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27분 책 읽어주는 남자
장-폴 디디에로랑 지음, 양영란 옮김 / 청미래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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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분 책 읽어주는 남자/-폴 디디에로랑/청미래]책의 낱장까지 살려내는  남자

 

언젠가 소설을 읽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막 책읽기에 빠진 때라서 운전할 때마다 듣곤 했다. 끝까지 들을 형편이 되지 못했지만, 잠깐의 순간만이라도 낭랑한 성우의 목소리로 소설을 들으면서 상상과 모험의 세계로 떠나곤 했다. 김선영의 <시간을 파는 상점>도 그렇게 알게 된 책이었다.

만약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귀 기울일까. 목소리가 굉장히 좋거나 내용이 흥미롭다면 아마도 솔깃해하지 않을까. 한국의 현실에서는 복잡한 곳에서 시끄럽게 한다며 핀잔을 들을까. 어쨌든 대중교통을 타면서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소설 속의 남자는 투명인간 같은 삶을 사는 남자여서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일까,

    

 

 

주인공 길랭 비뇰은 책을 파쇄하는 일을 하는 남자다. 팔리지 않거나 창고에서 오래 묵은 책들을 파쇄해서 새로운 인쇄용지를 만들어 낸다. 길랭은 파쇄하는 기계인 체르스토르 500에게 불만이 많다. 한꺼번에 수천 권의 책을 먹어치우는 모습이 마치 먹성 좋은 괴물 같아서다. 뭔가를 먹고 나면 이 사이로 끼게 되는 찌꺼기가 있다. 이 괴물도 깔끔하게 책을 먹어치우지 못해 늘 몇 장의 낱장을 남기게 된다. 결국 길랭은 책이 파쇄 되면서 남기는 낱장들을 모아서 이른 아침 출근시간마다 전철에서 그 낱장들을 읽어주게 된다.

 

길랭이 전철을 타는 627분은 그렇게 책 읽어주는 시간이 된 것이다. 제대로 된 책이 아닌,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책들에서 떨어진 낱장들, 각각의 책에서 구원받은 낱장을 읽어주는 것이다. 순서도 없고 내용도 도중에 끊기지만 누구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그가 책읽어주는 시간에 맞춰서 전철을 타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어느 날 길랭은 전철에서 80대 할머니 팬들을 만나게 된다. 책 읽어주는 시간에 맞추어 일부러 전철을 타러 온다는 할머니들은 길랭에게 책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길랭이 양로원에서 처음으로 책을 읽어주던 날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기껏 낱장을 읽어주었을 뿐인데, 할머니들의 질문이 폭포처럼 쏟아진 것이다. 낱장의 이야기에서 무한대의 질문을 펼치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옥신각신 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열띤 백분토론 같다. 토론 문화가 부족한 우리와 많이 다른 모습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길랭은 요양원에서 책을 읽어주면서 할머니들이 생기를 찾았음을 알게 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할머니들에게 유쾌한 즐거움과 신선한 자극을 준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삶도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무미건조한 그의 삶에 활력을 느끼게 된다.

그는 태어나서 늘 놀림 받던 남자다. 빌랭 기뇰(심술쟁이 꼭두각시)이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았기에 웃음거리가 되기 싫었던 그는 투명인간처럼 지내기로 작정했을 정도다. 친구도 별로 없던 그에게 양로원에서의 책 읽어준 시간은 분명 활기를 불어 넣었다. 그의 건조한 삶에 윤기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에 가장 의미 있는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전철에서 우연히 주운 USB에서 한 여자의 일상을 접하게 된 것이다. USB72개의 문서파일에는 쇼핑몰 화장실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쥘 리가 쓴 그녀의 일상이 담겨 있었다. 길랭은 전철에서 낱장 대신 그녀의 글을 읽어주게 되면서 그녀의 삶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 나서게 된다. USB로 인해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려한 문장, 유머 넘치는 재치가 가득한 소설이다. 쥘 리가 쓴 자신의 일상, 친구인 회사 경비원 이봉이 읊어대는 12음절 정형시, 양로원 할머니들의 열렬한 독서토론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재미있게 그려냈다.

