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내 감정들에 이미 정해진 간단한 이름들이 있다는 것을 진작 배웠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나는 나만의 이름 짓기를 했기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이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몰라서, 모든 것에 새로운 이름을 짓고 싶어하는 지금의 내가 된 걸까.

이미 만들어져 있는 말을 이리저리 조합해, 원래 있던 것과 새로 나타난 모든 것에 이름을 짓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51)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대가족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 김경형의 미친년 인생은 엄마 탓이 아니다. 엄마 탓은 아니지만 엄마가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잔혹한 굴레 속에서 나 또한 미친년으로 자라났다. 그나마 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있는 미친년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엄마의 미친년 역사도 무척 소중하기에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

 

(80-81)

온 가족 구성원이 화가 많고 예민한 우리집에선 언제나 고성방가가 끊이질 않았다. 동시에 예술적 기질도 많아서 엄마 아빠는 시를 쓰고 노래를 하고, 동생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하고, 언니는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그리고는 또 박 터지게 싸우다 한 번씩, 한 명씩 부엌에서 칼을 쥐고 나와 휘둘렀다. 어떻게 보면 스펙터클, 어떻게 보면 지옥 같은 광경이 자주 펼쳐졌다. 장례식상에서마저 댄스 공연을 하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욕하고 소리지르며 싸운 것까지도 전부 괴롭고 웃긴 우리 가족의 풍경이었다. 귀신이 된 언니가 그 모습을 봤다면 다들 미쳤다며 껄껄 웃을 것 같았다.

 

(110)

언니는 가족이 싫다고 10대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내가, 부럽고 미웠을까.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언니에게 나는 수차례 그만두라고 말을 했다. 언니는 그때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허약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消盡死)?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112)

세상에는 완전한 이해도 완전한 사랑도 없다. 모두들 살아 있기 위해서 견디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저마다 느끼는 감정은 너무 다양하고 그중엔 고통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들이 더 많다. 분노로 질투로 좌절감으로 절망감으로 삶에서 멀어지고픈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내 등뒤에 나에게 의지하는 생명이 있다. 모든 소중함에도 한계가 있다. 등뒤에 준이치가 앉아 있다는 것을 알면서 내가 여러 가지 죽음의 방법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래도 준이치를 두고 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못 할 것 같다. 살아서, 다음주에 준이치를 병원에 데려가야한다.

 

(149)

깊은 사랑과 냉철한 이성과 오래된 우울감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언니에게 말하고 싶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을 모른다고 서로 말하던 우리 두 자매였는데, 언니가 떠난 뒤에 나는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생겼음을. 그래서 무척 아프고 괴롭지만 굉장한 것을 배우고 있음을 언니에게 꼭 말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 어쩐지 언니에게 전해질 거라고 느낀다.

 

(157-158)

30대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젊은 여성 역할을 수행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20대 여성만을 주로 소비하는 가부장제 속에서 30대 여성으로서 느끼는 자유도 조금씩 생기고 있던 참이었다. 하기 싫은 것부터 하나씩 줄여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사는 것은 아니었다. 젊은 여성 역할 수행을 너무 오래 했던 탓일까. 이제 와서 내가 원하는 모양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정신을 사용한 창작과 그 창작을 포장하기 위한 용도로만 몸을 사용했다. 몸을 위한, 몸이 원하는 삶의 방식은 지금껏 생각해보질 못했다.

 

(189)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땅에 발을 붙이고, 정신과 몸을 붙여내고야 만다. 반면에 나는 너무 오랫동안 머리만으로 산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몸을 놓고 살았다. 감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는 방법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겪는 공황은 머리의 파업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끼니 몸 전체를 셧다운시켜서 몸도 머리도 멈추게 해버리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4-205)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정신과 몸은 사실 하나였다. 영혼, 정신, 마음이라고 불리는 그것들 모두가 결국 자체였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찰나의 순간으로 결정되는 부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온몸으로 영혼의 실재를 기도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닿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부재와 나의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들의 몸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내 몸을 가지고 그들의 기억과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살아 있고, 기억하는 동안 내 세계에 그들은 함께 있다. (다만 영혼이나 유령으로서가 아니가 기억으로서.)

 

(205-206)

나는 자신의 약함을 아는 인간을 좋아한다. 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간이 좋다. 살아나가는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좋다. 살아갈 방법을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이 좋다. 자신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좋다. 더 탁월한 방법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좋다. 겪기 않은 이야기로 끝없이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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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이야기해주면서, 작년 2025 12 16일이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 되는 날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그 즈음에 제인 오스틴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어. 아빠도 그런 책들 중에서 읽어보려고 두 권을 샀단다. 그런데 제인 오스틴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기 전에, 먼저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 책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아빠가 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오만과 편견> 한 권뿐이었거든.

그래서 예전에 사두고 책장에 재워두었던 제인 오스틴의 <설득>이라는 소설을 이번에 읽었단다. 이 책도 지난번에 이야기해준 <오만과 편견>과 마찬가지로 술술 잘 읽혔단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 보는 것 같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야기 전개 방식이 <오만과 편견>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 책을 읽다 보면 <오만과 편견>에서 본 캐릭터들이 생각하곤 했어. 제인 오스틴이 살던 시절 소설을 쓰는 방식이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1.

그럼 바로 소설 <설득>을 이야기해보자. 서머싯셔 켈린치 홀에 월터 엘리엇 경이라는 홀아비가 있었단다. 1760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4세였어. 외모를 잘 관리하여 54살 답지 않게 젊어 보였어. 하지만 허영심이 많았단다. 그에게는 딸이 셋 있었어. 첫째 딸 스물아홉 살 엘리자베스, 둘째 딸 스물일곱 살 앤, 셋째 딸 스물세 살 메리.

첫째 딸 엘리자베스가 열여섯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엘리자베스는 집안일을 도맡아 했단다. 엄마의 친구이자 대모인 레이디 러셀이 그들의 살림을 가끔씩 도와주고 이런 저런 조언도 해주었단다. 막내 메리는 찰스 머스 그로브와 결혼하여 아이들 두 명을 낳았어.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엘리자베스를 사촌인 윌리엄 윌터 엘리엇과 결혼시키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단다. 월터 엘리엇 경은 집안의 경제 사정이 좋아지지 않아서 첫째 딸 엘리자베스에게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을 했단다. 그들이 알고 지내는 변호사 셰퍼드 씨와 레이디 러셀에게도 조언을 구했고, 그들은 결국 켈린치 홀을 떠나 바스로 이사가기로 했단다.

