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2) 

나이의 역사에는 어떤 정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오십 세에 쓰러집니다. 우리가 동경하던 성격적 특징은 왜곡되고, 오만함은 희한으로 변하며, 유머에는 요실금 환자의 지린내가 나고, 매력은 변절되어 버립니다. 청소년기의 변화와 비교할 수 있겠으나 더 비참하죠. 목소리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거나 사유의 융통성이 그대로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랜 친구들을 보석처럼 간직하세요. 여전히 함께 있을 때 편한 사람을요. 점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더 지혜로워지거나 더 흥미로워지거나 더 관대해진 사람들이죠. 끔찍한 난파 사고의 생존자라도 되는 양 곁에 그들을 잡아두세요.


(73)

빅토르 위고가 <파리의 노트르담>을 출간했을 때 당시 상류사회가 전적으로 그 작품을 추앙해주었다면, 그거야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위고가 충분히 버텨온 일이라면 당신에게도 분명 괜찮을 겁니다. 그는 사람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한탄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았어요. 조용히 살고 싶었다면 사륜마차 속에서 지방 촌구석의 후작 부인에게 무도회가 얼마나 좋았는지 알려주는 편지 따위나 썼겠죠. 사람들이 당신 면전에 침 뱉는 걸 원치 않는다면서 지금 당신은 개판 오 분 전인 작가 행세를 하고 있네요.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남자답게 대처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77)

오늘날은 모두들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하죠. 모두들 착실한 학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실 구석 난방기 옆에 앉아, 헛소리를 지껄이며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얼간이는 오늘날엔 인기가 없죠. 프레베르의 시에 나오는 열등생은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기업에서 쓰는 언어밖에 모르니까요. 진지함, 책임감, 고위직의 관점, 최고 수치의 기록, 우리가 견뎌야 할 유일한 도전은 흥미롭지 않습니다. 난장판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손에서 시작해야 즐거운 일이 되는 겁니다.


(89)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 내게 무척이나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 셈입니다. 열정은 더는 원할 때 진열장에서 꺼낼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나를 끌어당기는 게 없어요. 빛나는 것도 없고 나를 뒤흔드는 것도 없습니다. 나는 백만 번이라도 홀로 하는 사랑으로 고통받거나 죽는 편을 택할 거예요. 버림받거나 배신당하거나 창피를 당하거나 학대받는 편을 택할 거예요. 권태에 빠지는 것보다 그 어떤 상처라도 받는 편을 택할 겁니다.


(131-132)

중독. 단어의 어원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습니다. “중세 시대에 ‘addictus(‘바친, 헌신한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라는 단어는 맹세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약속을 어긴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주인에게 속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주인에게 속한 존재는 여성 혹은 노예, 타인의 선한 의지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시민의 단계까지 지위가 강등되었다는 뜻으로, 자신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타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므로 중독된다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전적인 권력을 포기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우선권을 망가뜨리기, 약속을 지키거나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몰아가기, 아기는 요람에서부터 부모에게 빚을 물려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아기가 자란 먼 훗날 DNA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시기가 오면, 아버지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어머니를 때리고 가정을 파괴하는 사람이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다. 당신이 물려받은 이야기가 관건이죠. 나는 어떤 약속을 저버렸기에 중독자가 될 만했는가? 그 질문은 내가 어떤 배신을 물려받았는가에 가깝습니다. 부르주아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내가 살아온 삶을 초월합니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소박한 가족사에 열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죠. 우리가 중독에 빠져드는 과정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과 늘 맞닿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빚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인 동시에 빚을 제거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나의 호흡을 방해해서, 엄청난 양의 마약을 스스로 주입함으로써 그 언어를 뱉어내는 겁니다. 혹은 마약을 통해 인식을 끊어버림으로써 나를 둘러싼 어른들의 수치심을 쫓아버리려는 건지도요. 상황을 잠시 떠나고, 간신히 빠져나오는 겁니다.


(221)

팬데믹이 끝나도 이성의 이대로 되돌아지 못하리라는 걸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계 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 신, 인터넷 신, 핵폭탄 신, 비행기 신…… 이 모든 신은 우리를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죽는 것에만 가치를 둡니다. 우리는 기계를 통해 진보한 존재가 아닙니다. 기계에 잡아먹힌 존재입니다. 우리가 만든 피조물이 권능에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기계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 속 하나님은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의 몸을 내려치라고 요구했죠. 절대 권력을 숭배함을 입증할 때 우리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권능을 위해 죽는 것,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조잡한 바이러스로 죽는 걸 참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는 멋진 죽음이 되는 겁니다!


