 쓰러진 사람들 중에 경상자는 동구청 뒤 홍안과로, 중상자는 전대병원과 적십자병원, 기독병원으로 시위 차량에 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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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혼술에서 중독까지, 결핍과 갈망을 품은 술의 맨얼굴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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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몇 년 전에 인상 깊게 읽은 책 <명랑한 은둔자>의 지은이 캐럴라인 냅의 또 다른 대표작인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책이란다. <명랑한 은둔자> 책에서도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책에 대한 언급도 있어서 찾아보았다가 책 표지가 너무 유혹적이라서 그 유혹에 빠져서 책까지 구입하게 되었구나. 이 책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지은이가 중독을 극복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아는데, 책 표지의 그림만 보면 오히려 술을 먹고 싶게 만다는 디자인이구나. 술 끊었던 사람도 다시 먹고 싶게 만드는 그런 사진

아빠는 어딘가에 푹 빠지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몸에도 좋지 않다는 술에 중독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단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보니 알코올 중독은 일종의 병이라는 것을 이해했단다. 물론 자신의 의지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치료가 필요한 거야. 지은이는 어쩌다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되었는가. 안타까운 것은 힘들게 알코올 중독을 치료했는데, 마흔두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에 걸려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알코올 중독보다 더 시급한 것은 금연이 아니었나 싶구나.

 

1.

지은이는 자신을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라고 했어. 알코올 중독자에 여러 종류가 있나?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를 검색해 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생활도 잘 하고, 직장에서도 유능하며 가정까지 잘 꾸려나가데 알고 보니 실상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을 이야기하더구나. 지은이는 고등학교 이후 술을 거의 물처럼 먹었다고 했어. 자신의 손이 가는 곳에는 어디에든 술이 있었지. 지은이는 술이 안 좋다는 것을 알기에, 끊어보려고 노력하고 AA(Alcoholics Anonymous)에도 열심히 참석했어. 알코올 중독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려는 모임이지그렇게 술을 끊거나 줄이려는 노력을 했지만, 술 먹으면 오히려 글이 잘 써진다는 등 늘 술 먹으려는 이유, 아니 핑계를 찾는다고 했어. 이는 지은이뿐만 아니라 AA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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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나는 술 마시는 느낌을 사랑했고,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그 특별한 힘을 사랑했고, 정신의 초점을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의식에서 덜 고통스러운 어떤 것들로 옮겨놓는 그 능력을 사랑했다. 나는 술이 내는 소리도 사랑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술 마시는 분위기도 좋아했다.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우정과 온기, 편안하게 한데 녹아드는 기분, 마음에 솟아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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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쩌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는가? 먼저 유전적 요인을 의심했어. 지은이의 아버지 직계 중에 알코올 중독자들이 몇 분 계셨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면 가정 환경 때문인가? 지은이의 집안을 유복한 편이었단다. 정신과 의사였단 아버지 덕분이 상류층에 속해 있었지. 다만 무뚝뚝한 아버지가 집에서도 자신의 직업에서 하는 것처럼 무엇인가 분석하려고 하셨는데 그것이 소심한 지은이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었어. 그렇다면 성격 때문일까? 지은이는 자신의 성격이 소심하다고 했어. 그런데 술을 먹으면 용기가 생긴다고 하더구나. 소심함과 알코올 중독은 관계가 있을까. 지은이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하는구나. 쌍둥이 자매인 베키는 지은이와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라고 했어. 물론 알코올 중독자도 아니었고.

술은 분명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 분명하단다. 아빠도 적당량의 술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충분한 것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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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6)

충분하다니? 알코올 중독자에게 그것은 생경한 미지의 언어다. 충분히 마시는 일이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술이라는 보험을 찾고 또 찾는다. 첫 잔을 마시고 따뜻한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그 느낌을 지속시키는 것, 그걸 강화하고 증대하는 것, 그걸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는 리즈라는 여자는 알코올 중독을 탐욕의 병이라고 불렀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에 느끼는 허기, 집착, 불안, 끝없는 결핍감을 일컬은 말이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이란 많을수록 좋고 많아야 한다. 석 잔을 마실 수 있다면 왜 두 잔만 마시는가? 네 잔을 마실 수 있는데 왜 석 잔만 마시는가? 도대체 왜 멈추는가? 그리고 어떻게 멈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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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에게 술이란 무엇일까. 술에 취하게 되면 성적 접근에 관대해진다고 했어. 술 때문에 사고 치는 경우가 많은데, 지은이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하는구나. 첫 남자친구도 술 취한 상태에서 생겼고 대학 졸업 후 지도교수의 접근도 술 취한 상태라 거절하지 못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성관계에 관대해지면서 밤을 함께 하고 다음날 죄책감을 가진 경험을 이야기했어. 남자 친구가 있는데, 교수님의 유혹에 넘어가 밤을 함께 했어. 결국 맨정신일 때 교수를 찾아가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아빠 같으면 숨기고 싶은 경험들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솔직하게 모두 다 이야기해주었단다. 이 책은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쓴 글일 텐데, 소심하다면서 이렇게 솔직하게 전부 이야기해도 되나 싶을 정도란다. 문화 차이인가?

 

2.

알코올 중독의 단계별로 이야기를 할 때 처음에는 술이 자신을 유혹하는 단계이고, 그 다음이 되면 혼술을 줄기는 단계가 된다고 하는구나. 한 가게에서 술을 너무 구입하면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아서, 지은이는 여러 가게에서 여러 술들을 구입한다고 하는구나. 정말 소심하긴 소심한가 보구나. 알코올 중독이 되면 술을 마시지 않고 혼자 있는 방법을 모른대. 지은이의 경우 직장에서는 유능한 기자로 인정받았지만 직장 밖에서는 술 없으면 생활을 못할 정도라고 했어.

이 정도 되면 스스로 알코올 중독임을 의심하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자각하게 되지만 술을 멀리하기는 어려운 단계가 되었다는구나. 술 취하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지만, 다음날 그걸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하더라도 후회하게 된다고 하는구나.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자신이 기억도 못하는 말은 그저 술주정일 뿐이지.

지은이는 알코올 중독 자가테스트를 해보았대. 그 결과 자신은 이미 중기라고 했어. 이제부터 알코올 중독을 끊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했어. 상담도 받아보고 AA에도 나가서 다른 이들과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어. 하지만 쉽지 않았지.

이 와중에 지은이는 알코올 말고 또 하나의 중독에 빠진 적이 있었어. 2년 반 동안 거식증으로 고생했다고 했어. 그 동안 먹는 양이 줄고 몸무게는 54kg에서 37kg까지 빠졌대. 이 때 다행히 술도 줄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거식증에서 빠져나올 때 먹는 음식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술의 양도 같이 늘어났다고 하더구나.

....