켈린치 홀은 세를 주기로 했어. 식구들이 모두 착잡하겠구나. 세입자로는 셰퍼드가 크로프트라는 해군 제독을 소개해주었어. 크로프트 제독은 부인만 있고, 자녀는 없었어. 크로프트의 부인은 예전에 켈린치 홀 인근에 살았던 프레더릭 웬트워스의 누나였단다. 그런데 그 프레더릭 웬트워스와 둘째 딸 앤은 사연을 가지고 있었어. 8년 전 앤이 열아홉 살 때 프레더릭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거든. 둘은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당시 월터 경과 레이디 러셀이 반대를 했어. 프레더릭이라는 사람이 앤에게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착했던 앤은 아버지와 대모의 말을 들었어. 그렇게 앤과 프레더릭은 헤어졌단다. 하지만 한 동안 앤은 무척 힘들어했어. 그리고 프레더릭은 그 이후 그곳을 떠나 해군에 들어가 복무했단다. 그는 일을 잘 해서 진급도 빠르게 하고, 돈도 많이 벌었고 지금은 대령이 되었단다. 그런 프레더릭의 누나가 켈린치 홀로 이사 온다고 하자 앤의 마음은 복잡해졌단다.

앤은 켈린치 홀을 떠날 구실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동생 메리가 병이 나서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하여 앤이 메리의 집에 갔단다. 메리는 약간 푼수라고 해야 할까? 진중하지 못하고 가벼운 성격의 소유자란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의 동생들이나 엄마처럼 말이야. 메리는 남편 찰스와 관계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어. 메리의 집은 어퍼크로스 커티지라는 이름이었고, 시댁은 근처에 있는 그레이트 하우스였단다. 메리에 집에 온 앤도 예의상 그레이트 하우스에 인사하러 다녀왔단다. 메리의 시어머니는 메리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

크로프트 제독 부부는 이사 오고 나서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고 또 이웃들을 방문했단다. 그런 것이 당시 영국의 사교 활동 중에 하나인 것 같구나. 크로프트 제독 부부는 메리의 집도 방문했어. 앤도 어쩔 수 없이 크로프트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 크로프트 부인은 앤과 프레더릭의 관계를 몰랐어. 앤과 프레더릭이 사귀던 시간이 워낙 짧았거든. 크로프트 부인이 말하길, 동생이 조만간 방문한다고 했어. 앤에게 있어 피하고 싶은 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메리의 남편 찰스는 동생들이 많은데, 그 중에 두 여동생은 그레이트 하우스에 머물고 있고, 남동생 리처드는 2년 전에 해군 복무 중에 그만 죽고 말았대. 그런데 당시 리처드는 프레더릭과 같은 부대에서 복무를 했었다는구나.

프레더릭 웬트워스 대령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앤은 그의 만남을 피하려고 애썼지만, 만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프레더릭이 그레이트 하우스에 방문했을 때, 메리의 큰 아들 찰스가 낙상으로 큰 부상을 입는 사고가 났어. 앤은 자신이 찰스를 봐줄 테니 메리와 제부에게 그레이드 하우스에 다녀오라고 했단다. 앤은 그렇게 프레더릭과 만남을 피할 수 있었어. 하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었단다.

얼마 후 프레더릭이 메리의 남편 찰스와 사냥을 가기 위해 어퍼크로스 커티지에 찾아왔단다. 그때 프레더릭과 앤은 잠깐이지만 눈이 마주쳤어. 앤이 생각하기에 프레더릭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고, 오히려 더 세련되어 보였어. 그에 반해 자신은 나이도 많이 들어 보인다고 생각했어. 더 이상 자신은 프레더릭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생각도 한 것 같아. 나중에 메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프레더릭이 이야기하기를 앤이 너무 많이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다고 했대. 그 이야기를 듣자 앤은 더 실망하게 되었어.

번듯한 해군 대령이 결혼을 안다고 미혼으로 지내고 있자, 주변 사람들은 프레더릭에게 결혼 이야기를 많이 물어본 모양이야. 프레더릭은 공개 구혼을 했어. 마음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결혼한다고 말이야. 누나인 크로프트 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단다. 그러자 메리의 남편인 찰스의 여동생들인 루이자와 엘리에타가 프레더릭에게 급관심을 가졌단다. 그러자 난감한 상황이 된 사람이 한 명 있었어. 루이자와 엘리에타의 사촌인 찰스 헤이터라는 사람이야. 프레더릭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헨리에타와 찰스 헤이터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내심 결혼도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프레더릭이 오고 나서는 찬밥 신세가 되었어.

 

2.

앤은 메리의 집에 머물면서 사교 모임에 참석을 했는데,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남은 더 자주 함께 했어. , 메리와 찰스 부부, 헨리에타, 루이자, 프레더릭. 이렇게 여섯 명은 자주 모임을 갖게 되었어. 하지만 앤은 프레더릭과 일부러 거리를 두어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어. 루이자가 프레더릭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했으니 거리 두기도 편했어.

그들은 라임이라는 지역에 놀라갔다가 프레더릭의 친구들인 하빌 부부와 벤윅 대령을 만났어. 벤윅 대령은 얼마 전에 약혼녀를 잃고 상심이 큰 상황이었어. 그런 사정을 알게 된 앤은 벤윅 대령을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었단다. 그런데 그들이 놀라간 라임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나 생겼어. 루이자가 장난하다가 낙상하여 머리를 다치게 되었어. 다들 놀라서 당황하고 주저할 때, 프레더릭과 앤이 침착하게 대응하고 판단하여 응급 조치를 잘 했단다. 그러면서 앤과 프레더릭은 대화를 나누긴 했는데 주로 사무적인 대화 몇 마디뿐이었어.

앤은 메리의 집에서 두어 달 머물고 이제 새로운 집인 바스의 캠던 플레이스로 돌아왔단다. 아버지와 엘리자베스가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 알고 보니 그 이유는 사촌 윌리엄 월터 엘리엇이 방문해서 그렇구나. 아버지가 예전에 엘리자베스와 결혼을 시키려다가 어긋나버린 그 윌리엄이야. 당시 윌리엄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아버지가 엄청 싫어했는데, 얼마 전에 아내를 잃고 이번에 와서 용서를 빌었다고 했어. 오히려 아버지는 이제 윌리엄을 좋게 생각하여 엘리자베스의 배필로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윌리엄은 아버지의 법적 상속인이기 때문에 윌리엄이 엘리자베스와 연결되어야 아버지의 재산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 그런데 앤이 라임에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이 있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사람이 사촌 윌리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가 집에 와 있다고 하니 다소 놀랬어. 윌리엄도 외출에서 돌아와 앤을 보고 라임에서 마주쳤던 일을 기억하고 놀랬어.