이 책은 2010년 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인 장-폴 디디에로랑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보다 더하게 책을 사랑하는 남자가 있을까. 죽어간 책에 생명을 넣어준 남자, 글과 책을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 책의 마지막 낱장까지 의미 있게 살려낸 남자, 무미건조한 시간에 이야기로 상상을 끌어내고, 탐험을 하게 만드는 남자의 능력에 감탄하며 읽게 된 소설이다. 낱장의 이야기지만 한 편의 스토리로도 손색이 없는 이야기들이니까.

주변에서도 책 읽어주는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딘가에 이 소설을 모방해 전철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가 생기지 않을까. 이젠 전철을 타야겠네. 627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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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너머의 연인 - 제126회 나오키상 수상작
유이카와 게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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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너머의 연인/예문사] 우정과 사랑, 결혼과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

 

삶에 정답이 없듯 우정과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백지 위에 어떤 모양으로 채우고, 어떤 빛깔로 채색하든 모두 각자의 취향대로 그려갈 자유가 있다. 세상에 참과 거짓, 옳음과 틀림을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사랑에 정답과 오답을 누가 평가할 수 있을까.

    

 

 

 

 

 

어깨 너머의 연인.

126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기에 끌렀던 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처럼 관조하듯 사랑을 바라보지만 분명 예사롭지 않은 사랑이다. 보통의 사랑과는 조금 동 떨어진, 그래서 흥미로운 사랑 이야기다. 일본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행복과 결혼에 대한 질문이 우리네 정서와 맞지 않지만 조금은 공감하게 된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야 하니까.

 

여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무기로 삼는 여자, 그리고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약점으로 여기는 여자, 이 두 종류의 여자는 전혀 다른 생물이다. (248)

 

루리코와 모에는 유치원 때부터 알게 된 소꿉친구다. 두 사람은 성격, 취향, 연애관 등 모두 다르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

그녀는 여자란 자고로 예쁘고, 섹스어필해야 하고, 같이 있어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예쁘장한 미모만큼이나 자기중심적이고 허영심이 많은 여자다. 제멋대로이기에 천박하기도 하지만 남자를 사랑하기보다 결혼을 사랑할 정도로 결혼이 목표인 여자다.

 

루리코의 사생활을 보자.

루리코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2년 만에 나이가 한참 많은 상사와 결혼했다. 그녀는 부인이 있는 상사를 유혹해 전부인과 한바탕 다투면서 상사를 쟁취한 것이다. 하지만 결혼 후 남자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서 이혼을 하게 된다. 그녀가 두 번째로 만난 남자는 학생 시절의 남자 친구였다. 이번에도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며 옛 남자 친구를 쟁취하게 된다. 하지만 늘 그렇듯 결혼 이후 그녀의 사랑은 시들게 된다. 그녀가 세 번째로 결혼한 남자는 절친 모에의 남자친구였다. 친구의 애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를 흥분시켰고, 더구나 산중한 모에가 사귀는 남자 친구라면 믿을 만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모에는 유치원 때부터 루리코의 흑기사였다. 남자에 기대기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려는 여자다.

예쁘고 잘난 척하는 루리코와 달리 그녀는 입이 거칠고 고집이 세며 따지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여자답지 않고 퉁명하고 오만해서 전혀 부드럽지가 않다. 결혼을 좋아하는 루리코와 달리 모에는 결혼을 싫어하고 남자를 믿지 못하는 여자다.

하지만 유부남과 사랑을 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열여덟 살의 다카시와 사랑을 하기도 한다.