지은이의 쌍둥이 자매 베카는 의사가 되고 결혼도 하는 등 부모님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완수한 것으로 보였어. 지은이는 베카와 친하게 지내고 힘들 때는 의지를 하곤 하지만, 베카와 비교해 보았을 때 아무래도 자신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 그러면 또 술에 빠지고술에 취했을 때면 남자친구와 싸우고 술 때문에 헤어지고.. 그럼 또 술을 찾고.. 필름이 끊긴 날이면 자신의 행동과 말 실수에 대한 걱정으로 일손이 잡히지 않지. 정말 최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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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술 깬 아침의 막막한 걱정. 내가 아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모두 그런 경험이 있고,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파티 다음날 잠에서 깨어 전날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오전 내내 걱정에 잠겨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참다 못하면 파티 주최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반응을 살핌으로써 우리 행동의 단서를 찾아내려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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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술은 망상을 낳는다. 술과 함께 하는 인생은 모험 가득한 낭만의 행로로 여겨지고, 밝은 햇살 아래 출렁이는 눈부시고 역동적인 바다처럼 느껴진다. 단 한 잔의 술로도 우리 가슴은 에너지와 열정에 부풀어 오르고, 조금 전까지 가슴을 짓누르던 문제를 몽땅 해결할 수 있을 듯 자신만만해진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술은 우리 인생을 정체시키고, 바위처럼 그 자리에 붙박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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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술 깬 아침의 막막한 걱정. 내가 아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모두 그런 경험이 있고,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파티 다음날 잠에서 깨어 전날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 오전 내내 걱정에 잠겨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참다 못하면 파티 주최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반응을 살핌으로써 우리 행동의 단서를 찾아내려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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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에 이중생활이 있다는구나. 술에 취해서 실수를 하여 남자친구가 아닌 사람과 밤을 보내고 나면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려고 보니 동시에 두 명의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고,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심지어 어떤 때는 임신을 했는데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었대. 그 아이를 낙태하면서 자신은 타락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술을 끝내 끊지 못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어.

지은이가 3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술을 더 많이 먹게 되었대.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지은이한테 한 이야기는 술 끊으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담배를 끊으라고 했대. 이 책에서는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은이가 나중에 폐암으로 요절하게 되었으니, 어머니는 딸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셨던 것 같구나.

지은이는 그렇게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했어. 쌍둥이 자매 베카의 계속된 잔소리와 자신도 더 이상 늦어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병원과 재활센터를 찾아가게 된단다. 그곳에는 지은이처럼 자기혐오를 하면서 인생의 밑바닥을 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재활센터에서 알코올 중독을 치유하는 비중이 3분의 1 정도 된다고 하는구나. 생각보다 높은 수치 같구나. 물론 나중에 다시 재발하는 사람들도 많다는구나. 지은이는 그 3분의 1에 포함되어 어둡고 긴 알코올 중독의 터널에서 빠져나왔단다. 이후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담배를 물곤 했다는구나. 담배 말고 사탕이나 초콜릿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싶구나. 알코올 중독에서 치유되고 나니, 삶이 더 명확해지고 남자 친구도 한 명으로 정리하고 제대로 된 삶을 찾기 시작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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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술을 끊고 나서의 첫날 아침 느낌을 이야기하고 싶다. 마치 나의 옛 인생에서 쑥 뽑혀 나와 맑고 깨끗하고 독립적인, 꽃과 빛이 가득한 새 들판에 내려진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느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몇 주가 지나는 동안 내게는 자신감과 안도감, 드디어 내 인생의 개선에 나섰다는 인식에서 나온 희망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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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AA에도 계속 나가서 성공 사례를 공유하기도 했대.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흔 두 살에 폐암에 걸려 죽고 말았구나. 그렇게 요절하지 않았다면 지은이 캐럴라인 냅의 책들을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구나. 만약 술을 끊지 않았다면 더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들더구나. 그의 알코올과 싸움에서 이겨낸 것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좀더 일찍 그 싸움을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더구나.

….

아빠가 생각하기에, 식상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술은 사람 사는 세상에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되, 지나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담배는 백해무익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단다. 너희들도 아빠와 같은 생각을 갖길 바라면서, 오늘 독서 편지는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사랑이었다.


다른 사람이 진정한 버전의 나를 눈치채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파티장이나 술집에서 다섯 잔째 와인을 기울이는 나를 본 사람들도 그지 조심스러운 사람이 어쩌다 긴장을 풀고 조금 흐트러지는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친한 친구들은 내 눈을 보면 술에 취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내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눈빛이 흐릿해지는 것이 보이면, 내가 내 속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약간 비틀거리거나 평소마다 목소리가 조금 커져도 사람들에게 취했다는 말을 듣는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조용하고 얌전하게 술에 취했다. 어수선해지는 건 내 머릿속일 뿐이었다. - P34

"술을 마시면 내 마음 가득한 더러운 기분이 사라졌어요." - P101

술을 마시면 내가 원하는 성숙한 모습의 내가 되어 메를로의 섬세한 맛을 논하고, 그것이 구이 요리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떠들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 잘 어울렸고, 삼촌들, 숙모들,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것도, 술잔을 입에 댄 채 다른 사람들이 술 따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다 편안했다. 나는 술을 통해서 상태를 변화시킨 것 같았고, 그런 느낌은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여기에서 ‘두려움+술=용기’라는 또 하나의 방정식이 생겨난다. - P107

비극은 그 보호막이 작용을 멈추면서 시작한다. 변신의 수학은 바뀐다. 이것은 불가피한 결말이다. 장기간에 걸친 과음은 우리 인생을 망가뜨린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맺은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업무에 장애가 발생한다. 재정 문제, 법적 문제에 부딪히거나 경찰과 부딪힐 수도 있다. 고통이 커지면 어느 순간 옛 수학(불편+술=불편 없음)은 전처럼 들어맞지 않게 된다. 편안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소심함이나 두려움, 분노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좀 더 깊고 근원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방정식은 더욱 강력하고 완전한 내용으로 바뀐다. ‘고통+술=자기 망각’이라는. - P114

알코올 중독자들은 책임 회피의 귀재들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늘 타인이나 사물 탓으로 돌리는 것, 이것은 알코올 중독자를 가려내는 징후기도 하다. 이들은 관계가 꼬이는 엉켰을 때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그해 여름 나는 데이비드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에게 의문에 찬 눈길을 던졌다. 그에게는 뭔가 부족했다. 뭔가 마땅치 않았다. 나한테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내가 가진 거대한 결핍감의 크기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내 소망의 부조리함도 감지하지 못했다. - P139

술이 없으면 나는 우리에 갇힌 동물 같았다. 그러니 늘 술을 끼고 살 수밖에 없었다. 술이 없으면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생각과 팔다리가 내 것이 아닌 듯했고, 그것들을 사용할 방법도 나를 멀리 비켜가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일요일 아침이면 늘 그런 느낌을 받았다. 홀로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면 텅 빈 하루의 시간밖에는 아무것도 나를 기다리는 것이 없었다. - P164

혼술이 역설은(그러면서 정말로 위험한 것은) 우리가 정서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혼자 술 마시던 시절, 술이야말로 내 진정한 감정의 문을 열어주는 유일한 도구라고 느꼈다. 술을 마시고 녹아내린다. 술을 마시고 녹아내린다. 술을 마시고 흐느낀다.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 걸어 고통을 호소한다. - P166