….

어느날 라임에서 놀라온 소식이 전해져 왔어. 루이자가 벤윅 대령과 결혼했다는 거야. 두 사람의 성향이 너무 달라서 두 사람의 결혼 소식에 앤은 놀랬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루이자가 낙상 사고로 다쳤을 때 라임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는데, 그때 벤윅 대령과 많은 시간 갖게 되면서 관계가 발전했다고 하더구나. 아무튼 앤에게는 놀라운 소식이었어.

프레더릭이 바스 지역에 방문하면서 앤과 또 마주치게 되었단다. 앤이 식구들과 연주회를 갔는데 그곳에 프레더릭도 왔던 거야. 앤이 사촌인 윌리엄과 함께 있었는데, 이를 본 프레더릭은 질투심이 일어났단다. 질투심, 사랑.. 이런 것은 내가 조절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프레더릭도 사실 8년이 지나도 여전히 앤을 마음에 두고 있던 거야. 윌리엄은 아버지의 뜻과 달리 엘리자베스가 아닌 앤에게 점점 접근하는 것 같았어. 앤이 생각하기에 윌리엄이 친절하고 교양 있어 보이지만, 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프레더릭이 꽉 자리잡고 있었단다.

바스는 앤이 예전에 다니던 학교가 있던 곳이기 때문에 동문들도 만날 수 있었단다. 그 중에 학교 선배였던 스미스 부인도 만났어. 스미스 부인은 안타깝게도 가난한 미망인이 되어 혼자 지내고 있어서 앤이 위로해주기도 했어. 그런데 얼마 후에 스미스 부인이 이야기하기를, 앤이 윌리엄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이야기했어. 앤은 강하게 부정했단다. 그가 청혼을 해 온다고 해도 거절할 거라고 이야기했어. 그러자 스미스 부인은 예전에 윌리엄을 알고 지냈다면서, 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윌리엄은 자신의 남편과 무척 친한 사이였다고 했어. 그러나 윌리엄의 속은 시커멓고,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이고 기회주의자라고 악담을 했어. 윌리엄이 결혼한 것도 돈을 보고 결혼한 것이라고 했어. 결혼한 다음에도 아내에게 무관심했다고 했어. 스미스 부인의 남편 스미스 씨는 생전에 윌리엄에게 재정적 도움도 많이 주었다고 했어. 윌리엄은 스미스 씨에게 계속 지출을 유도하고 그랬대. 그래서 스미스 씨는 결국 파산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결국 스미스 씨가 죽고 나서 스미스 부인은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윌리엄 때문인 거야. 스미스 부인은 윌리엄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는구나. 윌리엄이 다시 바스 지역에 온 이유도 있다고 했어. 최근에 월터 엘리엇 경이 클레이 부인이라는 사람과 가깝게 지냈는데 둘이 결혼할까 걱정되어 온 것이라고 했어. 그들이 결혼하여 아들이라도 낳으면 윌리엄은 엘리엇 경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되니까 말이야. 바스에 와서 상황을 보면서 월터 엘리엇 경과 클레이 부인의 결혼을 방해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라고 했어. 최고의 빌런이구나.

얼마 후 프레더릭은 앤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어. 8년 전 마음은 아직 변함이 없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라고그 편지를 받은 앤은 프레더릭의 마음을 확인하고 프레더릭의 마음을 받아주었단다. 그렇게 둘은 결혼을 하게 되었어. 8년이나 늦은 결혼이지만, 그만큼 더 성숙하고 더 많은 사회 경험을 하고 나서 하는 결혼이니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 8년 전 결혼하지 않고 8년이 지난 후의 결혼이 더 완벽한 결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

이번에 읽은 소설 <설득>은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이라고 하더구나. 제인 오스틴이 41살의 어린 나이로 죽고 나서, 가족들에 의해 출간되었다고 하는구나. 브론테 자매들도 그렇고, 제인 오스틴도 그렇고, 유능한 작가들의 요절이 참 안타깝구나. , 앞서 이야기했던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 기념 책들을 읽어볼까. 아니면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좀더 읽어 볼까, 살짝 고민이 되는구나. 250주년 기념으로 나온 책들인데 시간이 더 늦어지면 의미가 줄어들 것 같은 생각도 드니, 조만 간에 읽어봐야겠구나. 그리고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들도 천천히 하나씩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서머싯셔 켈린치 홀의 월터 엘리엇 경이 재미 삼아 읽는 책은 준남작 명부뿐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러나 국가적인 중요성보다 가정적인 미덕으로 더 돋보이기도 하는 직업에 속한 탓에, 그녀는 마치 세금을 지불하듯 만약의 일을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앤은 지금 그가 심지 굳은 성품이 우월하고 행복해진다는 이론을 펼쳤던 자신이 옳았는가를 자문해보고 있을지, 그리고 다른 성격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나름의 균형과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유연한 성품도 때로는 결단력 있는 성품만큼이나 행복에 필요한 것이라고 그 또한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 P157

"아니, 아니에요. 그건 남성의 본성이 아니지요. 지조 없이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이 여자의 본성이 아니라 남자의 본성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반대라고 믿어요. 우리의 신체적 구조와 정신적 구조엔 진정한 유사성이 있다고 믿으니까요. 남자의 신체가 더 강하듯이 감정도 더 강하니, 그만큼 고된 일도 견딜 수 있고 거친 풍파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죠." - P308

"아!" 앤이 열렬한 목소리로 탄성이 내지르며 말했다. "당신이, 그리고 당신 같은 남자들이 느끼는 모든 것을 온당하게 대접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따뜻하고 신실한 감정을 하찮게 본다면 벌받을 일이겠지요. 제가 감히 진실한 애정과 절개는 오로지 여자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경멸받아 마땅할 겁니다. 아니, 저는 남자들이 결혼해 살면서 온갖 위대하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꼭 필요한 일을 위해 애쓰고, 가정에서 참을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다만,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대상이 있는 한 그렇다는 얘기지요. 제 말은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살아 있고, 그 여자가 당신을 위해 사는 동안에 한해서라는 거예요. 제가 여자들을 위해 주장하는 특권이란-별로 시기할 만한 게 아니니 탐내실 필요는 없어요-더 이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희망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더 오래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 P311