(254-255)

사회적 명성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커다란 격차에서 발생한 산물이에요. 자기 마을이나 계층에서 이름을 얻는 그런 문제가 더는 아닙니다. 19세기 초 세공 장인의 명성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아마도 당시에는 가치가 있었을 겁니다. 어떤 영역에서 노력을 제공하고 그 분야에서 재능을 가지고 있었겠죠. 최선을 다해 윤리적 방식으로 작업하면, 주변 사람에게서 존경과 애정이 보상으로 따라왔을 테고요. 사실 그에 대해 잘 모릅니다. 내가 아는 범위는 20세기입니다. 미디어로 전파되는 명성이죠. 어떤 계층이 선택한 개인에게, 그를 바라보는 이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권리가 부여되었습니다. 대형 스크린 앞 관객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연기가 어떠하든 변화시킬 수 없고, 절대적으로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러요. 영화는 전개될 것이라고 예고한 대로 전개됩니다. 텔레비전 방송이 방영될 때도 마찬가지요. 브라운관 앞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 없어요. 그 과정에서 어떤 충격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개입하게 된 거죠. 개입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모욕임을 다들 바로 이해했습니다.


(285-286)

헛소리입니다. 감정은 오존층에 뚫린 구멍이고 기후변화이며 변함없는 화산 용암이자 바이러스의 폭격입니다. 공장이나 극장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감정을 기쁘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감정은 당신을 복종시키기도 합니다. 늘 미소를 따다가도, 겁을 집어먹을 수도 있어요. 감정은 당신을 뒤죽박죽으로 휘저어 놓습니다. 감정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듬을 수 있는 수공예품이나 개인의 창작물이 아닙니다. 감정은 도자기 그릇이 아니니까요. 우리 세대에 급격히 퍼진 감정은 절망입니다. 집단적으로 퍼져 있어요. 지구 중심에 요란하게 상륙했습니다. 우리 모두를 봉기시킨 것은 바로 그 감정입니다. 각자 사소한 메시지, 자신만의 공식을 가지고 돌진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당신이 세계의 지도자이든 대양의 중심을 떠다니는 표류물이든 상관없이 감정은 동일합니다. 우리는 감정에 구애받습니다. 그것은 다른 무엇도 대적할 수 없는 화음이며, 무슨 일이 발생하든 울려 퍼질 것입니다.


(286)

당신의 절망을 파괴하는 유일한 기술은 희망입니다. 무척 간단한 문제죠. 희망은 절망을 지우는 단 하나의 해독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압수당한 것 또한 희망입니다. 디스토피아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지평선이 되어버린 겁니다. 미래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리라 믿는 건 머저리라는 방증입니다. 그것은 승리한 전체주의입니다. 획일화된 신념이 우리 상상의 세계를 빼앗은 셈이죠. 대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멍청이들에게나 유익한 겁니다.


(398-399)

클레망틴과 오 일간 휴가를 다녀왔어요. 부끄러운 아버지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 같아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불편하고 지루하거든요. 봉쇄 기간에 아이와 마음을 털어놓고 지내겠다는 계획은 흐지부지되었어요. 함께 있는 시간이 싫은 건 아니지만 같이 나눌 이야기가 없더군요. 아이는 주말 내내 휴대전화에 붙어 지냈습니다. 그 나이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누군가 뭘 좋아한다고 하자마자, 최신 트랜드를 알기 위해 휴대전화를 손데 쥐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셀카를 찍어대는데, 그때가 아이의 생기 있는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에요. 한번은 세관원에게 가는 길에 아이가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결국 사진을 잘 찍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찍은 꼴불견 사진에 얽힌 우스꽝스러운 추억을 말해주려고 했는데, 정면 포즈를 피하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가 움츠러들더군요. 늙다리 바보가 된 기분이었고, 아이와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아이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겁니다. 노력하고 싶은 기분조차 들지 않아서 제가 얼마나 자책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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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 평전 - 한글운동의 선구자
김삼웅 지음 / 꽃자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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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김상웅 님의 인물 평전을 가끔 읽는데, 오늘은 그런 책읽기의 일환으로 김삼웅 님의 <주시경 평전>을 읽었단다. 근현대에 한글 운동을 하신 주시경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주시경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적을 것 같구나. 아빠도 그랬거든. 어린이를 위한 주시경 위인전은 좀 있어도 어른들이 볼만한 주시경에 관한 책이 적은 것 같았어.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주시경은 짧은 삶을 살다가 가셨더구나. 그래서 그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 하지만 한글 사랑만큼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분이란다. 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 봉산군 쌍산면에서 태어나셨는데, 같은 해에 백범 김구도 황해도에서 태어나셨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김구보다 훨씬 앞 세대이신 줄 알았는데, 동년배셨구나. 주시경이 1914 37세 나이로 요절해서 그렇게 생각이 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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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국난기에 인재가 많이 나타나듯이, 같은 해에 황해도 해주에서 백범 김구가 출생하였다. 김구와 주시경은 걷는 길이 달랐으나 목표는 다르지 않았다.