그 순간 나에 대한 오기가 솟았다. 처참한 내 인생이 한눈에 들어왔다. 술 마시고 싸우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뛰어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민망한 인생, 지루한 인생, 게다가 극도로 피곤한 인생이었다. 결국 남는 게 무엇인가? 이 모든 소동이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우리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피하고자 술을 마시지만, 다음날 아침 깨어나면 그 선택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개의 목에 걸린 줄처럼 우리를 끌어 내리고 우리의 전진을 방해한다. 모멸감, 이 모든 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찔함. 마이클, 줄리안, 우울증, 불안, 거짓말, 술, 술, 술…… 내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고 또 흘러갈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이 그랬듯이. - P330

‘나는 알코올 중독자다. 그러니까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자시 인정은 밀물과 썰물처럼 한순간 차올랐다가 다음 순간 빠져버린다. 술 마시던 시절의 일을 돌이켜보면, 내가 올코올 중독자라는 증거는 많고도 많았다. 알코올을 들이켜면 내게는 강박 충동과 자제력 상실이라는,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는 일련의 생리적 반응이 일어났다. 그래도 나는 아직 알코올 중독이 영구적인 진해성 질병이라는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술을 마시고 자제력을 잃지 않았던 적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알코올에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순기능도 있지 않은가? 그냥 꼭 한 잔만 하면 안 될까? 이런 질문은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같은 두려움과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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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가
김진영 지음 / 반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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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김진영 님의 <여기서 나가>라는 소설이란다. 아빠가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김진영 님은 아빠의 회사 지인의 누나라서 그런지 신간 소식이 더 반갑더구나. 김진영 님은 몇 년 전에 읽은 스릴러 <마당이 있는 집>로 소설가 데뷔를 하신 분인데, 그 이전에는 영화 감독도 하셨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마당이 있는 집>을 읽고 영화화가 시급하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이후에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더구나. 이번에 나온 신작 <여기서 나가>는 오컬트가 가미된 스릴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소설도 속도감 있는 전개로 쉴 틈을 주지 않고 읽게 만드는구나. 이번 소설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더구나.

 

1.

이상조 할아버지와 순화 할머니는 80대 노부부로 부안 지역에서 농사를 지내신단다. 그들에게는 가슴 아픈 상처가 있단다. 똑똑하고 착했던 큰아들 형진이 작년에 심장마비로 죽었기 때문이야. 이상조 할아버지의 가족 소개를 좀 해볼게. 작년에 죽은 형진은 생전에 공무원이었고,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해령이라는 여자와 결혼했어. 그런데 해령은 재혼이었어. 전남편과 사별하고 형진과 만나 결혼한 것이야. 전남편과 해령 사이에는 수인이라는 딸이 있었어. 그리고 둘째 아들 형용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최근에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고 말았어. 돈 많이 들어가는 두 아이가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지. 형용의 아내 유화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것으로 생활비 충당은 쉽지 않았어. 막내딸 성희는 중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었고 결혼한지 10년이 되었는데 아직 아이가 없었단다. 이상조 할아버지의 가족 소개는 이쯤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상조 할아버지는 어느 폭우 내리던 밤, 물길을 내러 밭에 갔다가 밭에서 검은 형체를 보고 깜짝 놀랬어. 그 형체는 금방 사라지고 그 형체가 있던 자리에 가보니 불에 그을린 오 만원 지폐에 한자로 자신의 축은 아들 이름 이형진이 적혀 있었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이 일로 놀란 이상조 할아버지는 형용과 성희를 집으로 호출했단다. 그리고 이상조 할아버지는 한가지 고민이 있었단다. 자신의 아들이 죽고 나면 재산 상속을 해야 하는데, 자신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해령과 수인도 법적으로 상속인이 되는 거야. 형진이 죽은 이후 이상조에게는 남남처럼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자신이 죽기 전에 땅을 미리 형용과 성희에게 증여하기로 했어. 그 이야기를 이번에 내려온 형용과 성희에게 이야기했단다. 그 대신 자신이 죽기 전에는 그 땅을 매매도 하면 안되고, 담보로 돈을 빌려도 안 된다고 다짐을 받았단다.

평생 자신이 일군 땅에 애착이 있으니 자식에게 증여를 하더라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공감이 가더구나. 그런데 형용은 엄마로부터 형의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 형이 엄마의 명의로 1억짜리 땅을 산 것이 있다는 거야. 형용은 엄마에게 이야기해서 그 땅을 자신에게 증여하게 했단다. 형용은 형이 산 땅 청사동을 가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베이커리 카페였어. 해 지는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베이커리 카페를 하면 잘 될 것 같았어. 그래서 아내 유화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내는 좀 내키지 않았어. 서울을 떠나 군산에 가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고, 아이들 전학도 신경 쓰이고하지만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단다.

 

2.

형용은 형의 친구 필석 형의 도움으로 베이커리 카페를 설계하고 짓기 시작했단다. 그 땅에는 일제시대 지은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의 기둥을 그대로 두고 리모델링 하자고 했어. 건물의 컨셉을 일본식 건물과 현대식 건물의 콜라보라고 정했지. 그런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게 되어 아버지와 약속을 어기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땅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단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 필석 형에게 1억원도 투자 받았어.

그런데 유화가 우연히 들린 이웃에 있는 중국집 주인으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어. 형용이 산 청사동 땅은 죽은 자의 땅이라는 거야. 귀신이 사람 잡는 땅이라서 오랫동안 건물을 안 짓고 방치한 것이라고 말이야. 유화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냥 괴담이라고 생각했어.

어느날 형진의 아내 해령이 상조 할아버지를 찾아와서 형용과 성희에게 땅 증여한 것에 대해 항의를 했어. 3분의 1은 수인의 땅 아니냐면서 말이야. 해령이라는 여자도 만만한 여자는 아닌가 보구나.  같이 산 시간도 얼마 안 된 남편이 죽었고 전 남편의 딸을 남편이 입양을 했더라도 그렇게 상속 지분을 주장하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상조 할아버지도 화를 내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큰소리치며 쫓아냈단다.

유화는 군산에 내려와서 해령을 외면할 수만은 없어서 만났단다. 해령이 대뜸 형진이 죽기 전에 대출한 1억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 자신이 그 대출 이자를 내고 있다면서 말이야. 유화는 뜨끔했어. 1억으로 산 땅이 바로 청사동 땅이니까 말이야. 형이 대출하고 해령이 이자를 내고 있는 돈으로 산 땅을 형용의 소유가 된 거야. 이 사실을 해령이 알면 가만 안 있을 것 같은데

상조 할아버지가 형용이 약속을 어기고 땅을 담보로 대출한 사실을 알고 크게 화를 내셨어. 형용도 대들어 크게 소리 지르고 집안 분위기를 점점 안 좋아졌단다. 유화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유화는 공사중인 카페를 찾아갔다가 카페 안에서 검은 형제에 얼굴만 하얀 남자를 보고 깜짝 놀라 기절했단다. 그 남자는 데테이케라는 일본말을 계속 외쳤단다. 나중에 그 말을 찾아보니 나가라라는 뜻이었어.