"세상에!" 그가 소리쳤다. "그리하셨겠군요! 제가 이룬 모든 성공의 정점으로 그것을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소망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 자존심, 지나친 자존심 때문에 다시 청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눈을 질끈 감은 채 당신을 이해하려고도,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면, 모든 사람을 다 용서해도 저 자신만의 용서할 수 없게 된답니다. 육 년의 세월을 그렇게 떨어져 힘들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그런 고통스러운 감정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어요. 제가 누렸던 축복은 모두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는 만족감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명예로운 노고와 정당한 보상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지요. 인생의 패배를 겪은 다른 위대한 인물들처럼." 그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저도 제 의지를 누르고 운명을 따르도록 해야겠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몫 이상의 행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겠지요."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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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2 : 오스의 왕 킹덤 2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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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해리 홀레 시리즈로 유명한 요 네스뵈의 <킹덤>이라는 책을 아빠가 4년 전에 읽은 적이 있어. 당시 독서 편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킹덤>은 해리 홀레 시리즈는 아니란다. 주인공들이 로위와 칼이라는 형제인데, 그들인 살인과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이야. 그런데 교묘히 빠져나가 결국은 잡히지 않고 소설이 끝이 났단다. 읽는 이들은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게 읽게 되는데, <킹덤>이라는 소설은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해서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범죄들이 발각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떠오른단다. 분명 나쁜 사람들인데 그들을 응원하게 되어 아빠가 도덕적 문제가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드는 이상한 경험을 주는 소설이었어.

그 소설의 후속편이 나왔단다. 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하더구나. 주문하고 읽는 데까지는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너희들에게 독서 편지를 쓰는 데까지는 게으름이 발동하여 늦어졌구나. 그럼, 얼른 이야기를 시작해야겠구나.

<킹덤> 1권 이후 8년이 흐른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형 로위. 동생 칼. 어렸을 때부터 로위는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칼을 보살펴주었고, 결국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칼을 구해주기 위해서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죽였단다. 같이 차를 타고 있던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같이 돌아가셨고자세한 내용은 <킹덤> 1권 독서 편지를 참고하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그것도 무려 일곱 명이나 죽이고도 모두 자살이나 사고사로 위장하여 멀쩡하게 생활하고 있었단다. 그들의 범죄사실을 아는 것은 책 밖의 독자들뿐이란다. <킹덤> 세계관에는 해리 홀레와 같은 유능한 형사가 없었어. 로위와 칼은 여러 살인을 저지르고도 8년이나 아무 일 없이 잘 살고 있었어. 형 로위는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었고 야심 많은 동생 칼은 <킹덤> 1권에서 꿈꾸었던 오스 지역을 관광단지로 조성하는 것이 성공하였단다.

로위와 칼은 범죄를 공모하며 서로 비밀을 간직하며 독특한 방식으로 우애를 다진 것 같지만 칼이 죽인 사람 중에 그의 아내 섀넌 때문에 로위는 칼에게 앙금이 남아 있었어. 로위는 칼 몰래 섀넌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섀넌이 죽기 전 로위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거든. 그런 섀넌을 죽였으니 로위가 칼에게 감정이 남아 있을 수밖에..

...

 

1.

하지만 겉으로는 우애 깊은 형제이자 동업자였어. 그들은 오스 관광지를 확장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었어. 로위는 놀이공원을 만들러 롤러코스터를 건설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고, 칼은 호텔을 지으려고 했단다. 로위와 칼은 드러난 범죄 사실은 없지만 그들을 살인자라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는 이가 있어. <킹덤> 1권에서도 그들을 의심하고 추적하는 보안관 쿠르트 올센이라는 사람이야. 오래 전에 그의 아버지도 로위와 칼에 의해 죽었단다. 하지만 쿠르트의 아버지는 호수에 빠져 자살한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어. 자신의 아버지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 쿠르트는 로위와 칼을 의심하여 추적하였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단다.

로위는 오스 관광단지에 놀이공원과 롤러코스터 개발을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어. 최근에 오스 지역으로 돌아온 고향 후배 나탈리가 그 일을 도와주었어. 로위가 살인자이긴 하지만 나탈리에게는 고마운 사람이란다. 나탈리가 십대소녀일 때 나탈리를 학대하고 성폭행하는 아버지가 있었는데 로위가 그것을 눈치채고 나탈리의 아버지를 찾아가 협박을 해서 더 이상 나탈리를 괴롭히지 못하게 한 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나탈리는 로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어. 나탈리가 로위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면서 로위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기도 하지만 나이차가 많이 나서 로위는 거리를 두려고 했어. 하지만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대시를 계속 거절할 수는 없었지.

...

그런데 로위와 칼에게 위기가 찾아왔어. 그들 집 근처에 낭떠러지가 있는데 그곳에 추락한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두어 번 죽어서 방지벽 공사를 하기로 했어. 사실은 그냥 추락한 것이 아니라 로위와 칼이 자동차를 일부러 고장 내거나 죽인 다음 차를 낭떠러지로 밀어서 사고사로 위장한 사고들이었어. 당시 시신은 수습했으나 추락한 두 대의 차는 여전히 낭떠러지 중간에 걸려 있었어. 이번에 방지벽을 공사하면서 그 자동차들을 끌어올리기로 했단다. 쿠르트는 그 자동차에서 로위와 칼의 범행의 증거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고, 로위는 그것 때문에 걱정했고, 칼은 별 생각 없었단다. 로위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어. 차 번호판 나사 부분에서 머리카락과 혈흔이 발견되어 추가 조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얼마 후 낭떨어지에서 건져 올린 차에서 나온 혈흔과 머리카락의 조사 결과가 나왔어. 그 혈흔과 머리카락은 쿠르트의 아버지 것이라고 했어. 쿠르트의 아버지 인근 호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그 사람의 피와 머리카락이 뒤 번호판 나사에서 나온 것은 이상한 것이지. 이 조사 결과로 쿠르트는 곧바로 로위를 체포했어. 하지만 이것은 성급한 체포였어. 로위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연관성을 전혀 확인할 수 없어서 금방 풀려났단다.

 

2.

로위는 놀이공원 건설을 위해 대출이 필요하지만 은행에서는 허가가 나지 않았다. 이에 로위는 은행장의 약점을 잡아서 대출을 받는데 성공했어. 이게 로위만의 문제 해결 방식이었지. 그런데 칼이 이 돈을 주식으로 바꿔 호텔 건설에 투자하자고 설득했어. 로위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칼의 의견대로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칼의 의견대로 했단다. 이게 칼만의 문제 해결 방식이었어.

...

로위와 나탈리의 관계는 점점 깊어져서 둘은 폴란드 여행을 계획했단다. 그런데 당일 나탈리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고 사라졌어. 나중에 전화가 왔는데 울먹이며 헤어지자고 했어. 로위는 직감했지. 나탈리의 아버지가 다시 옛날의 나쁜 버릇이 나왔다고. 로위는 나탈리의 아버지 안톤 모예를 찾아갔어. 안톤은 로위가 올 것을 예상했는지 소총으로 위협했단다. 둘 간의 다툼이 벌어졌고 로위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로위가 체인으로 안톤을 공격해서 안톤은 그만 죽고 말았단다. 로위는 절묘하게 또 사과사로 죽은 것처럼 꾸며 놓았단다.