 

루리코와 모에는 알고 보면 별 이상한 친구관계다. 자신의 남자 친구를 빼앗아 결혼을 하는 친구의 결혼식에도 참석하니 말이다. 생각도 다르고 취향도 다른 정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세월에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을 통해 루리코의 생각은 변하게 된다. 모에 역시 유부남과의 사랑, 연하남과의 사랑을 통해 생각이 바뀌게 된다. 그리고 둘은 조금씩 의기투합하게 된다.

-결혼하면 행복해진다는 환상을 버리지 않는 한, 여자는 자기 두 발로 서지 못해요.(248)

 

결혼을 통해 문제해결을 하고 싶었던 루리코는 결혼이 목적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허영심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게이인 료를 인간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결혼에 두려움을 가지고, 남자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던 모에도 다카시와의 하룻밤 사랑으로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혼자서 키우기로 결심하게 된다.

   

두 친구의 사랑과 연애 이야기가 처음에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다 하나의 마요네즈처럼 융화가 되어간다. 사랑과 행복을 찾는 방법이 조금 다른 두 친구들이 점점 서로 융화되어 간다. 어깨 너머로 본 남의 연애사이지만, 결혼을 통해 행복을 쟁취하려는 여자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렸다. 결혼 후의 행복은 손 안에 쥔 모래알처럼 움켜쥐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자를 찾아 결혼을 하고 행복해지려는 여자와 결혼이 두렵고 남자를 믿지 못하는 여자의 대비가 너무 극명한 소설이다. 우정과 사랑, 결혼과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두 친구 루미코와 모에가 자신들의 사랑을 찾아 좌충우돌하는 이야기에서 다름과 취향의 존중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다, 나이도 국경도 취향도 다르지만 말이다.

삶에 정답이 없듯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무한대의 세상이기에 사랑의 종류도 무한대니까. 누구나 꿈꾸는 사랑이 있기에 각각의 취향을 존중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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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홍수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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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홍수연/파란]첫사랑의 떨림, 먼 길을 돌아온 사랑의 애절함, 그래서 눈꽃 같은 사랑~

 

가을엔 슬픈 로맨스 소설을 읽는 일도 제법 어울린다. 그래서 읽고 싶었다. 파란 출판사의 홍수연 작가의 작품을. 소문으로만 들었던 작가이기에 그 실상을 보고 싶었다고 할까.

 

<눈꽃>은 첫사랑의 떨림, 먼 길을 돌아온 사랑의 애절함, 장애물이 너무나 많아 이루어지기엔 어려운 안타까움을 그린 로맨스 소설이다. 이 소설은 2008년 출간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나 보다. 2014년에 재출간된 걸 보면 말이다. 재출간할 만하다. 가슴 먹먹해지는 그런 소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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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는 걸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가끔 그게 되지 않을 때가 있어. 어떤 날은 정신을 차려 보면 이렇게 네 옆에 와 있어. (11)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가 담긴 독백이 아닐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먼 거리에서 지켜만 본 사랑이었다. 상처만 입힐게 뻔해 무정하게 대했던 사랑이었다. 하지만 첫사랑의 설렘을 혼자서 삭히기에는 애절함이 더 강했나보다. 멀리할수록 그리움은 열병이 되어 피어나고, 외면할수록 몸은 그녀 곁을 맴돌고 있었으니.

 

제이어드는 열 살 정도의 단발머리 동양인 소녀인 서영을 처음 본 이후로 내내 그녀를 가슴에 품게 된다. 서영이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사랑으로 인해 다치는 건 분명 서영일 테니까. 그리고 스키장에서 서영을 닮은 21살의 유명 모델인 민영을 보면서 서영의 대체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제이어드는 민영을 사랑하진 않지만 서영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괜찮다는 생각에 만남을 지속하게 된다.