우여곡절 끝에 카페 이름은 유메야로 하고 오픈을 했단다. 독특한 분위기에 노을 맛집으로 SNS에 소문이 나면서 금방 인기를 끌게 되었단다. 손님들도 늘면서 인근 상가에도 좋은 영향을 끼쳐서 다들 반기는 분위기였어. 어느날 해령이 찾아왔어. 상속 관련해서 소송 진행 중이고 청사동 땅도 실제 주인은 형이라면서 차명으로 된 땅을 증여 받은 것 아니냐면서 형용에게 추궁을 했단다. 형용은 모른다고 잡아 떼자, 유화에게도 물어보자 유화는 울먹이며 미안하다고 했어. 형용은 해령을 내쫓듯 보내고, 유화에게도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고 잔소리를 쏟아 부었어. 한편 상조 할아버지는 밭에 나갔다가 형진이 꺼내달라는 소리와 형상에 이끌려 땅에 얼굴을 박고 땅을 파내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단다. 지나가던 이웃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큰일 날 뻔 했어.

그런데 이상한 일들은 계속 일어났어. 카페의 음식과 빵이 너무 빨리 상하는 거야. 하루도 안되어 곰팡이가 생기기도 했어. 그러다 보니 리뷰도 음식과 빵이 맛없다는 안 좋은 내용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어. 형용은 그것이 유화의 짓이라고 의심했어.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서 한 짓이라고 말이야.

유화는 읍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해령이 어떤 무당을 만나는 것을 보았어. 아니, 무당을 왜? 이걸 형용에게 이야기를 하자, 형용은 무당을 찾아가 만나보았어. 무당이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형용이 생각하기를, 해령은 무당으로부터 누군가를 저주하는 짓을 했다고 했어. 필석 형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단다. 형용은 혜령을 찾아가 경고하려고 했으나, 해령도 맞받아치며 강경하게 나오자, 화가 난 형용은 자신도 모르게 해령에 손찌검을 했단다. 곧 후회를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지. 그런데 해령이 그런 형용을 보고 형진과 똑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형이 해령을 때렸다고? 문득 형용은 어렸을 적 형이 떠올랐어. 사실 형진은 내면에 폭력성을 품고 살았어. 가끔씩 욱하여 폭발하는 스타일이었어. 그래서 형용은 어렸을 때 형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한 적도 있었어.

 

3.

유화는 청사동 땅에서 이상한 일과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자, 전 주인을 찾아가 보았어. 전 주인은 김규선이라는 사람인데 그 분은 치매로 요양병원에 있었어. 유화는 김규선을 만났는데, 알 수 없는 일본말만 지껄였어. 그러면서 김규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녀를 유화에게 주었어. 그리고 유화는 해령을 만나러 갔어. 해령은 문뜩 형용을 도와주고 있는 필석을 멀리하라고 했어. 필석은 죽은 자를 불러내는 사람이라며 카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말까지 했어.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유화는 청사동 땅에 있던 집의 주인들을 계속 추적했어. 김규선 이전의 주인은 일본인이었는데, 아내를 죽이고 자살을 했다는 끔찍한 사실도 알게 되었어. 어렵게 그 일본인의 사진을 찾았는데, 오래되긴 했지만 자신이 카페에서 본 사람과 비슷한 거야. 그러다 보니 그 땅이 저주받은 땅이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어.

유화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굿을 하기로 했단다. 여기서 실수남편과 상의를 하고 했어야지. 굿판을 한창 벌이고 있을 때,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용이 와서 화를 내면서 깽판을 쳐서 굿은 중단되고 말았지유화는 자신의 마음도 이해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폭력까지 쓰는 남편에게 화도 나고 실망도 나고 서울 친정집으로 가겠다고 했어. 형용은 갈 때 가더라도 카페의 식자재만 제대로 정리하고 가라고 했어. 유화가 카페 안에 있는 베이커리 룸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형용은 베이커리 룸을 밖에서 잠갔단다. 유화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갈까 봐 했다고 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것 같구나. 정말 카페에 저주가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구나.

형용은 필석 형의 글씨가 아버지가 밭에서 발견한 지폐에 써진 글씨체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형용은 필석 형이 살고 있는 당진으로 찾아갔어. 그런데 평소 잘 꾸미고 다니던 모습과 달리 그의 집은 다 쓰러져가는 폐허 같은 집이었어.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어. 온갖 부적과 저주의 글이 적혀 있는 글들을 보았어. 그 속에서 형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도 보았어. 필석 형의 정체는 무엇?

그 때 필석 형이 왔어. 청사동 땅에 있는 집의 주인은 죽은 자의 주인이라고 했어. 이치카와 다케오. 그가 지은 집이었어. 일제 시대 군산에서 미곡수출업으로 떼돈을 번 갑부이자 지주였지. 해방 후 자신의 재산을 버릴 수 없다면서 귀화를 신청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어. 더욱이 그의 아내 마카오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어. 그렇게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 아내를 창고에 가두었어. 마카오는 창고에 갇혀서 미쳐갔지. 창고로 들어온 다케오를 비녀로 찔렀고 다케오는 마카오의 목을 졸라 둘 모두 죽고 말았단다.