이 일이 있고 로위는 칼을 만나러 갔는데 칼이 대뜸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파티에서 술 먹고 취했는데 그 상태에서 나탈리와 잤다는 거야. 칼은 로위가 나탈리와 만나는 것을 알았지만 진지한 만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나탈리와 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어. 아빠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주먹부터 날렸을 텐데 로위는 속으로만 삭히면서 칼과는 이제 영영 끝이라고 생각했어. 엄한 나탈리의 아버지만 죽었구나.

...

그런데, 쿠르트가 다시 로위를 찾아와 체포했어. 로위가 폴란드 여행을 하려는 것을 어찌 알고 용의자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했어. 그러면서 자동차에서 발견된 자신의 아버지의 혈흔과 머리카락에 대해 취조했어. 로위는 이야기하길, 쿠르트의 아버지가 차를 밀어주다 넘어져서 트렁크 쪽에 부딪혀 피를 흘렸다고.. 그것이 뒤 찬 번호판에서 쿠르트의 아버지의 혈흔과 머리카락이 나온 이유일 거라고 했어. 그의 진술을 뒷받침해주는 사람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는 주유소 직원이었어. 그 주유소 직원의 기억은 사실 로위에 의해 조작된 것이란다. 자신의 사장이 워낙 진짜처럼 이야기해서 자신도 그 일을 함께 겪었지만 까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워낙 오래 전 일이니까. 또 하나 경찰은 벼랑에서 끌어올린 로위의 아버지의 차의 핸들이 헐렁하다고 했는데 로위는 중고차로 처음 사왔을 때부터 그랬다고 했어. 정말 교묘하게 빠져나가는데 언제까지 그것이 가능하려나.

....

안톤의 시신이 발견되었어. 경찰이 조사한 결과, 정황상 승합차를 수리하다가 깔려 죽은 것으로 정리되었어. 그것도 로위가 그렇게 꾸며놓은 거였지. 하지만 쿠르트만은 이번 사건도 로위를 의심했어. 로위의 다리에서 빼낸 총알까지 가지고 와서 로위를 추궁했어. 그러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자백하면 총알은 버리겠다고 회유했어. 쿠르트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불명예를 벗겨드리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로위는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했어. 하기야 쿠르트의 아버지는 칼이 죽였으니 로위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지.

안톤의 장례식. 로위는 나탈리를 다시 만났어. 로위는 나탈리에게 그날 밤에 대해 이야기했어. 나탈리는 그날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이 누구랑 잤는지도 기억을 못한다고 했어. 호텔에 남아 있는 나탈리의 피를 검사해 보니 마약 성분이 검출 되었어. 이것은 칼이 의도적으로 한 짓이라고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나탈리는 자신에게 마약을 먹였다는 이유로 칼을 고소했지만, 근거 부족으로 기각되었단다. 나탈리의 아버지 안톤의 죽음에 로위가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하는 이가 한 명 더 있었으니, 나탈리였단다. 나탈리는 로위에게 아버지를 죽였다고 물어보았을 때, 로위는 아무 말 하지 않자, 나탈리는 로위에게 다시 헤어지자고 했단다.

이 일로 크게 상심한 로위는 수면제 다량 복용으로 자살 시도를 했단다. 안톤의 죽음을 조사했던 쿠르트는 안톤의 죽음과 로위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고, 사고사가 맞는 것 같다고 했어. 쿠르트의 조사 결과를 들은 나탈리는 로위에게 미안한 마음에 로위를 찾아갔다가 배에서 정신을 잃은 로위를 발견했어. 그 덕분에 로위의 자살은 실패하고 말았단다. 로위는 나탈리와 다시 사귀게 되었단다. 로위는 이제 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어. 칼 몰래 호텔 지분을 51% 확보하여 자신이 이사장이 되려는 계획이었어. 칼도 형의 이런 계획을 알게 되었어.

이제 로위와 칼 형제의 싸움이 시작됐어. 칼은 쿠르트를 찾아와 그 동안의 범죄는 모두 로위가 저지른 것이라고 이야기했어. 쿠르트는 로위가 이번에는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로위를 또 체포하려고 왔어. 로위도 만만치 않았어. 로위가 문제 해결하는 방식. 로위는 쿠르트가 사기 쳐서 돈을 부정하게 취득한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걸 이용하려고 했어. 이 점은 조금 이해가 가질 않더구나. 오직 로위와 칼의 범죄사실을 밝히기 위해 형사가 된 그가 사기로 부정 축적을 했다니 말이야.

아무튼 이 일이 드러나면 쿠르트는 자신의 직업과 명예 모두 무너질 위기에 빠졌어. 결국 쿠르트는 로위의 범행 사실을 눈감아주게 된단다. 쿠르트는 끝내 해리 홀레가 될 수 없었구나. 이렇게 되자 칼은 로위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어.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나탈리가 나타나서 칼에게 총격을 가해 칼이 죽고 말았단다. 이번에는 로위가 칼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하였단다. 칼이 죽고 로위는 오스 관광지구의 이사회의 이사장에 오르고, 나탈리와 결혼을 약속하면서 소설을 끝이 났단다.

….

로위와 칼의 위험한 동행이 끝나고, 로위는 이번에도 감옥에 가지 않고 소설이 끝이 났구나. 로위가 범죄를 저지른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두 동생 칼과 연관되어 있었던 것 같구나. 그런 칼이 죽었으니 <킹덤>시리즈는 2권에서 끝난 것일까. 오랜 기간 살인까지 하면서 보살펴 주던 동생이 괴물로 변하고 그 괴물에게 죽음을 당할 뻔했던 형의 느낌은 어떨까. 그리고 그런 동생을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죽이고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정말 기구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구나.

요 네스뵈는 소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재미있고 짜임새가 있어지는 것 같더구나.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해리 홀레 시리즈> 중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사람은 누구나 약점을 갖고 있다.