 

민영은 멋진 스키 선수로 알던 제이어드가 미국 최고의 금융재벌 에이드리언 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 인생의 최대의 기회를 잡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제이어드는 민영과의 관계만으로는 서영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영과의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위로를 삼게 된다. 폭설이 내리던 날, 집으로 가는 서영을 태워다 주거나 서영이 아르바이트 하는 레스토랑에서 묵묵히 식사를 하거나 민영의 남자 친구로 민영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한 편 서영 역시 18살에 언니와 함께 집으로 온 제이어드를 보면서 제이어드를 가슴에 품게 된다. 언니의 남자이기에 그녀가 해서는 안 될 사랑이었다. 늘 멀리 있어야 했고, 늘 멀리 있다고 생각한 사랑이었다. 집 안과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인데다 한때는 언니의 남자였으니까. 서영에게도 제이어드는 그저 혼자서 보는 걸로 만족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서영이 미국 최고의 금융재벌 에이드리언 가의 계열사에 입사하면서 이들의 만남은 이어지게 된다. 더구나 서영이 결혼 1주일을 앞둔 시점에서 이들은 자석 같은 끌림으로 체온과 심장박동을 나눈 사이가 된다. 이제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관계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서영에겐 제이어드가 18살부터 꿈꿔온 사랑이었고, 제이어드에겐 서영이 엄격한 가문에서의 유일한 탈출구였고 그를 꿈꾸게 한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어울릴 수 없었던 사랑이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속 시원히 마음을 터놓지 못한다. 타고난 환경 탓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해진 제이어드는 가문에 대한 책임감과 본인의 의지 사이에서 갈등 하게 된다.

뻔하고 지루하고 답답한 제이어드의 일생에 한 줄기 빛 같은 여자 서영과의 데이트였지만 만일의 상처를 대비하다보니 마냥 알콩달콩 할 수가 없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랄까. 저녁을 함께 하거나 미술관 데이트를 하지만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모두 열어 보일 수는 없다. 언젠가 떠나야 할 사랑이고 그래야 상처를 덜 받을 것 같은 사랑이기에.

 

더구나 언젠가 이 의자는 네 것이 될 것이다.”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은 제이어드의 어깨를 짓눌러서 일까. 한국계 여인을 좋아했다가 그 여인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제이어드의 아버지처럼 그에게도 그런 핏줄이 흘러서일까. 아버지의 여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어머니가 그의 여자에게도 상처를 줄 것이 예상되어서 일까. 아들인 제이어드 역시 한국계 여인을 사랑하는 것을 안 사라는 예상대로 격렬한 반대를 하게 된다.

 

 

무뚝뚝한 제이어드가 밤마다 꾸는 꿈의 여자, 밤마다 자신의 전부를 빼앗아가는 여자, 이제야 그녀를 품을 수 있게 되었지만 행복은 잠깐일 뿐이었다.

제이어드의 아이를 가진 서영은 남몰래 한국으로 가게 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담은 긴 쪽지를 남기게 된다.

 

 

커다란 차 안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키가 큰, 검은 머리 아저씨.

 

그때, 어린 저를 바라봐 주던 그 눈빛이

그날부터 잊히지가 않았어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거,

그 어린 나이에도 알았는데

그 눈빛을 감히 떨쳐 놓지를 못했습니다.

 

그 뒤로 당신이 제 마음속에서 떠난 적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그 뒤로 제게 있는 모든 길은

모두 당신과 함께 있기 위한 발자국이었습니다. (329)

 

아기를 위해 멀리 한국에 정착한 서영은 아이를 낳고 싱글맘으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제이어드는 사랑에 대한 상실감에 의욕을 잃고 헤매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스키장에서의 사고로 제이어드는 의식불명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제야 아들을 잃는다는 생각에 빠진 사라 에드워드는 뉘우치게 된다. 의식불명의 아들을 살려낸 서영과 아기의 존재를 아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서영과 제이어드는......

 

눈꽃.

가슴 시린 사랑이야기다. 차디차고 날카로운 얼음송곳 같은 첫사랑 이야기다. 처음엔 차갑고 아프지만 온기가 닿으면 이내 녹아 버리는 눈꽃 같은 첫사랑 이야기다.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서 원망을 하고 자책을 하던 사랑, 터놓기조차 어려웠던 사랑 이야기다.