집은 다케오의 하녀였던 이효심이라는 사람에게 넘어갔는데, 이효심은 바로 유화가 만났던 김규선의 어머니였지. 청사동 땅에 저주를 내린 것이 필석 형이라는 걸 알고 그에게서 도망쳐 유화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다시 카페로 왔어. 유화는 베이커리 룸에 갇혀 미쳐갔어. 귀신에 들렸다고 볼 수도 있지. 자신이 그 옛날 마카오가 되어 창고로 들어오는 마케오를 비녀로 얼굴과 목을 찌르고 도망을 갔어. 이내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야 자신은 유화이고 자신이 찌른 사람은 형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필석은 결국 청사동 땅을 자신이 사들였단다. 사실 필석은 청사동 땅의 원주인 다케오의 손자였단다. 그는 그 땅을 다시 되찾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했던 거야. 청사동 땅을 되찾았다는 것에 승리감까지 느꼈어. 그런데 그때 밖에서 카페 밖에서 불이 났어. 목조건물이었던 유메야 카페는 삽시간에 불이 번졌어. 그런데 창 밖에 보니 형진, 아니 형용의 모습이 보였단다. 형용이 죽지 않았나? 문이 다 밖에서 잠겨 있어서 탈출하지도 못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으나 오컬트 스타일의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더구나. 그냥 흘러간 문장이 나중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경우도 있고 말이지. 그래서 아빠가 오늘 줄거리를 이야기해주었지만, 매끄럽지 않아도 이해 바람. 일제시대 군산은 국내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빼돌리는 주요 항구로 엄청 발전했으나 그 이후 점점 쇠퇴하여 소멸 도시를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아픈 근대사의 흔적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관광을 많이들 가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아빠는 지나가면서 유명하다는 짬뽕집을 들른 적은 있으나, 군산 여행을 제대로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구나.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함께 군산 여행을 가보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전라북도 군산부 청사정 남서쪽 해변에 자리한 언덕 위에, 일본인 이치카와 댜케오 씨의 신저택 준공식이 지난 13, 지방 유지 및 조선 유지를 초정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는바, 본 저택은 군산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승지에 건축되었으며, 동씨의 개간사업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라 하겠노라.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누군가가 주인으로 모셔주기를, 자신과 같은 염원을 가진 이가 자신을 위해 삶을 빌려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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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간강이요, 부자연스러운 것은 질병이다. 허파가 공기를, 눈이 빛을 맞아들이듯, 신체는 건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건강은 생활 감정 전반에 걸쳐 말없이 살고 함께 성장한다. 그러나 질병은 이질적인 것으로서 갑자기 들이닥치고, 예상치 못하게 영혼을 덮쳐 충격에 빠뜨린 뒤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질문들을 흔들어 깨운다. 다른 어떤 곳에서 온 이 사악한 적은 도대체 누가 보낸 것일까? 그는 머무를까, 아니면 사라질까? 그를 붙들고 간청한 것인가, 아니면 다스릴 것인가? 질병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우리를 할퀴어 극도로 상반된 감정들을 마음에 새겨넣는다. 경외, 신앙, 희망, 낙담, 저주, 겸허, 절망 질병은 환자에게 묻고 생각하고 기도하라고, 겁에 질린 눈을 허공으로 들어 올려 붙안을 떠맡아주는 어떤 존재를 꾸며내라고 가르친다. 고통이 인류에게 종교적 감정, 신에 대한 생각을 창조해주는 순간이다.

 

(60)

옛 방법이 은폐하려 애쓰던 그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라고 요구했다. 모르는 체하지 말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돌아가지 말고 들어가라는 것이다. 눈 돌리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외투를 입히지 말고 벌거벗기라는 것이다. 충동을 인식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틀어쥘 수 있다. 악마의 심연에서 충동을 끌어내 거리낌 없이 마주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길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은 미학이나 문헌학 못지않게 도덕이나 수치심과는 상관이 없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간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침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그 세기가 얼버무리고 싶어 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억업과 무의식에 대한 자기 인식과 자기 고백의 문제를 시대의 한복판에 던져놓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억압된 근본적 갈등을 위선에서 학문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수많은 개인들뿐 아니라 도덕병에 걸린 그 시대 전체를 치료하는 일에 착수했다.

 

(63-64)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류가 자신에 관해 더 명백하게 알게 해주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위대한 업적이다. 나는 더 명백하게라고 말하지. 더 행복하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한 세대 전체의 세계상을 심화했다. 나는 심화했다고 말하지, 미화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과격한 것은 행복을 주지 않고 결단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동심을 언제까지나 꿈결 속에서 달래어 재우는 일은 학문의 과제가 아니다. 학문의 과제는 이 무정한 대지 위에서 올곧게 걸어갈 것을 인류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불가결한 작업을 함으로써 자기 몫을 모범적으로 행했다. 일하면서 그의 냉혹함은 강인함이 되었고, 그의 엄격함은 불굴의 법칙이 되었다. 프로이트는 단 한 번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안식처로 가는 탈출로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 지상의 낙원이나 천상의 천국을 향해 도주하는 길을 가르쳐준 적이 없다.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가는 길, 자기만의 심연에 이르는 위험한 길을 가르쳐주었을 뿐이다. 그의 통찰에 너그러움 따위는 없었다. 그는 매서운 북풍처럼 예리하게 음습한 대기 속으로 침입하여 황금빛 안개와 장밋빛 구름으로 가득 찬 감정을 붙어내버렸다.

 

(67)

그의 삶의 리듬은 쉼 없이 균일하고 끈기 있게 흘러가는 일의 리듬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었다. 75년 동안 한 주 한 주가 제한된 활동의 똑같은 순환 주기를 명확히 보여주었으며, 하루하루가 다른 날과 쌍둥이처럼 비슷하게 지나갔다. 대학에 몸담은 시기에는 매주 한 번의 강의와 매주 수요일 저녁 제자들과 했던 소크라테스 대화법에 따른 학술 심포지엄, 매주 토요일 오후의 카드놀이를 제외하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정이 될 때까지 일분일초까지도 분석, 치료, 연구, 독서, 이론적 구성에 바쳤다.

 

(74)

니체가 망치를 들고 철학을 했다면, 프로이트는 평생 메스를 들고 철학을 했다.

 

(77)

그의 사유가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파악하기도 전에 그의 눈은 벌써 창조를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의견의 오류를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창조적 시선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 직관은 외부의 영향이 마치 인간의 눈빛이 한 번도 비춘 적이 없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 수천 번 표현된 것을 마치 인간의 입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것처럼 말끔하게 새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직관적 탐구자가 지닌 이 시선의 마법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가르칠 수 없고, 천재적 본성의 소유자가 최초이자 단 한 번의 직관을 고수하는 것은 괜한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깊이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96)

감정이 억압된다면 도대체 누가 그것을 억누르는가? 그리고 어디를 향해 억압되는가? 어떤 법칙에 따라 정신에서 나온 힘이 신체적 힘으로 전환되며, 그 끊임없는 변화들은 어떤 공간에서 작동하는가? 깨어 있는 인간은 이런 것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편으로 그것들에 관해 알기를 강요받으면 곧바로 알게 된다. 지금까지 학문이 감히 탐험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이 그의 눈앞에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멀리서 흐릿하게 보이는 새로운 세계릐 윤곽을 알아차렸다. 바로 무의식이었다. 개인적 심리 생활 속 무의식적 부분의 탐구가 이제부터 그가 평생을 몰두하게 될 문제이다. 심연으로의 하강이 시작된 것이다.

 

(109-110)

그가 보기에는 모든 심리적 사건에는 특정한 의미가 있고 모든 행위에는 행위자가 있다. 또한 그렇게 실수할 때 한 사람의 의식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억압받는데, 이 억압하는 힘이야말로 그가 오랫동안 성과 없이 찾아녔던 그 무의식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프로이트가 보기에 실수는 생각 없음이 아니라 억압된 채 밀려들어 가 있던 생각의 자기 관철이었다. ‘잘못말하기, ‘잘못쓰기, ‘잘못잡기에서 뭔가가 말을 걸어온다. 우리의 깨어 있는 의지는 그것이 말로 나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그 무언가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우리도 배워야만 하는 무의식의 언어를 구사한다.