책의 끝 문장: 그러자 모든 것이 조금 전과 똑 같은 모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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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 정약용편 세계철학전집 3
정약용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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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오랜만에 정약용에 관한 책을 이야기할게. 정약용은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아빠가 좋아하는 또는 존경하는 위인 중에 세 손가락에 꼽을 만한 위인이란다. 그의 저서들도 여럿 읽어보고, 정약용을 다룬 교양서와 소설들도 여럿 읽어보았어. 안타까운 것은 아빠의 저질 기억력으로 그 내용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 한다는 사실. 그래서 늘 새롭고 늘 감탄하면서 읽곤 한단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책 표지가 독특해서 눈이 간 책이란다. 알고 보니 세계적인 철학자들의 글들을 엮은 시리즈 중에 하나더구나. 세계철학전집 시리즈의 3권이 <정약용 편>이었어. 책의 지은이는 정약용으로 되어 있지만, 정약용의 글보다 엮은이 이근오 님의 생각이 더 많이 실려 있는 것 같구나. 정약용의 글들을 발췌하고 그 글들에 숨어 있는 뜻과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 도움이 되는 글들을 소개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빠는 정약용 님의 글들만 실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책을 펼쳤는데, 그렇지 않아 다소 아쉬웠단다. 마치 순금 반지인 줄 알았는데, 24K 반지란 걸 뒤늦게 알게 된 느낌? 그래도 이 책에 좋은 내용들이 많이 있어서 아빠가 여기저기 발췌를 많이 해 두었단다. 아빠가 그 전에도 정약용에 관한 책들을 그래도 꽤 읽어서인지 어디선가 본 내용들인 것 같았어. 아빠가 저질 기억력이긴 하지만, 그래도 읽다 보면 가라 앉아 있던 기억력이 떠오를 때도 있거든.

 

1.

이 책은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정약용의 가르침은 가슴 속 깊이 스며드는 느낌이란다. 오늘은 아빠가 발췌한 내용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독서편지를 대신 할게. 아래 문구들은 얼마 전 내란을 일으킨 무능한 이를 이야기하는 것 같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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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마땅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있고, 물러나야 할 자리가 있다. 벼슬이 아무리 높아도 그릇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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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7)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주 자신을 과소평가라고, 스스로를 업신여긴다. 그래서 말이 막 나가거나, 아무렇게나 사람을 칭찬하거나 헐뜯고, 생각 없이 억누르거나 부추기면서, 결국 그로 인해 사람의 명예와 이익이 크게 엇갈리게 되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지위를 허락하면 그 책임은 나 혼자만 질 수 있지만, 오히려 자격 있는 사람을 배척하면 그 해악은 결국 다른 이들에게까지 번지게 된다. 더구나 은혜와 원한은 한마디 말에서 생기기도 하고, 재앙과 복도 때로는 단 한 글자의 문장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러니 사리에 밝은 선비라면 이 점을 깊이 새기고 늘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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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만 하기 어려운 것.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 너희들에게도 아빠가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 정약용도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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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산에서 연못을 파고 대를 쌓으며 밭농사에 마음을 다한 것은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디 내가 그 일을 좋아해서였다.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내 것’, ‘네 것의 구분은 없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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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가끔 말실수를 하고 나서 한참 후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경계하라는 말씀도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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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99)

정약용도 이렇게 말했다. “혀 때문에 죽고, 혀 때문에 살며, 혀끝에서 싸움이 일어나 소리도, 자취도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은 말이 절제되지 않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되풀이되어 온 잘못이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말은 칼보다 날카롭다고도 한다. 칼은 상처를 내도 시간이 지나면 흉터로 아물 수 있지만, 말로 인한 상처는 보이지 않아 더 오래 간다. 그래서 말은 마음을 전하는 도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무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진심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내가 옳다는 확신만으로 말의 칼날을 휘두를 때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날카롭게 내뱉는 순간 진실은 전달되지 않고, 상처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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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허물은 있을 수 있어. 하지만 그 허물을 숨기는 사람이 아닌 고칠 수 있어야 한다. 허물을 고치는 사람은 허물이 없는 사람과 같다는 말은 가슴에 깊이 새겨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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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그래서 정약용은 허물을 고치는 자는 허물이 없는 사람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누구나 허물을 고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제로 행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넘어졌는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났는가 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나가는 태도,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담담히 고쳐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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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잡념을 대하는 자세를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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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정약용은 말했다. “잡념이 생기면 휘저어 보내라. 다시 떠오르면 또 휘저어 보내라. 그래도 떠나지 않으면 억지로 쫓지 말고, 그냥 두어라. 그것이 곧 다스림이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잡념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지 않고 흘려 보내거나 그대로 둘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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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오늘 수업 끝^^

 

PS,

책의 첫 문장: 다산 정약용은 마흔의 나이에 큰 잘못 없이 종교 문제와 정치적 이유로 유배를 당했습니다.

책의 끝 문장: 그러니, 유독 잡념이 많다면 조금 힘 빼고 살길 바란다.

 




그래서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품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갈고닦아야 하고, 의로운 기상은 언제나 얼굴에 드러난다." 그렇다. 손톱을 보면 그 사람의 청결함이 드러나고, 체형을 보면 그 사람의 생활 패턴이 드러나고, 성격은 얼굴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처럼 작은 습관과 태도 속에서 사람의 깊이가 드러나는 법이다. - P21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화가들이 그리는 용은 마치 귀신 그림 같아서, 머리는 무섭고 꼬리는 뱀처럼 묘사된다. 그런데도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이 드물다 보니 사람들은 그럴 듯 하다고 믿어버린다. 그렇게 사람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고, 허망한 이미지에 쉽게 현혹된다. 하지만 청나라 화가 정공이라는 사람은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진짜 용의 모습을 그리고자 애썼다. 비늘 하나, 눈동자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묘사한 그의 그림은 마치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구칠 것처럼 느껴졌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보다 밀실에서 조용히 그려야 할 정도로 귀했다. 그림이란 작은 기예일 뿐이지만, 그 곳에 진실과 정신이 담겨 있다면 세상을 바르게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 P24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모든 것이 제때를 만나 기쁨을 누리는데, 나만은 어쩐지 앞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나는 대체 무엇을 기다리며 이렇게 멈춰 있는가? 물질적 욕심이나 세상의 기준을 벗지 못한다면, 어찌 뜻을 크게 품고 분발할 수 있겠는가. 백 년 인생 안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이 몸 하나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데, 결국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러니 함부로 남을 탓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정말 그렇다. 성장하는 사람은 탓하는 대신, 자신의 태도와 삶을 먼저 다스린다. - P35

정약용은 말했다. "큰 그릇이 되려면 반드시 용광로의 불에 들어가고, 망치질을 여러 번 견뎌야 하는 법이다." 쉽게 만들어진 그릇은 쉽게 깨지는 법이다. 반면에 불과 망치를 견뎌낸 그릇은 단단하고 오래 가게 되어 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처음에는 순조롭게 흘러가던 일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고, 그 고비가 길어지면 마음은 쉽게 지치게 된다. 하지만 그 시련이 곧 나를 단련하게 시간일 수 있다. 단지 결과가 늦게 오는 것일 뿐, 결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 P47