김구는 동학에 들어가 소년접주가 되고 신민회 참가, 105인 사건, 투옥, 해외망명, 임시정부 주석 등을 지내며 항일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쳤다. 주시경은 서재필이 발행한 <독립신문>에 참여한 이후 국내에서 한글과 국문의 연구와 후진 양성에 짧은 생애를 바쳤다. 독립협회 등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만났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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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의 본명은 주상호로 어렸을 때 큰아버지댁에 양자로 지냈어. 그리고 좀 커서는 서울에 가서 배재학당에서 공부를 했대. 그렇게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나갔단다.

 

1. 한글은 우리나라의 정체성

배재학당에서 많은 인연을 맺게 되는데, 스승으로 있던 서재필과 인연을 맺게 되어 20대 초반에 최초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에 참여하게 된단다. 주시경은 독립신문에 자신의 글을 싣기도 했어. 이후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의 위원으로 참여했단다. 독립협회가 고종을 폐위하려고 한다는 헛소문이 돌았는데, 이 헛소문 때문에 독립협의 간부들이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어. 이때 주시경도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단다. 이 헛소문은 영향력이 세지는 진보세력인 독립협회를 무너뜨리려고 한 친러수구파들이 조작한 것이었어.

서재필이 미국으로 떠난 후에, 주시경은 이종일이 창간한 <제국신문>에서 근무했단다. 제국신문이라는 이름 때문에 보수 성향의 신문이라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 신문은 순한글로 된 신문으로 대중과 부녀자를 상대로 한 신문이었단다. 주시경은 나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계몽해야 한다는 생각하여 전덕기 목사 등과 함께 국민계몽운동에 동참하였고, 청년학원에 교사로 일하게 되었어. 그러면서 1906 <대한국어문법>이라는 문법책을 출간했단다. 그 전까지 제대로 된 한글 문법에 대한 책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맞춤범과 문법 체계의 기초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단다.

1907년에는 <안남망국사>를 번역하여 반면교사로 삼게 했단다. 3년뒤 결국 우리나라도 망하고 말았지만… 1907년에는 또 대한제국 학부에 국문연구소가 창립되었는데, 이곳의 책임위원으로 위촉이 되어 활동했단다. 그래서 <국문연구의정안>을 작성하여 한글의 문자 체계와 표기법 통일안을 마련했어. 나라가 위기가 빠졌던 당시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애를 썼는데, 주시경은 한글을 통해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신 거야. 그야말로 한글 연구와 보급에 모든 걸 걸었어. 사실 우리나라와 한글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잖니. 한글은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일맥상통하고 말이야. 주시경 또한 한글이 곧 우리나라임을 여러 글을 통해서 이야기했는데, 1910 <국어문법>의 서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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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74)

이 마음이 없으면 몸이 있어도 그 몸이 아니요, 터가 있어도 터가 아니니, 그 국가의 성쇄도 언어의 성쇄에 있고, 국가의 존부도 언어의 존부에 있는 것이니, 그 국가의 존부에 있는 것이니, 그 국가의 존부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금의 세계 열국이 각각 제 언어를 존숭하여, 그 언어를 기록하여 그 문자를 각각 자음이 다 이를 위한 것이다.