 

(124-125)

프로이트는 꿈이 우리의 심리적 균형을 안정시키는 데 필수적임을 처음으로 입증한다. 꿈은 우리 감정 능력의 밸브이다. 우리의 작은 세속적 육신 속에는 정말이지 너무도 막강한 욕만, 헤아릴 수 없는 괘락욕과 생존 본능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소원 가운데, 평범한 사람들이 옹졸하게 꽉 짜인 일상 속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몇 개나 되겠는가? 우리들 중 누구도 자신의 쾌락의지를 천분의 일도 실현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룰 수도 없는 한없는 욕망이 더없이 궁색한 소액 연금 생활자, 임금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의 가슴속에 밀려드는 것이다. 저마다의 마음속에 못된 욕망들이 음란하게 들끓는다. 지배권이 부재하는 권력의지, 억눌리고 비겁하게 일그러진 무정부주의적 욕구, 감춰진 허영심, 열정, 질투 등. 날이면 날마다 수많은 여자들이 지나다니며 저마다 순간적인 정욕을 도발하고, 이루어지지 못한 그 모든 소망과 소유욕은 똬리를 튼 채 독사처럼 틀어박혀 혀를 날름거르며 새벽종이 우릴 때부터 밤이 깊어질 때까지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 밤마다 꿈이 이 모든 응어리진 소원들에 배출구를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영혼은 그런 대기압 아래에서 폭발하거나, 갑자기 흉악한 난동이라도 부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157-158)

프로이트는 깨달았다. 성 의식은 사춘기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갑자기 몸 안에 주입되는-대체 그것이 어디로부터 올 수 있다는 말인가?-것이 아니라, 오히려-모든 강단 심리학보다 천 배는 더 심리학적인 언어가 이미 오래전부터 대단히 구체적으로 표현해주었듯이-영글다 만 인간 속에서 성 충동이 그저 깨어날뿐이라는 사실, 따라서 성 충동은 잠든 채로(말하자면 잠복 상태로) 오래전부터 어린이의 신체 속에서 현존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유아가 걷기 전에 걸을 수 있는 잠재력을 두 다리에 지니고 있듯이, 말할 수 있기 전에 언어 욕구를 지니고 있듯이, 성욕도-목전에 맞는 행동에 대해서는 짐작도 못 하면서-유아 속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유아는-결정적 표현!-자신의 성욕에 관해 안다. 그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189)

인간의 지성이 인간의 충동 활동에 비해 무기력하다는 것은 얼마든지 강조되어도 좋고, 그런 주장이 옳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약점에는 특징이 있다. 지성의 목소리는 낮게 속삭이지만, 자신의 말이 경청될 때까지 쉬지 않는다. 수없이 여러 번 거듭 퇴짜를 맞지만 결국에는 성공한다. 이것은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게 해주는 몇 안 되는 점들 가운데 하나이며 적지 않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지성이 우위를 차지하는 날은 확실히 멀리 있지만, 그렇다고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지는 않을 것이다.

 

(199)

현재 우리는 프로이트 덕분에 처음으로 개인의 중요성을, 모든 인간 영혼의 대체 불가능한 일회적 가치를 새롭고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다. 유럽에서 예술, 연구, 생명과학의 모든 영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찬성하든 반대하든 프로이트의 사상 체계로부터, 그의 견해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창조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 외부인은 모든 영역에서 삶의 중심부-인간적인 것-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작업이 의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철학이든 교과서적 의미에서 엄밀하게 규칙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전문가들이 망설이는 동안, 개별성과 궁극적 가치에 관해 추밀 고문관과 학자들이 열심히 싸우는 동안, 프로이트의 이론은 이미 오래전에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참된 것으로 입증되었다. 괴테가 잊을 수 없는 말로 우리에게 새겨놓은 창조적 의미에서 참된 것으로 입증된 것이다. ”결실이 있는 것만이 참된 것이다.“

 

(211-212)

당신이 빠짐없이 알고 있는, 그의 작품이 지닌 거의 모든 특성들은 그 자신의 특성에 기인하며, 우리에게는 특이한 것이지만 러시아인들에게는 흔히 있는 심리 구조입니다. 사실 성적 기질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것을 더 상세히 설명해야 하겠지요. 우선 그것은 학대하고 맟설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분석 없이 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스스로 각 인물들과 각 문장들을 통해 정신분석을 하고 있으므로, 정신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카라마조프 씨네 사람들>이 도스토엡스키의 가장 개인적인 문제인 아버지 살해를 다루며 범행과 무의식적 악의에 관한 정신분석적 원리를 그 근거를 삼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또한 그가 표현한 기이한 성애는 충동적 발정이거나 승화된 연민입니다. 자신의 영웅들이 사랑할 때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미워하는지 등에 관한 회의[=양가감정]는 그의 심리학이 어떤 독특한 토양에서 자라났는지를 보여줍니다.

 

(360)

삶은 언제나 값지고 안락하게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직업적 위로꾼들에게 우리는 이미 신물이 나 있고, 이와 같은 대담한 진산을 느끼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변명들을 보상해준다. 심리학의 측연이 시대적으로 풀리지 않는 중요한 문제의 심연을 향해 내려져 있다는 것은 이제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순조롭게 풀릴 만한 문제들을 진짜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낙관적 해석이든 비관적 해석이든 중요치 않다. 한 학술원이 [학문과 기술의] 진보가 인류를 더 선하게 만드는지에 관한 유치한 논문을 현상 고모하고, 장 자크 루소가 막무가내로 아니라고 대답하여 세인의 열광을 얻었던 시대는 지났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명제들을 제시하는 방식, 엄격하고 객관적이고 어떠한 미신이나 편향성으로도 사탕발림하지 않는 이 방식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질문을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엄밀하고도 결정적인 무언가를 제공할 것이다.

 

(368)

마지막에 그는 공허와 망각의 시대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확고부동한 사람, 절대적인 것, 지속적으로 타당한 것 말고는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 없다고 여겼던 순수한 진리 탐구자. 마지막에 그는 우리의 눈앞에, 경외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 앞에 있었습니다.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가장 고귀하고 완전한 유형의 연구자. 어떤 깨달음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일면 주의 깊고 세심하게 검토하고, 일곱 번 숙고하고도 자기 자신을 의심했지만, 확신이 들고 나면 즉각 온 세상의 저항에 맞서 그것을 지켜냈던 연구자. 그를 만나고 우리가 얻은 것, 다시 한 번 시대의 이상으로 배운 것은, 지성인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용기보다 더 멋진 용기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용기를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닏.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감히 찾으려 하지 않거나 표현하지도 고백하지도 않았기에 발견하지 못한 깨달음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는 감행하고 또 감행했습니다. 갈수록 더욱 감행했고, 혼자서 모든 사람과 맞섰습니다. 생의 마지막 날들까지도 그동안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모험했습니다. 깨달음을 향한 인간의 긑없는 투쟁 속에서 이런 불굴의 정신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본보기를 제시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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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
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 드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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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홍보성 문구로 알게 된 책이란다. 아빠가 귀가 얇아서 그런 문구에 잘 휩쓸리잖니.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이라는 홍보 문구였단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해야 옳겠구나. 퓰리처 상은 뉴스 보도 관련된 상인 줄 알았는데, ()보도 부문도 있다고 하더구나. 그 비보도 부문을 한국계 미국인 우일연이라는 분이 2024년에 수상하셨다고 하는구나. 2024년은 한강 님이 노벨 문학상을 타고, 김주혜 님이 톨스토이 문학상을 타고, 우일연 님이 퓰리처상을 탔었구나. 2024년은 우리나라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한 해라고 해도 될까? 물론 김주혜 님과 우일연 님은 교포시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계시니까

예전에는 한국계 미국인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되는 것이 흔치 않아서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되는 것 같구나. 물론 실망을 준 작품들도 있지만…. 아빠는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구나. 우일연님이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해서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와 관련된 작품은 아니란다. 1848년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고 하더구나. 소설 제목은 <주인 노예 남편 아내>로 네 단어로 나열하여 독특하구나. 소설 제목을 보면 노예 해방 관련된 이야기라 추측을 할 수 있겠구나.