죽음의 끝자락에서야 털어놓는 네가 보고 싶었어. 내게 필요한 건 너였어.”라는 두 사람의 고백 앞에서 더욱 답답해서 애절하게 느껴지는 사랑이야기다.

마음이 통한다 해도 표현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사랑에는 확인과정이 필요한 법인데. 그래야 오해와 편견이 쌓이거나 덧입혀지지 않는 법인데.

알면서도 행동은 정말 어려운 첫사랑. 강렬한 흔적만큼이나 잊히기 어려운 첫사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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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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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김이설/은행나무]꽃 같은 흉터를 가진 선화, 봄을 기다리는 이야기~

 

산다는 건 켜켜이 상처를 남기고 흉터를 남기는 건지도 모른다. 마치 나이테처럼 말이다. 누구나 아기 때의 말간 피부가 살아가면서 어느 샌가 긁히고 찢기고 터진다. 그리고 피부 여기저기 얕거나 깊은 무늬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태어나면서 흉터를 가진 이는 전생의 상처에 대한 흔적일까. 태어나면서 얼굴에 흔적을 갖고 태어났다면 또다시 마음의 상처로 전이될 텐데…….

 

 

 

 

 

 

언니도 잊어. 잊어버려. 이십오 년 전의 일이야. 그걸 아직도 부여잡고 살면 어떡하니? 저절로 아물었으면 그냥 둬. 그걸 왜 또 후벼파? 그래봤자 흉터만 더 커지지. (139)

 

선화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오른쪽 얼굴에 검고 붉은 얼룩을 가지고 태어났다. 화염상모반을 가진 선화의 오른쪽 얼굴은 입술도, 눈도, 피부도 모두 정상이 아니다. 언니의 왼쪽 얼굴에는 가늘고 긴 흉터가 있다. 이는 선화가 화침으로 상처를 낸 것이다.

 

누구든 상처가 있다.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굳고 딱지가 내려앉고, 딱지가 떨어진 자리에 솟은 새살이 바로 상처를 반추하는 흉터였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흉터를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18)

 

선화는 얼굴에 흉터를 갖고 태어났지만 누구도 미안해하거나 고쳐주겠다는 가족이 없자 섭섭해 한다. 어느 날 가족 앞에서는 선량한 척하고 자신 앞에서는 얄미운 행동을 하는 언니가 사고를 친다. 선화의 가방에 책과 공책, 필통을 없애고 꽃꽂이에 쓰이는 화침 4개를 넣어 놓은 것이다. 그런 언니가 얄미운 선화는 자신의 가방에서 화침을 꺼내 언니의 얼굴을 문지르며 복수를 하게 된다. 그렇게 언니 왼쪽 얼굴에 후천적인 상처가 생긴 것이다.

 

선천적으로 흉터가 있는 선화는 타인의 흉터를 빨리 알아내고 빤히 쳐다보는 버릇이 있다. 흉터민감성이다.

어느 날 꽃집에 목덜미에 흉터가 있는 남자인 영흠이 나타나 꽃 배달 주문을 하고 간다. 이후 영흠은 일정한 시간에 꽃을 사러오면서 선화의 관심을 끌게 된다. 그리고 수국 꽃다발을 선화에게 선물하고 가 버린다. 수국의 꽃말이 진심, 변덕, 처녀의 꿈, 바람둥이다. 영흠이 선화에게 서로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는 수국을 준 이유가 진심일까, 아니면 변덕일까.