삶의 깊이는 겪은 만큼 깊어지고, 앎의 밀도는 직접 부딪힌 만큼 단단해진다. 큰 뜻을 품었다면 남의 말로는 세상을 배우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걸음으로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다 넘어질 수도 있고, 진흙탕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당신을 진짜로 만들어준다. 두려움은 해보지 않아서 생기고, 용기는 해본 사람에게만 생긴다. 삶은 결국, 맛본 자만이 제대로 누릴 수 있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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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그 문제들을 야기한 사고방식으로는 찾을 수 없다고 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해답이 될 새로운 사고방식은 미래의 과학자들이 처방했듯이 언어입니다. 언어는 생각을 이끄는 힘입니다.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언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더없이 좋은 도구입니다.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번성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언어는 번성하고 이익이 되지 않거나 관심에서 벗어난 언어는 쉽게 사라집니다. 생태언어는 관심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동떨어져 있어 쉽게 잊히고 사라집니다. 언어가 없다면 언어가 가리키는 존재도 보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미래에서 온 과학자들이 생태계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말들을 모아 많은 사람들이 읽을 것을 처방한 이유입니다.


(23-24)

그래서 마음이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기는 쉽지만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면 마음의 기본 값이 흔들림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림이 기본 값이라니. 그럼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일까요? 마음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요?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 믿음과 배신, 정의와 불의, 손해와 이익, 욕망과 권태, 저항과 순종, 채찍과 당근, 판단과 보류, 갈까와 말까, 안과 밖을 오락가락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오듯 몸 안과 몸 밖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생존을 위해서 밖으로 나가 각종 정보들을 접한 다음 안에 들어와 그것을 소화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부와 외부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균형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모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내부 세계에서만 파묻혀 살면 고립되고, 외부로만 향하여 있다면 내부가 고갈되어 산만해지니까요. 마음이 중심에 있으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면 됩니다. 간단하지요. 간단한 것이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39)

생태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행동합니다. 지구 환경 문제를 거시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측면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자연과 자신의 삶이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주변의 다른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표현합니다. 이들은 생태계에도 깊이 공감하며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 특정 새나 식물의 부재와 같은 현지 생태계의 미묘한 변화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환경 윤리를 따르는 제품을 구입하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피하고,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가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는지를 모색합니다.


(66-67)

고통의 기억은 자신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고통은 괴로움을 안겨주지만 손상된 부위를 보호하게 하고, 앞으로 닥쳐올 상황을 미리 예측하여 피해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극히 드문 일이지만 선천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통이 없다면 행복할 것 같지만 불행하게도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고통과 아픔을 느껴야만 살아남는 데 유리합니다. 그러나 고통의 기억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쉽게 사라집니다. 우리는 고통이 원인이 제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내 잊어버립니다. 그래야 또 사니까요. 하지만 고통의 의미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면 고통이 남기는 교훈마저 놓쳐버리게 되니까요.


(74)

땅과 교감하며 발맘발맘 걷다 보면 생태감수성도 생깁니다. 땅과 접촉하지 않는 사람은 신(God)과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신발을 신으면서부터 인간은 자연과 멀어졌습니다. 걷기를 통해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알싸한 고통이 다른 생명의 아픔처럼 전해오면서 환경을 보호하려는 마음도 생깁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스킨십을 원합니다. 부드러운 발바닥으로 땅을 어루만지면 땅의 기운이 온몸을 정화해줍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스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혼자서 걸으며 길 위에 떨어진 나뭇가지나 조그만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무심히 떠가는 구름을 쪼개보거나 이웃 구름과 만나게 해서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보기도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걷기는 나무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일입니다. 일단 걸어보세요. 걷기의 힘이 무한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


(107)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이름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복이 허리춤에 다는 복주머니처럼 생긴 복주머니꽃은 한때 개불알꽃이라고 불렸습니다. 꽃봉오리를 숙이고 있다고 하여 할미꽃, 제비꽃의 방언인 앉은뱅이꽃, 갈고리 같은 가시의 쓰임새를 상상한 며느리밑씻개, 비하의 의미를 지닌 개똥쑥, 개옻나무, 거지딸기 같은 이름도 있습니다. 동물에도 꼽추재주나방, 무당벌레, 벙어리뻐꾸기, 송장벌레, 문둥이박쥐 등 부정적인 이름이 많습니다. 개가 들으면 기절할 이름인 개나리, 개비자, 개여뀌, 개살구처럼 가 접두어로 들어가면 부정의 의미를 지녀 어떤 것의 아류쯤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바꿔 생각하면 개들의 사회에서 못된 개를 일컬어 사람 같은 개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121)

눈이 자란 궤적을 가지라고 합니다. 작은 가지와 눈, 그리고 잎은 외부 세계를 감지하는 레이더 역할을 합니다.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곳이지요. 낮과 밤의 길이를 재고, 중력과 바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주변 가지들의 방향을 탐지합니다. 만약 잘못된 정보를 수집했거나 분석이 잘못되면 그 가지는 여지없이 삭정이가 됩니다. 그래서 가지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주변을 살펴야 합니다. 필자가 관찰해본 결과 나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벋어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26)

겨울에는 없지만 봄이 되면 방들은 빼곡히 들어차 각자의 일을 하겠지요. 여러분들도 겨울 숲에서 나무를 올려다 본다면 수많은 가지들이 질문을 던지며 망설이고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왜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가지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는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서로 연결된 몸이거든요. 서로 배려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니까요. 사람도 그렇지 않나요?”


(133-134)

<산경표>는 땅에 대한 두 개의 인식 체계를 품고 있습니다. 첫째,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입니다.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은 북에서 남으로 중심 줄기를 나눈 것입니다. 선조들은 산과 강을 따로 보지 않았습니다. 산과 강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땅에 산 없이 시작하는 강은 없고 강을 품지 않은 산은 없으니까요. 둘째, 산은 나누고 물은 합친다는 산분수합입니다. 산은 물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생활 습관, 언어, 문화를 나누지만 물은 모든 것을 합칩니다. 같은 수계(水系)에 살면 음식 문화도 같고 생활 습관도 같습니다. 그러니 <산경표>는 지리서이기도 하지만 문화까지 다루고 있는 인문서이기도 합니다.