 

1.

1848년 조지아 주 메이컨이라는 곳에 예속 피해자 윌리엄과 엘렌 크래프트 부부가 있었단다. 이 소설에서는 예속 피해자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원문에서는 enslaved를 번역한 것이래. 보통 노예는 slav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책에서는 enslaved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는구나. 이유는 노예라는 신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강제로 부여된 상태를 분명히 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옮긴이는 ‘enslaved’예속 피해자, ‘enslaver’예속 가해자로 옮겼다고 하는구나. 엘렌은 노예 엄마와 백인 주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피부는 완벽하게 백인 주인 아빠를 닮아서 흰색을 가지고 태어났단다. 하지만 당시 노예의 피 한 방울만 섞여도 노예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엘렌도 그냥 노예 피해자였단다.

=======================

(101)

힐리 가족은 서로를 남편과 아내로 불렀을지 몰라도 법은 그들에게 주인과 노예가 아닌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게 했다. 조지아주에서 개인에 의한 해방은 금지돼 있었다. 초기에는 조지아주 사람들도 자기 의지에 따라 노예를 해방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주의 조지 워싱턴이 (조건을 붙이긴 했어도) 노예를 해방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시대에 힐리에게는 메리 일라이자나 그들의 자녀를 해방할 힘이 없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백인이라는 점, 그들의 모습도 백인 같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소위 한방울 법칙이라는,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그 사람의 몸 전체가 유색인종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게다가 노예제도는 언제나 어머니의 혈통을 따랐다. 흑인이라는 혈통과 예속은 건드려서도 취소해서도 안 되는 영구적인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힐리 가족이, 그리고 이제는 엘렌도 바로 이런 가정에 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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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은 흑인 노예였으며, 고급 가구 제작자 밑에서 일하는 유능한 기술자였어. 엘렌과 윌리엄은 조지아 주를 떠나 노예제가 폐지된 북부로 도망가기로 계획을 세웠어. 엘렌이 흰색 피부인 것을 이용하기로 했어. 엘렌이 남장을 하고 존슨이라는 가명을 쓰기로 했고, 윌리엄은 엘렌을 모시는 노예라고 하고 조지아 주를 탈출하기로 했단다. 엘렌이 피부가 희기는 하지만 체구가 작아서 남장하는 것이 눈에 띌 수 있는 위험도 있고, 윌리엄이 180cm가 넘는, 당시로는 큰 키라 눈에 잘 띄는 위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자유를 절실히 원했단다.

엘렌이 탈출하기 직전에는 자신의 주인이자 아빠인 사람이, 딸인 일라이자에게 소유권을 넘긴 상태였단다. 일라이자와 엘렌은 이복 자매였으나 신분 차이는 주인과 노예였던 거야. 그래도 다행히 이복자매 일라이자는 엘렌에게 잘 대해주었어. 하지만 자유는 주지 않았지.

조지아 주부터 북부 필라델피아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어. 조지아 주에서 기차표를 사는 것부터 그들에게는 위험한 순간이었어. 그리고 엘렌은 주인의 친구, 오래 전에 자신에게 청혼을 했던 남자 등 지인을 만나는 위기를 맞이했지만 다행히 그들은 엘렌을 알아보지 못했어. 기차 안에서는 귀머거리 행세를 하고 류머티즘으로 팔을 다친 척 했단다. 윌리엄도 기차 출발 전에 가구 제작사 주인이 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려서 걱정했으나 다행히 기차는 출발하였단다.

...

엘렌과 윌리엄은 기차를 타고 서배너로 가서, 합승 마차과 증기선을 타고 찰스턴으로 행했단다. 가는 내내 자신들의 신분이 들통날까 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단다. 엘렌이 류머티즘으로 팔을 다친 척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어. 사람들이 어디로 가냐고 물어 보면, 류머티즘을 고치러 의사 삼촌이 있는 필라델피아로 간다고 했고, 그러면 그들은 필라델피아에 가게 되면 노예가 도망갈 거라고 경고도 했어.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윌리엄에게 필라델피아에 가면 탈출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단다.

찰스턴에서 배를 갈아타고 워싱턴으로 갈 때 큰 고비가 찾아왔어. 찰스턴 세관원의 싸인 요청이 있었어. 글을 모르는 엘렌은 글을 쓸 줄 몰랐거든. 엘렌은 팔 아프다고 세관원에게 싸인을 대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어. 그런데 다행히 찰스턴으로 오는 배에서 알게 된 선장이 엘렌을 알아보고 서명을 대신해주었단다. 물론 존슨이라는 백인 신사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워싱턴에서 다시 기차 타고 볼티모어 역에 도착했을 때 다시 한번 고비가 찾아왔지. 볼티모어 역 관리인이 노예주인이라는 증서를 요구했어. 이번에도 기차의 차장이 그들을 알아보고 보증을 해주었단다. 그렇게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기고1600km의 긴 여정을 끝내고 드디어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단다. 하늘이 그들을 돕고 있는 것 같구나.

 

2.

그곳에서 반노예 협회의 스틸과 미플린 위스타 깁스라는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주었어. 남자인줄 알았던 엘렌이 여자라는 사실에 놀랬지. 그리고 흑인 최초 지방판사인 퍼비스라는 사람도 그들도 도와주었어. 그들이 필라델피아에 도착을 했지만,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단다. 도망간 노예 사냥꾼들이 잡으러 올 수도 있거든.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 중에 백인은 불안하고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단다. 하지만 세상에는 피부색이 아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엘렌은 글도 배우기 시작했어. 그들은 노예 탈출한 후 폐지론 강연자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윌리엄 웰스 브라운을 만났어. 브라운은 그들에게 강연해 줄 것을 요청했단다. 고민 끝에 엘렌과 윌리엄은 받아들였단다. 그리고 브라운과 함께 강연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영화 같은 이야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어. 그러면서 신문 보도도 되었고, 그들이 떠나온 조지아 주 메이컨에도 알려지게 되었단다.

해가 바뀌고 1849년 엘렌과 윌리엄은 보스턴, 매사추세츠 등 순회 강연을 하였고, 이는 노예 폐지 지지자들이 늘어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단다. 그들은 노예 폐지론자들과 함께 활동을 했는데,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기도 했어. 그렇게 순회 강연을 하긴 했지만, 크래프트 부부는 정착하기를 원했어. 그래서 그들은 강연을 중단하고, 보스턴에 있는 흑인 공동체에 정착하기로 했단다.