 

자신에게 꽃다발을 준 남자는 영흠이 처음이었다. 그런 영흠에게 살짝 기울어지고 있는 찰나에 영흠의 꽃다발 주문은 그치게 된다. 대신 그의 아내가 나타나 영흠이 뭔가 부족한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라는데. 그리고 그녀는 죽음을 앞 둔 선화 아버지 병실에 꽃을 주고 간다. 그 꽃은 청초하고 투명한 이미지를 끌어내 창백해 보이는 것이기에 조문을 위한 꽃이었다. 아버지가 비록 죽어가는 목숨이지만 미리 조문을 표하다니. 어쩜 세상은 상처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

 

하루하루 썩어가는 꽃을 보는 일은 하루하루 피어나는 꽃을 보는 일과 같은 의미였다.(108)

 

선화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생긴 유산으로 천형 같은 자신의 얼굴을 치료하고자 알아본다. 아버지의 유산은 자신에 얼굴에 대한 죄책감을 대체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얼굴의 모반제거를 위해 성형의사, 안과 의사, 피부과 의사까지 총동원해야하는 상황이다. 얼굴의 모반이 완치도 되지 않으면서 견적은 천만 원을 넘는다니. 그래서 선화는 남은 인생을 그대로 살아가리라고 다짐한다. 이제까지 힘들게 살아왔기에 이미 남들의 시선에 대한 내성이 생긴 거니까. 워낙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왔기에 앞으로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거니까.

   

이 책은 꽃집을 하는 선화의 흉터 이야기다. 얼굴에 꽃과 같은 붉은 얼룩을 가진 선화의 이야기에는 꽃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꽃다발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동그랗게 보이도록 해야 해요.

-꽃은 온도에 민감해요. 되도록 빨리 잡아야 꽃의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어요.

-나는 다육식물이 좋았다. 선인장처럼 가시의 위협이 없으면서도 관심두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제 생을 연명해가는 기특하고 똑똑한 것들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말이다. 육체적인 상처든 정신적인 상처든 말이다. 그런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저 봄을 기다리듯 시간을 인내하는 것이리라. 상처에 대한 내성이 생길 때까지 말이다.

 

얼굴에 꽃 같은 흉터를 태생적으로 가진 선화의 봄을 기다리는 이야기다.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의 결대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봄이 더디게 오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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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드 THAAD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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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드/김진명/새움]달러 약세를 달러 강세로 바꾸려는 싸드 전략~

 

일본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워싱턴 정가를 살펴라. 마찬가지로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정확하게 보고 싶다면 워싱턴 정가를 살피라. 이것은 몇 권의 책을 통해 개인적으로 얻어낸 결론이었다. 그만큼 국제 질서에 있어서는 겉으로 보이는 외면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이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고, 경제적·외교적 논리에는 언제나 정치적·군사적 파워게임이 작동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찍이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한반도에 충격을 주던 김진명 작가가 이번에는 소설 <싸드>로 한반도를 흔들고 있다. <싸드>는 쓰고 있던 소설 <고구려> 집필을 중단하고 새롭게 쓴 소설이다. 작가는 그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싸드 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

최어민 변호사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자격을 취득했지만 일자리조차 얻지 못한다. 3년간의 무직 끝에 식당 아주머니를 통해 김윤후 변호사 사무실의 한 쪽 구석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된다. 김윤후 변호사는 늘 자리를 비우며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고 한쪽에서는 이혼만 전담하며 전문 커리어를 굳혀가고 있는 홍미진 변호사가 있다.

 

최 어민은 사건 수임을 위해 스스로 남들이 맡지 않는 사건 전문이라고 쓴 전단지를 뿌리다가 한 달이 되어갈 즈음 리처드 김의 의뢰를 받게 된다. 리처드 김은 세계은행에 근무하기에 한국의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보살펴 달라며 계약을 한다. 하지만 곧 그의 어머니에게서 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최어민은 리처드 김의 어머니로부터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여태 아무 말 않던 사무실 주인인 김윤후 변호사는 퍼스트클래스로 비행기를 예약을 해주고, 홍미진 변호사는 그냥 갔다 온 흔적만 남기라는 조언한다.

 

미국에 온 최어민은 리처드 김이 한국 이름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그의 죽음에는 달러 연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처드 김의 최근의 통화 내역을 조회하면서 상원의원, MD 단장, 워싱턴 소재 중국대사관의 참사관, 태프트가 관련 있음을 알게 된다.