==========

1908년에는 <국어문전음악>, <소리길>을 출간하였어. 주시경이 한글 연구는 앞서 이야기한 국문연구소의 책임의원으로 했던 것인데,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면서 국문연구소는 강제 폐지고 말았단다.

..

이후 광문회에 참여하여 국어사전 편찬 준비를 했어. 광문회는 후에 조선어학회로 되었고, 광복 후에는 한글학회가 되었단다. 광문회에서 활동하던 주시경은 처음으로 우리글을 한글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

(194)

한글이란 이름은 주시경 님이 지어 쓰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나, 현재 남아 있는 최초의 기록으로는 신문관 발행의 어린이 잡지 <아이들 보이>의 끝에 가로글씨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이 이름이 일반화하게 된 것은 한글학회전신인 조선어연구회’(1921 12 3일 창립)에서 1927 2 8일 창간한 기관지 <한글>을 발행한데 이어 또 훈민정음 반포 8주갑 병인면(1926) 음력 9 29일을 반포기념일로 정하여 가갸날로 명명한 뒤, 1928년에는 가갸날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는 1946 10 9한글날이 공휴일로 제정되면서부터라 하겠다. 그런데 이 한글이란 이름을 제일 먼저 지은 분은 신명균(1889~1941) 님이라고도 하고, 최남선(1890~1957) 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믿을 만한 말이 못된다.

==========

주시경이 1914 7 27일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병명은 허로증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빈한에 의한 영양실조와 과도한 연구와 강의에 의한 과로사로 추정된다고 하는구나. 주시경 선생이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지 않고 한글 연구를 더욱 해주시고 광복까지 맞이했다면 우리나라 한글은 더 발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구나. 주시경 선생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의 제자들이 이어서 한글 운동을 주도하였단다. 남한에는 최현배 님이, 북한에서는 김두봉 님이 바로 주시경 선생의 제자로 한글 운동을 이어가셨다고 하는구나.

이 책의 편집 상태가 좀 아쉬웠단다. 그 전에 김삼웅 님의 평전들을 보면, 인용한 글들은 문단을 달리 하고 들여쓰기와 글자 크기를 작게 해서 확실히 구분을 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었단다. 그래서 이 글이 지은이 김삼웅 님의 글인지, 다른 책에서 인용한 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단다. 그렇게 아쉬운 편집이었지만, 그래도 주시경 선생의 짧지만 뜨거운 나라 사랑, 한글 사랑의 열정을 자세히 알게 되어 좋았단다.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려는 사실에 뿌듯함이 느껴지는데, 이런 것들이 주시경 선생 같은 분들의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한단다. 주시경 선생의 삶과 생각을 많은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 그의 삶은 짧았지만, 그의 사상은 영원하리.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우리나라의 심장부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책의 끝 문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학자나 사상가의 이름이나 아호를 붙인 연구소가 많이 설립되어 우리의 학문이 건전한 토대 위에 서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글은 지난 700년 동안 한민족의 정체성이고, 분단 70년이 되는 지금 남북 겨레의 공통점이다. 남북 8천 만 겨레와 해외 교포 교민 800만의 원형질이다. 이 원형질은 한국어(조선어)를 통해 공유된다. 세계 200여 국가 중에서 우리가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한 언어는 한국어뿐이다. - P12

조선 글자가 페니키아에서 만든 글자보다 더 유조하고 규모가 있게 된 것은, 자모음을 아주 합하여 만들었고, 단지 받침만 때에 따라 넣고 아니 넣기를 음의 돌아가는 대로 쓰나니, 페니키아 글자 모양으로 자모음을 옳게 모아 쓰려는 수고가 없고, 또 글자의 자모음을 합하여 만든 것이 격식과 문리를 더 있어 배우기가 더욱 쉬우니, 우리 생각에는 조선 글자가 세계에서 제일 좋고 학문이 있는 글자로 여겨지노라. - P78