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1849년 미국은 노예제의 찬반으로 정치권도 갈등이 깊어지고 있었어. 그래서 연방 분리 이야기도 했었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했단다. 웹스터라는 상원의원이 연방의 분리의 위기를 지켜냈지만, 남부에서 도망친 노예들을 잡을 수 있는 도망노예법의 발의되어 통과되었단다. 이것은 남부에서 북부로 도망 와서 자유인이 된 이들에게는 최악의 법이었단다. 그들은 이제 납치 위협 속에 살아야 했어. 그래서 또다시 그곳을 떠나 캐나다로 탈출하는 이들도 늘어났단다.

한편, 엘렌의 주인이었던 콜린스는 도망노예법에 따라 엘렌과 윌리엄을 잡기 위해서 휴즈와 나이트를 고용하여 보스턴으로 보냈어. 휴즈와 나이트는 엘렌과 윌리엄에 대한 영장을 받으러 법원에 갔지만 판사들은 그 일을 꺼려 서로 미뤘어. 휴즈와 나이트는 변호사들을 찾아가 도움을 받으려고 했어. 휴즈와 나이트가 엘렌과 윌리엄을 잡으러 왔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시위를 하면서 그들을 방해하고 조종하고 위협했단다. 당시 엘렌과 윌리엄은 파커 목사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예의주시하고 있었어.

결국 엘렌과 윌리엄은 보스턴을 떠나 캐나다로 갔단다. 캐나다에 미국에서 건너오는 자유인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있었대. 캐나다는 더욱이 미국과 붙어 있기 때문에 100% 안전한 곳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엘렌과 윌리엄은 대서양을 건너 영국 리버풀로 가기로 했단다. 1850 11 29일 캠브리아 호를 타고 엘렌과 윌리엄은 드디어 리버풀로 출발하여 13일만에 리버풀에 도착했단다. 미리 와 있던 윌리엄 웰스 브라운과 재회를 했어. 오랜 여행 때문인지 엘렌은 신체적으로 많이 지쳐서 좀 쉬고, 윌리엄은 브라운과 함께 폐지로 강연을 다시 하기로 했단다. 그렇게 노예론 폐지 강연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오컴에 정착하려고 노력했단다. 조지아 주에서 자유를 찾아 떠난 그들의 여정은 리버풀까지 와서 이뤄낸 것 같구나.

….

미국에서는 결국 노예제 찬반의 갈등이 심화되어 남북전쟁이 일어났단다.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웠겠지만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이기면서 미국 전체 지역에서 노예제는 폐지되었어. 전쟁이 끝난 후 엘렌의 어머니 마리아는 영국에 와서 17년만에 딸 엘렌과 재회했단다. 그 때의 기분을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엘렌과 윌리엄 크래프트 부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단다.

….

이 소설은 반전이나 박진감 넘치는 재미는 없었지만 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소설을 읽는다면 손에 땀을 쥐면서 읽을 수 있고, 그들이 결국은 자유를 찾았을 때 그들과 함께 쾌감을 느낄 수 있단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나고 공식적으로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인종차별이 이어져 와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단다. <주인 노예 남편 아내>의 지은이 우일연 님의 다른 작품들도 우리나라에 소개되면 또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848, 미국 조지아주의 예속 피해자인 윌리엄과 엘렌 크래프트 부부는 서로의 해방을 위해 서계 반대편으로 가는 8,000킬로미터의 여행길에 올랐다.

책의 끝 문장: 바로 그 공간이 우리가 들어갈 자리다.




엘렌은 기차가 메이컨을 떠나기를 기다리면서 이번 기차 여행 이후로는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다. 이곳에 돌아오면 아마 족쇄를 차게 될 것이다. 성공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영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늘이 기도를 들어준다면 윌리엄만은 볼 수 있겠지만, 살아남는다면, 엘렌은 어머니를 해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먼저 그녀와 윌리엄이 자유로워져야 했다. - P54

크래프트 부부의 특별한 탈출이 신문1면에 실렸을 때는 미국 정제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멕시코와의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기존 영토의3분의1에 해당하는 영토를 더 얻었다. 정착민들이 서쪽으로, 특히 캘리포니아로 몰려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모든 신문에서 요란하게 광고되었다. 이런 광고의 헤드라인은 "골드러시!"라고 소리쳤다. 신문을 배달하는 소년들은 "새 배가 떠납니다!"라고 외쳤다. 이 모든 흥분의 한가운데에는 불안한 질문이 있었고, 크래프트 부부의 도망은 바로 그 질문을 강조했다. 이 땅에서 노예제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 전체에서는? - P256

많은 사람이 엘렌을 백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백인인 이 여성이 흑인 남성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종 간 결혼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지되었던 주에서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엘렌은 청중에게 사회적 질서를 고정해 두는 그 모든 범주의 의미에 질문을 던지라고 요구했다. 그 범주가 북부든, 남부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주인이든, 노예든, 남편이든, 아내든 간에 말이다. 엘렌과 윌리엄은 힘을 합쳐 널리 퍼져 있던 인종차별주의적 주장을 뒤집었다. 흑인은 사회악이거나 최선의 경우에도 자선의 대상이며 구원이 필요하다는 주장,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주장을 말이다. - P307

그들은 너무도 긴 거리를 달려왔다. 남부에서 북부로1,600킬로미터, 뉴잉글랜드 전역을 다니며 다시1,600킬로미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거친 파도를 건너4,800킬로미터, 그들은 서로를 위해, 서로와 함께 달렸고 이제는 바로 이곳, 이 시간에 서로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곳은 두 사람이 함께, 충분히 강하게, 각자의 정체성을 따로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누구를, 또 무엇을 잃었든 그들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가정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 P482

주인과 노예로서 나란히 선 것도 아니고, 남편과 아내로서 팔짱을 끼지도 않은 채, 친구들 사이에 함께 선 지금의 크래프트 부부는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들을 규정했던 역할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세계를 거닐었다. 그들이 순회강연에서 반복적으로 끌어다 쓴 역할, 충격과 눈물, 경이감을 끌어내기 위해 뒤섞어 짜맞춘 역할은 이 마지막 시위에 빠져 있었다. 수정궁은 미국에서든, 그 너머에서든 가능한 삶의 모습이자 하나의 가능성으로, 언젠가는 이루어질 희망으로 나타내는 투명한 국제적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윌리엄과 엘렌, 엘렌과 윌리엄은 모든 방해에서 해방되어 세계 시민으로서 걸었다. 그들은 더 이상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가 아니었다. - P560

"나는 노예 상태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자유보다 노예제도를 선호할 만큼 자유를 부정하는 건 신계서도 금하시는 일입니다. 사실 나는 노예제도로부터 탈출한 이래로 모든 면에서 내가 예상조차 못했을 만큼 나아졌습니다. 만약, 그 반대였다고 해도 이 문제에 관한 내 감정만큼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훌륭한 인간의 노예가 되기보다 잉글랜드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 P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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