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400. 화장 (김훈)

6년도 더 전에 강산무진 단편집을 읽고 작가 사인까지 받았는데, 영화 '화장'의 예고편을 볼 때 까지 다른 단편 '언니의 폐경'의 줄거리로 기억하고 있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단편을 다시 찾아 읽었는데 무겁고 힘들다. 중년의 남자가 아픈 부인의 죽음과 부하 여직원의 젊은 아름다움 사이에서 갈등한다, 고 했는데,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하기엔 더 복잡한 이야기.

소설 속 오상무와 영화의 오상무 (아니 안성기)는 아주 다른 느낌이고, 추은주는 완전히 별개의 캐릭터였다. 오상무의 덤덤한 사랑 혹은 의리가 무서웠고, 그의 생생한 속살에의 집착이 측은했다. 영화는 역시 임권택의 고집스러운 문법으로 빚어낸 노장의 작품이었고 부인 역의 김호정 배우의 열연은 이 영화를 보아야 할 이유였다. 그녀의 투병 장면이 아름답다고 감히 얘기하는 건,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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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400. 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

이번에도 '오디오 북'(?)으로 읽었다.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단편 전문을 낭독해 주었는데 환갑 넘은 할머지 화자, 그것도 박완서 선생님의 강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자연스럽다. 속엣것을, 저 아래 웅크리고 있는 치졸한 개인의 마음을 박완서 선생님은 어쩜 이리 솔직하고 날카롭게 다 드러내 표현하셨을까. 선생님의 글은 다 비슷비슷한 듯, 물 흐르는 듯 하지만 이렇게 다시 읽으면 (들으면)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롭고 선명하다. 아주 정성스레 차린 따스한 밥상을 받아 맛있게 먹은 기분이다. (아, 나는 또 이렇게 먹는 비유 밖에 못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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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400. 면도날 (서머싯 몸)

처음 접하는 '몸'의 작품이다. 1920년대에서 시작해서 40년대까지 이어지는 소설은 미국 출신의 유럽에서 활약한 '사교계의 거물'인 엘리엇과 그의 조카 이사벨, 그녀의 남편 그레이, 그리고 이사벨의 첫사랑인 래리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눈걸 옮기고 있다. 개츠비의 시대, 그리고 헤밍웨이가 파리의 카페에서 글을 쓰던 시대다. 장편인지라 이야기는 엘리엇의 과거사와 그의 매끄러운 처세를 그리는 듯하다가 어느새 '청춘의 빛'을 찍는 이사벨과 래리로 넘어간다. 그리고 모든 청춘의 질문을 안고 떠나는 래리. 그는 순수한 청춘의 얼굴, 아니면 세상 모르는 어린이 같지만 모두의 데미안이 아닐까. 거구의 사람 좋은 그레이와 우아한 이사벨, 수잔과 소피, 모두들 적잖은 분량의 출연 동안 톡톡히 자기만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래리의 인도 여행기 (혹은 참선기)를 읽은 후라 마음을 놓았을 때 벌어지는 사건은 작가의 솜씨인지 그저 인생의 whim인지. 모두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해피엔딩, 아니겠냐고 담담히 적는 '몸'의 소설은 책을 덮은 나에게 이런 저런 생각을 남긴다. 이 소설은 심심한듯 지루하지 않고, 또 의뭉스럽게 이런저런 철학적 이야기를 상투적으로 보이기 딱 좋을 위치에 두면서, 어때? 하고 묻기도 한다. 아, 이러면 내가 웃을 수도, 그렇다고 각잡고 인상쓸 수도 없잖아요. 소설 속에서 자주 보이는 여자를 깔보는 태도는 마음에 안들었지만 이 소설은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이미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나이라 래리의 인생탐구생활에 응원을 보낼 수만은 없었다. 내가 이사벨의 그 속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난 그녀보다는 덜 속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진 것도 없고. 소설이 인생이라면, 인생이 소설이라면, 그럼 나의 해피엔딩은 무엇일까. 인생의 관뚜껑을 닫을 때 엘리엇 처럼 기괴한 치장을 할 수 있다면 나의 최후의 멋부림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생각의 끝은 오래전 지나버린 내 청춘의 시절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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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00. 해방 - 술 마시는 인간 (성석제)

농담처럼 시작해서 파국으로 치닫는데, 그 사이사이 이야기는 건너 뛰며 달리며 진행되어도 인물과 사건을 따라가며 상상할 수 있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낭독해준 권희철 평론가 덕인지, 월요일 아침, 술로 망해가는 인간 이야기를 아주 맑게 그리고 깨끗하고 들었다. 이런 오디오북 경험, 색다르고 멋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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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00. 서울 부부의 남해밥상 (정환정)

팍팍한 서울 살이에 지친 젊은 부부가 통영으로 내려가 살아낸 첫 두 해의 이야기, 라고 해서 젊은 부부의 귀촌일기 쯤인가 싶었는데 제철 먹거리, 특히 바닷가 특성을 살려서 생선 이야기가 많길래 책으로 읽는 삼시세끼 인가 했더니, 남해 부근의 관광지 정보도 예쁜 사진과 함께 있으니 여행 가이드 북  같기도 했다가, 이들 부부가 게스트 하우스도 한다는 걸 알게 되니까 흠, 홍보책자였어? 싶다.

 이 모든 걸 다 담았는데, 음, 맛있는 짬뽕 같은 느낌. 저자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사진을 찍고 글도 썼던 사람이라 문장은 생생하고 사진도 맛있...아니, 멋있다. 3년전 다녀온 여수, 재작년 들렀던 해남, 강진, 완도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먹거리 공감능력이 빼어난 나는 보리굴비 이야기에, 무만 넣고 맑게 끓여낸 대구탕, 알이 굵은 굴과 홍합 이야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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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3-16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지~~~ :)

유부만두 2015-03-16 12:35   좋아요 0 | URL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