가령 동서양 사기(史記)라든지 성경현전(聖經賢傳)이라든지 법을 규칙 같은 천만사를 모두 국문으로 번역하고 아무쪼록 국문을 연구하여 남이 알기 쉽도록 만들겠더면 사람마다 세계 형편도 알기 쉬울 것이요, 성경현전의 좋은 말과 좋은 행실을 보아서 모두 지식도 늘도 행실도 점잖아질 터이요, 내 나라 일과 남의 나라 일을 보아 분변하는 애국성(愛國性)도 생길 터이거늘, 한문으로 기록한 책만 보아야 하겠고 수 십 년을 공부하여야 성공할는지 말는지 한 한문 공부만 하여야 될 줄만 아나니, 어느 겨를에 다른 것은 아니로되 국문을 등한히 여기고 힘쓰지 아니할 것이 아니기로 두어 마디 설명 하거니와 국문이 발달되는 날에야 우리 대한이 세계에 독립부강국이 될 줄로 짐작하노라. - P151

다시 해가 바뀐 1909년 2월 23일 통감부는 출판물의 원고 검열과 배일 항일 출판물의 압수를 합법화하는 출판법을 공포했다. 이 조처로 연말까지 5,767권의 민족운동 관련 책이 압수되어 소각되거나 일본으로 실려갔다. 9월 2일을 기해 일본군이 남한의병 대학살작전을 전개하여 의병의 씨를 말렸다. 영국 기자 F.A. 맥켄지는 일본군의 잔학상을 전하며, 번잡하고 유복했던 마을 제천이 "온전한 벽도 대들보도, 파손되지 않은 그릇도 하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지도상에서 사라졌다"고 보도하였다. 일본군은 의병학살에 이른바 ‘삼광작전(三光作戰)’이라 하여 "모두 죽이고 모두 탈취하고 모두 불태우는" 야만성을 드러냈다. - P166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를 나아가게 하고자 하면 나라 사람을 열어야 되고, 나라 사람을 열고자 하면 먼저 그 말과 글을 다스린 뒤에야 되나리라.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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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25년!!!
또 한 해가 휙~~ 가버렸습니다.
알라딘 친구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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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 2025-12-31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2025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많으셨어요~새해에 더욱 평안하고 행복하셔요~^^

bookholic 2026-01-01 13:12   좋아요 1 | URL
셰인트 님, 고맙습니다.
누구보다 다독하시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2026년 새해에도 좋은 책 많이 소개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곰돌이 2025-12-31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에도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 편지 많이 남겨주세요! bookholic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bookholic 2026-01-01 13:14   좋아요 0 | URL
곰돌이 님, 고맙습니다~~
지난 한 해 좋은 책 많이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날씨가 많이 쌀쌀한데, 감기 조심하시고요~~
새해 복 많은 받으세요...^^

잉크냄새 2025-12-31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의 양 만큼이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26-01-01 13:16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 님, 고맙습니다!!!
게을러서 독서편지가 많이 밀려있습니다 ㅎㅎ
잉크냄새 님도 2026년도 행복한 한 해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넬로페 2025-12-31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매번 감탄합니다.
2026년에도 저 거대한 책탑만큼
건강하시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내년에도 bookholic님의 책탑 기대합니다^^

bookholic 2026-01-01 13:17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 님,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님의 꾸준함을 배워서 2026년도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ㅎㅎ
책읽기에 목표를 두는 것이 옳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작년보다 1권 더 읽는 것으로 목표삼아보겟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젤소민아 2025-12-31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북홀릭님의 닉네임답습니다~~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26-01-01 13:21   좋아요 0 | URL
젤소민아 님,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에는 진정 책쟁이분들이 많으셔서 저는 명함도 못 내밉...^^
늘 행복한 일만 가득한 한 해 되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꼬마요정 2025-12-31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멋진 북홀릭 님!! 사랑하는 자녀분들 부럽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26-01-01 13:23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 님, 고맙습니다...
올해는 다시 최고 건강을 완전히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올해도 좋은 책들 추천 부탁 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4-45)

결혼을 잘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네 방법도 나쁘지 않아. 어떻게든 돈 많은 남편을 구하겠다든지, 시집을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면 나라도 그런 방법을 택했을 거야. 하지만 언지의 감정은 그런 게 아니야. 언니는 계획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 언니는 지금 자기가 그 남자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 건지, 그런 감정이 바람직한 건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단 말이야. 언니가 그 남자를 안 지 고작 보름밖에 안 됐어. 메리턴에서 그분과 네 번 춤을 추었고, 그 사람 집에서 아침에 한 번 본 적이 있고, 그 후로 네 번인가 같이 식사를 했지. 그 정도로 언니가 그 남자를 파악할 수는 없는 거잖아.”