(170-171)

나무에게 바람이란 어렸을 때는 무서운 훈육 주임이고, 사춘기에는 친구이고, 청년기에는 연인이며, 장년기에는 질서와 규율이고, 노년기에는 스킨십을 잊기 못하게 하는 추억과 같습니다. 멀리 벋어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나무가 좀 더 커서는 바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친구처럼 대하고, 어엿한 나무가 되면 바람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연연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가 장성하여 숲의 주인이 되어갈 즈음이면 바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더 크고자 하는 욕망을 통제하는 훈육 주임이 됩니다. 그러고 보니 훈육 주임이 두 번 등장입니다. 무서운 것도 잠시, 수백 년이 흘러 노목이 되면 무성했던 가지와 잎들도 사라지고 엉성한 가지들 사이로 바람도 피해가고 가지들의 울렁거림도 사라집니다.


(177)

나뭇가지와 잎에는 동물의 눈과는 다른 개념의 눈이 있습니다. 그 눈의 이름은 피토크로뮴이라는 식물의 단백질 색소로서 밝음과 어두움을 감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나무는 동물보다 더 넓은 범위를 감지할 수 있지만 사물의 자세한 움직임을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빛의 신호를 그림으로 바꾸어줄 수 있는 신경 체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과 식물 모두 빛을 감지하지만 나무는 주변의 사물들을 대상의 그림자로 인식합니다.


(187)

인류는 개처럼 후각이 뛰어나지 못하고, 고양이처럼 날렵하지도 못하며, 새처럼 눈이 좋지도 않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종입니다. 사람의 크기는 어떤가요? 사람의 크기가  커지면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게 되어 불리해질 텐데, 지구의 모든 사정을 고려할 때 지금의 사람 크기가 적당했나 봅니다. 지구의 역사에서 공룡같이 덩치가 큰 동물들이, 자신의 그늘에  숨어있던 작은 생물들이 살아남은 모습을 곁눈으로 지켜보며 사라져갔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마냥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작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알 뿐입니다. 공룡이 멸종할 당시 인류의 조상이었던 포유류는 몸집이 작은 존재였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크기는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190-191)

흙이 더럽다는 인식을 두고는 흙의 입장과 사람의 입장이 서로 다릅니다. 사람들은 흙 속에 동물의 똥이나 사체들이 들어 있어 흙을 더럽다고 여기고, 흙의 입장에서는 오염 물질이 유입되거나 못하는 가장 주된 원인은 밟혀서 다져진 땅이 되었을 때입니다. 정상적인 흙은 광물질 45퍼센트, 수분 25퍼센트, 공기 25퍼센트, 유기물 5퍼센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수치에서 흙 속의 절반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빈 공간이 줄어들면 물과 공기가 저장되지 못하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내뿜은 탄산가스마저 빠져나가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식물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죽고 썩어들어가면서 에너지를 순환하지 못하고 흙이 더러운 것이 됩니다.


(202)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존재합니다. 생명체 각각은 자신만의 역할과 기능을 지닌 채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그 연결 고리의 한 부분이며, 많은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요. 특히 세포학의 연구를 통해 인간의 몸속에 수많은 미생물들이 존재하며 그들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공생 관계는 자연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이며, 서로 이익을 주고받기 위한 생태계의 필수 덕목입니다. 세포질을 연구한 미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분을 제외한 우리 몸의 10퍼센트 이상은 살아 있는 박테리아로 이루어졌다. 그들의 일부는 비록 우리 몸의 직접적인 구성원은 아닐 지라도 그들 없이는 우리도 존재할 수 없다.”


(218)

나무는 속을 비웁니다. 오래된 나무는 대부분 속이 비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중심을 비우므로 하늘과 땅의 소통을 이룹니다.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텅 빈 공간입니다. 노자는 마차 바퀴의 중심이 비어 있어서 유용하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속을 비워내므로 많은 생명체들이 그 안에 깃들어 삽니다. 아늑하고 따뜻하며 숨기 좋은 그곳은 하룻밤 동물들이 쉬어가고 새들의 집이나 곤충들의 사냥터가 되기도 합니다. 살아서 몸을 보시하는 보살의 화신인 것이지요. 한편 나무가 속을 비운다는 것은 과거를 잊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는 지나간 시간을 잊고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합니다.


(220)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지구를 연구한 외계인은 나무 전문가의 말과 스스로 연구한 기록을 토대로 삼아 다음과 같은 짧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지구를 떠났다고 합니다. “답은 나무다. 나무는 공기를 정화하고 물을 가두며 흙을 움켜쥐고 모든 생명을 보듬는다. 따라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나무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나무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무를 불평하지 않고 어디서든 잘 자라며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빨개진 이유는 사람들이 전쟁과 약탈을 일삼으며 나무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금 볼 빨간 사춘기를 맞이한 것 같다. 지구인들은 이웃 나라와 부딪히며, 망가진 지구를 재건할 생각은 안 하고 우주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를 구할 골든타임을 놓칠 위험에 처해 있다. 이제 지구인이 살아남는 방법은 나무에게 지혜를 구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이상.”


(282-283)

생태계의 꼴은 지구의 살림입니다. ‘살림은 곧 생명을 가리키고, ‘목숨을 살리다는 문장의 명사형이기도 하며, 한 집안을 이루고 살아가는 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지구 살림은 너무 큰 탓에 사람들이 무관심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아이들이 들판에서 땅벌에 자주 쏘인다면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요? 한참을 궁리해야 할 겁니다. 사람들은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이 맺고 있는 상호 관계 대신에 단순한 인과 관계만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복잡한 상호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생태계는 넓은 시각으로 보아야 잘 보입니다. 불교의 연기법에 따르면 어떤 생명체 중에도 독립된 실체는 없으며 다른 것과 상호 연관을 맺어야만 생명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연기의 고리를 끊지 말고 낱 생명을 넘어 온 생명을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생태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래의 노래가 생태계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수산.”


(322)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인간이란 모름지기 자연의 이자로만 삶을 꾸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말입니다.


(368-369)

보전(保全)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연의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보전을 지지하는 보전주의자는 인간이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연을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닙니다. 환경 보호의 이유를 자연이 인간에게 유용한 자원이기 때문이라고 꼽는다면 보전론자에 가깝습니다. 보존(保存)은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은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기에 원래의 모습대로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따릅니다. 인간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다른 생명도 소중하니까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삼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도 전부터 존재하던 아름다운 자연을 망가뜨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보존주의자입니다.


(385-386)

인류는 현재 기후 변화라는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풍족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소비를 줄이고, 나무처럼 자연의 회복 능력을 믿으며, 서로 협력하면서 작은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큰 희망입니다. 뛰어난 지능을 지난 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미래를 이해하고 싶다면 과학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과학의 시선이 지금 이루어야 할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한 것에 머물 때,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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