 

세계은행에서 달러 연구를 했던 리처드 김은 누구에게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까.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그에게 김윤후 변호사는 도움이 필요하면 애크미로펌의 폴 라운트리 변호사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변호사를 상대로 상담하기에도 바쁜 라운트리는 최어민을 도우며 적극 조언을 해준다. 라운트리는 리처드 김의 살인범은 평범하지 않으며 이전에 통화하지 않았던 새로운 통화자를 의심하라는데…….

MD미사일방어망의 책임자인 스컬리 육군대장일까, 아니면 태프트라는 암호를 쓰는 거물일까, 그도 아니면 미 정부일까. 최어민은 미국 달러의 약세를 가져 온 모든 이유를 규명하던 세계적인 인재였던 리처드 김의 죽음에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최어민은 리처드 김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에 가까이 갈수록 그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고 국가가 개입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국가 간의 파워게임에는 경제적 문제 해결과 세계 패권을 주도하고자 하는 야욕이 깔려 있음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싸드를 저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이 책은 미국의 경제 위기인 달러 약세를 달러 강세로 바꾸는 해결책으로 전쟁을 준비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전쟁을 감추기 위한 구실과 핑계들이 작금의 외교정책들임을 알려주는 책이다. 사면초가의 한국 현실을 모든 국민들에게 알리는 현실적인 이야기다.

 

책에서는 채동욱의 혼외자 사건의 진실, 안철수의 정치입문, 문재인의 정치적 성격, 박원순의 서민적인 파워, 김문수의 청렴성, 윤상현의 이미지 분석 등 한국 정치와 관련된 인물 분석도 있다.

 

중국의 무서운 경제성장세, 중국과 한국과의 교류 등으로 미국이 일본과 협력하려는 모습을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작가의 말처럼 엄청난 달러를 보유하며 흑자를 내고 있는 중국에 비해 미국은 많은 부채로 경제가 무너지고 있기에 달러를 마구 찍어내고 있다. 미국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해결책은 결국 전쟁이라니.

경제력은 약화되고 있지만 군사력은 중국의 10배라는 미국. 미국은 지금 군사력과 정치력을 동원해 세계의 패권을 움켜쥐려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일본에 집단자위권의 활로를 틔우게 도왔고 미일군사훈련을 강화했고, 태평양 함대에 항공모함을 한 척 더 배치했다. 무엇보다 싸드의 한국 배치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 본토에서 중국의 대륙간탄도탄을 요격한 성공률이 반으로 떨어지면서 중국 미사일에 대한 근거리 감시라는 목적으로 싸드를 한국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용산과 동두천에 있던 미군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한국에 싸드 추진을 압박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싸드의 한국 배치를 적극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려 하고 있다니. 더구나 북의 미사일과 핵은 미국의 싸드 추진에 좋은 구실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다 전쟁이 나면 한반도는 핵전쟁터가 될 텐데......

 

외면적으로는 미국이 중국의 미사일을 무력화하고 북한의 미사일과 핵을 무력화 한다지만 그 실상에는 미국의 달러 약세를 달러 강세로 바꾸는 방법이라는 것과 미국의 경제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외교술이라니. ~

전쟁이 미국의 경제를 구원해주기에 결국 미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걸까. 지금도 미국은 끊임없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데......

 

문제는 한국의 입장이다. 중국의 성장으로 이득을 볼 수도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서 막대한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랜 우방과 새로운 우방의 격돌이기에 더욱 난감해진 시점이다. 더구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빌미로 미국이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니, 어이가 없다. 한반도가 이라크처럼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급변하는 국제관계의 역학관계 속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소설이다. 미국과 일본의 공조, 시진핑의 한국 방문도 이와 관련 있기에 저자는 소설이 아닌 팩트라고 한다.

*한우리북카페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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