 

(106)

사실 제겐 배려심이 부족합니다.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기엔 너무 고집이 세죠. 저는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부족한 점을 빨리 잊지 못합니다. 저에게 무례한 사람들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죠. 그런 감정을 없애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더군요. 저는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한번 잘못 본 사람은 끝까지 좋아할 수가 없으니까요.”

 

(238)

아까 다른 일에 대해서도 언급했지?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나도 알아. 그렇지만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 사람에게 실망했다는 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말아 줘. 그쪽에서 고의적으로 우리에게 상처를 준 거라고 생각하진 말자. 그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야.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가 항상 신중하고 사려 깊은 행동만 할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거잖아.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스스로 속는 일도 많을 거야. 여자들이 남자들의 관심을 너무 부풀려서 받아들이는 게 문제야.”

(271)

숙모, 정말 너무 기뻐요! 숙모는 제게 새로운 활기와 생기를 선사해 주셨어요. 절망과 우울은 이제 그만 안녕을 고해야죠. 바위와 산 같은 자연에 비하면 남자 따위는 하잘것없는 존재예요. 정말 멋진 여행이 될 거예요. 우리는 자기가 무얼 봤는지 제대로 설명도 못하는 여행자는 되지 말아요. 우리가 갔던 곳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훤히 꿰고 있어야 해요. 호수와 산과 강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키게 해서는 안 돼요. 어느 곳의 경치를 묘사할 때도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면서 말씨름을 해서는 절대 안 되죠.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기감정에 빠져서 지루한 여행담으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그런 여행자가 되면 절대 안 돼요.”

 

(599-600)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그런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협박에 겁먹어서 부당한 일에 응하지는 않습니다. 영부인께서는 다아시 씨가 따님과 결혼하기를 바라시지만, 제가 원하시는 확답을 드린다고 해서 두 사람의 결혼 가능성이 커지는 건 아니겠죠. 그분이 제게 마음이 있으시다면, 제가 그분의 청혼을 거절했다고 해서 따님에게 청혼을 할까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영부인꼐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시는 것부터 상식에 어긋난 일이고 더욱이 그런 부탁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도 전혀 설득력이 없군요. 제가 이런 논리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저를 대단히 잘못 보신 겁니다. 조카분께서 영부인이 이 문제에 관여할 권리는 분명 없으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디 더 이상 이 문제로 절 괴롭히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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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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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서핑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란다. 시간 내서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새책 향기를 맡으면서 책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집에서 편히 앉아 인터넷 서점에서 책들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곧바로 다른 사람들의 평도 볼 수 있고, 관련된 책도 금방 찾아볼 수도 있고 말이지. 그렇게 인터넷 서점에서 책서핑하다가 지은이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단다. 작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유명한 영화배우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 에단 호크. 설마 동명이인인가, 싶어서 클릭해봤더니, 아빠가 알고 있는 그 영화배우더구나. 아빠가 고등학교 때 재미있게 본 <죽음 시인의 사회>에서 앳띤 모습으로 처음 본 에단 호크.. 어느덧 세월의 묻은 나이가 되어 있더구나. 그래도 꽤 멋져 보이는 외모.. 역시 영화배우라는 생각을 들게 하더구나. 그런데 그런 에단 호크가 책을 썼다고?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이미 여러 권을 썼다고 하는구나. 글쓰기에도 재능이 있는가 보구나. 책의 제목은 <완전한 구원>이란다.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이 오질 않았는데, 읽어보니 연예계에 있을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단다. 조연급 영화배우와 세계적인 록스타가 부부일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싶구나. 그럼 바로 책 이야기를 해줄게.

 

1.

주인공 윌리엄 하딩은 32살로 주연급 배우와 조연급 배우 사이 어딘가에 포지션을 잡고 있는 영화배우야. 윌리엄의 아내 메리는 세계적인 록스타로 윌리엄보다 훨씬 많은 인기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단다. 둘 사이에는 아들과 딸이 있어. 예전에는 둘이 뜨거운 사랑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 사랑마저 식어서 별거 중이란다. 윌리엄은 남아공에서 영화촬영을 마치고 연극 준비를 위해 뉴욕으로 돌아왔단다. 그런데 얼마 전 남아공에서 어떤 여자와 바람을 핀 것이 기자한테 걸려서 신문에 실려서 난감한 상황으로 귀국을 했단다. 가뜩이나 아내와 사이가 안 좋은 시기에 이런 스캔들까지 퍼졌으니 이래저래 신경 쓰이겠구나.

