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월, 잔인한 死월은 다행히 저쪽으로 갔다. 갔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런데 汚월이 되지 않아야 할텐데. 빅뱅의 컴백이 이리 위안이 될줄이야.
168/400.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한창훈 작가가 계속 쓰는 이상, 나는 읽을 이유가 있다. 눈물과 웃음을 이렇게 가슴 뻐근하게 버무려 놓은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읽었던 부분의 글도 예전의 <향연>을 읽을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동료 시인과 가족들의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그리고 그의 다른 책들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69/400.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음식 이름의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의 문화사가 보이고, 동서양의 교류와 지배 피지배층의 욕망이 드러난다. 그리고 음식을 둘러싼 언어 (메뉴와 리뷰) 역시 음식과 먹는 행위 자체 보다는 인간 본성을 더 솔직하게 보여준다. 또한 음식 이름에 나타나는 경/중의 어감은 모든 문화에 공통되는 어떤 인간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불어로 참치가 "똥"으로 발음되는 걸 떠올리면 자꾸 웃음만 나왔다) 신문에서 본 이책의 리뷰는 주로 책의 1장, 메뉴에 나타난 경제적 차이에 집중하는데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재미 없는 부분이다. 메뉴의 예가 너무 길게 나와서 지루하다. 살짝 건너 뛰고 2장 부터 읽는다면 여러 재치있는 부분을 만나게 된다. 단지, 샌프란시스코가 중심인 책에서 중국이 동양의 한계이자 전부가 되어버리고 (저자의 부인이 중국출신이다) 페르시아/유럽-옛문화/근대문화-역사/문명 식으로 푸는 서술이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음식의 언어에 나타나는 공공의 법칙, ~가 아니다 라고 고집할 수록 그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여기, 한국의 음식 언어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즉, 값싼 식당에는 "잔반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라는 표어가 버젓이 벽에 붙어 있다. 잔반은 버리는 게 당연한데도. 게다가 "유기농 쌀을 이용한 한우 프리미엄 김밥"은 아무리 비싸도 어딘가 속고 속이는 느낌이 들고, 비싼 마카롱과 롤크림 케익의 인기, 값싼 음식이 맛있을 때는 '마약'에 비유한다는 점 등. 하지만 책 말미에 갑자기 공유된 인간성에 대한 존중, 운운은 성급한 느낌이 든다.