그가 뉴욕에서 처음 하는 연극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헨리 4>라는 연극인데, 주연은 아니고 비중 있는 조연을 받았단다. 주인공은 오스카 수상 이력이 있는 버질이라는 사람이야. 마지막 리허설까지 감독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버질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감독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어. 하지만 감독은 윌리엄을 따로 불러 칭찬을 해주었는데, 그렇게 목을 쓰다가는 일주일 공연을 마무리하지 못하니 조심하라고 했단다. 이 소설은 대형 연극이 어떤 식으로 준비되고, 어떤 식으로 열리는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단다. 윌리엄의 스캔들은 당연히 아내 메리의 귀에도 들어갔어. 메리로부터 전화가 와서 윌리엄을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차갑게 끊으면서 일단 만나자고 했어.

메리와 만남. 메리는 이혼 관련 이야기를 아주 냉정하게 했단다. 그러면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했어. 연예계에서 결혼과 이혼은 보통 사람들보다 좀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윌리엄과 메리 같은 커플이 실제 있고, 그들이 이혼을 한다고 해도 크게 놀랄만한 소식은 아닐 거야. 지은이 에단 호크 자신도 그런 경력이 있으니, 그런 경험들이 이 소설 속에 녹아있지 않을까 싶구나.

….

그러나저러나 초연의 날이 밝았어. 다들 긴장했지만, 초연은 대성공이었단다. 언론에서는 연극과 배우들에 대한 비평이 쏟아졌지만, 윌리엄은 그런 비평 기사를 보지 않았단다. 연극 공연 기간 동안은 연극에 집중했어. 그가 연극 이외에 또 하나 집중하는 것은 아들과 딸이었단다. 비록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지만 아들과 딸에게만은 진심이었단다. 윌리엄은 여전히 아내와 재결합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연극에 아내가 와 주길 내심 바랬단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치고는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하더구나. 성에 대해서 개방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여자와 잠도 말이야.

 

2.

첫 공연이 성공적인 공연이긴 했지만, 윌리엄은 배에 작은 상처를 입었단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공연을 했어. 이번 연극은 일주일에 여덟 번 공연하는 일정으로 육 개월 간 이어진단다. 하루에 두 번 공연이 이틀 있었고, 월요일은 쉬는 일정이었지. 그런데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상처가 염증이 나고 그대로 방치했다가 오렌지 만한 크기로 곪고 말았어. 고열까지 발생하여 윌리엄을 결국 병원에 갔단다. 의사는 곧바로 수술해도 하고 최고 2일은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연극을 할 수 없게 되었어. 윌리엄을 반드시 공연을 해야 한다고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어. 방법은 한 가지. 마취 없이 수술하고 처치하면 바로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단다. 연극을 위해 윌리엄은 마취 없이 그 고통을 참아가며 수술을 마쳤단다. 그렇게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었어. 물론 이런 갑작스러운 배우의 공백을 위해 주요 배역은 예비 대역 배우들이 있단다. 윌리엄은 자신의 역을 예비 배우에게 넘겨주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기필코 자신이 무대에 오르려고 했던 의지도 마취 없이 수술을 하게 했단다. 연극을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일이 생기는 법.

어느 날 밤, 에드워드라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심장발작을 일으켰어. 연극은 중단되었고, 관객 중에 의사가 무대 위로 올라와서 긴급 조치하는 해프닝도 일어났어. 의사의 도움으로 그 배우는 다시 깨어나서 병원으로 호송되고, 마지막 공연에 다시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단다. 소설은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에단 호크는 주변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구나. 윌리엄은 에드워드에게 병문안을 갔는데, 에드워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식상하지만 인생은 곧 연극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외에 좋은 말들이 많이 있었단다. 이 소설의 주제라고 할 수도 있는 글들이었어. 지은이 에단 호크가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들이 소설 속 에드워드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구나. 아래 글도 그 중에 일부인데, 에드워드와 윌리엄이 나눈 대화들은 마음에 새겨볼 만했단다.

===============

(316-317)

모든 결정이 중요하네. 어떤 때는 시간이 휙휙 지나가고 달력의 페이지가 달라져도 우리는 매일 하는 사소한 일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자신을 속일 수 있어아니면 모두 미리 예정된 거라고 속이거나. 하지만 아니야.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딛고 걷는 걸세. 햄릿의 대사를 연습한다면, 아주 많이 연습한다면, 무대에서 때가 됐을 때 그 대사를 관객에서 잘 전달할 수 있겠지. 연습하지 않으면 전달하지 못할 테고. 운은 의도의 잔재야. 아버지가 아들 옆에 있어주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그 아들이 무사히 자랄 가능성이 높아. 알겠나?” 그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병원의 하얀 불빛이 검버섯이 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때렸다. “내 말은, 건강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 되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건자네 노력만으로 충분하다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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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월 동안 이어진 공연은 더 이상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었단다. 주인공 윌리엄의 배우 생활에 괜찮은 이력이 하나 쌓였을 것 같구나. 매번 공연 때마다 아내 메리가 왔나 관객석을 두리번거렸지만, 끝내 나타나지는 않았단다. 윌리엄은 인생의 한 개의 막을 닫고, 새로운 막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구나.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에단 호크의 다른 책들은 어떤 책들이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문득 너희들과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같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화면이 올드해서 너희들이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ㅎㅎ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항상 차를 불러주는 것을 깜박 잊어버린다.

책의 끝 문장: 보이는 것은 새로 뻗은 계단뿐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볼수록 서부영화의 정교한 세트장처럼 보였다. 언뜻 보면 모든 것이 고풍스럽운 진짜 같고, 수수께끼와 가능성이 가득한 것 같다. 방금 바람에 불어온 고운 흙먼지, 나무로 만든 낡은 스윙도어, 물결무늬처럼 일그러진 유리창, 손으로 그린 간판, 이 모든 것이 모험을 약속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늙은 카우보이들이 포커를 치고 비극적인 술집이 아니다. 그냥 합판으로 지은 빈 건물일 뿐이다. 난방기 옆에서 기술자가 토마토수프를 끓이면서 곰 오양 젤리를 한 입 먹고, 비타민 C를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여기서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 일은 없다. 그냥 몇 사람이 여기저기 서서 라테 한 잔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 P153

나는 예술을 위한 전쟁에 나선다. 세상이야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세상이 널 실패작이라고 단정할지도 모른다. 네 가슴에 주홍 글씨를 꿰미 달고, 너를 가리켜 천박한 협잡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등 뒤에서 속삭이듯 조롱을 던지는 소심한 목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저들이 너를 미워해서, 라디오 토크쇼에 나가 온 나라 사람들에게 수다를 떨어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 P248

에드워드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비단처럼 매끄럽고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서워할 것 없네. 자네가 공연에 한번 빠지더라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자네도 마찬가지고. 자네 지금 자신의 두려움에 지고 있어. 자넨 이 공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닐세. 나도 그렇고, 버질도 그래. 공연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공연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아. 대역들의 리허설을 봤는데, 특히 스코티의 연기가 아주 좋더군." - P312

끝났다. 다시는 없을 것이다. 배우 서른아홉 명이 땀방울이 무대 위에 문자 그대로 흩뿌려져 있고, 나무로 된 세트 곳곳에 누군가가 긁어서 표시한 자국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이제 쓰레기통행이었다. 의상의 솔기에 붙여두었던 우리 각자의 이름이 뜯겨나갈 것이고, 의상은 대여점으로 돌아가 언젠가 또 다른 배우가 입게 될 날을 기다릴 것이다. - P333

지난 몇 달 동안 내 결혼 생활이 무너지는데도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 곁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새로 내리는 눈의 가벼움 속을 걸으면서 나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지만 헤어질 거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녀 같은 여자는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나를 바친 것. 이 아이들을 얻은 것은 똑똑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놀라운 아이들의 아빠가 된 나는 행운아였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모종의 이유로 나를 헝클어놓았기 때문에 곧게 펴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우리 결혼 생활을, 우리 사랑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깃털을 갖게 됐다고 생각하며 우쭐거리는 공작새 같았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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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28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단 호크가 본인이 주연한 영화 원작 만큼의 소설만 쓴다면 대성공이겠네요. 워낙 좋은 영화가 많아서...

bookholic 2025-12-29 13:52   좋아요 0 | URL
영화가 나은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